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8, 2011

진인사 대천명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

생즉도生卽道,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살기 위하여 인류의 위대한 네 스승의 말씀에 겸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즉도生卽道,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어떤 길이 있는가,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나는 사행도四行道, 네가지의 길을 말하려고 한다.

첫째로 인생은 독행도獨行道다. 독생獨生 독사獨死,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 혼자 죽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같이 죽을 수는 없다. 독왕獨往 독래獨來, 나는 이 세상에 올 때 혼자 왔고 갈 때 혼자 가야 한다.

독립독행獨立獨行, 내 발로 서서 내 힘으로 가야 한다. 자주독립은 인생의 기본원리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의 힘으로 서고 나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천조자조자天助自助者다. 스스로 돕는 정신이 가장 중요 하다.

모든 나무를 보라. 자기의 뿌리로 혼자 산다. 모든 새를 보라. 자기의 날개로 혼자 난다. 모든 동물을 보라. 자기의 힘으로 혼자 살아간다.우리는 자주인自主人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의 주인이다. 우리는 5대 주인, 다섯기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첫째로 나는 인생의 주인이요, 운명의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힘으로 나의 인생을 건설하고 나의 함으로 내 운명을 개척 해야 한다. 내가 내 어머니의 인생을 살아 줄 수 없고, 내 어머니가 나의 인생을 살아 줄 수 없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 이다.

둘째로 나는 가정의 주인이다. 나는 나의 힘으로 내 처자를 먹여 살리고, 내 힘으로 내 가정을 지키고, 내 힘으로 경영하고 관리해야 한다. 내의 가장은 나의 정신의 안식처요, 행복의 보금자리다.

셋째로 나는 내 직장의 주인이다. 직장은 나이 일터요, 니의 활동 무대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직장을 지키고, 직장을 일으키고, 나의 직장을 즐겁고 보람있는 생신과 활동의 일터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로 나는 내 마을의 주인이다. 나는 내가 사는 마을을 질서있는 마을, 범죄가 없는 마을, 부유한 마을, 행복한 마을, 협동하는 마을로 만들어야한다. 호국護國과 흥국興國과 애국愛國과 보국報國, 이것이 내 나라에 대한 나의 의무요 책임이다. 나는 당당하고 늠름한 독립인, 독립성獨立性과 독자성獨自性과 독창성獨創性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남한테 의존하지 않는 것부터 배웁시다.』 인도의 위대한 애국자 간디(Gandhi)의 말이다. 『나의 운명이 남에 의해서 결정 된다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이스라엘의 용감한 수상 골다 메이어여사의 명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홀로 서는 것을 배워라. 코뿔소처럼 홀로 자기의 길을 가라. 우리는 자주자립自主自立과 자력자활自力自活을 우리의 생활 신조로 삼고 힘차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인생은 동행도同行道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여럿이 같이 모여 공동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돕는 동시에 서로도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상부상조相扶相助하고,, 상신상애相信相愛하는 것이다. 서로 돕고 서로 믿고 서로 부축하고 서로 아끼고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공생공영共生共榮해야 한다. 공생공영은 번영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공투공쟁共鬪共爭은 파멸의 길이요, 쇠퇴의 길이요, 불행의 길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옛사람은 말했다. 한 손으로는 아무리 휘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이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심협력合心協力이다. 마음을 합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은 협동協同의 산물 이다. 승리는 협동의 결과다. 우리는 자조인自助人이 되는 동시에 고립인公立人이 되어야 한다. 나만 혼자 서서는 안 된다. 나도 서고 너도 서야 한다. 나만 잘 되어서는 안 된다.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어야 한다.

1775 3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영국과 싸워 독립 운동을 할 때 힘이 부족하였으므로 모두 이마에 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라는 구호를 쓴 흰 띠를 두루고 악전고투끝에 마침내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 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독립 운동을 할 때 항상 동지들에게 합성산패合成散敗를 역설했다. 힘을 합하면 승리하고 서로 흩어지면 패망한다. 우리는 협동의 철학을 배워야하고, 대동단결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일생동안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가 있어야 한다.같은 목표를 향하여 같이 걸어가는 동행인同行人이 있어야 한다. 서로 믿고 서로 믿고 서로 도우면서 공동 사업을 같이 하는 동업인同業人이 있어야 한다.

서로 의기투합하고 일심동체가 되는 돈독敦篤한 동기인同氣人이 있어야 한다. 동지와 동행인과 동업인과 동기인이 없을 때, 인생은 고독하고 쓸쓸하고 무력해진다.우리는 공동체의 한구성원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요 사상가인 크로포트 킨(Kropotkin) 1902년에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이라는 명저를 썼다. 그는 다윈의 생존경쟁生存競爭과 적자생존론適者生存論에 반대하고, 상호부조가 동물 진화와 인류 진화의 주요 요인아라고 갈파했다.적자란 무엇이냐, 상호부조의 습관을 갖는 동물이다.

「경쟁 하지 말라. 경쟁은 언제나 종족에 유해有害하다. 단결하라. 상호부조를 실행하라」라고 외쳤다. 상호부조가 인간 진보와 시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상호증오, 상호 불신은 인간 쇠망의 길이다.

세때로, 인생은 고행도苦行道요, 난행도難行道다. 인생은 다고다난多苦多難, 많은 고와 많은 난이 있다. 우리는 힘겨운 고난의 인생을 산다. 인생은 결코 쉽게 살 수 있는 이행도易行道가 아니다. 인생은 쉽게 돈을 벌고, 쉽게 성공하고, 쉽게 승리 하고, 쉽게 유명해지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탄탄대로의 즐거운 여행이 아니다. 인생은 춘풍태탕春風駘蕩, 봄바람에 콧노래를 부르며 희희날락, 항상 즐겁고 밤낯 흥겨게 살 수 있는 핑크빛갈의 길이 아니다.

일찍이 진나라의 저명한 자연 시인自然 詩人 도연명陶淵明은 인생실난人生實難,「인생은 참으로 살기 어렵다」라고 한탄했다. 이것이 인생에 대한 진솔하고 숨김없는 실감實感이다. 우리는 인생을 쉽게 살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망상과 환상을 버려야 한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낙천白樂天은 〈대행로大行路〉라는 명시에서 「행로난行路難」이란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인생 행로는 참으로 어렵다. 춘원春園도 〈행로난〉이라는 시조를 읊었다.

왜 인생 행로가 어려우냐,인생에는 뜻하지 않은 난제難題가 엄습해 온다. 우리 앞에는 난데없는 고난의 폭풍이 불어닥친다. 꼭 합격하리라고 믿었던 입시의 실패, 뜻하지 않은 배우자의 돌연한 죽음, 태산같이 믿었던 외아들의 급작스로운 사망, 사업의 실패, 막역莫逆한 친구의 배신, 불의의 큰 교통 사고, 청천벽력같은 중병의 습격, 부모의 급사急死로 무의무탁無依無托고아로 전락하는 운명의 비극, 사랑하는 가족의 치매 등, 생각지도 않았던 고난과 시련 때문에 나의 평화스러운 인생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위기에 직면한다.

악성樂聖 베토벤(Beethoven)은 그의 불후의 명작 〈운명〉의 서곡에서 이 무서운 고난과 시련의 습격을 「미미미도」라는 네 개의 음으로 표현했다. 운명의 무서운 노크 소리를 어쩌면 저렇게도 박진감이 넘치게 표현했을까. 베토벤의 비범한 천재성에 놀란다. 우리는 고행도와 난행도의 인생을 산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고, 이에 대하여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길를 가져야 한다. 고난은 인간을 강화시키고, 시련은 사람을 심화深化시킨ㄷ다. 고난과 시련속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향상한다.

끝으로 인생은 정행도正行道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살아야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정도正道와 사도邪道가 있다. 옳은 길과 틀린 길이 있다. 우리는 인생의 정도를 가야 한다. 사도를 가면 조만간 쇠망한다. 이것은 인생의 경험이 가르치는 틀림없는 진리요, 역사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명백한 섭리다. 속임수는 일시의 효과는 있다. 부정不正은 잠시 동안은 승리할 수 있다. 거짓말은 당장은 효력이 있다.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못한다. 역사와 시간이라는 준엄한 심판대 앞에서 거짓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직과 진실의 신봉자信奉者였던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잠간동안 속일 수는 있다. 소수의 사람을 항상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지당한 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아라고 옛사람은 말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규범적 의미다. 사필귀정에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된다. 부정한 일은 반드시 정의 자리로 돌아가야하고, 또 돌아간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아렇게 말했다. 『만일 부정이 언제나 정의를 이긴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기를 원치 않느다.』 정의가 반드시 부정을 이긴다는 여지부동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믿고, 역사를 믿고, 천지신명을 믿고 살아 간다. 우리의 설 자리가 어디냐, 正이다. 우리의 가야 할 길이 어디냐, 義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갈파했다. 『정의는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다.

孟子는 이렇게 외쳤다. 『의인로야義人路也』 맹자, 告子 上 의는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옳은 길이다. 『의자인지대본야義者人之大本也』 회남자淮南子,인간훈人間訓 정의는 인간만사의 근본이다. 大本은 으뜸가는 근본이라는 뜻이다. 정과 의의 기초 위에 선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정과 의의 갈을 걸어가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다. 일찍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재이 이구제원道在爾, 而求諸遠.』 맹자,이루` 상離婁 上 인간의 도는 가까운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도를 고원高遠한데서 찾으려고 한다. 이爾는 가까울 이자다. 인간의 진리는 결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데 있다. 우리는 인생의 도와 진리를 먼먼 데서 구하지 말고 매일 매일의 비근한 일상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날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사람을 대할 때 성실한 태도로 대하고, 자기의 의무를 완수하고 책임을 수행하고, 남에게 페를 끼치지 않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성껏 열심히 해야 한다.『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고 옛사람은 말했다. 평상시의 마음에서 우리는 도와 진리를 찾아야 한다.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사는 것이 곧 도요, 진리다. 사람 노릇을 바로하고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인생의 도요 진리다. 도란 무엇이냐, 인간의 도리道理를 다 하는 것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우리는 인사를 다한 다음에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Tuesday, April 26, 2011

저 구름 흘러가는곳

2道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진 인 사 대 천 명 盡 人 事 待 天 命

팔십옹 이당 안병욱 八十翁 怡堂 安秉煜

도道

생즉도生卽道, 생즉행生卽行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야한다. 오행오도吾行吾道요, 여행여도汝行汝道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인생은 going my way.

도道자는 사람의 머리 모양 수首을 상형한 것이다( ).

길을 간다(쉬엄쉬엄 갈 책바침)는 뜻이요,

행行자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네거리( )를 그린 것이다.만물유조萬物有道,

이세상의 모든존제는 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 길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길이요, 또 하나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길이다.

전자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가 발로 걸어다니는 물리적物理的인 길이다.

서울로 가는 길, 부산으로 가는 길,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정도행正道行,

우리는 길을 가되 바른 길을 가야한다. 사람은 인도로 가야하고,

차는 차도로 가야하고, 기차는 철도로 가야한다. 사람이 차도로 가고,

자동차와 기차가 인도로 가면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여러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비참한 사태가 발생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동차 사고가 제알 많이 나는 부끄러운 나라다. 일년에 1만여명 이 죽고 수십만명의 부상자가 생긴다. 해방 직후에는 자동차가 생활의 사치품이었다. 오늘날에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자동차가 천만대를 돌파한 한국. 자동차는 현대인의 신발과 같다. 자동차는 문명의 고마운 이기利器인 동시에 문명의 무서운 흉기凶器다.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도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신 더 많다.

1톤짜라의 무거운 쇳덩어리가 시간당 70킬로미터 내지 10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거리를 우리는 걷고 있다. 참으로 위험천만 한 일이다.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의식주衣食住는 생활의 3대 요소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생활의 제 4의 요소가 생겼다. 바로 교통이다. 도道와 행이다. 우리는 매일 걸어야 하고, 자동차를 타야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보행步行과 차행車行과 비행飛行은 우리 생활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

교통 도덕을 바로 지키고 교통 문화룰 옳게 확립하는 일은 우리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교통 질서를 안 지키면 비명횡사非命橫死한다. 발로 걸어 다니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눈길, 손길, 발길, 말길言路, 마음 길 심노心勞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더 중요한 길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길이다. 이 길이 가장 중요하다.

이 길은 실천하기가 어려운 길이다. 평화의 길, 행복의 길, 자유의 길, 승리의 길, 정의定義의 길, 구원救援의 길, 해탈解脫의 길, 통일統一의 길, 영생永生의 길, 영광의 길, 사람답게 사는 길 등이다. 몰락의 길, 죽음의 길, 타락의 길, 파멸의 길, 이것은 불행한 길이다.

학교의 선생님에게는 사도師道가 있고, 어머니 에게는 부도婦道가 있다. 신사에게는 신사도紳士道가 있고, 무사에게는 무사도武士道가 있고, 선비에게는 선비도 사도士道가 있고, 관공리에게는 이도吏道가 있다. 한 나리의 제왕에게는 제왕도帝王道가 있고, 군자에게는 군자君子道가 있다. 장사에는 상도商道가 있고, 농사에는 농도農道가 있다. 예술에는 예도藝道가 있고, 무술에는 무도武道가 있고 술에는 주도酒道가 있다.

도道란 무엇이냐.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우리가 마땅히 마음으로 道를 배우고 學道, 道를 닦고 修道, 道를 구하고 求道, 道를 세상에 전하고 傳道, 道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득도得道. 道에 통달하는 것이 도통道通이여, 道에서 생기는 큰 힘이 도력道力이여, 道를 닦고 갈구하는 마음이 道心이요,道를 수련하는 사람이 도사道士요, 道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도인道人이요, 道를 담는 그릇이 도기道器다.

석가釋迦가 왜 왕궁을 탈출하여 설산雪山의 보리수 밑에서 6년동안 고행苦行과 난행難行을 하였는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 였다. 달마達磨대사는 왜 숭산嵩山의 소림사小林寺에서 면벽구년面壁九年, 벽을 향하여 9년 동안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참선參禪에 몰입하였던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 였다. 그리스도가 왜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 기도를 하면서 온갖 시련을 이기고 고난과 싸웠던가. 道를 깨치기 위해서 였다.

공자가 왜 발분망식發憤忘食하면서 학문과 수양에 일심전심一心專念하였던가. 소크라데스가 왜 40세가 될 때까지 철학적 사색에 깊이 골몰하였던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천추만대千秋萬代에 빛나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4대 성인聖人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냐, 道다. 인생을 바로사는 대도大道와 정도正道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소크라데스

기원전 399년 봄 아테테의 시민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神들을 믿지 않고 청년을 부패 타락 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크라데스를 사형에 처했다. 70세의 노老철학자 소크라데스는 사형 선고를 받고 아테네의 법정을 떠나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들은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여러분들은 나를 살해한 것을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이재 떠날 때는 왔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나는 죽으러가고, 여러분들은 살러간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神만이 안다.나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다. 한달후에 소크라데스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독배를 마시고 감옥에서 70년의 생애의 막을 내렸다. 그는 죽으면서 사랑하는 제자 클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보람있게 사는 것이다. 누가 소크라데스를 죽였는가. 5백 명의 어리석은 아테네의 시민들이다. 소크라데스를 죽였다는 것은 진리眞理와 정의正義를 죽인 것이다. 진리와 정의를 죽인 국민은 조만간 멸망하고 만다. 소크라데스를 죽이고 얼마 후에 그리스는 이웃 나라인 미케도니아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나는 1962년 여름과 1981년 겨울에 소크라데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은 아테네의 유명한 감옥소의 유적을 찾아갔다. 지금부터 1300여 년 전에 철인哲人 소크라데스가 바로 이 자라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는가. 나는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그 유적지 주변을 한참동안 배희徘徊하였다. 소크라데스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이냐. 인생을 바로 살라는 진리의 메시지다

孔子

공자는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세상을 떠나기 12년전에 70여 년의 긴 생애를 회고하고, 그의 정신발전사精神發展史를 여섯 단계로 나누어서 간결명쾌하게 요약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자서전 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성인聖人의 학문을 공부 하기로 뜻을 세웠다 吾十有五而志干學』그러므로 15세를 지학志學이라고 한다.

『나는 30세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하게 되었다. 三十而立』그러므로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사람은 40세가되면 여러가지로 인생의 유혹이 많은 때지만,『나는 40이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의 경지에 도달했다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그러므로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나는 50세가 되었을 때 천명을 깨달았다.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그러므로 50세를 지명知命아라고 한다. 천명이란 두가지로 해석된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적 한계를 깨달았다는 소극적 의미와, 하늘이 나에게 맡긴 커다란 사명使命을 자각했다는 적극적 의미다. 공자는 50세를 계기로 수양의 단계에서 벗어나 실사회實社會에 나아가 구국제민救國濟民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知天命을 하늘이 부과한 사명을 자각했다는 뜻으로 해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천명의 자각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60세가 되어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게 되었다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순이란 말은 60이되어 인생의 견문과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寬容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순의 반대는 이역耳逆이다. 이역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요, 이순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70세가 되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 하여도 결코 도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 이것은 인간 수양의 최고의 극치다. 그러므로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공자의 70년의 생애는 인간 완성을 향한 부단한 향상向上과 전진前進의 일생이었다.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논어, 이인편里人篇 아침에 진리의 말씀을 들어 道를 터득한다면 저녘에 죽어도 아무한이 없겠다. 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道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랴, 우리는 공자의 이 말에서 그의 구도적求道的 정신이 얼마나 강열했던가를 알 수 있다.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이인편 나의 길은 하나의 길, 하나의 원리로 일관되어 있다. 일생동안 시종일관 변치않고 한 가지 길을 추구해 왔다. 공자가 평생 동안 추구한 한 가지 길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仁이다.仁을 배우고 仁을 실천하고 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논어》에는 仁이라는 글자가 백 번 니온다. 학學, 예禮,도道, 덕德, 신信,의義등 여러 가지의 중요한 말이 나오지만 그중에서 仁이라는 단어의 빈도수頻度數가 제일 많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문의 일관一 貫이란 말은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란 말애서 생겼다. 공자는 참으로 놀라운 구도자였다.

석가釋迦

세계의 4대 성인 중에서 가장 유복하고 가장 장수를 누린 것은 석가다. 그는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가비라성의 왕자의 몸으로 태어난 석가는 온갖 자유와 부귀와 영광과 권력과 향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뇌의 바다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중생을 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제도할 수 있을 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대원大願을 품고, 왕궁을 탈출하여 구도의 길에 나섰다.

그가 6년간의 고심참담한 구도 끝에 얻은 결론은 이러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피해야 할 두가지의 잘못된 극단이 있다. 하나는 향락에 몰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고행苦行에 전념하는 것이다. 외도外道를 가지말고 중도中道를 가라. 중도中道가 정도正道 이니라.》 그는 고행苦行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 정좌靜坐하여 깊은 사색과 명상으로 대각득도大覺得道했다. 크게 깨달아 위대한 경지에 들어갔다.

이 경지를 불타佛陀라고 하고, 부처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붓다(Buddha). 붓다는 대각자大覺者, 정각자正覺者라는 뜻이다. 크게 깨닫고 바로 깨달은 자다. 불교는 신信의 종교라기보다는 각覺의 종교다. 바로 깨달으면 해탈解脫 할 수 있다. 해탈이 무엇이냐. 고苦와 번뇌煩惱에서 풀리고 해解 벗어나서 탈脫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즉고生卽苦, 인생은 고해苦海요, 산다는 것은 고뇌다. 왜 苦가 생기는냐, 苦는 무명無明과 탐욕貪慾과 집착執着에서 온다.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에서 苦가 생긴다. 탐은 탐욕貪慾이요, 진은 진에嗔恚요, 분노憤怒요, 성내는 것이다. 치痴는 무명無明이요, 미련하고 우둔하여 미친듯한 짓을 하는 것이다.

탐욕貪慾과 분노憤怒와 무명無明이 인내忍耐의 苦를 낳는다. 탐심貪心을 버려라, 嗔心을 버려라, 치심痴心을 버려라 그러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해탈을 얻어 自由自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平和와 自由와 解脫의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의 니르바나(nirvana). 석가가 강조한 中道란 무엇이냐, 중간의 길이라는 뜻이 아니다. 中道는 外道가 아니고 正道다, 外道는 바른길에서 벗어난 길이요, 外道는 잘못된 길이요, 사도邪道다.

중도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길이며, 극단에서 벗어나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中은 두가지 뜻을 갖는다. 中은 가운데 中자인 동시에 맞힐 中자다. 목적물에 맞히는 것이 적중的中이요 명중命中이다. 활을 백 번 쏘아 백 번 다 맞히는 것이백발백중百發百中이다. 우리 몸의 반신半身이나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중풍中風이라고 한다.

풍에 맞아 風에 걸렸다는 것이다. 독이 있는 음식물을 먹는 것을 중독中毒이라고 한다. 음식의 독이 있는 부분에 맞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 그 경우 꼭 맞는 행동을 시중時中이라고 한다. 中은 형용사로 쓸일 때는 가운데라는 뜻이요, 동사로 쓰일 때는 맞다, 맞힌다는 뜻이다. 中은 사물의 적정適正상태다. 꼭 알맞는 상태를 말한다. 영어의 propriety .

불교의 중도란 말은 가운데 길이라는 뜻이 아니고 꼭 맞는 길이란 뜻이요, 정도正道란 뜻이다. 中은 中正을 의미한다. 中道는 正道요, 中正의 길이다. 人生의 中道를 가라, 中道는 正道다. 석가釋迦는 인간의 팔정도八正道,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을 강조했다.

바로 보고 정견正見, 바로 생각하고 정상正想, 바로 말하고 정어正語, 바로 행하고 정행正行, 바로 생활 하고 정명正命, 바로 노력 하고 정정진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 정념正念. 바로 마음을 잡아라 정정正定, 팔정도를 행하면 고뇌에서 벗어나 행복과 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스도

『나는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Via, veritas, vita,

요한복음 14 6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힘찬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길이라고 하였고, 진리라고 하였고. 생명이라고 하였다. 그는 위대한 길의 전파자요, 깊은 진리의 구현자具現者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인간의 생명이 거듭나고 다시 태어나는 신생新生의 길을 제시했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메세지를 전했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사랑의 복음을 외쳤다.

그는 정의의 길을 가르쳤고, 평화의 길을 역설했고, 자유의 길을 선포했고, 행복의 복음을 전했고, 사랑과 의義의 길을 제시 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는니라.』라고 외쳤다.천지만물을 창조한 하나님 아버지에 도달하려면 나를 거쳐야 한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로 가는 진리의 문이요, 생명의 문이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니 내게로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아니할터요.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진리에 도달하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영생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인류의 4대 성인 중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가장 뜨겁고, 가장 강하다.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정열이 약동하고, 신념이 충만하고, 생기가 넘친다.

기독교는 종교 중에서 가장 뜨거운 종교다.불교는 조용히 설득하고, 기독교는 힘차게 외친다. 불교는 깊이 깨닫는 종교요, 기독교는 굳게 믿는 종교다. 불교는 정적靜的이고, 기독교는 동적動的이다.그리스도는 탄생에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신비와 초이성적超理性的인 기적에 싸여있다. 세계의 사성四聖중에서 그리스도의 활동 기간이 가장 짧았다. 그리스도의 공적公的활동은 30세에서 33세까지 겨우 3년 밖에 안 된다.

그는 요절夭折했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라간 열두 제자, 모두 열세사람에서 시작된 진리운동, 종교운동 신앙운동이 온 인류에 널리 퍼지어 세계적인 고등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진리의 전파처럼 놀랍고 강한 것은 없다. 이것은 기독교의 뜨거운 정열과 힘찬 다이너미즘에서 온다. 하편으로 계속...

Thursday, April 21, 2011

나를 위한 인생 제 1장 명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것

나를 위한 인생 제1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나의 인생시人生詩

나는인생人生을 사랑 합니다.

아침마다 찬미讚美하는 밝은

태양太陽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정情다운

식구食口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고 좋아하는 소중所重한

친구가 있기 때문 입니다.

내가 심혈心血을 기울여 일할

천직天職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핏줄기로 얽힌 조국祖國과

동포가 있기 때문 입니다.

내가 정성精誠을 다해 추구할

진리眞理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허鏡虛한 마음으로 우러러 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一九九九年

팔십옹 이당 안병욱 八十翁 怡堂 安 秉煜

1

명命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생즉명生卽明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지고 오직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산다. 유일명唯一名 유일생唯一生이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오직 하나뿐인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 번뿐인 이생을 살 때에 어떤 인생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이것은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인생은 일회적一回的으로 끝나는 진지한 경기요.

연습이 없는 업숙한 시합이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줄 수없고,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아줄 수없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너는 너의 인생을을 산다.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나의 판단, 나의 결심으로 나의 인생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

우리는 우리는 유일성의 생명을 가지고 일회성 생애를 살 뿐이다.

세상에 생명의 분배分配처럼 공평한 것이없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요 뛰어난 철학자였던 피다고라러스Pythagoras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것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인생을 바로사는 지혜와 자세를 가르쳐 주는 것이 철학이다.

서양에서 필로소피아 Philosophia, 철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최초의 사상가가 피다고라스다.

우리는 확고하고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야한다.

철학이 없는 인생은 허약하고 깊이가 없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생이 다 흘러가 버린 다음에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운다.』 과연 명언이다.

그때 이렇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먾은가.

거의 모든 인간이 후회막급後悔莫及의 인생을 산다.나는 인생학人生學을 제창한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가. 나의 설 자리가 어디고,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나의 목표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가.무엇을 위하여 나의 생명과 정성과 열정을 바칠 것이냐.

삶의 의미를 무엇에서 찾을 것인가, 어떤 철학,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하여 그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올바른 대답을 찾아야한다. 인생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인생학이다.

일찍이 공孔子의 수제자인 유약有若은 이렇게 말했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근본이 서면 길과 방법은 저절로 생긴다.

인생의 근본을 파악하고 근본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학人生學은 무본학務本學이다

.인생의 근본을 배우고 근본을 힘쓰는 학문이다. 무務는 힘쓸 무자다.

인생의 근본을 망각하고 우왕좌왕하면서 방황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나는 금년에 80세가 되었다. 나는 중학교 때 문학 소년 시절부터 인생이란 말을 참 좋아했다.

책에서 인생이란 말을 보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었다.

인생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열이 나로 하여금 철학을 전공하게 만들었다.

80고개의 언덕에 서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나의 생명이다. 왜냐,

이 새상에 오직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내 생명과 바꿀 수는 없다.

인간은 지각적 존재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는 존재다.

인간 자각의 첫째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자타自他의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와 남의 생명이 한없이 소중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요 미국의 유명한 인생시인이었던 롱펠로우(Longfellow)

그의 명시名詩인 <생명의 찬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Life is real, Life is earnest.』인생은 진실하고 엄숙하다. 인생은 되는대로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인생은 심심풀이의 도박이 아니다.죄란 무엇이냐,인생을 되는대로 마구 사는 것이다.

악惡이 란 무엇이냐, 나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생生의 목표, 생의 자세,생의 태도를 바로 확립해야 한다.

《논어는 모두 10 20편 약 500개의 문장으로 구성된다. 《논어》는 〈학이편〉에서 시작하여 〈요왈堯曰편〉으로 끝난다.

《논어》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왈 부지명 무이위군자야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군자는 유교의 이상적理想的 인간상人間像이다. 군자는 참된 지혜와 뛰어난 덕을 겸비한 지성인이요 교양인이다.

공자는 지명知命을 강조했다. 네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라.

불교에서는 이십난二十難을 말한다. 이 세상에는 스무 가지의 어려운 일이있다. 그중 하나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재미있게 비유한 불교의 설화說話를 소개한다.

이것이 유명한 맹구부목盲龜浮木에 나오는 이야기다,

눈이 하나가 먼 거북 한 마리가 갚은 바닷속에서 살고있다. 이 앵구는 백년 만에 한 번씩 바다의 수면에 떠홀랐다가

가라앉고 다시 백년이 지나야만 또 바다의 수면위에 떠 어른다.

조그만 구멍이 하나 뚫린 작은 나뭇조각 하나가 망망대해의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다닌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드냐 백년 만에 한 번씩 바다위에 떠오르는

애꾸눈의 맹구가 해상에 떠홀라 바다에 떠도는 그 나무의 조그만 구멍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였다.

참으로 재미있는 비유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억만 번 떠오르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한 불가능이요, 불가능한 가능이다.

우리는 하루살이로 태어날 수도 있었고, 개미로 태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다 버리고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우리가 인간으로 탄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이요, 천지의 큰 조화요, 존재의 위대한 신비다.

우리는 은총적恩寵的 생명관生命觀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총의 힘으로 인간이 되었다. 나는 천지신명의 신비한 조화에 의하여 사람으로 탄생했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고 신선한 충격적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되는 신비스럽고 놀라운 광경을 찍은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부지부식간不知不識間에 감격과 놀라움의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하나의 큰 충격 이었다. 어떻게 저런 과학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수억마리의 정자가 여성의 몸으로 들어가 난자를 만나려고 꼬리를 흔들면서 헤엄쳐간다.

3억 마리의 정자가 헤업쳐 가는 소리가 「우」 하고 들린다.

그많은 정자들이 거의 다 사멸하여 낙오자가 된다.

제일 나중에 몇마리의 용감한 정자가 살아 남아서 동그란 세포 속에 들어있는 난자의 주위를 빙빙 돈다.

그중에서 운이 좋은 정자 한 마리가 용감하게 난자의 집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는 엄숙한 순간이다.생명의 탄생!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찬조의 신비다.

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광경을 회고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것은 수억마리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다. 3억 대 1의 싸움, 그중의 하나만이 살아 남고,

나머지 수억의 정자는 모두 죽어 버린다. 자연의 엄청난 생명의 낭바다.

세상에 생명의 탄생처럼 신비하고 황홀한 광경이 또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그렇게해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생명은 어떤 생명이냐, 생명이란 말은 살아있는 목숨이라는 뜻이다.

나는 과거에 여러 해 동안 살아왔고, 현재 살고있고또 앞으로 살아야 할 목숨이다.

생명은 인생을 열심히 살라는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이다. 우리의 생명은 어떤 특색을 지니는가. 첫째로 일명一命이다.

나는 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천지 자연 속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다.

나는 천하의 우일자唯一者요, 우주의 단독자單獨者요, 고유명사적 존재다.

세상에 나의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 영어에서「나」를 언제나 대문자로 쓰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Wednesday, April 20, 2011

무병장수도 의 4대 원칙

무병장수도의 4 재 원칙

무병장수도무슨 일이나 자나치면 반드시 실수한다. 한자의 과자가 지나칠 과자인 동시에 과실 과자라 우리는 병없이 오래 살아야 한다. 반신불수의 병신이 되어 백년을 산들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랴. 병없이 오래 장수하려면, 첫째로 오과五過를 피해야 한다. 무슨 일이나 지나치면 좋지않다. 자동차가 과속하면 사고를 일으키고, 난로가 과열하면 화재가 발생하고, 금전을 과용하면 빚에 허덕이게 된다.과過는 지나칠 과자인 동시에 과실過失과자다 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의 다섯가지의 과를 피해야 한다.

첫째, 과음過飮하지 말아라, 술은 적절하게 마시면 약주藥酒가 되지만 과음하면 해주害酒가 되고 독주가 된다. 술앞에 장사는 없다. 적당한 음주는 첫째로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둘째로 마음의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마음속이 자유롭고 유쾌하고 활달해진다. 옛날 우임금은 술을 마신 후에 이런 예ㅒ언을 남겼다.

「 후세 사람들은 술로 말미암아 몸과 집안을 망치게 될 것이다.」 이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과음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카고, 사람에게 광기狂氣를 불러일으켜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중세 유명한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이렇게 말했다.

「술은 인간을 배혹시키는 악마요, 맛이 있는 독약이요, 기분 좋은 죄악이다.」술에관한 명언이다. 불교의 (장아함경長阿含經)에는 술에 관한 석가의 명언이 나온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다음 다섯가지를 잃는다. 첫째는 재물를 잃고 , 둘째는 질병을 유발하고, 셌째는 남과 싸우고, 넸째는 분노로 폭행을 하고, 끝으로 지혜가 날로 손실된다.

서양에는 이런 유명한 속담이 있다.

「주신酒神 바쿠스( Bacchus)는 군신軍神 마로스(Mars)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인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폭음하지말아라, 절주節酒하여라, 이것이 술에 관한 최고의 계명誡命이다.

둘째, 과식過食하지말아라. 우리는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한다. 식사처럼 인간의 몸에 중요한 것이 없다..무엇을 먹느냐 또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의 건강을 크게 좌우한다.식食은 건강의 근본이다.

우리는 옳게 식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식법定食法은 대단히 중요한 생활의 지혜다.

다음 다섯가지의 식사는 잘못된 삭사법이다.

첫째는 폭식暴食이다.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난폭하게 식사하지말라.

둘째는 과식過食과 포식飽食이다, 많이 먹어서 병이 나지, 적게 먹어서 병이나는 일은 없다. 절식節食이 가장 몸에 좋다. 장수인長壽人은 모두 절식한다.

셋째는 편식偏食이다. 여러가지의 음식물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편협된 식사는 질병을 일으킨다.

넷째는 속식速食이다. 식사 시간처럼 인간 생활에서 즐거운 시간은 없다. 너무빠른 식사는 몸에 해롭다.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먹는 것이 좋다.

끝으로 미식美食이다. 너무 좋은 음식, 넘무 영양가가 많은 음식만 골라먹는 것도 몸에 좋지 않다. 미식가는 통풍痛風GOUT에 걸리기 쉽다.

불가佛家에서는 식시오관食時五觀을 강조한다. 식사할 때에 다음의 다섯가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1. 이 식사를 장만하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는가. 이 식사가 어디서 왔는갈를 생각하여라.

2. 내가 이 식사를 할 만큼 착한 일을 하였는가를 생각하여라.

3. 많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4. 이 식사가 내 몸의 양약良藥이라고 생각하고 먹어라.

5. 도를 닦기 위하여 삭사를 하여라.

이것은 구도자求道者가 식사를 하는 자세이다. 우리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식사를 해야한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과 편암한 마음으로 식사를 해야한다. 그래야 소화가 잘되고 몸에 이롭다. 낙식인樂食人이 되어라.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여라.

옛날 우리의 선인들은 일미칠근一米七斤을 강조하였다. 쌀알 하나를 만들려면 농부가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된다. 쌀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땅에서 혼자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추수를 하고, 운반을 하고,

그렇게 노동한 결과, 밥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게 된다.(입립개신고 粒粒皆辛苦),쌀알 한알 한알에 농부의 정성과 피땀이 배어있다. 식사를 하면서 공연히 불평불만을 하지말라.

만든 사람의 정성과 수고를 생각하여 즐겅운 마음과 고마워 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이것이 인간의 올바른 도리다.

셋째, 과색過色하지 말아라. 색은 인간의 쾌락 중에서 가장 강한 쾌락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색에 빠지기 쉽다. 색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호색인好色人은 반드시 건강을 해친다.

색 때문에 파멸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색은 인간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넷째, 과로過勞하지 말아라. 과로로 병이나서 사망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다보면 몸에 무리가 가기 쉽다.

무슨 일이나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라. 이것은 인생의 금과옥조(金科玉條). 무리한다는 것은 事理나 順理에 맞지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지나치는 것은 좋지않다.

다섯째, 과욕過慾을 부리지 말아라. 과욕은 욕심이 지나치는 것이다. 과욕은 패망을 낳는다.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욕망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그러나 나의 욕망이 나의 능력과 분수에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허욕虛慾을 버려라. 탐욕貪慾을 버려라. 과욕過慾을 버려라.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리다.

내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라. 이것은 지분知分이요, 수분守分이요, 안분安分이다 옛날 중국인들은 수분지족守分知足을 강조했다.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네 생홯에 만족할 줄 알아라. 그러므로 오유지족五唯知足을 역설했다. 나는 오직 족한 줄을 안다.

또한 오유지족을 표현하는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 입구 口 자를 가운데 놓고 五와 矢와 隹를 가하면 이런 글자가 된다. 이 글자를 나무에 새겨 책상에 놓고 매일 바라보면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법이다. 우리는 지족인知足人이 되어야 한다.

무병장수도의 둘째 원리는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적절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증에 걸려 질병을 일으킨다. 운동 부족은 우리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과학자 라마르크(Lamarck) 1909년에

『동물철학(動物哲學)』이라는 책을 쓰고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제창했다. 그 이론의 기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생명과 기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계는 쓰면 쓸수록 마멸하고 약해지고 고장이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쓰면 쓸수록 건강해지고 발달한다.

다리는 많이 걸어야 하고, 손은 많이 써야 튼튼해지고, 머리는 많이 써야 활발해진다. 이것이 생명과 기계의 다른 점이다. 흘러가자 않는 물은 썩기 쉽듯이 우리의 몸은 쓰지 않으면

점점 허약해진다. 생명은 안 쓰면 퇴화退化한다. 이것을 의학적 용어로 폐용성 위축廢用性 萎縮,(disused atrophy)이라고 한다.

마라톤 선수의 발을 보라, 농구 선수의 팔을 보라. 해녀의 심장을 보라, 기계체조 선수의 몸놀림을 보라, 참으로 놀랄 만큼 튼튼하고 순발력이 있고 민첩하다.

자기의 몸에 맞는 운동을 한 가지 꾸준히 하는 것은 건강에 대단히 좋다. 반드시 근육이 융융한 운동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에게 알맞는 운동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는 스포츠의 시대다. 스포츠는 인간이 발명한 놀라운 생활 예술이다. 스포츠는 다음 네 가지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로, 스포츠는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둘째로, 스포츠는 우리의 성격을 명랑 활달하게 만든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얼굴 표정이 밝고 행동이 정정당당하다. 스포츠를 애호하는 사람중에 신경쇠약이나 우울증이나 자폐증에 걸리는 사람은 없다.

명랑한 성격은 재산보다도 소중하다 라고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Canegie)는 말했다. 우리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야한다. 스포츠는 우리를 공명정대한 인간으로 만든다.

셋째로, 스포츠처럼 흥미진진하며 우리를 기쁘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이 없다.

스포츠는 하는 것도 즐겁고 보는 것도 즐겁다. 올림픽의 그 감격, 월드컵의 그 명기, 야구 시합의 그 재미, 스키의 그 스릴, 피겨 스케이팅의 그 신기神技, 기계체조의 그 묘미, 골프의 그 집중력, 백미터 경주의 그 약동하는 활력, 세상에 어느 종교, 어느 예술이 스포츠만큼 인간을 흥분 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을까.

넷째로, 스포츠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좋은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또는 직접 운동을 하도 나면 정신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스포츠는 인간의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정신적 사회적 명의名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