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30, 2011

우리민족의 화두

우리 民族의 화두 조선민족은 하나고 둘이아니다.

序言

조선민족은 하나고 둘이 아니다. 더구나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다, 조선사람은 삼천만이나 조선민족은 다만하나다. 아득하고 오래기 반만 년 전 송화강반 백두산 아래 성스러운 천리千里 천평千坪신시神市의 때로부터 가까이 설흔 여섯 해 동안, 뜻 아니한 왜노의 잔인한 압박과 구속밑에서 강제로 동조동근同祖同根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고 창씨와 개명까지 당했던 을유년 팔월 십삼일 어제까지---조선 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또다시 앞으로 조선민족은 억 천 만 년 백 겁을 감돌아 한밝의 밝은 광명을 동방으로부터 세계에 부어내리고 삼천만 겨레가 삼억만 민족이 되고 삼억만 민족이 십억 창생이 되는 때까지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고 둘이 아니다.

민족은 조상을 같이한다. 맥박에 뛰노는 핏줄이 본능으로 엉키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말이 같고 풍속이 같으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멀리 바다를 건너 동경, 하와이, 뉴욕, 런던에 외로운 그림자를 짝하여 달빛 아래 초연히 거닐어보라. 만 가지 향수가 그대의 머리를 스치리라. 삼각산이 보이는 한강물이 그리워 지리라. 모란봉이 떠오르고 대동강이 생각나리라.

다행히 남만격설지성南蠻鴃舌之聲 떠드는외국사람 틈에 고향친구를 만나 방아타령이나 아리랑타령 한곡조를 들어보라. 그대의 눈에 까닭 모를 더운 눈물이 주루루 흐르리라.

이것이 조국애요, 민족애다.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조선민족은 운명을 같이할 약속을 갖는다.

한 번 나라가 거꾸러지매 그 민족의 고단한 신세---어찌 했더냐. 한 번 나라가 일어나매 그 민족의 가막힌 광명이 어떠했더냐/

신라가 일어나매 그대들의 광명이 어떠했더냐. 김유신 장군은 소정방의 무릎을 굽히게 했고, 태종 김 춘추는 삼한을 통합하여 경주 서울 안에만 십삼만 팔천구백삼천육백호에 일천 삼백 육십 방이 바득판같이 벌어지고,주위는 오십오정에 고래등 같은 용마름과 화초무늬 아름당운 담은 비늘처럼 연해서 백성의 집에는 초가 한 채가 없었고,화락한 풍류와 즐거운 노래소리는 길에 그칠 사이가 없었다 한다.

고구려가 일어나매, 그대들의 광명이 어떠했더냐.을지문덕장군은 거만한 수나라 양제의 백만 대병을 청천강에 깨뜨려버렸고, 우리의 안시성주 양 만춘은 당나라 천자 이 세민이 천만 대병을 거느려 거들럭 거리고 노략질하러 들어오는 것을 백우선 한 화살로 눈일을 쏘아 애꾸눈이가 되게했다.

고려의 운수가 미약하여 몽고 흘필열屹必列의 침략을 받았을 때, 조선 여자는 호궁胡宮의 계집이 되고, 조선 민족은 옷까지 바꾸고 이름까지 갈았다.

이몽고대李蒙古大니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니 하는 따위는 왜놈들이 최근에 우리 민족에게 준 굴욕과 수치, 그것보다 무엇이 나을 것이 있으랴!

광무, 융희에 대한제국이 오 적五賊, 칠 적七賊 열두놈의 손에 거꾸러졌을 때 어둡고 나약한 파멸은 그들의 죄요 허물이라, 우리 민족이 알 바 아니거니와, 을사년간에 왜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조선민족은 절름바리에 곱추 병신이 되었고, 경술합방---하늘이무너지고 오장육부가 다쏟아지는 듯한 민족의 설음과 통곡은 누가있어 능히 우리를 위로하고 보증해 주었으랴!

이대로 사십년이란 길고 긴 춘추에 우리는 기름과 피를 왜노에게 다 빼았겠던 것이다. 문전옥답은 신작로로 다들어가고, 똑똑한 자식들은 사상범이라 해서 감옥소의 귀신이 되었다.

이 지독하고 끔찍끔찍한 현실은 민족의 뼈속까지 사무처서 뜻없는 초수목동樵豎牧童, 망국한을 모르는 술장수 어미의 입초수와 노래가락에까지 오르내렸던 것이다.

민족은 위정자를 감시해야한다. 민족은 뭉처야한다.절대로 배타주의가 아니다. 살기위하여 자립을 꾀하여 한맘 한뜻으로 뭉처야한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이천여 년 전 한나라 무제 유철劉徹이 위만衛滿을 쫓느라고 조선을 침략하여 낙랑樂浪, 현토玄兎, 임둔臨屯, 진번眞蕃, 네 고을을 두었을 때 조선민족은 별안간 대낯에 강도놈이 들어와 염치없이 먹을 것 다먹고 자빠진거나 똑같은 만고에 없는 변을 당했다.

평안도와 황해도, 강원도와 함경도 지방이었다. 마치 요사이 소위 해방되었다는 조선에 남북을 금그어 갈라놓은 북위 삼십팔도 문제보다 지나친 자였다.

이로 인하여 민족의 연락은 끊어지고, 이로 인하여 경제의 파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자주사회와 민족의 연립은 파괴되고, 찢어지고, 좀먹어 버리게 되었다. 얼마 안 돼서 본토의 민족들은 힘을 다하여 한뭉치가 되어 한 민족을 몰아냈나니, 이것은 다만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다같은 깃발아래 대동단결--- 그들을 전멸케 한 민족의 항전이요 투쟁이었다.

민족을 떠나서 내가 없고 나를 떠나서 민족이 없다. 민족은 곧 나의 모체요, 나는 곧 민족의 한 분자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자랑을 가져야한다. 조선민족은 내 민족이요 남의 민족이 아니다.

신라의 김유신은 제 민족을 안 사람이요,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민족애 곧 조국을 안 사람이다.

지난번 러시아의 스타린은 나치스 독일의 육박이 바야흐로 위급했을 때 만국의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라는 맹세대신, ‘최후의 목슴이 붙어있을 때까지 이름을 동포와 조국과 노동자 농민의 정부 때문에 바친다라는 선언을 부르짓게 했다.

이것은 소비에트로도 여태까지 집어치웠던 민족을 다시부르는 강한 소리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단신으로 기막힌 항전을 계속한 바다의 영웅 이 순신李 舜臣장군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병자호란에 청나라에 잡혀가서 죽어도 청제에게 절을 아니한 삼 학사를 잊어서는 아니된다. 을사조약에 목을 찌른 민영환閔 泳煥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대마도에서 굶어 죽은 최 익현崔 益鉉도 알아두자. 할빈 역머리에 이등박문을 쏘아 죽인 安 重根님께 고요히 묵도를 올리자. 삼천리 강산을 뒤흔들어 놀은 白手의 항전 삼일 운동의 기억이 새롭구나--- 귀여운 도련님과 아가씨의 광주학생사건도 눈물겨웁다.

이것은 모두 다 민족의 항전이요 투쟁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디.

解放後 西紀 一九四五 十月 三十一日 釣水樓에서 박 종하

Thursday, March 24, 2011

사목의 향기

사목의 향기 마리아를 본받는 수도자들

전달수 안토니오 성 마리아 성당 주임신부

수도자들은 예수님을 추종하면서 그분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 ‘마태 19, 29’. 이 말씀을 우리는 하늘나라를 위한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을 하는 수도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영적 투쟁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덕을 쌓아 나가는데 재물의 욕심을 버리고 검소하게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정결의 삶을, 혼인을 포기하고 정결하셨던 그분을 본받아 정결의 삶을,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셨던 그분을 본받아 순종의 서원을 발하면서 덕을 쌓아가는데 그들은 성모 마리아를 피조물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성인으로 공경하며 훌륭한 덕을 쌓아 성인이 되도록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그들에게 성모 마리아는 정결하신 모후, 순명하신 모후, 만덕을 갗추신 모후이시다. 성모님께 관한 아름다운 시와 성가들이 거의 모두 소도원의 작품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이 천상을 향해 맑고 순수했던 것처럼 가사와 곡들도 모두 맑고 순수해 이를 읽고 노래하는 이들의 마음을 천상으로 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일반 신자들에게도 익숙한 성모님 찬가 ‘Salve Regina’는 수도원에서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잠자리 들기 전에 바치는 끝기도 후의 성가인데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중세기 풍의 아름다운 성가이다.

평생 동정녀이신 성모님은 우리의 희망이자 변호자이시므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옵고 특별히 이 찬류 세상이 끝난 다음 구세주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는 천상에대한 그리움으로 되어있다. 이를 노래하는 수도자들은 마음을 하느님 계신 천상으로 향하고 있어 비록 이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을 성모님과 천사들과 성인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천국에 두고 있으니 얼마나 복된 삶을 살고 있는가? 하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유혹과 나약한 인간성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을 인류의 죄악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과 그 분의 뒤를 성실히 따라 가신 성모님의 고통을 바라보고 묵상하면서 수용하고 극복하며 승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십지가 옆에 서 계시던 성모님 요한 19, 25-27’에 관한 묵상은 그리스도 인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지만 수도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리라 모자의 비참한 고통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음미하는 신앙인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그 고통은 목적이 아니었다.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졌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과 영광스런 부활의 그 신비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차원에서 현실을 직시한다. 하느님이 나에게 이 삶을 주신 아상 나는 현실에 충실 할 것이다. 수시로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십자가는 고통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성모님처럼 아드님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성실히 찾을 때 나에게도 부활의 기쁨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으로 살아가지 않겠는가?

지혜의 향기

지혜의 향기 외세에 저항한 베트남 스님의 자두의 향기

이원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프란스에는 자두마을이 있다. 베튼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플럼plum 빌리지인데 그 자두 향기가 프랑스뿐만아니라 세계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남가주에도 센디에고 근처 에스콘디도에 스님이 세운 사슴공원, 즉 디어 파크Deer Park가 있다. 거기엔 베트남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가 아니다. 주류 미국사람들을 비롯하여 민족과 인종, 심지어는 종교마저 초월한 많은이들이 21세기의 녹아원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오는 것일까?

우선 마음의 平安이다. 스님의 지도에 따라 나 자신이 화를 누르는 방법을 익힌다. 나의 숨쉬기를 지켜보며 내 미음과 몸이 움직이고 바뀌는 것을 내려다본다. 이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에게 쉽고 알맞는 여러단계적 수행을 통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고 부처님의 진리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불교 대중화의 좋은 본보기로서 베트남 불교가 세계에 끼치는 향기로운 과실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베트남이라면 먼저 월남전이 주로 떠오를 것이다. 월남파병이라든가 그에 따른 기업체와 인력의 진출인데 요즘 와서는 관광이나 투자, 농촌 신부 수입, 한류의 전파 따위도 있을 것이다. 주로 돈과 이익과 물질에 치중한 것으로 다소 우월감에 젖어 일방적이고 피상적인 인식을 해 온 점이 없지않다.반면에 그 나라 문화에 핵심인 종교를 바롯한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모르다 보니 좀 낮추어 보는 경향마저 있어온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선입견을 버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균형 잡힌 바로 봄이 필요하다.

그 운명에 있어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참으로 많지 않은가! 수천 년 동안 중국옆에 붙어 있으면서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독자성을 유지해온 민족이 한국과 베트남 밖에 더 있는가. 나머지 다른 민족들은 거의 중국에 녹아 없어졌거나 멀리도망가 버렸다.

베트남은 지리상으로는 동남아이지만 불교는 한국처럼 주로 중국을 통해 받아들여서 대승불교권에 속한다. 또한 우리처럼 유교를 했으며 수많은 한자말을 받아들였다. 틱닉한도 한자로는 釋一行이다.

교육을 중시하는 것도 닮아서 미국 학교에도 뛰어난 베트남 학생들이 많다.

이렇듯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일깨우며 도와 줘야 할 일이 많다. 이제 우리는 베트남에 꽂았던 그 모든 쇠붙이는 거두고 그 땅의 향기로운 흙가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의 불교는 한국보다더 치열하게 겨례와 자신의 운명에 정면대결을 펼쳤었다.

전세게에 큰 충격을 준 틱퇑둑 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애끛게 죽어가는 수많은 중생들을 대신한 과감한 항변이었다. 틱닉한 스님도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하여 떨처나섰던 많은 스님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부패와 잔학을 일삼던 월남 정부를 피하여 이전의 식민 종주국인 프랑스로 망명의 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망명의 땅 원한의 구덩이마다 사랑의 자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몇 해 전 돌아가신 한국의 숭산 스님과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 스님, 그리고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불이 어디 이 네 분뿐이랴,자두의 향기를 맡든 이뭣고?’를 하든 세상을 바로보며, 몸소 자비慈悲를 실천에 옮기면서 자신이 바로 부처임을 깨달은 이 그 누구나 생불인것을 !

가족과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가족과 함께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Temple Stay

매달 두번째 일요일 아침 8 30분 올림픽 갤러리아 마켙 앞에는 52인승의 관광버스가 멈춰 서있다. LA 에서 차로 2시간 남짓 되는 테하차피의 태고사-주지 범휴스님-로 일요법회를 가기 위해서다. 가든그로브, 한인타운, 노스 할리웃 세곳을 경유하여 40 여명의 불자들이 이 차편을 이용하고있다.

지난 13일에도 어김없이 버스가 멈춰 섰다. 태고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 45, 11시 일요법회가 시작 됐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온 만큼 공기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개인적으로 온 불자들의 차량들이 이미 여러대 주차되어 있었다.

10년 전 무량스님이 직접 큰 돌을 나르던 곳에는 큰 종각이 세워져 있었다. 대웅전 법당은 법회가 시작되자 불자들로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부처님 가르침은 먼 거리도 문제되지 않아 보였다.

태고사의 이원익 법시는 매달 두 번째 일요일에 버스를 운영해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버스가 없는 주일에도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40명 정도 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또 올해 초부터 회원제를 시작해서 그 날도 템플 스테이를 하는 불자들이 있었다.

회원제란 하루에 1 달러로 한달에 30달라를 회비로 낸 사람은 테플스테이-사찰경험-를 무료로 할 수 있다. 범휴 주지스님은 주말을 이용해 12일 혹은 23일 자녀와 함께 이곳 선방에 머물며 공기좋은 산행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르침도 받고 있다지금 방이 다섯개인데 앞으로 30년 정도 계획을 잡고 회원제를 실시하다보면 좀더 많은 수행방을 지을 수 있어 현재 50명 정도의 수용인원보다 그 때는 더 많아 질 것이라 기대했다. “원래 지역적으로 멀기 때문에 템플스테이를 하려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무량스님이 대한불교 조계종 화계사 미국 분원으로 공찰로 등록을 했기 때문에 주지는 사찰의 관리인과 같고 그 주인은 불자 자신들이라며 앞으로 사찰을 어떻게 잘 이끌어 갈 것인지는 불자 자신들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올바르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그대로 살겠다는 생활태도에 달렸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복신앙이 아님 정견즉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범휴 스님은 불상이 아닌 불자끼리 혹은 자연을 향해 절을 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많이 계획하고 있읍을 아울러 밝혔다.

문의; 661- 822-7776 ; 김인순 기자

Friday, March 18, 2011

일본대지진, 우리의 자화상

일본 대지진, 우리의 자화상

편집국 코디네이터 이원영

큰 재난에도 놀라운 절재력--- 극성으로 떼 쓰는 우리와 대조 새로운 우정 쌓는 계기 되길

일본이 최악의 지진 대참사로 말 못할 슬픔에 잠겨 있읍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쓰나미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억장이 무너지는 공포와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어디서 부터 위로를 해야할지, 참사에서 비껴 서있는 우리로 서는 그저 안타까움만 토할 뿐입니다.

국외자로서 기분이 이럴진대 직접 참사를 겪은 유가족, 이재민, 일본국민들의 마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100 1000배 이상의 아픔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 참사 현장에는 각국 언론들이 수많은 특파원들을 파견해 현지 사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읍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들도 하나같이 놀라는 사실이 있읍니다. 바로 일본인들의 무서운 절제력 입니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보도한 이론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뱅정한 위기 대처방식에 외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읍니다. 뉴욕타임스는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썼읍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몸만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수백미터의 중울 섭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면 자신의 배가 곯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양보합니다. 이재민들의 어려운 실상을 보도하는 어느 T V 화면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울부짓는 모습은 보이자 않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루 속히 복구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전기가 모자란다고 하니 전국민이 스스로 프러그를 먼저 뽑습니다. 납보다 더 큰 희생을 당한 사람도 있는데 혼자서 울부짓을 수 없다며 울음을 꾹꾹 참아냅니다.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그저 하늘 뜻으로 돌리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의 언론들도 자극적인 모습을 최대한 줄이고 재건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데 앞장서고 있읍니다. 형언할 수 없는 참사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이런 보습니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거꾸로 한국인들의 자화상을 떠올려 봅니다.

폭설이 와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도, 구제역으로 소-돼지가 살처분 돼도 공무언과 정부를 욕하는 인터뷰가 꼭 나옵니다. 비가와서 피해를 입었으면 기상청 욕하고, 눈으로 도로가 막히면 교통당국을 바난합니다.

줄을 서서 기다릴 살황이면 어김없이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T V 화면에 빠지지 않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음모론이 횡행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스스로 아픈마음을 삭이기 보다는 여러 목소리를 모아 더 크게 보상을 외침니다. 자연재해를 운명이려니 하기보다는 누군가 표적을 정해 그에게 책임을 물으려합니다. 재난 앞에 - 日은 이렇게 많이 다릅니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우리가 미처 잘알지 못했던 그들의 내공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읍니다.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과 절제 속에서 그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혼란의 과정에서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채우려 하기 보다 이웃을 배려하고 그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자세를 보일 것이라 믿어 집니다. 그래서 현실은 아무리 암울해도 그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것이란 믿음을 같게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친구가 없다는 일본은 이번 재난 때문에 우호와 동정을 보내는 친구들을 많이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할때 우정은 깊어질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존경심에 바탕을 둔 깊은 우정을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회망합니다.

Thursday, March 17, 201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참회한뒤 성취 대신 시련 다기와

본인 책임 기도에 떠넘기면 안돼

Q 삼년 전에 참회와 미래의 진로에 대한 발원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 정진했읍니다. 회향 후에 한 동업자를 만나서 약간의 의심은 있었지만 진로 기도를 했다는 착각에 동업을 추진했고 그 결과는 너무나 큰 시련으로 다가왔고 정신적 물질적 손실이 컸읍니다. 보통 기도하면 기도 성취를 한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는 오히려 시련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 스님께 여쭙니다.

A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 믿고 사업을 벌렸더니 사업이 안 됐다는 이야기인데, 학생이 대학에가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학생에게는 대학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하고 열심히 절하는 게 기도가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도입니다.

그런 것처럼 사업을 하려면 서업에 관계되는 일, 사장조사라든가 동업자에 대한 신용조사라든지 서업에 합당한 것을 열심히 했다면 기도가 성취되었을 텐데 질문자는 사업하고는 아무관계도 없는 기도를 했읍니다. 그래놓고는 기도했다는 핑계로 준비도 없이 사업을 시작해서 망해놓고는 기도했는데 영향이 없다면서 자신의 책임을 기도에 전가시키고 있읍니다. 예 부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읍니다.

불교신자는 특히 부처님 가르침의 원리, 지은 인연이 있으면 그 과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인연이 있어야 과보가 있지 인연이 없는데 어떻게 과보가 있겠읍니까.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복 주세요하고 기도하는데, 복을 짓지 않고 복주세요 하면 복이 어디서 올 수 있겠읍니까.

그러니 그냥 복을 달라고 비는 기도는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지어야 된다. 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복을 지으면 복을 받는다. 이래야 이치에 맞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고통은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서 빚어지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적인 요지는 인연과보 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나지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러니 질문하신 분은 이 사건을 통해서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신앙도 아닌 걸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종교도 아닌 걸 종교라고 생각하고, 불교도 아닌 걸 불교라고 생각하고, 기도도 아닌 걸 기도라고 생각하고 엉뚱한 짓을 했구나이렇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세요.

이번에 아렇게 사업이 일찍 망했기에 그나마 요 정도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뒀지 만약 사업이 좀 잘 됐으면 앞으로도 사업 관련 공부는 안 하고 기도만 하고 재만 지내면서 사업이 잘될 거다 하면서 더 크게 사업을 벌리다가 더 크게 망했을 겁니다.

세상에 그렇게 요행수나 바라고 도박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있을 리 없읍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은 감사히 받아드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면 그런 인연을 짓지 않으면 됩니다. 이번일은 학습비라고 생각하세요.

몸 건강히 살아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살아 있으니 또 도전을 할 때에는 지난번처럼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 절을 한다면 부처님 저는 사업에 성공하기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겠읍니다. 함께하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추겠읍니다.’ 이런 원을 세운다면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기도다운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Wednesday, March 16, 2011

흔들리는 땅, 침착한 일본사람들

흔들리는 땅, 침착한 일본인들

서울대 교수 사회학 송호근 칼럼

붕괴와 화재 속애 메뉴얼대로 행동한 일본인 3중 구조의 방재 시스템 우리도 이런대비 있는가

무서운 광경이었다. 전율이 일었다. SF영황에서나 나옴직란 그광경이 이웃일본에서 벌어졌다는 것도 현실감을 더했다. ‘나루터의 파도津波로 읽히는 쓰나미가 항도를 덮치는 거대한 물기둥으로 돌변하는 순간 아름다운 수목의 도시 센다이는 악몽으로 변했다. 심해에서 머리를 맞댄 두 개의 대지판이 틈새를 찾고 내주려고 한 뼘 정도 움직인 결과였다. 센다이와 동북부 해안지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뭍으로 돌진하는 거대한 물기둥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방송앵커의 절규에는 자연앞에 인간은 미물이라는 상식을 종종 잊은 것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었다.

지진에 어지간히 단련된 일본 국민들도 역사상 최대의 동북부 대지진 앞에서 몸을 떨었다. 70평생 이런 지진은 처음이라는 비명처럼 피해는 추산을 불허했다. 급기야 원전이 폭발했다. 게센누마시市는 전복된 연료선박 기름이 온도시를 덥쳐 밤새 타올랐다. 그러나 침착했다. 침착해야 했다.도교 특파원들의 현장 취재가사들은 숙달된 일본인들의 차분한 대피행동에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인이라고 왜 공포가 없겠는가만 땅이 꺼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화염이 치솟고, 차량이 뒤엉키는 가운데에도 건물방재센터가 대피방송을 했고 시민들은 재난 매뉴얼을 따라 행동했다. 전부가 즉각 방재시스켐을 가동한 것은 물론이다. 상비된 헬멧을 찾아쓰고 대피소 앞에서 줄 서는 시민들의 모습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지축이 흔들리고 바다가 성난 맹수처럼 일어날 것에 대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교훈을 참혹한 재난 역사로 부터 배웠고 대비훈련을 일상화했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저런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은 없는가. 다행히 안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답이다. 그러나 이 질문보다 언제 어디로 닥칠지 모르는 대재앙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유라시아판의 안정된 지점에 앉은 덕에 지진이나 쓰나미는 우리얘기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재앙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투자는 부끄러울 만큼 뒤졌고, 시민들의 방재의식과 조직수준은 거의 제로다.

불과 17년 전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인근에서 일하던 작업선박이 제일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했고, 먼저와서 구조대를 기다릴 정도로 우리 방재체개는 후진적이었다 초강풍이 서울 도심지를 강타힌 그 시각에야 태풍 상륙을 알렸던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이에비해,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은 6400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 갔지만,시민과 公私조직이 어떻게 사전,

사후 재난대책을 실행하는가를 보여준 계기였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방재국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적 훈련이다. 매달 한 번꼴로 실시되는 방재훈련에서 기본요령을 습득한다. 500명 학생이 대피 완료하는 데에 3분가량이면 족하다.어릴 적부터 일본어로 밀지마’ ‘뛰지마’ ‘떠들지 마의 약자인 오카시おかし를 익힌다.모든 건물엔 방재용품을 비치하고, 긴급재난 시 공공건물이 대피소로 전환된다.

세계 최고의 방제력의 비밀은 중앙정부 외에 3중 구조로 된 민간 자원조직에 있다. 자원조직은 가히 세계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각 마을마다 주민 자치로 운영되는 재해자원센터가 기초조직인데, 소방단을 트별히 우영하는 곳도 전국에 2474개소가 된다. 89만명의 자원자가 활약한다. 소방단은 평소에는 침목회 성격을 띠지만 유사시에는 방재기구로 전환한다.

2차 조직은 모든 시--촌 市--村에 결성된 재난시민단체로서 화재 방지, 소화 훈련, 대피, 이재민 보호와 수송을 담당한다. 고베 대지진 복구의 주력부대가 이들이었다.전국에서 자원봉사자와 단체가 구름처럼 몰려 규모 7.3 지진이 초토화한 시가지를 단기간에 치츄했다. 이를 계기로 3차 조직인 전국방재넷트워크가 세계최초로 1999년 결성되었다. ‘방재NPO’로 알려진 이 전국 조직은 산---민의 협력을 진작시키며, 지진 발생 당일 오후 6시를 기해 구제활동에 돌입했다. 12일 일본 중부 니가타와 나가노현에도 중규모 지진이 발생했다면,

관서지역과 동해도 결코 안전지대는 아니다. 1980년 이후 10여 차례 중규모 지진이 감지된 한반도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자연의 생리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대비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는가. 일본의 피해복구가 빨리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Tuesday, March 15, 2011

일본은 있다---대참사 앞에서 배려의 '메이와쿠 문화' --- 세계가 놀랐다.

일본은 있다---대참사 앞에서 배려의 메이와쿠 문화[i]---세계가놀랐다

김현기 특파원이 본 대재앙 속 일본의 힘

1 대피소의 양보 우동 10 그릇 50영이 서로 먼저드시죠

2, 남 탓은 안 한다 원망하거나 항의하는 모습 TV에 난 보여

3, 재앙 앞 손잡기 의원들 정쟁 중단 --- 작업복 입고 현장으로

4, 침착하고 냉정 일본 전역에서 약탈보고 한 건도 없어

5, 남을 먼저 생각 내가 울면 더 큰 피해자에게 폐 된다

# “오사키니 - 먼저드시죠”, “아닙니다. 전 아직 괜찮습니다.”

규모 9.0 의 대지진과 10 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동 일본을 덮친 뒤인 11일 오후 6, 아키타秋田현 아키다시의 그랑티아 아키다 호텔 정전으로 암흑으로 변한 호텔 로비에선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호텔 측이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박객을 받을 수없다고 안내하자 로비에 몰려 있던 숙박 예약객 50여 명은 조용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노약자들이 앞에 세워졌다. 암흑 속에 일렬의 줄이 생겼다. 순서를 다투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잠시 후 호텔 측이 정전으로 저녁을 제공할 수 없다며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 왔을 때다. 우동그릇을 향해 달려들기는 커녕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고객의 허기를 걱정하며 뒤로 뒤로 우동을 돌리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기宮城-이와테현을 비롯, 일본 전역에서 주인없는 상점에서 약탈 행위가 있었다는 뉴스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도호쿠 미야기현 북동부에 위치한 미나미산리쿠南三陸 연안지역, 마을 대부분이 사라지고 화재로 검게탄 숲의 흔적만 남아있다. 쓰나미에 육지로 밀려온 선박은 선미가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땅에 밖혀 있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이곳에선 실종자 일만 명소문까지돈다. 그러나 고성이나 원성은 들리지 않는다. 피난소에 모인 100여 명의 주민들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빨리 복구가 되길 바랄뿐이라면서 내일을 말한다. 누구탓도 하지 않는다. 모자라는 물과 담요를 나눠쓰며 서로를 위로하는 감동적 장면들이 전파를 타고있다.

일본적십자사 조직추진부 시로다白田과장은 13개인과 기업들로부터 성금과 구호물자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 늘 으르렁 거리던 야당 의원들도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라 구하기에 발벗고 나섰다. 위기 앞에 손잡는 공동체 의식은 일본 사회의 저력이다.

한국에서 재해 보도를 할 때 희생자를 취재하는 건 보통이다. 시신이 안치된 빈소와 병원의 모습이 시시각각 비춰진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 보도에서 일본 언론은 달랐다. 쓰나미로 가옥과 차량이 쓰려 내려가는 장면이 TV에 자주 비쳐지지만 어느 채널에서도 쓰나미에 휩쓸리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자 않는다. “죽은 이도 이 세상에 남는다.”는 일본인의 특유한 사생사생관 때문이지만 울부짓거나 흐느끼는 모습도 좀처럼 화면에서 보기 힘들다. TV아사히의 한 관계자는 재해 예방을 위한 목적외에는 일반에게 충격을 주는 화면은 최대한 억제한다는 게 재해보도의 암묵적인 룰 아리고 말했다. 11일 지진이 발생한뒤 쓰나미 경계경보가 해재된 13일 샙벽까지 모든 TV방송 진행자는 헬멧을 쓰고 진행했다. 이처럼지진 규모나 피해규모와 달리 일본은 무섭도록 냉정하고 침착하다.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도쿄의 부도시인 신주쿠에 위치한 요쓰야 사곳 사거리에 있는 소방서, 12층 건물의 10층 언자리 외벽에는 눈에 띄는 선이 그어져 있다. 이 선은 지상으로부터 높이 30미터를 알리는 표시이다. 그 옆에는 이높이는 바로 1993년 오쿠사리 오구 섬을 덮친 쓰나미의 높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쓰나미란 언제 어느때나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란 걸 인식시키고 평상의 준비가 필수적이란 걸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은 꾸준하고 일관된 재해 대처교육울 유치원 때부터 받는다. 책상 옆 고리에는 늘 재해에 대비한 머리에 뒤집어쓰는 방재 두건이 걸려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방재 두건 착용~~~책상밑 대피~~~운동장 대피 ~~~질서 확보까지 눈 감고도 할 정도다. 철저한 재해 예방 교육은 초등학교 입학후 첫 수업에서 배우는 메에와쿠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란 일본 고유 정신 가치와 함께 대형 재해에 침착히 대응하게 하는 비결이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다가온 처지를 숙명을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특성도 작용한다.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이 크게 흐느끼거나 울부짓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 배려정신 때문이다. 재해 현장에서 본 일본의 모습. 그건 일본은 있다였다 luckyman@joongang.co.kr


[i]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메이와쿠 迷惑=’ 남에게 끼치는 폐를 뜻하는 일본말 일본의 가정 학교 교육과 사회 윤리의 핵심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