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8, 2012

에필로그

에필로그
최근에 동양과 서양사회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가치들에 대해 논쟁이 일고있다. 유명한 싱가포르의 이광요 총리, 말레지아의 마하티르 총리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 서양학자들까지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규명하려고 노력한 바 있다.
한때 아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아시아적가치는 최근 아시아 경제위기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면서 마치 곧 쓰레기통에 벌려야 할 폐기물로 전락된 느낌마져든다.
그러나 나는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아주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편에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이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위기를 두고 자책감과 의기의기소침에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아시아 나라들의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고칠 것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얼마전 한 일본인 기자가 쓴 한국인 비판이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그러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모든일이 그리하듯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하고 그럴 때 올바른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판이 지나쳐 자책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각종 사회문제는 동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쳐 그들 자신이 갖고있는 엄청난 보물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고 5천 년 문화전통을 버리고 싶어하며 전 사회 시스템을 미국 스타일로 바꾸고 싶어한다. 그로벌 스탠다드가 곧 아메리칸 스탠더드로 인식될 정도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요즘 서양사람들은 자기들 고민의 해결을위한 단서를 동양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3세기 동안 아시아를 지배해온 서양 군대, 문화, 종교, 금융, 정치적 지배력은 심각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있으며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많은 아시아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가 서양보다는 뭔가 뒤쳐졌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나는 한국사람들이 이른바 ‘IMF’의 집중포화를 맞은 뒤로는 그들 자신의 문화적 기반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아왓다. 물론 엄정한 자기비판과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 대한 개방은 언제나 필요하다. 만약 한국인들이 성장하길 원한다면 그들 자신의 사회 문화적 약점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상황을 자세히보면 많은 한국사람들은 자기비판이 지나쳐 자가학대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전도다. 이것은 곧 치명적인 자기파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나의 걱정이다.
신문 방송에서는 한국에 지금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환부가 있는지 들추어내기 바쁘다. 그러면서 해답의 실마리를 서양적 가치에서 찾는듯하다
나는 지니친 서양 따라잡기의 구호들이 한국의 5천 년 문화전통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을 쓰는동안 나는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책을 내고 한다는 일이 옳지않은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을 굳게닫고 깊은 산속에서 조용히 살아야하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책을 내려고 하는지 나 자신조차도 설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왜 내가 스님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하는 때가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왜 스님이 되었느냐” “왜 하필이면 한국불교를 택하게 되었느냐”고 물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하철과 거리에서,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딫치는데 적어도 열 명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면 으레 내게 와 꽃히는 질문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나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고맙긴 하지만 그들의 질문 뒤에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내가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갖는다는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땅, 낯선 사람들과 그것도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일이 언뜻 아해가 안 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사실, 처음엔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럴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이젠 무언가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한 의무감같은게 있었다. 더구나 작년(98년) 겨울 조계사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나의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즈음 지리산 상선암이라는 암자에서 백일 기도를 하고있어 나는 서울로 돌아와서야 그 소식을 들었는데 얼마나 슬폈는지 모른다.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뉴욕 타임스〉를 통해 한국의 조계사 사태를 알고있다”고 하시면서 “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한국불교가 이런 것이냐”고 편지로 물어오셔서 당황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라고 설명을해야 할지 대답을 못 찾았다.
나는 물론 한국불교를 잘 모른다. 한국을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내 감정이고 어쨋든, 나는 외국인이고 손님이다. 따라서 내가 한국에 대해, 한국불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건방진 일이고 무례한 일이다.
어떻게 감히 ,내가……..
그러나 나는 그동안 많은 한국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작 손님인 나는 이 땅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땅에 너무 익숙해져서 싫증을 내고 폄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경제위기가 가져다준 그들의 절망은 “한국은 더 이상안 돼” “한국은 가능성이 없어” 하는 자기비하로 이어졌다.
아니, 이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데, 그리고 지금껏 그들이 흘려온 피와 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데, 그것을 그렇게 한꺼번에 헐값에 도맷금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내 비록 푸른 눈을가진 客이지만, 내가 얼마나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큰스님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죽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린다면 절망과 실의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한가닥 희망이 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의 산천을 비교적 많이 돌아다녔다. 사찰들도 꽤많이 가보았다. 사찰들 앞에는 예외없이 영어로 된 안내판이 서 있다. 이절은 언제 누가 세웠고 절의 역사는 어떻고 하는 간략한 설명이 들어있다. 그런데 한국의 절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파괴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중건되었다.’
‘이 절은 몽고군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
‘이 절은 한국전쟁때 소실되었었다.’
이러한 문구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한번도 침략하지 않은 이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외침에 의한고난에 찬 역사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들은 어김없이 ‘다시 세워졌다’는 것이다.
파괴와 소실에도 아랑곳없이 절은 언젠가 반드시 중건되었다는 것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감동과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바로 그것은 한국인들의 불굴의 정신, 끈기라는 위대한 정신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무수한 전쟁속에서도 전쟁이 끝나면 다시일어서는 한국인들의 용기, 그리고 그들의 정신 속에 내려오는 5천 년 문화유산을 나의 친구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정신문화는 숭산 큰스님이라는 용광로에 녹여져 미국에서 서서히 꽃을 피우려 하고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미국사람들이 얼마나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려 하는지 여러분은 잘 모른다. 그런 와중에 터진 조계사 사태나 경제위기에 따른 한국인들의 절망은 사실 내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내 삶에대한 부끄러운 이야기를 지루하게 털어놓기로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나 한국문화에 빚을 진 사람이며 이제 그 빚을 갚으면서 살기로 했다는 것을 좀 알려드리고 싶었다. 불가전통에 따르면 스님이 된다는 것은 곧 ‘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가 이전의 ‘나의생활’이란 없어진 것이다.
나의 나쁜 업 때문에 이렇게 출가 이전의 나를 털어놓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이유는 바로 육체를 주신 내 부모님만큼이나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불교와 정신에 눈뜨게 해준 큰스님을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에게 죽는 날까지 깊이 감사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큰스님이 푸른 눈의 우리들을 가르치는 동안 전세계로 다니시다보니 많은 한국사람들이 큰스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특히 그 위대한 가르침도 접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큰스님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희생을 통해 이제 전세계 사람들은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일이란 바로 그 위대한 가르침을 한국인들에게 다시 알리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큰스님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위대한 불교전통을 가진 한국에는 살아있는 부처님들이 많이계신다. 내가 믿는 가르침만 옳고 내 스승만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얘기하다보면 이 불안과 혼돈의 세기말 시대에 진정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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