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1

산은산 물은 물

향곡 혜림 대종사 香谷 蕙林 大宗師

향곡스님의 행장行狀
스님의 당호는 향곡香谷이요, 법명은 혜림蕙林이시다. 만겁의 조사관문을 격쇄하고, 불조라는 둥우리를 타파했으니, 엉키고 설켜서 사시지 않고 고상한 세계를 독보하시었다. 어떤 때는 한 줄기 풀로서 장육금신 부처닌을 만들고, 어떤 때는 장육금신을 가지고 한줄기 초개를 만들어 쓰기도 하셨다.
스님께서는 1912년(임자년) 1월 18일 경북 영일군 신광면 토성리에서 태어나시니, 아버지는 김원묵金元默, 어머니는 금숙정행金寂靜行, 속명은 진택이라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절에 가기를 좋아하더니, 16세 때, 종형을 따라 천성산 내원사에 입산하여, 18세에 조성월趙性月스님을 은사로 하여 수계를 받고, 20세가 되어 금정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당시에 雲峰선사께서 내원사의 조실이시라, 그 문하에서 시봉하며 정진하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셨다.
늦가을 어느 날, 산골짝 돌풍이 몰아쳐서 문짝을 때림에, 홀연히 한가닥 옛길이 확철히 열렸으니, 의심하던 화두 공안과 가슴에 걸렸던 것이 활연히 없어져서, 기쁘고 즐거움이 다함이 없었다.
스임께서 곧 운봉선사를 뵈오니, 선사께서 보시자 마자 목침을 두고 『한마디 일러라.』하시기에 『천마디 말, 만마디 이야기가 모두 다 꿈속에 꿈을 설함이니, 모든 佛祖는 나를 속인 것입니다.』하니, 운봉노사께서 크게 기뻐하시었다.
1944년 8월 임제정맥臨濟正脈 등불과 등불이 상속한 이도리를 부촉하시니, 즉 양기楊岐, 밀암密岩, 태고太古, 환성喚性, 율봉栗峰, 경허鏡虛, 혜월蕙月스님까지 내려온 정법의 계통이다. 운봉선사는 법을 전하는 계송을 적어 주셨으니

서래무문인 西來無文印은 서쪽에서 온 불법, 흔적없는 참 진리는
무전역무수 無傳亦無受라. 전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나니
고난무전수 苦難無傳受면 받고 전할 것 없는 이치를 떠나버리면
조토부동행 鳥兎不同行하리라. 해와 달은 같이 가지를 않는 것이니라.

그리고 당호를 내려주시니 『향곡 香谷』이라 하였다.
1947년에 문경 봉암사에서 여러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던중에, 한 도반이 묻기를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면 지금 바로 산 사람을 볼 것이요, 또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면 지금 바로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한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었이겠느냐?』하거늘, 여기에서 바로 무심삼매에 들어가, 21일 동안 침식을 잊어버리고 정진하다가 하루는 홀연히 자기의 양 쪽 손을 발견

하자마자 활연대오豁然大悟하시고 계송을 읊프셨다.
인견양수전체활 忍見兩手全體活하니 홀연히 두 손을 보고 전체가 들어났네.
삼세제불안중화 三世佛祖眼中花로다.삼세의 불조들은 눈병에 헛꽃일세.
천경만화시하물 千經萬話是何物고 천경과 만론들은 이 부슨 물건인가.
종차불조총상신 從此佛祖總喪身이로다 이로 좇아 불조사가 상신 실명 하였구나,

봉암일소천고희 鳳岩一笑千古喜요 봉암사에 한번 웃음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수곡만겁한 曦陽數曲萬劫閑이라 희양산 몇 곡조는 만겁에 한가롭다.
내년갱유일윤월 來年更有一輪月하야 내년에도 둥근달은 다시 있겠지.
금풍취처학려신 金風吹處鶴唳新이로다.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이 새롭구나.
이로부터 천하 노화상들의 말끝에 속지 않게 되었고, 임운등등任運騰騰하며 등등임운하여, 천하의 총림에서 사자후를 하시게 되었다. 그 후 묘관음선원을 창건하여 선방의 문을 여시니,제방의 청풍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여러 선방의 조실로 20여년을 계시는 동안 크게 법의 것을 세우고 종풍을 드날리시니, 문정門庭이 너그럽고 기봉이 헙준하시여 살활종탈殺活縱奪을 자유자재로 하시었다.
1967년 여름 안거를 마치는 해제법문을 하시는데, 법제자 진제眞際가 나와서 묻기를
『불조가 아신곳은 묻지 안거니와 불조께서 알지 못한곳을 일러 주십시요.』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九九는 八十一이니라.』하셨다. 진제가 디시
『그것은 불조가 다 아신 곳입니다.』하니, 스님께서는
『六六은 三十六이니라.』하시었다. 진체가 묻기를
『佛眼과 혜안을 묻지 아니 하거니와 어떤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하시니, 진체가 말하기를
『오늘에야 비로서 큰스님을 친견하였읍니다.』하니 스님께서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는가?』진체가
『관關 빗장 관』이라 하니, 스님께서는 『옳다. 됐다.』하시고는 곧 임제정맥인 태고, 경허, 혜월, 운봉, 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진제에게 부촉하시니,『불조 대활구 법문은,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지금 활구법문을 부촉하노니, 걷우거나 놓거나 네 뜻에 맡기노라.』하시었다 그 뒤로는 월내의 묘관음사에 계시어서 후학을 제접하고 지도하시더니, 1978년 12월 15일 해운정사에서 다음과같은 열반계를 읊으셨다.

목인령상취옥적 木人嶺上吹玉笛하고
나무사람은 잿 마루에서 옥피리를 부는데
석녀계변역작무 石女溪邊亦作無로다.
돌여자는 사냇가에서 또한 춤을 추노라
위음나반진일보 威音那 畔進一步하니
위음광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니
역겁불매상수용 .歷劫不昧常受用이로다.
역겁에 매하지않고 언제나 수용하리

스님께서는 3일후, 18일 인시寅時에 빕적하시니, 세수는 67이시고, 법납은 50년이시다.

산은 산 물은 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굴리시고 말씀하시되,
산승이 법상에 올라온 것을 무엇이라고 봐야 되겠는가? 여기에서 바로보고 바로알면 一大事를 다 마쳐 버려서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늘(天是天)이요, 땅은 땅 (地是地)이라, 산은 산(山是山)이요, 물은 물(水是水)이라.」하는 여기에 무엇을 덜하고 무엇을 더하겠는가?
하늘은 하늘대로 무심히 항상 법문을 설하고, 땅은 땅대로 무심히 항상 법의 수레를 돌릴(轉大法輪) 뿐만 아니라 산도 그렇고 물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기에 대지에 진애가 끊어졌 거늘 어떤사람이 눈을뜨지 못하겟느냐? 라고 했다. 여기에는 생사도 없고, 번뇌도 없고, 법부와 성인도 없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로 더불어 조금도 다름없이 개개가 원마구족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만나면 차를 먹고 밥을 만나면 밥을 먹으며 또 가고 싶으면 가고 앉고 싶으면 앉는다.>하였다.
그런데 삼세제불이 어찌하여 出世를 했으며 역대조사는 무엇 때문에 출세를 했을가?
부처님도 팔상성도는 중하근기를 위해서 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한 분이 법상에 앉아계시고, 땅에도 수 없는 부처님이 솟아 오르고, 허공에도 수 없는 부처님이 내려오시고, 사방팔면에서 수 없는 부처님이 와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곳을 향해 에워싸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구태여 석가모니 부처님 만이 팔상성도八相成道를 했다고 하겠는가?
불법은 매우 깊어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도인이 말하기를 『과거 위음광불 이전에 분명히 천득薦得했다고 해도 삼십방三十棒을 맞는다.』했고, 또『강건너 멀리보이는 저 사찰의 찰간대刹竿臺 를 보고 다 알아 버렸다 해도 돌아가서는 역시 삼십방을 맞는다.』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방망이를 누가 면하겠는가? 바른 눈을 갖춘 본분종사라면 이 때에 전광석화와 같이 답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 산승이 법상에 올라 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피를 머금어서 남에게 품으면 먼저 자기 입이 더러워진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또 약은 병든 이를 낫게 하기위해서 금병金甁에서 나왔고 칼은 싸움을 진압하기위해서 보배갑에서 나왔다는 말과같이, 부득히 산승이 법상에 올라온 것이다.
이 법은 큰 신심과 큰 의심과 큰 용맹심으로 공부해야 성취하는 것이어서 이 세가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옛날 사람들은 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목슴까지도 아끼지 않고 법문에 들어 일대사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근기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공연히 선방이라고 지어서 「공부합네」하고 모여있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큰 신심과 큰 분심과 큰 용맹성이 아니면 공부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香谷은 月內의 조그마한 곳에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누구든지 찾아오면 나의 眼目대로 말해줄 것이니, 가게를 펴는 것도 그 물건이 팔릴만한 곳에 가서 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풍혈風穴선사는 20년을 법문하여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해도 그 밑에서 사람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공부는 마음 가운데에 티끌만한 것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다 틀려버린다. 그리고 공부해서 해결한다는 그 길만을 밟아 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미륵불이 下生하도록 해 보아도 아부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옛날에 장경長慶스님이 보복報福스님과 같이 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복스님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바로 저 곳이 묘봉정妙峯頂이라.」하니, 장경스님이 말하기를, 「옳기는 곧 옳으나 애석하다.」하였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애석하다.」고 했는가? 이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 고인들이 「관關 」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썼다.
중국에 취암翠巖선사는 대중을 많이 거느리고 여름안거를 마치는 해제일 법문에서 「하안거 한 철 동안 지내오면서 대중을 위해서 설화했으니 취암의 눈섭이 있는 것을 모았는가?」하였다.이 때에 대중이 아무도 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나중에 장경스님이 그 말을 듣고 『生也로다.』하고 답을 했고, 보복스님은『작적인심허作賊人心虛니라. 곧 인심이 허할 때 도적이 난다.』했고, 운문스님은 『관關』이라 했다.
이 『관關』은 알기가 매우 어렵다. 일본의 관산關山스님은 이 「관」자를 가지고 공부해서 3년만에 해결했기에 이름을 관산이라 했는데, 이 스님은 열반할 때에 목욕재계하고 법문을 마치고 나서 절 밖으로 나와, 절 앞 큰 계천溪川의 돌다리에 한쪽발은 땅을 짚고 한 쪽 발은 들고 서서 열반에 들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니 이「관關」이나 「가석허可惜許」의 뜻을 안다면 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출가한 목적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견성성불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절을 짓고 수리하는 일체불사도 견성성불하기 위해 공부하는 공부만을 위해서 해야지 거기에 명예나 욕심이 있어서 다른 생각으로 하면 죄만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고 참된 신심과 분심과 의심을 가지고 정진을 해야만 성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든지 못 입고 못 먹어서 승려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자꾸 늦추어서 來生에 한다는 생각을 내면 절대로 안 된다.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에 해결할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고인의 말씀에 『한 생각 불견법견佛見法見을 일으켜도 나귀의 태胎에 들어가고 말의 배에 들어가기가 화살과 같다.』고 했는데 무엇을 믿고 내생에 한다고 미룰 것인가? 공부가 그렇게 쉽사리 되는 줄 아는가?
꿈만 뀨어도 그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서 죽을 때에 정신 차려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말이 말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일 줄 아는가? 전부 뒤바뀌어 보여서 정신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데 무엇을 바로 볼 것인가?
참으로 이 정법을 만나 선방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먹고 입는데 팔려서는 도저히 안 된다. 머리에 불붙는 것을 끄는 것과 같이 해야 하고, 감옥에 갇혀 고초를 받는 사람이 풀려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같이 공부를 해야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편안하고 잘 먹는 것만 생각하면 道心이 일어나지 못하고 딴 망상과 분별과 번뇌만 일어나게 된다ㅏ.
어떤 사람이 단식을 하고 나서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이 배가 부르니까 온갖 야단들을 하는구나, 명리도 여자도 재산도 다 배가 부르니까 탐이 나는 것이지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도 없더라.』고 하는데, 그와같이 공부도 다른 것 일체를 생각하지 말고 오직 공부하나만 하면 안될리가 없는 것이다.
예전 스님네는 하루 해가 지나가면 다리를 뻗고 울었다는데 그렇게 공부하려고 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차별삼매差別三昧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방세계十方世界 그대로가 큰 반야며, 청정한 세계며, 크게 적멸한 세계며, 그게 해탈한 세계라고 하는 등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령 『可惜許』라든지, 『關』이라든지, 『蒼天』이라든지 하는 이런 것은 다 차별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또 조주석교趙州石橋라는 유명한 공안公安이 있는데, 조주스님한테 어떤 스님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조주석교라고 들리더니 와서보니 보잘 것 없는 외나무다리 뿐이로구나.』했다. 이에 조주스님이 말하되, 『너는 다목 외나무다리만 보고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하니, 그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석교입니까?』함에, 조주스님이 『渡驪渡馬니라.』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 가느니라.고 했다.
그 후에 조주스님이 수좌와 함계 돌다리를 보고 있다가 수좌에게 묻되 『이것은 누가 만들었느냐?』하니,수좌가
『「이 응」이라는 사람이 만들었읍니다.』라고 답했다.조주스님께서 또 묻기를
『만들 때에 어느 곳을 행해서 손을 댓는고?』하니, 수좌가 꽉 막혀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듯이 우리가 공부해서 모든 차별삼매를 맑은 거울과 같이 밝고 환하게 알아서 천하 선지식의 言句에 조금도 의심이 없는 때라야 능히 대자우의 큰 일을 마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티끌 만치라도 「나」라는 생각이 있다든지,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공부는 벌써 그릇처 버린 것이다.

용수불개전체현 龍수拂開全體現하고
용수를 떨처버리니 전체가 드러나고
상왕행처절호적 象王行處絶狐跡이라
상왕이 행하는 곳에는 여우자취가 끊어졌더라.
화로속의 한 점 눈雪
하나의 기 機가 있으니 위음왕불威音王佛이전에는 東을 쫓아서 西에 서고 루지불樓至佛이후에는 서를 쫓아서 동에 선다. 대중은 알겠는가?
여기에서 확연 명백하게 알 것 같으면 일체 모든 무량한 며한 이치와 한없는 三昧를 모두 알아서 밝은 거울과 같이 검은 것이 오면 검게 나타나고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나타나서 조금도 걸림니 넚고 또 아무리 백천만의 境界가 오더라도 거기에 아무런 간섭됨이 없이 如如不動해서 일체 모든경계가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법은 누구든지 깨달음으로써 아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면 千經萬論을 외우고 쓰더라도 다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법은 깨달은 分上에서는 여윌래야 여윌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또 모로구르거나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가거나 행상 晃晃赫赫해서 빛이 더 나게 되는 것이다.
연꽃은 항상 물 가운데 나는 것이지 높은 언덕이나 마른 땅에는 나지도 않고 자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수천도가 넘는 뜨거운 불 가운데 피는 연꽃은 아무리 없앨려고 해도 없어지지않고 언제든지 피어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다 타서 없어져도 그 연꽃은 더 빛나고 더 향기가 나서 처처에 다다르는 곳마다 향기가 더욱할 것이다.
그와같이 공부를 해서 깨달아 가지고 자기의 안목을 확실히 밝게 갖출 것 같으면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서 최초 威音王佛 전이나 최후 樓至佛후에도 다 함이 없이 항상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허공은 다함이 있을 지언정 이 도리는 다함이 없이 한 번 깨달으면 영겁에 迷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일대 藏敎를 설하심이 눈 밝은 선지식의 안묵으론 오히려 모래를 뿌리고 흙 가루를 뿌리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수미산보다 몇 천 만 배나 더 크고 많은 진수성찬이 가득히 있어 일체 모든 사람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데 공현히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쉰밥이나 찌꺼기 밥을 먹으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 달마대사가 東土에 법을 전하러 왔다 함도 역시 「물을 짊어지고 우물가에 와서 파는 것돠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기 전이나 공부를 한 이후라도 자기의 근본이나 정법안장이나 공겁전 자기는 항상 스스로 드러나 있고 조금도 모자람이 없나니 여기에 누가와서 뭐라고 할 것인가? 그 말에는 백 천 버분과 한 없는 이치도 「화로속의 한 점의 눈과 같은 것이다.」
이와같은 頂門正眼으로서는 몸 전체가 이 손이요 또 눈이다. 여기서 몸 전체라고 하는 것은 조그마한 이 육신 몸뚱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덮고 대천세계를 덮을 만한 안목을 갖춘 큰 인물을 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가 눈이요 손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보고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라고 이름해도 축착함이 되어서 맞지않는 것이 하나도 없게된다. 또한 모든 佛祖가 殺活이 자제하고, 收放이 자유하며, 機用이 無碍해서 죽이고 살리는 縱奪을 마음대로 하고 機用提示를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일파유조수부득 一把柳條收不得하야 한 줌의 버들가지 거두어 얻지못해
화풍탑제옥난간 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 봄바람에 옥난간에 걸어두도다.

거 량 擧揚
스님께서 젊은 시절 행각 하실적에 하루는 누더기를 깁고 있는데 朴高峯스님이 와서 묻기를 『바느질은 어떻게 하는 거냐?』하시기에 바늘로 냅다 고봉스ㅡ님 다리를 찔렀더니 『아야 ! 아야!』하시거늘 한번 더 찔렀더니 고봉스님이 껄껄 웃으시면서『그녀석 바느질 잘하는구나.』하셨다
(2)
1954년 가을 스님께서 서울 대각사에서 田岡스님께 묻기를
『巖頭스ㅡ님의 密啓란 뜻이 무엇입니까?』했더니 전강스님 말씀이
『일천성인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하시거늘 스님께서『아이고 아이고.』하시며 문을 열고 나오니 전강스님이 부르면서『자네가 긍정 못하겠으면 다시 일러보라.』하거늘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말에 침 놓고 뜸 뜨는 것은 어리석은자나 할 짓입니다ㅏ.』하고 떠나 오셨다.
뒷날에 스님께서 법제자 진제에게 묻되
『암두밀계의 의지를 어떻게 보는가?』진체가 답하되
『마조스님은 천하인을 踏殺했지만 임제스님은 아직도 白拈賊이 못됩니다.』하니 스님께서 더 묻지 않으셨다ㅏ.
(3)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크고 큰 송장 하나가 있으니 머리는 非非想天 꼭대기에 닿아 있고 다리는 압비지옥 밑바닥에 버티고 있으며 몸뚱이는 시방세계에 가득차 있다. 만일에 이 대중속에 이 송장을 살려낼 자가 있겠는가?』하시었다. 이 때에 한 수좌스님이 나와서 『큰 스님!』하고 불렀다. 스님께서 응답하시니 수좌는 예배드리고 물러갔다. 스님은 말씀하시기를 『사자새끼가 사자후를 잘 하는구나.』하셨다.
(4)
春城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깊은 산 굴 속에 한 마리 청사자가 있는데 산에 갔다가 홀연히 그 사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만 되겠읍니까?』하였는데 그때 대중속에 한 노스님이 나오셔서『시자야, 절을 한 번 해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이 이야기를 가지고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께서 문득「사자의 울음소리」를 내시니, 춘성스님이 찬탄하면서 『과연 남방 선지식이니라.』하였다.
(5)
고봉高俸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가시려 하는데 금오金烏스님이 나와서 옷자락을 잡으며『올라가기 전에 한마디 이르고 가시오.』하니, 고봉스님이 『놔라!놔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가지고 법제자 진제스님에게 묻기를『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하시거늘 진제스님이 문득 「할」을 했더니 스님 말씀이 『네가 정말 그렇다면 만인을 눈멀게 할 것이다.』하시기에 진제스님이 말하기를 『소승의 허물입니다.』하니, 스님께서도 『노승의 허물이니라.』고 하셨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
하루는 진제스님이 스님앞에 나와서 물었다.
제자 : 스님께서는 뉘 집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며 누구의 종풍을 이었읍 니까?
스승 : 운봉스님 일구를 이어받아서 영겁에 쓰고도 다하지 않느니라.
제자 : 이 밖에 별다른 한 마디가 있읍니까?
스승 : 허리츰에 십만 관돈을 두득히 차고 하늘에나 땅에나 마음대로 놀 러다닌다.
제자 : 화상의 말씀 한마디를 들려 주십시요.
스승 : 진흙소 한 울음에 천지가 깜짝놀라 부처와 조사가 모두죽었더니 라.
제자 : 기특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스승 : 하나만 들먹이면 일곱을 얻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최초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석가와 미륵이 도탄에 빠졌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末後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버갯불속에 곤두박질 치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如來禪입니까?
스승 : 눈 밝은 남자가 깊은 우물에 빠짐이니라.
제자 : 어떤것이 向上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불조사가 불속으로 꺼꾸러져 갔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向下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돌사람이 무쇠소를 잡아타고 벽옥의 저 세계로 달아났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轉身하는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머리가 셋 팔 여섯가진 놈이 삼키고 뱉음을 자제로 하느니라.
제자 : 대도는 문이 없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스승 : 쉬 ! 쉬 ! 말조심 해라.
제자 : 쉬 ! 쉬 !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스승 : 동쪽 서쪽 백억세계요, 남쪽 북쪽이 십억 국토니라.
제자 : 조주스님의 「뜰앞의 잣나무』 뜻이 무엇입니까?
스승 : 맹호의 아가리에 살림차리고 푸른 용의 굴속에서 곤두박질 하느 니라.
제자 : 조주 「무」자 뜻은 무엇입니까?
스승 : 마군이는 자빠지고 부처는 달아나고 손과 발이 덜덜덜 혼이 산발 하느니라.
제자 : 운문화상의 「간시궐」의지는 무엇입니까?
스승 : 밝은 해가 야밤중에 하늘에 뜨니 천상에나 인간에 짝할 이 없느 니라.
제자 : 동산수초선사의 「마삼근」의지는 무엇입니까?
스승 : 무쇠소가 놀라서 서천으로 달아나고 수미산이 야밤중에 황하강을 건너가니라.
제자 : 어떤것이 화상의 경계입니까?
스승 : 문수보살 집에서 해가 떴으며 관음보살 집에서 달이 지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화상의 일상 하는 것입니까?
스승 “쇠망치로 청룡의 굴을 쳐부셨으니 금털가진 사자가 개로변해 갔 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스승 : 돌속에 불같은 얼굴이니라.
제자 : 조사란 어떤 것입니까?
스승 : 불꽃속에 돌같은 얼굴이니라.
제자 : 어떤것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 입니까?
스승 : 불속에 흙말을 굽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모든 부처님이 출신하신 곳 입니까?
스승 : 토끼뿔 다리위에 무쇠소가 달음질 치느니라.
제자 : 선정이랑 무엇입니까?
스승 : 동하는 가운데 동하는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제자 : 대해탈은 어떤 것입니까?
스승 : 진흙소가 황하강을 건넘이니라.
제자 : 대적삼매가 무엇입니까?
스승 : 예날에 봉황새가 북두로 들어가더니 지금까지 까마득히 소식이 없다.
제자 : 어떤것이 本身을 매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승 : 금강의 눈동자속에 보검이 감춰져 있느니라.

황혼의 반란

황혼의 반란
분수대 논설위원 문화전문기자 노재현
노인한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
젊은 세대와 어떻게 공존할 건가

102세 할머니가 저신마취로 6시간짜리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100세 암수술 시대’를 열었다. 부럽고 감탄스럽다. 많은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란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 곳에서라면 할머니는 수술받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 초고령사회 프랑스에서 노인 배척운동이 일어난다. 학자들이 TV에 나와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등 때문’이라고 외친다. 정치인들도 ‘의사들이 노인층에 약을 너무 쉽게 처방한다’고 비난한다.
여론ㅁ이 조성되자 정부가 나서서 먼저 인공심장 생산을 중단시ㅣ킨다. 대통령은 신년담화에서 ‘노인들을 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읍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돼야 합니다.’라고 선언한다. 돋바로 70세 이상은 약값치료비 지급을 제한하고 80세부터는 치과, 85세는 위장치료, 90세는 진통제 처방에 대해 환급을 중지한다. 100세 이후는 모든 무료의료서비스 금지다. 젊은 구성된 체포조가 전국을 돌며 노인들을 붙잡아 ‘휴식ㆍ평화ㆍ안락센터에 가두고 독극물 주사를 놓아 죽인다. 그러자 노인들이 들고 일어나 생존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시작한다…….
“황혼의 반란”의 대척점에 영화 ‘아일란드’가 잇다.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2019년 부자들의 질병 부상에 대비해 복제품 인간들을 따로 비밀리에 사유하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설이든 영화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중인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은 두 상상의 세계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실제로 고령자가 쓰는 의료비는 가파른 증가세다. 의료예산 증액은 한계가 있으니 잚은세대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의료뿐일가. 고령자 운전문제 하나만 봐도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지난 10년사이 3배 넘게 늘었다. 960번째 도전에서 운전면허를 따내 ‘959전 960기’ 신화로 유명한 차사순70 할머니도 몇 차례 교통사고를 낸 뒤 운전대를 놓았다고 한다. 기아 조작을 착각해 벽을 들이받고 감나무에도 돌진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가 1275만명이나 되는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버스 택시 요금 할인, 상품권같은 혜택을 준다. 일본도 고령자 교통사고가 지난해 10만 6000건으로 사상 최고였다.
운전으로부터 의료ㆍ일자리ㆍ주거ㆍ여가생활까지 고령화가 걸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청ㆍ장년층과 하나하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판이다. “황혼의 반란”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 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도서관’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있다..

Friday, December 30, 2011

누가 '한국의 키신저'가 될까???

누가한국의 키신저’가 될까 ???ㆍ
중앙시평 수석 논설위원
오병상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 중이다.
소련공산주의 내응전략인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 키신저 데탕트는 탈 냉전 시대의 문을 열었다.

1946년 2월 3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재사관에 한 장의 전문이 날아왔다. 소련의 대외정책에 대한 워신턴의 문의였다. 대사는 부재 중이었다. 43세의 부대사 조지 케넌이 답했다. 그는 비밀전문 머리말에서 ‘복잡 미묘하고 예상하기 힘든, 그래서 매우 중요한 분석이기에 짧게 쓸 수가 없다’며 ‘본부의 양해를 구했다. 5개 항목에 걸쳐 19페이지 분량을 써 내려갔다. 이례적으로 ‘긴 전문( Long Telegram )’ 이었다.
‘ 긴 전문’ 은 20세기 국제정치를 지배한 냉전이데올로기의 성경(Bible)이 된다.
전문을 읽어보면 오히려 짧다는 느낌이 든다. 러시아의 역사와 민족적 특성, 레닌에 의해 토착화된 마르크시즘의 속성까지 대외정책의 주요 변수를 총망라하면서 하니씩 날카롭게 분석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대전략가의 혜안이다. 당시 서방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지였던 소련에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캐넌은 이런 환상을 단숨에 박살내고 소련의 미래 행동패턴을 정확히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전통과 마르크시즘이 결합해 악의 제국을 낳았다. 차르의 공포정치와 볼세비키의 환상이 결합하면서 인륜과 도덕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에 대한 대응전략은 ‘봉쇄 CONTAINMENT ‘다. 외교정책은 크게 보자면 봉쇄와 포용 Engagement 이다. ‘ 봉쇄는 포위며, 적의 붕괴가 곧 승리다. 반면 포용은 타협이며, 적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한다. 캐넌이 말하는 봉쇄는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확도한 위력으로 정면 대응하는 것이다.
케넌식 냉전이데올로기는 미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은 4년 뒤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한반도는 방어선 밖’ 이라던 기존 정책을 번복하고 곧바로 참전했다. 캐넌은 6ㆍ25의 숨은 공신인 셈이다. 그러나 이너진 베트남전쟁은 사정이 달랐다. 베트남전쟁은 냉전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기엔 너무나 명분없는 학살이였다. 공산주의는 적이고, 자유진영(사이공정부)은 친구라는 냉전적 이분법이 통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냉전이데올로기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데탕트 detenteㆍ긴장완화’ 의 문을 연 사람은 미국의 헨리 키신저다. 키신저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평화외교를 전공한 박사다.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을 인정하는 균형외교론이다. 키신저가 주목한 나라는 중국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보다 중국을 더 적대시했다.
키신저는 저서 『중국론 On China』 2011ㆍPenguin Press 에서 베트남전과 핵核 때문에 중국을 주목했다. 고 밝혔다. 계기는 우수리강 분쟁이다. 중국과 소련 국경에서 군인들끼리 몸싸움이 전투로 확산됐다. 마오쩌둥 毛澤東은 당시 중국 지도부에 ‘베이징을 떠나라’고 명령했을 정도로 위기감에 싸였다.
미국 입장에선 호기다. 베트남전을 마무리하려면 중국이 도와야 했다. 핵 보유국 간의 전쟁은 공멸이다.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72년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마오는 닉슨을 만난 자리에서 강경파 린바오 林彪의 죽음을 조롱했다. 竹의 장막은 거둬졌다.
그로부터 40년, 키신저의 예측대로 미국은 중국을 파트너 삼아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북한 김정일 사망이 별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략가 키신저가 오늘날 한반도에 안전막을 깔아준 셈이다.
한 해를 보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는 전쟁이후 냉전이데오로기에 지배당해왔다. 닉슨의 중국방문에 영향을 받아 같은 해 7ㆍ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후 남한은 10월 유신으로,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냉전이데오로기를 강화하는 역주행의 페달을 밟았다.
남북 관계가 미ㆍ중 관계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캐넌이후 66년, 닉슨의 중국 방문 이후 40년 아직 우리 사회엔 케넌식 냉전이데오로기가 세력을 잃지않고 있다. 이젠 달라져야 할 상황이 점점 분명해 지고있다. 김일성이 사망한 94년과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남한이 북한을 봉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없어져야 할 핵이라 홧신해도, 북한이 핵을 보유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격동이 예상되는 2012년 긴 안목에서 대전략을 구사할 ‘대한민국의 키신저’를 갈망해 본다..

Wednesday, December 28, 2011

8 그럼 다섯가지란 무어지 ?

8 그럼 다섯가지가 무어지 ???
수행자가 도를 깨달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예전에 도겸道謙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이십년간이나 참선을 했어도 공부가 시원치 않았다. 머리를 들일 곳도없도 깜깜하다.
그래서 선지식을 친견하러 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십년동안이나 신이 닳아 떨어지도록 선지식을 친견하며 수행을 했어도 아무얻은 것도 없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작년에도 그렇고 금년에도 그러니, 먼 길을 떠나 선지식을 찾아 가봐야 또 그렇고 그럴것이 아니겠는가, 또 가봐야 소용이 없을 것같아서 안가려고 생각하니, 따분하고 서럽고 서글픈 생각이 나서 운다.
함께가던 종원宗元이라는 도반이 곁에있다가
「너 왜 우노 ?」
「난 안가련다, 여지껏 내가 공부를 하며 이십년간이나 이 산 저 산 다니며
선지식을 많이 친견해도 아무소득이 없고 깨닫지도 못하고 이번에 가봐야 또 안그렇겠는가? 그러니 가지 않으련다.」
「아니 네가 떠나려고 해놓고 안간다는 말은 또 무어냐, 그렇다면 내말 들어봐라, 네가 지금 선지식을 만나려는 생각도 하지말고, 네가 아는 것들도 생각지 말고, 다섯가지 너에게 있는 그것만 알면된다. 그것을 알아봐라.」
「그럼 다섯가지가 무어지?」
「옷 입고 밥 먹는 것, 대, 소변 보는 것, 그리고 산 송장을 실어가지고 길위를 다니는 이것이 다섯가지다. 이것만 알면 된다. 도반 종원이의 이 말에 그만 활연히 깨달았다.」
여러분들이 무슨 옷이든 하루종일 옷을 입더라도 옷 입는 놈을 모른다. 무엇이 들어서 능히 옷을 입고, 또 무엇이 들어서 능히 밥을 먹고 대, 소변을 보는지도 모른다. 음식도 먹는데 입이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씹어 삼키고 하는 한 물건이 있는데 이것을 모른다.
또 산 송장을 실어가자고 길 위로 다니는 이것을 모른다. 이 다섯가자를 말하는데 도검이 활연히 도를 알았다.
그 스님이 춤을 춘다. 무르던 것을 알았으니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하늘에는 별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땅에는 흙도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바다에는 물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선 에는 나무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그 사람이 춤만 추었다고 전해오지 이런 노래를 했다고는 전해오지 않는데 이 말은 내가 연에 발을 달듯이 달은 말이다. 춤 출때 손바닥을 치든지, 무슨 박자를 맞추어 추듯이…… 그냥 추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내가 발을 달기를 하늘에 별을 가지고 말했는데, 하늘에 별이 없으면 참으로 밥 하늘이 깜깜하다. 그 많은 별 가운데, 이십팔수 二十 八宿가 있어서 인간세상과 선과 악을 조사한다. 또 정반성定盤星이라는 별이 있는데, 다름별들은 다 움직이지마는 이 정반성은 움직이지않는다. 우리도 정반성과 같이 심주心柱가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이 동하지 말아야 한다.
땅에는 곡식을 심어 모든 중생들을 풍성하게 이롭게 한다. 나락 한낱 심어놓으면 거기서 벼가 자라서 한 이삭에 이백 오십낱이나 붙는다. 그러니까 남을 이롭게 하기를 땅과같이 해야한다.
바다에는 물도 많은데, 바다의 물과같이 푸르고 또 바닷물에 수 없이 많은 어족들이 살고 바닷물은 온갖 강과 하천에서 흘러들어호는 물들을 받아들이고 해도 붇거나 줄지를 않는, 이 바다에서 남을 포옹하는 법과 많은 것을 배울점이있다.
나무가 있어서 잎도피고 꽃도피고 하는데 나무가 없으면 불도 못 때고 집도 못 짓는다. 그러니 초목이 사람을 이롭게 하듯이, 이것을 배워서 남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다.
신라 흥덕왕때에 경주동쪽 모량리에 손순孫順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부친은 학산鶴山이고 모친은 운조運鳥라 하였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반찬도 마련하고 해서 연로하신 노모를 봉양하는데, 어린아이 하나 있어서 자꾸 맛있는 음식을 빼앗아 먹고 보채니 아이 때문에 노모를 잘 모시가가 어렵게 되었다. 하루는 두 내외가 의논하기를 저 아이때문에 부모를 잘 모시지도 못하겠으니 저 애를 뒷산 취귀산에 묻어 버리자고하니 그 부인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한다. 참으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역사에 실려온다.
그래서 두 부부가 어린것을 안고 뒷산에 올라가 묻을 곳을 파는데, 한참 파다가 괭이에 덩그렁하고 걸리는 것이있어 파 보니 돌종이 하나 나온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좋은 돌종이 나오기에 둘이 말하기를, 이 아이를 묻지말고 이 종이나 가지고 가자 하고는 종을 울러메고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가져다 걸어놓고 간혹 처보면, 돌로 만들어진 종이 청아한 소리가 참으로 맑게 울려퍼진다. 손순의 집이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부근이라서 대궐에서 임금님이 듣자하니 어디서있지 아주고운 종소리가 들려서, 신하들을 사켜 조사를 해 오라 하였다. 신하들이 와서 말하기를, 부모에게 효성을 하느라고 아이를 묻으러 땅을 파다가 거기서 나온 돌종소리라고 말하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예전에 곽거郭巨라는 사람도 아이가 노부모의 맛있는 음식을 뺏아먹고 자꾸 보채는 것을 파묻으려고 땅을 파니 땅 속에서 큰 솥이 나왔는데 솥안에 황금이 꽉 찼다.
그래서 아이도 묻지않고 금방부자가되어 부모를 잘 봉양하였는데, 예나 이제나 일반이다. 부모한테 효성이 지극하면 천지가 감동해서 그리되는 일이다.」
하고는 크고 좋은 집 한채를 하사下賜하고 효자의 賞으로 해마다 벼 오십섬을 주었다.
그 후에 손순이 자기 집을 절로 만들었는데, 절 이름을 홍효사弘孝寺라 하였다.
효도를 넓히는 절이라고…….
요즈음의 일을 생각해 보면 꿈같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든지, 가정에 참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면 이렇게 복을 받는다.
빈빈환아불귀가 頻頻喚兒不歸家 자주 아이들을 불러도 돌아오지않기에
식향문전농토사 食向門前弄土沙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문앞에 흙장난만 하는구나
매도년년삼월리 每到年年三月裡 해마다 삼월이 돌아오면
만성도이목단화 滿城桃李牧丹花 성안에 가득한복사꽃 모란향을 그네들이 어이알리
그러니 좀 고매한 이 진리에 눈을 돌리기는 참으로 힌든 것이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기에,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유치하게도 흙장난에 여념이 없는데, 중생들이 의식주衣食住에 얽어매여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 모두 흙장난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복사꽃이나 오얏꽃 모란의 향기를 –-
이 고상한 진리의 향기를 , 맡을 수가 있겠는가 ?
칭두반근 秤頭半斤 저울 머리에는 반 근이요
칭미팔량 秤尾八兩 저울 꼬리에는 여덟 냥이로다
여덟냥이 반근이요 반 근이 여덟냥이니, 다 똑같은 말이지만, 여기에 묘한 진리가 있는 것이다.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울산 무우 양산 감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구르고 이르시되
원래도개비심색 元來道箇非心色 원래 이것은 마음과 경계가 아닌데
공설색심뇌후인 空說色心腦後人 부질없이 경계와 마음을 말해 뒷사람을 괴롭히네
막문차시심흥색 莫問此時心興色 마음과 경계를 묻지 말고
호간가리구주인 好看家裡舊主人 자기집 옛 주인을 볼지니

부처님 말씀에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고, 참된 것으로 허욕을 이기고, 진리로 허위를 이기라고 하셨다.
사람이 한 생각 바르게 들면 부처님의 경계요, 한 생각 어두우면 곧 육도六途이다. 한 생각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도 자기를 여윈 것이 아니다.
당나라 헌종황제 원화 십일년에 장안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섬서陝西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곳에는 불법이 아직 퍼지지 않아 불법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곳이다. 이곳을 교화하가 위해서 보현보살이 노모가 되고, 관세움보살이 보현각시普德閣氏란 아주 천하에 아름다운 처녀로 화현하여 이곳에 나타났는데, 모녀가 이곳에 와서 살기 시작하자마자 중매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워낙 처녀가 예쁘기 때문이다.
중매가 하루에도 수백명씩 들어왔다.
하루는 보덕각시가 나와서 중매장이와 장가갈 총각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나는 인물 잘난 사람도 구하지 않고, 돈 많고 권세가 있는 사람도 구하지 않고, 재주가 좀 있는 사람이면 내가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재주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시험을 보겠는데 법화경法華經 보문품普門品을 한나절만 외우는 사람에게 시집가겠소.」 하고는 보문품을 내주니까 장가가기위해서 모두들 죽을판 살판 외운다. 한나절이 지나자 보문품을 외운 사람이 오십명이나 되었다.
「나는 한 몸인데 어떻게 오십명에게 시집을 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 시험을 한번 더 봅시다.」하고는 금강경金剛經을 내주고 하룻밤에 외우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단다. 글을 그렇게 읽으라면 읽겠나, 장가갈 욕심으로 죽을판 살판 밤을 새워서 외운 사람이 무려 백명이나 되었다. 또 말하기를 이번에는 법화경을 내주고 이 경을 사흘만에 읽어서 외우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법화경을 죽자사자 읽었는데 일곱권이나 되는 경을 모두들 외우지 못하고 오직 마랑馬郞이라는 이가 사흘만에 외웠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시집가기로 정하고 잔칫날을 받았는데 드디어 그날이 왔다. 장가가려고 경 외우기 시합하던 이들과 그 사람들의 친적들, 그리고 또 소문난 그 아름다운 신부를 보러온 구경군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잔치를 시작하기전에 신부가 말하기를 「내가 대례를 지내자면 몸이 편안해야 하니 지금 고단해서 좀 쉬었다가 나오겠소.」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몇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기에 문을 열어보니, 보덕각시가 앉아있던 그자리에 백골만 소릇이 남아있다. 이것을 본 마량이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깨닫고, 생노병사生老病死를 해탈할 큰 발심과 원력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일깨우고, 마랑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러한 교화방법을 베푼것이다.
하루는 신선같은 풍채에 흡사 학과같이 생긴분이 찾아와서 보덕각시 무덤을 찾기에 안내해 주자 주장자로 무덤을 파헤치니 그안에 뼈들이 온통 황금고리로 변해 있었다. 뼈를 주장자에 꿰어 울러메고 허공으로 올라갔다. 이 신선같은 풍채의 노인은 곧 보현보살이다. 성인들이 신통묘용神通妙用으로 연극하듯이 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제도하고 미랑을 발심시키려고 한 것이다. 마랑이가 보덕각시에게 장가가려고 법화경을 사흘만에 외우고 하다가 그 아름다운 사람이 뼈만 남은 것을 보니 이 몸이 幻과 같고 물거품 같고, 꿈과 같고, 번갯불과 같고, 풀끝의 이슬과 같은 허망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천천泉川의 찬화상燦和尙이 여기에 頌을 읊기를
봉자요조빈기사 丰姿窈窕鬢倚斜 요염히 머리를 흩날리며
뇌쇄낭군염법화 惱殺郎君念法華 여러낭군을 홀려서 법화를 외게 했네
일파골두도거후 一把骨頭挑去後 한줌의 뼈를 둘러메고 간 후에
부지명월낙수가 不知明月落誰家 아지 못커라 밝은 달 뉘집에 떨어졌나

그마음이 정해져야 천하의 변함을 알고, 그 마음이 평등해야 천하일을 의논하고, 그 마음이 바어있어야 천하의 착한 것을 받아들이고, 그 마음이 커야 천하의 물건을 용납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 하난 잘 쓰면 온갖 것이 잘 된다.

부처님 당시에 계율을 잘 지키는 우바리 존자가 있었다. 산중에서 공부를 하다가 가을이 되어서 오곡이 무르익는 벌판을 구경하는데 탐스럽고 보기좋게 익은 조를 손으로 만지니 조알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이것을 먹으려하나 남의 곡식이라 먹을 수 없고 버리자니 남의 곡식을 버릴 수 없고 버리나 먹으나 마찬가지 갈아서 먹었다.
이 곡식을 먹고는, 내가 남의 곡식을 그냥 먹을 수 있겠나 해서 신통력으로 소가 되었다. 소가 되어서 그 밭에 있는데, 밭 임자가 그 소를 삼일간 봐도 주인이 찾아가지 않기에 욕심이 나서 소를 몰고 집으로 왔다.
이 소가 들어온 뒤로부터 곡식도 잘 되고 모든일이 잘 되어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소가 삼년이나 그 집 농사를 지었다. 하루는 소가 주인을 부른다.
소가 말하기를 아무 날 아무 시에는 손님이 오백명이나 올 터이니 음식을 장만해 놓으라고 한다. 주인은 소가 말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여서 음식을 차려 놓았다. 소가 말해주던 그날에 도둑놈이 오백명이나 왔다. 칼과 창, 활을 메고 밀려 닥쳤다, 음식을 차려 대접하니 도둑놈들은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가 시장햇던지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도둑놈들이 생각하기를, 자기들이 여직껏 도둑질을 하고 다녔어도 이렇게 오백명이나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대접하는 일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주인을 불렀다. .
「어떻게 우리들이 올줄 미리 알았는가 ?』
「나는 몰랐는데, 우리 소가 손님이 오니 준비를 해 놓으라고 해서 준비를 하였다.』
「소도 말을 하나 ?』
그 말이 끝나자 마굿간에 있던 소가 껍질을 벗고 나왔다. 그리고는 도둑놈들을 향해 일장 說法을 한다.
「나는 산중에서 수도를 하던 사람인데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은 것이 하도 좋아서 그것을 구경하다가 이 집 밭에 탐스런 익은 조를 손으로 만졌는데 조알 세낱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버릴 수도 없고해서 먹었다. 남의 곡식 세낱을 먹고 그 댓가로 내가 소가 되어서 삼년을 이집 농사를 지어주었다. 그런데 어떤가. 너희들은 그저 남의 집에가서 창과 칼로 위협하여 재물을 강탈해가닌 소가 되어도 몇 백번이나 되겠는가?」
이 말에 도둑놈들은 감동이 되어 칼과 창을 전부 버리고 발심을 하여 출가해서, 수행을 잘하여 모두 라한과羅漢果를 중득해 오백 나한이 되었다.. 우비리 존자는 오백 도적을 교화시킨 후 그 소가죽을 동쪽 바다에 던졌더니 그 소가죽이 우무牛毛가시리가 되어 현재 한천공장寒天工場에서 세계일류 요리의 좋은 재료로 쓰여지고 있다.
언젠가 제주도엘 가본적이 있는데 사립문에 다가 연목같은 것을 가로 질러 놓았는데, 그것이 무었이냐고 물으니 이 집에는 사람이 외출하고 없다는 표시란다. 연복만 턱 걸쳐놔도 사람이 없으니 안 들어간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심이 순박한 풍경도 있다.
금을 캐면, 금 속에는 은도 있고 동도 있고 철과 연 등의 잡철이 섞여 있는데, 이것을 제련해서 다 빼 버리고 이십사금이 되어야 세계에 통용하는 보배가 되듯이,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찮은 마음이 쑥 빠져야 그 사람이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어두운 것이 없으면 밝아진다.
관음보살대의왕 觀音普薩大醫王
감로병중법수향 甘露甁中法水香
포탁마운생서기 蒲濯魔雲生瑞氣
소제숙뇌획청량 消除熟惱獲淸凉
이 관음보상의 찬讚을 진리적眞理的으로 해석을 하여 보자. 우리가 소리를 듣고 관하는 그 자리가 곧 사람마다 자기관음보살이다. 보菩자는 요달了達하는 뜻이요. 살薩자는 보는 의지다. 요견了見하는 것이 곧 보살菩薩이니, 사람마다 자기에게 참 관음보살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고, 감로병은 사람의 몸이 곧 감로병이니, 몸안에 좋은 것이 많이 있고 또 정定과 혜慧를 닦은 정혜수定慧水가 곧 法水이다. 마운魔雲은 무엇인가 하면 마음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있다. 그것을 법수로 세탁하면 몸과 세계에 상서가 난다. 사람들이 모두들 물질과 사람을 因해서 걱정과 수심을 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것을 소제消除하면 청량淸凉함을 얻는다는 의지이다
울산나포양산시 蔚山나葡梁山枾
자고명전직지령 自古明傳直至令.
울산 무우 양산 감은
예로 부터 이름이 나 있어 지금까지 전하네
양산은 예로부터 감 고장인데, 울산 무우와 양산 감, 이것을 하나 먹어보면 이 도리가 그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아는데, 그래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할 일 할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Monday, December 19, 2011

나라의 명운 가른 만남

나라의 명운 가른 만남
정진흥의 소프트파워
# 박태준과 박정히의 만남은 대한민국의 洪福이었다. 그 만남은 대한민국을 희망 없는 음지에서 활기 넘치는 양지로 이끈 결정적 계기였다.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 6기생으로 들어가 육사 6기가 된 박태준 생도는 생도대 제1중대장 겸 교관이었던 박정희 대위와 처음 만났다. 어느 날 교관 박정희는 미분과 삼각함수 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풀 수 있는 탄도궤적 측정의 문제를 강의실 칠판에 적었다. 모두가 난감해 할 때 그 문제를 풀어낸 이가 다름아닌 박태준 생도였다. 그 일로 박태준이란 이름 석자는 젊은 박정희에게 각인됐다. 정말이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구 후 박종희는 48년 여순반란사건 이후 전개된 肅軍과정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살아 남았고, 포천 1연대 중대장이었던 박태준은 6ㆍ25전쟁의 최전선에서 끝내 생환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57년 10월이었다. 1군 참모장이었던 박정희가 박태준을 1군 산하 25사단 참모장으로 부른 것이다.
그 후 박정희 소장이 60년 2월 부산군수기지사령관이 된 후 박태준 대령역시 사령부 인사참모로 부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5ㆍ16이 감행됐을 때 거사명단에는 박태준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거사 이틀 듸 박정회는 박태준을 불러 혁명거사 명단에서 그를 뺀 이유를 밝혔다.
“하나는 거사가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아 군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고 다른하나는 내 처자의 뒷일을 부탁하려 했기 때문이라네!” 결국 거사가 성공한 후 박태준은 최고희의 의장 박정희의 비서실장이 됐다.
#박태준이 아내 장옥자여사로부터 받은 신혼 첫 선물은 반지도 시계도 아니었다. 『경제학 원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정살림경제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64년 새해 첫날 박태준은 박정희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그는 육영수 여사가 손수 따라주는 따끈한 정종을 마시며 이제 곧 유학 길에 오른다는 것을 알려 드렸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를 한ㆍ일국교정상화를 위한 대일특사로 파견할 뜻을 밝힌 후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자네 여태 집도 없더구먼, 집이나 장만하게.” 첫딸을 낳은 후 열다섯 번씩이나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박태준은 박정희의 금일봉과 셋방 전세금을 합쳐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처음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64년 10월 박정희는 다시 박태준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대한중석을 맡아 달라고 했다. 텅스텐을 캐내 해외수출하던 대한중석은 60년대 초만 당시 연간 국가 총수출액 약 3000만 달러 중 500만!600만 달러를 점유할 만큼 막중한 기업이었다. 박정희는 박태준을 대한중석에서 시험해보고 종합제철소 건설의 임무를 맡길 요량이었다. 65년 6월 박태준은 다시 박정희와 독대했다. 박정희가 입을 떼었다. “제철소 건설을 맡아주게.아무리 둘러봐도 이 일을 맡길사람은 임자밖에 없어, 나는 고속도로를 직접 감독할거야. 자넨 제철소를 맡아!” 국토의 대동맥을 잇는 일은 대통령이 맡고, 산업의 쌀인 철을 만드는 일은 박태준의 손에 달렸던 것이다.
# 69년 7월 박태준은 박정희의 3선개헌 지지서명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 대통령 주변은 분개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그 친구 원래 그래, 제철소 일 열심히 하게 건드리지마.” 3선 개헌이 관철되고 난 다음인 70년 2월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설비구매와 관련된 애로사항을 건의토록 한 후 그 서류에 곧장 사인해서 되돌려 줬다. 전권을 위임한 이른바 ‘종이마패’였다. 그러나 박태준은 이것을 한 번도 세상에 내밀지 않았다. 그것은 박정희 사후에 공개됐을 뿐이다.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웅변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두사나이의 만남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한 사람은 오래 전에 고인이 됐고, 이제 남은 한 사람마져 우리는 떠나보낸다. 이 흔들리는 시절에 “애국심 갖고 일해달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 귓전을 때린다.
논설위원 atombit @joongang.co.kr

Sunday, December 18, 2011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殺佛殺祖 거침없는 선승

조계종 13대 종정 추대 진제 스님
불교 조계종 13대 宗正으로 14일 추대된 眞際스님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으로 꼽힌다. 이번에 함께 종정 물망에 올랐던 송담松潭 스님과 진체스님을 묶어, 중국 당나라 때 두 고승인 ‘南 설봉, 北 조주’에 빗대 ‘남 진체, 북 송담’이라고 부르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스님을 여러 차례 친견親見해 진면목을 잘아는 이들은 스님이 “언제 어디서난 법문法門, 설법을 호호탕탕하게 잘 하시는 분”이라고 증언한다.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큰 스님을 만나면 큰 스님을 죽여라’. 즉 공부에 자신이 있다면 수행기간이 짧은 젊은 소행 자라도 큰 스님에게 맞설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스님은 자칫 살벌한 법거량法擧揚ㆍ공부의 깊이를 재보는 일, 전통이 살아있는 선불교에서 어느 누구와도 자신있게, 또 거침없이 맞상대를 해왔다.
어떤 도전에도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수행력을 갖춘 분이라는 얘기다.
특히 스님은 수행자나 일반 신자, 타 종교지도자와의 법거량 때 잠시 망설임도 없이 즉시 대답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대응으로도 이름높다. 공부의 깊이가 깊고 사유의 폭이 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스님의 이런면모는 젊은시절 남다르게 치열했던 정진 때문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스님은 열아홉 살 때인 53년 石友선사를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석우선사를 존경하는 오촌 당숙을 따라 뵈러갔다가 선사로부터 “이세상에 사는 것도 좋지만 今生에 사바세계에 안 나온 것으로 하고 중 놀이를 해보지 않겠는가”라고 권유를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곧바로 부모의 허락을 받고 출가했다.
스님의 공부가 깊어지기 시작한 건 67년 당대 선지식善知識ㆍ깨달음을 얻은 고승,으로 이름높던 향곡香谷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석 달 동안 섭취한 과일이라곤 사과 한 개 반 뿐이었을 정도로 궁핍한 가운데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러면서 향곡스님이 내려준 화두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두 화두는 ‘높은 나무 가지를 입으로 물고 매달려 있을 때 누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었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묻는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열반직전의 마조馬祖선사에게 아침문안 인사를 드리자 답으로 돌아온 ‘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다. 스님은 두 화두를 각각 2년, 5년 씨름한 끝에 뚫어내고 깨달음을 얻었다. 때문에 스님은 선불교를 중흥한 경허鏡虛스님으로부터 시작해 혜월慧月-운봉雲峰-향곡香谷스님으로 이어지는 영남지역의 법맥法脈을 잇는 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님은 불교의 대중화ㆍ세계화에도 앞장서 왔다. 지난 9월 뉴욕 맨해튼 리버사이드 교회를 찾아 진리를 찾는 문제에 관한 종교 간 구별이 없음을 강조했다. 2002년에는 중국과 일본의 선종을 초청해 자신의 조실祖室ㆍ사찰의 최고어른,ㆍ로 있는 해운정사에서 국제무차선대회를 열었다. 한ㆍ중ㆍ일 세나라의 스님은 물론 대회에 참석한 일반 불자들과 법거량을 벌였다. 스님은 현재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등을 맡고있다. 종정임기 시작일은 현 법전法典 종정의 임기가 끝나는 다음 날인 내년 3월 25일이다.신준봉 기자
ㆍ종정 추대 수락 말씀
원로 대종사님들 께서 부덕한 산승山僧을 종정에 추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산승은 앞으로 우리 종단의 화합과 수행修行을 위해 이사理事방면에 원로스님들의 고견을 받을 것이며,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看話禪을 널리 진작하는데 노력하겠읍니다.
ㆍ진체스님의 수락 법어法語
대지여우인막측 大智如愚人莫測 큰 지혜를 가진이는 어리석어 보임이나,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함이요
수래방거역비구 收來放去亦非拘 진리의 廛ㆍ가게,을 거두고 놓는 데 또한 걸림이 없음이로다.

종정宗正=조계종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불법佛法의 상징이다. 때문에 성철 스님을 비롯해 효봉 청담 스님등 최고의 선승禪僧들이 추대돼 왔다. 종단 행정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실권은 없다. 하지만 ‘부처님 오신날’ 등 종단의 주요 행사와 안거를 맞아 법어法語를 내리고, 종단의 모든 스님들에게 계戒를 수여하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위촉권, 스님들에 대한 포상, 사면 등의 권한을 갖는다. 임기는 5년,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종단의 행정권은 총무원장이 갖고 있다.

Saturday, December 17, 2011

아가가 세상에 나오는 일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일
사람과 세상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현대의학이 발달되기 전까지 아기를 낳는 일은 여자의 생명에 가장 큰 위협이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병원에서 분만대에 올라갈 때 벗어놓은 신발을 내려다 보면서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했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경우는 예전에 비하면 드믈다.
그리고 진통제의 발달로 해산의 고통은 하나도 모른채 아이를 낳는 여자도 많아졌다. 제왕절개를 계획하고 병원에가서 한숨자고 일어나니 엄마가되어 있더라는 여자도 생겼다. 이런 발전 속에서도 아이를 낳는 일은 여전히 큰 걱정과 두려움이다.
그러나 인간이외의 동믈들이 새끼는 순조롭게 세상에 태어난다. 골반을 통하는 산도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원숭이의 경우 산도를 갓 빠져나온 새끼의 얼굴은 엄마의 얼굴을 향해 있다. 엄마의 도움으로 산도를 모두빠져나온 새끼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품에 안겨 젓을 빤다.
유독 인간의 분만이 엄청난 일이 되어버린 이유는 진화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큰 머리를 가지고 있는 아기을 낳기 위해서 골반은 넓을수록 좋지만, 직립보행을 하는 골반은 넓어지는데 한계가 있다. 결국 태아의 머리는 산도의 너비보다 커져 버렸다. 따라서 출산을 위해 여자의 골반은 벼와 벼 사이가 물렁해져서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뼈와 뼈사이의 감격이 벌어지게 되는데도 한계가 있다.
겨우 산도를 통과하는 태아는 필사적인 힘을 다하여 밀고 나와야 한다. 태아는 머리 뒤통수부터 산도에 들어선다. 어느정도 내려왔을 때 이번에는 어깨를 산도에 맞추기 위해 태아는 90도 회전을 해야한다. 그리고 또 다시 조금 더 밀고 나가다가 이번에는 머리를 산도의 장축에 맞추기 위해 산도 속에서 한번 더 90도 회전을 한다.
이렇게 해서 밀고나온 신생아의 얼굴은 엄마의 뒤쪽을 향해 있다. 원숭이와는 반대되는 상황이다. 아기를 낳는 여자는 스스로 신생아를 빼 낼 수 없다. 섣불리 이기를 빼냈다가는 목이 뒤로 꺾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는 여자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대개는 여자의 어머니거나 여자 형제이거나 같은 집단에서 경험이 많은 여자였다.
직립보행과 큰 머리를 가지게 된 인류소상에게 꼭 필요한 존재는 분만 도우미였다.
인간이 아닌 둥물들은 해산의 진통을 느끼면 조용한 곳을 찾는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곳일 경우가 많다. 이때 진통중인 암컷에게 섣불리 다가가면 암컷은 놀라서 새끼를 물어 죽이기도 한다. 해산하는 암컷은 절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어야 한다.
여자는 해산의 진통을 느끼면 도우미를 찾는다. 진통중 혼자가 되면 많은경우 스트레스홀몬이 분비되어서 진통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해산 과정이 멈춘다. 아기를 낳는 여자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도우미와 함께 있어야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이다.
성탄절이 가까워 온다. 외진곳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해산의 진통을 느낄 때 누구를 찾았을까.

Friday, December 16, 2011

7 복은 마음에서 구해야 한다

福은 마음에서 구해야 한다.

이조 말엽에 鄭元容이라는 글만 읽던 청빈한 선비가 있었다. 그때에는 글을 읽어 과거를 보아 합격해서 벼슬을 살아 녹을 타 먹게되니 자꾸글만 읽었다. 글만읽고 있으니 장사도하지않고 농사도 짓지않고 일체 경영하는 일이하나도 없어서, 재산좀 물려 받았던 것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팔아먹을 것은 모두 팔아먹고 나니,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게 되었다.
하루는 사랑방에 앉아있자니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부인이 있는 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기처가 무엇을 먹다가 무릎밑에 황급히 감춘다. 부부간인데 아무리 자기배가 고프더라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일텐데, 밥 한톨이라도 갈라먹어야 될 처지에 자기가 들어가니 무엇을 먹다가 황급히 무릎밑으로 확 넣는다.
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잔뜩틀려서 나오다가 안 마당에서 돌아서서 다시들어가 처에게
「여보, 우리가 부부지간에 밤 한톨이라도 서로 갈라먹어야 할 형편인데 무얼 먹다가 다리밑에 감추니 그럴 수가 있느냐.」하고 나무라니 처가 한참 물끄러미 처다보다가
「당신 나에게 무얼 먹으라고 주었소, 아무것도 주지않고 무얼 먹는다고 그리 야단이요, 야단은……. 내가 배가 어찌 고프던지 사방들러봐도 먹을 것은 없고, 예전에 우리 잘 살적에 녹두가루비누가 그릇에 조금붙어있기에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다가 당신이 들어와서 하도 부끄러워 말은 못하고 당신민망해 할까봐 무릎밑에 감추었는데, 이거 빨아봐요, 어디 무엇이 붙어 있는가.」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터질듯 아프다. 도대체 얼마나 배가고프면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았겠나 생각하니 남의 가문의 딸을 데려다가 저리도 배를 주리게하다니, 이거 내가 사람도아니다.
자기의 배고픈 생각은 어디로 달아나고 사랑방에 가만히 앉아 무엇을 해서 처를 굶주리지 않게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둡한다.
어찌해야 되겠나 ? 하지만 아무리 곰곰히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쓸데없는 일이었다. 가위 백모百謨가 가관이었다.
농토가 있으니 농사를 짓겠나, 돈이 있으니 장사를 하겠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고 별수없이 도둑질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도둑질을 하려고 하니 안 배운 도둑질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담장을 높이 쌓은 집에는 갈 수도 없고 울타리도 담도없는 집으로 오늘밤에 도둑질을 하러간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날밤 사방이 어두어지자 동네로 돌아다녀봐도 전부 담장이 둘려있어서 어찌 해 볼 수가 없었는데 마침 한 집에 가보니 울도 담도 없는데 뒷마루의 자루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나락이 두어 말쯤되어 보였다. 그 집에도 울도없고 담도없이 가난하게 사는 모양인데, 아미 먹을것이 없어서 식량으로 구해다 놔둔 딱한 사정같이 보였지만 급한김에 옳다 이거라도 됐다 하고는 울러메고 집으로 왔다.
집에와서 자루를 막 내려놓으려는데, 한 생각이 빙 돌기를
「내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저 사람들은 그럼무엇을 먹나 그사람들도 딱한처지에 어디서 구해다 놓은 이것을 내가 어떻게 먹겠나. 내가 굶었으면 굶었지 이 짓은 못하겠다.」
그렇게 마음이 본래 마음으로 돌아왔다.
나락자루를 울러메고 다시 그 집에 갔다 놓고와서 사랑방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둑질을 하려고해도 생각이 그렇게 들고 이거 정말 어떻게 하나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홀연히 꿈도 아닌 순간에 허공에서 공창空唱하기를
「정원영이 이제 福받아라!」하는 소리가 완연히 들린다.
무슨 좋은일이 생기려는가 하고 있는데, 이튿날 동네사람들이 의논하기를 정원용이 내외를 이제 저대로 그냥 놔두면 굶어죽겠다. 우리 동네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자 하고는 양식도 갖다주고 옷도 갖다주어서 그날부터 굶는 것을 면했다. 얼마후 과거를 봐서 진사에 급제를 해 차차 벼슬이 높아져서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그 지위가 높고 좋은 자리라서 바람을 잘타기 때문에 일년 아니면 기껏해봐야 이년하면 갈려나오는 자리인데, 정원용은 십년동안이나 독상獨相을 하였다.
생각한번 잘 먹는데 천지가 감동하여 복을 탄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면 시방세계十方世界 모든 부처님이 다 알고 천신天神과 지기地祇가 다 안다.
정원용의 일화가 또 하나있다.
임금이 간혹 간신들의 아첨하는 말만듣고는 사실을 직접보지도 않고 확인도 하지않고 정사를 그릇치는 수가 있는데, 신하로서 「전하께서는 직접 보지 않으신 것은 믿지 마십시요.」 하고 간 할 수도 없고 해서 한 꾀를 내었다. 하루는 자기 처에게 말한다.
「내가 대변을 보았는데, 항문에서 파랑새 한마리가 허공으로 획 날아가더라. 그러니 자네만 알고 있지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되네, 알았지?」
「여보, 내가 누구한테 그런말을 할 까닭이 있겠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야릇한 말을 들어 놓았으니 참을 수가 있나, 당장 자기 옷 만드는 침모에게
「영감 항문에서 파랑세가 후르르 날아 갔는데, 너만 알고있지 절대로 누구한테든지 말하지 말아라.」
하고 다짐을 받아 놓았지만, 웬걸 침모는 더 참기 힘든, 정말 신기한 수다꺼리여서 얼마있다가 식모에게 이 희한한 이야기를 말하고, 식모는 자기 친한이들에게 말해서 삽시간에 그 소문이 장안 안에 확 퍼졌다.
「정원용대감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갔단다.」
하는 소문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고, 그 말이 궁녀들의 귀에 들어가서 궁녀들은 왕비한테하고 왕비는 또 임금에게 전했다.
임금이 듣고 생각하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 가다니…….
조회가 끝나고 다른신하들은 다 보내고 정원용대감만 남아있게 해서
「내 듣자하니 경의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갔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
「파랑새가 항문에서 날아 갈 수도 있겠읍니까. 신이 거짓말로 신의 소첩에게, 자네만 알고있게, 하고 다짐을 받아 두었는데 이 말을 침모에게 전하고 침모는 식모에게 전하고 식모는 또 자기친한 이들에게 말해서 자꾸전해져서 장안안에 소문이 퍼져가지고 황공하게도 전하께서도 아시게 되었읍니다. 하온즉 전하께서 직접 눈으로 보시거나 확인하지 않으신 일은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믿지 마시옵소서.」
이런식으로나 간할까 신하로서 밑도 끝도없이 전하께서 직접보지 않은 일은 믿지 말라고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참 지혜있는 대감이다.
이런 말을 내놓으면 하지말라고 해도 더욱 누구에게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고 계산적으로 잘 짜가지고 그런 말을 퍼트린 다음 임금의 귀에 들어가니, 전하께서는 직접 확인하거나 보지 않은일은 믿으시지 말라고, 간하기가 아주 쉬운 일이다. 임금도 그 말에 깨달은 바가 컸다.
원래저개무궁리 元來這箇無窮理 본래 이---다함없는 이치는
촉처무비고로통 觸處無非古路通 닿는 곳마다 옛 길을 통하였도다
할 일할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이몸의 주인은 무엇인가
.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구르고 이르시되
추수장천 秋水長天 가을 물 긴 하늘이
상하원융 上下圓融 아득히 짙푸른데
일색노화 一色蘆花 흰 갈대꽃에
명월왕래 明月往來 밝은 달이 오가니
두두비로 頭頭毘盧 모두가 비로자나毘盧遮那요
물물화장 物物華藏 온갖것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일러라
이 어떠한 사람의 경지인가, 이 보두 여러분들의 경지요 또한 수도하는 사람들의 경지로다, 이 경지에 이르러 활발하고 멋있게 살아야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생활을하면 되겠는가.
대중에게 주먹을 들어보이고, 이것을 쥐면 주먹이라 하고 펴면 손바닥이라 한다.
이오원래십 二五元來十 둘 곱하기 다섯은 원래로 열이라
무의자시수 無疑者是誰 여기에 누가 능히 의심이 없겠는가
갱구현묘처 更求玄妙處 이 밖에 다시 오묘함을 찾는다면
사락제이두 巳落第二頭 이미 틀린 일일세

손가락을 하나, 둘, ……, 다섯, 또 왼손도 손가락이 다섯, 합하면 열이다. 누구의 손이고 다 같다. 이렇게 주먹을 쥐면 오악五嶽이 꺼꾸러졌고, 펴면 오악이 참치參差하다.
참치란 말은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아 가지런하지 않다는 말이다.
눈,귀, 코, 혀, 몸, 뜻 이것을 여섯 도둑이라 한다.
눈은 온갖것을 다 보려 한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보면 자기의 물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기니 눈을 눈 도둑놈이라 한다.
귀로는 사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등 온갖소리를 다 들으려고 한다.
코는 온갖 좋은 향기香氣를 다 맡으려고 한다.
혀로는 온갖것을 다 맛보려고 한다. 몸 도둑놈은 좋은 촉감과 좋은 옷을 다 입으려 한다.
예전에 어떤 부인이 옷에 욕심이 많아서 어디에 외출할 때는 더러운 옷을 입으면서도 옷장속에는 아주좋은 옷을 꽉 채워 놓고 살았는데, 죽은뒤에 옷장을 열어보니 옷뿐이 아니고 버선이 한 번도 신지않은채 잔뜩쌓여 있었다. 살았을 적에는 떨어진 홋 헤어진 버선만 신고 아껴두었던 것을 죽은 뒤에는 누가 그것을 다 입었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은 인간의 탐욕인 것이다.
뜻 도둑은 온갖것을 모두 분별한다.
이것들을 모두 도둑이라 하지만 이것을 잘 교화시키면, 눈 도둑은 변해서 일월광명세존日月光明世尊이 되고, 귀 도둑은 성문여래聲聞如來부처님이 되고, 코 도둑은 향적여래香積如來부처님이 되고, 또 입 도둑을 잘 교화시키면 법희여래法喜如來 부처님이 되고, 몸 도둑을 잘 교화시키면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 되고, 뜻 도둘을 잘 교화시키면 부동광명여래不動光明如來가 된다.
여섯 부처님이 되면 그 사람이 완정한 인격人格을 갖춘 사람이 아니겠는가?
도인삼매다삼잔 道人三昧茶三盞 도인의 삼매는 몇 잔의 차요
무사생애검일병 武士生涯劍一柄 무사의 생애는 한 자루의 칼일러라
여러분들은 이런 법문을 듣고 마음가운데 무슨 때가 끼어 더럽혀져 있으면 씻어 없애버려야 한다. 무구無垢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금을 캐는데 순금덩어리도 있고, 또 아연, 은, 동 등 잡철들이 섞여져 있는 것도 있는데 그 잡철을 다 빼버려서 이십사금이 되어야 세계에 톹용하는 보배가 된다. 그렇듯이 우리 마음 가운데 남을 해롭게 하든지 속이려는 생각 등, 나쁜 망상의 잡철을 모두 빼버려야 한다.
수행자가 도를 깨달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예전에 도겸道謙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이십년간이나 참선을 했어도 공부가 시원치 않았다. 머리를 들일 곳도없도 깜깜하다.
그래서 선지식을 친견하러 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십년동안이나 신이 닳아 떨어지도록 선지식을 친견하며 수행을 했어도 아무얻은 것도 없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작년에도 그렇고 금년에도 그러니, 먼 길을 떠나 선지식을 찾아 가봐야 또 그렇고 그럴것이 아니겠는가, 또 가봐야 소용이 없을 것같아서 안가려고 생각하니, 따분하고 서럽고 서글픈 생각이 나서 운다.
함께가던 종원宗元이라는 도반이 곁에있다가
「너 왜 우노 ?」
「난 안가련다, 여지껏 내가 공부를 하며 이십년간이나 이 산 저 산 다니며
선지식을 많이 친견해도 아무소득이 없고 깨닫지도 못하고 이번에 가봐야 또 안그렇겠는가? 그러니 가지 않으련다.」
「아니 네가 떠나려고 해놓고 안간다는 말은 또 무어냐, 그렇다면 내말 들어봐라, 네가 지금 선지식을 만나려는 생각도 하지말고, 네가 아는 것들도 생각지 말고, 다섯가지 너에게 있는 그것만 알면된다. 그것을 알아봐라.」
「그럼 다섯가지가 무어지?」
「옷 입고 밥 먹는 것, 대, 소변 보는 것, 그리고 산 송장을 실어가지고 길위를 다니는 이것이 다섯가지다. 이것만 알면 된다. 도반 종원이의 이 말에 그만 활연히 깨달았다.」
여러분들이 무슨 옷이든 하루종일 옷을 입더러도 옷 입는 놈을 보른다. 무엇이 들어서 능히 옷을 입고, 또 무엇이 들어서 능히 밥을 먹고 대, 소변을 보는지도 모른다. 음식도 먹는데 입이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씹어 삼키고 하는 한 물건이 있는데 이것을 모른다.
또 산 송장을 실어가자고 길 위로 다니는 이것을 모른다. 이 다섯가자를 말하는데 도검이 활연히 도를 알았다.
그 스님이 춤을 춘다. 무르던 것을 알았으니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하늘에는 별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땅에는 흙도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바다에는 물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선 에는 나무도 많다 쾌지나 칭칭나네
그 사람이 춤만 추었다고 전해오지 이런 노래를 했다고는 전해오지 않는데 이 말은 내가 연에 발을 달듯이 달은 말이다. 춤 출때 손바닥을 치든지, 무슨 박자를 맞추어 추듯이…… 그냥 추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내가 발을 달기를 하늘에 별을 가지고 말했는데, 하늘에 별이 없으면 참으로 밥 하늘이 깜깜하다. 그 많은 별 가운데, 이십팔수 二十 八宿가 있어서 인간세상과 선과 악을 조사한다. 또 정반성定盤星이라는 별이 있는데, 다름별들은 다 움직이지마는 이 정반성은 움직이지않는다. 우리도 정반성과 같이 심주心柱가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이 동하지 말아야 한다.
땅에는 곡식을 심어 모든 중생들을 풍성하게 이롭게 한다. 나락 한낱 심어놓으면 거기서 벼가 자라서 한 이삭에 이백 오십낱이나 붙는다. 그러니까 남을 이롭게 하기를 땅과같이 해야한다.
바다에는 물도 많은데, 바다의 물과같이 푸르고 또 바닷물에 수 없이 많은 어족들이 살고 바닷물은 온갖 강과 하천에서 흘러들어호는 물들을 받아들이고 해도 붇거나 줄지를 않는, 이 바다에서 남을 포옹하는 법과 많은 것을 배울점이있다.
나무가 있어서 잎도피고 꽃도피고 하는데 나무가 없으면 불도 못 때고 집도 못 짓는다. 그러니 초목이 사람을 이롭게 하듯이, 이것을 배워서 남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다.
신라 흥덕왕때에 경주동쪽 모량리에 손순孫順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부친은 학산鶴山이고 모친은 운조運鳥라 하였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반찬도 마련하고 해서 연로하신 노모를 봉양하는데, 어린아이 하나 있어서 자꾸 맛있는 음식을 빼앗아 먹고 보채니 아이 때문에 노모를 잘 모시가가 어렵게 되었다. 하루는 두 내외가 의논하기를 저 아이때문에 부모를 잘 모시지도 못하겠으니 저 애를 뒷산 취귀산에 묻어 버리자고하니 그 부인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한다. 참으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역사에 실려온다.
그래서 두 부부가 어린것을 안고 뒷산에 올라가 묻을 곳을 파는데, 한참 파다가 괭이에 덩그렁하고 걸리는 것이있어 파 보니 돌종이 하나 나온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좋은 돌종이 나오기에 둘이 말하기를, 이 아이를 묻지말고 이 종이나 가지고 가자 하고는 종을 울러메고 집으로 내려왔다. 집네가져다 걸어놓고 간혹처보면, 돌로 만들어진 종이 청아한 소리가 참으로 맑게 울려퍼진다. 손순의 집이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부근이라서 대궐에서 임금님이 듣자하니 어디서있지 아주고운 종소리가 들려서, 신하들을 사켜 조사를 해 오라 하였다. 신하들이 와서 말하기를, 부모에게 효성을 하느라고 아이를 묻으러 땅을 파다가 거기서 나온 돌종소리라고 말하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예전에 곽거郭巨라는 사람도 아이가 노부모의 맛있는 음식을 뺏아먹고 자꾸 보채는 것을 파묻으려고 땅을 파니 땅 속에서 큰 솥이 나왔는데 솥안에 황금이 꽉 찼다.
그래서 아이도 묻지않고 금방부자가되어 부모를 잘 봉양하였는데, 예나 이제나 일반이다. 부모한테 효성이 지극하면 천지가 감동해서 그리되는 일이다.」
하고는 크고 좋은 집 한채를 하사下賜하고 효자의 賞으로 해마다 벼 오십섬을 주었다.
그 후에 손순이 자기 집을 절로 만들었는데, 절 이름을 홍효사弘孝寺라 하였다.
효도를 넓히는 절이라고…….
요즈음의 일을 생각해 보면 꿈같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든지, 가정에 참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면 이렇게 복을 받는다.
빈빈환아불귀가 頻頻喚兒不歸家 자주 아이들을 불러도 돌아오지않기에
식향문전농토사 食向門前弄土沙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문앞에 흙장난만 하는구나
매도년년삼월리 每到年年三月裡 해마다 삼월이 돌아오면
만성도이목단화 滿城桃李牧丹花 성안에 가득한복사꽃 모란향을 그네들이 어이알리
그러니 좀 고매한 이 진리에 눈을 돌리기는 참으로 힌든 것이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기에,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유치하게도 흙장난에 여념이 없는데, 중생들이 의식주衣食住에 얽어매여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 모두 흙장난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복사꽃이나 오얏꽃 모란의 향기를 –-이 고상한 진리의 향기를 , 맡을 수가 있겠는가 ?
칭두반근 秤頭半斤 저울 머리에는 반 근이요
칭미팔량 秤尾八兩 저울 꼬리에는 여덟 냥이로다
여덟냥이 반근이요 반 근이 여덟냥이니, 다 똑같은 말이지만, 여기에 묘한 진리가 있는 것이다.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Thursday, December 15, 2011

6 자기의 대사

自己大事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취죽황화비외경 翠竹黃花非外境 푸른 대 누른 꽃 이 경치여

백운유수노천진 白雲流水露天眞 흰 구름 흐르는 물은 천진을 들어내내

두두진시오가물 頭頭盡是吾家物 이 모두 우리의 소용하는 물건이니

신수념내불시진 信手拈來不是盡 미음대로 사용하는데 걸림이없네

불교佛敎를 신앙信仰하자면 그 신앙의 대상인 부처님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부처님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부처님이요, 아미타여래 가모왕여래 미륵부처님 등등, 불가성不可說 불가설不可說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이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까지 있는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는 석가여래釋迦如來이다.

그런데 진리적으로 볼 때에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그것이 부처님이다. 마음이 곧 부처님인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고 청정한 마음, 그 자리가 곧 부처이다.

우리가 알아야하는 불법佛法의 법은 팔만 사천의 법문法門이 있고,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법문이 우리들을 진리의 세계로 눈을열게 하는데, 가장단적으로 이 법이 무엇인가 말한다면, 그것은 미음의 광명스러움이 법인 것이다. 이 말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실제로 마음의 광명스러움이 불법인 것이다.

스님네는 비구, 비구니 그러니까 부처님의 제자들을 승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맑고 청정하고 광명스러워서, 어디든지 걸림없는 것을 이라 하기도 하고, 라고도 한다

도는 진리인데 우리가 알려고 하는 그 진리이자 우리인생의 생명生命이다.

우리가 도를 구하려고 하는것은 곧 자기의 생명을 구하러 하는 것이다.

, , , 삼보三寶를 진리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한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주 단적으로 즉 격외格外로보면, 벼가 부처요, 보리가 법이요, 콩이 승이다. 이 말은 좀 어려운 말이다. 이 말에는 해석을 붙이지 않는다. 이것은 나중에 도를 깨달을 때 이 도리를 알 수 있다.

우리몸에 구멍이 열 군데가 있다. 눈이 둘, 콧구멍이 둘, 귀가 둘, 입이 하나, ,소변 보는데가 둘, 배꼽까지 해서 모두 열이다. 다른 구멍은 다 열어놓아도 괜찮지만 배꼽만은 사람의 몸을 다 만든 것이어서 입을 닫아야 한다. 배꼽이 열려있으면 바람이 들어가 사람이 죽는다.

여러분들도 아들 낳고 딸 낳고 장가 보내고 며느리를 맞고 하면 시어머니가 되는데,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입을 좀 닫고 있어야 되지, 입을 열어 잔소리를 많이하면 배꼽을 열고있는 것 같아서 좋지가 않다.

시어머니 잔소리는 꾸어다가도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처럼 배꼽이 닫고 있듯이, 무언無言의 조화를 이루어야 가정이 화기애애하여 진다.

이 법을 배우려면 몸이 무상無常한 줄 알고 우주만물이 허황한 줄 먼저 철저히 느껴야 발심發心이 되어 수행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순치황제順治皇帝가 발심해서 중이 되었다. 그의 에 이런 것이 있다.

고래다소영웅한 古來多少英雄漢 얼마나 많았던 영웅들이

남북도서와토니 南北東西臥土泥 저 산 흙속에 누워 말이 없는가

내시환희거시비 來時歡喜去時悲 올 때에는 기뻐하고 떠날 때는 슬프다 하네

공재인간주일회 空在人間走一回 부질없이 인간세상 떠돌다 가는 나그네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것을 남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자연히 너가 아니지만, 돌려줄 수 없는 것은 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가환자 諸可還者 자연비여 自然非汝

불여환자 不汝還者 비여이수 非汝而誰

그러니 우리가 집이나 옷 그리고 패물들을 남에게 줄 수 있고, 또 몸과 오장육부를 남에게 줄 수 있지만, 남에게 줄 수 없는 물건이 하나 있으니 이것이 너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말이다.

아난존자阿難尊者에게 이 말씀을 하여 주었는데 미치 귀를 뚫고 말해주듯이 일러준 말이다.

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 자리 참으로 昭昭靈靈, 자기에게 있는 이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모안첩최상친 이毛眼睫最上親 눈섭과 눈꺼풀이 가장 친하고

취공순피작근인 臭孔脣皮作近隣 콧구멍과 입술이 그중 가깝네

지근인하부상견 至近因何不相見 아주 친하면서 어찌 서로 보지 못하나

도연일체시전신 都緣一體是全身 이 모두 한 몸이로세

금일칠내일팔 今日七來日八 오늘은 일곱 내일은 여덟

여시인득거 如是認得去 이렇게 알았다 하면

매몰고인심 埋沒古人心 옛 사람의 뜻은 저버리는 것일세

견문각지무장애 見聞覺知無障碍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느데 거리낌이 없고

성향미촉상삼매 聲香味觸常三昧 소리 향 맛 촉감은 늘 삼매로다

여조공중지마비 如鳥空中只麽飛 마치 새가 공중을 나는 것과 같이서

무취무사무증애 無取無捨無憎愛 취함과 버림 사랑과 미움이 모두 떠났네

약회응처본무심 若會應處本無心 이렇게 본래 무심한 경지에 이르면

시득명위관자재 始得名爲觀自在 비로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네

예전에 운문 문언선사 雲門 文偃禪師가 있었다.

묵주睦州 진존숙陳尊宿이란, 고매한 선사를 찾아갔다.

도를 묻기 위하여…….

운문이 오는것을 멀리서 보고 묵주기 지기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겄다. 운문이 문을 두두리니 방안에서 선사가

「누구냐 ?

「예, 문언이 올시다.

「무엇하러 왔느냐 ?

「자기의 일을 밝히지 못해서 스님의 지시를 받으러 왔읍니다.

묵주가 문을열고 운문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문을 걸어 잠겄다.

이것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자기의 일을 밝히러 왔다니까 운문에게 자기의 모습전부를 드러내어 보여준 것이다. 또 조금있다가 운문이 문을 두드리니

「누구냐 ?

「문언이 올시다.

「무엇하러 왔느냐 ?

「자기의 일을 밝히지 못해서 스님의 지시를 받으러 왔읍니다.

또 잠간 있다가 문을 두드리면 「누구냐 ?」 「문언 입니다.」「무엇하러 왔느냐 ?」「자기의 일을 밝히지 못해서 스님의 지시를 받으러 왔읍니다.

자꾸 반복한다.

누가 귀가 먹었는지 이렇게 묻고 답하기를 하루종일 하였다.

그 이튿날도 아침서부터 묵주에게 가서 문을 두드리니, 「누구냐 ?」「문언이 올시다.」로 시작해서 어제와같은 문답을 하루종일 반복하였다.

그러니 무엇때문에 그 말을 자꾸 되풀이 하였겠는가 ? 능히 묻고 답하는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언이 묻는 말을 몰라서 자꾸만 같은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누구에게나 분명히 있건만 실로 깜깜하게 어두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루종일 그렇게 문답을 묵주가 되풀이 하는것도, 운문에게 능히 답을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밝혀주기 위한 자비인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같으면 이내 가 버렸을 텐데 사흘째 되던날도 어제와같은 문답을 시작하다가 목주가 문을 왈칵열고 나와서 운문의 멱살을 꽉 움켜잡고는 「일러라 어서 일러봐라 !

이소식을 한번 말해봐라 이 말이다.

운문이 머뭇거리니

「에이, 도럭찬같은 놈아!

하고 왈칵 밀어버렸다. 말하자마자 바로 알아야지 어름어름 하면 귀신굴에 들어간다.

운문이 이리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닌, 왈칵 밀어버리면서,「도력찬같은 놈아 !」하였는데 이 도력찬이라는 말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돌을 운반하려고 수레를 만들때 쓰던 송곳을 말하는데, 그 큰송곳이 이제 녹이나서 아무짝에도 못쓰게 되었으니, 사흘동안이나 가르쳐 주어도 모르는 운문이 마치 쓸모없는 도력찬과 같다는 말이다.

목주가 운문을 밀어버리고 문을 닫으려 하는데, 운문이 방에 들어설려고 한쪽발을 문안으로 들여놓으려는 순간에 목주가 어찌하다가 문을 힘껏닫았다.

문이 꼭 닫히는 바람에 다리를 미처빼내지 못하고 그만 뼈가 부러졌는데 뼈가 부러지는 그 순간에 운문이 도를 깨달았다. 극도極度에 달해서 생명을 걸고 무아無我의 경지境地에서 무엇이든지 해내면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만물과 동물식물에 모두 음율音律이 갖추어져 있는데, 소리는 음이요 동하는 것은 율이라 한다.

내가 꽃을 가리는 노래를 하나 하겠다.

모란은 꽃중에 왕이요

해바라기는 충신이요

연꽃은 군자요

살구꽃은 소인이요

국화꽃은 은일사隱逸士

매화는 매운자조의 선비로다

박꽃은 노인이요

석죽꽃은 소년이다

계화癸花는 무당이요

해당화는 기생이로다

이 가운데 오얏꽃은 시인이다.

홍도 벽도 삼색도 紅桃 碧桃 三色桃는 풍류객인가 하노라

산과 물을 기리는 노래

청산 녹수야

산은 높고 높아 반공중에 솟아있고

흐르고 흘러가는 녹수는 창해로 화해지네

전에는 청산은 청산이여

녹수는 녹수더니

어제는 청산이 곧 녹수요 녹수가 곧 청산이었다

오늘에는 청산은 청산이요 녹수는 녹수로다

솔아래 동자에게 묻노니 어느것이 옳으냐

높은 청산도 구름속에 들어가니 모양조차 찾을 수 없고

흘러가는 녹수도 창해에 들어가니

흔적도 없네

녹수는 변하여 창해가 되고

구름속에 청산은 구름에 돌아기니

의구한 청산이

만고에 푸르도다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의 해탈解脫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아성환공여래합 我性還共如來合 나의 성품이 여래의 성리에 합하여

합처비타비자기 合處非他非自己 합한 곳에는 여래와 내가 둘이 아니로다

이 도리를 설사 알았더라도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전부 부득이 해서 말과 글로 이루어진 것이지, 진리 자리를 그려내지는 못한 것이다.

비유한다면, 사과 맛이 어떠한가를 말할 수 있을까. 사과맛을 알기는 알지만 표현하기어렵고, 또 제대로 표현랗 수 없는 것이다. 억지로 사과맛을 말하더라도 시고달고 맛이 있다고, 이렇게 말할수는 있지만 사과 맛을 정확하게 다 밀한것은 아니다.

이 진리의 법문도 하루종일 말로 설명하고 설사 백년을 말하더라도 말 뿐인 것이다. 또 글로서 한 권 두 권 내지 백천만 권을 써 내더라도 글은 글 뿐인 것이다. 글로서 부처의 경지境地, 이 자리는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부처를 말하고 법을 말하고 주장자를 들어보여고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느데 이렇게 하더라도, 백운만리白雲萬里나 멀어졌다.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문에 들어서면 할을 하든지 방망이질을 하더라도 백운만리나 멀어진 것이다. 아렇더라도 어쩔 수 없고 이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어쩔 수 없고 이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백운만리로다. 그리고 오늘 이러한 도리를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였지만 또한 백운만리로다. 허 허…….

곽연투출위음외 廓然透出威音外 확연히 위음왕불 전 소식을 뚫어내면

지구천장해경심 地久天長海更深 장구한 천지에 바다가 또한 깊도다

예전 항주杭州 낙양사洛陽寺에 원택법사元澤法師라는 高僧이 계셨다.. 언젠가 이원거사李源居士와 함께 峨嵋山 구경을 떠났다. 형주荊州 남포南浦땅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원택법사가 이원거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쪽으로 오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자네가 자꾸가자고 해서 오긴왔지만 인연이 아주 고약하게 된다. 저 개울가에 빨래하는 여자가 잉태孕胎를 해서 벌써 열달이 넘었는데 내가 그 태에 들어가야 저 아이가 나올 수있는 그런인연을 만났다.

그렇게 되어 나는 오늘 여기서 이 몸을 버리니 자네가 화장을 해서 치어주고 가게.

아미산 구경을 스님과 함께동행하여 왔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기막힌 노릇이다.

사람이 수태受胎를 하자면 제8第八識이 들어가서 아이가 되는데, 아이가 중에서 열달이 넘었는데도 못 나오는, 다시말하면 원택법사의 제팔식이 들어가야 나오게 되는 그런일을 당했다.

이원거사에게 부탁하기를

「나는 이 몸을 버리니 뒷 수습을 잘해서 화장을 마치고 사흘이지난 뒤 저 여자 집로 찾아오게, 자네가 오면 내가 태어난지 사흘째가 되는데, 내가 죽어서 그 집에 태어났다는 것을 표시하려 하여도 육식六識이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말도 못할것이니, 나를 안으면 자네를 보고 유난히 방긋 웃을테니 원택이의 죽은영혼이 자네를 알아보고 웃는줄 알게,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십 이년 지나는 그 해 팔월 열사흘날 어디서 만나는고 하니, 천축사天竺寺 갈홍정반葛洪井畔에서 또 만나세.」하고는 가만히 앉아서, 마치 매미가 허물벗듯이 벗고 사르르 가버렸다.

이원거사가 원택법사의 유언대로 화장해서 초상치르고 사흘이 지난 뒤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의 집엘 찾아가니, 원택법사의 말대로 출산한지 사흘이 자났다고 한다. 어린애를 좀보여 달라고해서 아기를 안고 바라보니 아기가, 죽을 때 남긴 말처럼 방긋이 웃는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끄떡하고는 「내가 왔다 응, 내가 왔어.」할 뿐이었다.

그후 십 이년이 지난 뒤 팔월열사흘날 천출사 갈흥정반으로 찾아갔다.

그 당시 상천축, 중천축, 하천축 등 삼천축이 있었는데 갈흥정반은 하천축사에 있다.

그곳을 찾아가니, 그때 그 아이가 벌써 십 이년동안이나 커서 소를타고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면서 지나간다. 원택법사가 목동으로 다시 태어나서 소를타고 소뿔을 두드리며 시조를 읊조리면서 지나가는데, 정말 감회가 무량한 였다.

삼생석상구정혼 三生石上舊情魂 삼생 돌위에 옛 넋이여

상월금풍막요론 賞月昑風莫要論 달을 완상하고 바람에 읊조리고 이 외에 무엇을 말할건가

참괴정인상원방 慚愧情人相遠方 수즙도다 정든이여 먼데서 왔구료

차신수이성상존 此身雖異性常存 이몸이 비록 다르지만 원택이의 성품인줄 그대는 아는가

신전신후사망망 身前身後事忙忙 이몸이 앞이나 뒤의 일이 바쁘고 바쁜데

욕화인연공단장 欲話因緣恐斷腸 지나간 인연들을 자네에게 말하고저하니 창자를 끊노나

오월강산심이편 吳越江山尋已遍 오나라 월나라 강산은 두루 밟았고

각회연도상전당 却回烟棹上錢塘 이제 연운어린 노를 돌려 전당호수로 저어갈까 하네

우리가 이 몸을 인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하지만, 진리자리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끊어졌고, 전생과 금생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있는 가운데 없고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없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원택법사 같은이도 과거 전생에 이 여자하고 모자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훌륭한 법사가 되었지만, 그 인연을 어쩔 수 없어서 이 몸을 버리고 그 여자의 태중에 들어갔다.

이원거사는 무엇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고 정신이 어리둥절하여 원택법사가 시키는대로 하였고, 그후 십 이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난 후 언약대로 천축사 갈홍정반으로 찾아가니 소뿔을 두드리며 전당호로 지니가는 것이 아닌가? 범부중생 같았으면 지나간 일도 말하고, 현재의 일도 말하고 이런일 저런 일에 감회가 참으로 많았을 텐데, 도인의 경지는 사람의 인정을 초월하였기에 다만 달을 완상하고 바람에 읊조리는 여기에 모든 할말과 뜻을 함재含在시켜 끝냄으로서 자기의 경지만 말하고 간것이다.

이원거사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노래부르는 소리만 들었을 뿐 그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후대 사람들도 상월음풍賞月吟風이란 말의 뜻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수행을 하자않으면 도저히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우니, 여기에 의문되는 점이 있어서 부지런히 수행을하면 결국에는 이 상월음풍賞月吟風에 무릎을 치고 한번 웃을 때가 있을 것이다. 허허 계속

Tuesday, December 13, 2011

죽음을 대하는 자세

죽음을 대하는 자세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서울 때란 시를 쓴 후 겨우 26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임종을 지켜본 친구 세번은 키츠가 오히려 두려워 말게, 이제 하느님의 때가 온 것 같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자신보다 오히려 남아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부터 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욕심과 집착으로 살 만큼 살았는데도 죽음이후를 준비하지 못해 자손들을 죽은 다음까지 괴롭히는 이들도 있다.

죽기 직전 성숙한 개성과 과정을 거쳐 천사가되어 세상을 떠나는 어린이가 있는반면에 어두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죽을 때까지 응석만 부리다가 가는 노인도 많다.

잘 알려진 죽음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는과정을 부정하고Denial,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 며 화를 내고 Anger,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 타협하다가 Bargain, 결국 받아들이는 상태Acceptance로 요약했다

물론 꼭 모든단계가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고, 그 반면에 처음부터 체념하고 사후세계에 몰입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과 의연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잘 받아들인다.

문화나 종교의 차이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고대 이집트나 티베트 사람들은 사후에 더 장업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굳건히 믿기에 죽음을 축복처럼 준비했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정서를 가졌다면 질병, 노화 죽음에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종교건 영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과정을 비교적 잘 견디어낸다는 보고도 있다.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 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힘든 일이다. 환자의 죽음앞에 느끼는 자괴감과 무력감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없이 차갑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환자들이 많이 서운해 할 수 있다.

환자주변 사람들 역시, 말기환자를 격려해야 할지 감정을 드러내야 할지 몰라 쓸금슬금 피하는 경우도 있어서 환자가 더 외롭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말보다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몸짓과 공감하는 눈길이 더 필요하다.

우리모두는 언젠간 사라질 존재지만, 죽음은 마치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사는 사람들도 많다.

천국을 가고 싶어하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든, ‘로 돌아간다는 허무주의자든 죽음만큼 어려운 삶의 비밀이 있겠는가.

융 심리학자 픈 프란츠와 야페는 임종 환자들의 꿈에대해 책을 썼는데 공통적으로 다른세상으로 옮겨가는 모티브들이 많이 등장했다.

죽음이란 또 다른 나로의 변환, 혹은 원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죽고나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이라도 죽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면 오히려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죽기전 쓸버킷 리스트를 사망선고를 받지않아도 일찌감치 실행하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용기와 결단력이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Monday, December 12, 2011

5 옛날 옛날 한옛날에

가의 여인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오늘 단비가 부슬부슬내리니 모든일이 마땅하여 모심기도 끝내고 채소도 풍성하게 자라니, 아난이 합장하고, 가섭이 눈섭을 날리는 시절이라 곧 영산희상이로다.

다시 일반 기특한 일이있다 하시며 선상禪床 한번 치시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 하셨는데, 그 가운데서 꽃 한송이를 들어보이신 것, 하나만 알면 이것이 곧 구족다문具足多聞 것이다.

이 법은 입을열어 말과 글로 하는것이 아니라,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전에 법이 다 되었고 청중이 자리에 앉기전에 법이 다 되었다.

이것이 곧 구족다문이다 여기서 살펴보아야 선가禪家 진진한 묘미妙味 맛볼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법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고 듣기가 어려운 것인데 한 번 들으면 마치 천년 만년이나 어두운 방에 등불을 밝힌 것과 같고 천년 만년이나 더렵혀진 못에 수청주水淸珠 넣은 것과 같다. 이 수청주라는 구슬은 아무리 더러운 못에라도 넣으면 물이 맑아지는 보배구슬이다.그래서 今生 오만가지 망상번민과 모든 죄업이 이 법문만 들으면 다 없어진다.

이 대승법문大乘法門 모르고, 듣더라도 한 번들어서 여러분들의 여래장如來藏에다 넣어놓으면, 여러분이 나중에 이승을 떠나서 나쁜갈레를 헤메더라도 이 진리 법문이 여러분들을 밝은길로 인도한다. 곧 이 진리 법문이 영혼의 길잡이다.

일상생활에 애로와 난관이 있으면 용기를 내어야 한다.

물도 흘러가다가 바위에 부딪치거나 돌에 부딪치면, 소리를 내며 허공을 치솟아 흘러가고 또 깊은 구덩이를 만나면 많이 모여서 내려간다.

물도 흘러기다가 애로가 있으면 그렇게 용기를 내는데, 하물며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진로에 애로가 있고 난관이 있을 때, 그것을 타개할 용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용기를 내야한다.「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하는 용기를……

이 부처님 법문은 짐승이나 허공을 나는 새나 미물들이 들어도 속이 시원해지고 해탈을 얻게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중생들의 말은 망상속에서 나와 모두 때와 더러운 염착이 있지만는, 부처님은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 팖만사천 진로塵勞 다 벗어진 거기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짐승이나 새가듣고는 무슨소린지 몰라도 듣기만 들으면 속이 시원해 지는 것이다.

이자리는 본래 고요한 자리건마는 자기스스로 잘못해서 구정물 일으키듯 흔들어 놓은 것이다. 본래 고요한 자리를…….

지그히 고요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경지가 들어오는데 몸과 마음이 함께 편안해 진다.

복잡하고 번민스럽던 마음이 맑아져서, 그 마음이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진리를 통하는 것이다.

바기오니 모심기를 모두 마쳤는데, 볍씨를 모판에 뿌리면 거기서 움이트느데 볍씨의 귀에서 터진다.

나락이 안 썩으면 움이 안 터진다. 움이 터져 벼가자라서 가을에 나락을 거둘 때에는 한줄기에 적어도 이백 오십낱이나 붙는다. 한 알의 나락이 썩어서…….

촛불도 제몸이 타지않으면 광명光明 나지 않는다.

향도 제몸을 사루어야 향기가 난다.

자기가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자면, 자기의 몸이 나락 썩듯이 헌신적인 정신으로 수고受苦 아끼지 말아야 화평의 미덕美德 얻을 수 있다.

나락이 썩고 향이나 초가 제몸을 태우며 빛을 내듯이…….

진일심춘불견춘 盡日尋春不見春 봄을 찾으러 아무리 다녀도 헛탕만 치고

망혜편답농두운 芒鞋遍踏壟頭雲 공연히 집신신고 이산저산 헤매였네

귀래소연매화취 歸來笑撚梅花臭 집에 돌아와 웃으며 매화가지 휘어잡아 향기맡으며

춘재지두기십분 春在枝頭己十分 가지마다 몸은 이미 무르녹았네

봄을 찾으려고 자꾸 다녀도 봄을 못 보았는데 집에돌아와 앞뜰에 매화가지를 웃으며 휘어잡아 꽃향기를 맡아보니 봄이 거기에 꽉 서려 있다는 말인데, 이 자리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 자리는 멀리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조금도 여의지 않고 곧 자기에게 있건마는 흡사 천리만리나 멀어지고 어두어진 것 같이 됐다.

예전에 기파耆婆 의학을 십년간이나 배웠다.

십년을 배운 뒤에는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는가.」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스승에게

「제가 십년동안이나 의학을 배웠는데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겠읍니까 ?

선생의 말이

「그래, 그럼 네가 어디든지가서 약초藥草 아닌 풀을 뜯어 오너라.

기바가 산을로 들로헤매며 약초아닌 풀을 찾아다였으나 약초아닌 풀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약초였다.

이 풀은 어느병에 해당되고 저 풀은 어떤병에 잘 듣겠다는 것이 마치 거울속에 자기모습보듯이 환히 알겠다.

이 산 저산으로 다녀봐야 도저히 약초아닌 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아와 스승에게

「제가 사흘동안이나 온 사천을 다 헤매며 찾아 모았지만, 약초 아닌풀은 발견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 그만하면 훌륭한 의사 노릇할 자격이 있구나, 이제 가거라.

여러분들이 이 도리를 참구參究하는데 천 칠백 가지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를 들고 참구한다.

공부하는데 화두가 금방 거기있던 것이 어디로 갔는지, 문을 닫아 놓았는데 산으로 들로 다녀오고 그렇지 않으면 자나간 일 현재 일 미래일이 죽 끓듯이 끓고,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렇지마는 이 자리를 바로 알면 온갖것이 도 아님이 없다.

우리의 日常生活,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온갖것이 도 아님이 없다.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서 무사무념無思無念, 그 무아無我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예전에 古人 기연奇緣 하나 이야기하려 한다.

소산疎山 광인선사光人禪師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불법佛法 물으면 나무로 깎은 뱀을 들어 보이고는

「이것이 조가曺家 여인이니라.」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불법을 어떻게 물어도 늘 나무뱀을 들어 보이곤 하였는데, 이것이 法門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사유가 서려있는가 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조씨라는 사람이 배를타고 바다를 항해하다가, 어떻게 잘못하여 그곳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동행하여 가던 사람이 조씨의 부인에게 가서 「당신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슬픈 소식을 전하여 주니 그 부인이 애통해 하며 자기 남편이 빠진 곳에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함께 배를타고 남편이 빠진곳에 오니, 그 여인이 바다에 뛰어들자 이내 흔적없이 가라앉았다.

사흘이 지난 뒤 바닷가에 조가의 여인이 죽은 자기 남편을 껴안고 파도에 떠밀려 왔다.

그 망망 대해에 어디가서 죽은 남편을 껴안고 나왔는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 노릇이다.소산스님이 공연히 나무뱀을 들고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다.」한 것이 아니라 조가의 아낙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 남편의 송장을 껴안고 바닷가에 떠밀린 그것을 말한 것이다.

송장이 가서 송장을 찾아안고 떠밀린 뜻은 거기에 있다.

소산스님이 그렇게 늘 설법을 하였는데, 그 뒤에 자수선사慈受禪師라는 분이 여기에 착어着語 달았다.

별면불여화유소 別面不如花有笑 헤어지는 모습은 꽃이웃는 것만 같지 못하고

리정리사죽무심 離情離似竹無心 이별의 정은 무심한 대나무와 같을 수 없어라

인인설착조가녀 因人設着曺家女 사람들에게 공연히 조가의 여인을 말해서

인득상사병전심 引得想思病轉深 서로 생각하여 병만 점점 깊게 하는구나

소산스님의 나무뱀 이야기에 대하여 한 방망이 준 것인데, 어디에 방망이를 준 곳인가 ? 그것을 살필줄 알아야 한다.

또 구봉圭峰 종밀선사宗密禪師 출가하기 전에 제자백가諸子百家 두루통한 문장 이었다. 환복宦福 없어서 그런지 다른사람들은 과거에 붙어서 벼슬을 하는데 초시初試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하고 낙방落榜 하였다.

이번에도 과거보러 갔다가 낙방을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신도집에 경을 읽어주러 가는 길이었다.

「벼슬을 하려고 과거보러 갔다오는 길이데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아직까지 벼슬할 복이 못되는지 초시 한 번도 못하였다.」고 하자 그 스님이

「그까짓 세상처명世上虛名 무엇하러 구하려는가 ? 우리 경 읽는데나 함께 가게나」해서 함께 동행同行하였다.

앞에는 스님네들이 경을 읽고 규봉스님에게는 원각경圓覺經 주어 뒤에서 보게 하였다. 규봉스님이 그 경을 읽어보니

「세상에 이러한 도의 도의眞理 있었건만 내가 이제 만나게 된 것이 너무 늦지 않은가 ?」이렇게 발심發心 하였다.

그 스님네들에게 수행修行하는 법문을 묻고 부지런히 수행을 하였는데,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전문적으로 할 수가 없고 지장이 많아서 출가 하기로 작정하였다.

入山하며 읊은 入山頌 다음과 같다.

투탕소지빙 投湯消池氷 물을 끓여서 못에 얼음을 녹이려고 부으니

빙견탕역응 氷堅湯亦凝 얼음이 녹는 듯하더니 끓는 물조차 다시언다

장빙투부리 將氷投釜裡 얼음을 가마솥에 집어 넣으니

침개합자연針芥合自然 비로서 바늘끝에 겨자씨가 자연히 서로 꿰이듯 하네

바늘 끝에 겨자씨가 꿰인다는 말은, 수미산須彌山에서 염부제閻浮提에 바늘을 세우고 겨자씨를 던져서 맞춘다는 말이데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맗한다. 공부도 여럿이 모여서하니 자연히 잘된다는 말이다.

상 태제 太宰라는이가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성인聖人이십니까?

「나는 널리 알고 두루 기억할 뿐이지 성인은 아니다.

「그러면 삼왕 (하의 , 은의 , 주의 )이 성인이십니까?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썼을 뿐이지, 성인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오제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왕堯王, 순왕舜王) 가 성인 입니까?

「오제는 어질고 로움을 잘 썼을 뿐이지, 성인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가 이니다.

「삼황 三皇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이 성인 입니까 ?

「삼황은 때를 맞추어 정치를 잘한 사람들이지, 성인은 나의 알 바가 아니다.

이 말을 듣고 태재가 크게 놀랬다.

「이런 사람들이 성인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성인입니까 ?

공자님이 얼굴을 움직여 잠깐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西方에 큰 성인이 있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고 교화를 하지않아도 스스로 행하니, 탕탕무애蕩蕩無碍하며 사람이 능히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

이 말을 의거할 것 같으면, 공자님도 부처님을 큰 성인인줄 능히 안 것같다.

나의 이런 말들에 낙처落處를 알아야 한다.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요,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이 가운데 기특한 일이 하나 있으니 잘 들을 지어다 하고 큰 소리로

할 일할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