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8, 2011

만 행 9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ㄱ가???

만행 9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독특한 룸메이트, 네드

예일대학은 나에게 많은 인간관계의 경험을 가져다준 곳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모이는 예일대학의 입학생들은 첫 1, 2년간을 기숙사에서 보내는데 1학년 때 룸메이트는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나 2학년 때부터는 선택할 수 있다. 기숙사 자취방으로 옯기는 경우가 왕왕있어 룸메이트가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1학년 때 무려 네 명의 룸메이트와 번갈아가며 한방을 썼다.

첫 룸메이트는 미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친구였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정부에서 요직을 지내고있던 사람이었으며 대대로 4대째 그 집 아들들이 모두 예일대학에 입학한예일대학패밀리였다. 그는 용돈이 많았는지 풍족하게 먹고 쓰며지냈다. 여자친구도 심심하면 갈아치우는 프레이보이 스타일이었다. 두번째 룸메이트는 뉴욕에서 온 유태인이었는데 수학과 역사에 천재적이었다. 나도 천재소리깨나 듣고 자란사람이었는데 그 아이의 연산능력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앞에서 번번히 탄성을 내질러야 했다 세번째 룸메이트는 시리아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는 시리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으로 뽑혀 정부장학생으로 온 친구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친구는 1학년 때 마지막 룸메이트였던 테드다. 그는 유태인 어머니와 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국적은 태국이었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평소에는 영판 틀림없는 남자인데 일주일에 한두번씩 여장 女裝을한다. 태국에는 동성애자가 많고 성전환 수술을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그것을 옆에서 확인한 것은 처음이였다. 네드가 수염은 물론 팔다리 털을 다 깍고 우아한 드레스에 화려한 메이크업을 바롯, 귀거리에다 팔찌, 목걸이까지 하고 교실에 나타나는 날이면 교수님과 학생들은 경이에 찬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네드의 애인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우와! 앞으로 어떻게 지내나. 나는 당시만 해도 나중에 신부나 수도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주 신심이 두터운 카톨릭신자였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신의 뜻을 어기는 자이므로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굳게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마치(솔직히 말해)더러운 벌레 대하듯 했다. 그와 얘기하는 것은 물론 눈도 마주치기 싫었다. 칫솔, 타월등도 혹 그의 것과 섞일까 두려워 목욕탕에 두지않고 내 책상 서럽안에 넣어놓고 다녔을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차츰 그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의 솔직함과 착한 마음 때문이었다.( 물론 단순한 친구 사이로서이니까 독자 여러분들은 이상한 상상을 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그는 숨기는게 없었다. 자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여장하는것을 좋아하는 자기성격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가 화장을 하고 면도를 할 때 어찌나 정성스럽게 하는지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자기몸에 저렇게 정성을 드리는 시람도 있구나 놀랄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몇 번씩 제안했지만 나는 싸늘하게 거절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변함없이 친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심한 독감에 걸려 한 발짝도 움직이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네드가 나에게 약과 음식을 사다주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는 나 때문에 수업까지 빠졌다고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나는 그에게 점차 마음을 열었고 인간의 품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교적 잣대에 따르자면 그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러 삶의 모습에서 그는 나보다 훨씬 사랑이 많았으며 착하고 관대했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하고 항상 웃는 얼굴을지닌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였다.

단지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하면 안 되나? 그 당시 내주위 친구들중엔 처음만난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내친김에 사랑없는 잠자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단지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으로 가야하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그의 사랑은 남녀간의 일회적인 사랑보다 오히려 더 지지하고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의 관계가 아니라 관계그 자체가 아닐까.

나는 그와 친해졌고 2학년 때 우리는 다시 룸메이트가 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입시에만 몰입해 있다 대학에 들어가 자유를 만끽하며 수많은 경험을하게 되는 한국학생들처럼 미국학생들에게도 대학은 자유와 도전의 장이며, 학문적ㆍ인간적ㆍ사회적인 여러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예일대학은 내 삶을 키워준 비료와도 같은 곳이었다.

2 나는 미국의 386세대

1983년에 대학을 들어갔으니 굳이 한국식으로 학번을 따지자면 나는 83학번이다. 80년대에 대학교에 들어갔고 60년대에 태어난 30대이니 미국의 386세대라고나 할까. 한국의 386세대가 학교다닐때 데모도 많이하고 419세대와는 또 다른 정치적 관심이 높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386세대인 나 역시 학교다닐때 데모를 했던 운동권 학생이였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미국의 학생운동은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졋을 극에 달했던 학생운동과는 이슈가 달랐다. 레이건 정부에대한 반대데모가 주로 많았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0뇬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는 첫 임기가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미소간에 군비경쟁이 극에 달했던 때라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주했다. 또 미국의 경제적ㆍ정치적이득을 관철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발도상국의 독재정부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또 니카라과의 콘트라 스캔들, 엘살바돌의 온두라스 사건 등 중남미 독재자들에게 돈과 무기를 주면서 통제하고 그들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정부군과 벌린는 내전을 북돋는 한편, 한국과 필리핀의 군사독재자들을 도왔다.

지난 여름에 나는 전남 광주에 갈 일이있어 들렀다가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갔었다. 평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는데 여의치 못하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곳을 들러보며 충격을 받았다. 내 또래 젊은이들, 아니 나보다 어린학생들이 아무죄도없이 군인들의 총칼에 맞아 죽어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광주항쟁에 대한 기사를 〈뉴욕 타임스〉에서 읽은 가억이있다. 그때도 한국군사독재 정부의 야만성에 대해 혀를 찼었는데 직접 현장에 와서보나 마치 내 형제라도 죽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광주학살에 미국이 개입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그것과 관련한 증거가 나와있다.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럽다.

대학 재학당시 나는 미국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접하면서 나의 이 아름다운 생애, 내가 누리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좋은 삶의 조건은 다른나라 수백만 사람들의 고통뒤에 세워진 것이라는 생각을 해게 되었다. 내가 속한 사회는 수많은 가난한 나라사람들의 희생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예를들어 미국에서 내가 사먹는 바나나와 오렌지는 풍부했고 질 좋는 청바지는 매우쌌다.

그 이유는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은 남미독재정부가 자국농부들에게 저물가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은 오로지 그들의 고통을 기반으로 형성된 삶이었다. 물처럼 펑펑 마셔대던 코카콜라에 사용되는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알고보니 중남미의 자메이카나 도미니카 공화국 농부들의 저임금노동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하는 모든행동, 나를 둘러싼 모든 경제적행위가 이처럼 다른사람의 고통에서 비롯되었고 갈수록 그들의 삶은 더 비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싼 콜라를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뺨을 때리고 있는 것 같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한국의 광주항재은 1980 5월이었는데 당시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철이었다. 지미카터와 로널드 레이건이 맞붙었는데 당시 한국의 상황은 아주 격렬했다. 카터는 아주평화롭고 부드럽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대통령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격렬한 데모가 일어나고 사회가 불안해져 남북관계까지 여파가 미칠까 걱정했다. 그래서 개입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정책을폈다.

반면 다음해 1월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은 아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중남미 개발도상국들의 독재정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힘을 키워나갔다. 비단 대외적인 문제에만 힘의 정치를 편 것이 아니었다. 레이건정부는 빈민계층에 대한 관심이 전혀없었다.

오직 부자를 더 부자가되게 만드는 정책,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하는 정책을 폈다.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주는 한편 그동안 케네디ㆍ존슨ㆍ카터정부 때까지 이어졌던 보조금은 줄이고 사회보장제도를 없앴다. 이 정책으로 가장피해를 본 계층은 흑인 하층민들이었다.

또한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무기생산경쟁을 벌렸기 때문에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적자에 시달렸다. 이 가운데 가장 혜택을 많이본 계층이 군산 복합체를 위시한 부자들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정부정책에 대한 바판의 말이 나올 때마다. 빈민계층을위한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게을러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들에게 정부가 그동안 너무많은 혜택을 주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대학재학 당시 가난한 뉴헤이븐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층민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리고 정부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않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으며 하루하루 회망을 잃고 자포자기하며 절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뉴헤이븐은 범죄만이 판치는 무서운 도시가 되었다.

슬럼기의 칙칙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만이 도시를 감쌌다.

3 공부를 하는 이유

대학생활은 이처럼 모순과 의문의 연속이였다. 교과서와 다른현실, 여기에 최고의 지성이라는 교수님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의 괴리는 열정과 이상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하나의 거대한 모순더어리였다. 철학ㆍ문학수업을 들을때면 교실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말들에 들러싸여 마치 진리라는 산을향해 마음껏 질주하는 항해사들처럼 들떠 있었지만 학교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높은 담장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말의 성찬을 떠벌리고 있을 때 뉴헤이븐 슬럼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퀭한 눈으로 휴지통을 뒤지고 있었다. 교수님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설파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수업시간마다 정의,

올바른 삶, 자비, 봉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귿들의 고민아란 누가 다음총장이 될 것인지, 교과목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그들이 진리를 설파하는 그 순간에도 바로 학교 담 너머 이웃들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활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교수님들은 주말이 되면 가족과 함께 멋진 차를타고 도시를 서둘러 벗어났다. 정부관료들은 또 어떤사람들인가, 하버드,예일, 프린스턴, 스텐퍼드 등 하나같이 내노라 하는 대학을 나왔으며 전직교수이기도 했던 그들이 펴는 정책이란 또 무엇인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교수나 정부관료들의 삶이 비도덕적이라거나 나쁘다고하는 가치판단을 넘어 결국 내가 교실에서 그들에게 배우는 지식이란 것이 뭔가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의에 사달렸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었인가.

철학을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공부를 열심히해서 노벨상도 받고 훌륭한 학자도 될 수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에게 안정된 직업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삶은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회의와 의심은 젊은 나와 우리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미국의 학생운동은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70년대 초반에 극에 달했다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잠잠해진 뒤 1980년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과 방송을 통해 반전ㆍ반정부 데모에 접하고 자란 나의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는 또다른 반항아들이었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다른나라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있는 반미감정을 읽을 수 있었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전부란 믿어서는 안되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당국이 남아프리카에 투자를 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백인들의 상상을초월하는 흑인인권침해(아파르트헤이트)가 자행되고 있었는데, 자유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정부와 명문대학재단들이 이를 도와주고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미국의 금ㆍ다이야몬드ㆍ철광ㆍ화학ㆍ석유회사들은 흑인들의 값싼 노동력과 본국에서 들어오는 자본을 바탕으로 돈을 쓸어담고 있었다. 오직 이득만 남는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할 바가 아니였다. 예일대학뿐 아니라 미국전역의 대학교에서 그와 관련한 데모가 일어났다. 학생들중 몇명은 생활비를 한두 푼씩 모아 남아프리카에 보내기도 했다.

한국의 야학처럼 뉴헤이븐 슬럽가에서 가난한 흑인학생들에게 공부를 다르쳐주기도 했다. 몇몇 학생들이나 교수님들은 우리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걱정했지만 우리는 진정한 길, 바른 길을 찾아 진리의 삶을 살기응 원했다. 예일대학의 교훈은 Lux Veritas. 럭스는 라틴말로 이라는 뜻이며 베리타스는 진리라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학교가 이 세상의 빛과 진리가 되기를 바랐다.

한국의 데모는 최류탄과 다연발탄이 오가고 돌과 화염병이 난무해 격렬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고 구호를 외치건나 대형집회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경찰들은 우리주위를 에워싼 뒤 으르기도하고 때로는 협박도 하면서 집회를 방해한다. 나는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핸드 마이크를 붙잡고 연설을 하기도 했고 시위대를 자휘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던 1986년부터 학생운동에 꽤 열심히 참여하기 시작 했는데 그해는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3년째가 되던 해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부추켜 여전히 선동하고 있었고 거리에는 홈리스와 거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빈부격차는 더욱심해지는 것 같았다. 1학년 때 뉴 헤이븐 거리를 걸을 때와 3학년 때는 확실히 달랐다. 대낮부터 술에취해 거리에 그냥 누워있는 사람들이 눈에띄게 많이 늘었다.

남아프리카의 상황도 더욱 악화되었다. 많은 흑인들이 백인정부에 의해 학살당했다. 그 시절 남아프리카 흑인 해방운동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예일대학 학생들에게 마틴루터 킹에 이은 또 하나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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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7, 2011

만행 8 예일 대학 입학

만행 8 예일 대학 입학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의 영적인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또 하나 부담이 있었는데 그것은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처럼 명문대에 대한 집착은 없지만 우리 부모님은 워낙 자식들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는 분들이라 학교 실적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면 철학과 신학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각종글짓기 대회에나가 상도 많이 탓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학에도 큰 관심을 갖게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수도사혹은 교수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했지만 나는 그 분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진리와 나의 존재에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내 머릿속을 더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1993 9, 드디어 예일 대학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매우 기뻐 하셨다. 입학식날 아버지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는데 행사가 끝나고 학교앞 매장에 들려 예일 대학 마크가 찍힌 것은 모조리 사주셨을 정도였다. 티셔츠, 가방, 공책, 손수건, 하다못해 냅킨까지 명망있는 교수님들과 뛰어난 학생들, 미국, 아니 세계지성의 요람인 예일대학에서 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나는 꿈과 기대에 부풀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을 비교하고 넘어가 보자. 하버드나 예일이나 모두 본래 신학대학에서 출발했다. 하버드가 먼저 세워졌는데 1636년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른바 종교난민들이 건립했다. 처음에는 신대륙에 포교할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그러나 그후 하버드는 세속화되었다. 초반에는 신학만 가르쳤으나 점점 철학, 수학이 교과과목으로 도입되었고, 여기에 성경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과학까지 도입되었다. 그러자 일부 보수적인 목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하버드가 본래의 설립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새로운 대학의 신설을 주창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예일대학이다. 예일은 하버드보다 60여 년 뒤인 1701년에 설립되었다. 하버드나 예일대학의 역사는 미국의 독립(1794)보다 훨씬 전의 일이니 미국역사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보스턴 바로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였던 뉴헤이븐에 예일 대학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예일역사는 성장하면서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가르침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신학대학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일반 대학으로 성장했다. 읿부 목사들이 또다시 반발했다. 그리고 역시 새로운 대학의 신설을 요구했다. 그렇게 만든 대학이 프린스턴이다.

어쨋든 하버드와 예일대학 이야기로 다시 넘어오면, 우선 규모면에서는 하버드가 더 크다. 건물도 큭고 학생들도 더 많다. 그런데 두 학교는 교육방싱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하버드가 대학원 교육 중심이라면 예일은 학부교육 중심이다. 하버드는 학부강의를 안하는 교수들도 있는데 예일에서는 아주명망있는 교수님이라도 학부강의를 해야한다. 또한 하버드 학부강의는 주로 조교들이 맡아 한다.

하버드는 크기 때문에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우선많다. 예를 들어 헨리 키신저갗은 유명한 강사의 강의가 있는 날에는 강의실이 터질 듯 가득찬다..그러나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도 강사을 만날 수 없다. 최소한 대학원 학생이나 박사과정 학생정도는 되어야 개인적으로 강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일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학생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보다 집중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공부잘하는 미국학생들은 학부는 예일에서 대학원은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싶어한다.

! 나의 대학생활 4.

대학생활은 나의 삶에 가장 큰 자그과 영향과 충격을 가져다준 기간이었다. 그리하여 더욱더 치열하게 나의 매면으로 돌아홀 수 있는 수많은 경험을 하게해준 기간이었다. 먼저 수업방법부터 파격적이었다. 예일대학의 모든수업은 모두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교스님들은 교과서 내용을 암기하거나 당신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경험과 결합되어 학생을 각자의 시각으로 소화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철학이나 문학수업에서 플라톤, 세잇스피어, 소크라테스, T.S 엘리엇, 소펜하우어 등의 삶과 사상을 배운다. 두 번정도 수업 후 세번째 시간에는 소그릅으로 나뉘어 학생들끼리 세미나를 한다. 세미나에서 우리들은 각자배운내용에 대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한다. 세미나가 끝나면 강의 내용을 우리 것으로 완전히 소화할 수 있게된다.

철학자나 작가가 태어난 연도를 외우게 한다든지 그들의 저작내용을 외운다든지 하는 교육이 절대 아니다. 교수들 역시 암기위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지않는다. 물론 암기를 하는 것도 뛰어난 능력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교재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것이다.

그래서 예일에서는 모든수업에서 에세이를 아주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나는 학교다닐 때 수없이 많은 에세이 과제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흰머리가 다 날 정도였다.

우리;는 적어도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A4 용지로 10페이지 정도의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제목도 내가 스스로 정해야하고 수업에서 배운내용도 분석하고 결론도 내가 내려야 한다. 교수님들은 학생이 얼마나 주제에 대한 팩트fack를 많이 알고 있는가에 따라 점수를 메기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얼마나 수업내용을 잘 소화하고 그들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을 표현하는가를 중시한다. 그러한 예일의 수업방식은 탐구하기 좋아하고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1학년 1학기 때 나는 〈영문학 125〉 강의를 수강했다. 〈영문학 125〉란 예일 대학이 세워진 해부터 매년 개설된 강의로 노교수님들이 영문학 고전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예일대학에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강의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수업에 첫번째로 제출한 에세이 과제에서 C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항상 A만 받아온 나에게는 평생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예일이 새로운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나는 생각을 좀더 깊이하고 고민을 좀더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 공부하는게 만만치 않구나.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해갈 무렵, 나는 학교와 학교주변을 둘러싼 이상한 부조화를 발견했다. 예일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이다. 고딕형식의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아름다운 켐퍼스,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수재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헌신과 열정을 다해 가르티는 교수님들.

그러나 대학 담장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예일대학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무유한 코넥티컷 주에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예일대학이 있는도시 뉴헤이븐은 미국 내에서 일곱번째로 가난한 도시다. 대학정문을 나와 길 하나만 건너면 포화를 맞은 듯 쓰러져 가는 건물, 또는 낡은 텐트나 판자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흑인들이다 우리가 따뜻한 기숙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침을 튀겨가며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논쟁을 벌일 때 그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모순적 환경은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왜 이같은 모순적 상황이 생겨났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국 역사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국남부의 목화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노예들이 산업이 발달해 공장이 밀집되어있는 미국 북부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기위해 디트로이트, 인디에나폴리스, 뉴욕, 뉴헤이븐, 보스턴, 뉴아크 같은 대도시로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세계인들은 전쟁의 참화에 신음했지만 미국의 공장들은 무기와 생필품을 만들어 내느라 쉴새없이 돌아갔다.

점점 더 많은 흑인들이 북부로 몰려들었고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찾아 전세계 사람들의 미국으로 이민이 계속되었다. 도시는 복잡해졌다. 사람들로 붐볐고 공해와 소음이 늘어갔다. 그러자 백인들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집을 교외로 옮기고 직장만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공장들이 보다싼 노동력을 찾아 이시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주로 전문직업에 종사하던 백인들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흑인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집을 교외로 옮긴 백인들은 이참에 직장까지 교외로 옮겼다.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하이테크 회사를 만들고 컴퓨터 관련공장을 세웠다. 이렇게 되자 흑인들은 그야말로 시내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백인들의 도시탈출은, 비지니스의 도시탈출, 교육의 도시탈출이 되었다. 왜냐하면 좋은 학교의 우수한 선생님들도 다 같이 도시를 떠났기 때문이다. 부자 백인들이 도시를 떠나자 세금이 줄었고 도시는 가난해졌다. 경제, 정치, 교육등 모든 힘이 도시를 떠난 것이다. 도시는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배경의 결과가 바로 뉴헤에븐의 슬럼이었다.

그곳에는 오직 세상에대한 분노와 적의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밤에는 온갖범죄를 저지르고다녀 거리에 어둠이내래면 아예 학교 바깥출입을 하지않는 게 관례였다.밤거리를 다니다.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고 남학생들이 지감을 털리고 칼에 찔렸다는 소문들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사정은 더욱심각해져 심지어 켐퍼스 안에까지 강도들이 난입, 밤늦게 켐퍼스안 교회에 가던 대학후배 한 명이 흑인 강도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나는 졸업후에 친구들로부터 들었다.

빈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투쟁이었다. 우리가 좋은 건물, 좋은 환경에서 이른바 진리를 추구한다며 한가롭게 논쟁할 때 그들은 바로 길 하나 건너편에서 삶에대한 한오라기 희망이나 목적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신입생 때 기숙사에서 살았다. 예일대학 기숙사는 중세 요새처럼 디자인되어있다. 둘레에는 물이 흐르는 해자 垓子가 둘러쳐져 있었다. 예일대학 캠퍼스 전체가 그렇지만 기숙사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의 멋스런 중세 건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그런데 기숙사 둘레에는 아주 높은 담장이 쳐져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나중에 그 담장이 어떤 세계를 가르는경계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미치 대륙과 대륙을 나누는 건널 수 없는 바다 같기도 했고 감히 건너가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할 어떤 금기 같있다. 뉴저지 주 중신층 가정에서 태어나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만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예일대학의 주변환경은 충격이었다. 나야말로 어떤 경계안에 갇혀 좁은 세상만보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Friday, November 25, 2011

이런 대통령을 가다린다

이런 대통령을 기다린다.

내 석양은 아직 지지 않았다. 조일환 자전적 에세이

옛날에는 남자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될 거냐고 물으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아암, 그래야지 사내 녀석의 포부가 그 정도는 돼야지.”

자식의 얘기를 들은 부모역시 그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니, 부모가 좋아하니까 아이들이 칭찬받기 위해서 너도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이나 사명은 제처놓고, 대통령이 누리는 막강한 힘을 부러워하거나 그 힘에 주늑들어 살아온 어른들이 아이들의 꿈을 대통령으로 유인하고 부추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 하늘같은 대통령 나리들이 백성을 학대하고 온갖 부패를 저지르고 퇴임후에 감옥에 가거나 청문회에 나와 거짓말이나 해대는 사태가 벌어지자 더 이상 대통령은 희망이 되지 못했다.

예잇, 커서 대통령이나 해먹을 놈 같으니라고

오죽하면 이런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대통령이 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내가 대통령이라면 저런식으로는 안 할텐데, 내가 대통령이라면 저 문제를 이렇게 처리했을 텐데…… 하고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이렇게 말이다. 초기 산업사회라면 모를까 요즘은 얼마나 복잡한 세상인가.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쳐보자. 우선 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각 부처와 정부투자기관, 그리고 수 많은 고위 공직에 어떤사람을 앉힐 것인지부터 머리아픈 일이다. 그렇다고 나한테 각계인맥이 형성돼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누군지 모른다. 아랫사람이 명단을 작성해 와서 어디에 어떤사람을 앉치자고 학 때 그사람이 못된 짓 할 놈인지 국민의 충복이 될 놈인지를 모르니 거기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럭저럭 인사를 마무리했다고 치자. 국무회의가 열린다. 나는 그 많은 부처의 업무를 파악하기는커녕 부처별 업무를 구분할 능력도 없다. 경제 부처 장관이 무슨정책을 실시하자고 한다. 나도 사업이라면 어지간히 해본 사람이라 머리써서 돈 버는 재주는 남 못지 않으나, 그러나 어디 그런 재주만으로 국가 경제를 다룰 수 있겠는가.

우선 무슨 헤지펀드니, 비 아이 에스 비율이니, 콜 금리니 하는 말에 나는 얼이 빠져버린다. 고놈의 경제용어들은 왜 한결같이 외국말투성이인지, 나는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가 경제 장관들이 하자는 대로 고개나 끄덕이는 수 밖에 없다.’경제 얘기는 골치아프니 쉽고 짧게 해치우고 다른 얘기나 하라고 했다던 어느 대통령의 심정을 알만하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어디 내가 대통령인가, 경제수석이나 재경부장관이나 산업자원부장관이 대통령이지. 아무리 머리는 빌릴 수 있다지만, 그리고 대통령이 구석구석을 다 알고 챙길 필요는 없다지만, 큰 줄기는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어야 대통령 노릇을 해먹을게 아니가.

거기다 외교문제도 요즘은 복잡하기 그지없어서 군사와 국방과 문화가 한테 얽혀있으니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언급하기는 두려운 물건이다. 나프타가 어떻고 무슨 포럼이 어떻고 미국이나 일본의 복잡한 통상관계까지 겹치는 문제에 부딧치면 횐머리만 늘어날 일이다. 그 분야도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통령이고 나는 그저 허수아비다.

거기다가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니 가령 일본하고 어업협정을 맺는다고 할 때 직선기선이니 뭐니 하는 무제들은 해양부장관 하자는 대로로 한다고 쳐도 독도문제가 나오면 앞으로 일본놈들이 독도 영유권 어쩌고 나오면 대마도를 접수해 버리겠다고 해!” 이런 식으로 나올테니 아랫사람만 미칠 노릇일 것이다.

외국 정상과 회담을 한다고 하자, 정식 회담이야 통역관이 알아서 중간역할을 해주겠지만 가령 미국 대통령이 귓속말로 뭐라고 중얼거릴 때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나로서는 영 골치아픈 일일 것이다.

하기야 자기도 영어로 했으니 나도 한국말로 아무 소리나 해버리면 되지만.

게다가 사법, 인권, 노동, 대북관계, 입법부 관계……. 그뿐인가 정당은 정당대로 상대당에 대한 전략을 짜서 지시를 해야 한다. 결정된 정책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설득을 해야 한다. 골치 아픈 자리다. 나한테 거져준다 해도 요즘의 대통령자리 일주일도 버텨낼 자신이 없다. 세상이 요즘처럼 복잡하지 않았던 옛날에야, 그리 복잡한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도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싯점에서 과연 미래의 우리이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생가해 볼 필요가 있다. 먼 미래도 아니다. 4년후에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일부에서 내각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나는 남북이 분단된 우리의 현실에서 신속한 정책결정과 강력한 리러쉽을 가진 현행 대통령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대통령감을 골라봐야 하느데.

우선 미래의 대통령은 철저한 민주의식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도 일부 계층에서는 군이 나서야 한다는 시대에 뒤 떨어진 얘기가 나올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거은 효율이다.

가령 재벌 구조조정이니 뭐니 하는 것도 법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는 지금의 정부가 답답한 것이다. 군부가 치고나와서, 이거 정리해’ ‘저 사업은 각서쓰고 포기해’ ‘그 기업체에는 융자 한푼도 주지마,’ ‘저 사업체는 밀어줘하는 식으로 나가면 보기에는 시원시원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정경유착으로 흐르고 큰 부패를 불러왔다는 교훈을 우리는 뼈아프게 겪었지 않는가.

또한 민주정부가 아니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 독재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안보협력을 약속할 나라가 많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식의 독제체제는 국민의 저항을 불러와서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총칼로 협박해서 생긴 고요는 진정한 안정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대통령이 갖춰야할 자격은 청렴이다. 대통령직을 돈벌이하는 자리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차라리 독재를 하는 지도자보다 검은 돈을 챙겨가지고 나오는 을 더 증오한다. 국민들로부터 독재정치라는 지탄을 받았더라도 사익 私益 탐하지 않고 깨끗하게 손 털고 나오는 경우에는 , 저 사람이 독재정치로 여러사람 못살게 굴었지만, 그게 저 사람의 정치 철학이었나 보다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지만, 통치도 민주적으로 제대로 못한터에 수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챙겨가지고 나오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했을까,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고 정치를 했을까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IMF로 인한 지금의 어려움은 물론 문민정부 시절의 무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5.6공 시절의 정경유착에 그에 못지 않은 협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2천억, 3천억을 비자금으로 챙겼으니 금융권에 얼마나 많은 협박을 했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재벌 기업들에 터무니없는 은행 돈을 얼마나 많이 쏟아붓게 만들었겠는가.

그 결과로 기업은 지기자본보다 빚이 몇 배 더 많은 도깨비 같은 모양의 사상누각이 되고 (부채비율 5백 퍼센트의 기업이 어디 기업인가.) 금융기관 역시 때묻은 서민의 돈 받아다 재벌들 모래성 쌓는데에 바친 결과가 되었다. ‘한국 재벌의 과식이 한국을 집어삼켰다고 영국의 한 언론이 보도했으나 이것은 재벌만 탓한게 아니라 그런 재벌을 응원하고 부추겨온 권력자의 몫이 더 크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갖춰야할 자질은 국민통합 능력과 의지다. 벌써부터 너느지역 출신이 되어야 한다. 어느지역 출신은 안 된다, 이런 얘기들이 분분한데 문제는 대통령의 출신지역이 아니다. 그가 얼마나 지역적인 의식이 아니라 전국민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나는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 같으면,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물론 출신지역에 대한 애정이야 누구 못지 않겠지만, 오히려 자기 출신 지역민들에게는 조금 손해보자고 설득하고 다른지역을 더 배려할 텐데……. 목포가 어디 김대중 한 사람만의 도시인가, 시민들의 도시지,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목포는 일제시대 그 모양대로 방치한 박물관 같은 유령도시의 모습이었다.

이건 절대로 지역 차별을 할래서 한게 아닙니다. 임해공단을 조성하려다보니 바닷가 도시를 선택하게 됐고, 또 우리의 주요 수출 상대국이 일본이나 미주쪽이다 보니 부산, 포항, 울산, 마산, 구미……, 이런데다 공단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읍니다. 그대신 호남과 다른지역에는 그 지역 특성에 밎는 산업을 육성해 나가도록 하겠읍니다.”

지도자가 아처럼 솔직하게 털어놓고 다른지역에도 형평에 맞는 나름의 투자를 하도록 배려를 했더라면 정치적인 피해의식도 덜했을것이고 지역감정이 요즘처럼 심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 부분은 역대 어는 대통령보다 잘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렇다고 영남사람들이 그런특혜로 더 행복하게 되었느냐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지금 어느지역에다 석유화학단지같은 공단을 설치하려 한다면 지역민들이 환영하지 않는다. 공해 때문이다. 소외된 덕분에 청정한 환경을 누리고 있다. 이건 참 우리 정치사의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지역감정하면 우선 3김을 연상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지역분할구도 속에서 나름대로 정치적기반을 쌓았고, 어느 정도는 또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이해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기고향 출신 정치인을 지지하고 서원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물론 선거 때 공공연하게 저쪽 지역은 어떻다

우리지역이 뭉쳐서 혼내주자이런식의 행동을 했다면 그 사람은 물매를 맞아도 싸다. 그런 행위는 마을끼리 대표를 뽑아서 씨름이나 기마전 시합을 할 때나 하는 행위이지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사람이 행동해야 할 바는 아니다.

3김도 이제 DJ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사람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역사가 이 만큼 흘러오는 과정에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으로 정치적인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럼 그이후는 어’’’’’’’찌할 것인가?

민주의식, 지역통합 능력, 청렴성, 이런 문제는 우리한국의 정치가 워낙 비뚤려 있었기 때문에 제기된 문제다. 이제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그 능력을 점검해 보자. 이런 일는 정치비평가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소박하게 제기하는 의견이다.

우선, 21세기의 이 나라를 책임질 대통령이라면 한 분야에 박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다방면의 분야에 어느정도의 식견은 있어야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내용을 꿰뚫고 지시하는 것과 멋모르고 지시하는 것은 다르다. 주먹구구식 통치가 먹혀드는 시대가 아니다. 정보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지금 대통령을 하고있는 DJ도 저 정도 능력을 발휘하기위해서 40여 년을 준비해 왔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누가 준비하고 있는가, 지도자는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게 아니라 국민속에서 커온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적어도 미래의 대통령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정치적인 능력과 식견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여령면에서 60대 이하의 인물이어야 한다. 물리적인 연령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세기가 바뀌는 이 시기에 세대도 좀 바꿔봄으로서 우리정치가 좀더 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이는 그렇다 치고 다방면에 상당한 수준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기란 어렵다. 자기 전공에서는 뛰어나나 한두단계만 건너뛰면 깜깜인 사람은 차라리 애당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자격이 없다. 모든나라의 지도자 자격이 엇비슷하겠지만 미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 그 나라는 민주주의 전통도 오래됐고, 관료들의 체계도 잘 잡혀있다. 우리처럼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면 온 세상이 바뀐 것처럼 동요하지도 않는다. 섹스 스켄들 하나로 저렇게 뒤흔들어대도 클린턴은 대통령 노릇만 잘하고 있다. 물론 그의 박학다식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자만.

우리는 다르다.공무원 조직아 허술해서 대통령 하나가 잘못하면 와르르 무너져버리기 쉽다. 또한 우리는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다. 군사짓식도 어느정도 있어야 하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에 나름의 기술도 있어야하고, 자신의 통일방안과 남북통일에 대한 방향과 철학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현 대통령 재임중에 남북통일의 기반이 어느정도 조성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은 통일시대의 대통령이된다는 얘기다. 말이 쉽지, 반세기 이상 다른체제로 살아오다가 통합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권력자와 마주앉아 통일방안을두고 자신있게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북의 전략에 넘어가도 안 되겠지만 너무 기득권만 고집하다가 다시 냉전상황으로 돌아오게 만든다면 오히려 그런 대통령은 통일에 방해만 될 뿐이다. 통일이후 문제들, 가령 경제문제나, 군축, 남북으로 나누워져있는 민족의 화합방안, 교육문제, 주변 강대국들간의 관계설정, 분단시대에 대한 청산문제……, 이 모든 것들을 자신있게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 이런 사람이 하나 물색됐다고 치자. 그러나 또 하나 남는게 정치력이다. 사실 자질이 훌륭한 사람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춘사람이기는 어렵다. 여기에 고민이 있다. 현재의 정차권에 바란다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구분하지말고 싹수있는 정치인을 대통령감으로 키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상대당이라고 해서 흠집내기 열을 올리거나 깎아내릴 생각만 하지말고, 차세대에 국정을 맡길만한 자질이 엿보이는 사람들을 키워내고, 미리 국민앞에 제시하여 국민들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 능력은 있어도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사람이 진출할 토대가 생긴다.

21세기의 차기 대통령 우리 힘으로 멋진 사람을 물색해서 힘껏 밀어줘 보자.

12-2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12-2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넷째는 약속 지키기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약속의 동물이다.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약속은 약속이다. A bargain is a bargain.

바게인은 금전에 관한 계약과 약속을 의미한다. 실리실익 實利實益을 존중하는 영국인은 금전에 관한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약속은 반드사 지켜야 한다. 이것은 사회생활의 기본 원칙이요, 인생의 대강령 大綱領

이다.인간의 생활은 약속의 기초 위에서 이루워진다.

몇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느날 까지 빌린 돈을 꼭 갚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위반한다.

약혼을 하고 얼마 후에 파혼을 선언한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나는 거짓말 쟁이가 된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낙인 烙印이 찍혀진다. 인간 부도수표로 전락하여 완전히 사회적 신용을 잃어버리고 산다.

나는 친구를 잃게 되고, 불신인 不信人이 되어 사회에서 설 땅을 상실한다. 거짓말 쟁이라고 도장이 찍힌 다음에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최대의 형벌은 부엇이냐, 옳은 소리를 할 때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신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그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이요, 그 사람의 존재가 붕과하는 것이다. 신용은 인간의 사회적 자본인 동시에 도덕적 자본이다. 신용은 인간의 도덕적 자본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無信不立」, 신용을 잃어버리면 사회에서 설 땅이 없다. 공자의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요, 인간 생활의 철칙이다.

인간의 약속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가 나하고 약속이다. 이것은 자기와의 약속이다. 매일 20페이지씩 꼭 독서를 하겠다고 내가 나하고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참으로 지키기 어렵다.

자기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사람은 참으로 용감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둘째는 남과의 약속이다. 이것은 사회와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내가 남에게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손해와 고통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날마다 많은 소송 訴訟사건이 왜 일어나는가. 주로 남과 금전적 약속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위약 違約과 파약 破約은 언제나 자타 自他의 불행을 초래한다. 사회와의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 公約이다. 공약은 공적 약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대통령에 출마를 안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안 나가야 한다. 그것이 공인의 도리다. 공인이 공신력 公信力을 상실하면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공약은 빈 공자 공약 空約이 많다.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셋째는 하나님과 약속이다. 이것은 절대자와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성스러운 약속이기 때문에 나의 생명과 인격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미국인들은 「나는 약속한다 I promise you.」라고 말하면 반드시 자킨다.

미국인들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고 제일 미워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미국인의 생활습관이 되어있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신의 信義를 잘 지켰던 분은 도산 성생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더든 통희 痛悔를 하여라.

「거짓이여……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하리라.

「진리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있고, 정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우리 청년이 작정할 것 두 가지가 있소, 하나는 속이지 말자, 이 말을 매일 주야로 생각하오.

「거짓말을 잘하는 습관을 가진 그 입을 개조 改造하여 참된말만 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위대하고 신성한 사업의 성공을 허 虛와 위 僞의 기초위에 세우려고 하지말고 진 眞과 정 正의 기초위에 세우려고 하자.

도산의 준엄한 말씀을 몇구절 인용하였다. 참과 진실을 강조한 선생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신의확수 信義確守」는 도산 사상의 핵심 원리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언행이 일치하는 것이다. 언행이 일치해야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신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사회 생활에서 신의의 확수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신용 사회의 건설은 우리의 지상 과재 地上課題다

끝으로 예절 지키기다.

우리나라의 국ㅂ보 제1호가 남대문이다. 남대문을 숭례문 崇禮門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뜻이깊다. 숭례란 무슨 뜻이냐.예절을 숭상 崇尙한다는 뜻이다. 여러사람이 모여 사회 공동 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겅은 예절을 지키는 것이요, 서로 에티켓을 준수하는 것이요, 남에게 무레 無禮한 말이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요, 타인에게 불쾌한 감정과 복장과 태도를 짓지 않는 것이다.

기계에 기름을 치면 기계가 부드럽게 잘 돌듯이, 서로 예절을 지키면 인간 관계가 원만하고 부드러워진다. 예절은 사회의 윤활유의 역활을 하고, 인간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화목하게 한다. 인간은 표전 관리 表情管理가 가장 중요하다.

예절은 친화력 親和力을 촉진시킨다.

존경하는 스승이나 선배를 만나면 마땅히 경의 敬意를 표시해야 한다. 나에게 친절과 호감을 표시한 사람을 만나면 즐거운 호의 好意의 표정을 지어야 한다.

나를 물심양면 物心兩面으로 도와주신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사의 謝意,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

집안에 경사 慶事가 있을 때에는 마땅히 축의 祝意, 축하의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모름지기 진심으로 사과 謝過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 사의란 말은 감사하다는 뜻도 있고, 사과한다는 뜻도 있고, 사양한다는 뜻도 있는 다의적 多義的개념이다.

예절은 남에게 정의와 오의와 사의와 축의를 표시하는 마음이요, 행동이다. 경의를 표시해야 할 때 경의를 표시하자않고, 사의를 표시해야 할 때 사의를 표시하지 않고, 호의를 표시해야 할 때 호의를 표시하지 않고, 축의를 표시해야할 때 축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불신감과 불쾌감을 준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요, 예절레 어긋나는 행동이요, 사람으로서 교양이 없는 것이요, 사람구실을 못 하는 것이요, 인간으로서 의무태만 義務怠慢이다. 그것은 실례 失禮다. 예를 상실한 것이다. 그것은 결례 缺禮다. 예가 결핍된 것이다. 그것은 비례 非禮다. 예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무례 無禮다. 예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예를 알고 예를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예를 간조한 공자는 《논어》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지예, 무이입야 不知禮 無而立也.」〈요왈편〉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설 수 없다. 예절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에 나아가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예절은 인간 존립의 근본이요, 사회의 기본 도덕이다.

「선생님, 인 仁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수제자 안연 顔淵이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는 간결명쾌하게 「극기보례 克己復禮」라고 대답했다. 사리사욕을 극복하고 사회 질서의 예절을 실천하는 것, 과도한 욕심을 누르고 예절을 지키는 것이 곧 인 仁이다.

인을 실천하는 요령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행하지도 말라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에 어긋나는 일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고 공자는 갈파 喝破했다. 무례한 말, 무례한 행동, 무례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예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사회적 행동 규범이다.

예는 하나으ㅢ 사회적 약속이다. 약속은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 사회적 약속과 규범을 지켜야만 사회적 질서가 유지되고, 사회가 원만하게 운영된다. 사회적 약속과 규범을 서로 지키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활이 서로 불안하고 서로 불쾌하고 서로 불신하게 된다. 이웃사람이 환난 患難을 겪으면 위로해 주어야 하고, 깊은 애도 哀悼의 뜻을 표시해야 하고, 혼례의 즐거움이 있을 때에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어야 하고, 실패의 고통을 당했을 때에는 격려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예의요, 예절이다.

공동체에 예의와 예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얻고, 기쁨을 느낃고, 삶의 보람과 용기를 갖는다.

영국은 신사도 紳士道, Gentlemanship으로 유명하다. 신사도의 제 1조가 무엇이냐, 남에게 불쾌감과 고통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신사도의 근본원칙이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복장, 불쾌감을 주는 말, 불쾌감을 주는 표정, 불쾌감을 주는 태도,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신사도요, 젠틀멘쉽이다. 차 속에서 시끄럽게 떠든다, 길거리에서 가래침을 밷고 종이조각을 마구 버린다, 자동차의 클랙슨을 마구 누른다 등 모두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다. 이런행동을 하지않는 것이 신사도요, 예절이다.

예절은 조용한 것이요,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품위가 있는 것이요, 질서를 지키는 것이요, 친절한 것이요,단아 端雅한 것이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요, 양보하는 행동이다.

중국 고전인 《좌전 左傳》에 나오는 명언을 두 구절만 소개한다.

「예 신지간야 禮 身之幹也」

예는 사람의 등뼈와 같은 것이다. 예절은 대인 관계에서 등뼈처럼 중요하다. 무례한 인간은 어디를 가나 배척을 받고 멸시를 당한다. 예절은 우리 몸의 등뼈와 같다.

「예 국지간야 禮 國之幹也」

예절은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등뼈와 같은 것이다. 예절이 없느 국민은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예절은 나라의 등뼈다. 우리는 예절바른 국민이 되어야만 세계의 모든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인은 무례하고 부친절하고 약속을 안 지키는 국민이라는 낙인이 찍혀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에서 훌륭한 국민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시간 지키기, 질서 지키기, 분수 지키기, 약속 지키기, 예절 지키기, 이 다섯가지의 행동 원칙은 공동체 의식의 근본이다.

앞으로 우리는 오수원칙 五修原則을 지키는 훈련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것이 떳떳한 세계시민이 되는 길이다.

마음에 태양을 가져라. 얼굴에 미소를 가져라. 우리는 태양처럼 발고 따뜻해야 한다. 화기만면인 和氣滿面人이 되어라.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이것이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한국인의 마음 표정이요, 얼굴 표정이다. 나를위한 인생 12장 끝

12 회 너와 나의 만남

12장 회 會 너와 나와의 만남

和氣滿面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八十翁 怡堂 安秉煜「인생은 너와 나와의 만남」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로사Carossa의 밀이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다. 생즉회 生卽會,생즉우 生卽友, 산다는 것은 만나는 것이다 Life is encounter. 만남을 조우 遭遇라 하고, 해후 邂逅라고 한다. 인생은 수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너와 나와의 만남에서 인생은 시작한다 세상에 만남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이브를 만나 서로 사랑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이것이 가족의 시작이요, 공동체의 탄생이요, 사회의 출발이다. 만남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아담과 이브에서는 부부 관계가 되고, 카인과 아벨은 형제 관계가 되고,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간에는 부모자식 관계가 생겼다. 나와 너가 만나면 하나의 관계가 생기고 , 관계가 생기면 서로 지켜야할 원리 원칙과 행동의 규범이 생긴다. 우리는 이것을 도덕이라고 하고, 윤리라고 일컫는다. 도덕과 윤리는 동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질서요, 필요한 규칙이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붕괴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란 무엇이냐, 두 사물, 두 존재가 서로 만나 얽히고 결합하고 연관 聯關을 맺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적 關係的존재다. 인간은 여러 가지 관계의 그물속에 얽혀서 생활한다.

나는 아내와 부부 관계를 이루고, 자식과 부자 관계를 맺고, 부모와 친자 관계를 형성하고, 스승과 사제 관계를 맺는다. 나는 친척 관계, 친구 관계, 동창 관계, 동료 관계, 선후배 관계, 동향 관계, 동포 관계 등 많은 관계의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간 間이라고 한다. 간은 사이 間자로서 무엇과 무엇과의 사이를 말한다. 나는 부부지간, 부자지간, 형제지간, 친구지간, 동창지간 등 여러가지의 간에서 산다. 그러므로 사람을 인간 人間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는 뜻이다. 間을 떠나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간이 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간은 공립적 共立的존재요, 공생적 共生的 존재다. 인간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인류의 역사는 공동체의 확대의 역사다.

가족은 인간의 최초 공동체요, 가장 운명적인 공동체다.

우리는 자기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자기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운명적인 관계다. 직장이나 정당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가정은 선책이 불가능하다.

피와 사랑의 2대 원리로 구성된 가족 공동체는 인간의 공동체의 원형 原型이요, 근간이다. 가족공동체에서 종족 동동체로, 민족 공동체로, 사회 동동체로, 국가 공동체로, 크게 확장하여 마침내 지구 동동체, 세계 동동체로 확대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한식구가 되었고, 국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세계 시민의 한 사람이 되었다.

지구라고 하는 하나밖에 없는 생활 공간 속에서 197개의 국가가 서로 경쟁하고 서로 협동하면서 상부상조와 공생공영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내 나라, 내 민족이라는 국가적 차원, 민족적 차원을 넘어서 세계적 차원, 인류적 차원, 지구적 차원이라는 높고 넓은 사각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사고 思考의 전환과 행동의 혁신을 요구한다. 우리는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폐쇠적인 감정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회가 있다.

첫째는 밀림사회다. 야수 野獸들이 사는 정글사회Jungle Society에는 폭력과 투쟁의 법칙이 지배하고 약육강식의 원리가 좌우한다. 강한 동물은 약한동물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고, 약한자는 강한자의 비참한 밥이 된다. 그것은 잔인과 비정 非情과 야만野蠻과 광폭狂暴의 세계다.

밀림사회에서는 도덕도 없고, 대화도 없고, 협동도 없고, 예절도 없고, 타협도 없고, 양보도 없다. 먹히느냐, 죽느냐 죽이느냐의 살벌한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도 폭력과 투쟁의 법칙이 아직도 잔존 殘存한다. 나라와 나라사이의 전쟁과,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정치적 구테타가 그것이다. 폭력과 투쟁이 벌어지는 야수 사회는 최하등 最下等의 사회다.

둘째는 스포츠 사회다. 스포츠 사회에는 공정과 경쟁의 법칙이 지배한다. 투쟁과 경쟁은 차원이 다르다. 스포츠는 폭력적 싸움이 아니고 경쟁적 싸움이다.

서로 공정한 룰과 규칙을 지키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는 대단히 인간적이고 우호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스포츠 사회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 사회는 중등 中等사회다.

셋째는 심포니Symphony사회요, 교향악과 같은 사회다.

심포니 사회에서는 협동과 조화, Cooperation Harmony의 원리가 지배한다. 컨덕터의 지휘에 맞추워 각각 다른 여러 樂士가 악기를 연주한되, 여러 소리가 서로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아름드운 조화를 이루고 음악이라는 위대한 미와 가치를 창조한다. 아것처럼 평화롭고 협동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없다. 심포니 사회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생공화 共生共和의 세계요, 모두기 승자가 되는 기쁨의 사회다.

심포니 사회에는 패자가 없다. 모두가 승자다. 심포니는 잡음과 소음의 세계가 아니고 미음 美音과 화음 和音의 세계요, 공존공영 共存共榮과 상부상조 相扶相助의 협동사회協同社會다 .

곤자는 이러한 세계를 「和而不同」의 세계라고 하였다. 모든 악기가 동일하지 않고 저머다 다르다. 나팔은 힘찬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섬세한 소리를 내고, 색소폰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피리는 연약한 소리를 내지만, 여러소리가 전체적 하모니를 이루워 아름다운 和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것이 「화이부동」이다

농민은 농민의 목소리를 내고, 공부원은 공무원의 목소라를 내고, 기업가는 기업가의 목소리를 내지만, 여러 계층의 목소리가 서로 견재와 균형을 이루면서 민주주의 사회가 건설된다.

자기 고집만 부리는 미숙 未熟한 국민이나 남과 협동할 줄 모르는 반숙 半熟 국민은 심포니같은 협동 사회를 형성하지 못한다. 성숙한 국민만이 심포니와 같은 민주적 협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건설해야 할 사회의 모델은 심포니와 같은 협동 사회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모든 국민이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높은 수준의 바람직한 공동체의식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나는 오수원칙 五守原則을 강조한다. , 다음의 다섯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

첫쩨는 시간 지키기다. 우리는 시간에 대하여 2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요, 두 가지가 다같이 중요하다. 남에게는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시간의 자본은 다음의 여섯가지 특색을 지닌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있다. 누구든지 하루에 24시간으로 계산하며 1440분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의 자본처럼 공평한 자본이 없다. 시간은 한 나라의 군주든 무명 시민이든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다.

시간은 매매 불가능 賣買 不可能의 자본이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돈을 받고 팔 수도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놀라운 구매력을 갖는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나 다 살 수 있다. 그러나 억만금을 주어도 단 1초의 시간도 살 수 없다. 돈도 시간 앞에는 완전히 무력하다.

시간은 대차 貸借불가는의 자본이다. 시간은 남에게 빌려 줄 수도 없고 남에게 빌려 쓸 수도 없다.

시간은 저축 貯蓄 불가능의 자본이다.돈은 은행에 저축했다가 필요한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저축할 수가 없다. 돈의은행은 있지만 시간은행은 없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돈은 없다가도 벌면 또 생긴다. 그러나 한번 가버린 시간은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시간은 回復 불가능 자본이다.

시간은 지극히 제한된 자본이다. 시간은 미국의 경영학자 Druck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극히 유한한 자본이다. 시간은 개척과 개발이 불가능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60,70년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짧은 인생이 시간의 낭비로 더욱 짧아지고 있다.

미국의 정치가요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크린의 다음 말은 시간에 관한 금언 金言이다.

「만일 네가 네 인생을 사랑한다면 네 시간을 사랑하여라. 왜냐,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시간을 타락적으로 낭비하느냐,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옛사람은 말했다. 「석시여금 昔時如金.」시간 아끼기를 금싸라기를 아끼듯이 아껴라. 시간의 낭비는 돈의 낭비보다 더 나쁘다. 돈은 벌면 또 생기지만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의 애용자 愛用者, 시간의 활용자 活用者가 되여라.

시간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인 관계에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 엄수 嚴守는 사회 생활의 철칙이다.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코리언 타임」은 수치 중의 수치요, 결점중의 결점이요, 악덕 惡德중에 악덕이다. 우리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아끼자와 지키자. 시간의 2대 계명을 잊지 말아라.

둘째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문명은 질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명언이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문명인이요,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비문명인 이다. 제대로 된 사회는 규율과 질서를 지키는 사회요, 제대로 되지 않은 사회는 규율과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다.

법과 질서를 안 지키면 무법천지로 전락한다. 질서의 반대는 혼란이다. 혼란은 추 醜요, 악 惡이요, 낭비여, 불편 不便이요, 부자유 不自由다. 질서는 미요, 자유요, 편리요, 절약이요, 행복이다.

질서는 천지자연 天地自然의 대법칙 大法則이다.

하나냄이 천지를 창조할 때 질서의 원리로 만들었다. 우리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국민들이 되어야 한다. 준법정신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나는 나라가 한국이다.

1년에 1만명이 죽는다. 왜냐, 교통법과 질서를 안 지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법과 질서의 관념은 세계의 최하위권에 와 있다. 준법정신이 없는 국민, 질서를 안 지키는 나라, 모든 한국인이 깊이 생각해야 할 민족의 난문난제難問難題다.

셋째는 분수 分數지키기다. 사치하지 말라, 낭비하지 말라, 절약정신을 가지자. 자기의 분수에 맞게 살자, 석탄 한줌, 기름한방울, 종이 한장, 쇠붙이 하나, 쌀 한톨, 연필 한 자루, 모든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물자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쓰는 물건과 물자는 모두 비싼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사온 것들이다. 석유, 석탄, 곡식, 원자재, 철강, 목재, 일년에 약 400억 달러 이상의 물자를 사와야만 국민의 기본 생활이 가능하다.

수입 안에서 지출하여라, 버는 범위 내에서 써라, 낭비하지 말라. 이것은 소비 생활의 대 원칙이다.

우리는 너무 부허 浮虛하게 살았고, 방만 放漫하게 생활했다. 부허와 방만은 패망 敗亡의 길이다.

Wednesday, November 23, 2011

11-2 한자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는???

11-2 漢子에서 제일 중요한 한 글자는

덕이란 무엇이냐, 정신과 품성品性의 탁월성卓越性이다. 정신적 탁월성, 품성의 탁월성, 인격의 탁월성이 덕이다.

덕은 뛰어난 정신이요, 뛰어난 품성이요, 뛰어난 행동이다. 덕이 없으면 도덕의 실천은 불가능하다.

그리스 철인 소크라테스는 지혜, 용기, 절제, 경건敬虔, 극기 등의 덕을 강조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풀라톤은 이것을 체계화하여 지혜와 용기와 절제와 정의의 사덕四德을 인간의 원덕元德이라고 하였다. 원덕은 네가지의 근본이되는 덕이라는 뜻이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 네가지의 원덕에다가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강조한 신앙, 사랑, 소망의 삼덕三德을 첨가하여 일곱가지 덕을 역설했다.

덕론德論을 가장 강조한 것은 중국의 유교儒敎.

공자는 군자의 덕으로서 지인용知仁勇의 삼덕과 예를 역설했다. 맹자가 이를 체계화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설四端設을 주창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동중서董仲舒가 신의 덕을 첨가하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 五常을 역설했다. 오상을 오륜이라고도 한다. 이로써 유교의 기본 도덕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덕즉덕德卽德, 덕은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도골덕기道骨德器가 되어야 한다. 도인다운 뼈대와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한문에 「덕기성취德器成就」란 말이있다. 너 자신을 덕기로 만들어라.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라.

사람은 그릇이다. 그릇은 물건을 담는다. 밥을 담는 그릇이 밥그릇이요, 국을 담는 그릇이 국그릇이요, 믐악의 선율을 담는 그릇이 악기요, 신기한 그릇이 神器, 대소변을 담는 그릇이 변기요, 도자기로 만든 그릇이 도기陶器, 유명한 그릇이 명기요, 총칼과 같은 흉한 그릇이 흉기요, 이로운 그릇이 이기利器. 조그만 그릇은 소기小器, 큰 그릇은 대기大器.

노자老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였다. 큰 그릇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의 공부와 정성스러운 수양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기만성의 목표를 세우고 나의 인격을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한다.

인간은 그릇이다. 어떤 그릇이냐, 인간은 사기四器, 네가지를 담는 그릇이다.

첫째, 인간은 역기力器, 힘을 담는 그릇이다. 나의 몸에는 강건한 힘이 넘쳐야 한다. 나의 근골筋骨, 근육과 뼈에 왕성한 힘이 충만해야 한다. 약근약골弱筋弱骨, 근육과 뼈가 약하면 아무일도 못한다. 근골융륭筋骨隆隆한 사람이 인생의 대업大業을 성취할 수 있다.우리는 심신을 강하게 연마하여 강건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은 지기知器. 인간은 지식을 담는그릇이다. 아는 것이 힘이요, 지식은 인생의 무기다. 무지무식인無知無識은 사회에서 큰일을 못 한다.우리는 부지런히 학업에 전념하여 많은 지식과 풍부한 정보와 총명한 지혜를 축적해야 한다.

셋째, 인간은 才器. 인간은 재능을 담는그릇이다. 우리는 다재다능해야 한다. 다방면에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재주와 은력이 없는 무재무능인無才無能人은 아무일도 하지 못한다. 사람은 적어도 남보다 뛰어난 한 가지의 재능을 가져야 한다. 재능은 인간의 자랑이요, 생활의 무기다. 남보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무기로 삼아 사회에서 유용한 인물이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남보다 월등하게 뜅난 장점과 특기를 준비하여라.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일에 10년 동안 분골쇄신粉骨碎身하면 사회의 명인이 되고 제일인자가 될 수 있다.

넷째, 인간은 덕기德器. 우리는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인덕人德이 있어야 하고 덕망德望이 높아야 한다. 부덕不德하고 박덕한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사회의 패배자로 전락한다.

우리는 덕을 배우고 덕을 닦고 덕을 쌓아야 한다.

서해 바다에 덕적도德積島라는 섬이 있다. 덕을 쌓는 섬, 이름이 참 좋다. 우리는 덕을 심고 덕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대전 근방에 회덕懷德이라는 곳이 있다. 참으로 훌륭한 이름이다. 우리는 덕을 향하여 꾸준히 전진하고 덕을 저축하고 덕을 이루어 덕이 있는 사람 有德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인의 이름자에는 덕자가 아주 많다.

재승박덕인才勝薄德人,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없는 사람은 결코 대성할 수 없다. 재덕겸비인才德兼備人, 재주와 덕망을 겸비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큰일을 성취할 수 있다.

덕에 관한 명언을 몇 구절 소개 한다.

「덕불고 필유린 德不孤 必有隣」《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명언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거나 고립되지 않는다.

반드시 이웃에 돕는 사람이있고 공명공감共鳴共感하고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수없이 모여들어 그를 따른다.

「부윤옥 덕윤신 富潤屋 德潤身」《大學, 6장〉

재물이 풍족하면 집을 윤택하게 장식할 수 있고 덕이 풍족하면 마음이 넓고 인격이 윤택해진다. 덕은 정신의 빛이요, 인격의 향기다.

「덕자본야 재자미야德者本也 財者未也」《대학》〈전 10장〉

덕이 인생의 근본이다. 재물이 인생의 근본이 아니다. 재물은 인생의 말단末端이다.이것이 덕본재말德本財末사상이다. 재물을 인생의 근본으로 생각하고 배금주의와 황금만능 사상에 빠 질때 인생은 병들고 사회는 부패한다.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타락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돈의 노예가 되지말라. 돈은 인생의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본말을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

北宋의 위대한 학자 사마광司馬光의 제자 유안세劉安世가 그의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한문자 수만 자 중에서 우리가 일생동안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는 글자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요.

「그것은성 이라는 글자다.

「선생님, 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읍니까.

「불망어 不妄語. 거짓말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문지 중에서 정성 성 자가 제일 중요하다고 사마광은 대답한다.

나는 이 말에 공명공감한다. 성실은 덕의 근본이다. 가장 으뜸가는 덕은 성실이다. 덕의 뿌리가 되는 성실을 논하기로 한다.

성실을 가장 강조한 것은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 中庸》이다. 《중용》은 성실주의의 인생관, 성실주의의 세계관으로 일관되어 있다. 성실은《중용》의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다.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성자 천지도야. 성지자 인지도야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중용》 20

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천지도와 인지도,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가 있다.

하늘의 도는 참이요, 성실이다. 사람의 도는 참과 성실을 실천하는 것이다. 천도天道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다. 봄이가면 여름이오고 여름이가면 가을이온다. 밤이 자나면 낮이 되고 낮이 지나면 밤이 된다.

「종두득두 종과득과 種豆得豆, 種瓜得瓜.」콩을 심으면 콩이나오고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난다. 콩을 심었는데 오이가 나는 일이없고 오이를 심었는데 콩이나는 일이없다. 하늘은 정직하다. 천지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천도무위天道無爲, 하늘에는 허위虛僞가 없다. 하늘이 거짓말을 하던가.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행위에는 거짓이 많다. 한문자의 거짓 위자를 보라. 의 합자合字. 사람의 행위에는 거짓이 많다.

참은 하늘의 길이다. 하늘의 길은 참이다.

사람의 길이 무엇이냐. 하늘을 본받아 참을 행하고 성실을 실천하는 것이다. 참되고 성실하여라. 이것이 사람의 길이다.

참과 성실은 우주의 형이상학적 원리形而上學的 原理인 동시에 인간의 도덕 원리다. 그러므로 참과 성실은 모든 일의 알파인동시에 오메가요, 시작인동시에 끝이다. 모든 것은 성실에서 시작하여 성실로 끝나야 한다. 성실은 만물의 근본이다. 성실성이 없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중용》에선 이렇게 말했다.

〈성자물지종시 불성무물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25)

종시와 시종은 같은 뜻이다. 성실은 모든 사물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다. 성실성이 없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아니다. 성실성 없는 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성실성이 없는 대화는 참된 대화가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성실성이 없는 작업에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용》에선 이렇게 외쳤다.

「지성여신 至誠如神(24)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은 큰 힘이 있다. 인간은 정성에 감동하는 동물이다.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여라. 만드시 감동한다. 지성은 인간의 최고의 무기요, 최강의 힘이요, 최대의 덕이다. 「지성감천 至誠感天,지성은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감동시키고 귀신도 감동시킨다.

성실을 강조한 것은 《중용》만이 아니다. 맹자도 성실을 역설했다.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

앵자는 또이렇게 외쳤다.

「지성에 감동하지 않는 자는 일찍이 없었다. 至誠而 不動者 未之有也.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남을 감동시키기를 원하느냐, 정성의 무기를 발동하여라.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서 일의 성패가 결정된다. 백의 정성을 쏟으면 백의 물건이 나오고 의 정성을 쏟으면 의 물건이 나온다.

그러므로 주자朱子는 이렇게 말했다.

「일척지성一尺之誠 일척지물 一尺之物 일촌지성一寸之誠 일촌지물 一寸之物. 1척은 약 30센티요 1촌은 10분의 1 3 센티이다.

30의 정성을 쏟으면 30의 물건이 나오고 3의 정성을 쏟으면 3의 물건이 나온다.

성실의 정도程度에 따라 물건의 질이 결정된다. 일의 성패는 정성에 비례한다.

서양 철학에서 성실을 가장 강조한 것은 프랑스 가톨릭의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Marcel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실 誠實의 정도 程度가 존재 存在의 정도를 결정한다.

「성실이 없는 곳에 존재가 없다.

마르셀은 너와 나와의 성실한 만남을 가장 강조했다.

내가 얼마큼 성실하냐에 따라서 나의 존재가 결정되고 좌우된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였을 때 나는 얼굴을 붉히고 사람 앞에 고개를 쳐들 수가 없다.

왜냐, 나의 성실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나는 성실하면 성실할수록 당당하고 떳떳하다. 나는 불성실하면 불성실할수록 힘이 없고 초라해진다.

성실을 영어로 Sincerity라고 하고, 독일어로 에른스트Ernst라고 하고, 라틴어로 피데스fides라고 한다.

영어의 fidelity. 우리말의 참이요, 한문의 성실誠實이다.

우리의 설 땅이 어디냐, 참과 성실이다.

성실을 강조한 명언을 몇구절 소개한다.

「성실을 능가하는 지혜는 없다.

영국의 수상 Disraeli의 말이다.

성실은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유알한 화폐다.

중국의 속담이다.

眞理에 대한 忠誠은 다른 모든 충성에 앞선다.

인도의 聖者 간디의 알이다.

「성실은 최고의 방편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말이다.

「사람을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시인 괴테의 말이다.

「큰일이든 적은 일이든 네가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라.

우리의 선각자 島山의 말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장자莊子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기라는 것이 없다 至人無己 神人無功 誠人無名.

神人,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무리 대업을 이루어도 자기의 명예를 내세우고 자기의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장자》의 〈내편소요유 來便逍遙遊〉에 나오는 명언이다.

또 《근사록 近思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성희천 현희성 사희현 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이 명언은 주렴계周濂溪의 말이다. 성인은 하늘처럼 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바라고, 선비는 현인처럼 되기를 바란다.

인생은 하나의 道場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도장에서 내 이격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나를 위대한 자아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긍국의 목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도골덕기道骨德器가 되어야 한다. 도인다운 뼈대에 덕을 담는 그릇이 되어라. 이것이 인간의 최고의 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