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2, 2012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했던 절차의 힘

아폴로 13호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초인적인 절차의 힘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한 절차의 힘 1970년, 달 착륙을 목적으로 휴스턴에서 발사된 아폴로 13호는 우주 공간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그로인해, 산소 탱크와 연료전지, 전력공급 라인에 차질이 생기고 물의 공급이 불가능해졌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상 관제센터의 통제관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폴로 13호, 기적의 생환"은 실제로 일어났던 이 사건을 추적한 흥미진진한 책이다. 이 사건을 예로 드는 이유는, 우주선으로 달을 탐사한다는 거의 불가능에가까운 프롲젝트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산소와 물과 에너지가 고갈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지구로 무사히 귀환에 성공한 절차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 기적의 생환" 번역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일본의 유인우주기술은 아직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폴로가 달 착륙에 성공한 지 이미 4반세기가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술은 그 시대 미국의 발밑에도 미치지못한다. 문제는 기술력만이 아니다. 아폴로 계획같은 원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관리할 능력도 없으며, 우주선에서 일어났던 그런종류의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관리능력도 없다. 우주공간으로 사람을 쏘아 올렸다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기술은 아마도 이제까지 인류가 구축한 것들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절차일 것이다. 이 기술에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단계가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시뮬레이션도 포함되어 있다. 일상적인 문제라면 이미 마련되어있는 그 차례를 차근차근 밟으면 된다. 그러나 아폴로 13호의 경우, 미처 예상치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에는 존재하지 않는 차례를 단 시간에 새롭게 짜서 그 방대한 차례를 재 구축해야만 했다. 우주선의 모든 데에터가 수집되는 곳은 지상의 관제 센터다 지상의 스태프는 우주 비행사 이상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으므로 우주선의 무사 귀환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새롭게 순서를 재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주선에 그 사항을 전달하고 비행사들은 충실히 실행한다. 절차를 세우는 일은 우주 비행사보다 지상 스타프에게 더 큰게 부여된 임무다. 그러므로 우주선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가 여부는 전적으로 지상관제사의 결단과 절차의 힘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 차례를 전달받았을 때 우주비행사는 이미 무척이나 지처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숙지사항을 종이에써서 큰 소리로 복창하며 확인해가는 원시적인 방법을 취했다. 우주 비행사에게 데이터를 보낼 때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렇게 소리내어 읽으면서 매팅리가 가장 신경 쓴것은, 극도로 지쳐있는 스와이거트가 실수없이 체크리스트를 베낄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매팅리는 읽는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고, 한 줄이 끝날 때마다 사이를 두어 스와이거트가 복창하는 것을 기다렸다. "오케이", "오케이"하고 확인하며 체크리스트를 전부 읽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소리내어 복창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우주선을 조종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실수로 스위치를 잘못 누르지 않도록 하기위해 중요한 스위치마다 커다란 붉은 글씨로 'NO' 라고 써 붙여 둔 것이다. 착륙선을 분리하는 스위치가 지원선을 분리하는 스위치 바로옆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까닭에, 지원선을 분리할 때 실수로 스위치를 잘못 눌러버리면 자기들이 타고 있는 착륙선이 분리되어 우주 저쪽으로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붉은색으로 'NO'라고 쓴 종이를 붙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아무튼 전기 장치도, 산소 공급 시스템도 모두 고장 난 상태에서 남아있는 시스템만을 사용하여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켜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한 절차가 요구 되었다. 더구나 애초의 시뮬레이션에는 포함되지않은 절차라 자칫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제사는 여러개의 차트를 만들어 두어야 했다. 어느 작업시에는 ON 상태로 두어도 되었던 스윗치를 다른 작업 전에는 OFF로 해야만 하는 것 처럼 출력을 올리는 순서는 지극히 복잡했다. 이날 오전 9시, 발진시각 스위치의 ON - OFF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기록이 스와이거트에게 보내졌다. 관제사들이 손에들고 있는 차트에는 그것과 똑같은 ON - OFF 상태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스퀘어 1 배열' 이라 지칭하고, 여러개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때는 항상 이 배열을 참조했다. 즉, 기준이되는 차트를 만들어 다른 복잡한 배열과 병행해 차례를 적어넣은 것이다. 차트로 만들어 도식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다. 문장이나 말로 들을 때는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실제로 실행하려하면 혼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아날로그적 이라기 보다는 디지털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스위치를 ON 으로 할 것인가 Off 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행동은 명확한데 그에 대한 지시가 장황해지면 앞뒤 문맥이 혼란스러워진다. 게다가 밟아야할 절차가 스무단계, 혹은 서른 단계나 되면 일일이 기억할 수 조차 없게 된다. 이때 차트로 만들어 세부 항목을 도식화함으로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도식화하는 능력은 절차의 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제대로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면 도식화도 가능하다. 짚 인형 스케줄로 위기를 극복하다. 알론과 관제팀은 이 차트를 사용해 그가 '짚' 인형 스케줄' 이라고 명명한 해야 할 일의 목차를 담은 스케줄 작성에 착수했다( 돌에 부딪쳐도 끄떡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짚인형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특히 작업을 착수하기 직전, 전력을 조정하여 배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였다. 우주선의 어느 부분의 출력을 언제 올릴 것인가, 지원선과 착륙선을 언제 분리할 것인가. 이러한 작업들에 각각 어느 정도의 전력을 배분할 것이가 하는 사람들이 이 짚 인형 스케줄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원안을 만들고 그런 다음 거기에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하나 포함시켜간 것이다. 원인을 '짚 인형 스케줄' 이라 명명한 것이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짚인형이 다른의미로 사용되지만 (머리가 빈 사람을 가르킨다. 이 경우는 전체적이고 대략적인 스케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알론의 짚 인형 스케줄은 전체적인 윤곽만 담은 지극히 간략한 것이라서 거의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관제사들이 상세한 체크리스트를 적어 넣어 효과적으로 일할 수있게 해주는 효과적인 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상세한 체크리스트를 적어 넣기위해 개략적인 원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아폴로 13호의 경우, 철저하고 빈틈없이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을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도 위험요소가 많은데, 아예 그런 계획마저 세워져 있지 않다면 결국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개략적이어도 좋으니 우선은 원안을 만들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은 뒤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해 가야한다. 일을 할 때면 나는 어디까지 하면 그 일을 중단한다 해도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늘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처음 상태로 퇴보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즉각 다음단계의 작업에 착수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핵심적인 요령이다. 한창 의욕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긴장감이 높아져 있으므로 별도로 정리해 두지 않아도 다음날이면 즉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년정도 방치해 두면 다시금 제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전에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일목요연하게 차트화하는 것이다. 그것도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차례를 적어두는 것이 좋다. 책을 쓸 경우, 장[章]을 나누는 것까지만 생각해 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곽이 차츰 흐려지지만, 章속의 節과 세부사항까지 만들어두면 반년, 혹은 1년이 지나도 쉽게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차트화할 수 있을 때 까지 문제 해결에 접근해 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 아폴로 13호는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해 사태에 대처했다. 지구 대기권에 돌입할 때 우주선에 탑재되어있는 달 착륙용 착륙선을 분리해야만 했는데, 그에 필요한 지원선을 이미 떼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취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발하다. 착륙선과 사령선의 해치를 닫으면 양쪽을 잇는 터널에 선실에서와 동일한 기압의 공기가 차게된다. 그때 도킹 기구를 해제하면 '우주 재채기' 같은 현상이 일어나 터널내의 공기압으로 두 개의 모듈[小船]이 분리되게 된다는 것이었다. 러셀은 이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우주 재채기라는 것이 재미있다.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다. 이처럼, 절차가 틀어졌을 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절차를 세운다. 아폴로 13호에서는 실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물 부족 사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응이 그런사례 중 하나다. 한 시스템 기술자가 우주복이 물이 채워진 모관[毛管]으로 꿰매져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우주복의 발뒤꿈치 부분을 잘라내면 마치 가죽 자루로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그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지만 우주복은 만일을 위해 그런점 까지 고려해 만들어졌다. 자신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측정하는 방법도 재미있다. 컴퓨터 같은 기계 장치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스타 체크' 라 해서 특정 별을 기준으로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는데, 아폴로 13호가 지구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마침 그 별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지구가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나뉘는 경계선, 즉 명암 경계선을 이용하여 각도기 같은 것을 대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아폴로 8호 비상사태시 사용된 것으로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아폴로 13호 비행사들은 만일을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두었던 모양인데, 정말로 그것을 사용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리 연습을 해둔 덕분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외에 수동으로 육분의[六分儀: 천구 상의 두 점간의 각도를 재는기계]를 사용해 별의 관측 데이터와 실제 위치를 계산해 본 결과 오차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아폴로 13호의 절차를 통해 탁월한 절차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지상의 스태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준비하고 새로운 절차를 세운다. 그리고 비행사에게 지시할 때는 차트를 만들어 전달한다. 따라서 실수가 생기지 않는다. 지상의 관제사가 충분한 과정을 거쳐 그토록 확실한 절차를 세워두지 않았다면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지구에 귀환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무서울 정도로 복잡한 차례를 차트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문제 해결에 접근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인적인 절차의 힘을 성공시키는 열쇠다.

Sunday, September 16, 2012

한 일 갈등은 MB와 노다가 문제다.

한 . 일 , 갈등, 각하와 노다가 문제다.
김영희 칼럼 국제문제 대가자

친한 일본인 다수가 등 돌려 모수지지 확보에 활요할 뿐
보수지지 확보에 활용할 뿐 한 . 일 관계나 동북아 안정은 일본 정치인의 관심 밖 전략있는 외교가 절실하다.


한 . 일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이명박 대통령의 오버액션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다오위다오(센카구)에서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벼랑 끝 대결을 여유롭게 지켜보면서 우리가 거둘 어부지리를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치다. 한 . 일 갈등이 더 뜨거운 발등에 불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우리 대통령이 '문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우리 대통령이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한 . 일 관계 전체에 미칠 작용에 대한 개념적 . 입체적 이해와 고려없이, 독도와 위안부 같은 과거사를 해결할 중 .장기적 전략없이 불쑥 내디딘 한 걸은, 쏟아낸 한마디가 한 .일 관계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


다시 정리하면 한 .일 관계를 후퇴시킨 언행은 세 가지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국제사회에서 일본영향력 별것 아니라는 발언, 그리고 일왕이 한국에 오고 싶으면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고통받은 한국인들에게 사과부터 하라는 요구다.


그중 가장 민감한 것이 일왕의 사과 요구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천황은 '성역' 이다. 천황에대한 경애심은 이본의 관념적 전통과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혼(Psyche)의 근간이다. 그리고 한 . 일 관계의 틀에서 보자면 지금의 일왕은 평균적인 일본인보다도 한국에 우호적이고 이해가 깊다.


일본 역사에서 문화의 황금기라는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를 연 천황은 간무(桓武)다. 일본인들은 그를 좋아한다. 일왕 아키히로는 간무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는 말로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한다. 그는 아버지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계승 공유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도덕적 개인주의(Moral individualism)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념적으로 대개 일본인의 70%를 보수, 30%를 진보로 분류한다. 보수 70%의 10%가 극우다. 이들 10%의 극우에 대해서는 일왕 아키히토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를 뺀 60%의 온건보수가 한류팬의 주류다. 진보 30%는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고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 . 사죄 .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 60%와 진보 30%가 우리 대일 공공 외교의 대상이다. 이번 사태로 그들의 다수가 한국에 등을 돌렸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일본 극우세력의 반한(反韓)감정을 부추긴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대통령의 우리 영토 순시에 그들이 시비거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일왕에 관한 발언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한국에 오겠다고 하지도 않은 일왕에게 오려거든 사과부터하라고 말해 놓고는 발언의 파문 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은 참으로 한심. 답답하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이 대통령이 대화상대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고, 그때 TV 캄메라가 돌아가는 걸 몰랐다고 일본에 구구한 변명을 했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이 한 .일 과거사 문제는 일왕 수준의 최고위 인사가 사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한 것이라고 꼬리를 내린다. 이건 정상적인 외교가 아니라 모의외교 수준이다.


한국의 그런 '해명'이 있은 후 일본은 잇다라 독한 대응조치를 내놓고 있다. 독도문제의 국가사법재판소(ICJ) 제소는 기본, 한 . 일 통화 스와프의 규모축소 또는 폐지를 위협한다. 일본정부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해괴한 광고를 싣는다. 이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쪽의 광란의 정치쇼다. 바닥을 헤메는 인기로 11월 총선을 치러야하는 노다는 한국 대통령의 언행을 보수의 지지를 확실히 확보하는데 고맙게 활용하고 있다. 한 .일 관계나 동북아 안정은 그의 관심 밖이다.


한 .일 갈등은 전면 외교전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엄청난 국력낭비가 예상된다. 일본이 한 . 일 통화 스와프 축소를위협하는 것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겠다는 발언, 96년 한국에서의 일본 단기자본 대거 탈출, 97년 IMF체재라는 일련의 연속선상의 사태에서 착안한 잔꾀가 아닌가 싶다.


일본 외무성은 직원5648명에 총 예산 8조9000억원인데 한국 외교통상부는 직원2189명, 공적개발원조(ODA) 자금과 국제기구 분담금을 포함해서 1조 9694억원이다. 병력과 전비만 보면 한 .일간 전면 외교전이 우리에게 힘겨울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명분과 정당성이라는 가공할 소프트파워가 있다. 전략이 있는 외교다운 외교가 절실하다. 두나라 수뇌가 어떤 웃음을 흘려도 그들의 임기 중 한 .일 갈등이 봉합될 전망은 제로에 가깝다. 이명박 정부에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있다. 다음 정부의 대일정책에 족쇄를 더 채우는 인기 영합적 행보다.

Thursday, September 13, 2012

절차의 힘 프롤로그 2

절차의 힘 프롤로그 2

절차의 힘은 매뉴얼과는 다르다

매뉴얼과 절차의 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매뉴얼 인간'이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매뉴얼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매뉴얼 인간이 재능없는 유형의 전형적인 예로서 자주 이야기되는 것일까? 그이유는, 매뉴얼 인간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 들은대로 밖에 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뉴얼 인간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순서를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에 맞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할 수 도 없다. 그러나 맨 처음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이다. 합리적인 차례와 방법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보편화 시키므로 굉장한 절차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한 것이다.


이로서 알 수 있듯, 매뉴얼대로 그저 가계적으로 움직이는 매뉴얼을 만들어내고 체계화 시키는 것과는 일견 흡사해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절처의 힘에는 일의 차례나 방법을 스스로 세워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실용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수없이 먆은 실용서들이 존재하는 데 ,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 내용대로 따라해 본댜고 해서 절차의 힘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물론 그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할지라도 기계적 으로 읽고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핵심을 전수 받을 수 없다. 핵심이란 그 요점을 깨달아 매뉴얼로 저자가 갖고 있는 바로 그 힘인 까닭이다.


그로므로 실용서를 단순히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패스트후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 까닭에 수업의 일환으로 그 절차를 다른 학생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도록 지시한 적이 있다. 즉 닭 튀기는 방법이나 햄버거 포장법 등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간단 명료하게 설명 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 기술을 전수 할 수 있다. 미국식 패스트푸드 체인점에는 그날들어온 아르바이트 직원도 쉽게 베우고 익힐 수 있는 매뉴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대개의 경우 다른 일을 할때에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경험은 매뉴얼대로 기계적으로 따라한 것이기 때문에 응용력과 진짜 실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매뉴얼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면 그 매뉴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미를 생각해 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매뉴얼을 차분히 읽고 이해해야한다. 매장 전체를 운영하는 관리자의 움긱임을 보고 주엊진 명령을 이해할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당장 관리자가 되어도 훌륭하게 완수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활동의 이면에 있는 매뉴얼을 이해하는 일은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관리자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독립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뉴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더 나아가 매뉴얼을 직점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비록 매뉴얼 인간이라고 비판 받게 될지라도 좀더 확실한 절차의 힘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절차의 힘은 응용력이 뛰어나다.

요리를 할 때는 특히 하나의 절차라도 건너뛰면 맛없는 요리가 만들어진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지면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는다. 미각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감각 중 하나다. 따라서 예민한 미각을 통해 날마다 엄격하게 맛을 체크하는 능력이 절차의 힘이라 한다면 그 기술이 다른 일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요리에는 나름대로 자신 있지만 사무적인 일에는 영 서툴다. 혹은 '집안일은 잘하지만 직장 일에는 소질이없다.'는 식으로 집안일과 직장일을 분리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이 전업주부라서 밖에 나가 아무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짓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요리에 필요한 절차의 힘을 정치나 역사를 움직이는 크고 원대한 일에 응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겠지만 다른 여러가지 일들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스케줄, 즉 일정이 절차의 힘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한 일정에 따라 일을 해나가는 데 익숙한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다른 일에도 지혜롭게 적용함으로서 스스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흭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능은 있는데 철차의 힘이 부족한 것 뿐이라면 차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더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성공의 경험을 차츰 확장시켜 더 큰 성공과 발전을 꾀 할 수 있다. 요리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을 할 때도 요리에서의 동일한 감각으로 해나가면 된다.
이처럼 절차의 힘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철저한 운련을 통해 길러진 절차의 힘은 다은 영역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희복하는 데 큰 도움이된다.
한 가지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은 다른 무슨 일을 해도 잘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맞는 말이다. 므슨 일이든지 한가지 일에 정통하면 그내면의 절차가 확실히 이해되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가애 한다는 것이 몸에 익혀지게 되므로 다른 일에도 그것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차의 힘을 단련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차에대해 분명하게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 면에서 현저히 차이가 난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 절처의 힘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말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A라는 사람에게는 절차의 힘이있는데 B라는 사람에게는 절차의 힘이 없다'는 식으로 섣불리 단정을 지어서도 안된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자기만의 절차의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모든일에 임해야 한다.

Wednesday, September 12, 2012

절차의 힘

절차의 힘

사이토 다가시 지음 . 홓성민 옮김


일을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절차의 힘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철저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절차의 힘은 다른 영역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희복하는데 큰 도움이된다. 한 가지일에 탁월한 재능을발휘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한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즉 한가지 일에 정통하면 그 내면의 절차가 확실히 이해되고,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밟아가야한다는 것이 몸에 익혀지게 되므로 다른일에도 그것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차의 힘을 단련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절차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한 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 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난다. --좋은 생각--

절차의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특별한 천재나 예술가를 제외하면 잠재력이나 재능 면에서 사람들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일을 하는 데 있어 차근 차근 절차를 밟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믾은 사람들은 애초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었다고 한탄하며 절망을 한다.


그러나 실패라는 쓰디쓴 결과를 놓고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불우한 성장 과정,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으므로 노력도 하지않게 된다. 하지만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에대한 대처법도 달라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문제를 하나 푸는 데도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푸는것과 차근차근 공식에 대입해 가며 푸는 것과는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시험 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자신의 안 좋은 머리 탓으로 돌리거나 "원래부터 이 과목은 나에게 맞지 않았어" 하며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시험 결과가 나빳던 것은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거나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판단 할 수 있게 되면 실력은 향상된다.


집안이나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차가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절차를 바르게 인식하면 자신의 실패에대해 질책하는 정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염두가 나지 않지만,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았던 것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지않고 새롭게 도전하여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갈 수 있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반성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상황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귿이 자신의 인간성 전체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고도 단지 차례와 방법을 효과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일을 통해 흭기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절차의 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절차의 힘이라는 개념을 내것으로 만들면 여러가지 일과 살황을 절차라는 절단면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일에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됨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서로 연결해 보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차의 힘이 갖는 효용성이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하는 일과 논문을 쓰는 일은 완전 별개의 활동처럼 보이지만, 절차의 힘이라는 칼로 잘라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공통점이 선명하게 들어난다. 이 개념의 편리함을 이해하게 되면 차츰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그만큼 향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원래 절차라는 단어는 회의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아론적인 말아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말이다. 조각상 같은 예술 작품을 만들 경우에도 절차가 중요하다고 조각가들은 이야기 한다. 어쩌면 예술적 재능은 약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절차를 제대로 알고 익힘으로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건지도 머른다.


절차를 배우고 익히는 이런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술같은 창조적인 분야에서조차 재능이 아닌 절차의 힘이 중요한 관건이라면, 그 밖의 다른 활동들에서 절차의 함이 갖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절차의 힘만 익히면 모든 활동이 한결 수월해지고 편해진다는 발상은 무척 흥미롭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실패한 일에 대해서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안에 잠자고 있는 절차의 힘을 깨워라


절차의 힘에 곤한 이야기를 하다 보년, "내겐 절차의 힘이 없으니 그것을익힐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사람을ㄹ 자주 만나게 된다. "나느 절차의 힘을 갖고 있읍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이제까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이 ㅊ책에서 나는 절차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볻다 더 중요한 점은 자신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절차의 힘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일이다. 절차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처 그것ㅇ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일 처리 능력이 없다고 단정 지으며 노력핮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절차에도 여러가지 형태가있으며, 자신에게 꼿 맞는 절차 스타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리 오가이(군의관 . 소설가) 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함면서 일을 해나가는 탕입이 있는가 하면, 사카구치 안고(소설가 . 평론가) 처럼 방안에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소설을 쓰는 탕입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각품을 많아 남긴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 밟는 절차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가이 경우, 먼저 주변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는 방식의 절차의 힘을 갖고있다.


그에 반해 사카구치 안고의 경우 비록방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지만, 바로 그 난잡함이 그에게는 소설 창작의 핵심 포인트다. 깔끔하게 저리되어 있기보다 오히려 마구 어질러져 있는 편이 훨씬 일이 잘된다면 그 난잡한 주변환경이 그에게는 바로효과적인 방법이자 절차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부 요시하루(일본 장기의 최고수)라는 장기의 대가가 있는데, 예전에 그는 여관이나 호텔에서 쉽사리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의 대국은 주로 호텔이나 여관에서 이루어지는 터라 번번이 쉽게 지쳐버려 대국에도 자주 영향을 받곤 했다. 이 문제를 그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선 여관에 도착하면 방에 짐을 몽땅 꺼내놓는다. 그러고는 자기집처럼 마구 어지른다. 그러면, 자기만의 공간처럼 느껴져 편안한 기분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부의 경우, 여관에서 방을 어지르는 것이 그가 가진 절차의 힘이다. 정리정돈을 못한다고 해서 일을 할 때 젍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위에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어디에 무엇이있는지 알아서 실수없이 민첩하게 일을 처리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절차의 힘이 가진 가장중요한 의의다. 설사 전반적인 일을 아무리 뛰여나게 완수해 낸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절차의 스타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만의 방식을 활용하는 절차의 힘을 체계적으로 기술화 하는것이 이 책의 최종 목표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 첫번째 단계로서 먼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는 절차의 힘을 깨달아야한다. 직장에서 일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다른일에서는 확실한 절차로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처럼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뛰어난 절차의 힘을 발휘하면서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가정적인 타입으로 요리를 잘하면서도 직장일에는 서툰 사람은 요리에 필요한 절차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업무에 연결하는 회로가 없는 것이다.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출발점으로 하여 서툴고 생소한 분야를 차츰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절차의 힘을 키우는 핵심 요령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만의 절차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을 다른일에 적극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제가가각 다른 절차의 힘을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절차의 힘을 발견하여 그것을 차츰 발전시키고 확장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Monday, September 3, 2012

호미와 연필

호미와 연필
중앙 신인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정동순


호미를 들고 나가 땅을 파 보았다. 호미는 어머니 등을 긁어주던 효자손처럼 흙의 표면만 긁어댈 뿐 땅을 깊이 파지 못한다. 호미날은 겨우 작은 깻잎만큼 남았고, 나무 손잡이의 끝은 뭉실하게 닳아있었다. 주인이 흘린 땀에 쇠붙이마져 녹아내린 때문일까?


낡아서 땅을 잘파지 못하는 호미는 대신 어떤 기억 하나를 파낸다.


한여름 더위에 어머니를 따라 밭을 매러 가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였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길이 노랗게 흔들리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나섰던 것은 호랑이도 나온다는 산밭에 어머니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밭일을 하면서 어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밭을 매는 동안, 옛날이야기 뿐만 아니라 살아오신 이야기들이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끝없이 이어졌다. 어머니가 풀어놓는 실타래를 놓칠세라 귀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열어두고, 건성건성 김을 매며 밭고랑을 따라갔다.


어머니의 밭고랑에는 시대가 뿌린 억센 풀들이 어찌 그리 많았던 것일까?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이 어머니의 젊은 날이었다. 일제 감점기 때, 향촌에서는 아직도 서당교육이 대세였고, 드믈게 일제가 세운 소학교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이 다닐 학교는 없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이제, 여자로 태여나 배우지도 못허고, 가문을 잇지도 못허고 인생이 꼬여부렀다. 어느 해던가, 동네에 야학이 들어왔제, 야학에 가서 한글을 배웠는디, 잘했다고 상으로 연필을 받았어야. 난생 처음으로 연필을 만져 봉게 얼매나 신기하고 좋던지!



우리할아버지한테는 귀헌 한문 책들이 수레로 실어낼만큼 많았제.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걸 다 물려받았을 턴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보니까, 그 많던 책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부렀는지 해평 아재집에 몇권만 남아 있드라,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어머니는 딸들이 호미를 잡기보다는 연필을 잡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다. 고된 농사일에 새까맣게 그을린 촌 아낙네의 얼굴로 면사무소나 농협에 일을 보러 갈 때마다 기도 하셨다고 한다. 당신의 딸들도 저렇게 그늘에앉아 펜을 잡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매일 아침일어나 정안수 떠놓고 비는 것도 모두 자식들에대한 간절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자매들에게 뜨개질이나 자수같은 것을 전혀 못하게 하셨다. 그런 것 할 시간이 있으면 글이라도 한자더 읽으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바람은 다섯딸 중에서 세 딸이 교편을 잡게 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언니에이어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게되었다. 동생도 대학 졸업후, 곧 교직에 들어섰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내가 사는 양을 보려고 어머니가 오셨다.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이 말은 잘 듣대?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묵는다고 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항시 남의 아이들 귀히 여기고 잘 가르쳐라. 근디 월급은 얼매나 받냐?"
"보너스랑 합쳐서 한 백만원 받아요."


"허허, 그러면 쌀이 열 가마니네. 니 한달 월급이 내 일년 농사보다 낫다."
어머니는 호미대신 '연필'을 잡은 딸이 자랑스러웠는지 이미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을 지키지 못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교편을 놓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태 전이었다. 오래 벼르던 끝에 태평양 건너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고 어머니께서 오실 날을 기다렸다. 그중에 으뜸이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드리는 것이었다.


막상 어머니가 오셨을 땐, 두 살짜리 와 여섯 살짜리 이이들 뒷치닥꺼리로 바쁘기만 했다. 또 과외와 도서관의 시간제 일로 바쁘게 집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무척 속이 상하셨던가 보다.


"그 좋은 직업을 놔두고 와서 , 여기서 왜 이 고생이냐?"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격려는 못 해 줄망정 왜 그래요?"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짜증을 내였다.


어머니는 딸들이 호미를 잡기보다는 연필을 잡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다.
어머니의 원대로 난 연필로 글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내 실끄리에 옮겨 감았던 어머니의 사연들을
시상에 플어내는 어머니의 연필이 되고 싶다.

어머니는 무료하실 때,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이들이 읽는 전래동화집을 읽곤 하셨다.


"아이고, 어찌야 쓰까" 얼른가서 콩쥐 눈물 좀 닦아줘야 쓸 턴디..."
"심 봉사가 눈을 번쩍 떴구나! 어쩜 요리도 맛갈스럽게 썼을까이?"
돋보기를 쓰고도 어머니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처럼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곤 하셨다.


우리집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드리고, 어머니가 마음껏 글을 쓸수 있도록 맞춤법에 맞는 글쓰기도 가르쳐 드리고 싶었다. 허나, 바쁘다는 핑게로 어느 것 한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잘 깍은 새연필 몇 자루와 공책을 가방에 넣어 드렸다. 어머니는 연필을 기쁘게 받으셨다.
"하이고! 요새 연필은 좋기도 허다. 내가 이 연필로 글씨 연습도 허고, 너한테 편지도 쓰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니, 고향 집 수돗가 나무 기등에는 세 자루의 낡은 호미가 걸려있었다. 그중에 손잡이가 유난히 반질거리던 한자루를 가져왔다. 잡초를 뽑고 밭고량의 흙을 파던 어머니의 호미가 심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의 유품이 된 낡은 호미를 만져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와 밭을매러 다니던 어린시절, 김은 잘 매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부지런히 내 실꾸리에 옮겨 감았던 것 같다. 이제는 어머니 스스로 쓸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써 드리는 것이 내 소원이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서 언젠가 당신의 산소에 바치고 싶다.

그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도시에서 방황하던 시절의 내생도 뙤약볕 아래 뿌리 뽑힌 잡초처럼 나둥그라졌을 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원대로 연필로 글밭을 일구며 살고 있으니, 이제는 내 실끄리에 옮겨감았던 어머니의 사연들을 지상에 풀어내고싶다.
어머니의 연필이 되고 싶다.

Sunday, September 2, 2012

역사에서 찾는 한일 갈등 해법

역사에서 찾는 한일 갈등 해법
시론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미국에서 동아시아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국과 일본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첫 연구과제로 한 . 일 관계를 맡은 뒤 지난 20년간 이를 공부하면서 얻은 교훈을 소개한다.


첫째, 한 .일 간의 역사적 원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독일을 대하는 유럽인의 여전한 불신이 단적인 예다.


둘째, 한 . 일 관계는 원한이 실용적인 협력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군중이 모이면 감정적이 돼 분노에 찬 행동을 할 수 있다.하지만 정부끼리 머리를 맞대면 이러한 집단적 감성을 극복하고 이성적이며 서로 국익에 맞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세째는 역사 문제와 관련해 전치적으로 최악의 사태는 특정이슈와 관련해 한쪽이 현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달리말하면 양측이 역사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할 수는 있지만 한쪽이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상대방을 '제압하려' 든다면 아무런 이익도 없이 관계악화만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세가지 교훈은 최근사태를 분석하는 바탕이다. 내가볼 때 최근 한 . 일 간의 외교분쟁은 양측에서 현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 데서 출발한다. 한일 관곈는 거의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며 여기에는 일종의 균형이 있다. 일본의 방위백서와 문부성의 교과서 지침, 그리고 한국측이 분노와 항의 샅태는 한 두주 정도 한국 미디어 톱 제목을 채우지만 한바탕 소란을 겪은 뒤엔 균향사태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은 이런 균형을 깨고 사태를 더욱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한국 측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현 상태를 바꾸려고 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앞으로 나올 한국의 신임 대통령에게 하나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일본은 24일 중의원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바난하는 결의 안을 채택함으로서 새로운 실례를 만들었다. 한국을 상대로 일본 국회가 여야가 함께 이런 종류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53년 이승만 라인 설정과 관련한 '한 . 일 문제 해결 촉진 결의' 이후 거의 60년 만이다.


한 . 일 양국의 역사 논쟁은 이제 두 정부 사이의 실질적인 협력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지금 생기고 있을까. 분명히 국내 정치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분쟁에는 정치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 여러면에서 지구촌 2부 리그로 갈등될 위기에 처해있는 일본이 이젠 자기 주장을 마구 내세우면서 민족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글로벌 무대에서 최근 들어 일본보다 더욱 활발하게 활약하고있는 한국은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장 눈에 보이는 해결책은 없다. 내가 배운 역사의 네번째 교훈은 역사적 원한은 양국 모두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때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는 역사적인 화해를 국내 정치의 긍정적인 요소로 승화시켜야 할 의무가있다. 독일이 적극적인 사과와 반성을 통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을까.

Saturday, September 1, 2012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선의 나침판은 숭산 큰스님이 외국인 제자들에게 설법하신 영어 법문을 미국인 제자 현각 스님이 "The Compass of Zen"이라는 젬목으로 엮어 1997년 미국에서 출판한 책이다. 현각 스님은 큰스님의 30여 년간 설법한 녹음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들을 녹취하여 무려 4년여 동안에 걸쳐 이 책을 완성 했다고 한다.

나는 "The Compass of Zen"을 몇 년 전 홍콩 공항 면세점 책방에서 스쳐 만난적이 있다. 그때는 불교에 문외한 이었고 당시만 해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숭산 스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분명 영어로 된 책인데, 표시에는 우리나라 석굴암의 불상 사진이 아름답게 앉혀 있었고,

표지를 펼치자 주장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계신 한국 스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새겨진 큰스님의 모습은, 서울로돌아와 다시 일상에 묻히면서 점점 잊혀갔다.. 얼마후 책의 저자인 현각 스님을 우연한 기회에 직접 뵙게 되였고 오늘날 이렇게 번역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부끄럽지만------ 기쁘다.


이 책은 본래 지난 99년 1년 동안 현각 스님이 서울 마포와 강남에 있는 사찰들에서 했던 '영어로 듣는 참선 불교' 의 교재로 쓰였다. 스님의 청으로 강연 때마다 청중들을 위해 번역문으로 나눠드린 것이 인연이 돼 이번에 책으로까지 묶여 나왔다. 현각 스님의 자전적 에세이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쓰면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선의 나침판"번역작업도 나의 능력으론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원편역자인 현각 스님이 옆에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로 쓰여진 한국 불교 책을 다시 한국어로 변역하는 일은 '메이드인 코리아'로 수출한 옷을 다시 내 몸에 맞추는 일 같은 경험이었다. 이미 한자어에 익숙해 있던 불교 용어를 영어로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번역하면서 도서관과 서점을 오가며 이미 국내에 훌륭한 불교 서적들이 많이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한국인이 아닌, 불교를 전혀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쓰여진 불교 개괄서이다. 믿지는 않아도 불교의 기본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전생' 윤희' '업' 같은 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때로 너무 쉽게 느껴질 정도로 기초적인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이것을 책으로 펴내게 된 데에는 서구의 합리적 사고방식에 이미 젖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그 어떤 불교 책보다 이해가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스님의 쉽고 친절하면서도 직접적인 설명은, 불교 공부가 어려운 한자로 가득한 경전 공부가 아니라 참선 수행이라는 마음 공부를 통해 삶을 혁명적으로 아름답게 바꾸는,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길잡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깨달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공부도 짧은 사람이 큰일을 맡겠다고 선뜻 나섰다.
2001년 2월 허문명 합장



옮긴이 허문명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현각 스님의 출가 수행기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역었고 "타닛한이 전하는 마음의 평안 정".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를 번역 하였다. 숭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선의 나침판",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를 출간하였다.


광우병과 나침판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