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19, 2011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이원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운무 데리고 금강에 살어리랏다/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체나 하리요//이 몸이 식어진 뒤에 혼이 정녕 있을진댄/혼이나마 길이길이 금강에 살어리랏다/생전에 더럽힌 마음 명경같이 하과져

요즘 나온 글이나 노래는 많지 않지만 금강산을 읊은 것이 어디 이은상의 이 금강행 뿐이랴? 한말 개화 이후의 눈에 띄는 것들만 보더라도 최남선의 금강예찬 이 있고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가 있다. 정비석의 산정무한 은 우리가 배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문일평의 〈동해유기〉도 지나칠 수 없는 글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노라하는 문장가들이 읊은 수많은 한시와 기행문과 가사문학이 있고 더 오랜 고려시대의 글들도 더러 남아 있다.

시와 문장만이 아니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많은 그림들이 전통적인 산수화와 민화의 수법으로 그려졌다. 그 봉우리와 골짜기, 소용돌이치는 구슬같이 많은 며 천길 물 떠러지는 벼랑이며 , 금강산은 수많은 민담과 설화문학의 무대가 되어 노래로 불리고 형상으로 빚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쳐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금강산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성지라는 점이다. 금강산에서 불교를 빼 버린다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금강산이란 이름 자체도 불교에서 온 것으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하였다. 영어로는 다이아몬드 마운틴이라고 하지만 값비싸고 단단한 그런 광석이 이 산에서 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알고서 다시 금강산을 들여다본다면 골짜기마다 지장봉이며 석가봉, 세존봉, 관음봉, 천불산, 대지봉, 시왕봉, 등등 산봉우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마하연, 묘길상, 명경대, 득도암처럼 셀 수도 없이 맣아서 가히 불국토다운 명명이요 불교의 종합전시관이라고 할 만 하다.

이렇듯 금강산에는 4대사찰이라는 유점사와 신계사, 장안사와 표훈사가 있고 그 밖에 정양사, 보덕굴 도솔암, 안양암 등, 절과 암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근세에 이르러 이 불교의 성지는 싸움터가 되었고 수백 년을 이어 오던 크고 작은 절이며 암자들이 숱하게 잿더미가 되었다.

세 해동안이나 밀고 당기던 싸움이 가까스로 멎자 그 산의 발치에는 이중 철조망이 쳐지고 사람의 발복을 댕강 자른다는 지뢰의 띠가 이어져 몇 십 년째 묵정밭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묵정밭 한쪽이 뚫려 남북으로 길이 나고 뭔가 한 가닥 핏줄이 다시 흐르는 가도 싶더니, 어느새 다시 길을 덮으려 한다.

이재 저만치 팔만이천봉은 가시 입제도 해제도 없는 어색한 묵언의 동안거에 들어 있다. 왜 우리에겐 화두마져 잡을 길 없는 불편하고 소득 없는 날들이 이리도 더디게만 흐르는 것일까? 그건 바로 금강이라는 이름에 연유한 저 화염의 진리,

일체 원융의 그 가르침을 잊고서 살아온 너나 없는 우리 모두의 업보가 아닐른지!

Monday, October 17, 2011

나의인생 제 8장 성공과 자아실현


나의인생 제8 자아실현 自我實現

眞理는 반드시 따르는 者가 있고 正義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냐, 나다, 왜냐, 이 넓은 천상천하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 나의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내가 없는 세계와 내가 없는 역사가 나에게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 언제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나의 생일날처럼 중요한 날이 없다. 나의 생일에서 나의 인생이 시ㅣ작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 어제냐, 내가 죽는 날이다. 나의 죽음과 동시에 나의 인생은 끝난다.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자아自我의 완성, 자아의 실현實現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는 이것을 앤텔레케이아 Entelelkeia라고 하였고, 중국의 사상가들은 이것을 성기成己라고 하였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이다.성기는 자기완성이다.

나란 무엇이냐, 나는 살아잇는 하나의 생명이요, 나의 의지와 힘으로 움직이는 활동체요, 독자적인 개성과 이성과 양심을 지니는 인격체人格體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105종류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듯이, 인류사회는 60억이 넘는 무수한 개인으로 구성되어있다.

나는 사회적 원자社會的 原子다.

우리는 저마다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다. 원자를 마톰Atom이라고 한다. 이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아톰은 불가분자不可分者라는 뜻이다. 그 이상 더 나눌 수가 없는Individual존재라는 뜻이다.

세계와 천하는 많은 국가로 구성되고, 국가는 많은 가족으로 구성되고, 가족은 몇 사람의 개인으로 구성된다.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원자다. 나는 사회의 원자요, 세계의 基点이다.

사회는 「나」에서 부터 출발한다. 무수한 나가 수없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나는 맘을 바로 세울 수는 없지만 나를 바로 세울 수는 있다.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회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제일보第一步요, 시작이다.

사회 건설社會 建設은 개인 건설, 자아 건설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먼저 올바른 자아관自我觀을 확립해야 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나, 이것을 자아관 또는 자아개념自我槪念이라고 한다.

인간의 자아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肯定的자아관이요, 또 하나는 부정적否定的 자아관이다.

부정적 자아관은 자기가 자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보든 것을 마이너스 측면에서 생각한다.

나는 지방 출신이다, 집도 가난하다. 일류 대학도 못 나왔다. 재능과 천분도 빈약하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할 수 있어, 나는 인생의 열등생이요, 패배자요,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다.

그는 이런식으로 패배감과 열등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인생의 앞날에 대하여 희망과 자신감과 의욕을 잃어버리고 자학자멸自虐自蔑하고 자굴자회自屈自侮하고 자포자기한다. 세상에는 부정적 자아관에 빠진 사람이 적지않다..

우리는 먼저 부정적인 자아관을 극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긍정적 자아관이다. 그는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모든 것을 플러스의 측면에서 생각한다.

나는 떳떳한 사람이다. 남에게 가능한 것은 나에게도 가능하다. 나도 천분과 재능이있다. 하면 된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나는 칠전팔기하고 분투노력하여 기어코 성공하고야 말겠다. 나에게 절망과 패배는 없다.

그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목표에 도전한다. I CAN DO,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요, 희망은 발전의 활력소다.

자신감은 성공을 가졍오고 열등감은 패배를 초래한다.

부정적 자아관을 극복하고 긍정적 자아관을 활립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일에 대하여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먼저 너 자신을 바로 일으켜 세우라. 자아건설自我建設, 자아 확립이 나의 첫째 과제다.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을 한문으로 正己라고 한다. 맹자가 정기를 강조했고 주자朱子도 정기를 역설앴다.

주자는 그의 명저 《근사록近思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기위선正己爲先」

인생에서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느냐, 인간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정기다.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정기와 자아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의 고전인 《대학》은 『수신위본修身僞本』을 강조 했다. 수신이 근본이다.

내가 나를 갈고 닦아 건전한 인격을 만드는 것을 인생의 근본으로 삼아라.

인간의 근본 사업根本 事業이 무엇이냐. 수신이다. 내가 나를 수련하여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기위선正己爲先과 수기위본修己僞本은 표현의 차이가 야간 있지만 같은 뜻이다.

「나라를 통치하는 임금님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오로지 몸을 다스리는 것을 인생의 근본으로 삼아라 자천자이 지어서인 일시개이 수신위본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僞本.」《대학》,〈經 一章〉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수신사상, 정기사상修身思想, 正己思想은 유교의 근본 원리의 하나다.

수신과 정기가 가장 중요하다. 수신과 정기는 옛사람의 말이지만,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인격 형성이요, 자아확립이다.

내가 나를 다스려 나를 바로잡은 후에 남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수기치인은 유교의 기본사상이다.

修己가 안 된 사람은 治人할 수가 없다. 治人에 앞서서 먼저 修己를 해야 한다.

내가 나를 바로잡고, 내가 나를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바로잡을 수 있고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선수기先修己요, 후치인後治人이다.

수기修己를 먼저 하고 치인治人을 나중에 해야 한다.

현대인은 修己는 아니하고 治人부터 하려고 한다. 이것는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어떻게 나를 바로잡고 나를 다스려야 하느냐. 修己와 正己의 방법이 무엇이냐.

미국의 상리학자요, 프래그머티즘 Pregmatism: 실용주의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James가 그의 명저 《심리학 원리心理學 原理》에서 제창한 이론을 토대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제임스는 인간의 성격 형성에서 의식 개혁意識 改革과 사고혁명思考革命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기본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고가 바뀌면 행동의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性格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이 순서를 역으로 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면 성격을 바꾸어야 하고, 성격을 바꾸려면 습관을 바꾸어야 하고, 습관을 바꾸려면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행동을 바꾸려면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운명을 개조하려면 인간의 사고를 개조해야 한다. 인간의 사고를 개조하면 인간의 운명을 개조할 수 있다. 이것이 제임스 사상의 가본 골자다.

이 문제를 자세히 검토하기로 한다.

인간의 변화와 개혁의 시발점은 먼저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개혁하는 것이다.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을 바꾸려면 사고를 바꾸워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Pascal이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exist」 라고 데카르트는 말했다.

사고가 행동을 결정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결정된다. 사고는 행동의 어머니요, 행동은 사고의 아들이다. 사고는 행동의 원천이요, 행동은 사고의 결과다.

긍정적 사고를 하면 긍정적 행동을 하고, 부정적 사고를 하면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낙관적 사고를 하면 낙관적 행동을 하고, 비관적인 사고를 하면 비관적인 행동을 한다.

적극적 사고를 하면 적극적 행동을 하고, 소극적인 사고를 하면 소극적인 행동을 한다.

착한 생각을 하면 착한 행동을 하고, 악한 생각을 하면 악한 행동을 한다.

미신적 생각을 하면 미신적 행동을 하고, 과학적 사고를 하면 과학적 생각을 한다.

새사람이 무엇이l. 새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낡은 사람이란 무엇이냐. 넑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바꾸려면 먼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고의 혁명은 인생의 난사難事다. 일생동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머나 많은가.

생각을 바꾸는 일, 사고의 혁명이 왜 어려우냐. 사고가 고질화固質化되고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질화된 사고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수년, 수십 년 동안 우리 몸에 깊이 배어 있는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대닪히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습성과 경향이 있다. 사고의 혁명, 생각의 변화에는 커다란 정신적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완고해지고 고집불통이 된다.

Wednesday, October 12, 2011

인간 최대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Platon 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남을 이기기는 쉽다, 그러나 나를 니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중국의 사상가 老子는 아렇게 말했다.

「승인자유력勝人者有力 자승자강自勝者强.」 《노자》, 〈도덕경〉

남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그사람 보다도 강할 뿐이다. 그러나 자기와 싸워 니기는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이다. 나를 니기는 자가 인생의 진정한 영사다. 남한테는 이겨도 자기자신에게는 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노자의 「자승자강」이라는 말은 명나라의 사상가 왕양명의 다음말과 거의 같은 의미다. 知行一致를 역설한 왕양명은 이렇게 말했다.

「산속에서 만나는 도둑은 격파하기 쉽지만 내 마음속의 도둑은 물리치기 어렵다. 파산중적이 파심중적난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邪心과 사리사욕을 이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克己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자기를 이기려면 강해야 한다. 약한 자는 자기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극기 훈련은 하여 자기의 정신력을 강화해야 한다.

自强不息하여라. 우리는 自己 强化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自强人이 되어라. 나의 신체를 강화하고, 나의 정신을 강화하고, 나의 인격을 강화하고, 나의 의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악이 존재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느가.

이것은 신학과 철학의 가장 어려운 근본 문제의 하나다.

악은 신의 반대 개념이다. 악이란 무엇이냐, 인간의 새영에 해가 되는 것은 모두 악이요, 인간의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선이다.

인간에게 유해한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을 우리는 악이라고 한다.

인간의 악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物理的 惡이다. 이것을 우리는 害惡이라고 한다. 질명, 기근, 홍수, 폭풍우, 빈곤, 나쁜 제도와 풍속등 주로 물질적 요인에서 생기는 악이다.

둘째는 道德的 惡이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부정, 사기, 패륜 등 인간의 도덕적 의지의 타락과 惡用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罪惡이라고 한다. 해악과 죄악은 다같이 악이지만, 성격과 내용이 서로 다르다. 해악을 없애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죄악을 없애는 것은 더 중요하다.

으리는 악과 싸워야한다. 특히 죄악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도덕의 명령이요, 양심의 요구다.

실례를 구약 성서의 〈創世記〉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옛날 이스라엘의 死海의 동남단에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 라는 두 도시가 있었다. 이 두 도시는 비옥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번영을 마음껏 누렸다. 물질의 풍요와 경제의 번영이 극도에 도달하면 정신적 도덕적 타락을 초래하기 쉽다.

하나님의 選民이라고 자처하던 이 두 도시의 시민들은 사치, 허영, 애욕, 음란, 방탕의 생활에 빠졌다.

여호와 신은 도덕적 퇴폐의 극치에 도달한 이 두 도시에 천벌을 내리기로 작정하고 신앙의 義人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서 그 뜻을 전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신에게 간청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義人 50명만 있으면 그들의 의를 생각하셔서 천벌을 거둥어 주십시요.」그리하겠다고 여호와 신은 대답했다.

그러나 의인50명이 없었다. 40명만 있으면 용서해 주시겠읍니까? 「그러리라.」그러나 이인 40명이 없었다. 40명이 줄고 줄어 미지막으로 「10명만 있으면 용서해 주시겠읍니까?」「그러리라.」고 신은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 두 도시에 의인 10명이 없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악과 타락에 분노한 여호와 신은 하늘에서 불과 유황불을 퍼부어 소돔과 고모라성을 영원히 멸망케 했다.

이것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다. 불의不義와 타락의 나라는 쇠망해야 한다.

악 중에서 제일 으뜸가는 악의 하나는 부정부패다. 세상에 부패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눈이 썩으면 보지 못하고 손이 썩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발이 썩으면 걷지 못하고, 심장이 썩으면 죽고만다.

부패는 기능機能을 마비 시킨다. 썩으면 악취가 코를 찌르고 모양이 추잡해진다.

부패한 인간, 부패한 조직, 부패한 나라처럼 추하고 악한 것이 없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땅에 소금이다.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표현은 간단하지만 의미는 심장深長하다.

이 세상기능에는 두 개의 세력이 있다. 부패세력과 소금의 세력이다.

전자는 악의 세력이요, 후자는 썩는 것을 막아내는 양심의 세력, 정의의 세력이다.

부패 세력이 많으냐 소금의 세력이 많으냐에 의해서 그 사회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부패 세력이 크고 강하면, 그 사회는 조만간 기강紀綱이 무너지고 도덕이 타락하여 쇠망하고 만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나 부패 세력운 있다. 자고 이래로 부패 세력이 없는 사회는 없었다. 그러나 부패 세력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부패 세력을 방지하는 소금의 세력이 없는 것이 두렵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다 부패한다. 나무도 썩고 쇠도 썩고 우리의 몸도 썩는다. 그러나 절대로 썩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소금이다. 썩는 소금을 본 일이 있는가.

신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소금이다.

여름에 물고기를 말릴 때 소금을 뿌리지 않으면 파리와 구더기가 생겨 썩고 만다. 그러나 소금을 뿌리면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썩지 않기 때문에 남이 썩는 것을 막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소금의 정신이다.

땅의 소금이 되어라, 우리사회에 인간 소금이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에 인간 소금, 사회의 소금, 국가의 소금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문제다.

우리의 피 속에는 적혈구와 백혈구가 있다. 적혈구는 영양분과 산소를 전신의 모든 조직가 기관에 배달하고 탄산 가스와 노폐물老廢物을 밖으로 내보낸다. 백혈구는 우리 몸의 혈관 속을 자유 자재로 돌아다니면서 몸에 독균이 들어오면 혈관을 뚫고 나아가 포위하고 독균을 잡아먹는다.

백혈구를 영어로 류코사이트Leuco-cyte라고 하고 또 화고 사이트Phago-cyte라고도 한다. 류코는 그리스어로 희다는 뜻이요, 사이트는 세포라는 뜻이요, 화고는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백혈구는 살균 작용을 한다.

1立方밀리미터 속에는 약7천 개의 백혈구가 있다. 수천만 수억 개의 백혈구가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가 우리 몸에 독균이 침입하는 즉시 용왕매진勇往邁進하여 독균을 포위하고 사생결단으로 자기의 목숨을 바쳐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러한 백혈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숙연한 감동을 느끼다. 그 용기, 그 희생정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행동, 그것은 선비 중의 선비요, 경이驚異 중에 경이다.

독균과 용검하게 싸우다가 죽은 백혈구의 거룩한 시체가 고름이다. 우리는 고름을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백혈구의 거룩한 시체다, 이대하도다, 고름의 희생 정신이여

으리는 백혈구의 보호로 살아가고 있다. 백혈구는 우리몸의 방위군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회적 백혈구社會的 白血球다. 우리는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땅의 소금과 악과 싸우는 사회의 백혈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두 가지의 위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하나는 경제적 이기요, 또 하나는 도덕적 위기다.

우리는 지금 IMF의 경제적 관리 체재하에 있다. 왜 이러한 경제적 위기가 생겼는가.

그 그본 원인은 결국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위기에 있다. 우리의 정치 지도층과 재벌과 금융 관료들과 국민의 방만하고 부패한 행동과 생활에서 도덕적 위기가 왔고, 도덕적 위기道德的 危機에서 경제적 위기가 생겼다.

우리는 지금 도덕적 파산 상태에 지견했다. 우리는 도덕적 동맥경화증에 걸렸다.

홍콩의 한 경제 연구소는 최는에 이렇게 발표 했다.

아시아의 27개 국가 중에서 가장 부패한 대표적인 다섯나라가 있다.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 베트남, 그리고 한국이다.

서양의 어느 신문기자는 한국을 「ROTC」라고 하였다. ROTC는 「예비장교훈련단」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눈 Reserve officials’ training corps의 첫자를 따서 ROTC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신문 기자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전체 부패 국가(Republic of total corruption라는 뜻이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부패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고, 정치가를 믿을 수 없고, 기업가를 믿을 수 없고, 금융인을 믿을 수 없고, 사회 지도층을 믿을수 없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국가적 公信力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무심붕불無信不立, 신용을 잃어버리면 설 땅이 없다.

우리 사회는 불신 사회라고 낙인 찍혔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국제 사회에서 공신력을 상실할 때, 외국인은 한국인을 불신할 것이요, 경제적 투지를 아니할 것이요, 우리의 상품을 사지 않을 것이요, 우리를 멸시하고 멀리할 것이다.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한국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국민이라고 생각할 때, 외국인은 우리와 가까워 질 것이요, 우리의 상품을 믿고 살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신용을 희복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우리는 정직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번영하는 길이다.

양심 한국良心 韓國의 건설, 신용 사회의 건립,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나를 위한 인생 제6장 쟁 자기와의 싸움

6장 쟁 爭 자기와의 싸음

人間 最大의 膝利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프라톤

生卽生, 간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산다. 싸움없는 인생은 없다.

싸움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의 하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첧학자 칼 아스퍼스는 싸움을 인간의 限界 狀況의 하나로 봉았다.상황은 환경과 깉은 뜻이다.

항계 상황이란 무엇이냐, 인간이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 없고,극복하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황경, 운명적 상황이다.

인간은 어떤 황경 속에서 살아간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경을 우리의 마음에 맞도록 개조할 수도 있고 이동할 수도 있다.그러나 개조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절대적 환경이 있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환경을 한계 상황 또는 극한極限이라고 하였다. 그는 한계 상황으로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죽음Tod이다. 죽음은 인강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언젠간 죽을 수밖에없다.

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우리는 죽음의 운명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죽음을 우리의 불가피항 운명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인생일사人生一死는 생명의 원칙이요,자연의 섭리다.

둘째는 고苦, Leidenek. 석가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우리는 생로병사의 고해속에 살아간다.

一切皆苦, 모든 생명은 고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뇌가 없는 인생은 없다.고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우리는 고가 없는 樂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고는 우리의 어쩔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의 생은 고생苦生이요, 괴로운 생이다.

셋째는 죄Schuld.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는 실 수 없다.

나는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우리는 죄가 없는 맑고 깨끗한 인생을 살거 싶지만 크건 작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죄는 인간의 불가피한 한계 상황이디.

끝으로 싸움Kampf이다 우리는 남과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우면서 쌀아갈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는 입시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싸움이 있다. 우리는 싸움에서 봇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사물에 그힘자가 따르듯이 인간의 생에는 여러 가지 싸움이 수반한다.우리는 싸움이 없는 평화롱운 생을 살고 싶지마는 싸움은 운명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율배반二律背反 속에서 산다.인간의 존재에는 죽음과 고통과 죄악과 싸움이라는 네 개의 한계 상횡이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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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계 상황이 직면할 때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을 자각하고 실존의 운명과 고뇌를 절감切感하고 진지한 각성覺醒에 도달한다. 고뇌는 인간을 심화深化시킨다.’

인생의 하나의 전쟁터와 같다.많은 사상가와 첳학자들이 인생을 전쟁에 비유했다.

문학자 빅토흐 위고Hugo도 그랬고, 도스토에프스키Dostoevskii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구랬고, 스토아의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도 그랬다.

개인간에는 생존 경쟁있고, 계급간에는 계급 투쟁이 있고, 국가간에는 전쟁이 있고, 인종간에는 분쟁이 있다.

인류의 문명사를 연구한 미국의 철학자 듀란트Durant에 의하면 과거 3천년 동안에 전쟁이 없었던 해는 겨우 268년밖에 안된다고 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평화의 역사라기보다도 전쟁의 역사였다.

런던대학의 래스키Laski교수는 20세기를 「전쟁과 혁명의세기」라고 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대전,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1949년의 중공 혁명 등,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많은 전쟁과 혁명이 발발했다.

전쟁과 혁명으로 20세기에 약 2억의 인간이 무참학게 살해 되었다. 인간은 원자탄을 만들 만큼 지능이 우수하지만 전쟁을 안 할 만큼 총명하지는 못하다.

세계의 평화와 전쟁의 방지를 위하여 20세기에의 초엽과 중엽에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을 만들었지만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인류의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세계의 永久 平和는 실현 불가능한 영원한 꿈일까.

싸울 爭자는 하나의 물건을 저마다 차지하려고 두 손이 서로 싸우는 모양을 그린 상형 문자다.

인간의 싸움에는 여러가지의 형태가 있다.

말로 싸우는 언쟁言爭과 논쟁論爭, 주먹으로 싸우는 투쟁鬪爭, 정치적인 싸움 정쟁政爭, 당파간의 당쟁黨爭,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 등 다채다양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위고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중요한 마음이 있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저연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이 싸움을 그린 위고의 소설이 (바다의 노동자)라는 작품이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자연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고, 홍수와 싸우고, 폭풍과 싸우고, 태풍과 싸우고, 맹수와 싸우고, 한재旱災와 싸우고, 온갖 질병과 싸워야 한다.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고, 폭설과 싸워야 한다. 또 기아飢餓와 싸우고, 화재와 싸우고, 지진과 싸워야 한다.

자연한테 패배하면 인간은 죽고 만다.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과 기계의 문명은 인간이 자연과 싸울 때 놀라운 수던과 무기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개인과 개인이 경쟁하고, 집단과 집단이, 계급과 계급이, 국가와 국가가 싸움을 벌린다.

1872년에 쓴 위고의 《93년》이란 명작은 인간의 혁명을 그린 소설이다.

셋째는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그린 유명한 작품이 그의 거작巨作 《레미제라불》이다. 레미제라불은 「바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장발장」이라는 가난하고 무식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善과 악惡의 치열한 싸움과 마침내 선한 자기가 악한 자기를 용감하게 이기는 내적 투쟁內的 투쟁鬪爭을 그린 휴먼니즘의 명작이다.

세계 문학사상 이 작품만큼 널리 읽히고 깊은 감동을 준 작품이 없다. 1845년에서 1862년까지 15년간에 걸처서 쓴 이 대작은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금자탑金字塔의 하나다.

《바다의 노동자》와 《93년》과 《레미제라불》은 인」간의 세 가지 싸움을 그린 위고의 유명한 3부작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이다. 《죄와 벌》을 쓴 러시아 작가 도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신神과 악령惡魔의 싸움터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선善과 악惡이 부단히 싸우고 있다. .

그것은 양심과 욕심과의 싸움이요, 소아小我와 대아大我의 투쟁이요, 본능과 이성의 대결이요, 영靈과 육肉의 갈등이요, 가아假我와 진아眞我의 다툼이요, 참된 자기와 거짓된 자기와의 충돌이요, 이산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와의 마찰이요, 본래적本來的 자기와 비본래적 자기의 싸움이다.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인생은 댄싱Dancing이 아니고 레스링Wrestling이다」라고 말했다.

무용과 씨름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로 붙잡고 돌아가는 모양은 같다. 그러나 춤은 서로 즐기기 위해서 붙들고 돌아가고, 씨름은 네가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를 겨루기 이하여 서로 붙들고 돌아간다.

춤은 평화와 희열이요, 씨름은 싸움과 고통이다.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은 세가지의 특색을 지닌다.

이 싸움은 모든 사람이 싸워야 하는 싸움이다. 목사나, 승려나, 道人이나, 수도자修道者만이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만인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인간에게만 있는 싸움이다. 인간은 양심을 가진 인격적 존재요, 이성을 지닌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 싸움을 안 할 수가 없다.

동물에게는 이 싸움이 없다. 동물은 도덕 의식이 없다. 짐승은 도덕 이하以下, 도덕 이전以前의 본능적 존재다. 약육강식의 보능적 투쟁만 있을 뿐이다.

동물을 보라, 생긴 구조부터 무시무시하고 투쟁적으로 되어 있다. 사자의 사나운 이,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 독수리의 예리한 부리, 고숨도치의 뽀족한 피부, 치타의 달리는 힘, 악어의 무서운 투쟁력, 코끼리의 억센 힘, 황소의 큰 뿔, 독사의 예리한 독아, 동물은 생리 구조 자체가 투쟁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긴 구조부터 평화적이다. 젊은 여성의 부드러운 피부, 간난아이의 고운 입술,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 소녀의 맑은 눈, 소년의 발랄한 표정, 할머니의 안자한 목소리,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말씀, 아버지의 부성애.

신은 인간을 평화의 동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싸움이 있고, 투쟁이 있고, 전쟁이 있는가.

이 싸움의 두번째 특색은 우리가 죽는 날 까지 날마다 일생 동안 싸워야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어제는 이겼지만 오늘은 질 수도 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도 있다.

인생 도처에 많은 유혹이 기다리고 있고, 허다한 함정이 있고, 넘어지기 쉬운 걸림돌이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유혹하고 싶고, 돈을 보면 눈이 어두워지기 쉽다.’ 인간은 명예 앞에 흔들리고, 권력앞에 무너지고, 향락 속에 빠지기 쉽다.

옛 사람은 황금흑사심黃金黑士心이라고 하였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시커멓게 만든다.

중국의 고전인 大學에선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좋지 않은 짓을 한다.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爲不善.

인간의 마음은 선에 물들기보다는 악에 물들기 더 쉽다.

나의 마음속에는 나의 적이 있다. 내가 나의 적이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적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끝으로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은 악한 싸움이 아니고 善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문명을 파괴하는 싸움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참되 자기, 선한사람,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하여 싸우는 도덕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소리없이 벌어지는 고요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나와 남을 죽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고, 나와 남이 착해지기 위한 싸움이다.

사도 바울은 이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하였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려면 게으른 자기와 싸워야 한다. 선한 자기가 되려면 악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성실한 자기가 되려면 불성실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용감한 자기가 되려면 나약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내가 아하고 싸우는 싸움을 일생동안 가장 진지하게 싸운 대표적인 인물로서 나는 사도 바울을 들고 싶다.

그는 이렇게 밀했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 악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 한 법칙임을 내가 깨달았노라.」「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 하고 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도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리오..

바울이 쓴 〈로마서〉7장에는 영과 육, 선과 악, 利와 義, 본능과 양심의 갈등 속에서 치열하게 악전고투한 싸움의 내적 투쟁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죽기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켰다.

그는 의와 진리를 갈구한 진지한 구도자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을 아니하면 인간은 우물愚物이 되고 속물俗物이 되고 추물醜物로 전락한다.

여기서 더 전락하면 추악한 페물魔物이 되고 만다.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우면 마의 인격 수준이 높아져서, 선인이 되고, 의인이 되고, 군자가 되고,걸물傑物이 되고, 영물靈物이 되고, 성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