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1, 2012

만행 스님과 신부님

만행 스님과 신부님

미국에서 불교가 얼마나 기독교 신자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으며 요즘 기독교 신자들이 참선을 얼마나 배우려 하는지 내 경험을 들려드리겠다.
나는 1997년 가을 일주일 동안 노스캐롤리나의 랄레이란 곳에있는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으로부터 불교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웨이크 포리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침례교 대학이다. 아주 보수적인 곳으로 알려져있음며 남주 침례교 전통을 잘 따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권위있는 대학이며 매년 수많은 목사들이 그학교에서 배출된다. 그런 학교가 불교 승려, 그것도 한국 승려를 초청해 불교에 대한 기르침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비행기표는 물론 호텔방과 식사 제공에 높은 강연료까지 주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이 위치해 있는 미국 남부는 지금까지도 북부 사람들이 너무 자유분망하다는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자기들이 기독교적 전통을 아주 잘따르는 지역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토종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까지 이어져 외국인이나 외국 문물에 대해서는 좀 까다로운 성향까지 있다.
그런데 그런 대학이 불교 승려를 초청했다는 것은 대단히 흭기적인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의 몇몇강죄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로 했다. 대학당국은 나에게 참선에 대해 세번에 걸쳐 워크숍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학 학장님은 목사이면서 신학대학원의 교수로 재직중인 빌 레너드씨로 아주 신심이 깊은 침례교 신자였다. 빌 학장님은 미국에서 침례교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 가장 존경받는 학자로서 나처럼 하버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편 그 학교 校牧은 토마스 크리스트만 이라는 분이었다.
아주 나이가 많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만큼이나 유명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과 판단은 미국 침례교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토마스 목사님은 선교를 위해 전세계 안 가본 곳이 없는 분이다. 빌 학장님과 토머스 목사님은 내 불교 강좌에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다. 수업시간 시작 전에 정확하게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으며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실제 참선 실습에 들어가서는 어찌나 열심히 참여하는지 내심 무척 강동을 받았다. 특히 토마스 목사님은 정말 다정다감하고 종교적 신앙심이 두터우며 따뜻한 분이었다.
참선 실습하던 첫날, 목사님은 “태어나서 처음 참선이라는 것을 해보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어린아이처럼 설례셨다. 실습이 끝나고 각자 소감을 말하는데 토마스 목사님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선수행을 하기 전에는 목사로서 불교 수행을 한다는 주위의 이목에 약간 신경쓰였는데 실제 참선을 해보니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나는 깜짝 놀라 무슨 문제인지 여쭈었다.
“아니, 참선하려고 앉아 있기가 이렇게 여려운 줄 몰랐어요. 나는 10분도 앉아 있기가 힘든데 스님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30분, 한 시간씩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계십니까. 정말 놀랍습니다.”
학생들과 우리들은 모두 파안대소를 했다.
일주일 동안의 불교강의와 참선수행 갈의가 끝날 무렵 목사님은 내게 참선수행이야말로 목회생활을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매년 대학 전직원과 교수들이 한꺼번에 특별 수련을 받도록 도와줄 수 없는지 청해왔다.
나는 그 제안에 너무 기뻤다. 하지만 불행이도 청을 받아들일 수 가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동안거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음 가회로 미뤄달라며 그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미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교와 참선수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스님들은 이처럼 자주 법문 및 참선강의 요청을 받는다. 미국에서 주지로 있을 때 내 법문의 거의 60 퍼센트는 교회나 성당에서 이뤄졌다. 어떤때는 아예 주일날 교회 예베당에 가서 짧은 법문을 하고 오기도 했다.
머리를 깎고 잿빛승복을 입은 불교 승려가 교회나 성당에서 법문을 하는 일은 미국에서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주지로 있기도 했었던 프라비던스 젠센터 홍법원 옆 도시에는 아주 큰 교회(The First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가 하나 있다 미 교회는 부라운 대학 근처에 있어서 그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많이오는 교회다. 로드아일랜드에서는 제일 오래되였고 큰 교회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인 톰 목사님은 항상 불교 경전 가르침과 참선수행을 해오셨다는 것이 아니가.
톰 목사님은 신도들 중에서 참선에 관심을 갖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아예 프라비던스 젠센터로 찾아가라고 세세하게 약도까지 그려줘 가면서 설명을 한다.
마침 그렇게 해서 젠센터에 온 사람이 하도 목사님 얘기를 하길래, 내가 먼저 톰 목사께 전화를 해 신도들에게 프라비던스 젠센터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 됐다. 우리는 서로 교회와 젠센터를 오가며 차를 마시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
톰 목사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다. 매순간 예수님의 기르침에 따라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분이며, 신도들을 사라과 자비로 이끌기위해 매진하는 분이다. 그리고 아주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도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익히고 실천하려고 햇다.
너느 날 톰 목사님은 농반진반으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같으면 내가 도대체 기독교 신자인지 불교 신자인지 구분이 안 갈때가 있답니다. 교회에 살긴 하지만 매일 불경을 일고 참선수행을 하고 시간날 때마다 현각스님이나 티벳 승려들을 만나 부처님의 말씀을 얘기하고 심지어 주일날 설교때도 불법을 전하니 이것참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이것이 바로 현재 미국땅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미국 개신교 교단에서 이처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불교에 대해 매우 열린 마음을 갖고 배우려 하고 있고 참선수행도 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프라비던스 젠센터의 주지일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나는 두 개의 유명한 개신교 교회로부터 법문 초청을 받았다.
이 두 강의 모두 일요 예배시간에 이루워졌다. 한 교회는 미국 뉴포트에있는 교회(The Unitarian Church of Newport)였다. 그곳은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시에 위치해 있는데 뉴포트는 미국의 부자가 모여서 사는 최상류층 동네다. 록펠러, 벤더빌트, 제이피 모건 기업의 창업자 일가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따라서 그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도 미국의 최상류층 사람들이다.
또 다른 교회는 메사추세츠주 샤론시에 있는 교회(The Unitarian Church of Sharon Massachusetts)였다. 이 교회는 보스턴과 가까워서 많은 하버드 동문들이 다니고 있었으며 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다니는 교회다.
두 교회 모두 법문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이 반응이 너무 뜨거워 나도 놀랐을 정도였다. 교회 사람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한번 법문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안에 정규적인 참선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지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요즘은 대학교에 별도의 참선 프로그램이 마련되기도 한다. 내가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대학원에 있는 작은 성당인 앤도버 채풀에서는 매일 불교식 참선수행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일본스님이 지도를 하셨는데 매일 아침여섯 시부터 점심시간 이후까지 진행되였다. 그 프로그램에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많은 하버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참석했다.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니까 대학원 측에서는 아예 참선 방석도 사고 불교 경전도 갖다놓고 향까지 피어놓아 제법 근사한 법당까지 꾸며놓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캠퍼스 다른 한켠에서는 하버드 대학원의 메인 강당인 메모리얼 홀에서 불교 강의가 열렸다.
아마 KBS에서 방영한 일요스페셜 〈만행〉을 보신 분들은 뒷부분의 한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나의 도반인 폴란드 스님인 현문스님과 내가 기독교 교회에서 참선을 지도하고 있는 장면 말이다.
그곳은 부라운 대학안에 있는 성당 매닝 채풀이었다. 십자가와 마리아상이 있은 성당에서 승복을 입고 삭발한 내가 참선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리라.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큰 대학에는 교회나 성당이 있고 학교안에서 가장크고 조용한 공간이 그곳이다.
브라운 대학 학생들은 총장님과 목사님께 예베당을 참선룸으로 써도 되는지 여쭈었고 총장님과 목사님은 허락을 내렸다. 아니, 허락을 넘어서 참선수행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항상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참선할 때 쓰는 방석, 향, 염불책, 심지어 한국에서 목탁과 죽비까지 수입해 주셨을 정도다.
나는 또 뉴욕에 있는 컬럼비야 대학옆 연합 신학대학원 강좌에 자주 초청돼 법문을하고 참선수행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미 한국인 비구니이자 한국인인 정현경 박사가 낸 것이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 학생들이 아주 존경하는 교수 중 한 사람아었다.
프라비던스 젠센터에서는 카톨릭 신자와 불교 신자들이 아예 함께 선방에 앉아 참선수행을 한다.
그 프로그램은 대광스님과 켑빈 훈트 신부님이 함께 주도를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행에 너무 참여하고 싶어해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다. 어떤 때는 뉴잉글랜드 지역 신부님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한다.
대광스님은 미국은 물론 한국의 수덕사, 신원사, 화계사에서 수년동안 참선수행을 하신 분이다. 그는 네브라스카의 장로교집안에서 태어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부모님들은 장차 대광스님이 목사가 됐으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전공인 사회학 공부를 계속해 교수가 되었다. 그러다 1979년 숭산스님을 만나 아예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것이다.
케빈 훈트 신부님은 25년동안이나 참선수행을 해오신 분이다.
대광스님보다도 더 오래됐다. 신부님은 수행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시곤 하는데 특히 카톨릭 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대광스님과 케빈훈트 신부님은 법문도 함께하시고 불교의 참선수행과 기독교적 믿음에 관한 질문에 함께 답한다. 이 수행 프로그램은 금새 유명해져서 이제 대광스님과 케벤 훈트 신부님은 케임브리지 젠센터와 시카고 젠센터 등에서도 참선지도를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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