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3, 2012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판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
하긴 요즘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동물들은 아주 단순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하지만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또 다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혹은 몸에 걸치고 다닐 장신구들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죽인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보라.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면 좋다고 박수를 치고 서로 칭찬을 해주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물고기의 얼굴을 한번 자세히 보라 살려고 파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물고기들은 웃어대는 인간들 옆에서 “물 어디 있어. 물 어디 있어”라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한줌 연민의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겠는가.
알다시피 요즘 이 세계에는 눈만 뜨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기상이변, 환경오염, 식량부족 문제……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개, 고양이, 사자, 뱀, 그 어떤 동물들도 인간만큼 많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사고를 오직 고통을 만들어내는 데 쓰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나쁜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종말’이라고 부르고 있다. 불교에서는 ‘종말’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완전히 무르익었다.’고 본다. 마치 과일처럼 말이다. 과일이 열리려면 처음에 가지에서 꽃이 핀 후, 꽃에서 싹이 나고 점점 열매가 되어 익는다. 열매는 처음엔 보통 푸른색을 띠지만 점점 아름다운 색으로 변한다. 햇빛을 받는 쪽의 색채가 먼저 변하고 시간이 더 흐르면 열매 전체가 완전히 아름다운 빛깔이 된다. 거기다 향긋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이제 다 익은 것이다.
무슨 과일이든지 꽃에서 열매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러 달에 걸쳐 뿌리에서 뻗어나온 에너지는 잎으로 모아지고 다시 열매로 이동한다. 그러고 차차 무르익는다. 재미있는 것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려 맺힌 열매가 일단 완전히 익으면 그 다음 변화는 매우 빨리 진행 된다는 것이다. 단 며칠 새에 향기와 빛깔이 사라지고 열매는 썩기 시작한다. 반점이 생기고 며칠이 지나면 아예 썩어 버려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열매가 익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썩기 시작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이 세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인간의 역사는 한쪽만 햇빛을 받은 과일과 같은 형상이었다. 햇빛을 먼저 받은 쪽이 자본주의이고 나머지 부분이 공산주의이다.
과일은 이제 한 가지 색깔로 변했다. 공산주의라는 빛깔이 없어지고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색깔만을 가지게 됐으며, 인간의 에너지도 모조리 이곳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성숙의 단계를 지난 과일이 썩으면서 반점이 생기듯 자본주의 세상 곳곳에 반점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중동, 르완다, 유고, 북한,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국가간, 민족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 대립이 끝났는데도 군대는 오히려 늘어났고 대량 살상을 위해 생산된 무기들이 매일매일 거래되고 있다.
과일이 익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단 익기 시작한 과일은 빨리 썩는다. 어떤 과일도 썩으면 먹을 수가 없다. 자본주의 라는 과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미래는 없는가? 썩으면 그만인가?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썩어가는 과일 안에 들어있는 ‘씨’이다. 씨는 이미 과일 안에 들어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원천이다. ‘씨’란 달리 말하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루빨리 무지에서 잠을 깨어 우리 본래의 ‘씨’인 우리의 본 성품을 발견해야 한다. 이 ‘씨’야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원천이다.
부처님은 본성을 찾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최초의 인물이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올바른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당신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변호사, 의사, 택시기사, 학생 혹은 누구누구의 남편, 아내, 딸, 아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바깥의 모습일 뿐이다.
이제 우리 내면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참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한 삶이란 바로 대자대비의 삶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들까지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먼저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본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죽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올바른 삶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책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라도 우리 자신의 본성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다. 본성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수행이다.
바른 수행은 우리자신을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 참선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질문을 깊이 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생각이전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오직 모를 뿐’을 깨달아 우리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모습이란 바로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라야만 우리는 우리자신을 찾을 수 있고 다른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눈뜸’이다.
이 책의 제목을 왜 ‘선의 나침반’이라고 지었는가? 부처님은 우리 인생이 ‘苦海’라고 가르쳤다. 모든 사람들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또 다시 태어나고, 우리의 욕망과 집착 때문에 우리는 고해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산스크리트로 이것을 ‘삼사라(Samsara, 輪回)’라고 부른다. 돌고 돌고 돈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지혜(projna)의 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배에는 다른 배들과 마찬가지로 나침반이 필요하다.
배를 타고 미국LA에서 한국부산으로 간다고 가정해보자. 충분한 옷, 식량, 약도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방향이 확실치 않으면 바다 한가운데서 떠돌아야 한다 어쩌면 길을 잃어 영원히 헤맬지도 모른다. 나침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배, 지도, 기상조건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제 방향을 찾아갈 수 없다. 지혜의 배에 필요한 나침반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을 찾고 싶다면 참선수행을 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깊이 하면 나침반을 발견할 수 있다. 참선 수행에도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다. 티베트식도 있고 중국식도 있고 한국식도 있고 일본식, 비파사나 식도 있다. 또한 소승불교의 언어로, 대승불교의 언어로, 선의 언어로 혹은 중국말로, 산스크리트로, 한국말로, 일본말로, 미국말로, 폴란드 말로도 나와 있다. 어떤 것이 가장 옳고 명확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하나의 지침을 제공해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3대 주요 영역으로 나눠 설명한 이 책은 진리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 소승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제일이다라고 한다면 그 말을 하는 순간 이미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 대승불교가 최고다라고 하는 순간 본래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보다 더 큰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다. ‘선’도 마찬가지다. 선이야말로 최고다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지옥으로 가는 화살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이 큰 의문을 어떻게 깊게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슴속 깊이 이 질문을 품는다면 ‘오직 모를 뿐’이라는 질문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생태에서는 어떤 말이나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얻으면 소승불교를 얻은 것이고, 대승불교를 얻은 것이고, 선을 얻은 것이다.
동양에는 ‘이열치열 이한치한 (以熱治熱 以寒治寒)’이라는 오랜 속담이 있다. 말과 생각이 만든 병은 일단 말과 생각으로 된 약을 먹어야 한다. 내가 《선의 나침판》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책에 나와있는 말과 단어를 참고하되 이에 집착하지 않고 참선수행을 열심히 하여 ‘오직 모를 뿐’을 간직한다면, 모든 생각을 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길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말과 단어에 집착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당신을 지옥에 빠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되 부디 말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으로 이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 또 다음 생 쉬지 않고 계속 정진, 또 전진, 수행하고 마침내 우주의 대 진리를 찾아 고통 속에서 헤매는 많은 중생들을 구해내기를 바란다
2001년 3월 1일 서울 삼각산 화계사 조실.(祖室)
숭산 행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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