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13, 2012


      과감한 한국, 치밀한 일본 ---

                                      그로벌 아이 이상언 런던 특파원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 현장에 있었다. 한국이 일본을 2대 0으로 이긴,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로 10여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논란이 분분한 바로 그 '역사적' 장소 카디프 밀레니엄 구장에, 골이 터진 두 차례의 순간, 흥분하지말고 차분히 관찰해야 하는 기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다가 민망해서 조용히 주위를 살펴보고 얼른 앉았다.


기자석은 구경하기에 가장좋은 경기장 중앙 쪽의 관중석 하단 중심부에 있었다. VIP석 바로 맞은편. 그런데 이 기자석 바로옆에 150명 가량의 일본인이 떼로 몰려 앉아 아주 시끌벅적하게 응원을 했다. '닛폰, 닛폰'을 쉴새없이 외치고,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댔다. 사무라이 복장을 한 일본인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명당 자리에 단체로 앉을 수 있었을까. 그런의문이 들었다. 상당히 조직적으로 준비하지 않고서야 집단적으로 그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일본이 3~4위 전을 치르는 것이 확정되기 한참전에 일찌감치 표를 예매했어야 했고, 인터넷이 아닌 현장 구매로 일사불란하게 이련번호로 표를 샀어야 했다.


반면에 한국응원단은 관중석 여기저기에 산재돼 집단응원에 애를 먹었다. 대부분 좋은자리도 아니었다. 부라질과의 준결승전 패배이후 급하게 개별적으로 표를 구했기 때문이였다.


어쨋든 응원 목소리에서 한국이 밀리지는 않았고, 시합도 시원하게 이겼지만 일본인의 치밀한 준비에 놀랄 때가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보면 뭔가 잔뜩 적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어보면 회사간부와 사전협의를 거쳐 질문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회견내용과 질문방향이 어긋나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해도 답답해 보일정도로 가져온 질문을 고집한다.


이런 일본인에 비해 축구 응원단과 기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즉흫적이다 좋게 말해 다이내믹하고 융통성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치밀함에 약점이 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다소 즉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한국 공무원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올림픽 축구 준결승전이 열린 7일(현지시간)에 영국을 방문해 경기를 관람할 계획을 추진했다.


 이후 결승정이나 3~4위전까지도 참관하는 것이 검토됐다고 한다. 이는 10일의 독도 행차가, 장시간 대통령의 심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하더라도 D-데이를 포함한 실행계획이 확정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박종우선수의 세리머니 사건 뒤 어설픈 입장 표명과 사과로 논란을 부른 대한체육회나 축구협회의 내응도 한국의 성격을 드러낸다. 서두르다 정확한 의사 표현의 절차나 방법을 점검하지 못했다.


올림픽에서는 한국의 과감한 축구가 일본의 꼼꼼한 축구를 눌렀다. 하지만 국가 간 분쟁이나 외교에서는 의욕이 정교함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묵은지로 남아있는 추억
                                              이 아침에 이기희 윈드 화랑 대표

가을이 떠나고 있다. 홀로 선책길에 올라 낙엽을 밟아보라. 낙엽은 아침이슬로 눈물을 감추고 제 몸이 밟힐 때마다 바스락 신음 소리내며 작별을 서두른다, 떠나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꽃들의 향연이 떠나간 뒤뜰엔 마른 풀잎들이 생명을 품고 내일을 기약한다, 계절은 등 돌리며 빛바랜 정원의 꽃씨 한 알 떨어트린다.

묵은 것들은 농익은 맛을 낸다. 상큼하진 않지만 감칠맛으로 다가온다. 겉절이는 풋풋하고 신성한 맛을 내지만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다. 추억의 정원에는 오래되고 빛바랜, 쿨쿨한 냄새나는 해묵은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묵은지는 오래된 김장 김치로 양념을 강하지 않게 해 담근다. 저온에서 6개월 이상 숫성시켜야 제 맛이 나는 데 오래 숙성 저장 할수록 맛있고 깊은 맛을 낸다. 추억의 창고에 묵은지가 많은 사람의 하루는 가을 햇살처럼 따스하다.

묵은지는 일반 김장김치보다 조금 짜게 담가야 긴 겨울을 버틴다. 인생의 짠맛, 신맛, 험한 맛을 많이 본 사람은 엄동설한을 버틸힘과 용기를얻는다.

너무 빨리 숫성된 김치는 금방 신맛이 나지만 묵은지는 서서히 오랜기간 발효되기 때문에 시어지지 않는게 특징이다. 짧은 시간 한 방에 날리는 성공은 쉽게 사그러들지만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삶은 묵은지처럼 오래 지속된다.

묵은지 배추는 속이 덜차고 푸른잎이 많으며 단단한 것으로 골라야 한다.

사는 게 마음에 덜차고 적게 가져도 늘 푸른 마음으로 단단하게 살면 묵은지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을까?

김장은 배추를 소금물에 담근다. 는 침장(沈藏)에서 나왔는데 김장으로 바뀌게 됐다. 김치는 침채(沈菜)에서 유래 됐는데 딤채~~김채~~김치로 변형을 거듭했다.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한다. 땅에서 뽑힐 때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며 다시 죽고, 매운 고추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돼 죽고,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마지막으로 죽는다.

김장 담그는 일은 다가올 험난한 엄동설한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익숙한 손 맛으로 오래된 정원에서 해묵은 추억의 불씨 하나 지피는 일이다.

난로가에서 톡 톡 튀는 밤톨 까먹던 그 유년의 시간으로 연어처럼 거슬러가는 일이다.

오늘이 허전한 그대여, 떠나는 게절의 끝자락 붙잡고 처우적거리는 그대여 사무치게 그리운 날은 마음 속 깇은 곳에 묵은지로 남아있는 추억의 항아리를 꺼내 보세요.

너무 자주 열어보면 그 아름답던 날들이 빨리 시어질지 몰라요. 추억의 항아리는 우거지로 단단히 덮어 땅속 깊이 묻어 두세요.

참쌀 풀 섞은 물에 고춧가루와 고추씨를 개고 열치액젓 다진마늘과 생강 소금을 넣듯 생의 모든 슬픔과 기쁨, 황홀한 추억을 모두 담아 꼭꼭봉해 당신 가슴깊이 묻어 두세요. 

당신이 와로울 때마다 은근하게 잘익은 추억의 묵은지가 오래된 정원에서 늘 당신과 함께 하길 바라요. 

Friday, November 9, 2012

절차의 힘 1




절차의 힘 프롤로그 1
사이토 다가시 지음 . 홓성민 옮김


     절차의 힘 프롤로그 1

사이토 다가시 지음 . 홓성민 옮김
일을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절차의 힘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철저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절차의 힘은 다른 영역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희복하는데 큰 도움이된다. 한 가지일에 탁월한 재능을발휘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즉 한가지 일에 정통하면 그 내면의 절차가 확실히 이해되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가야한다는 것이 몸에 익혀지게 되므로 다른일에도 그것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차의 힘을 단련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차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 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난다. --좋은 생각--

절차의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특별한 천재나 예술가를 제외하면 잠재력이나 재능 면에서 사람들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일을 하는 데 있어 차근 차근 절차를 밟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믾은 사람들은 애초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었다고 한탄하며 절망을 한다. 그러나 실패라는 쓰디쓴 결과를 놓고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불우한 성장 과정,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으므로 노력도 하지않게 된다. 하지만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에대한 대처법도 달라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문제를 하나 푸는 데도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푸는것과 차근차근 공식에 대입해 가며 푸는 것과는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시험 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자신의 안 좋은 머리 탓으로 돌리거나 "원래부터 이 과목은 나에게 맞지 않았어" 하며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시험 결과가 나빳던 것은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거나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판단 할 수 있게 되면 실력은 향상된다.


집안이나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차가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절차를 바르게 인식하면 자신의 실패에대해 질책하는 정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염두가 나지 않지만,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았던 것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지않고 새롭게 도전하여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갈 수 있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반성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상황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귿이 자신의 인간성 전체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고도 단지 차례와 방법을 효과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일을 통해 흭기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절차의 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절차의 힘이라는 개념을 내것으로 만들면 여러가지 일과 살황을 절차라는 절단면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일에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됨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서로 연결해 보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차의 힘이 갖는 효용성이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하는 일과 논문을 쓰는 일은 완전 별개의 활동처럼 보이지만, 절차의 힘이라는 칼로 잘라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공통점이 선명하게 들어난다. 이 개념의 편리함을 이해하게 되면 차츰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그만큼 향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원래 절차라는 단어는 회의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아론적인 말아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말이다. 조각상 같은 예술 작품을 만들 경우에도 절차가 중요하다고 조각가들은 이야기 한다. 어쩌면 예술적 재능은 약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절차를 제대로 알고 익힘으로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건지도 머른다.


절차를 배우고 익히는 이런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술같은 창조적인 분야에서조차 재능이 아닌 절차의 힘이 중요한 관건이라면, 그 밖의 다른 활동들에서 절차의 함이 갖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절차의 힘만 익히면 모든 활동이 한결 수월해지고 편해진다는 발상은 무척 흥미롭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실패한 일에 대해서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안에 잠자고 있는 절차의 힘을 깨워라
절차의 힘에 곤한 이야기를 하다 보년, "내겐 절차의 힘이 없으니 그것을익힐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사람을ㄹ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느 절차의 힘을 갖고 있읍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이제까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이 책에서 나는 절차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볻다 더 중요한 점은 자신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절차의 힘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일이다. 절차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처 그것ㅇ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일 처리 능력이 없다고 단정 지으며 노력핮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절차에도 여러가지 형태가있으며, 자신에게 꼿 맞는 절차 스타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리 오가이(군의관 . 소설가) 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함면서 일을 해나가는 탕입이 있는가 하면, 사카구치 안고(소설가 . 평론가) 처럼 방안에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소설을 쓰는 탕입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각품을 많아 남긴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 밟는 절차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가이 경우, 먼저 주변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는 방식의 절차의 힘을 갖고있다.
그에 반해 사카구치 안고의 경우 비록방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지만, 바로 그 난잡함이 그에게는 소설 창작의 핵심 포인트다. 깔끔하게 저리되어 있기보다 오히려 마구 어질러져 있는 편이 훨씬 일이 잘된다면 그 난잡한 주변환경이 그에게는 바로효과적인 방법이자 절차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부 요시하루(일본 장기의 최고수)라는 장기의 대가가 있는데, 예전에 그는 여관이나 호텔에서 쉽사리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의 대국은 주로 호텔이나 여관에서 이루어지는 터라 번번이 쉽게 지쳐버려 대국에도 자주 영향을 받곤 했다. 이 문제를 그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선 여관에 도착하면 방에 짐을 몽땅 꺼내놓는다. 그러고는 자기집처럼 마구 어지른다. 그러면, 자기만의 공간처럼 느껴져 편안한 기분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부의 경우, 여관에서 방을 어지르는 것이 그가 가진 절차의 힘이다. 정리정돈을 못한다고 해서 일을 할 때 젍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위에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어디에 무엇이있는지 알아서 실수없이 민첩하게 일을 처리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절차의 힘이 가진 가장중요한 의의다. 설사 전반적인 일을 아무리 뛰여나게 완수해 낸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만의 방식을 활용하는 절차의 힘을 체계적으로 기술화 하는것이 이 책의 최종 목표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 첫번째 단계로서 먼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는 절차의 힘을 깨달아야한다. 직장에서 일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다른일에서는 확실한 절차로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처럼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뛰어난 절차의 힘을 발휘하면서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가정적인 타입으로 요리를 잘하면서도 직장일에는 서툰 사람은 요리에 필요한 절차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업무에 연결하는 회로가 없는 것이다.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출발점으로 하여 서툴고 생소한 분야를 차츰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절차의 힘을 키우는 핵심 요령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만의 절차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을 다른일에 적극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제가가각 다른 절차의 힘을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절차의 힘을 발견하여 그것을 차츰 발전시키고 확장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죽고 싶으면 죽도로 오라


"죽고싶으면 竹島로오라"
竹島(경남통영)=주정환 기자 jwjoo@joongang.co.kr


지난달 31일 오후 7시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의 작은 섬 竹島. 주민 6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남쪽바다 외딴섬의 밤은 칠흑같이 캄캄했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폐교 운동장엔 육지에서 찾아온 특이한 방문객 19명이 한줄로 섰다.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체를 경영하다 실패한 '전직 사장님' 들이었다. 이들 앞엔 섭씨 550도의 뜨거운 숯불이 새빨간 불티를 어지러이날리며 타고 있었다.


  "내 안의 모든 부정적인 마음을 태워버리겠읍니다. 이제 나의 미래는 불빛처럼 환하게 밝아올것입니다." 한 사람의 힘찬 외침이 고요한 섬의 정적을 깼다. 그리고 용기를 내 뜨거운 숯불위로 힘차게 걸어갔다.발바닥은 흙과 재로 더러워 졌지만 놀랍게도 불에 데인곳은 전혀 없었다. 그 뒤를 이어 18명의 동료도 무사히 숯불 위를 걸어 지나갔다. "와아아~"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랑하는 동료를 얼싸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들에게 2012년 10월의 마지막 밤 숯불 걷기는 낡은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태어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다음날 오전6시 죽도의 동쪽 바닷가.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어둑어둑한 벼랑 위로 19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세찬 바람소리를 벗삼아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명상에 감겼다.


 밤샘 조업으로 고단해보이는 고깃배가 바다가운데를 천천히 지나갔다. 잠시 후 벌건 아침노을이 한려수도의 섬과 섬 사이로 퍼지더니 '말갛게 씻은 얼굴'의 고운 해가 먼 산 위로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노란 아침 햇살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선 번뇌와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고 새 희망이 솟아났다. 머리위로 두팔을 활짝펴고 야호~ 소리를 질렀다. 오늘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누군가의 희망찬 목소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가의 이름모를 노란 야생화가 새삼 아름다워보였다.


 텐트에서 명상하며 자기반성
지난달 8일 통영 여객선터미널. 19면의 '전직 사장님'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죽도로가는 여객선 '섬누리호'를 탔다. '제4기 재기 중소깅업 경영자 힐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부도와 폐업으로 막대한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지고 음지로 숨어든 사람들을 돕기위해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연수생들은 폐고를 고쳐 만든 죽도 연수원에서 이달 2일까지 26일간 공동생활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 출발의 의지를 다졌다. 기자가 죽도 연수원을 찾아간 것은 캠프 24일째 되는 지난달 31일이었다. 오전 7시 통영항에서 하루 두번다니는 여객선을 타고 1시간이 조금넘게 걸려 죽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5분거리인 연수원 입구에선 '허밀청원(虛密淸圓)' 이라 적힌 현판이 손님을 맞았다.


 '묵은 마음 비우고 맑고 둥군 마음만 가득채워 가는 곳' 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형광빛 점퍼를 입은 연수생들은 운동장에서 아침식사 전 명상을 하고 있었다. 41세에서 63세까지 남자 16명과 여자 3명으로 구성된 연수생중에는 세상을 원망하며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사람도 적잖다"며 "이들에게 '죽고 싶으면 죽도로오라'는 말로 캠프참가를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도 생소한 외딴섬에 제발로 찾아올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마음이 절박하고 막다른 곳까지 몰려 있다는 뜻" 이라며 "연수생 들에게 형광빛 점퍼를 지급한 것은 혹시라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남의 눈에 쉽게 띄도록하기위해서"라고 소개했다. 연수생들은 4주의 교육기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과 처절한 싸움을 벌렸다. 외부 세계의 편리함을 잊고 자연의 치유력에 의존해 상처받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TV 나 인터넷는 전혀보지못하고 가져온 휴대전화도 연수원에 맡겨둬야 했다. 식사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3시 두 끼. 연수원에서 직접 기른 유기농 야채 위주의 식사였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는것은 기본이고 커피도 마시지 못한다. 구멍가게조차없는 죽도에선 돈이있어도 살 수가 없는 품목들이다. 섬에는 물이 귀해 빗물을 받아쓰는 사정상 샤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할 수 있었다.


 캠프 2주차부터는 산 위에 각자 1인용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낮에는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밤에는 한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좁은 텐트속으로 들어갔다. 텐트안에선 희미한 손전등을 비춰 책을 읽거나 명상을 했다.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는 자장가삼아 들었다. 맑은 말이나 흐린날이나 새벽에 잠이깨면 동쪽 바닷가 위에 앉아 일출을 보며 명상에 잠겼다.


 한 원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사업실패우 술과 담배에 절어살면서 불면증, 우울증, 당뇨 등 각종 질병을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절제와 금기를 요구하고있다." 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프로그램은 특정한 이론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스스로 명상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 중점을 뒀다"며 "처음엔 잔뜩 굳어있던 연수생들의 표정이 날이갈수록 밝아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모든게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
정영주(57)는 5년전만 해도 잘나가는 여성 기업인이었다. 중국 지린성 창춘에 진출해 1만 1500(평방미터 약 35000평)규모의 봉제공장을 세웠다. 직원수는 270명을 헤아렸다. 매출의 100%를 의존하는 거래처였던 국내 대기업이 중국 상업을 확장하면서 사원복 주문이 폭팔적으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장씨는 30대 재벌에 속하는 이 거래처를 철석같이 믿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기가 급격히 악하됐다. 자재 값과 인건비는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거래처는 '단가를 내리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압박했다. 장씨는 '단가를 후려 치더라도 주문을 받아와야 공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모든 게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나마 납품대금도 제때 받지 못했다.


 봄에 납품한 제품 값을 차일피일 미루다 가을에야 겨우주는 건 예사였다. 5년전 납품한 대금 중 아직 받지못한 돈도 남아있다. 거래처 담당자가 바뀔 때 마다 예전 담당자가 약속했던 사항은 모르쇠로 잡아뗐다. 정부는 '상생'과 '동반성장'을 외쳤지만 현장에선 전혀 딴 세상 얘기였다. 정씨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에도 민원을 냈지만 아무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공장 자금사정은 급격히 나빠졌지만 복잡한 중국 법규에 따라 공장문을 쉽게 닫을 수도 없었다.


주문 물량이 반토막으로 줄고 공장 가동율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노는 직원들을 어쩔 수없이 집으로 보냈다가 부당해고로 고발당했다. 정씨는 "거래처 담당자가 단가이하로 회사 비용을 절감했다며 성과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피눈물이 났다. 그 성과급이 결국 나 같은 중소기업의 고혈을 쥐어짠 대가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소연 했다. 그러면서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분위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세상을 원망하며 눈물로 살아가던 장씨는 이번 캠프에 참가하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했다. 장씨는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하루종일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였지만 이젠 다 내려놓고 웃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고 말했다. 그는 "야외에서 혼자 명상하면서 마음의 부자가되니까 모든게 달라 보였다. 아들이 '모든 분노를 죽도 바다에 던지고 오세요'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그 말대로 실천하려고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익훈(58)씨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부도난 공장을 인수해 14년간 제빵업체를 운영했다. 성실 납세기업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열심히 세금도내고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하루 평균 5t 분량의 밀가루을 빵 기계에 쏟아부으며 장미빛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비교적 재무상태가 탄탄했던 거래처가 어느 날 인수합병(M&A) 전문가에게 넘어가더니 순식간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거래처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빚잔치를 하고 매각되면서 애써 납품한 물건 값을 거의 다 날려버렸다. 거래처의 새 주인은 10대 재벌에 속하는 대기업이었다. 잠시 희망도 거져봤지만 소용없었다. 새 주인은 납품단가 인하부터 요구해왔다. "지난해 11월 공장 문을 닫고 골방에 틀어박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며 "결국 내가 사업 이이템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반신반의하며 죽도를 찾아온 그는 교육 1주차에는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2주차에 들어가면서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매일 해 뜨는걸 보면서 분노하는 마음을 내려놨다. 어느 정신과 의사도 해주지못한 마음의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이곳에서 생전 처음 밥을 먹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됐다"며 "그동안 무릎과 어깨가 좋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저절로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재기성공하면 같은 처지 사람돕고 싶어
 아항훈(46)씨는 20년전 작은 사진관에서 출발해 한동안 승승장구하며 결혼식 관련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깢지 사업을 키워나갔다. 결혼식이 몰리는 계절에는 하루에만 300만원의 현금을 쓸어담은 적도 있었다. 연매출 10억원대에 직원수는 40명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쳐 예식장 건설에 뛰어든 게 화근 이었다.


  6600평방미터(약 2000평)의 땅을 구입해 건축허가를 신청했는데 담당공무원이 2년이나 질질 끌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나중에 간신히 허가는 받았지만 공교롭게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융회사의 돈줄이 꽉 막혀버렸다. 할 수 없이 3층짜리 예식장을 포기하고 1층짜리 일반건물로 용도를 바꿔 건출을 마무리 했다. 그런데 경기불황으로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건물을 놀릴 수 없었던 이씨는 직접 고깃집을 차렸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장사가 됐다. 하지만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손님이 뚝 끊기고 말았다. 그는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판단 착오였다."고 했다. TV 한대 남기지 못하고 전 재산이 경매로 넘어갔다. 먹고살기 위해 대리운전 핸들을 잡았던 이씨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손님에게서 재기중소기업개발원에 관한 얘기를 듣고 죽도를 찾았다. 이씨는 "여기서 4주간 지내면서 내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나 자신을 학대하고 비관하며 미워하기만 했는데, 이젠 나부터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죽도를 나가는 순간 다시 현실의 벼랑에 서야한다. 죽도의 벼랑에서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란 사실을 연수생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치는 연수생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중소 제조업체를 경영하다 부도를 냈다는 장만경(56)씨는 "처음 죽도에 들어올 때는 아 자신을 거지나 쓰레기로 여길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었다."며 "지금은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재도전할 용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사업에 성공한다면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Tuesday, October 30, 2012

23 제 4편 영원한 자유 오매일여

24 4편 영원한 자유 1장 오매일여

1 영겁불망 永劫不忘

우리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고괴로울고가 따릅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고가 항상 따라 다니는 이것이 이른바 생사고生死苦라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무한한 고를 어떻게 해야 벗어나며 해결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서는 굳이 천당에 갈 필요도 없고 극락에 갈 필요도 없읍니다. 오직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대해탈의, 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불성佛性이니 법성法性이니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니 진여眞如니 등등으로 말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이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찌기 선문禪門에서 조사祖師 스님들은 말씀하셨읍니다.

산 법문 끝에서 바로 깨치면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活句下 薦得 활구하 천득

永劫不忘 영겁불망

곧 불교의 근본 진리를 바로 깨치면 그 깨친 경계, 깨친 자체는 영원토록 잊어버리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만, 도를 성취하여 깨친 이 경계는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금생에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생에도, 내내생에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동시에 생활의 모든 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 이라는 것입니다.

마조馬祖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워히 깨쳐서 一悟永悟 일오영오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不復更迷 불복경미

그러므로 깨첬다가 매昧 새벽매했다 또 깨쳤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깨치면 금생, 내생, 여러 억천만 생을 내려가더라도 영원토록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오圓悟스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원히 얻어서 一得永得 일득영득

천겁, 만겁을 두고 그와 똑같을 뿐 변동이 없다. 億千萬劫 亦只如如 억천만겁 역지여여

깨친 경계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것은 바로 깨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이렇게 되면 이에 따르는 그 신비하고 자유자재한 활동력인 신통묘력神通妙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참으로, 불가설 불가설不可說 不可說 입니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 , 영겁불망永劫不忘인 생사 해탈의 경계를 성취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화두話頭가 근본이며,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없읍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얼마든지 알 수 있읍니다. 숙면일여熟眠一如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하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면일여가 여래如來의 숙면일여가 되면 진여일여眞如一如가 되지만, 보살의 숙면일여는 8지 보살의 아라야阿羅耶 ; Alaya 위位에서입니다. 8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나고 죽음에서, 곧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미세한 무의식이 생멸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 있어서 여래와 같은 진여위眞如位의 자재自在함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바로 깨친 것이 아니며, 여래위, 진여위에서의 숙면일여가 되어야만 참다운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8지 이상의 아라야위에서의 수면일여만 되여도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매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토록 퇴진退進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아라야위에서의 불망不忘과 진여위眞如位에서의 불망은, 차이는 있지만, 다시 매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은 같읍니다.

오매일여도 여래위에서의 오매일여와 아라야위에서의 오매일여가 다르면서 또한 같은 것과 흡사합니다.숙면일여라고 하여 잠이 깊이 들어도 여여한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니다. 예로부터 대종사, 대조사치고 실제로 숙면일여한 데에서 깨치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읍니다.

누구나 깨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앞 못보는 영혼에 불과합니다. 봉사 영혼이 되어서 수업수생隨業受生하니 곧 업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읍니다. 김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고, 박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중처변추重處便墜로서 곧 자기가 업을 많이 지은 곳으로 떨어지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자기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것을 수업수생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경계가 되면 수의왕생隨意往生하니 곧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읍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김 가가 되든 박 가가 되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의왕생으로, 불교의 이상이며 부처님 경전이나 옛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의왕생이 되려면 숙면일여가 된 데에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부처님 이상 가는 것 같아도 그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몸을 바꾸면 다시 캄캄하여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송나라 철종哲宗 원우 71092년 이었읍니다.소동파蘇東坡의 동생이 고안高安에 있을 때 동산洞山 선사와 수성 총 壽聖 聰선사와 같이 지냈읍니다. 그 동생이 하루 밤에 두 스님과 함께 성 밖에 나가서 오조 계 五祖 戒 선사를 영접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이튿날에 형인 동파가 오는 것이었읍니다. 그때 동파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는데 계戒 선사가 돌아가신 지 꼭 오십년이 되던 때였읍니다. 오 십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동파를 잉태하였을 때 꿈에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윈 중이 찾아와서 자고 가자고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바로 계 선사였읍니다. 계 선사는 살아서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위었더랬읍니다. 동파 자신도 어려서 꿈을 꾸면 스님이 되어서 협우峽右에 있는 경우가 많았읍니다. 그런데 계 선사가 바로 협우 사람이었읍니다.

이 사실들로써 동파가 계 선사의 후신인 줄 천하가 다 잘 알게 되어서 동파도 자신을 계 화상戒 和尙 이라고 불렀읍니다.그리고 동파는 자주 동산洞山에게 편지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과 같이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여 달라하였으나 전생과 같이는 되지 못하고 죽었읍니다. 오조 계五祖 戒 선사는 운문종의 유명한 선지식이었는데, 지혜는 많았지만 실지로 깊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어두어져 버린 것 입니다.

실제로 옛낭의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오매일여가 기본이고, 영겁불망이 표준이 되어서 수도하고 법을 전했읍니다. 여기에 실례를 들어 이야기히겠읍니다.

2 대해선사

앞에서 나온 오조 법연 선사의 제자에 원오 극근 圓悟 克勤 선사가 있고, 그 제자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있읍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대혜 종고 선사의 법문으로, 그는 임제의 정맥으로서 천하의 법황法王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읍니다. 이제 대혜스님이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인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겠읍니다.

대혜스님은 스므살 남짓 되었을 때, 요즘 말로 한소식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읍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진짜 소식이 아니라 가짜 소식이었읍니다. 그래도 전생 원력이 크고, 또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 깊은 분이어서 그 지혜가 수승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소식을 진짜 소식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가짜 소식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이 가짜 소식에 모두 속아 넘어 갔읍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대혜스님이 성취한 것은 엽전에 불과한데 세상사람들은 진금眞金처럼 여기고 바로 깨쳤다고 인가를 하여 대혜스님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다녔읍니다.

그무렵 천하 5대사라는 다섯 분의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담당무준湛堂 無準 선사라는 분이 있었읍니다. 대해스님이 이 선사를 찾아가며 천하 사람이 나를 보고 참으로 깨쳤다고 하고 진금眞金이라고 하니 이 스님인들 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하는 말을 막 쏟아부었읍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왔읍니다. 자신만만하게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력이 천하제일이라고 큰 소리 텅텅 쳤지만 잠이들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담당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스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엽전인가 봅니다. 저를 엽전인 줄 모르고 금덩어리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모두 엽전 아닙니까? 스님께서 제가 엽전인줄 분명히 지적해 주시니 스님이야말로 진짜 금덩어리입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읍니다. 모든 것에 자유자재하지만 공부하다 깜박 졸기만 하면 그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읍니다.”

이말을 들은 무준 선사는 크게 꾸짖었읍니다.

입으로 일체 만법에 무애자재하여도 잠들어 캄캄하면 어떻게 생사를 해결 할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근본적으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생사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이야, 잠들면 캄캄한데 내생은 어떻게 하겟어.”

그러면서 담당스님은 대혜스님을 내쫓았읍니다. 대해스님의 근본 병통病痛을 찔렀던 것입니다.

, 옛날에 경순景淳선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자신의 법이 수승한 듯 여기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잘못하여 넘어진 뒤로 중풍이 걸렸는데, 그러고나니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것과 법문했던 것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그만 캄캄한 벙어리가 되어 버렸읍니다. 모든 법을 아는 체했지만 실지로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도솔조兜率照 선사라는 이가 행각行脚을 다니다가 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이렇게 한탄했읍니다. “한번 넘어져도 저렇게 되는데 하물며 내생이야 偶一失跌尙如此 況隔陰耶. 우일실질상여차 황격음야

이 생사 문제는 영겁불매가 되여 억천 만겁이 지나도록 절대불변하여 매昧하지 않아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넘어져도 캄캄하니 뭄을 바꾸면 두망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던 대혜스님도 무준 선서가 그렇듯 자기 병통을 콱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었읍니다.그리하여 다시공부를 시작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하고 있었는데 담당 무준 선사가 시름시름 병을 앓더니 곧 죽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읍니까?”하고 물으니 경사京師의 원오 극근 선사를 소개해 주었읍니다.그 유언에 따라 그는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갔읍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나 원오스님은 절벽 같고, 자기 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읍니다. 만약 원오 극근 선사가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귿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 복 도리가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 !” 라고 크게 참회하고 원오선사께 여쭈었읍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 담당 무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때 비로서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을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읍니다.그러다가한번은 원오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기록에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는데.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서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읍니다. 원오스님은 말 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냈읍니다. 말을 하려고만 하면,

아니야 아니야 不是 不是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다가 원오스님은 대혜스님에게 유구와 무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 有句無구 如藤倚樹 유규무구 여등의수는 화두를 물었읍니다.그래서 대해스님은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같아 대답을 했읍니다. 그러나 원오스님은 거둡 아니라고 하셨읍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 해! “

대해스님이 그말을 믿고 불석신명不惜身命하여, 곧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여 드디어 깨쳤읍니다. 이렇듯 대해스님은 원오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 데까지 성취했읍니다. 이렇게 확철히 깨쳐 마침내 원오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읍니다. 동시에 임제의 바른 맥 임제정종臨濟正宗을 바로 깨쳤다고하여 원오스님이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 주었읍니다. 이리하여 대혜스님은 임제정맥의 대법왕으로서 천하의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고 천하 대중의 대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혜스님 어록에 남아 있읍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또 말씀하셨읍니다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 可惜 死了不得活 가석 사료불득활.”

일체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여여한 그 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 하는 아것이 큰 병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불의언구 시위대병

공부란 것이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 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깨치려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어야 합니다.내가 항상 이 오매일여를 주장한다고 오매일여병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오매일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선禪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오매일여를 반대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혜스님과 같은 대근기大根機도 오매일여가 되기전에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읍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를 말씀씀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었읍니다. 그래서 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가 자기가 완전히 오매일여가 되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읍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아렇게 말했읍니다.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라 하신 말씀이 참말이요, 실제로구나

佛說寤寐一如 是眞言是實言 불설오매일여 시진언시실언.” 3 태고스님 계속 .”

숭산스님가르침 금강경



금강경 * 金剛經 The Diamond Sutra
凡所有相 皆是虛妄 All appearance is delusion.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것은 환상이다
菩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If you view all appearance, then that view is your true nature. 모든 현상은 환이다. 모든 현상은 존재하지않는 것으로 깨닫는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應無所住 而生基心 Do not become attached to any thoughts that arise in the mind.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If you see form as the Absolute, If you search out the Absolute with your voice. 바깥모양을 절대로 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you are practicing the wrong path, and you cannot see your true self. 참나自我를 찾을 수 없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All compounded things are like a dream, a phantom, a bubble,or a reflection.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과 같다.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They are like dew or lightning.Thus should you view them. 또한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전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에서도 제일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금강경*은 *반야심경*보다는 훨씬 분량이 많다. *금강경*은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근본의 근본경전이다. 고종의 근본경전이다. *금강경은 한 시간 이내면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지만 대승불교의 핵심이 담겨있는 글로서, 소승불교를 건너 대승불교로 가는 다라와도 같다. 즉, 소승 * 대승적 관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살도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幻이다 제상비상 諸相非相
이 얘기는 *금강경*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 제일 잘 알려진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것이 또한 무상하며, 우리라는 존재역시 무상하다. 바로 소승불교의 중심 가르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금강경*변역본을 보면 '우리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그 다음에 본질, 참 자아를 볼 것'이라고 되어있다. 즉, 어떤 주제가 있고 그주제가 어떤대상을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주체, 실제를 보는 자인 우리 자체가 이미 무상한 존재이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대상 역시 무상하다. 어떻게 幻이 幻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가 무상하다면 사실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것은 언제나 쉬지않고 움직이고 변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움직이지않는 참 자아를 볼 수 있는가? 자칫 이것은 말장난에 빠질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 그다음에 본질, 참 自我를 볼것'이라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다시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든현상은 幻이다. 모든현상을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우리는 이 세상을 볼 수있고 들을 수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 이처럼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보고있는 그 자체가, 듣고있는 그 자체가, 냄새 맡고있는 그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다. 여기에는 대상과 주체가 따로없다. 들을 때 그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주장자를 치시면서) 이 "탕!" -하는 소리를 듣는 행위가 '......할 때 참 자아를 얻을 것이다." 라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누가 참 자아를 얻는가? 幻은 幻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觀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應無所住 而生基心
禪의 실질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6조 혜능 대사는 속세에서 '老行者'라고만 알려진 평범한 신도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병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는 효자였다. 그는 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다가 시장이나 집근처 마을에 내다팔아 생계를 꾸리며 살았다. 어느 날 부잣집에 나무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걸어가는데, 스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염불을 외면서 그의곁을 지나갔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이 마을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확 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꽝 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불교에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한자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오직 *금강경*의 이 대목만을 들은 것이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우리마음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 대로 진리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을 놓아버릴 때 그 순간 일어나는 생각이 진리이다. 빨간 불이면 멈추고 파란 불이면 건너가는 보행자처럼 말이다.
*금강경의 이 대목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생각을 경험하는 매우 명확한 길을 보여준다. 단지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의미는 '나'가 없다는 것이다. 안과 밖이 언제나 하나가 되어 단지 그것을 그것을 하라는 얘기다. 하늘을 볼 때 단지 푸른빛을 볼 뿐이다.
순간순간 '...... 할 뿐 이다. 벽은 하얗다. 지금은 저녘 7시 36분이다. 바로 지금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장애없이 우리마음에 단지 생각이 오고 갈 뿐이다. 바깥모양을 절대로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참 나를 찾을 수 없다.
若人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많은 사람들은 신이나 부처에 집착해 있다. 피상적으로 사물을 보고 바깥에서 산이나 부처를 찾는다. 그리고 뭔가 기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신도, 부처도 볼 수 없다. 모양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바깥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미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처럼 안의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바깥대상에 따라 함께 일어나는 느낌, 인식, 충동, 의식을 의미한다. 그것들 역시 '어떤 형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형태를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ㅂ본래 형태도 감정도, 인식도, 충동도, 의식도 없는 그것들은 완벽히 무상하다. 이것들에 집착하면 우리는 참 나를 볼 수 없다. 집착은 모든것이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이 착각때문에 우리는 바깥세계에 뭔가 대상과 사물이 있다고 믿으며, 안에도 뭔가 있다고 믿는다. 즉 안과 밖을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집착이다. 절대를 알아야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이름도 모양도 옶다. 안과 밖, 주체와 객체가 없다.
그런데 참 나를 보는것과 진리를 보는것은 약간 다르다. 참 나를 보는것은 절대를 보는 것이다. "탕!"-모든것은 우주적 본질, 똑같은 본질이다. "탕!"- 이것이 바로 참 나를 깨닫는 단계이다. 그러나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먼저 참나를 얻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연후에라야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절대를 께달아야 한다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다. "탕"- 그러나 이 깨달음은 대승불교로 가는 중간 길이다. *반야심경*, *화염경*, *법화경*에서 우리는 완벽한 진리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의 핵심은 모든것이 '空'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만약 참 自我를 발견하고 싶다면 완벽하게 비여있어야 한다. 먼저 空함을 얻어야만 한다. 본성을 찾고 싶다면 비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래 空함이 우리의 本性이다. 본성이란 절대이다. "탕!" 만물이 절대이다. 이것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 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 역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생각에 집착하면 모든것이 이름과 모양을 갖게되며, 있다 없다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것이 무상하다. 모든것이 꿈이고 이슬이고 물거품이며 번갯불 이다. 이 세상 어느것도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럴 때에라야 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바깥 세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을 잘 간직하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고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지는것도 없다. 이름과 모양은 공허하며, 전 우주는 완ㅂ벽히 공하다. 우리의 존재역시 완벽히 공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곧 참 自我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은 만물의 무상함을 가르쳐 우리가 이 생각이라는 '꿈'을 캐기위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러나 경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려면 金剛經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직 모를 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다이야몬드와 같은 칼이다. 오직 수행하라. 오직 수행하라. 단지 그것 뿐이다.







































































금강경 * 金剛經 The Diamond Sutra
凡所有相 皆是虛妄 All appearance is delusion.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것은 환상이다
菩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If you view all appearance, then that view is your true nature. 모든 현상은 환이다. 모든 현상은 존재하지않는 것으로 깨닫는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應無所住 而生基心 Do not become attached to any thoughts that arise in the mind.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If you see form as the Absolute, If you search out the Absolute with your voice. 바깥모양을 절대로 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you are practicing the wrong path, and you cannot see your true self. 참나自我를 찾을 수 없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All compounded things are like a dream, a phantom, a bubble,or a reflection.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과 같다.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They are like dew or lightning.Thus should you view them. 또한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전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에서도 제일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금강경*은 *반야심경*보다는 훨씬 분량이 많다. *금강경*은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근본의 근본경전이다. 고종의 근본경전이다. *금강경은 한 시간 이내면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지만 대승불교의 핵심이 담겨있는 글로서, 소승불교를 건너 대승불교로 가는 다라와도 같다. 즉, 소승 * 대승적 관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살도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幻이다 제상비상 諸相非相
이 얘기는 *금강경*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 제일 잘 알려진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것이 또한 무상하며, 우리라는 존재역시 무상하다. 바로 소승불교의 중심 가르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금강경*변역본을 보면 '우리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그 다음에 본질, 참 자아를 볼 것'이라고 되어있다. 즉, 어떤 주제가 있고 그주제가 어떤대상을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주체, 실제를 보는 자인 우리 자체가 이미 무상한 존재이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대상 역시 무상하다. 어떻게 幻이 幻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가 무상하다면 사실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것은 언제나 쉬지않고 움직이고 변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움직이지않는 참 자아를 볼 수 있는가? 자칫 이것은 말장난에 빠질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 그다음에 본질, 참 自我를 볼것'이라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다시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든현상은 幻이다. 모든현상을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우리는 이 세상을 볼 수있고 들을 수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 이처럼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보고있는 그 자체가, 듣고있는 그 자체가, 냄새 맡고있는 그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다. 여기에는 대상과 주체가 따로없다. 들을 때 그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주장자를 치시면서) 이 "탕!" -하는 소리를 듣는 행위가 '......할 때 참 자아를 얻을 것이다." 라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누가 참 자아를 얻는가? 幻은 幻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觀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應無所住 而生基心
禪의 실질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6조 혜능 대사는 속세에서 '老行者'라고만 알려진 평범한 신도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병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는 효자였다. 그는 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다가 시장이나 집근처 마을에 내다팔아 생계를 꾸리며 살았다. 어느 날 부잣집에 나무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걸어가는데, 스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염불을 외면서 그의곁을 지나갔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이 마을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확 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꽝 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불교에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한자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오직 *금강경*의 이 대목만을 들은 것이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우리마음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 대로 진리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을 놓아버릴 때 그 순간 일어나는 생각이 진리이다. 빨간 불이면 멈추고 파란 불이면 건너가는 보행자처럼 말이다.
*금강경의 이 대목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생각을 경험하는 매우 명확한 길을 보여준다. 단지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의미는 '나'가 없다는 것이다. 안과 밖이 언제나 하나가 되어 단지 그것을 그것을 하라는 얘기다. 하늘을 볼 때 단지 푸른빛을 볼 뿐이다.
순간순간 '...... 할 뿐 이다. 벽은 하얗다. 지금은 저녘 7시 36분이다. 바로 지금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장애없이 우리마음에 단지 생각이 오고 갈 뿐이다. 바깥모양을 절대로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참 나를 찾을 수 없다.
若人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많은 사람들은 신이나 부처에 집착해 있다. 피상적으로 사물을 보고 바깥에서 산이나 부처를 찾는다. 그리고 뭔가 기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신도, 부처도 볼 수 없다. 모양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바깥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미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처럼 안의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바깥대상에 따라 함께 일어나는 느낌, 인식, 충동, 의식을 의미한다. 그것들 역시 '어떤 형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형태를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ㅂ본래 형태도 감정도, 인식도, 충동도, 의식도 없는 그것들은 완벽히 무상하다. 이것들에 집착하면 우리는 참 나를 볼 수 없다. 집착은 모든것이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이 착각때문에 우리는 바깥세계에 뭔가 대상과 사물이 있다고 믿으며, 안에도 뭔가 있다고 믿는다. 즉 안과 밖을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집착이다. 절대를 알아야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이름도 모양도 옶다. 안과 밖, 주체와 객체가 없다.
그런데 참 나를 보는것과 진리를 보는것은 약간 다르다. 참 나를 보는것은 절대를 보는 것이다. "탕!"-모든것은 우주적 본질, 똑같은 본질이다. "탕!"- 이것이 바로 참 나를 깨닫는 단계이다. 그러나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먼저 참나를 얻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연후에라야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절대를 께달아야 한다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다. "탕"- 그러나 이 깨달음은 대승불교로 가는 중간 길이다. *반야심경*, *화염경*, *법화경*에서 우리는 완벽한 진리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의 핵심은 모든것이 '空'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만약 참 自我를 발견하고 싶다면 완벽하게 비여있어야 한다. 먼저 空함을 얻어야만 한다. 본성을 찾고 싶다면 비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래 空함이 우리의 本性이다. 본성이란 절대이다. "탕!" 만물이 절대이다. 이것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 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 역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생각에 집착하면 모든것이 이름과 모양을 갖게되며, 있다 없다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것이 무상하다. 모든것이 꿈이고 이슬이고 물거품이며 번갯불 이다. 이 세상 어느것도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럴 때에라야 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바깥 세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을 잘 간직하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고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지는것도 없다. 이름과 모양은 공허하며, 전 우주는 완ㅂ벽히 공하다. 우리의 존재역시 완벽히 공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곧 참 自我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은 만물의 무상함을 가르쳐 우리가 이 생각이라는 '꿈'을 캐기위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러나 경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려면 金剛經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직 모를 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다이야몬드와 같은 칼이다. 오직 수행하라. 오직 수행하라. 단지 그것 뿐이다.





































































숭산 큰스님 가르침 금강경



금강경 * 金剛經 The Diamond Sutra
凡所有相 皆是虛妄 All appearance is delusion.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것은 환상이다
菩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If you view all appearance, then that view is your true nature. 모든 현상은 환이다. 모든 현상은 존재하지않는 것으로 깨닫는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應無所住 而生基心 Do not become attached to any thoughts that arise in the mind.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If you see form as the Absolute, If you search out the Absolute with your voice. 바깥모양을 절대로 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you are practicing the wrong path, and you cannot see your true self. 참나自我를 찾을 수 없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All compounded things are like a dream, a phantom, a bubble,or a reflection.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과 같다.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They are like dew or lightning.Thus should you view them. 또한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전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에서도 제일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금강경*은 *반야심경*보다는 훨씬 분량이 많다. *금강경*은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근본의 근본경전이다. 고종의 근본경전이다. *금강경은 한 시간 이내면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지만 대승불교의 핵심이 담겨있는 글로서, 소승불교를 건너 대승불교로 가는 다라와도 같다. 즉, 소승 * 대승적 관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살도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幻이다 제상비상 諸相非相
이 얘기는 *금강경*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 제일 잘 알려진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것이 또한 무상하며, 우리라는 존재역시 무상하다. 바로 소승불교의 중심 가르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금강경*변역본을 보면 '우리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그 다음에 본질, 참 자아를 볼 것'이라고 되어있다. 즉, 어떤 주제가 있고 그주제가 어떤대상을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주체, 실제를 보는 자인 우리 자체가 이미 무상한 존재이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대상 역시 무상하다. 어떻게 幻이 幻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가 무상하다면 사실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것은 언제나 쉬지않고 움직이고 변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움직이지않는 참 자아를 볼 수 있는가? 자칫 이것은 말장난에 빠질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 그다음에 본질, 참 自我를 볼것'이라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다시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든현상은 幻이다. 모든현상을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우리는 이 세상을 볼 수있고 들을 수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 이처럼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보고있는 그 자체가, 듣고있는 그 자체가, 냄새 맡고있는 그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다. 여기에는 대상과 주체가 따로없다. 들을 때 그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주장자를 치시면서) 이 "탕!" -하는 소리를 듣는 행위가 '......할 때 참 자아를 얻을 것이다." 라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누가 참 자아를 얻는가? 幻은 幻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觀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應無所住 而生基心
禪의 실질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6조 혜능 대사는 속세에서 '老行者'라고만 알려진 평범한 신도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병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는 효자였다. 그는 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다가 시장이나 집근처 마을에 내다팔아 생계를 꾸리며 살았다. 어느 날 부잣집에 나무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걸어가는데, 스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염불을 외면서 그의곁을 지나갔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이 마을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확 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꽝 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불교에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한자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오직 *금강경*의 이 대목만을 들은 것이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우리마음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 대로 진리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을 놓아버릴 때 그 순간 일어나는 생각이 진리이다. 빨간 불이면 멈추고 파란 불이면 건너가는 보행자처럼 말이다.
*금강경의 이 대목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생각을 경험하는 매우 명확한 길을 보여준다. 단지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의미는 '나'가 없다는 것이다. 안과 밖이 언제나 하나가 되어 단지 그것을 그것을 하라는 얘기다. 하늘을 볼 때 단지 푸른빛을 볼 뿐이다.
순간순간 '...... 할 뿐 이다. 벽은 하얗다. 지금은 저녘 7시 36분이다. 바로 지금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장애없이 우리마음에 단지 생각이 오고 갈 뿐이다. 바깥모양을 절대로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참 나를 찾을 수 없다.
若人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많은 사람들은 신이나 부처에 집착해 있다. 피상적으로 사물을 보고 바깥에서 산이나 부처를 찾는다. 그리고 뭔가 기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신도, 부처도 볼 수 없다. 모양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바깥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미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처럼 안의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바깥대상에 따라 함께 일어나는 느낌, 인식, 충동, 의식을 의미한다. 그것들 역시 '어떤 형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형태를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ㅂ본래 형태도 감정도, 인식도, 충동도, 의식도 없는 그것들은 완벽히 무상하다. 이것들에 집착하면 우리는 참 나를 볼 수 없다. 집착은 모든것이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이 착각때문에 우리는 바깥세계에 뭔가 대상과 사물이 있다고 믿으며, 안에도 뭔가 있다고 믿는다. 즉 안과 밖을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집착이다. 절대를 알아야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이름도 모양도 옶다. 안과 밖, 주체와 객체가 없다.
그런데 참 나를 보는것과 진리를 보는것은 약간 다르다. 참 나를 보는것은 절대를 보는 것이다. "탕!"-모든것은 우주적 본질, 똑같은 본질이다. "탕!"- 이것이 바로 참 나를 깨닫는 단계이다. 그러나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먼저 참나를 얻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연후에라야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절대를 께달아야 한다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다. "탕"- 그러나 이 깨달음은 대승불교로 가는 중간 길이다. *반야심경*, *화염경*, *법화경*에서 우리는 완벽한 진리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의 핵심은 모든것이 '空'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만약 참 自我를 발견하고 싶다면 완벽하게 비여있어야 한다. 먼저 空함을 얻어야만 한다. 본성을 찾고 싶다면 비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래 空함이 우리의 本性이다. 본성이란 절대이다. "탕!" 만물이 절대이다. 이것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 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 역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생각에 집착하면 모든것이 이름과 모양을 갖게되며, 있다 없다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것이 무상하다. 모든것이 꿈이고 이슬이고 물거품이며 번갯불 이다. 이 세상 어느것도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럴 때에라야 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바깥 세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을 잘 간직하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고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지는것도 없다. 이름과 모양은 공허하며, 전 우주는 완ㅂ벽히 공하다. 우리의 존재역시 완벽히 공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곧 참 自我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은 만물의 무상함을 가르쳐 우리가 이 생각이라는 '꿈'을 캐기위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러나 경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려면 金剛經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직 모를 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다이야몬드와 같은 칼이다. 오직 수행하라. 오직 수행하라. 단지 그것 뿐이다.




































































지혜의 향기 잘 생겨서 죄송합니다. ---이원익 불사모 대표

  내가 이직 아이였을 땐데 어느 날 갑자기 좀 아무렇게나(?) 생긴 양반이 텔레비젼에 나타나 연방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하며 자꾸 얼굴을 드리미는 바람에 사람들이 정말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던 일이 기억난다. 그런데 못 생긴게 정말 죄송스런 일일까? 자기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역사상으로는 이와 반대로 장 생겨서 평생 죄송해 한 이가 있는데 부처님의 십대제자에 드는 아난다가 바로 그분이다.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기역력도 비상해서 스물다섯 해 동안이나 부처님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며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육하원칙에 따라 하나도 빠뜨맂지 않고 다 기억하고 외워 두었다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되뇔 수 있었으니 가히 인간녹음기라고 할만 하였다.

  그래서 별칭이 '가장 많이 들은 자(多聞第一)' 이다. 부처님의 열반 후 마하가섭이 주도하에 부처님의 '목소리를 들은자(성문)' 500명이 모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던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한는 '첫 번째 모여 외기(弟一次結集)' 가 있었는데 이 때 이 인간녹음기의 천재성이 여지없이 발휘 되었다. 경, 율, 논 가운데 경장의 대부분은 바로 이 아난다의 머릿 속에서 풀어져 나온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불경들이 ' 나는 이렇게 들었다(Evam maya shrutam)' , 곧 '여시아문(如是我聞)' 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나(我)' 란 바로 아난다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부처님이 성불하신 후 카필라 성을 찾아 오셨을 때 여러 왕자들과 함께 출가하였다.

  그가 어느 날 슈라바슽티 거리에 탁발을 나갔다가 기원정사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마침 가장 하층민인 마등가 종족의 마을을 지나다가 목이 말라 우물가의 처녀에게 물한 쪽박을 청하였다. 그런데 프라크리타라느 이름의 이 아기씨는 자기는 너무 천민이라 고귀한 사문의 청을 들어 줄 자격이 없다면서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에 아나다는 부처님의 제자는 신분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처녀에게서 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프라크리타는 아난다의 수려한 용모와 자비로움에 반해 그를 사랑하게되니 잘 생김으로인해 나타난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결국 부처님이 둘 사이를 중재하여 프라크리트는 비구니가 되어 진리의 길을 함께가는 길동무로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이렇듯 빼어나게 잘 생긴 죄에다 부처님을 너무 그림자처럼 따르며 의존하다보니 부처님의 입적 때까지 아난다 자신의 성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모여 외기 직전까지도 그의 참가 자격에 논란이 있었으나 책임을 통감한 그가 용맹정진하여 결집의 바로 전날 밤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니 이튿날 경장 송출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다. 이와는 좀 다른 경우지만 김동환의 '웃은 죄' 라는 시가 생각난다.

  무릇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사나이는 지나치는 우물가를 조심할지어다.

즈름길 묻길래 대담 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퍼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Saturday, September 22, 2012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했던 절차의 힘

아폴로 13호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초인적인 절차의 힘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한 절차의 힘 1970년, 달 착륙을 목적으로 휴스턴에서 발사된 아폴로 13호는 우주 공간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그로인해, 산소 탱크와 연료전지, 전력공급 라인에 차질이 생기고 물의 공급이 불가능해졌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상 관제센터의 통제관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폴로 13호, 기적의 생환"은 실제로 일어났던 이 사건을 추적한 흥미진진한 책이다. 이 사건을 예로 드는 이유는, 우주선으로 달을 탐사한다는 거의 불가능에가까운 프롲젝트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산소와 물과 에너지가 고갈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지구로 무사히 귀환에 성공한 절차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 기적의 생환" 번역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일본의 유인우주기술은 아직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폴로가 달 착륙에 성공한 지 이미 4반세기가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술은 그 시대 미국의 발밑에도 미치지못한다. 문제는 기술력만이 아니다. 아폴로 계획같은 원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관리할 능력도 없으며, 우주선에서 일어났던 그런종류의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관리능력도 없다. 우주공간으로 사람을 쏘아 올렸다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기술은 아마도 이제까지 인류가 구축한 것들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절차일 것이다. 이 기술에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단계가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시뮬레이션도 포함되어 있다. 일상적인 문제라면 이미 마련되어있는 그 차례를 차근차근 밟으면 된다. 그러나 아폴로 13호의 경우, 미처 예상치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에는 존재하지 않는 차례를 단 시간에 새롭게 짜서 그 방대한 차례를 재 구축해야만 했다. 우주선의 모든 데에터가 수집되는 곳은 지상의 관제 센터다 지상의 스태프는 우주 비행사 이상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으므로 우주선의 무사 귀환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새롭게 순서를 재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주선에 그 사항을 전달하고 비행사들은 충실히 실행한다. 절차를 세우는 일은 우주 비행사보다 지상 스타프에게 더 큰게 부여된 임무다. 그러므로 우주선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가 여부는 전적으로 지상관제사의 결단과 절차의 힘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 차례를 전달받았을 때 우주비행사는 이미 무척이나 지처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숙지사항을 종이에써서 큰 소리로 복창하며 확인해가는 원시적인 방법을 취했다. 우주 비행사에게 데이터를 보낼 때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렇게 소리내어 읽으면서 매팅리가 가장 신경 쓴것은, 극도로 지쳐있는 스와이거트가 실수없이 체크리스트를 베낄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매팅리는 읽는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고, 한 줄이 끝날 때마다 사이를 두어 스와이거트가 복창하는 것을 기다렸다. "오케이", "오케이"하고 확인하며 체크리스트를 전부 읽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소리내어 복창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우주선을 조종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실수로 스위치를 잘못 누르지 않도록 하기위해 중요한 스위치마다 커다란 붉은 글씨로 'NO' 라고 써 붙여 둔 것이다. 착륙선을 분리하는 스위치가 지원선을 분리하는 스위치 바로옆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까닭에, 지원선을 분리할 때 실수로 스위치를 잘못 눌러버리면 자기들이 타고 있는 착륙선이 분리되어 우주 저쪽으로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붉은색으로 'NO'라고 쓴 종이를 붙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아무튼 전기 장치도, 산소 공급 시스템도 모두 고장 난 상태에서 남아있는 시스템만을 사용하여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켜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한 절차가 요구 되었다. 더구나 애초의 시뮬레이션에는 포함되지않은 절차라 자칫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제사는 여러개의 차트를 만들어 두어야 했다. 어느 작업시에는 ON 상태로 두어도 되었던 스윗치를 다른 작업 전에는 OFF로 해야만 하는 것 처럼 출력을 올리는 순서는 지극히 복잡했다. 이날 오전 9시, 발진시각 스위치의 ON - OFF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기록이 스와이거트에게 보내졌다. 관제사들이 손에들고 있는 차트에는 그것과 똑같은 ON - OFF 상태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스퀘어 1 배열' 이라 지칭하고, 여러개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때는 항상 이 배열을 참조했다. 즉, 기준이되는 차트를 만들어 다른 복잡한 배열과 병행해 차례를 적어넣은 것이다. 차트로 만들어 도식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다. 문장이나 말로 들을 때는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실제로 실행하려하면 혼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아날로그적 이라기 보다는 디지털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스위치를 ON 으로 할 것인가 Off 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행동은 명확한데 그에 대한 지시가 장황해지면 앞뒤 문맥이 혼란스러워진다. 게다가 밟아야할 절차가 스무단계, 혹은 서른 단계나 되면 일일이 기억할 수 조차 없게 된다. 이때 차트로 만들어 세부 항목을 도식화함으로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도식화하는 능력은 절차의 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제대로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면 도식화도 가능하다. 짚 인형 스케줄로 위기를 극복하다. 알론과 관제팀은 이 차트를 사용해 그가 '짚' 인형 스케줄' 이라고 명명한 해야 할 일의 목차를 담은 스케줄 작성에 착수했다( 돌에 부딪쳐도 끄떡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짚인형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특히 작업을 착수하기 직전, 전력을 조정하여 배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였다. 우주선의 어느 부분의 출력을 언제 올릴 것인가, 지원선과 착륙선을 언제 분리할 것인가. 이러한 작업들에 각각 어느 정도의 전력을 배분할 것이가 하는 사람들이 이 짚 인형 스케줄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원안을 만들고 그런 다음 거기에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하나 포함시켜간 것이다. 원인을 '짚 인형 스케줄' 이라 명명한 것이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짚인형이 다른의미로 사용되지만 (머리가 빈 사람을 가르킨다. 이 경우는 전체적이고 대략적인 스케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알론의 짚 인형 스케줄은 전체적인 윤곽만 담은 지극히 간략한 것이라서 거의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관제사들이 상세한 체크리스트를 적어 넣어 효과적으로 일할 수있게 해주는 효과적인 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상세한 체크리스트를 적어 넣기위해 개략적인 원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아폴로 13호의 경우, 철저하고 빈틈없이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을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도 위험요소가 많은데, 아예 그런 계획마저 세워져 있지 않다면 결국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개략적이어도 좋으니 우선은 원안을 만들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은 뒤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해 가야한다. 일을 할 때면 나는 어디까지 하면 그 일을 중단한다 해도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늘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처음 상태로 퇴보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즉각 다음단계의 작업에 착수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핵심적인 요령이다. 한창 의욕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긴장감이 높아져 있으므로 별도로 정리해 두지 않아도 다음날이면 즉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년정도 방치해 두면 다시금 제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전에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일목요연하게 차트화하는 것이다. 그것도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차례를 적어두는 것이 좋다. 책을 쓸 경우, 장[章]을 나누는 것까지만 생각해 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곽이 차츰 흐려지지만, 章속의 節과 세부사항까지 만들어두면 반년, 혹은 1년이 지나도 쉽게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차트화할 수 있을 때 까지 문제 해결에 접근해 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 아폴로 13호는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해 사태에 대처했다. 지구 대기권에 돌입할 때 우주선에 탑재되어있는 달 착륙용 착륙선을 분리해야만 했는데, 그에 필요한 지원선을 이미 떼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취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발하다. 착륙선과 사령선의 해치를 닫으면 양쪽을 잇는 터널에 선실에서와 동일한 기압의 공기가 차게된다. 그때 도킹 기구를 해제하면 '우주 재채기' 같은 현상이 일어나 터널내의 공기압으로 두 개의 모듈[小船]이 분리되게 된다는 것이었다. 러셀은 이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우주 재채기라는 것이 재미있다.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다. 이처럼, 절차가 틀어졌을 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절차를 세운다. 아폴로 13호에서는 실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물 부족 사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응이 그런사례 중 하나다. 한 시스템 기술자가 우주복이 물이 채워진 모관[毛管]으로 꿰매져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우주복의 발뒤꿈치 부분을 잘라내면 마치 가죽 자루로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그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지만 우주복은 만일을 위해 그런점 까지 고려해 만들어졌다. 자신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측정하는 방법도 재미있다. 컴퓨터 같은 기계 장치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스타 체크' 라 해서 특정 별을 기준으로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는데, 아폴로 13호가 지구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마침 그 별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지구가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나뉘는 경계선, 즉 명암 경계선을 이용하여 각도기 같은 것을 대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아폴로 8호 비상사태시 사용된 것으로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아폴로 13호 비행사들은 만일을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두었던 모양인데, 정말로 그것을 사용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리 연습을 해둔 덕분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외에 수동으로 육분의[六分儀: 천구 상의 두 점간의 각도를 재는기계]를 사용해 별의 관측 데이터와 실제 위치를 계산해 본 결과 오차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아폴로 13호의 절차를 통해 탁월한 절차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지상의 스태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준비하고 새로운 절차를 세운다. 그리고 비행사에게 지시할 때는 차트를 만들어 전달한다. 따라서 실수가 생기지 않는다. 지상의 관제사가 충분한 과정을 거쳐 그토록 확실한 절차를 세워두지 않았다면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지구에 귀환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무서울 정도로 복잡한 차례를 차트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문제 해결에 접근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인적인 절차의 힘을 성공시키는 열쇠다.

Sunday, September 16, 2012

한 일 갈등은 MB와 노다가 문제다.

한 . 일 , 갈등, 각하와 노다가 문제다.
김영희 칼럼 국제문제 대가자

친한 일본인 다수가 등 돌려 모수지지 확보에 활요할 뿐
보수지지 확보에 활용할 뿐 한 . 일 관계나 동북아 안정은 일본 정치인의 관심 밖 전략있는 외교가 절실하다.


한 . 일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이명박 대통령의 오버액션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다오위다오(센카구)에서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벼랑 끝 대결을 여유롭게 지켜보면서 우리가 거둘 어부지리를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치다. 한 . 일 갈등이 더 뜨거운 발등에 불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우리 대통령이 '문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우리 대통령이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한 . 일 관계 전체에 미칠 작용에 대한 개념적 . 입체적 이해와 고려없이, 독도와 위안부 같은 과거사를 해결할 중 .장기적 전략없이 불쑥 내디딘 한 걸은, 쏟아낸 한마디가 한 .일 관계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


다시 정리하면 한 .일 관계를 후퇴시킨 언행은 세 가지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국제사회에서 일본영향력 별것 아니라는 발언, 그리고 일왕이 한국에 오고 싶으면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고통받은 한국인들에게 사과부터 하라는 요구다.


그중 가장 민감한 것이 일왕의 사과 요구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천황은 '성역' 이다. 천황에대한 경애심은 이본의 관념적 전통과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혼(Psyche)의 근간이다. 그리고 한 . 일 관계의 틀에서 보자면 지금의 일왕은 평균적인 일본인보다도 한국에 우호적이고 이해가 깊다.


일본 역사에서 문화의 황금기라는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를 연 천황은 간무(桓武)다. 일본인들은 그를 좋아한다. 일왕 아키히로는 간무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는 말로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한다. 그는 아버지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계승 공유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도덕적 개인주의(Moral individualism)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념적으로 대개 일본인의 70%를 보수, 30%를 진보로 분류한다. 보수 70%의 10%가 극우다. 이들 10%의 극우에 대해서는 일왕 아키히토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를 뺀 60%의 온건보수가 한류팬의 주류다. 진보 30%는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고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 . 사죄 .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 60%와 진보 30%가 우리 대일 공공 외교의 대상이다. 이번 사태로 그들의 다수가 한국에 등을 돌렸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일본 극우세력의 반한(反韓)감정을 부추긴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대통령의 우리 영토 순시에 그들이 시비거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일왕에 관한 발언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한국에 오겠다고 하지도 않은 일왕에게 오려거든 사과부터하라고 말해 놓고는 발언의 파문 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은 참으로 한심. 답답하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이 대통령이 대화상대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고, 그때 TV 캄메라가 돌아가는 걸 몰랐다고 일본에 구구한 변명을 했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이 한 .일 과거사 문제는 일왕 수준의 최고위 인사가 사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한 것이라고 꼬리를 내린다. 이건 정상적인 외교가 아니라 모의외교 수준이다.


한국의 그런 '해명'이 있은 후 일본은 잇다라 독한 대응조치를 내놓고 있다. 독도문제의 국가사법재판소(ICJ) 제소는 기본, 한 . 일 통화 스와프의 규모축소 또는 폐지를 위협한다. 일본정부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해괴한 광고를 싣는다. 이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쪽의 광란의 정치쇼다. 바닥을 헤메는 인기로 11월 총선을 치러야하는 노다는 한국 대통령의 언행을 보수의 지지를 확실히 확보하는데 고맙게 활용하고 있다. 한 .일 관계나 동북아 안정은 그의 관심 밖이다.


한 .일 갈등은 전면 외교전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엄청난 국력낭비가 예상된다. 일본이 한 . 일 통화 스와프 축소를위협하는 것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겠다는 발언, 96년 한국에서의 일본 단기자본 대거 탈출, 97년 IMF체재라는 일련의 연속선상의 사태에서 착안한 잔꾀가 아닌가 싶다.


일본 외무성은 직원5648명에 총 예산 8조9000억원인데 한국 외교통상부는 직원2189명, 공적개발원조(ODA) 자금과 국제기구 분담금을 포함해서 1조 9694억원이다. 병력과 전비만 보면 한 .일간 전면 외교전이 우리에게 힘겨울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명분과 정당성이라는 가공할 소프트파워가 있다. 전략이 있는 외교다운 외교가 절실하다. 두나라 수뇌가 어떤 웃음을 흘려도 그들의 임기 중 한 .일 갈등이 봉합될 전망은 제로에 가깝다. 이명박 정부에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있다. 다음 정부의 대일정책에 족쇄를 더 채우는 인기 영합적 행보다.

Thursday, September 13, 2012

절차의 힘 프롤로그 2

절차의 힘 프롤로그 2

절차의 힘은 매뉴얼과는 다르다

매뉴얼과 절차의 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매뉴얼 인간'이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매뉴얼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매뉴얼 인간이 재능없는 유형의 전형적인 예로서 자주 이야기되는 것일까? 그이유는, 매뉴얼 인간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 들은대로 밖에 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뉴얼 인간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순서를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에 맞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할 수 도 없다. 그러나 맨 처음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이다. 합리적인 차례와 방법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보편화 시키므로 굉장한 절차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한 것이다.


이로서 알 수 있듯, 매뉴얼대로 그저 가계적으로 움직이는 매뉴얼을 만들어내고 체계화 시키는 것과는 일견 흡사해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절처의 힘에는 일의 차례나 방법을 스스로 세워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실용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수없이 먆은 실용서들이 존재하는 데 ,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 내용대로 따라해 본댜고 해서 절차의 힘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물론 그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할지라도 기계적 으로 읽고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핵심을 전수 받을 수 없다. 핵심이란 그 요점을 깨달아 매뉴얼로 저자가 갖고 있는 바로 그 힘인 까닭이다.


그로므로 실용서를 단순히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패스트후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 까닭에 수업의 일환으로 그 절차를 다른 학생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도록 지시한 적이 있다. 즉 닭 튀기는 방법이나 햄버거 포장법 등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간단 명료하게 설명 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 기술을 전수 할 수 있다. 미국식 패스트푸드 체인점에는 그날들어온 아르바이트 직원도 쉽게 베우고 익힐 수 있는 매뉴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대개의 경우 다른 일을 할때에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경험은 매뉴얼대로 기계적으로 따라한 것이기 때문에 응용력과 진짜 실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매뉴얼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면 그 매뉴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미를 생각해 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매뉴얼을 차분히 읽고 이해해야한다. 매장 전체를 운영하는 관리자의 움긱임을 보고 주엊진 명령을 이해할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당장 관리자가 되어도 훌륭하게 완수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활동의 이면에 있는 매뉴얼을 이해하는 일은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관리자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독립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뉴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더 나아가 매뉴얼을 직점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비록 매뉴얼 인간이라고 비판 받게 될지라도 좀더 확실한 절차의 힘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절차의 힘은 응용력이 뛰어나다.

요리를 할 때는 특히 하나의 절차라도 건너뛰면 맛없는 요리가 만들어진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지면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는다. 미각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감각 중 하나다. 따라서 예민한 미각을 통해 날마다 엄격하게 맛을 체크하는 능력이 절차의 힘이라 한다면 그 기술이 다른 일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요리에는 나름대로 자신 있지만 사무적인 일에는 영 서툴다. 혹은 '집안일은 잘하지만 직장 일에는 소질이없다.'는 식으로 집안일과 직장일을 분리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이 전업주부라서 밖에 나가 아무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짓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요리에 필요한 절차의 힘을 정치나 역사를 움직이는 크고 원대한 일에 응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겠지만 다른 여러가지 일들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스케줄, 즉 일정이 절차의 힘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한 일정에 따라 일을 해나가는 데 익숙한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다른 일에도 지혜롭게 적용함으로서 스스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흭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능은 있는데 철차의 힘이 부족한 것 뿐이라면 차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더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성공의 경험을 차츰 확장시켜 더 큰 성공과 발전을 꾀 할 수 있다. 요리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을 할 때도 요리에서의 동일한 감각으로 해나가면 된다.
이처럼 절차의 힘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철저한 운련을 통해 길러진 절차의 힘은 다은 영역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희복하는 데 큰 도움이된다.
한 가지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은 다른 무슨 일을 해도 잘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맞는 말이다. 므슨 일이든지 한가지 일에 정통하면 그내면의 절차가 확실히 이해되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가애 한다는 것이 몸에 익혀지게 되므로 다른 일에도 그것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차의 힘을 단련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차에대해 분명하게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 면에서 현저히 차이가 난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 절처의 힘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말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A라는 사람에게는 절차의 힘이있는데 B라는 사람에게는 절차의 힘이 없다'는 식으로 섣불리 단정을 지어서도 안된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자기만의 절차의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모든일에 임해야 한다.

Wednesday, September 12, 2012

절차의 힘

절차의 힘

사이토 다가시 지음 . 홓성민 옮김


일을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절차의 힘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철저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절차의 힘은 다른 영역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희복하는데 큰 도움이된다. 한 가지일에 탁월한 재능을발휘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즉 한가지 일에 정통하면 그 내면의 절차가 확실히 이해되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가야한다는 것이 몸에 익혀지게 되므로 다른일에도 그것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차의 힘을 단련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차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 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난다. --좋은 생각--

절차의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특별한 천재나 예술가를 제외하면 잠재력이나 재능 면에서 사람들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일을 하는 데 있어 차근 차근 절차를 밟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믾은 사람들은 애초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었다고 한탄하며 절망을 한다.


그러나 실패라는 쓰디쓴 결과를 놓고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불우한 성장 과정,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으므로 노력도 하지않게 된다. 하지만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에대한 대처법도 달라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문제를 하나 푸는 데도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푸는것과 차근차근 공식에 대입해 가며 푸는 것과는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시험 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자신의 안 좋은 머리 탓으로 돌리거나 "원래부터 이 과목은 나에게 맞지 않았어" 하며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시험 결과가 나빳던 것은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거나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판단 할 수 있게 되면 실력은 향상된다.


집안이나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차가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절차를 바르게 인식하면 자신의 실패에대해 질책하는 정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염두가 나지 않지만,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았던 것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지않고 새롭게 도전하여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갈 수 있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반성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상황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귿이 자신의 인간성 전체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고도 단지 차례와 방법을 효과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일을 통해 흭기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절차의 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절차의 힘이라는 개념을 내것으로 만들면 여러가지 일과 살황을 절차라는 절단면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일에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됨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서로 연결해 보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차의 힘이 갖는 효용성이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하는 일과 논문을 쓰는 일은 완전 별개의 활동처럼 보이지만, 절차의 힘이라는 칼로 잘라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공통점이 선명하게 들어난다. 이 개념의 편리함을 이해하게 되면 차츰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그만큼 향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원래 절차라는 단어는 회의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아론적인 말아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말이다. 조각상 같은 예술 작품을 만들 경우에도 절차가 중요하다고 조각가들은 이야기 한다. 어쩌면 예술적 재능은 약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절차를 제대로 알고 익힘으로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건지도 머른다.


절차를 배우고 익히는 이런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술같은 창조적인 분야에서조차 재능이 아닌 절차의 힘이 중요한 관건이라면, 그 밖의 다른 활동들에서 절차의 함이 갖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절차의 힘만 익히면 모든 활동이 한결 수월해지고 편해진다는 발상은 무척 흥미롭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실패한 일에 대해서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안에 잠자고 있는 절차의 힘을 깨워라


절차의 힘에 곤한 이야기를 하다 보년, "내겐 절차의 힘이 없으니 그것을익힐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사람을ㄹ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느 절차의 힘을 갖고 있읍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이제까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이 ㅊ책에서 나는 절차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볻다 더 중요한 점은 자신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절차의 힘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일이다. 절차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처 그것ㅇ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일 처리 능력이 없다고 단정 지으며 노력핮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절차에도 여러가지 형태가있으며, 자신에게 꼿 맞는 절차 스타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리 오가이(군의관 . 소설가) 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함면서 일을 해나가는 탕입이 있는가 하면, 사카구치 안고(소설가 . 평론가) 처럼 방안에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소설을 쓰는 탕입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각품을 많아 남긴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 밟는 절차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가이 경우, 먼저 주변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는 방식의 절차의 힘을 갖고있다.


그에 반해 사카구치 안고의 경우 비록방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지만, 바로 그 난잡함이 그에게는 소설 창작의 핵심 포인트다. 깔끔하게 저리되어 있기보다 오히려 마구 어질러져 있는 편이 훨씬 일이 잘된다면 그 난잡한 주변환경이 그에게는 바로효과적인 방법이자 절차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부 요시하루(일본 장기의 최고수)라는 장기의 대가가 있는데, 예전에 그는 여관이나 호텔에서 쉽사리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의 대국은 주로 호텔이나 여관에서 이루어지는 터라 번번이 쉽게 지쳐버려 대국에도 자주 영향을 받곤 했다. 이 문제를 그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선 여관에 도착하면 방에 짐을 몽땅 꺼내놓는다. 그러고는 자기집처럼 마구 어지른다. 그러면, 자기만의 공간처럼 느껴져 편안한 기분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부의 경우, 여관에서 방을 어지르는 것이 그가 가진 절차의 힘이다. 정리정돈을 못한다고 해서 일을 할 때 젍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위에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어디에 무엇이있는지 알아서 실수없이 민첩하게 일을 처리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절차의 힘이 가진 가장중요한 의의다. 설사 전반적인 일을 아무리 뛰여나게 완수해 낸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만의 방식을 활용하는 절차의 힘을 체계적으로 기술화 하는것이 이 책의 최종 목표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 첫번째 단계로서 먼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는 절차의 힘을 깨달아야한다. 직장에서 일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다른일에서는 확실한 절차로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처럼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뛰어난 절차의 힘을 발휘하면서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가정적인 타입으로 요리를 잘하면서도 직장일에는 서툰 사람은 요리에 필요한 절차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업무에 연결하는 회로가 없는 것이다.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출발점으로 하여 서툴고 생소한 분야를 차츰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절차의 힘을 키우는 핵심 요령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만의 절차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을 다른일에 적극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제가가각 다른 절차의 힘을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절차의 힘을 발견하여 그것을 차츰 발전시키고 확장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Monday, September 3, 2012

호미와 연필

호미와 연필
중앙 신인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정동순


호미를 들고 나가 땅을 파 보았다. 호미는 어머니 등을 긁어주던 효자손처럼 흙의 표면만 긁어댈 뿐 땅을 깊이 파지 못한다. 호미날은 겨우 작은 깻잎만큼 남았고, 나무 손잡이의 끝은 뭉실하게 닳아있었다. 주인이 흘린 땀에 쇠붙이마져 녹아내린 때문일까?


낡아서 땅을 잘파지 못하는 호미는 대신 어떤 기억 하나를 파낸다.


한여름 더위에 어머니를 따라 밭을 매러 가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였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길이 노랗게 흔들리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나섰던 것은 호랑이도 나온다는 산밭에 어머니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밭일을 하면서 어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밭을 매는 동안, 옛날이야기 뿐만 아니라 살아오신 이야기들이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끝없이 이어졌다. 어머니가 풀어놓는 실타래를 놓칠세라 귀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열어두고, 건성건성 김을 매며 밭고랑을 따라갔다.


어머니의 밭고랑에는 시대가 뿌린 억센 풀들이 어찌 그리 많았던 것일까?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이 어머니의 젊은 날이었다. 일제 감점기 때, 향촌에서는 아직도 서당교육이 대세였고, 드믈게 일제가 세운 소학교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이 다닐 학교는 없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이제, 여자로 태여나 배우지도 못허고, 가문을 잇지도 못허고 인생이 꼬여부렀다. 어느 해던가, 동네에 야학이 들어왔제, 야학에 가서 한글을 배웠는디, 잘했다고 상으로 연필을 받았어야. 난생 처음으로 연필을 만져 봉게 얼매나 신기하고 좋던지!



우리할아버지한테는 귀헌 한문 책들이 수레로 실어낼만큼 많았제.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걸 다 물려받았을 턴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보니까, 그 많던 책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부렀는지 해평 아재집에 몇권만 남아 있드라,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어머니는 딸들이 호미를 잡기보다는 연필을 잡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다. 고된 농사일에 새까맣게 그을린 촌 아낙네의 얼굴로 면사무소나 농협에 일을 보러 갈 때마다 기도 하셨다고 한다. 당신의 딸들도 저렇게 그늘에앉아 펜을 잡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매일 아침일어나 정안수 떠놓고 비는 것도 모두 자식들에대한 간절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자매들에게 뜨개질이나 자수같은 것을 전혀 못하게 하셨다. 그런 것 할 시간이 있으면 글이라도 한자더 읽으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바람은 다섯딸 중에서 세 딸이 교편을 잡게 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언니에이어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게되었다. 동생도 대학 졸업후, 곧 교직에 들어섰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내가 사는 양을 보려고 어머니가 오셨다.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이 말은 잘 듣대?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묵는다고 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항시 남의 아이들 귀히 여기고 잘 가르쳐라. 근디 월급은 얼매나 받냐?"
"보너스랑 합쳐서 한 백만원 받아요."


"허허, 그러면 쌀이 열 가마니네. 니 한달 월급이 내 일년 농사보다 낫다."
어머니는 호미대신 '연필'을 잡은 딸이 자랑스러웠는지 이미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을 지키지 못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교편을 놓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태 전이었다. 오래 벼르던 끝에 태평양 건너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고 어머니께서 오실 날을 기다렸다. 그중에 으뜸이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드리는 것이었다.


막상 어머니가 오셨을 땐, 두 살짜리 와 여섯 살짜리 이이들 뒷치닥꺼리로 바쁘기만 했다. 또 과외와 도서관의 시간제 일로 바쁘게 집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무척 속이 상하셨던가 보다.


"그 좋은 직업을 놔두고 와서 , 여기서 왜 이 고생이냐?"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격려는 못 해 줄망정 왜 그래요?"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짜증을 내였다.


어머니는 딸들이 호미를 잡기보다는 연필을 잡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다.
어머니의 원대로 난 연필로 글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내 실끄리에 옮겨 감았던 어머니의 사연들을
시상에 플어내는 어머니의 연필이 되고 싶다.

어머니는 무료하실 때,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이들이 읽는 전래동화집을 읽곤 하셨다.


"아이고, 어찌야 쓰까" 얼른가서 콩쥐 눈물 좀 닦아줘야 쓸 턴디..."
"심 봉사가 눈을 번쩍 떴구나! 어쩜 요리도 맛갈스럽게 썼을까이?"
돋보기를 쓰고도 어머니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처럼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곤 하셨다.


우리집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드리고, 어머니가 마음껏 글을 쓸수 있도록 맞춤법에 맞는 글쓰기도 가르쳐 드리고 싶었다. 허나, 바쁘다는 핑게로 어느 것 한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잘 깍은 새연필 몇 자루와 공책을 가방에 넣어 드렸다. 어머니는 연필을 기쁘게 받으셨다.
"하이고! 요새 연필은 좋기도 허다. 내가 이 연필로 글씨 연습도 허고, 너한테 편지도 쓰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니, 고향 집 수돗가 나무 기등에는 세 자루의 낡은 호미가 걸려있었다. 그중에 손잡이가 유난히 반질거리던 한자루를 가져왔다. 잡초를 뽑고 밭고량의 흙을 파던 어머니의 호미가 심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유품이 된 낡은 호미를 만져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와 밭을매러 다니던 어린시절, 김은 잘 매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부지런히 내 실꾸리에 옮겨 감았던 것 같다. 이제는 어머니 스스로 쓸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써 드리는 것이 내 소원이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서 언젠가 당신의 산소에 바치고 싶다.

그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도시에서 방황하던 시절의 내생도 뙤약볕 아래 뿌리 뽑힌 잡초처럼 나둥그라졌을 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원대로 연필로 글밭을 일구며 살고 있으니, 이제는 내 실끄리에 옮겨감았던 어머니의 사연들을 지상에 풀어내고싶다.
어머니의 연필이 되고 싶다.

Sunday, September 2, 2012

역사에서 찾는 한일 갈등 해법

역사에서 찾는 한일 갈등 해법
시론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미국에서 동아시아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국과 일본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첫 연구과제로 한 . 일 관계를 맡은 뒤 지난 20년간 이를 공부하면서 얻은 교훈을 소개한다.


첫째, 한 .일 간의 역사적 원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독일을 대하는 유럽인의 여전한 불신이 단적인 예다.


둘째, 한 . 일 관계는 원한이 실용적인 협력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군중이 모이면 감정적이 돼 분노에 찬 행동을 할 수 있다.하지만 정부끼리 머리를 맞대면 이러한 집단적 감성을 극복하고 이성적이며 서로 국익에 맞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세째는 역사 문제와 관련해 전치적으로 최악의 사태는 특정이슈와 관련해 한쪽이 현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달리말하면 양측이 역사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할 수는 있지만 한쪽이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상대방을 '제압하려' 든다면 아무런 이익도 없이 관계악화만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세가지 교훈은 최근사태를 분석하는 바탕이다. 내가볼 때 최근 한 . 일 간의 외교분쟁은 양측에서 현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 데서 출발한다. 한일 관곈는 거의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며 여기에는 일종의 균형이 있다. 일본의 방위백서와 문부성의 교과서 지침, 그리고 한국측이 분노와 항의 샅태는 한 두주 정도 한국 미디어 톱 제목을 채우지만 한바탕 소란을 겪은 뒤엔 균향사태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은 이런 균형을 깨고 사태를 더욱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한국 측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현 상태를 바꾸려고 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앞으로 나올 한국의 신임 대통령에게 하나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일본은 24일 중의원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바난하는 결의 안을 채택함으로서 새로운 실례를 만들었다. 한국을 상대로 일본 국회가 여야가 함께 이런 종류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53년 이승만 라인 설정과 관련한 '한 . 일 문제 해결 촉진 결의' 이후 거의 60년 만이다.


한 . 일 양국의 역사 논쟁은 이제 두 정부 사이의 실질적인 협력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지금 생기고 있을까. 분명히 국내 정치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분쟁에는 정치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 여러면에서 지구촌 2부 리그로 갈등될 위기에 처해있는 일본이 이젠 자기 주장을 마구 내세우면서 민족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글로벌 무대에서 최근 들어 일본보다 더욱 활발하게 활약하고있는 한국은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장 눈에 보이는 해결책은 없다. 내가 배운 역사의 네번째 교훈은 역사적 원한은 양국 모두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때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는 역사적인 화해를 국내 정치의 긍정적인 요소로 승화시켜야 할 의무가있다. 독일이 적극적인 사과와 반성을 통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을까.

Saturday, September 1, 2012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선의 나침판은 숭산 큰스님이 외국인 제자들에게 설법하신 영어 법문을 미국인 제자 현각 스님이 "The Compass of Zen"이라는 젬목으로 엮어 1997년 미국에서 출판한 책이다. 현각 스님은 큰스님의 30여 년간 설법한 녹음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들을 녹취하여 무려 4년여 동안에 걸쳐 이 책을 완성 했다고 한다.

나는 "The Compass of Zen"을 몇 년 전 홍콩 공항 면세점 책방에서 스쳐 만난적이 있다. 그때는 불교에 문외한 이었고 당시만 해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숭산 스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분명 영어로 된 책인데, 표시에는 우리나라 석굴암의 불상 사진이 아름답게 앉혀 있었고,

표지를 펼치자 주장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계신 한국 스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새겨진 큰스님의 모습은, 서울로돌아와 다시 일상에 묻히면서 점점 잊혀갔다.. 얼마후 책의 저자인 현각 스님을 우연한 기회에 직접 뵙게 되였고 오늘날 이렇게 번역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부끄럽지만------ 기쁘다.


이 책은 본래 지난 99년 1년 동안 현각 스님이 서울 마포와 강남에 있는 사찰들에서 했던 '영어로 듣는 참선 불교' 의 교재로 쓰였다. 스님의 청으로 강연 때마다 청중들을 위해 번역문으로 나눠드린 것이 인연이 돼 이번에 책으로까지 묶여 나왔다. 현각 스님의 자전적 에세이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쓰면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선의 나침판"번역작업도 나의 능력으론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원편역자인 현각 스님이 옆에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로 쓰여진 한국 불교 책을 다시 한국어로 변역하는 일은 '메이드인 코리아'로 수출한 옷을 다시 내 몸에 맞추는 일 같은 경험이었다. 이미 한자어에 익숙해 있던 불교 용어를 영어로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번역하면서 도서관과 서점을 오가며 이미 국내에 훌륭한 불교 서적들이 많이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한국인이 아닌, 불교를 전혀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쓰여진 불교 개괄서이다. 믿지는 않아도 불교의 기본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전생' 윤희' '업' 같은 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때로 너무 쉽게 느껴질 정도로 기초적인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이것을 책으로 펴내게 된 데에는 서구의 합리적 사고방식에 이미 젖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그 어떤 불교 책보다 이해가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스님의 쉽고 친절하면서도 직접적인 설명은, 불교 공부가 어려운 한자로 가득한 경전 공부가 아니라 참선 수행이라는 마음 공부를 통해 삶을 혁명적으로 아름답게 바꾸는,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길잡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깨달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공부도 짧은 사람이 큰일을 맡겠다고 선뜻 나섰다.
2001년 2월 허문명 합장



옮긴이 허문명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현각 스님의 출가 수행기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역었고 "타닛한이 전하는 마음의 평안 정".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를 번역 하였다. 숭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선의 나침판",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를 출간하였다.


광우병과 나침판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