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30, 2011

국민가수 이미자

국민 양반가수 이미자씨

나는 그동안 수많은 연예인들을 초청하여 공, , 행사를 치렸다.

내가 특별히 이미자씨를 나의글을통해 코멘트 하는 것은 이미자씨는 大STAR 답게 너무나도썩지 않은 양반 가수이며 아니

그는 가수 이전에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성공한 인간 STAR 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자씨를 양반 가수라 함은 한번은 교포 행사 때 LA에 왔는데 행사가 끝날 무렵 나보고빈 봉투 5장만 달라하여 가져다 주었더니 그 봉투에 100불짜리 한장씩을 넣어 박재란, 송민도씨등에게 주는 것이고 자기가 받은 케라 중 $1,000를 우리 행사 주최 측에 기부 하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돈에대한 욕심은 있다. 그러나 이미자씨는 돈을 쓸 줄 아는 분이고 행사시 조금도주최측을 어렵게 하지않고 까다롭지 않다

내가 일생을 통해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있는데 내가 한국에 갔을때 내가 좋아하는 곱창구이를사주며 내가 헐리우드에다 대형 나이트크럽을 차리면 재기하시라고 한 달 동안 무료로 출연해주겠단다.

연예인들 사이에 커피 한잔이 어딘데! 말이라도 얼마나 마음씨 착하고 의리 있는인간미에 나는 속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이미자씨를 다시 한번 주시하게 되였고 내가 중국에서사업을 할 때 이미자노래 카세트 테이프를 200개씩이나 가져다주며 연변 동포들에게 선물하시라고 하는데 정말 달리 봤다.

반면 내가 영빈관을 타인에게 넘기자 10년간 자기를 초청해주고 용돈을 주었는데 LA에 와서 전화 한통없어 김ㅇㅇ씨 뼘을 때린나다.많은 연예인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치루다 보면 별의별 웃지 못 할 촌극과 나 혼자만이 참고견뎌야 할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느 가수는 대마초를 너무 피워대 공연무대에서 연주와는 다른 엉뚱한 노래가 튀어나와사회자를 당황케 했고 어느가수는 호텔에 장거리 국제전화, 친지들의 식사 음주까지 ROOM-CHARGE 해놓고 모자라 매일 꽃까지 배달시키는 해프닝이 있는가하면 내가 경영하는 영빈관 내 일 식당에 5-6명의 사람들을 데리고와 밥값은커녕 팁 도 한 푼 놓지않고 가며 명색이 나보고사장님 회장님데 STAR 치마바락 잡고 밥갑 내라 할 수 없더라.

역정의 외길인생 이회덕 회고록 KOMERICAN의 메아리 중에서..

오후 10:59 2009-05-23

"꿈은 무엇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 이룰수 있고""

"꿈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Saturday, May 28, 2011

사목의 향기

사목의 향기

적의 적은 아군이다

김두진 바오로 예수고난회 신부

너 만일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네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내 마음 속에 담겨진 말씀들이다. 얘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 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 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드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했다. 오늘 그분을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며 벙어리를 치유하는 그 분을 만난다. 벙어리가 말을 하면서 그 분을 찬미한다. 그 분을 체험한 사람의 생활은 변한다. 변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 분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목소리의 울림이 가슴에 벅차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성대를 울려 소리내는 소음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느님울 만난 사람들이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통털어 지칭되는 말이다. 믿는 이들은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분의 이름으로 사는 우리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그 분의 증인이어야 한다.

오늘아침 수녀원에서 미사를 봉현하면서 들었던 화답송의 후렴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다. If today you hear his voice, harden not your hearts ! (너 만일 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되거든 너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 )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는 기적사회는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오늘의 벙어리는 내게 큰 예언자로 다기온다. 그의 말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은 그저 말 못하던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시대의 지도자들과 힘 있는 자들에게 반대 받던 자였다. 정의 를 말하며 힘없는 자들 편에 서 있어 선동하는 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선동하는 예수님은 힘있는 그들의 입장에선 분명 적이고 그 적이란 그들의 입잔에서 악마이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악마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 이제 예수님을 체험한 벙어리가 말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 같은 정의, 평화, 사랑, 해방 그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알들을 쏟아내며 그 분의 가르침을 말하기 시작 한다. 너 만일 주님의 목소라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던 시편의 말씀처럼 마음을 열고 대담하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해서 그들은 예수님께 말한다. 당신은 베엘제불의 힘으로 저 사람을 고쳤다고 그렇지 않다면 왜 저사람 하는 짓이 베엘제불같은 당신과 같겠냐고 묻는다.

본 사람은 보여줘야 하고 들은 사람은 들려줘야 하고 체험한 사람은 다른사람을 체험 시켜야한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많아, 놓지고 싶지않아, 내 놓을 용기가 없어, 그저 입 다물고 있으며 그렇게 실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악마라고 뒤집어 씌우는 마음속의 술수를 그분은 날카롭게 끄집어 내신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들에게 와 있는 것이다. “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음을 열어 입을 열게 하였으면 악마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라는 쉬운 설명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닫힌 그들의 마음 이니 닫힌 내 마음이다. 악마에게 미음을 빼앗기면 행동도 악마가 된다. 돼지 눈에 무엇만 보이겠는가? 그러면서도 니는 악마가 아니라고 소리쳐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슬픈 현실인가?

예수님을 만난 벙어리가 말하게 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듯 예수님을 만났다고 믿고 있는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가? 그븐을 뵈옵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 사람들처럼 나도 그 분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악마인가 아니면 그분인가? 적의 적은 아군인데 나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

Monday, May 23, 2011

박정희 향수의 실체

박정희 향수 실체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룰 수없는 꿈을 꾸고 이길 없는 적과 맞서는

영웅적인 정치인이 되라는 박정희 메시지 되새겨 봐야

올해는 5:16 50주년이 되는 해다 5:16 주역은 단연 박정희다. 그는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주역이기도 했다. 주역이였던 만큼 당연히 功過가있다. 만주주의를 제약한 것이야말로 과오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過를 뛰어넘는 공이있다. 대한민국의 민족혼을 일깨운 것보다 더 큰공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역사를 가진 우등민족이었으나 트라우마가있었다.

힘과 지혜가 부족해 일제로부터 식민지배를 받고 해방후에도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것 6 25에 의한 전쟁 참화, 바로 그들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우리는 참담했다. 패잔병처럼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했고 고작 할 수 있던것은엄마친구아들을 보러워하듯 서구의 선진국과 페허 속에서 일어남 일본을 부러워하는 일이었다.

박정희는 이 상황에서 우리도 할 수있다를 부르짖었다. 소박했지만 참으로 무서운 사자후를 토해냄으로써 패배주의 민족의식의 종결자가 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깨어난다고 하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다. 한두 사람의 선각자는 있을 수 있으나, 민족 전체가 깨어날 수있다는 것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경칩을 계기로 일제히 깨어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기적인 까닭이다.

역사는 이런 경우를 종종 보여준다.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비스마르크도 잠자고 있던 게르만 민족을 깨우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 이외엔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포효했다. 결국 이것이 게르만 민족 전체를 움직여 통일국가를 만들고 프랑스까지 패전시키는 매직파워가 되었다.

기독교 문화가 낯선 박정희에게 신을 거론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할 수있다는 그의 목소리는 광야에서 부르짖는 외로운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메직워드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박정희를 정치인 가운데 최고등급인 국가인으로 꼽는 것도 바로 이 매직워드로 민족 전체에 마술을 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마슬에 홀렸다. 미친듯이 일했고 미친듯이 만들었으며 그 결과 번영이 찾아왔다.

박정희에게 정치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소명행위였다. 물론 그는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무역진흥확대희의에 꼬박꼬박 참석할 정도로 경제개발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리더쉽의 발현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를 소명의식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영웅적인 행위로 보았다. 흔히 영웅은 전쟁터에서 만들어진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아킬레우스와 핵토르가 영웅이 되었겠는가. 하지만 정치에도 영웅이 있음을 로마인들은 보여주었다.

로마 최초의 집정관이었던 유니우스 브르투스는 자신의 아들들이 갓 출범한 공화정을 전복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었음을 알고 몸소 재판관이 되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고는 사형집행 책임자가되어 아들들이 목이 도끼에 의해 잘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우리는 박정희에게서 그런 면모를 본다. 그는 정치에 목슴을 걸었다. 대통령이 되어 추진한 수많은 프로잭트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반대와 비아냥에 부딫칠 때마다 굴하지 않았다. 그런점에서 그는 뮤직컬 라만차의 사내를 꼭 빼닮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사람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며, 이길 수없는 적과 맞서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딸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노라.”

우리는 민주정치라고 부를 때 그런 영웅적인 요소를 빼놓기 일쑤다. 4년이나 5년마다 한 번씩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지만 한결같이 평범한 권력의지의 소우자들뿐이다. 여기엔 정치인이라고 하면서 시민들이 원하는 것만 추구할 뿐 거기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려고 하지않는다. 인기 있는 것, 표가 될 만한 것들만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꿈을 꾸고 갈 수 없는 길을 가려고 하는 사라은 없다. 하지만 인기 있는 것, 표가 되는 것들만 쫓아다니는 것은 정치인들의 미덕이 아니라 악덕일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아도 설득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넘게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권력을 갖고 뭘 하겠다는 비전은 없이 일단 권력만 잡고 보겠다는 정치인들이여!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맞서는 영웅적인 정치인이 되라고 하는 박정희의 메세지를 미번 기희에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떤가.

http://www.parkch.com/client/news/nw_viw.asp?idx=5499&cpage=1&b_cate=3&m_cate=11

Sunday, May 22, 2011

장독대 발효식품


소화효소消化酵素 없는 쌀, 발효醱酵식과 함께 먹어야 독소毒素가 빠진다.

人 사람인

380 장독대 숫자다.

사찰음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선재(善財ㆍ55) 스님이 꾸리는 살림이다. 그냥 장독대가 아니다. 거기에는 7~10년씩 묵은 간장이 담겨있다. 스님은 지난해 가을 이 간장을 떠가지고 미국으로갔다. ‘미국의 최고요리학교로 불리는 뉴욕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간장 맛을 선보였다. 7년 묵은 간장이었다. 외국인교수와 학생들은 하나 같이 놀라운 맛 !” 이라고 감탄했다.

13일 서울에서 선재 스님을 만났다. 최근 스님은 『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불광 출판사) 을 냈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이후 11년 만에 낸 책이다. 스님에게 음식과 자연 몸과 수행을 물었다.

­-40세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가 음식 때문에 살았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오빠, 두분이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마흔살때 내게도 간경화가 왔다. 의사는 ‘1년밖에 못 산다.’ 고 말했다. 그냥 죽음을 받아드리려 했다. 그런데 속가俗家의 어머니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_그래서 어찌했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를 서너 번씩 쉬면서 갔다.

일단 절집에서 맡은 소임을 그만 두었다. 그때만 해도 음식을 아무거나 먹었다. 조미료도 넣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빵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일단 그걸 다 끊었다. 그랬더니 몸에서 조금씩 면역력이 생기더라.”

-식사는 어떤 식으로 했나,

시골에서 장 담그고 그걸 먹었다. 이침은 가볍게, 점심은 나물을 기름에 묻혀 먹기도 했다. 저녁은 아침보다 많게, 점심보다 적게 먹었다. 밤에는 안 먹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병원에 갔더니 앓았던 자리에 흔적은 있는데 항체가 생겼다. 이런경우는 1000명 중에 1명 정도도 안된다. 고 하더라

-무엇이 병을 치유했나.

간장ㆍ된장 등의 장류와 김치, 제철음식만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충분히 쉬어 주었다. 그랬더니 우리몸의 치유력이 작동하더라. 그때 알았다. 발효 음식이 중요한 걸 말이다.

-왜 중요한가.

음식은 약藥도되고, 독毒도된다. 음식이 소화되고 난 뒤에 장에 변이 남는다. 그건 독소를 내뿜는다. 그래서 배설이 중요하다, 발효음식은 그걸도와준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서양의 주식은 빵이다 빵은 발효음식이다. 그들은 와인도 곁들여 먹는다. 와인은 발효음식이다. 고기를 와인에 절이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기의 독성을 와인이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의 주식은 뭔가, 쌀이다. 쌀에는 소화 효소가 없다, 그래서 김치와 장류, 장아찌 등을ㆍ 함께 먹는 것다. 그런 발효음식이 소화를 돕고, 배설을 돕는다.거기에는 수천 년의 지혜기 녹아 있다.”

-제철음식은 왜 중요한가.

제철음식은 치료약이자 예방약이다, 계절에 따라서 병이오고, 계절에 따라서 치료제가 온다. 그래서 계절에 따른 음식물을 먹으면 병도 치료된다. 가령 오이는 차가운 기운이 있다, 소금에 절인 오이를 여름에 먹으면 약이 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독이될 수도 있다. 그걸 중화 시키려면 오이를 매운 고추가로에 묻히거나 고추장에 찍어서 먹으면 좋다. 고추에 열이 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몸안에 면역력이 달라진다.

-식견이 대단하다, 사찰음식 때문인가.

:스님들은 산에서 산다. 산나물은 산사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다.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 미역이나 다시마를 자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산에 살다보면 자연스레 산짐승과 친해진다. 산짐승이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준다.”

-어떤 식으로 일러주나.

예를 들어 뱀이 피부에 뭔가 났다. 그런데소리쟁이라는 들나물에 자기몸을 비빈다. 그랬더니 뱀의 피부가 낫더라. 또 덫에 걸려서 다친 토끼가 있다. 그런데 톱풀을 씹어서 자기 몸에 바르더라. 그랬더니 낫는다. 그걸 지켜보면서 아는거다. 소리쟁이ㆍ톱풀을 먹으면 독소가 빠지눈구나, 실제 그걸 먹으면 장 운동을 촌진하고 우리몸의 독소를 품고서 배설하는 역활을 한다.

-산짐승도 자연의 일부다. 결국 자연이 일러주는 건가.

그렇다, 자연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거다. 약은 독이란 말과 통한다. 우리 몸을 치료하는 약도 실은 독이다. 약초가 강하다는 말은 독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데치거나 삶아서 독소를 중화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간장이나 고추장이 그런 역활을 한다.발효음식이 독을 중화 시키기 때문이다.

-요리와 수행, 둘은 통하나.

그렇다 가령 3000원짜리 배추를 샀다. 그 배추가 내 손에 오기까지를 보라. 배추는 했빛과 물과 흙과 바람의 가운을 받고 자랐다. 그런 기운이 배추와 함께 내게 오는 거다. 그게 배추의 수행이다.양념을 통해 부족한 건 채우고 넘치는 것은 뺀다.그런 과정을 통해 배추가 익는다. 그게 배추의 성불成佛이다. 수행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인은 온갖 음식에 노출돼있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부처님께서 소식小食하라고 하셨다. 육식보다 안 좋은게 과식이다. 소화가 잘 안돼 몸에 독소가 쌓인다. 밥 먹을 때는 꼭 발효음식을 함께 먹어라. 모든 음식의 소화와 배설을 돕게된다. 수행도 그렇다, 마음의 소화, 마음의 배설이 잘 되는게 수행이다.” 백성호기자 중앙일보

Friday, May 13, 2011

각 자의 주인은 육신 아닌 마음

봉축사

각자의 주인은 육신 아닌 마음

불기佛記 255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남가주 사대부중 모든 불자님과 다같이 부님 오심을 축하 합니다. 2555여년 전 4 8일 룸비니 동산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천상에서 연산 회상곡이 울려 퍼졌다 합니다.

오늘도 증생들의 마음에 밝은 지혜의 광명이 두루 비치고 법음이 울려 퍼집니다. 부처님 오신지 2555년이란 하나 역천 겁이 지나도 엣이 아니고 만세가 뻗힌다 해도 옛이 아니고 만세기 뻗힌다 해도 지금이라, 부처님이 지금 내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고 오신 날 이라고 합이다. 중생은 생사하고 부처님은 여래여거如來如去라, 중생은 나고 죽고 하니 생사로부터 8 4천 苦를 겪고 부처님은 생사 바다를 여여이 간 돈제일체고라, 모든 일체고를 제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팔만대장경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해인사에 있는 경판이 8 4000개 이니까 팔만 대장경이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읍니다. 팔만 대장경은 우리 중생의 8 4000 번뇌를 모조리 싹 없애는 법, 팔만 사천 중생병을 낳게하는 약방문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인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괴로움은 번뇌煩惱라 하고 괴로움이 커지면 고통이되고 나아가 근본의 고통, 생사고生死苦를 겪습니다. 중생은 팔만사천 번뇌로 부터 생사고生死苦를 겪지만 부처님은 여래여거如來如去하니 일체고一切苦를 자재하는 것입니다.

화신불化身佛은 여래여거如來如去나 법신불法身佛은 상주법계常住法界라,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시작과 긑이 없는 가르침이야 무생사교無生死敎입니다. 여래교如來敎이자 본무 생사교生死敎입니다., 여래여거如來如去니 무래이래無來以來요,무거이거無去以去로다. 또한 무래무거無來無去로다.

부처님은 이 이치를 가르처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 입니다. 이 육신肉身은 중생衆生이요 마음이 부처라 각자의 주인은 육신肉身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불성법신佛性法身입니다. 이 육신肉身이 주인인 사람은 영원토록 84000苦를 벗어날 길이 없고 마음 즉 법신法身이 주인인 사람은 즉시 해탈解脫이라,

육신을 보고 가르치는 종교는 유시유종有始有終 생사교生死敎요 마음법신法身을 가르치는 종교는 여래교如來敎입니다.

부처님 오신날 번뇌煩惱가 지혜智慧로 바뀌고 생사고生死苦를 열반락涅槃樂으로 바꾸어 괴로움과 고통에서 속박 받지 않는 대 自由人이 됩시다.

현일 스님 남가주 사원연합회 고문

나는 어떻게 통일을 흥정했나

나는 어떻게 통일을 흥정했나.

볼프강 쇼이불레

협상의 주역 쇼이블레가 증언한 독일 통합 18개월의 대 드라마 한우창 역 동아일보사 간행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 서문

존경하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 !

수십 년간의 고통스러운 독일분단 이후에, 역사적 운명은 독일국민에게 다시 절호의 기희를 주었고, 헬무트 콜총리가 이끄는 서독정부는 그 역사적 기희를 잘 포착하여 독일통일을 완수하였읍니다 통일조약협상에서 나는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였으며, 자유스러운 독일통일 과정을 이 책에 상세히 기술 하였읍니다.

바로 그러한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디니 무척 기쁨니다. 한국의 분단 역시 제 2차세계대전의 결과로서, 한국은 아무런 잘못 없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으니 분단의 고통은 더욱 심하리라 생각합니다. 독일 통일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민족통일의 의지와 희망을 절대로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이후 강요된 분단을 독일국민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읍니다. 따라서 역대 서독정부와, 아데나워총리로 부터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독일통일의 과업을 잠시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40년 이상 지속되어온 우리들의 헌법 前文에 가장 잘 나타나있읍니다 :

전독일 국민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독일통일과 자유국가 독일을 완수 할 책임이 있다.”

옛 동독의 공산주의 정부는 처음부터 국민의뜻에 따라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고, 전체주의적인 권력층과 소련에 의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민주화 물결은 동독인들에게,스스로 궐기 힐 수 있는 자각과 더불어 공산주의의 압제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평화적인 혁명을 일으키도록 용기를 주었읍니다.

독일통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조속하게 완수될 수 있었읍니다.:

첫째 : 전독일 국민들이 통일을 즉시 완수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둘째 : 서독정부와, 자유로운 민주적 선거로 새로 구성된 동독정부도 통일을 즉시 아룩하려고 하였으며.

셋째 : 세계 강대국과 유럽의 모든 이웃국가들이 독일통일에 동의하여 주었기 때문이었고,

넷째 서독 정부가 산속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임니다.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인간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한, 어떤 민족도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권력 때문에 장기간 분단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항상 주의깊게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책임있는 정치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자만 통일의 목적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리를 무시하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통일이라는 공동목표의 실현은 고통받는 인간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러한 열망의 완수를 위해서는 단지 평화적인 수단만이 이용되어야 하며, 폭력적방법은 단연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 국민들이 통일을 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해 꼭 완수하리라 굳게 믿고 있으며, 그 방법은 한국 국민이 스스로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의 통일이 독일처럼 긍정적으로 잘 진행되기를 기원합니다.

볼프강 쇼이불레

역자서문

1989년 여름 휴가철부터 유럽에서는 이상한 민족이동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헝가리, 첵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동독국민들이 귀국하지않고 항거리에서 불법으로 장기간 체류하며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서독으로 망명을 시도하였고, 또한 프라하와 비르샤바주재 서독 대사관에는 동독인들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체류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서독은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여 동독인들의 이동을 도와주었다. 이어 연일 동독인들이 동구의 국가들을 통하여 서독으로 이동하자 동독의 체재는 서서히 무너질 기미가 보였고, 서독은 이내 독일통일을 준비 하였다.

드디어 1989 119,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자 독일인들은 통일을 피부로 느꼈다. 서독전역에서는 동독인을 환영하는 캠패인과, 동독인들이 가득찬 시장바구니를 들고 서독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연일 전국에 보도되었다. 영국 정부는 통일의 과업을 실질적으로 협상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볼프강 쇼이불레( Wolfgang Scha”uble)가 기술한 《Der Vertrag---Wie ich u”ber die deutsche Einheit verhandelte (Deutsche Verlags-Anstalt, Stutgart, 1991년 발행)을 완역한 것이다. 볼프강 쇼불레이는 당시 서독 내무장관으로서 동독과의 통일협상의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여당인 기민당(CDU)의 차기 총리 후보자로 각광받을 정치가이다.

그는 통일협상 과정에ㅔ서 항상 자신감과 박력으로 노령한 정치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 40년의 벽을 허물고 단기간내에 독일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는 독일 통일이 완수된 뒤 1991 1012, 통일의회의 첫 총리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 고향의 한 마을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도중, 정신질한자의 권총 저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5일 동안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으나 기적적으로 소생하였고, 저격사건으로 인해 세 번째 척추 아래가 모두 마비되어 횔체어에 의지하는 신체 장애자가 되고 말았지만, 저격사건 3주 후부터 병상에서 녹음기로 구술하여 이 책을 시작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물론 독일통일의 원동력은 빌리 브란트9Willy Brandt)에 의해 추진된 동방정책Ostpolitik)에 들 수있다. 브란트 수상은 집권즉시 소련과 접촉하여 1970 8월에 `蘇條約 (모스코바 조약), 12월에는 독`폴란드 조약(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하여, 1972 1221일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할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동서독은 1973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적대관계가 아니라, 서독 동독을 사실상(de facto)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하여 서로 고존하는 관걔를 유지하여 홨다. 이러한 독일의 통일정책 역사를 보면 현재 우리 한국의 상황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있다.

남북한은 1991 9, 유엔에 동시가입하였고, 1992 2월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의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기본 합의서)를 조인하였다. 현재 많은 학습단체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테마로 열띤 토론을 벌인, 현상은, 통일문제가 이제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로 선큼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통일은 제3자가 한국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순서 있는 통일 방안을 연구하여야 한다. 쇼불레이도 파악하였듯이, 통일이 되면 두 강물이 천천히 순서있게 섞이지 않고 한꺼번에 큰 소용돌이치면서 섞이게 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문제점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대비해야만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쇼이불레가 1989년 가을부터 1990 103일 독일 통일 완수까지 직접 동독과의 통일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고충을 상세하게 기록한 이책이, 한국의 통일정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역자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판에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동아일보사 출판국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시켜준 나의 아내와, 귀국후 한번도 주말 나들이를 못 시켜준 나의 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말을 전한다. 1992년 여름 역자 한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