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27, 2011

참선수련 경봉스님 말씀

좌선의坐禪儀

선禪의 원리原理 鏡峰大禪師 말씀

무릇 禪이란 마음 가운데 명상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 가운데 화기火氣를 내려가게 하고 수기水氣를 흐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상을 쉬면 물기운이 흐르고 물기운이 흐르면 망상이 가라앉아 몸과 마음의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여진다. 그러나 만약 망상을 쉬지 못하면 불기운이 항상 위로 솟아서 온 몸의 물기운을 태우고 정신적 광명을 덮는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몸을 운신運身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물ㆍ불의 가운이 아니고는 손가락 하나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니 사람의 육근기관六根機關은 모두 상부에 해당되는 두뇌에 있으므로 ●보는것● 듣는것●생각하는것 등이 육근을 통하게 되니 자연히 두뇌로 집중되어 온 몸의물기운을 졸이고 태우는 것이 마치 등불을 켜면 기름이 닳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무엇을 오래 생각한다든지 또는 눈으로 무엇을 세밀하게 오래 본다든지 소리를 높여 무슨 말을 힘써 한다든지 하면 반드시 얼굴이 볽어지고 입속에 침이타서 입안이 바싹 마르지 않는가. 이것이 곧 불기운이 위로 오르는 현상이니 당연한 일에 육근기관을 쓰는 것도 부득히 해서 조절해 가며 써야 하거늘 하물며 쓸데없는 망상을 끓어 두뇌의 등불을 밤낮으로 켜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좌선은 모든 망상을 제거하고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나타내며 일체의 불기운을 내리고 청정한 물기운울 조화調和시켜 주는 것이다.

좌선坐禪의 방법方法

좌선의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고 편리하여 아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一 좌복을 펴고 반가부좌半跏趺坐로 편안히 앉은 뒤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하여앉은 자세를 바르게 한다.

一 온 몸의 힘을 아랫배 丹田에 모아서 일심주착一念住着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이 머물러 있는 것임 어림대중하되 방심放心이 되면 단전의 그 기운이 풀어지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이 머므르게 하기를 잊으면 안된다.

一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어마시는 숨을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가는게 한다.

一 눈은항상 반쯤 여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데 필요하나 정신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잠이 침범할 염려가 없으면 감고도 한다.,

一 입은 항상 다물고 한다. 공부를 오래하여 수슨화강水昇火降이 잘되면 앍고 윤활한 침이 혀끝과 이빨사이로 계속하여 나오는데 그 침을 입에 가득 모아 삼킨다.

一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하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해야 한다. 만약 혼침昏沈에 잠기거든 다시 새롭게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바른 생각으로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역력히 들면 혼침상란과 안상이 잦아진다.

一 처음으로 좌선을 익히는 이들은 대개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일어나 괴로와 하는데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잠깐 바꾸어 앉고 망상이 일어나면 모두 헛된 줄 생각하며 스스로 잦아지니 그런것에 마음을 움직이면 안된다.

一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가려워지는 수가 있는데 이는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이니 긁고 만지지 말 것이다.

一 좌선울 하다가 절대로 이상하고 신기스런 자취를 구하지 말며, 민일 그러한 경계境界가나타나더라도 요망스러운 일로 생각하여 신경 쓰지 말고 심상하게 보아 넘길 일이다.

이상과같이 오래 오래 정진을 계속하면 필경에는 물아物我의 구분區分을 잊고 시간과 공간과 처소處所를 잊고 오직 원숙무별圓寂無別한 진경眞境에 그쳐서 무상無上의 심락心樂을 누리게 될 것아며 화두으ㅢ 의심덩어리를 타파할 때에는 자기의 본래 청진한 면목面目의 본성本性을 각오覺悟하는 것이다.

단전주丹田住의 필요성必要性

무릇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一境에 住하여 일체사념一切思念을 제거함이 예로부터 각각 그 주장과 방편方便을 따라 혹은 코끝에 혹은 미간眉間에 혹은 이마위에 혹은 기식氣息에 혹은 月輪에 혹은 불상에 혹은 아자阿字에 혹은 묵조默照에 혹은 丹田에 혹은 제심制心에 혹은 수상水想등과 이밖에도 그 住하는 법이 실로 헤아릴 수 멊이 많으나 마음을 머리나 바깥경계에 住하면 사념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안되니 마음을 단전에 住하면 사념이 동하지 않고 기운도 잘 내려서 안정을 쉽게 얻는다.

그래서 원라천부遠羅天釜에 이르기를

『나의 기해단전氣海丹田은 조주무자趙州無子이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유심정토唯心淨土이며 자신미타自身彌陀이며 본분가향本分家鄕이다』 라고 丹田住를 찬양하였고

야선한화夜船閑話에 이르기를【 몸을 바로하여 단정히 앉아 타오르는 心火를 거두어 단전에 住하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여지고 계교사량計較思量이 한점도 없이 사라지니 이것이 진관眞觀이요 청정관淸淨觀이다.】하였으며,

또 좌선용심기坐禪用心記와 번역명의집飜譯明義集에 이르기를

【만일 정신이 산란하거든 丹田에 住하라】하였고, 또 만암법어卍庵法語에 이르기를

【 단정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이 좌선의 요술要術이니 조식調息의 방법은 몸을 좌정坐定한 뒤에 心氣를 깋해단전氣海丹田에 기름이라. 이것을 오래하면 元氣가 자연히 충실하여 아랫배가 표주박이나 공처럼 둥굴어진다.】하였으며, 이 밖에 선문구결禪門口訣과 영평광록永平廣錄 등에도 단전주丹田住를 많이 역설하였으니 이를 미루어 보자면 단전주가 좌선을 하는데 얼마나 요긴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도한 단전주丹田住는 좌선에만 요긴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지극히 요긴한 법이니 마음을 단전에 住하고 옥지玉池에서 나오는 침을 많이 삼키면 水火가 잘 조화가 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국이 윤택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건강에 지나니, 야선한화夜船閑話에 이르기를

【 心地가 아랫배에 가득 차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모든 기관의 기능이 황성해지며 두뇌가 명석하고 정신이 상쾌하며 삿된 기운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는 건강체가 된다.】하였고,

천태선사天台禪師의 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에 이르기를 【 마음을 단전에 住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잘 수호守護하면 백 가지 병이 물러난다】하였으며,

또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이르기를 【 단전은 기운氣運의 바다로서 모든만병을 다 녹여 삼킨다】하였고,

만암법어卍庵法語에 이르기를 【 정기精氣가 항상 단전에 가득차 있으면 무위견고無爲堅固하여 不老長生한다 】하였으며, 이 밖에도 규봉수중의圭峰修證義와 印度苦典가운데에도 같은 말을 역설하였으니 이 단전주는 선정禪定으로든지 위생상으로 봐도 실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단전주라 하니 단지 마음을 단전에 붙여 내관內觀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안을 단전에 붙여 성성적적하게 제거提擧하라는 말이다. 단전이라는 말이 본래 仙家에서 쓰는 말인데 어째서 佛家에서 단전주를 찬양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단전이란 말은 선가仙家의 용어인 것은 사실이나 수습지관좌선법요 修習止觀坐禪法要에

【 배꼽 세치 아래를 우타나優陀那라 하여 여기 말로는 단전이라 하고 의가醫家에서는 관원關元이라 한다】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범어梵語중에서도 단전을 의미하는 명사가 있음을 증명한 것이니, 우타나優陀那는 본시 기식氣息을 의미하는 말이라 단전은 곧 기식의 바다라 하여 이와같이 역출譯出한 것이라 모든 전기傳記를 의지하여 보면 印度에서도 일찍부터

【 생기生氣는 우주의 중심이요 만유萬有의 생명이라】하여 생기生氣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풍습니 유행 하였고, 인류의 지혜의 발달에 따라 이 생기生氣를 직접으로 단련시키는 조식법調息法이 있었으며 불가佛家에서도 일찍부터 이 조식법이 선정상禪定上 부동의 한 법칙이 된 것이다.

Thursday, July 14, 2011

제삼장 학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 끝편

제삼장 學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 끝편

行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行에는 善한 행과 惡한 행이 잇다. 우리는 行하되 바로 行해야 한다. 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악행惡行, 비행非行, 음행淫行, 흉행凶行, 추행醜行, 만행蠻行, 폭행暴行, 난행亂行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正行人이 되어야 한다. 효행孝行, 성행善行, 덕행德行, 력행力行, 독행篤行, 수행修行은 모두 바람직한 行이다.

일찌기 明나라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은 이렇게 말했다.

「아느 것은 行하는 것의 시작이요, 行하는 것은 아는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행지시知行之始 행지지성行知之成 」.그는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사상을 강조하고, 사상마련事上磨練의 원리를 역설했다.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먼저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정직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을 때 정직한 행동을 하게 된다.

知는 行의 사발점이요, 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行은 知의 완성이요, 知의 성취다. 行한다는 것은 知가의 달성된 것이다. 사상마련事上磨練은 왕양명이 특히 강조한 학설이다.

우리는 실지實地의 체험을 통해서 인식을 깊게하고 인격을 연마해야 한다.

노동의 신성함을 알려면 실지로 땀을 흘리면서 몸소 노동을 해보아야 알 수 있다. 말과 이론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노동의 신성함을 느낄 수 없다.

왕양명은 말했다.「사람은 모름지기 사상事上으로 연마磨鍊하고 공부해야 한다.

실천을 통해서 체험해야 한다. 행동을 통해서 배워야한다. 사상마련은 지행일치와 같은 원리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Dewey는 「 행함으로써 배운다 Learning by doing」를 감조했다. 이것은 왕양명의 사상마련과 같은 것이다0

송나라의 주자가 독서와 사색과 궁리를 통한 인격 수양을 강조한 데 내하여, 왕양명은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는 동적 수양법動的 修養法을 역설했다. 우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인격연마를 해야 한다.

알면 행해야 한다. 행 해야만 바로 알 수 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뻬르그송Bergson은 이렇게 말했다..

「사색인 처럼 행동하고, 행동인 처럼 사색하여라.

사색이 없는 행동인은 허망한 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 되기쉽고, 행동이 없는 사색인은 창백한 햄랫과 같은 인간이 되기 쉽다. 사색과 행동이 결합할 때 파우스트와 같은 실천적 행동인, 창조적 지성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이상적 지성인이다.

行의 목적이 무엇이냐. 成이다. 成은 이루어 놓는 것이요, 성취하는 것이요, 완성하는 것이다.

위대한 민족, 위대한 국가는 어떤 민족, 어떤국가냐. 위대한 업적,위대한 사업을 성취한 민족이다. 위인偉人이란 무엇이냐. 위대한 일을 이루어 놓은 사람이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소개 하려고 한다.

그것은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매클레란드Maclelland 1961년에 쓴 《성취사회》라는 책이다. 이책은 매클레란드를 일약 세계의 석학으로 만든 거대한 명저다. 이 책의 근본 사상은 다음과 같다.

이세상에는 위대한 문명을 남긴 민족도 있도, 위대한 문명을 남기지 못한 민족도 있다. 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있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모두 비슷한 인간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가. 매클레랜드는 성취동기成就動機의 원리를 가지고 설명했다.

성취동기란 무엇이냐. 성취욕이다. 무엇을 이루어 놓으려는 욕망이요, 가치있는 일을 성취하려는 의지다. 인간에게는 성취동기가 있다. 인간의 행동은 성취동기, 성취욕의

표현이다.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은 훌륭한 사업을 이루고, 성취동기가 약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성취동기가 왕성한 국민은 위대한 문명을 이루고, 성취 동기가 낮은 민족은 위대한 문명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위대한업적을 성취하려면 성취욕과 성취 동기가 강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성취욕, 성취동기가 강하냐 약하냐에 의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하느냐 못 하느냐가 결정된다.

이것이 매클레란드의 《성취 사회 achieving society》의 기본 원리다.

그는 이 이론을 싱증적實證的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전세계 40개 국가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수집하여 연구하고 분석했다.

어려서 성장할 때 성취 동기가 높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면 그는 훗날 어른이 되어 훌륭한 일을 많이 성취한다. 그러니 어렸을 때 강한 성취 동기를 심어 주지 않으면 후일에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격 형성의 결정적 시기인 초등학교 시절에 성취동기가 높은 이야기나 소설이나 옛말이나 모험담을 많이 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우리는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강한 성취 동기를 심어 주어야한다. 그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고, 높은 이상을 품게 하고 확고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대지大志, 대원大願, 대망大望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마음의 밭에 강한 뿌리를 내리고, 큰 줄기가 돋아서 후일에 대업大業을 성취한다.

용감한 모험 소설「씩씩한 개척자의 이야기, 발명과 발견을 위하여 헌신한 과학자의 생애,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목슴을 바친 훌륭한 종교인의 스토리, 분투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의 입지전立志傳,

이런 이야기는 청소년의 성취동기를 강화하는 데 가장 효과가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전진前進의 자세, 불사조와 같은 向上의 의지, 위대한 목표에 도전하는 칠전팔기의 정신, 이러한 의지를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심어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성취인은 다음 다섯 가지의 특색을 지닌다.

첫째는 높은 목표 의식이요, 둘째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강한 집념이요, 셋째는 일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요. 넷째는 일의 결과에 대한 강한 관심이요, 끝으로 끊임없는 분투노력이다. 이런 사람들이 인생의 대업을 성취한다.

學의 목적은 知와 角이요, 知와 覺의 목적은 行이요, 行의 목적은 成이다. 學은 知에서 시작하여 成으로 끝난다.

러시아의 문학자 투르게네프TURGENEV는 이렇게 말했다. 「學은 광명이요, 無學은 암흑이다.

학문은 인간을 밝게 하고, 힘을 준다. 무학은 인간을 어둡게 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저선조朝鮮祖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인 율곡栗谷선생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인생기세 비학문 무이위인야 人生欺世 非學問 無以爲人也.」 인생벽두에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고전인 《예기禮記》는 이렇게 말했다. 「교학위선敎學爲先.」學記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제일 먼저 하여라. 교육과 학문이 인생의 최우선 과재다. 이것이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시작이요, 치국治國의 근본이다.

宋나라의 거유 사마온공 巨儒 司馬溫公의 근학가勸學歌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다. 학생을 가르치되 엄격하지 않는 것은 스승의 태만이다. 아버지는 가르치고 스승은 엄격하고, 두가지를 다 잘하였는데 아들이 학문을 하여 大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식의 죄다.

참으로 지당한 명언이다. 아바지의 책임이 무엇이냐,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스승의 책임이 무엇이냐, 학생을 엄격히 훈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옳게 하였건만 자식이 공부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자식의 잘못이다.

인간이 제일먼저 힘써야 할 것은 교학이다. 나는 이 말 다음에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강조하고 싶다. 교학위본敎學僞本이다. 무엇이 인간의 근본이냐, 교학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교학위선이요 교학위본이다.

인간의 일생은 교육의 일생이다. 우리는 한평생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격변격동激變激動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배우고 공부하지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사회의 열등생이 되고 역사의 패배자로 전락한다.

나는 평생 교육을 특히 강조하고싶다.

1965년 파리의 유네스코 UNESCO 본부에서 세계 成人교육 문제를 놓고 회의가 벌어졌다. 그때 프랑스의 교육자인 폴 라윽랑Lengrand이 평생교육의 원리를 역설했다.

그후 이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場을 가정 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눈다. 학교 교육은 끝났다고 인간의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책이나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배우고, 경험에서 배우고, 인간 관계에서 배우고, 사회에서 배우고, 직장에서 배우고, 역사에서 배우고, 자연에서 배운다.

한문에 만물교아萬物敎我란 말이 있다. 만물이 다 나를 가르친다. 사람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만사만물萬事萬物이 모두다 나의 스승이다.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선생이다.

평생 교육의 정신, 평생 교육의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지런한 사람을 보앗을 때에는 나도 저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교훈을 배운다. 게으른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나는 저렇게 게으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배운다.

사회는 나의 학교요, 경험은 나의 교과서요, 역사는 나의 교실이요,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평생교욱의 실천자를 두 사람만 소개한다. 한사람은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LINCOLN이다. 켄터키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린컨은 극심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1학년만 다니고 말았다.

그는 일생동안 독학자습獨學者習했다.

링컨은 다음과 같은 좌우명座右銘을 만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교육의 기회로 삼아라.

농부를 만나면 농부한테 배우고, 공무원을 만나면 공무원 한테 배웠다. 「만인이 나의 스승이다.」라고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누구한테서나 배웠다.

그는 다음과 같은 생활의 계명誡命을 만들었다.「나는 공부하고 준비하리라, 그러면 기회는 온다.

누구에게나 일생에 몇 번 좋은 기회가 온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붙잡는 사람이 있고, 기회를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느냐 부지런히 공부하여 실력을 준비하고 축적한 사람은 가회를 붙잡는다.

그러나 실력이 축적이 안 된 사람은 좋은 기회가 와도 붙잡지 못한다. 링컨은 자기 앞에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올 것을 믿고, 그날을 위하여 꾸준히 공부하고 힘을 저축했다.

그는 마침내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 되어 1863년 노예 해방이라는 인류의 대사업을 성취하고 남북으로 분열된 아메리카를 하나의 통일된 미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43명의 대통령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이는 독자학습으로 대성한 린컨이다.

영국의 유명한 문명 비평가인 엘스Wells는 링컨을, 인류의 문명을 건설한 5대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독학자습의 평생 교육이 링컨을 세계적 위인으로 만들었다. 또 한사람의 평생 교육의 실천자는 孔子다.

공자에게는 스승이 없었다. 그는 혼자 공부했다. 공자의 사상과 말씀을 기록한 《논어》에는 배울 學자가 모두 63회나 나온다. 공자가 얼마나 학문을 강조했는가를 알 수 있다. 學을 강조한 문장을 몇 구절 인용한다.

「나는 온종일 밥도 먹지 않고 잠도자지 않고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별로 얻는 것이 없었다.배우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 위령공 衛靈公

책속에는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상가와 철학자와 종교인과 문학자와 정치가의 진리와 지혜의 말씀이 금은 보석처럼 수록되어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배우면 나의 정신적 우주가 확대되고, 나의 식견識見이 넓어지고,

나의 인격이 심화되고,나의 능력이 향상된다. 세상에 배우는 것처럼 생산적이고 보람있는 일이 없다.

「세 사람이 같이 걸어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삼인행 필유아사표三人行 必有我師焉.」술이편述而篇 세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자기가 배울만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겸허한 마음인가.

얼마나 성실한 자세인가. 공자는 이런정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고, 천추만대에 빛나는 만인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랫사람한테 물어 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부치하문不恥下問.」공야장公冶長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뭉어 보는 것을 下問이라고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문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연하의 사람한테도 서슴치않고 물었다.

배우고자하는 의지가 강한사람만이 하문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는 데 염증을 느끼지 말고, 가르치는데 권태를 느끼지 말라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이불권誨而不倦.」술이편

회誨는 가르칠 회자다. 교敎와 같은 뜻이다. 공지는 배우고 또 배웠다.배우는 일에 경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았다.

공지는 배우는 것이 항상 즐겁고 가르치는 일이 언제나 기뻤다. 이것이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다 맹자는 이 여덟 글자를 여섯 글자로 단축하여,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아라고 하였다.

학교의 교무실에 가면 이 여섯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있다.이것은 교육자를 위한 영원한 좌우명이요, 선샌들을 위한 위대한 행동 계명行動 誡命이다.

일일학 일일신 日日學 日日新 날마다 배우고 날마다 새롭다.

나는 나의 서재에 이 여섯 글자를 써서 붙여 놓았다. 우리는 날마다 배우고 날마다 새로와 져야한다. 이것은 부단히 전진하는 자세요, 쉬임없이 향상하는 모습이다.

사람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뒷걸음 질하는 후퇴인後退人과 제자리걸음만 하는 답보인踏步人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인前進人이다

우리는 쉬지않고 앞으로 나아기는 전진인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生卽學, 산다는 것은 매우는 것이다. 일일학하는 사람이 일일신할 수 있다. 평생 교육의 정신을 가지고 부단히 전진하는 인간이 되어라. --

Tuesday, July 12, 2011

제삼장 시작 학 산다는 것은 배우는것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孔子 八十翁 怡堂 安秉煜 수필집

제 삼장 시작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

인간의 일생은 3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공부하고 준비하는 시대다. 청소년 시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사회에 나아가서 활동하는 시대다. 중장년 시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사회적 활동에서 조용히 울러나 安息하는 것이다. 인생의 노년 시대가 여기에 속한다.

생즉학生卽學,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Living is Learning. 우리는 살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살아야한다. 우리는 살기위하여 배우고 배우기위해 산다.

日日學, 우리는 날마다 배우는 學人이 되어야 한다. 인생은 학교요, 우리는 학생이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배운다는 행동처럼 좋은 것이 없다. 배운다는 행동은 인간의 가장 생산적인 행동이요, 건설적인 행동이요, 창조적인 행동이다.

현대는 고도의 학습 사회다. 우리는 저마다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한문자 5만여 자 중에서 제일 좋은 글자는 배울 학 學자다.배울 학자는 어떤 구조를 갖는가.

어린애 子가 책상에서 一 두손으로 臼 무엇을 爻 배우고 있는 모양을 그린 상형 문자다 學.

지상에는 수억 권의 책이 있지만, 첫 글자가 배울학 자에서 시작하는 책은 오직《논어》밖에없다.

《논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를 따라 복습을 하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논어》는 공부하는 기쁨과 학습하는 행복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 논어》는 과거 1천여 년 동안 우리 한국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우리 국민처럼 배우기를 강조하고 교육을 역설하는 국민은 없다. 우리가 과거 30여 년 사이에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중요한 요인은 우리국민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우리는 유교권儒敎圈에 속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교육 국가로서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강점의 하나다.

나는 학생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학생이란 무슨 뜻이냐.배우는 인생, 배우는 생활, 배우는 생애, 배우는 생명이란 뜻이다.

배움의 정신은 세 가지다. 첫째는 향상向上의 정신이다.향상의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열심히 배운다. 보보등고步步登高, 우리는 쉬지 않고 한발 한발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한다.

둘째로 배움의 정신은 활동의 정신이다.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열심히 배운다. 활동의 의욕이 없는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세째는 겸손의 정신이다. 교만한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일수록 열심히 배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학생의 정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배워야한다.

몇년 전에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아시아 기독교 교육자 대회가 열였다. 그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케리 여사였다. 케리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현대인들이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정신적 범죄가 있다. 첫째는 불학不學.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불교不敎,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불위不爲,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이다.」모르면 열심히 배워야한다. 모르는데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것은 정신적 태만이다.

독일의 시인 괴테 Goethe는 이렇게 말했다.「가장 유능한 사람은 부단히 배우는 사람이다.

배워야 능력이 생긴다. 배우지 않으면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능력은 학습의 산물이다. 시인 괴테는 또 이렇게 말했다. 「쓸모가 없는 존재는 죽은 존재다.

우리는 多才多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無才無能한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우리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쓸모가 없는 사람은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전락한다.

무학인無學人은 무능인無能人이요, 무능인無能人은 무용인無用人이다.유학인有學人은 유능인有能人이요, 유능인有能人은 유용인有用人이다.

무용인은 사회적으로 존재 가치가 적고 유용인은 사회적으로 존재가치가 크다.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교육적 태만이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가르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가르쳐야 하고, 형은 동생을 가르쳐야하고, 과장은 자기의 부하를 가르쳐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이냐. 나의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돈이나 물질은 나누어 주면 없어지지만 지식과 결험과 기술은 나누어 주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의 기본적 차이가 잇다.

배우는 자가 되는 동시에 가르치는 자가 되어라. 남을 가르친다는 것처럼 기쁘고 보람있는 일이 없다.

가르칠 교敎자는 아버지가 손에 채찍을 들고 자식을 가르치는 모양을 그린 상형 문자다.

중국에서 교육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맹자孟子다. 그전에는 교학敎學이란 말을 썻다. 맹자가 교육이란 말을 쓴 이후 이 말이 한자 문화권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맹자는 군자삼락론君子三樂論을 말했다. 군지에게는 인생의 세가지 즐거움이 있다.

첫째로 부모처자가 모두 건강하고, 형제가 아무 사고없이 지내는 것이 인생의 一樂이다

부모구존 형제무고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둘째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에 대하여 떳떳하고, 천지신명 앞에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二樂이다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천 仰不愧 於天, 俯不怍 於人, 二樂也.

이말에서 부앙천지俯仰天地란 말이 나왔다.

셋째로 천하의 재주있는 인재를 모아서 교육하는 것이 인생의 三樂이다 득천하영재이교육지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맹자》의 진심盡心 上편에 나오는 명언이다. 영英은 꽃부리 영자요 아름다울 영자다. 꽃부리같이 빛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처럼 세상에 보람있는 일이 없다.

사람이 일생동안 정열을 바쳐 해볼 만한 가장 중요한 사업은 교육 사업이다. 육영育英 사업처럼 훌륭한 일이 없다. 교육자들의 모임을 三樂會라고 하는 것은 맹자의 이 명언에서 유래한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태만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의무의 태만이요, 공덕심公德心의 부족이요, 시민 정신의 결여요, 책임감의 결핍이다.

복도에 떨어진 종이 조각은 보는 즉시 주어야 한다.대낮에 공연히 켜 있는 전깃불은 반드시 꺼야 한다. 공원의 수도꼭지에서 쓸데없이 물이 나오면 당장 꼭지를 잠가야 한다. 이런 일은 지극히 쉽고 사소한 일이요. 교양있는 시민의 당연한 의무에 속한다. 이런 작은 일을 저마다 실천하면 밝고 깨끗하고 질서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동물의 세계는 학교가 없다. 책도 없고 선생도 없다. 인간의 세계에만 학교가 있다.

동물은 자연이 부여한 본능本能의 지혜로 충분히 살아간다. 본능本能은 동물이 태어날 째부터 갖고 있는 선천적인 근본根本적 생활 능력能力이다.

거미는 가르치지 않아도 정교精巧하고 섬세한 거미줄을 칠줄 안다. 소는 가르치지 않아도 먹어야 할 풀과 먹어서는 안 될 풀을 정확하게 분간한다. 소는 절대로 독초毒草를 먹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이 갖고있는 본능의 놀라운 지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장 무능무력無能無力한 동물로 태어났다. 말도 할 줄 모르고, 밥도 먹을 줄 모른다. 내버려두면 죽고 만다.어린애는 부모의 장기간의 정성스러운 양육과 보호가 절대로 필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Kant는 《교육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피조물被造物이다.」인간 이외의 딴 피조물은 교육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인간은 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인간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인간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칸트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만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서 교육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인간은 교육의 産物이다.

우리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우리 몸에서 제거하면 우리는 미개인과 야만인으로 전락한다. 교육이 인간을 만든다. 교육에 의해서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는 만물중에 가장 무력한 동물이지만 지는知能이라고 하는 놀라운 학습 능력을 갖는다.인간이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고, 문명의 건설자가 되고, 역사의 창조자가 되고,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은 무한한 학습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 능력처럼 놀라운 것이 없다. 다시 칸트는 아렇게 말했다.

「 교육은 인간에게 부과된 최대최난最大最難의 과제다. 」인간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느냐. 어떻게 교육해야만 인간의 재능과 특색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고, 인가다운 인간을 만들 수 있느냐, 익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농사중에서 제일 어려운 농사는 인생농사人生農事다. 교육은 인생농사다. 교육은 하나의 기술技術이다.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기술이 있다.

첫째는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다. 우리는 이것을 생산生産기술, 또는 물질기술이라고 한다.우리는 양복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든다. 자연과 물질이라는 재료에 인간의 두뇌와 재주와 노력을 가공하여 쓸 만한 물건을 제작한다.

둘째는 사회社會기술이다. 어떤 제도, 어떤 조직, 어떤체재를 만들어야만 살기 좋은 사회,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정치라고 한다. 정치는 바람직한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것은 생산 기술보다 훨씬어렵다.정치는 경국제민經國濟民, 즉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기술이다.

셋째는 사람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을 만드는 기술이다.

장 자크 루소Rousseau가 그의 유명한 교육 소설《에밀》에서 갈파한 바와 같이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Spencer도 같은 말을 했다. 「교육의 목적은 인격 형성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 인격다운 인격을 만들 수 있느냐. 물음은 간단하지만 대답은 간단하지않다.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어려운 기술이다.

칸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교육은 한 세대가 그 경험과 지식을 그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그 세대는 여기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또 그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교육은 문화의 계승이다. 다시 칸트는 말했다.

「인간에게는 선善의 싹이있다. 좋은 교육이야말로 세계의 모든 선善이 싹트는 원천이다.

「신神은 인간에게 이렇게 외칠른지 모른다. 나는 선善으로 향하는 모든 소질을 네게 부여했다.이소질을 발전시키는 것이 네 의무다. 그러므로 네 幸不幸은 너 자신에게 달려있다.

교육은 소질의 계발啓發이다. 신은 우리에게 善의 싹을 심어 주었다. 이 싹을 지혜롭게 개화결실開花結實케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요 책임이다.

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식을 낳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식을 기르는 것이 어렵다 생자비난 양자난生子非難 養子難. 자식을 기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 양자비난 교자난養子非難 敎子難.

자시을 낳아서 기르는 일보다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만 이상적 인격 형성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은 칸트가 갈파한 바와같이 인간에게 부과된 가장 중대하고 가장 어려운 과제다.

학學의 목적이 무엇이냐. 學의 목적은 知요, 覺이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배우고, 깨닫기 위해서 배운다. 학의 목적은 바로알고 깨닫는 것이다. 正知正覺이 학의 목적이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인 孫文은 그의 명저 《三民主義삼민주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知覺을 중심으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 먼저알고 먼저 깨닫는 자다.둘째는 후지후각자後知後覺者, 나중에 알고 나중에 깨닫는 자다. 세째는 부지부각자不知不覺者,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소수의 특출한 先知先覺者가 있다. 그들은 역사가 배출한 탁월한 인물로서 사회에 선구적 영도자先驅的 領導者가 된다.선지선각자의 말씀을 듣고 나중에알고 나중에 깨닫는 사람이 後知後覺者이다. 우리는 적어도 후지후각자는 되어야 한다.

우리는 知의 인간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사물을 알되 정확하게 알고, 분명하게 알고, 깊이있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明知人이 되고, 良知人이 되고, 上知人이 되고, 大知人이 되고,예지인叡智人이 되어야한다.

인간의 知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남을 속이는 교활한지 교지狡知가되고, 사람을 해치는 간악한지 간지奸知가 되고, 사악한지 사지邪知로 전락한다.

우리는 覺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覺은 깨달을 각자다. 覺은 사물의 이치를 깊이 환하게 깨닫는 것이요, 각성하는것이다. 覺 자는 배울학學 자와 볼견見 자가 합해진 글자다. 많이 배우고 많이 보아야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 自覺이요, 먼저 깨닫는 것이 先覺이요, 늦게 깨닫는 것이 면각晩覺이요, 근본을 깨닫는 것이 本覺이요,바로 깨닫는 것이 正覺이요, 원만하게 깨닫는 것이 원각圓覺이요, 크게 깨닫는 것이 大覺이다.

正知正覺에 도달할 때 마음에 미혹迷惑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밝아지고, 전신이 총명해지고, 光明正大의 경지에 도달한다.

知와 覺의 목적이 무엇이냐, 行이다, 알면 行해야 하고, 깨달으면 실천해야 한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깨달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정말 깨닫는 것이 아니다.

行이 없는 자, 行이 없는 覺은 올바른 知가 아니요, 올바른 覺이 아니다. 우리는 지행일치知行一致, 覺行일치, 學行일치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제 삼장 끝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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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7, 2011

신파람나는 쥬신족

기똥차고 위대한 쥬신족

전자공학 박사가 본 氣 이야기 서울대학교수 이충웅지음

위대한 주신족(朝鮮族)

동이족東夷族인 우리는 쥬신족(조선朝鮮)이다. 쥬신족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는 바이칼 호부터 님쪽의 양자강까지의 남북 5만 리, 서쪽 몽골사막부터 동쪽의 황헤까지 2만 리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였던 위대한 민족이다. 동이족의 대표적인 위대한 인불로는 동양철학인 주역周易을 창시한 복희伏羲, 농사법과 한의학, 경제, 음악 등을 창시한 신농神農, 유교의 개조開祖 공자孔子,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요堯, 순舜 임금, 유명한 병서 『 육도삼략 』을 저술한 강태공姜太公 등을 들 수 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식민지 사관에젖어 우리 조선족은 한때 부여,고구려를 거쳐 만주를 지배했다가 지금은 한반도에서 두 쪽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약소민족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쥬신족의 氣가 쥬신족 사상 절정기에 있었던 부여 이전의 역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고구려가 패망한 후에 우리의 상고 때의 찬란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사료를 인멸은폐 하였으며, 일본도 1910년에 한반도의 성공적인 식민지통치를 위하여 20여만 권의 쥬신족의 고대古代 사서史書를 소각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때 소각된 사서들은 우리가 읽어보면 프라이드와 힘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족사朝鮮族史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사대주의 사상에 절어있던 김부식, 일연이 쓴 『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에 근거한 식민지 사관이다.

즉 식민지사관에 의한 조선족사는 :조선족은 양같이 양순하며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법한 일이 없고 패기가 없으며, 강대국에게 눌려만 살아 왔으며, 남을 헐뜯고 단결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약소민족이다.”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신라를 중심으로 한 쥬신족의 일종의 지방사地方史이다.

신라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중화족인 당나라를 집안싸움에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후, 중국식을 따르고 모방하며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로 행세하였다. 漢族의 적을 자신들의 적으로 삼아 한족과 맞서 싸운 만주지방의 우리 동이족 金,淸을 모두 오랑캐라고 칭하며 우리 쥬신족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았다.

우리 쥬신족은 파미르 고원에서 발상하여 바이칼 호를 거쳐 백두산 쪽으로 이동 정착하였다.

쥬신족의 氣의 발원지인 백두산에 도착한 우리조상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집단 정착하여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史上 쥬신족의 氣의 절정기에 있었던 기원전 6,000년경에는 홓산문명鴻山文明을 일으키고 이어 남쪽으로 내려와 황화 문명을 일으켰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서기전 4,000년경에 배달나라를 세우고 농경민족인 중화족을 제압하여 대제국을 세웠다.

氣의 상승기에 있던 우리 조상들인 동이족은,이미 치우천황蚩尤天皇이 기마민족인 쥬신족을 총동원하여 대장정을 감행함으로써 활동 무대를 만주에서 황해 연안을 따라 상동반도, 하북성 일대로 진출하였다. 쥬신족은 이어 남쪽으로 양자강 이남까지, 서북쪽으로 몽골, 동북 동남쪽으로 시베리아, 全만주, 한반도 및 일본열도까지 지배하였다.

쥬신족은 새를 숭상했으며, 특히 봉황鳳凰을 상서祥瑞로운 새로 받들었다. 한편 중화족은 용을 길하게 여겨 받들었다. 따라서 동양의 고대역사는 봉황의 쥬신족과 용의 중화족과의 다툼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쥬신족은 본래 기마민족으로 민족이동이 빠르고 용이하여 발해연안으로 황해안을 성정하여, 중화족을 내륙 쪽으로 몰아붙여 봉쇄했으며, 중화족은 華山을 중심으로 내륙 산악지역에 갇혀 바다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동이족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벌판이 주 활동무대였던 관계로 철광과 양질의 유연탄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철의 제련법을 개발하여 철제무기로 무장한 우리 동이족(쥬신족)은 기병을 주력으로 하여, 석제와 목제 무기로 무장한 중화족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것은 鐵의 古字가 쇠금변에 동이족의 夷자를 쓴 銕이라는 글자였던 것을 보더라도 용이하게 알 수 있다. 즉 銕이라는 글자는 동이족인 쥬신족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이후 고구려가 당에 패망한 후에 중화족이 銕자를 鐵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화족은 쥬신족을 보고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夷자는 옥편에 오랑캐 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다시 말해서 夷자는 크다는 뜻의 큰대 大 자를 활 궁 弓 자에 덮어씌워 만든 글자로서 큰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중화족이 보기에는 쥬신족이 상고 때 동쪽에 살면서 말 잘 타고 큰 활로 맹수사냥을 잘 하는 민족이었으므로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이런 연유에서 오늘날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금메달을 종목별로 다 따는 것은 지극히 당연지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을 주업으로 하던 중화족은 의심이 많고 왕래가 없어 발전속도가 늦고, 순장殉葬 풍습 때문에 백성을 병사로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이 적은 중화족은 문자를 발달시키고 인구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연나라 때 이르러 그 숫자가 동이족의 10배 정도로 팽창하여 동이족은 서서히 中原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서기전 3898년에 개국한 환웅시대 桓雄時代는 그 나라 세력이 강대하여 영토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바이칼호 부터 남쪽으로는 양자강까지 동서 2만 리, 이 광대한 땅이 모두 우리의 것이었으며 환웅의 나라는 1565년간 지속되었다.

서기전 2333년에 환웅왕조 桓雄王朝를 마감하고 도읍을 백두산 아사달로 옮겼다. 이 때 나라 이름을 단군쥬신 檀君朝鮮이라 하고 이 해를 단기원년 檀紀元年으로 하였다.

단군쥬신은 만주벌판 및 시베리아를 강한 힘으로 다스렸으며 그 통치기간이 2006이나 되었다. 그 후 북 만주에 예로부터 자리잡고 살던 가우리 高句麗사람, 몽골족을 비롯한 주변 종족을 제압하고 북부여 나라를 세웠다. 부여 이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을 거쳐 쥬신족의 氣가 서서히 하강하다가 195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氣는 상승기인 6,000년의 대주기와 360년의 소주기가 다 같이 가시 오르기 사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40여 년 만에 세계의 170여 개국의 하위권에서 일약 UN의 이사국,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였다.

한반도의 비전 한반도에 氣가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국동란 이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의 발전을 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발전상을 단지 時運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반도에 氣가 모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한반도로 밀려오는 氣의 제현상을 전기현상론적 아날로지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고, 21세기야말로 세계적으로 우리 민족의 사대가 되리라는 강한 신념을 얻었다.

그러면 백두산의 氣의 변화주기, 즉 한반도에 발생한 氣의 변화주기를 생각해보자 최근 한반도의 氣가 최저상태였던 때가 6. 25동란이 발발했던 1950년 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과거로 올라가면 1592년 임진왜란이 나던 때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몰골의 1차 침략이 있었던 1231년이었고, 더 과거로 가면 고구려와 백제

여기서 주목할 점은 氣의 최고상태와 최저상태와의 시간간격小週期 이 약 360년인데, 그 중 180년은 氣가 상승하고 나머지 180년은 氣가 하강한다.

최근에 한국의 氣는 1950년부터 올라기기 시작하여 이미 47년이 지났다. 따라서 앞으로 약 130년은 氣가 상승하게 되어 있으므로 21세기는 한국의 氣가 주도하는 세기가 되는 것이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