Saturday, March 17, 2012

만행 버릴 때 얻는 것

만행 버릴 때 얻는 것
어찌보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부터 철학자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니체, 플라톤, 소크라테스, 음악 베토벤과 밀러에 이르기까지 나는 정신적 난민이 되어 진리를 찾아 헤메였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진리의 길을 안내해준 사람은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야 있는 작은나라 한국, 그것도 남북이 분단된 땅에서오신 숭산 큰스님이었다. 그의 영어는 완벽하지 않았으나 그분의 말과 행동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수식어로 나열된 영어책, 이 세상의 훌륭한 말은 다 쏟아내는 존경받는 교수님들의 가르침보다 더 강하게 내 영혼을 이끌었다.
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인가.
거기다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와 맑은 눈동자를 가진 키가 작고 땅딸막한 보통한국 남자의 얼굴을 한 사람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니……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나의 스승 숭산 행원 대선사님, 이 살아있는 부처는 현재 서양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적인 스승 중 한 분이다. 전세계 5만 6천여 명의 푸른 눈 제자들이 큰스님과 함께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1996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종교학 교수팀은 세계 불교의 전통에 관한 책 한권을 출간했다. 그 책의 제목은 《브처의 비전》 (The Vision of the Buddha).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을 설명하고 아시아 불교의 다양한 전통을 소개했다. 이 책은 당시 서양에서 동양불교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을 한 책으로 평가받았으며, 이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서울 교보문고 외국서적 코너에 가도 구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인도, 중국, 스리랑카, 일본 등 각 나라의 불교 전통이 모두 스록되어 있는데 정작 한국 불교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없다. 2년 전 이 책을 접했을 때 얼마나 슬프고 놀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나마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것은 이 책의 맨 뒷부분이었다. 저자들은 이 책 마지막에 ‘현존하는 4대 생불’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바로거기에 숭산 큰스님의 이름이 있었다. 그것도 현재 서양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영적인 스승 달라이라마 바로 다음에 말이다.
달라이라마, 숭산스님과 함께 소개된 나머지 두 분은 베트남의 틱 낫 한(Thich Nhat Hahn). 캄보디아의 마하 거사난다( Maha Ghosananda) 스님이다.
저자들은 책에서 큰스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선불교의 달마대사 숭산은 현재 가장 유명하고 능력있는 불교계의 큰스승이다. 선불교의 최고 원로격이면서도 정통 참선불교를 도전적이고 참신한 방법으로 지도한다. 숭산이 신도들과 나눈 편지와 대화록에는 살아있는 선불교의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반야심경〉 〈금강경〉 같은 대승불교의 경전들은 숭산스님의 가르침 안에서 자연스럽게 현대언어와 현대의 가르침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비로서 부처님 가르침의 진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불교를 영어로 펴낸 유일한 책으로는 인도의 학자 무 성(Mu Soeng)이 1987년에 미국에서 출판한 《천 개의 봉우리 ; 한국의 선 전통과 스승들》 (Thousand Peaks ; Korean Zen ㅡ Tradition and Teachers)란 책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와 살면서 깜짝놀란 것은 숭산스님이 외국에서 평가를 받는 것만큼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예 큰스님의 업적이 과소 평가되는 것은 물론, 어떤 스님들은 ‘큰스님이 한국불교를 버려놓았다. 고 내앞에서 드러내고 혹독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그 비판의 중심 내용은 주로 큰스님의 포교 스타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도와 승려가 젠센터에서 같이 먹고자고 생활하며 비구와 비구니가 격의 없이 한방에서 수행하고 비구니가 비구대신 지도법사가 되어 법문을 하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한국불교의 전통 포교방식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큰스님에 대한 비판은 종교가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옮겨질 때 어떻게 변화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비난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이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교 전통중에는 아직도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 인도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이있다.
예를 들어 1년에 여름 3개월, 겨울 3개월 집중해서 참선수행을 하는 안거수행은 본래 인도의 날씨 때문에 나온 수행법이다. 인도는 4계절이 뚜렸하지않고 대신에 일년 중 비가 많이오는 우기와 그렇지않은 건기로 나눠진다. 우기는 비가 너무많이 내리고 건기는 너무 덥기 때문에 나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기와 건기에 몇 개월씩 집중 수련을 하도록 한 것이다.
본래 스님들은 탁발을 해야한다. 음식을 구걸해 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 세 벌 이상의 가사와 한벌의 발우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서는 안된다. 또 한곳에서 3일이상 머물지 못하며 사는 거처도 지나치게 커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당시 전통이었다.
불교는 히말리야를 넘어 티벳,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모습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티벳은 인도보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승복을 더 가질 수 있다든지 탁발수행도 좀 유연성이 첨가되었다.
어떤 것이든지 한문화가 다른문화에 전파되면 그 나라 특유의 토착문화와 섞여 고유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듯이 불교도 마찬가지다.
중국불교는 기존의 도교나 유교와의 충돌도 경험해야 했다. 본래 인도 불교전통에서는 조상들을 위한 염불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중국에 오면서는 유교와 결합되어 승려들이 조상을 위한 염불기도를 한다.
불교는 또 티벳이나 한국에 오면서 토착 샤머니즘 문화와 접목되었다. 승복의 색깔과 디자인에서부터 탁발문화, 승가조직, 승려와 신도들간의 관계 이 모든 것이 각자 그 나라 특유의 문화와 결합되어 새로운 얼굴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래 문화를 전파한 쪽에서 우리문화를 왜 그렇게 변질시켰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인도승려들이 중국승려에게 따지지 않듯 그리고 한국승려들이 일본승려에게 따지지 않듯 말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불교가 기독교의 전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의 전파는 ‘전쟁’을 수반한 것이 많았다. 토착 전통을 억압하고 없애는 방식 때문에 피를 부르기도 했다.
미국의 초기역사 역시 ‘신의 이름으로’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원주민들이 살해되고 축출되었다. 단지 그들이 믿고있는 신이 백인들이 믿는 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불교는 그러한 전쟁의 역사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불교 가르침의 유연성에 있다. 부처님께서도 살아 생전 가르침을 펴실 때 제자들의 조건과 상황, 경험에 따라 아주 융통성있게 가르침을 설명하셨다. 가르침의 기본 방향만 옳다면 모양이 어떻게 변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게 불교전파의 특색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불교는 어떤 모습인가.
중국 불교가 한국에 전해진 시기는 서기 372년으로 고구려 시대라고 하는 게 학자들의 추정이다. 백제를 거쳐 신라로 간 게 528년 이다. 한국불교도 제대로 한국불교다운 모양과 틀을 갖추는 데 최소한 5백 년, 6백 년이 걸렸다.
중국, 일본, 티벳 승려들이 서양에 불교를 전한 시기를 대략 1800년대라고 본다. 아무리 거슬러 가도 서양의 불교역사는 고작 200여년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파고든 것은 1950년대이다. 그때에는 아시아 이민자들이나 관심을 가졌지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인들에게 불교가 신사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게 맞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 서양의 불교를 보고 ‘저건 불교가 이니다’고 얘기하는 것은 억지다.
당연한 얘기자만 서양사회는 동양과 문화가 다르다. 우선 서양사회는 동양보다 덜 권위적이다. 동양에서 불교전통은 아무래도 유교전통과 맞물려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사찰문화도 유교적 질서가 강조되어왔다. 신도와 승려와의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승려들 사이에도 비구와 비구니, 출가 햇수에 따라 엄격한 규율이 있다.
그러나 서양은 그런 권위적 전통이 약하다. 또 서양사회는 남녀평등사회다.
큰스님이 미국포교를 시작했던 1970년대는 이미 미국에서 ‘성의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었다. 여성의 지위는 급격하게 향상되었고 ‘성’과 무관하게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었다. 큰스님도 처음에는 비구, 비구니를 구분하는 한국 전통적 방식을 도입하셨다. 그러나 곧장 반발이 왔다. 큰스님은 이들의 말을 경청했고 미국적 상황에 맞게 바꾼 것이다.
큰스님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스즈키 로쉬, 사사키 로쉬, 마에즈미 로쉬를 비롯해 티벳의 달라이라마, 촉얌 트롱파(Chogyam Trungpa) 등등 포교를 위해 미국으로 온 불교 선사들 모두 가르침 공동체안에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법을 받아 가르칠 수 있으며 공동체안에 리더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 살아 생전, 여성은 한때 출가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에는 여성이 그들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버리고 심지어 ‘섬기고’ 있던 남편을 버리고 혹은 결혼조차 하지않고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불교 공동체에 속했던 남성들은 여성이 출가를 하면 공동체는 곧 문란해 질 것이라며 이제히 반대했다. 남성들의 출가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는 큰 충격이 될 수 있지만 이미 바깥생활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출가라는 것도 그 바깥 생활의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가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 여자들이 출가를 하게 되면 가정은 누가지키느냐 하는 문제 제기였다.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면서 많은 문제가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불제자가 되어 출가를 했지만 ‘내 딸을 돌려달라’ ‘내 아내를 돌려달라’고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분노한 가족들과 남성들은 불자들의 공동체를 파멸시켜 버리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부처님은 이 같은 상황에서, 여성들에게는 좀더 않은 계율을 주어 인도 사회가 급격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불교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금은 그때와는 양상이 판이하게 다르다.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내일 아침 뉴욕의 거리에 나타나 ‘비구니는 비구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면 아마 데모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부처님의 가르침의 본질이 바뀐 것은 결코 아니다.
서양에서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는 비록 불교가 나를 찾게해주는 큰 가르침이긴 해도 그 문화적 차이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마치 내가 어렸을 적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큰 믿음을 갖고 있었으나 신부, 수녀님, 목사님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교회공동체를 보고 약간의 실망을 했듯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 불교를 접하고 젠센터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 옳아도 그 포교방식이 낡고 뒤떨어진 어떤 계율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뛰쳐나오려고 생각했다. 특히 위계나 규율을 강조하는 동양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더군다나 미국인들이 누구인가. ‘자유’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사람들 아닌가.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삶을 옥죈다든지 하는 생각이 들면 가차없이 버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모든 불교전통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온통 의문투성이이다. 염불은 왜 하는지, 법당에 왜 하려한 금불상이 있어야 하는지, 왜 발우공양 같은 것을 해야하는지 꼬치꼬치 따지고 캐묻는다.
하다못해 앞에서도 잠깐 내 경험을 통해 설명했지만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것조차도 동양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우리 같은 서양인들에겐 납득하기 힘든 전통이다. 그것은 예날 고대시대 노예가 주인에게 복종을 맹세할 때 했던 동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특히 미국에 불교를 포교하러 온 사람들은 우선 미국인의 의식, 그들이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우선 알아야한다. 좋은 의사란 환자의 상태를 우선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식대로 포교를 한답시고 와서는 실패를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만 예로 들어본다면 숭산 큰스님을 제외하고는 한 분도 미국에와서 제대로 포교를 하신분이 없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큰스님이 한국불교를 버렸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티벳불교가 미국에서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티벳은 지금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에 퍼져 포교를 하고 있는 티벳승려들은 난민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는 ‘우리나라’ ‘우리불교’ 하는 사고방식이 없다. 나라가 없다보니 온 나라가 그들의 나라인 것이다.
그렇다고 티벳문화가 죽고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꽃피고 있다. 중국정부가 티벳을 침공하면서 사원 6천여개를 파괴했지만 티벳사찰은 전세계에서 세워지고 있다.
‘버릴 때 얻는것’ 아리는 역설은 여기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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