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9, 2012

독도문제 지침서

독도 문제 한국외교의 기준은 58년전 '변영태 문서' (당시 외무부 장관)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증명할 하등의 이유 없다" 첫 공식 정리--- 일본에 전달

독도에 대한 우리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어제 오늘 정해진 게 아니다. 58년 전 변영태(1951~55년 재임) 외무부 장관이 우리측 입장을 단호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한 외교문서에 명시돼 있다.

3장짜리 이 구상서(note verbale)는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 정리한 문서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2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서한을 반송키로 한 결정에도 중요한 준거가 됐다고 한다.


변영태 전 장관은 이 문서에서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권리를 증명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에 이의를 제기한 이후 계속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펴왔고 우리 정부는 독도에 경비부대를 살주시키고 한국영토라는 표지를 세우며 대응했다.

일본은 54년 9월 25일 독도 문제를 ICJ에 가서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정분는 한 달 뒤인 10월 28일 당사 일본이 ICJ서 결정 제안하자

"한국인에게 독도는 주권의 상징 일본의 독도 탈취기도는 재침략"
노다 서한 반송 결정에도 근거로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변영태 전장관의 구상서는 이때 작성됐다.
"ICJ에 분쟁을 제출하자는 제안은 잘못된 주장을 법률적으로 위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영토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유사 영토분쟁'을 꾸며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타협의 여지 없이 완전하고, 분쟁의 여지가없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해 일본은 "유사 청구권'을 설정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를 과거사 문제로 연결시킨 것도 변영태 전 장관이다.

그는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 영토다.

독도에 대한 일본정부의 불합리 하지만 시종일관한 주장에 대해 한국국민은 일본이 동일한 방법의 침략을 반복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다"고 썼다. 이를 근거로 그는

"한국 국민에게 독도는 일본과 상대한 한국주권의 상징이며, 또 주권의 보전을 시험하는 실례다. 한국국민은 독도를 수호하고 한국 주권을 보정할 결의를 갖고 있다"고 선포했다.

문서와 함께 발표된 성명도 눈길을 끈다.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뒤 우리정부는 65년 한 . 일 회담을 마무리 지을 때도 이 내용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신용하(독도 학회 회장) 울산대 석좌교수는 변영태 전 외무장관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립한 책임자"라며 "정부는 앞으로도 이 입장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장관도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식민지 이후 영토수호를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것을 그때 굳건히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큰 문제가 생겼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Tuesday, August 28, 2012

원조 지킴이 '독도 의용수비대'

원조지킴이 '독도 의용수비대'
53년 결성된 민간 무장 조직--- 무력으로 일본인의 상습침범 결사 저지

1954년 11월 21일 새벽, 일본 해상보안청의 함정 세척이 독도로 접근했다. 1000 톤급 PS-9, 10, 16, 함은 좌우, 중앙으로 섬을 포위했다. 일본 항공기도 선회했다. 600m앞. 권총 소리와 함께 일제사격이 시작됐다.
M-1 소총이 불을 뿜었다. 박격포탄은 PS-9함 갑판을 때렸다. PS-10 함도 먹구름 같은 연기를 뿜우며 동쪽으로 도망쳤다. (홍순칠 {이땅이 뉘 땅인데] .혜인)

53, 54년 들어 독도를 침범하던 일본은 큰코를 다쳤다. 사상자는 16명.
'겁도없이' 총과 대포를 해상보안청 함정에 쏴댄 이들은 독도 의용수비대였다. 일본인 야마자 엔지로가 독도를 삼키려는 음흉한 꾀를 낸 50년 뒤 몸으로 독도를 사수한 이들이 바로 의용수비대다.

독도 의용수비대 구상은 기갑부대 상이군인 출신 홍순칠(당시 23세)의 아이디어였다. 울릉도 출신으로 군에 입대했다가 6.25때 부상해 52년 7월 섬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지팡이를 짚으며 울릉경찰서장을 찾았다가 이상한 물건을 본다. '島根縣隱技郡 五箇村 竹島' 라고 쓰인 표목.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한 표시를 우리 어부가 떼온 것이다.

피가 끓은 그는 곧 수비대조직에 착수했다. 경찰의 총기를 몇개 대여받고 합숙훈련도 했다. 전쟁중인 2군과 경북 병사구 사령부를 찾아가 소총, 권총, 경가관총 1정을 얻어냈다. 전쟁통의 부산 양키시장에 가서 바다사자 1마리를 주고 권총과 소총을 얻었다. 다 자비였다.

그렇게 편성된 의용군은 15명 규모 전투대 2개조, 보금연락담당 3명, 예비대 5명, 보급선 선원 5명등 45명이었다.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소총 3정, M-1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0.5톤 보트 1척 53년 4월 20일 의용대는 독도 서도에 올랐다.

곧 일본의 독도 침범이 개시됐다. 5월 28일 오전 11시쯤 일본의 수산시험선 시마네마루가 선원 30여명을 태우고 나타나 6명이 상륙했다. 고기를 잡던 한국 어부 30여명을 불법으로 조사했다. 6월에도 함정 두 척이 미국기를 걸고와서 독도 동도에 표지판을 만들었다.

의용수비대는 6월 24일 일본 오게 수산고등학교 지톰마루호를 서도 150m앞에서 붙잡아 '독도는 한국 땅'을 주지시켜 보냈다. 7월 12일 새벽 5시 일본 군함 PS-9 침범때는 진가를 발휘했다. 함정 90m 앞에서
경기관총으로 200발을 쏟아부었다.

53년 7월 정전 뒤 대한민국 정부가 경찰 4명을 잠깐 파견하고, 해병대 815-LST함이 잠깐들르고, 경북도경국장이 위문 왔지만 의용대를 대체해주지못했다. 그 와중에 일본은 8월 5회, 9월 2회, 10월 1회로 끝없이 왔다. 한국당국은 거의 몰랐었다. 홍순칠은 8월에 그들이 가까이 접근하는게 목격됐을 때는 총을 쏴 저지했다.

54년에도 침범은 계속됐다. 10월 2일 오키. 나가라호는 의용수비대가 만든 대형가짜 나무 대포에 속아 도망갔다.
침범은 11월 21일 의용대의 공격 이후 사라졌다. 그렇게 의용대는 56년 12월 30일까지 독도를 지키고 대한민국에 임무를 인계했다. 모두 3년8개월이었다.

그들이 없었으면 독도는 일본의 실효적 지배에 놓일 수 있었다. 의용대는 66년 방위포장(훈장)을 받는다. 혁혁한 활동에 대한 보답으로 초라했다. 안성구 기자.



Monday, August 27, 2012

독도

독도분쟁의 유발자, 야마자 엔지로
"조선땅" 日 내무성 의견 무시

독도를 몰래 자신의 땅으로 편입한 일본, 그 뒤 다시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킨 제국주의의 야욕은 어떤 경로를 거쳐 펼쳐졌을까. 이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이 있다. 일본 독도 왜곡의 뿌리이자 제국주의 첨병이다. 독도를 사이에두고 한국과 일본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지는 요즘 우리는 이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장보다는 차분한 사실 확인을 통해 일본의 왜곡과 억지를 잠재우자는 취지에서다. 매우 드믈지만 이 인물을 면밀하게 추적한 저작이 있다.

«독도실록 1905» (예영준 저, 책밭)이다 그에 덧붙여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의 도움말을 통해 독도 왜곡에 이어 한반도 강점까지 넘본 이 일본인의 행적을 소개한다.
한반도 침탈 앞장선 '흑룡회' 와 관련

19세기 말은 조선의 황혼 녘이었다. 한반도의 해역에는 낯선 철선[鐵船]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제국의 기운을 뻗치려는 낯선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그런 기운은 어느덧 황혼을 맞은 조성의 운명을 옥죄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의 초임 외교관으로 부산의 일본영사관에 부임한 야마자 엔지로[山座圓次郞. 1866-1914] 였다.


그가 벌인 첫 작업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로, 경부선의 측량작업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제국주의의 기운을 한반도로 뻗기위한 인프라에 주목했던 셈이다 그러나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조선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26세의 청년 외교관 야마장의 꾀가 번득였다. "조선의 새를 사냥한다는 명분으로 조선 정부에 허락을 받자".는 내용 이었다.


일종의 사술[詐術]이었다. 그의 꾀대로 일은 벌어졌다. 조선정부에 "새를 사냥할테니 붉은 깃발을 세우면 사람들이 접근치 못하게 해 달라"고 한 뒤 부산~서울의 철로 부지를 샅샅이 측량했다. 그가 벌린 측량작업을 바탕으로 일제가 1904녀 한반도 강점을 위해 경부선을 깔았던 것은 물론이다.


그의 출생지는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이었다. 구마모토와 함께 이 지역은 한반도 침탈과 깊은 관련이있다. 최서면원장은 "메이지[明治]유신에서 주류에 섞이지 못했던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출신정객들은 일본의 힘을 바깥으로 뻗는 확장정책을 주도하면서 결국 한반도 침탈의 선봉에 섰다"고 지적했다. 그 지역 출신자들로 이뤄진 대표적인 단체가 현양사[玄洋社]다. 나중에 한반도 침탈에 앞장선 조직 흑룡회[黑龍會]와 일본 낭인들의 모임인 천우협[天佑俠]등이 다 현양사의 구성원으로서 우두머리였던 도야마 미쓰루(頭山滿)와 막역한 관계였다.


야마자는 1901년 부터 1908년까지 일본외무성 정무국장을 맡는다. 장관과 차관 밑에 국장으로는 통상과 정무만 있던 시절이었다. 통상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맡은 자리가 정무국장으로, 일본의 대외 정책을 모두 주무르는 요직중의 요직이었다. 그가 정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벌인 일은 부지기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독도를 강제로 일본에 편입하는 작업이었다. 아울러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뒤 러시아와 전쟁(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한반도 강점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독도 강제 편입의 사정은 이렇다 일본 시네마현 출신인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어부가 있었다. 독도에까지 와서 그곳에 서식하던 강치(바다사자의 일종)를 포흭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독도의 강치잡이를 독점하기 위해 이 섬을 조선정부로부터 임차할 생각이엇다. 그러나 "혹시 (독도가) 조선의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본수산국, 해군 수로부관리들의 말을 듣고 아예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편입하려는 청원을 낸다.


그에따라 나카이는 내무성을 찾아갔으나 "조선 영토라는 의심이 있는 불모의 섬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다. 실망했던 나카이가 정부 보고용으로 직접작성한 '다케시마 경영의 개요'라는 진술서는 당시 야마자가 보인 반응을 이렇게 적고 있다. "태연하게 듣고 있던 국장이 천천히 입을 열더니, 외교사의 일은 다른사람이 관여할 일이 아니며--- 시국(時局)으로 봐도 영토편입은 대단한 이익이 있음을 인정하나다는 뜻을 밝혔다."
"(정무국장은) 시국이야말로 영토편입을 급히 필요로하며 망루를 세워 무선 또는 해저전선을 설치하면 적함 감시에 대단히 요긴하지 않을까--- 서둘러 청원서를 외무성에 제출하라고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야마자가 말한 '시국'은 그가 준비하고 있던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당시 일본은 울릉도에 이미 통신선을 설치한 상태였다. 최서면 원장은 "당시 해군의 전투는 누가 먼저 상대를 발견해 함포로 선제사격을 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울릉도에 이어 독도에 통신선을 가설해 러시아 발틱함대의 이동을 먼저 파악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외무성, 1910년께 나카이가 정부보고 그 다음 과정은 제법알려져 있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네마현으로 편입하고, '랑코(리앙쿠르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르던 독도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러곡절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독도가 일본 땅으로 둔감하는 과정은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어부의 개인적인 욕심, 러시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야마자 엔지로의 음모로 결국 성사됐던 셈이다.

48세로 사망해 행적은 잘 안 알려져

최서면 원장이 최근 입수한 문서가 있다. 야마자가 가토 마스오(加藤增雄)라는 인물에게 보낸 편지 7장이다. 가토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대한제국 시절 서울주재 일본공사로 활약하다 고종의 신임을 얻어 한국에서 궁내부 고문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최원장이 입수한 그의 편지 한 대목에 는 '조선의 땅을 군사적으로 활용토록 조치를 취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가토에게 대한제국 왕실을 움직여 한반도의 일부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라는 권유였다. 1905년 벌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은 진해를 주목했다고 알려져 있다.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진출하는 길목인 진해의 군사적 중요성을 간파한 것이다.


야마자는 당시 영국과의 동맹 체결을 주도한 뒤 러시아를 제압해 아시아로 팽창하려는 계획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의 뜻대로 일본은 진해를 발틱함대와의 전쟁기지로 십분 활용했다. 최원장은 "이런 기록을 통해 일본이 어떻게 한반도를 병합까지 끌고 갔는지를 살필 수 있다"며 "야마자의 편지에는 두만강 하구 섬인 녹둔도를 정찰해 일본이 할양 받게끔 상황을 만든 뒤 만주 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이끈 야마자는 결국 독도뿐만 아나라 한반도 전체를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두는 '보호국화'에 성공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이 벌어진 뒤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는 물론 내 정상의 모든 권한까지 빼앗는 정미 7조약을 체결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야마자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그의 역할이 이렇게 중대했음에도 그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않은 이유는 야마자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1908년 외무성 정무국장 자리를 떠나 영국에서 4년을 근무한 뒤 1913년 중국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주중 일본대사였다.그는 이듬해 5월 27일 집무실에서 쓰러진 뒤 사망했다. 중국 남부의 당시 실권자 위안스카이( 袁世凱)가 독살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주간중앙 유광종 기자




Friday, August 24, 2012

대선가도에 부는 태풍 안철수 생각

대선가도에 부는 태풍, "안철수 생각"
김원동 칼럼 미주신문인협회 고문


이건 선풍기 바람정도가 아니다. 가히 태풍 수준이다. 대선가도에 느닷없이 돌풍을 일읔키는 한 권의 책, 그 위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망연자실[茫然自失]하는 속에서도 여타 대권경선주자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은 말들이다.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안풍(안철수 태풍)을 빗대어 별것아니라며


"안풍이닌 허풍"이라고 입을 맞추어 궤변을 늘어 놓지만 패색이 역력한 모습인데 어쩌라.책[敗色]은 찍는대로 모조리 품절이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기습적으로 출간한 화제의 책 '안철수 생각'은 출판이 당일로 완전 매진[賣盡]되는 유래없는 진기록을 낳고 있다.



그 책이 그토록 경이적인 돌풍을 일으키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을 터뜨렸을까에 대한 답은 대충 한가지로 집약된다. 구닥다리 고물정치인들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를 향한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유 있는 반응이다. 그런가하면 이 책을 놓고 흠집을 내려고 안달을 부리는 패거리들도 있다.


소위 박근혜 진영의 정치철새들로서 한물간 올드보이들인 김종인 홍사덕 등이 말도 안되는 주접을 떨지만턱없이 역부족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대선 경선주자들도 가세한다. 저들이 피 터지도록 경선 싸움을 펼치는 동안 책과 방송을 통한 인기몰이로 부전승 무임승차를 노리는 얌체 수준의 꼼수라며 주장하나 영양가 없는 말장난 수준에 지니지 않는다.



이 뿐 아니다. 대선정국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자신들의 방송출연신청은 거부하면서 출마선언도 하지않은 안철수를 출연시킨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돼지 목 따는 소리를 한다. 예민한 시기에 SBS는 대선가도에서 지지율 상승의 지름길인 '힐링캠프'에 왜 안철수를 내세우느냐는 주장이다. 시청률을 먹고사는 방송에서 쪽박 찰 일을 저지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안철수를 선택한 것뿐이다.



동풍을 일으키고 있는 책 '안철수의 생각'이 활자매체를 통한 소통이라면 힐링캠프 출연은 육성을 통한 소통이이라는 안철수 진영의 논리는 한층비약한다. 소통과 화합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대통령이 과연 누구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최종대결이 예상되는 어느 후보와의 차별화를 부각시킨다.


"생각하는 정치"앞에 "지시하는 정치"는 게임이 어렵다는 것이다. 책이나 방송을 통한 다양한 여러 현안가운데서도 핵심적인 키워드는 단연 소통이다. 소통과 합의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정치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안철수는 그래서 "한국 이대로는 안된다"는 말을 강조한다. 사실상 출마선언에 다름아니다.




책의 공동저자인 세명대학의 한 교수는 말한다. 안철수와 책 준비를 위한 대담에서 앞으로 대선 막바지 경성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올 네거티브 공략에 대응을 물어봤을 때 안교수가 했다는 말이다. 총알(비판과 검증) 몇방을 맞아도 그 길이 가야할 길이라면 감당할 수 있다는 답변의 전언이다.


여기에서 아철수의 완벽을 기하는 성실함 뿐 아니라 과단성과 배짱도 보았다는 설명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그는 별다른 아킬레스건도 없을 것이라는게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추론이기도 하다.



구정물 속에서 개싸움을하며 자란 여타 대권지망자들과의 다른점을 여러모로 차별화 하고 있다.
병원균이 득실거리는 구정물 마시고 자라난 구태의연한 정치인이 아닌 무공해 식수먹고 자란 새로운 정치인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바램과 정서가 이렇게 '안철수 생각' 이라는 미래한국의 청사진을 함께 제시한 내용의 책이 나오면서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절묘한 타이밍도 맞춘것 같다. 시의적절하게 정시 도착한 책 '안철수 생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기사 누가 되면 뭣하랴 유권자 고유의 권리행사가 아닌 '한 표에 대한 본전심리'와 특정인에대한 향수병에 매몰되어 있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그 DNA 가 문제다. 난치병 수준의 한심한 민도[民度]말이다.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보다도 한심한 정치 후진성의 민도[民度]다.


시론 아주 특별한 광복절

시론 아주 특별한 광복절
한 민족 평황연구소장 김용현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춘다/ 기여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나라 찾은 그날에 어느 때인들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만은 올해 8.15를 앞두고는 새삼스레 우리에게 조국은 무엇이고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명제 앞에 숙연해 지면서 특별한 광복절을 맞게 된다.

런던올림픽에서 잘 싸운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어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철을 신명나게 보낼수 있어 행복했었다.
그 중에서도 무리를 가장 기쁘게 만든것은 아무래도 일본과의 축구 경기였다. 결승전도 아니고 동메달을 놓고 벌이는 경기였지만 어떤 경기보다도 열광했던 것은 그 상대가 바로 일본이었기 때문이다.한국에게 일본은 그런 나라이다. 경제든, 문화든, 스포츠든 일본이 상대가 되기만하면 무슨일이 있어도 이겨야 하는 굳은 결기를 숙명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문화, 스포츠가 다 일본을 이기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치만은 그렇지 못해 왔다. 자국민이 일본군 위안부로, 군인으로 강제징용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해방된지 67년이 흘러도 사과 한마디 받아내지 못한 것이 이 나라 위정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 논리만 앞세운 박정희 정권은 고작 8억 달러의 청구권에 급급해 이들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 소멸마져 약속해 주고 말았다.

또 집권기간 내내 친일,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국민정서에 뜬금없이 합류해 일시적이나마 청량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임기 말 국내 정치의 국면 전환용으로 기획된 것이라면 독도문제 해결은 이후 더어려운 고비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일분을 경계하고 일본을 꼭 이겨야 하는 것인가.
과거에 붙잡혀서?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은 삼국시대 왜구의 침입을 시작으로 16세기 임진왜란(7년) 그리고 근대사 40년간의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한민족을 괴롭혀 온 흉악한 아웃나라인 것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을 경계하는 더 큰 이유는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도 그렇게 내다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지배세력들의 행태를 보면 한반도 통일의 소극적인 훼방꾼을 넘어서 이른바 '한반도 급변사태'를 기획하며 한국전쟁 때와 같은 전쟁특수가 일본이 사는 길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본의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려면 이제라도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 통치로인한 모든 범죄를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그리고 독도영유권 주장을 철회하고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미끼로 또 다시 한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하며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침략정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도 독도 방문이 일회용 깜짝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번 광복절기념사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8.15광복절 67주년은 아주 특별한 광복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uesday, August 21, 2012

10문 고양이 밥 그릇이 깨졌다.

10 문 고양이 밥그릇이 께졌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다가 고양이 밥그릇이 깨졌다.

질문

1.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공안은 如如를 표현하는 공안이다.
여여의 경지에는 분별이 없다. 상대적인 것도 없다. 만물이 하나이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하나에 '25센트'라고 하지.
그리고 25샌트를 지불하고 그것을 사먹었다고하자.

1쿼터, 25센트, 이이스크림, 그리고 행복감------.
모양은 변했지만 본질은 하나이다.

공안으로 되돌아가 보자. 당신이 이해하는 것은 단지 쥐,
고양이밥 고양이 밥그릇, 깨졌다.하는것 등등이다.
그 뒤에 숨겨진 뜻을 파악해야 한다.

1쿼터의 숨겨진 뜻은 25센트이고 25센트의 숨겻진 의미는
아이스크림이 배 안에 들어가 "아, 시원하다" 그것이 전부이다.

우리 어른들은 너무 똑똑해서 이것을 잘모른다.
그러나 이이들이라면 척 보면 알 것이다.

세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세남자가걸어가고있다. 첫 번째 남자는 칼 소리를 만들고,
두 번째 남자는 손을 흔드는 흉내를 내고
세 번째 남자는 손수건을 흔든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질문

1.만일 그대가 거기 있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2. 관계란 무엇인가?

3. 상황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완벽히 즉여[卽如]의 공안이다. 마치 TV 퀴즈 게임 같다.

아니운서가 몇가지 를 말하고 참가자들에게 묻는다.

"지금 이 제시어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화면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청중 중 한 사람이 이것을 보고 웃으면 다른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웃는다.

상황은 마찬가지이지만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10개의 공안을 끝내면 이 질문을 숙제로 받게된다.
이것까지 통과하면 당신은 선사님께 깨달음을 점검 받고 인가를 받게된다.

Monday, August 20, 2012

9 문 남전참묘


9 문 남전참묘[南泉斬猫]


남전이 고양이 목을 베어버렸다
동당과 서당의 스님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
이것을 본 남전 큰스님이 "내가 중재를 하지" 하시면서
한 손에 고양이를 들고 한 손에 칼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들 중에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이 고양이를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남전 큰스님이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그날 저녁 조주 큰스님이 밖에서 돌아왔다. 남전 큰스님이 낮에 있었던 일을 조주 큰스님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조주 큰스님은 짚신을 벗어 머리위에 모자처럼 쓰고 맨발로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남전 큰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조주스님이 아까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 목슴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질문
1. 남전 큰스님이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고양이를 살려준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라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2. 조주 큰스님이 신발을 머리위에 이고 가버렸다. 이는 무슨 뜻인가?


남전 큰스님의 문하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고양이 하나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여기서 싸운다는 얘기는 속세 사람들처럼 고양이를 서로 가지려고 싸운것이 아니라. 고양이에게 과연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란이 오간 것이다. 짐승에게 불성이 있는지를 논하는 것을 당시의 한 유행이었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조주의 일대공안,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가 태어난 것이다.


고양이에게 불성이있느냐, 없느냐를 둘러싼 논쟁을 본 스승 남전이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고양이를 들고 외친다.
"진리를 말하는 자가 있다면 고양이를 살려주겠다. 그렇지 못하면 너회들을 대신하여 고양이를 죽이겠다."
그러자 다들 묵묵부답이었고, 남전 큰스님은 한칼에 고양이 목을 따버린다.


살생을 절대 금기로 알고있는 불문[佛門]에서 죄 없는 고양이 목을 따버린 것이다. 고양이 목은 당시 스님네들의 목숨을 따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공안을 읽는 우리 목숨을 따버린것과 마찬가지였다. 진리를 모르면 살았어도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저녁이 되어 밖에 나갔던 조주 큰스님이 돌아온다. 남전 큰스님은 낮의 일을 조주 큰스님에게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당신이라면 고양이를 살려낼수 있었을까?"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조주 큰스님은 말없이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린다. 남전은 조주가 진리를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네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죽지 않았을 것을.'
진리는 말에 있지 않다. 일상적 감각이나 습관적 의식 너머의 '낯선' 세계이다. 논리나 판단이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짚신은 알다시피 원래 발에 신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주는 습관적 판단을 뒤짚어 놓는다. 짚신을 머리에 신은(?) 것이다. 진리는 설명이 불가능 하기에 조주는 말없이 방을 나가버린다. 그것이 남전이 기대한 '한마디'였다.




Sunday, August 19, 2012

8 문 덕산 큰스님의 발우

8 문 덕산 큰스님의 발우

어느 날 덕산 큰스님이 발우를 옆에 들고 내려와 식당으로 가다가 설봉 스님과 마주쳤다.
설봉 스님이 덕산 큰스님에게 "아니, 스님,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안 쳤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세요?" 라고 여쭈자 덕산 큰스님이 이 말을 듣고 되돌아 방장으로 가셨다 (방장이란 노스님이 거처하는 자그마한 방이다).
설봉 스님은 이 일을 선방 입승스님(head monk)이자 덕산 큰스님의 애 제자인 암두 스님에게 전했다.


그러자 암두는 "그 대단하신 덕산 큰 스님도 아직 마지막 한 마디 말[末後句]을 터득하지 못하셨구만" 했다.
덕산 스님이 이 암두 스님의 말을 전해듣고 화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자네는 이 노승을 믿지 않느냐?(汝不背老僧那)"
그러자 암두 스님이 덕산 큰스님 귀에 대고 무언가 소곤소곤했다.


그러자 덕산 큰스님은 머리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성난 것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법당에 오른 덕산 큰스님은 평소와 달랐다.
이를 본 암두 스님이 앞자리에서 손뼉을 치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기쁘다, 우리 노스님께서 선의 마지막 경지를 다 터득하셨다. 이제 천하의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질문
1. 어떤 것이 덕산 큰스님의 마지막 한마디[末後句]인가?
2. 암두 스님은 덕산 큰스님의 귀에 대고 무엇이라고 소곤소곤하였는가?
3. 덕산 큰스님이 예전과 다르게 법문했다 하니 어떻게 한 것인가?
4. "아직 종도 안 울리고 법고도 안 울렸는데 발우를 옆에들고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설봉 스님의 질문을 여러분이 받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어려운 공안이다. 하지만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렵지 않다.
이 공안은 어떻게 우리가 올바른 상황, 올바른 관계, 올바른 실천을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준다.


덕산 큰스님이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마지막 구절' 이란 올바른 상황, 관계, 실천에서 온 말아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아직 저녁 공양시간 전이라서 종도 울리지 않고 법고도 울리지 않았는데, 덕산 큰스님이 발우를 들고 선방을 나선다. 설봉 스님이 그것을 보고 여쭙자 큰스님은 다시 아무 말 없이 당신의 방으로 돌아간다.설봉 스님이 이것을 암두 스님께 말했더니 암두 스님이 말하기를 "우리 위대한 스승도 마지막 구절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말은 곧 "우리 스승이 올바른 상황, 올바른 관계, 올바른 실천에 대해 이해를 못한 모양"이라는 말과 같다.
공양 시간도 아닌데 밥그릇을 들고 나가니까 말이다.
암두 스님은 설봉 스님의 말을 전해듣고 스승에 대해 이렇게 소문을 낸 모양이다.
"아마 큰스님께서 마지막 구절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


덕산 큰스님은 이 말을 듣고 아주 화가가 났을 것이다.
감히 제자가 그런 소리를 하다니, 덕산 큰스님은 암두 스님을 그의 방으로 부른다.
"너는 왜 나를 두고 나쁜 말을 하고 돌아다니느냐. 너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그때 암두 스님이 덕산 큰스님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큰 스님의 기분이 풀렸다.


다음날, 큰스님이 연단으로 올라가 법문을 한다. 그는 전과달리 아주 훌륭한 법문을 했다.
암두 스님은 손벽을 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우리 큰스님이 궁극적 진리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할 것이야."
종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느냐고 제자가 물었으나
큰스님은 한마디 설명도 없이 방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큰스님이 입을 열어 뭔가 합리적인 설명을 했다면
암두 스님은 큰스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스님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암두 스님이 나중에 큰스님 귀에 속삭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 순간 설봉 스님이 제대로 얘기만 했어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네 번째 질문의 핵심은 덕산 큰스님이 어떻게 그의 실수를 교정해야 하는가이다.
실수를 하는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어떻게 그것을 바로잡는가, 그것이 문제다. 이와 관련한 오랜 일화가 있다.


수 년전 어느 날 밤 고봉 스님이 술에 잔뜩 취해 새벽녘에야 들어왔다.
그때 다른 스님들은 이미 다 깨어서 아침염불 중이었다.
그러나 고봉스님은 자기방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스승인 만공 큰스님에게 큰 소리로 갖은 욕을 다해댔다.
"만공은 가짜다, 그놈의 가르침은 사기다."


이 소리를 들은 스님들이 깜짝 놀랐다.
만공스님은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스님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고봉 스님이 만공 스님에 대해 갖은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만공 큰스님은 마침 법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모든 스님들이 뛰어나와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큰스님은 고봉 스님의 방문을 열어제쳤다.


"고봉아, 너는 왜 내 욕을 하고 다니느냐?"
그때 고봉 스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고봉 스님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큰스님, 나는 큰스님을 욕한 적이 없읍니다."
"아니 무엇이라고? 방금까지 내 욕을 하고 있었던 것을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들었다.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나는 스님 욕을 한 것이 아니라 바보같은 '만공'이라는 스님에 대해 욕을하고 있었읍니다."
고봉스님은 만공이라는 이름역시 누군가 지어준 이름이므로 앞에서 있는 만공 큰스님과
그의 본성 자체를 구별지어 대답한 것이다.그러자 만공 큰스님이 이렇게 물으셨다.


"만공과 내가 같으냐, 틀리냐?"
고봉 스님은 "할" 하고 소리쳤다. 만공 큰스님은 호탕하게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술을 너무 많이 먹었구나. 이제 그만 자거라."
그렇다 실수를 했는지, 않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한다.
덕산과 같은 큰스님도 실수를 한다.
중요한것은 그것을 어떻게 고치느냐이다.


고봉 스님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순간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를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는 즉각적으로 어떤 맑은 목적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덕산 큰스님이 실수를 해서 그의 실수를 바로잡지 않고 그의 방으로 돌아간다면 절은 온통 난리가 날 것이다.
그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실수를 했다.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그것이 네번째 질문의 핵심이다.




Thursday, August 16, 2012

7 문 고봉삼관


7 문 고봉삼관 [高捧三關] 고봉의 3개문

질문
1. 밝은 해가 허공에 높이 떠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데, 어째서 왜 조그만 조각구름이 해를 가리었는가?
2. 사람마다 모두 그림자가 따르고 있어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밟지 않을 수 있겠는가?
3. 온 천지가 모두 불구덩이다. 어떤 삼매를 얻어서 타 죽지 않겠는가?

이것은 완벽한 행동공간이다. 어떤 것도 점검하지 말고 단지 행하라.
실체를 바로보고 실상을 깨달아 실용을 한다면 이 공안은 문제가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해 전에 일본에는 사무라이 역을 잘하는 유명한 배우가 있었다.
그는 20년 경력의 검도 7단이었고 아주 잘 생긴데다가 기술도 좋았다. 일본에서 아주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의 아주 유명한 감독이 만드는 사무라이 서사극의 주연 배우로 캐스팅 됐다.


대형 영화회사가 돈을 대는 작업이었다. 조명사, 의상 담당자.
음악 담당자 등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모였다.
시나리오는 보통 사무라이 영화들처럼 아주 단순하다.
악당이 나타나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주인공이 나타나 그들을 무찌른다.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최고다. 누구도 이 영화에서 나 만큼 연기를 잘할 수 없다.
드디어 첫 번째 장면을 찍는 알이었다. 감독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렇게 소리쳤다.
"조명, 카메라, 준비됐으면 액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악당이 바위뒤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왔고,
주인공이 단칼에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생각했던 바대로 실감나게 연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감독이 NO 사인을 내는것이 아닌가. 주인공은 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도대체 왜NG 사인을 내는거야?'
주인공의 의구심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그러나 감독은 "아니야 아니야, 다시해, 다시"라며 또 NG 사인을 냈다.
주인공은 화가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이렇게 대한 적이 없어, 이건 완전히 나를 갖고 노는거야.'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집중했다.
'아마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어, 이번에는 잘되겠지.'
악당이 다시 튀어나왔고 그 순간 주인공은 마치 도술을 부리듯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둘렀다.
그러곤 악당을 완벽하게 무찔렀다.


그러나 감독은 다시 NG 사인을 내는것이 아닌가. 주인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사무라이 배우다. 나한테 이처럼 세번씩이나 NG를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 자기 몸집의 절반도 안되는 감독을 노려 보았다.
감독은 배우의 마음을 알아 차렸지만 얼굴에는일말의 동요도없었다.


그 감독은 이미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다시 돌아갔다. 감독이 사인을 냈다.
"조명, 카메라, 액션."악당이 나타났고 주인공이 뛰어 오를 찰라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이 방향을 바꿔 감독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아아---- 당신을 죽이고야 말겠어."
그는 감독의 멱살을 잡아 땅에 내리쳤다.
그러나 감독은 그의 행동에 전혀 동요하지않고 도리어 마구 웃더니 아렇게 소리쳤다.


'하하하하 맞아, 맞아.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
주인공은 그제야 정신이 난듯 감독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제 감독님 가르침을 알겠읍니다."
감독은 그저 웃음만 터뜨리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그들 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돼 모든 장면에서 한번이나 두 번 정도만 찍고 넘어갔다.


주인공은 오로지 머릿속에 연기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런 일이 있고 부터는 자만이나 헛된 감정은 없었다.
이 영화는 나중에 일본에서 가장 훌륭한 사무라이 영화로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감독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그는 자만에 가득찬 배우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최고야, 누구도 나를 가르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문제이다. 이런 점검하는 마음이 나타나면 연기는 완전하지 않다.
그리하여 주인공에게 자극을 가함으로서 100퍼센트 집중하는 마음을 갖게 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내가 너를 죽이겠다."
당신이 무언가를 할 때 그냥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과 전 우주가 하나가 된다.
이것이 고봉 스님 질문의 핵심이다.

6 문 부처님 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6 문 부처님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한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문 채 법당에 들어와 부처님 얼굴에 연기를 내뿜기도 하고 손 위에 담뱃재를 털기도 한다.
스님 한 분이 놀라서 뛰어와 이렇게 꾸짓는다.
" 지금 성스러운 법당에서 뭐 하는 것이냐?"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성스렁운 것도, 속된 것도 본래 따로 없는 것이거늘, 부처님의 머리에 재를 털었기로서니 무엇이 잘못됐는가요?
이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이고, 그 하나가 바로 나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든 다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요?"


질문
1. 당신이 스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제도[濟度] 하겠는가?

언뜻 생각하면 이 남자 말이 맞다.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많은 절의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 있다.
'온 우주가 부처이다'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다. 부처는 도처에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우주에 부처의 몸 아닌 것이 없다.
한 남자가 법당에 담배를 피우면서 들어온다. 그는 불상에 연기를 내뿜고 머리에 재를 떨어뜨린다. 스님이 놀라 뛰어온다.


"미쳤느냐, 왜 성스러운 부처님의 머리에 담뱃 재를 터느냐?"
하지만 남자는 절의 기둥에 적힌 문구를 가르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 여기 이렇게 우주 만물이 부처라고 씌어 있지 않습니까?
이 담뱃재도 불성을 가지고 있읍니다. 내가 재를 어디에 떨어뜨린다 해도 부처님의 땅 아닌곳이 어디 있읍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는 알고 있지만 둘은 모르고 있다.
그는 모든 법이 여여[如如], 즉여[卽如] 그리하여 올바른 실용으로 나아가는 경계를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 그는 '공'에 집착해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신심이 깊은 한 보살이 무려 10년 동안 한 스님의 수행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를 위해 암자를 지어주고 음식과 옷과 약을 주었다. 보통 10년 정진,
수행을 하면 깨닫는다고 생각한 그보살은 10년 후 그 스님이 얼마나 깨달았는지 듣고 싶었다.
마침 보살에게는 예쁘고 젊은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날 보살은 딸에게 아주 예쁜 옷을 입힌 다음 맛있는 음식 훌륭한 옷을 스님에게 보내면서 색다른 당부를 했다.


"이것들을 스님께 갖다드려라. 그런다음 스님을 유혹하거라. 그런다음 스님의 반응을 내게 알려다오."
딸은 스님이 있는 암자로 갔다. 그러고는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께 듣지하니 당신은 위대한 스님이십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수행을 하셨다구요.


어머니께서 이것들을 가져다 주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순간, 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내치며 이렇게 말했다.
"찬 바위에 썩은 통나무다 엄동설한에는 온기가 없는 법이다."
딸은 마을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 정말 훌륭한 스님이세요. 저를 "찬 바위에 썩은 통나무이다. 엄동설한에는 온기가 없는 법이다"라고 하시면서 전혀 흔들림이 없었어요."
그러나 딸의 말을 들은 보살은 스님에게 냅다 뛰어 올라갔다. 그러더니 스님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10년동안 악마를 봉양했구나. 여기서 나가라. 이 악마야."


보살은 스님을 암자 밖으로 내쫓았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작스런 보살의 행동은 무엇인가? 스님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가?
이 스님은 불상에 재를 떨어뜨리는 담배 피우는 남자와 같다. 스님는 단지 그의 생각에 집착해 있을 쁜이었다.


그는 그의 수행 경험에 집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행했을 뿐이었다.
외국에는 이런종류의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물론 조용하고 평화롭고 움직이지않는 마음을 기지기 위해 수행을 열심히 하면 원하는 상태를 얻을 수 있다.
명상을 해서 어던 좋은 감정을 가질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속에 지혜가 있는가?
단지 평화로운 마음만 간직한다면 지혜가 어떻게 자랄 것인가. 이런 식으로 수행한다면 지혜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 바른 상황, 바른 관계, 바른 실천을 행할 수 없다.
앞서 예로 든 그 스님이 그 상황에서 인식해야 할 바른 관계란 그 딸이 자신을 10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봉양해준 보살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바른 행동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이 젊은 여자에게 맑고 자비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누군가 법당에와서 부처님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고 머리에 재를턴다. 그는 그가 처한 현재 상황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순간순간 올바른 실천도 하지 못한다. 당신이라면 부처님 불상에 재를 턴 그 남자를 무슨 말로 가르칠 것인가?
조심하라. 그 남자는 아주 집착이 강한 사람이여서 여러분이 그를 때리면 그는 더 세게 어러분을 때릴 것이다. (하하하)


Wednesday, August 15, 2012

5 문 향엄 상수

5 문 향엄상수[香嚴上樹]
나뭇가지를 물고 나무에 매달려 오르기


향엄 큰스님이 말했다.
"가령, 누가 나무위에 매달려 있다고 하자. 두 손은 등위에 꽁꽁 묶여 있고,
발판도 없이 다만 입으로 가지를 물고 있다고 하자.

그때 나무 아래서 누군가 나무위에 있는 사람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쩔 것인가.
대답하지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않은것이 되고(즉, 죽게되고),
대답을 하면 입을 열어야 하므로 목슴을 잃는다."


질문
1.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나겠는가?
이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공안 이다. 입을 열어도 죽고, 침묵을 지켜도 죽는다.
달마 선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었을 때 무엇을 이러쿵 저렇쿵 설명하겠는가.

입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 공안은 일종의 비유이다.
지금 이 입 하나에 달려있다는 것,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 흐르듯 말을 한다해도,
입을 놀려 장광설로 멋있는 설명을 거침없이 해나간다 해도,


다 소용없는 것이다. 말은 언제든지 잘못될 수 있고 잘못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생각을 완전히 끊으면 '오직 모를 뿐'을 깨닫는다. 이것이 생각 이전의 상태이다.
삶도, 죽음도 없다. '오직 모를 뿐' 이 싦과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생각하면 삶이다.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한계를 넘어 선 것이다.


그래서 이 공안에서는 우리가 살고 싶으면 죽는다는 역설을 가르친다. 나무 위에서 가지를 입에물고 있을 때 어느 것이 올 바른 행동인가.
다 내려놓아라 그러면 당신앞에 맑게 나타난다.

Monday, August 13, 2012

달마 대사의 수염

4 문 달마 대사의 수염


혹암[或菴]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달마 대사는 왜 수염이 없는가?"


질문
1. 달마 대사의 본래 얼굴은 무엇인가?
2. 당신에게 묻겠다. 왜 달마 대사는 수염이 없는가?
이것은 상당히 공격적인 공안이다. 선은 마음속에 어떤 것도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혹암 큰스님은 뭔가를 만들어 냈다.
"왜 달마 대사는 수염이 없는가?"


우리는 먼저 달마 대사의 본래 모습을 알아야 한다. 달마 대사의 본래 모슴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달마는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없다. 또한 수염도 없다.
이것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공'함에 집착하면 부처님 조차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다.
그러니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이름과모양을 걷어내려 노력하라.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바르게 사용하는가. 그들의 바른 기능은 무엇인가.


이름과 모양의 바른 기능(실용)을 찾는 다면 아마 수염이 있을 것이다.
어떤 스님들은 "왜 달마 대사는 수염이 없는가?" 하고 물었을 때 제자들이 '무' 하고 대답하면 만족한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이름과 모양의 바른 기능을 집어내지 않는다.
옛날 금강산에는 마하연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한 번에 1천여 스님들이 참선수행을 했을 정도로 크고 유명했다.
산 밑에는 유점사라는 아주 유명한 강원이 있었고, 산 중턱쯤에는 유명한 금강산 온천이 있었다.
그 온천의 주인은 아주 신실한 불자여서 스님들에게 온천을 무료로 이용하게 했다.


어느 날 유점사에서 학승들을 가르치는 솔해라는 강사가 온천에 왔다. 그는 당시 아주 유명한 강사였다.
솔해 스님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주인 여자가 공손하게 예를 갖춰 그에게 말했다.


"스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네, 여기 온천물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자 그 주인여자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뜨거운 물에 몸은 깨끗이 씻으셨는데, 마음은 어떻게 씻으셨읍니까?"
그러자 순간 솔해 스님은 할 말을 잃었다.


'마음을 어떻게 씻었느냐?' 만약 마음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깨끗이 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여러분이 있다고 해도 나는 여러분을 이주장자로

30방 때릴 것이고 없다고 해도 30방을 때릴 것이다. 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이 역시 아주 공격적인 공안이다. 이것이 혹암 큰스님 질문의 핵심이다.

Saturday, August 11, 2012

3문 암환주인


三門 巖喚主人 서암이 스스로를 주인으로 부르다

서암 큰스님은 날마다 자기에게 "主人公 아!" 하고 부른다음
"예" 하고 대답했다.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려라."
"예."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서도 남에게 속지 마라."
"예." "예."

질문
1.서암 큰스님의 마음은 두 개이다. 어떤 마음이 참 주인공인가?
종종 아이들이 소꼽놀이나 인형놀이를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은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너는 나를 좋아하니? 나도 너를 좋아"한다.

인형은 전혀 말을 못하는데도 아이들은 대화하듯 혼자 얘기한다.
이 아이의 마음은 하나인가, 둘인가. 서암 큰스님의 마음은 이 어린아이들과 같다.
그는 아주 단순하고 맑은 마음을 가졌다.

내가 묻고, 또 다른 내가 답한다.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우리가 맑은 마음을 가지면 만물이 바로 '나'이다.

하늘도 '나'이고, 나무도 '나'이고 멍멍 짖는 개도 '나'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다. 단지 일종의 설명에 불과하다.
이 설명을 소화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앞에 진리가 아주 맑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 안에 주인공을 자처하는 두 놈이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 진짜 주인공과 가짜 주인공이 있다.
약한마음도 있고 굳센 마음도 있고 삐뜰어진 마음도 있고 바른 마음도 있다.
순수한 마음도 있고 불순한 마음도 있다. 여러분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Friday, August 10, 2012

2 문 조주세발

2 問 조주세발[趙州洗鉢] 발우나 씻고 가거라

한 스님이 조주 큰스님에게 물었다.
"막 절 문에 들어섰읍니다. 부디 가르쳐주십시요."
그러자 조주 큰스님께서 물었다.

"아침은 먹었느냐?"
"네, 먹었읍니다."
"그러면 발우나 씻고 가거라." 순간 젊은 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다.

질문
1. 젊은 스님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2. 여러분이 만약 질문을 한 스님이라면 조주 큰스님이 "발우나 씻고 가거라"고 하셨을 때 무엇이라고 했겠는가?

이 공안은 매일 우리가 일상에서 거쳐야할 마음, 즉 평상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공안이다. 평상심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올바른 길, 올바른 생활이다. 평상심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올바른 길, 올바른 생활이다. 질문을 한 스님이 "발우나 씻고 가거라" 하는 조주 큰스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평상심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공안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주 큰스님은 때때로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아침은 먹었느냐?"고 물으시고는 제자가 "네, 먹었읍니다"고 하면 아침 식사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조주 큰스님은 발우를 씻으라고 하셨다. 보통 발우는 공양(식사)을 마치는 즉시 하는 일이다.

조주 큰스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바로 이것이 조주 큰스님의 독특한 방식이다. 그는 제자들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는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제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어떻게 제자들의 마음을 깨울 것인가? 그의 관심은 온통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조주 큰스님은 항상 제자들을 이런 식으로 시험하셨다. 여러분이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조주 큰스님이 발우를 씻으라고 했을 때 어떻게 했을 것인가? 아침 식사는 오래전에 끝났다. 그릇도 이미 깨끗하다. 그러면 가서 다시 그릇을 닦겠느냐. 마음을 맑게하여 그에 맞게 대답해야 한다. 초심자는 '그릇을 닦겠다'는 종류의 간단한 대답도 가능하다.

하지만 수행을 한 사람이라면 조주 큰스님의 등을 내리쳐야 한다.(하하하) 선은 순간순간 직관적으로 어떻게 우리가 올바른 상황, 관계, 실천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옛 훌륭한 선서들로부터 나오는 어떤 종류의 '말'도 중요하지 않다. 순간순간 그것을 바르게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혜이다.

첫째 질문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一 問 조주[趙州]의 개[狗]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조주 선사께서 어떤 스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狗子還有佛性也無]"

조주 큰스님은 "무[無]"라고 말했다.

질문

1. 부처님은 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조주 대선사는 개에겐 불성이 없다고 하셨다. 어느것이 옳은가?

2. 조주 대선사께서 '무[無]"라고 말한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디.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



이것은 아주 유명한 '무'자공안이다.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태양, 달, 별, 산, 너, 나, 우리 모두 똑같은 실체라고 했으며, 너의 본성, 나의 본성, 개의 본성이 모두 하나라고 했다. 불성을 일컫는 이름이 '실체'이다 만물이 비록 제각각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주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주 대선사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원래 모든것은 공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부처님도 불성이 없는가? 부처님도 공하기 때문에?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만물의 본성을 굳이 표현하고 싶으면 어떤 구체적인 표현을 하는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여기 시계가 있다. 내가 이렇게 묻겠다. 이 시계에는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크다' '무겁다' 도금이 되었다' 등등으로 대답 한다면 충분하지않다.
뭐, 한 면만 본다면 그런대답이 어떤 설명이 될수는 있겠다. 그러나 한쪽 면에서먼 사실이라면 그것은 완벽한 대답이 아니다. 또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색이다'라고 대답 할 수도 있다. 유효한 진리를 얘기한 것이지만 그것도 충분하지않다. 그런 대답은 형이상학적인 대답이다.

그렇다면 이 시계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낮 1시다. 시계와 관련한 바른 실천은 무엇인가.이 시계의 바른기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계는 시간을 가르쳐주는 기계라는 것이다. 모든 공안이 그와같다. 아주 쉽다.

참선은 이처럼 우리가 바로 이 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조주스님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신 것은 어쩌면 틀린말일 것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참선이모든 생각에 대한집착을 끊는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종종 제자들에게 틀린 말을 하기도 한다. 말과 단어에 대한 의존을 끊는 것이다. 맞다, 틀리다에 집착ㅎ하지 않고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나 바뀐다.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생각은 (그전엔는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것도)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바뀐다.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이다.

조주 큰스님의 무'자 공안도 이와 비슷하다. 조주 큰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스님은 개가 정말 불성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언지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만물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개에게도 있을까? 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스님은 머릿속으로 아주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어떻게 이 스님의 생각을 끊게 할 수 있을까. 조주 큰스님은 이런 상황에서 '틀린' 대답을 함으로서 그 스님의 생각을 끊으려 한 것이다. 이것이 '무'자 공안의 핵심이다. 조주 큰스님은 맞다. 틀리다는 개념적인 답이 아니라 제자의 마음속에 똑바로 들어가서 제자에게 큰 의문을 안겨준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후 조주스님이 본래 가르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오직 참선할 때 '무'자 화두를 사용하는 수행법이 등장했다. 이는 조주 큰스님이 내민 약에 집착하는 경우이다. 특히 일본불교에서 많은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이 '무'를 강하게 잡아서 '삼매'에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행자는 소리를 지른다. "무------" 그러면 스승ㅇ은 이렇게 말한다. "더 강하게" 학생이 "무우우------"하면 스승은 만족해 한다.

이것은 옳은 수행이 아니다. 진정한 삼매도 아니다. 선은 순간순간 거울처럼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無] 삼매는 마음속 만물이 단지 무가 되는 것이다. 붉은 것이 와도 '무' 이고, 흰것이 와도 '무'이다. 오직 '무'이다. 이것은 집착이다. 배고픈 사람이 와도 '무'이고, 목마른 사람이 와도 '무'이다. 이것은 집착이다. 아주 나쁜 선병이다. 실제로 참선수행은 삼매와 관련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선은 언제나 맑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심리치료와 참선 수행을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 편안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순간적이라 할 지라도 괴로움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편과 같다. 수행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려 하지않고 다만 참선만 하려한다. 그러면 수행과 삶은 분리된다. 참선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서쪽으로 가고 싶은데, 동쪽으로 가는 셈이다. 선은 특별한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평상심, 이것이 진정한 선의 마음이다. 단지 '무'의 삼매 수행에만 집착하다면 중생이 가지고있 는 각각의 요구, 각자의 다른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가 없다. 단지 '무'만을 볼 뿐이다.

이 공안에서 첫 번째 질문은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주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것이 옳은가?" 였다.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있는가,없는가? 있는가 , 없는가? 이것은 오직 생각이다. 불성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주 스님은 '없다'라고 대답함으로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생각을 놓아버리고 말과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 그것이 이 첫 번째 질문의 핵심이다.

두 번째 질문 "조주 큰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무'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슨뜻인가? 질문도 마음속에 완벽히 생각을 끊으면 명확해진다. '무[無]'란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어떤사람들은 '무'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지만 본래 특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만공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주의 '무'자 공안에서 '무'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만공은 "절 앞 밭을 보아라. 거기에(먹는)무가 많을 것이다."라고 했다. 바로 지금 이순간, 것이 진리이다.

세 번째 질문인 "그러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가 묻는 의미도 아주 명쾌하다. 실체와 진리를 깨달아 바른 실천을 하는것, 그것이 조주 큰스님의 '무'자 공안이다.

Tuesday, August 7, 2012

10개의 공안

10개의 공안

임제종은 1백칙 공안을 뽑아 '벽암록[碧巖錄]'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조중동은 이른바 '종용록[宗容錄]'이라 불리는 1백칙을 사용한다. 조중동의 공안 모음집이 단순한 것임에 반해, 임제종의 그것은 아주 복잡한 공안 모음집이다.

이중에 48개 공안을 선택해서 엮은 것이 '무문관[無門關]'이다. 때때로 '문 없는 문' 혹은 '문없는 길목'이라 번역된다. 한국불교의 조계종은 1천 7백 개의 중요한 공안 모음집을 발전시켰고, 우리 관음선종에서 추린 10개의 공안을 통과하면 주요 공안들을 거치는 셈이된다.

물론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이상 공부를 하지만 10개의 문을 통과하면 모든 공안수행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공안이 무엇인지 알면 바른 수행이 무엇인지도 알게된다. 하지만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않다. 개념적인 이해만가지고서는 공안의 참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안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안들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또 공안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수행을 열심히 하지않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점검해서 공안의 의미를 소화하지 못한다면 이 공안은 단지 마른 지식일 뿐이다. 공안은 수행에 방향을 제시한다. 그 방향이 바로 '오직 모를 뿐' 이다. 공안에 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완벽하게 행할 때 비로소 공안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 남쪽으로 10리 가량 가면 독수리 머리모양의 봉우리를 가진 큰 산이나온다. 더 올라가면 개울이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여기서 10리를 더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그 동굴에 금주전자가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금주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선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말을 잘 이해한다 해도 스스로 걸어가지 않으면 결코 금주전자를 얻을 수 없다. '돈'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아는것과 실제 내 주머니에 갖고 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공안도 마찬가지다. 잔지 공안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안 인터뷰를 할 때에는 좋은 대답을 하지만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살지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안을 '이해'하는것은 좋지않다. 답이 옳읁지, 틀린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이 맑고 순간순간 바르면 공안의 답은 큰 문제가 아니다. 수행과 일상은 하나이다.

우리 관음선종에서 제시하는 공안 수행의 핵심은 '오직 모를 뿐' 과 일상생활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참선을 통해 어떻게 순간순간 중생을 도우며 살까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엤날처럼 '화두'만 잡고 있거나 시적인 주석에만 몰두하기 힘들다. '무' 자 화두를 들고 길을 걸을 때나 잠잘 때나 24 시간 내내 한 생각만 하고 있다면 아마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안 수행이 필요하다. 옛 스승들의 지혜를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수행함으로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삶 속에 선의 올바른 실천을 위해 공안을 사용하는것이다. 순간순간 따지는 마음없이 오직 다른사람들을 돕기위해 공안을 사용하는것이다.

공안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은 우리 삶의 기본방향을 제공한다. 그것들은 본래 마음의 지혜를 바로 지금 어떻게 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부를 열심히하면 마음이 항상 맑게 유지되며, 매 상황마다 모든 중생을 도울 수 있다.

오직 모를 뿐 으로 정진하라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이 책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등의 아주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며, 기독교나 카톨릭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말과 단어는 단지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한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동양도, 서양도,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없다. '오직 모를 뿐'은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참선도, 그 어느것도 아니다. 미국인 제자 한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셨는데, 왜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구분하십니까?
나는 아렇게 대답했다.

"나는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조차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모를 뿐'을 기르칠 뿐이다. 알겠느냐?"

언제 어디서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에 얽매이지 말라. 뼈대는 오직하나.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중생의 잠을 깨워 이 세상을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 모든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면된다. 참선수행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적과 축복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물론 때때로 이런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내면 속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태어날 때 나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 나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 물음은 제쳐두고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욕심, 분노, 무지를 좇는 데 사용한다. 결국에는 변할 것, 무상할 것들을 좇으며 산다. 감정과 고통에 집착하고, 어떨 때는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면서도 그들의 전 삶은 고통의 바다를 떠다닌다.

우리의 업을 지배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죽을 때(몸이 사라질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죽는순간 당신의 업은 당신을 어딘가로 끌고 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마 십중팔구 다시 고통의 바다에 태어날 것이다. 모든 생각을 끊으면 '참나'로 돌아갈 수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Friday, August 3, 2012

타운뉴스 칼럼
타운뉴스 발행인 안창해

총[銃]

사내아이들은 총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이이들이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총을 좋아한다. 사내들이 총을 놓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로 총의 모양새가 남성을 상징하나다는 프로이드 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또 각종 범죄물과 폭력물 등에서 보여주듯이 모든것을 단죄하고 해결하는 궁극적 수단이 되기도 하는것이 총이다. 살상무기이지만 꺼꾸로 범죄와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그 조그만 쇳덩어리가 사내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다.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성인이 돼서는 쉽게 진짜 총을 구입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가슴설레는 일인가.

미국은 합법적으로 개인의 총기 소유 및 소지가 가능한 나라이다. 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낚시도구를 사는 것 처럼 쉽다. 신원조회를 통해 전과유무를 확인하는 것만이 낚시대를살 때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게 많은 일반인들이 총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총기로 인한 사고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는 하나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한다.

지난주에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길 건너를 보니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극장건물 앞에 수많은 젊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길바닥에 앉아 있고 심지어는 누워 있기도 했다. 대부분 십대, 이십대 젊은이들이었고 간간이 나이 든 사람, 혹은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군화같은 부츠에 군복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쩐지 심상치 않아 무슨 영화를 보려고 저리 줄 서있나 물어보니 그날 자정에 개봉하는 배트맨 시리즈 3탄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려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닐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시의 배트맨 영화개봉관에서 무장괴한이 죄 없는 관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래 12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소만 달랐지 같은 영화를 보려고 모여 들었던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희생자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무차별 난사를 저지르고 체포된 젊은인는 장래가 촉망되는 뇌과학 분야 박사과정의 학도였다. 그는 지난 몇 개월동안 온라인으로 총기류 및 탄알을 만 오천불 어치나 구입했다고 한다. 총기류를 인터넷으로도 구입할수 있다니.

그렇게 쉽게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총기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구입하는지도 무른다. 일단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 총은 언젠가는 사용되어질 것이고 그 순간에 누군가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자기방어를 위해 총이 필요하다고 총기소유 및 소지를 정당화하는 의견도 있으나 어쨋든 총은 살상무기이다.

사람은 평소에도 감정 조절이 잘 안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한다. 분노가 일고 복수를 하고 싶어도 사회의일원으로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교육을 받는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무차별적인 폭력의 이미지에 속절없이 노출되어 있다. 일상에서 폭력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오락화 되어있으며 범죄물과 폭력물이 태반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폭력행사는 미화, 정당화, 심지어는 영웅화되고 있다.

이렇게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회속에서 청소년들은 게임이나 영화등에서 난무하는 살인행위들을 보고있다. 사람이죽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주 보도되는 총기 사건을 볼 때마다 그리고 가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규모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을 할 때마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폴력에 무감각해지고 총기류 및 무기를 아무나 쉽게 입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일이 어날 수 는가"라는 말은 무책임한 질문이다. 오히려 "올것이 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까?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 총기협회의 로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총기소지를 법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고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이런일이 발생할 때 마다 목소리높여 외쳐야 한다. 방울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도 뚫지 않던가.

아울러 개인의 총기소지를 막기 위해 종교단체나 학교 등에서 앞장서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폭력에 젖은 사회 분위기를 순화시켜야 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사건으로 인해 다시한번 자각하고 개개인이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일으켜야한다.

사회의 변화는 법이나 억누름을 통해 강압적으로 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사람 개인이 의식을 바꿀 때 일어난다.

ch@townnewsusa.com

Thursday, August 2, 2012

있는 그대로 부처다

있는 그대로 부처다• 卽如如佛 Just-like -This is Buddha
靈光獨曜 逈 脫根塵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The sprit remains clear and bright. The six roots(senses) and six dusts(perceptions)fall away.
休露眞常 不拘文字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The original body remains clear constantly. Speech and words cannot hinder it.
眞性無染 本自圓成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True Nature has no taint, and is already a perfect sphere.
但難妄緣 卽如如佛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Not attached to any thinking, just-like-this is Buddha.
四大各難如夢中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The four elelments(earth, fire, water, air) disperse as in a dream.
六塵心識本來空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The six dusts(perceptions), roots(senses), and consciousness are originally empty.
慾識佛祖廽先處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
Do you want to understand the Buddha and the eminent teachers?
日落西山月出東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The sun sets over the western mountains. The moon rises in the east.
오래전 중국에 '신찬[神讚]'이란 스님이 한 분 살았다. 그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실험을 모두 통과했다. 은사스님이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은사스님은 참선 수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신찬에게 경전만 가르쳤고, 나중에 훌륭한 학승이되어 그이 맥을 이어가기을 바랐다.
그러나 신찬은 경정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의문이 생겼다.
어느 날 은사스님은 뛰어난 제자 세명을 뽑아 3년동안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그 돈으로 중국어디서나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찬도 그중 하나로 뽑혔다. 은사스님이 제자 세 명을 불러모았다. 그들 각자에게 앞으로 3년동안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첫 번째 스님은 유교를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스님은 도교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내 신찬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네가 이미 경전에 도통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나 신찬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3년동안 좀 쉬었으면 좋겠읍니다."
스승은 약간 서운했지만 승낙했다. 신찬은 곧바로 길을 떠나 참선을 가르치는 절로가서 아주 열심히 수행했다. 그는 오직 100퍼센트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며 3년 정진끝에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그곳에 그대로 머물까도 생각했지만 어릴 때 부터 항상 그를 돌봐주어 왔던 은사스님에 대한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드디어 드디어 신찬을 비롯한 제자 세 명이 모두 3년 뒤 약속한 날짜에 모였디. 은사스님은 제자들을 하나씩 불러 그동안 공부한 것을 물었다.
"그래, 유교를 공부하여 무엇을 배웠느냐?"
"언제나 다른사람과 좋은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을 배웠읍니다. 부모와 스승을 공경하라는 것도 배웠읍니다."
"훌륭하다."
"그래 신찬은 지난 3년간 무엇을 배웠느냐?"
"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읍니다."
"아니, 저 두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너는 배운 게 없다고?"
"피곤할 때 잠자고 배고풀 때 먹었읍니다."
엉뚱한 대답에 은사스님은 화를 냈다.
"이 발칙한 놈 같으니. 저 두사람은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스승이 될 터인데, 너는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왔다는 말이냐. 너는 내일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심부른이나 하거라."
스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신찬을 마음속 깊이 아꼈기에 내칠 수가 없었다. 신찬은 매일 스승의 방을 청소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빨았다. 어느 날 은사스님이 목욕을 하면서 신찬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신찬은 그의 등을 밀면서 온잣말을 했다.
"법당은 훌륭한데 영험이 없구나 [好所佛堂 而佛不聖]"
은사스님이 무슨 말인지 몰라 천천히 얼굴을 돌려 신찬을 바라보자 신찬은 계속해서 말했다.
"부처는 비록 영험이 없지만, 능히 放光을 하는구나."
이말을 들은 은사스님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충격을 받고 신찬이 보통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녀석이 뭔가 바뀌어 돌아왔구나.'
며칠후 어느 날, 은사스님은 방에서 열심히 경전을 일고있었다. 신찬은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룻바닥을 조용히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지기 벌 한 마리가 방 옆 창호지에 달라붙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옆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나갈곳을 찾기위해 아둥바둥거리고 있었다. 이를 물끄러미 보고있던 신찬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계는 광대하고 넓은데 어찌하여 낡은 창호지만 뚫고 있는냐." 그리고 신찬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空門不背出]
창을 뚫고 있으니 어리석구나[投窓也太癡]
백년을 낡은 종이 뚫어보아야[百年鑽故紙]
언제나 깨칠 날을 기약하리오[何日出痘時]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신찬의 눈을 꿇어져라 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은사스님은 잠시 후 이렇게 물었다.
"네가 바깥에서 행각하며 누구를 만났고 어떤것을 배웠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
신찬이 말했다.
"저는 이곳을 떠나 백장[白丈] 큰 스님께 갔읍니다. 그리고 백장 스님의 가르침을 입어 얻은 바가 있읍니다만, 은사스님께서 연로하신것을 생각하고 일부러 돌아와 지비은덕을 갚고자 한것 뿐입니다. 스승님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조잡한 언어로 시를 지어보았읍니다. 용서하십시요."
은사스님은 잠시 침묵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다. 너는 나의 제자였지만 이제 네가 나를 가르치는구나. 너의 깨달음을 나에게도 전해다오."
은사스님은 북을 울려 모든 스님들을 법당 안으로 모이게 한 뒤 신찬에게 설법을 청했다. 신찬은 법좌에 올라서 이렇게 말했다.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靈光獨輝)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迥脫根塵)
진여의 항상한 본제 드러나 (體露眞常)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不拘文字)
마음의 성품이 물듦이 없으니 (心性無染)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本自圓成)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但難妄緣)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卽如如佛)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四大各難如夢中)
욱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六塵心識本來空)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慾識佛祖廻先處)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日落西山月出東)
신창의 시를 찬 줄 한 줄 보자.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이 문장은 본성과 공을 설명하고 있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엊ㅄ고 마음도 없다.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경전의 공부와 학문적 사고의 틀을 깨도 있다.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본성이 맑으며 이미 완전한 원[圓]이다. 우리 본성은 그대로 완전하다 . 따라서 원죄란 없다.
우주처럼 시작도 , 끝도 없다. 그래서 그다음 문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다.
다음 문장은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이다.
이는 소승불교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고통의 세계, 아니 사실은 고통으로 가득한 꿈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공함, 열반을 얻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모든것은 오로지 우리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섯 가지 먼지(인식작용). 여섯가지 뿌리(감각). 그리고 여섯가지 의식은 본래 공하다.
이 문장은 대승불교 가르침의 벼대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과 조시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미지막 문장은 이에대한 답이다. 다름 이닌 완벽한 있는 그대로의 진리(Just like-this Buddha ) 를 표현하고 있다.
'선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 이다. 여여[如如]하다. 구것이 전부이다. 마음이 공하면 맑은 거울과 같다. 태양이면 태양, 달이면 달, 있는 그대로 비춘다. 그때 우리는 순간의 세계(moment-world)를 얻는다. 그것이 단지 진리이다. 비추는 것이다. 이것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본성이란 바로 불성이다. 그것은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든 말로 표현할력고 하니까 '불성' ,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미국 가톨릭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참선 지도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부처'라거나 '불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대신 '신성(神聖)' 으로 바꿔 불렀다. 수도사들은 아주 행복해했고 우리 모두는 완전히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떻게 부르든 말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탕!"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에 즉각 깨닫고 말하기를 "다 늙어서야 궁극의 일을 듣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何期垂老 得聞極則事)"하였다.
이리하여 절의 소임을 신찬에게 맡기고 도리어 신찬스님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Wednesday, August 1, 2012

우리는 불의 못참고 중국인은 불이익 못참아

"우리는 불의[不義] 못 참고 중국인은 불이익[不利益] 못 참아"

전 4선 의원 "중국이 지역구" 취임후 10년 수 백 번 다녀와 "중국, 적으로 대하면 적이 된다"

"내 지역구가 이젠 중국입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4선(11. 12.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세기(76) 한중친선협회 회장 말이다.
이 회장이 8월 초 한•중 수교 20 쥬년을 맞아 [이세기의 중국 관계 20년] (중앙북스)을 펴낸다.
국토 통일원 장관이던 1985년 인도네시아 에서 우쉐첸[吳學謙]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걸 시작으로 장쩌민[江澤民]#&8226;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등
중국 3. 4. 5 세대 지도부와 세대를 뛰어넘는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중국을 방문한다. 이 회장을 지난 26일 만났다.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가지다. 하나는 모든 인간돤계도 중요한건 상호신뢰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해서 상대를 봐야 한다. 다른하나는 중국을 올바로 봐야 한다는 건데,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의 중국을 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중국은 적이 된다.

-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거의 다 만나셨는데,
"우리 지돚자들이 직설적인데 반해, 중국 지도자들은 우회적이다. 특히 언어 구사에서 짧은 한 두마디 말로 많은걸 생각케 하는 함축적 표현을 즐긴다.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이 많다. 튀거나 거들먹 거리는 사람은 살아남기 어려운 분위기다."

-중국은 오는 가을 후진타오에서 사진핑으로 권력교체를 할 것 같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후진타오 주석은 한마디로 '신사'의 풍모를 갖고 있다. 먼지 하나 털 데가 없다. 그러나 속은 무척 단단한 사람이다. 반면 시진핑 부주석은 대범한 편이고, 서굴서굴하다 .
지신감도 넘친다. 특히 시장[市場]친화적이라 우리 기업들한테는 큰 기회가 될 것 같다."

-2002년 한중수교협회 회장이 된 이후 지금깢지 수백번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중국사람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시간[時間]을 보는 관점이다. 중국사람한테 시간은 무한대이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우리 회사원은 출장 기간내 무슨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정치인은 자기 임기내 무얼 이루려 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성어가 있듯이 오늘 내가 못하면 나중에 지식들이 하겠지 하며 느긋하다. 그러다보니 협상ㅇ에서 우리가 늘 밀린다."

- 중국을 상대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가 총론을 중시하는데 반해 중국은 각론을 더 파고든다. 우리 만족은 불의[不義]를 못참지만 중국인은 불이익[不利益]을 못 참는다.
비지니스건 외교건 철저하게 이해타산적 관점에서 각론을 중시하는게 중국이다. 중국이 흥정에 강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중국은 냄비가 아니고 가마 솥이다. 금방 끓는게 아니고 서서히 끓는---. 사귀는데 오래걸린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번 사귀어 놓으면 오래간다. 그게 꽌시다. 꽌시없는 중국은 생각하기 힘들다."
유상ㅊ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기림비 건립은 풀뿌리 운동이다

기림비 건립은 풀뿌리 운동이다. 시론 김동석 유권자센터소장

꼭 만 5년 전인 2007년 7월 30일 이었다. 연방하원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고발한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본은 일본정부가 20만명 이상의 아시안 여성들을 일본군대의 위안부로 강제 납치했음을 인정, 사과하고 보상, 배상해야 하며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대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다.

결의안 통과는 전국의 한인들이 합심해서 총력전을 펼친 결과였다. 그러나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틈탄 일본은 다시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확보하려는 궁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시민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에게 발톱의 가시가 되고있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확산을 막아 보려는 일본은 지난 5월초 자민당 의원들이 뉴저지 펠팍을 찾아와 기림비를 들여다 보고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철거를 요청했다. 노골적으로 돈을 줄테니 그렇게 해 달라고 까지 했다. 뉴욕주재 일본총영사도 기념비를 찾아와서 같은 요청을 하고 기림비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트집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펠팍 시장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은 일본의 요구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오히려 일본 총영사와 정치인을 훈계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엇다. 그 바람에 뉴저지 한인들이 세운 일본군위안부기림비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뉴스가 되었다.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인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관심도 쏟아졌다. 심지어 어느 롱아일랜드 한인 지도자는 한국내 어느 지방정부의 이름을 새긴 기림비를 한국에서 제작해서 들여왔다. 그리고는 지역정치인과 지역주민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생략하고

하루아침에 어느 공원에 뚝딱 기림비를 세웠다. 이 역시 두 번째의 기림비라고 한인 언론들은 큰게 보도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게 하지말고 자기집 정원이나 한인교회에 기림비를 세우면 더 빠르지 않겠느냐는 조언까지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네 지도자들은 무엇이 풀뿌리 정치이고 그것이 미국주류 정치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깊은 인식이 없는 것같다. 풀뿌리 운동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어떤 기림비나 결의안 활동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6월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을 만났다. 자신의 71번째 생일잔치에 초대해준것이다. 우리는 최근의 기림비건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진정한 풀뿌리 운동이 되도록 다시 힘을 합치기로 했다.

결의안 5주년을 기념해서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이면 철저하게 시민운동이나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것이 혼다의원의 의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지

한국과 일본간의 분쟁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리는 한국인만의 문제가아니고 그리고 한국인들만 이를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기위해 타인종 풀뿌리 단체들과 힘을 모아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 시민의 입장을 갖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다. 그리고 투표하는 유권자의 입장과 세금내는 납세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것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 이것을 우리 동포사회가 좀 더 분명히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쪼르르 서울로 달려가는 것을 반복해서는 올바른 길을 갈 수가 없다.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힘들고 더디간다 해도 바른길을 가는것이 튼튼한 기초가 된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5주년을 맞이해서 가장 시급하고 큰 과제 역시 우리 모두가 풀뿌리 운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바로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