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2, 2011

인생 12장 업

인생 12

一日不作 一日不食

百丈禪師

4장 業 일속에 참된 보람이 있다.

인생에는 세가지의 중요한 선택이 있다.

첫쩨는 직업의 선택이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다. 나는 누구하고 살 것이냐.

셋째는 인생관의 선택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

직업을 잘못 선택하면 인생은 고역苦役과 권태倦怠의 연속이 되고,삶의 기뿜과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면 서로 갈등과 불만에 쌓여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인생관을 잘못 선택하면 生의 가치와 의미를 못 느끼고 실패와 허무감에 빠진다. 이 세가지의 선택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크게 좌우된다.

인생의 선택 중에서 이 세가지의 선택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인생의 3대 선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 열다섯 글자로 요약된다.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

나는 주체적 자아自我요, 너는 배우자요, 무엇은 직업이요, 어떻게 살까는 인생관의 문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무슨 옷을 입을 까. 어떤 책을 읽을까, 누구를 만날까.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인생의 선택에는 가벼운 선택과 중대한 선택이 있다. 백화점에가서 어떤 양말을 살까, 무엇을 먹을 까, 어떤 영화를 볼까, 이러한 선택은 쉽고 가벼운 선택이요, 또 즐겁고 재미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어떤 남자, 어떤여자와 결혼할까, 무슨 직업을 선택 할까,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이것은 대단히 중대하고 어렵고 진지하고 엄숙한 선택이다.

한번 잘못 선택하면 쉽게 비꿀 수가 없다. 바꾸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 세 가지의 어려운 선택을 우리는 안 할 수가 없다. 나의 판단, 나의 의지, 나의 결단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도 결단의 문제다. 결단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다. 決은 결단할 결자요, 끊을 결자요, 물꼬를 터놓을 결자다. 그러므로 三水변에 쓴다.

제방의 물을 막았다가 터놓으면 물이 무서운 속도로 급류하여 논밭이 떠내려간다. 그것을 결이라고 한다. 결궤決潰가 그 좋은 예다.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이 자결自決이다. 斷은 끊을 단자다. 칼이나 도끼斤로 실幺을 끊는다는 뜻이다. 그것을 일도양단一刀兩斷아라고 한다. 결단은 인간의 비상한 상황, 비상한 행동이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비상한 결단을 할 때에는 신중하고 진지하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Jaspers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단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몇 번인가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올바른 선택은 성공과 행복을 가져오고, 잘못한 성택은 불행과 고뇌를 초래한다. 선택이란 무엇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중에서 택일擇一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지혜롭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한다.

생즉업生卽業,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Living is working. 사람은 동물이다. 동믈의 동은 활동의 동이다. 인간은 생명체요, 생명체는 활동체다. 활동하지않는 생명은 생명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성공, 가정의 행복, 사회의 번영, 문명의 건설, 역사의 발전 모두 인간의 활동의 산물이요, 활동의 결과다.

우리는 왕성한 활동력을 갖는 인간이되고, 왕성한 활동력을 지니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직업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직업의 3대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직업의 첫째 의미는 경제적 의미다. 직업아란 무엇이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수단아다. 직업은 인생의 밥벌이다. 네 밥을 벌어라. 이것은 인생의 첫째 계명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生業이라고 한다. 생업이란 무엇이냐. 살기위한 업이다. 직업은 결제적 독림의 수단이다. 경제적독립은 인간 독립의 근본이다.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독립, 인격적 독립이 가능하다.

직업은 인생의 경제적 기둥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Nietzsche는 이렇게 말했다.

『직업은 인생의 등뼈다』

등뼈는 영어로 본backbone이요, 한문으로는 척추다.

인간의 뼈는 모두 206개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뼈가 등뼈다.

등뼈는 모두 33개의 뼈로 되어있다. 인간의 신체구조를 보라. 등뼈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뼈의 제일 윗부분에 머리와 얼굴이 있고, 좌우 양쪽에 두팔과 두다리가 있고, 척추속에 척추신경이있어 몸의 각 부분에 퍼져있다.

직업은 인생의 등뼈에 해당한다. 사도바울은〈데살로니가 후서〉3 10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누가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일하지않고 밥을 먹는 불로소득자는 사회의 기생충과 같은 존재다.

중국 당唐나라의 명승名僧인 백장선사百丈禪師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 一日不作 一日不食』.

회헤懷海 백장선사는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선원禪院의 규칙을 만들고, 승단僧團의 자급자족 체재를 확립한 고승高僧이다.

그는 늙어서도 일을 했다. 제자들이 일히지마시라고 하면서 일하는 도구를 모두 감추었다. 백장선사는 일하는 도구를 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하면서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제자들이 일하는 도구를 주었다. 그때 백장선사가 한 말이 『일일부작 일일부식 .이다. 그는 위대한 명승이었다.

맹자는 말했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맹자》〈양혜왕梁惠王 下〉

경제적 생활 안정이 안 되면 정신적 생활 안정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경제적 생활 안정이 되어야만 정신적 생활 안정이 된다.

극도의 기아飢餓에 빠지면 절망과 굶주림 끝에 자실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살인까지도 저지른다.

그럼므로 중국의 고전인 《文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식은 백성의 근본인 동시에 나라의 기틀이다. 식자 민지본야食者 民之本也 국지기야國之基也.」 也 자는 이 경우 어조사로서 의미가없다.

또 《史記》에는 이런말이 있다.

「왕은 백성을 하늘처럼 소중히 여기고 백성은 식을 하늘처럼 생각한다. 왕자이민위천王者以民爲天 이而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임금님에게는 백성이 제일 중요하고, 백성에게는 먹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은 먹지못하면 죽는다. 먹는 문제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食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직업이다.

무직無職은 무식無食이요, 무식은 곧 죽음이다.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이 비참하다고 하여도 무직자와 실직자처럼 비참한 것이 없다. 인간의 生의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백수건달로 놀고 먹는 유생遊生, 남을 속여 먹고 사는 기생欺生, 남의 물건을 훔쳐 먹고 사는 도생盜生, 남의 재산을 빼앗아 먹고 사는 탈생奪生, 모두 타락한 생이요, 저주받은 생이요, 죄악적 생이다.

자기 힘으로 정직하게 벌어먹고 사는 自生自作自活人이 가장 건전한 생이다.

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터요, 자리 중에서 가장 건실한 것은 일자리다. 저마다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근근면면勤勤勉勉, 열심히 일하는 사회가 가장 건전한 사회요, 가장 인간다운 사회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Tolstoi의 단편 소설 중에 〈바보 이반〉이라는 명작이 있다. 이반이 사는 마을에는 하나의 엄연한 도덕이 있었디. 「일을 열심히 하여 손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은 식탁의 제일 上座에 앉아 따듯한 밥을 먼저 먹을 수 있지만, 빈등빈등 놀면서 일을 하지 않아 손에 굳은 살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식탁의 제일 下座에 앉아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의 찬밥을 제일 나중에 먹어야 힌디.

이것이 이 마을의 도덕 법칙이요, 샐활 윤리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대접을 받고 게으르게 노는 사람은 푸대접을 받는 사회, 이것이 바람직한 질서요, 올바른 가치관이요, 건전한 도덕이다.

직업의 두번째 의미는 사회적 의미다. 직업이란 무엇이냐, 사회적 역활의 수행遂行이다.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Shakespeare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섹스피어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했다.

사회는 하나의 큰 무대와 같다. 우리는 그 무대에서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 성심성의를 다하여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하면 명배우, 명연기자로서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인간은 역할적 존재다. 역할이란 말은 역役을 할당割當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으면 아버지의 역할을 잘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맡았으면 어머니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

선생의 역할을 맡았으면 선생의 직분職分을 잘지키고,은행원의 역할을 맡았으면 은행원의 직책職責을 잘하고, 공무원의 역할을 맡았으면 공무원의 직무職務를 잘 수행해야 한다.

직업은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자기에게 맟겨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직업은 중요한 직분이요, 직책이요, 떳떳한 직무이다.

우리는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확고한 본분의식本分意識과 투철한 책임의식責任意識을 가져야한다.

직업은 인생의 구실이다. 남편은 남편 구실을 잘하고, 아내는 아내구실을 잘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제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눈은 보는 구실을 잘하고, 코는 숨쉬는 구실을 잘하고, 위는 소화하는 구실을 잘하고, 발은 걷는 구실을 잘해야 한다. 눈이 보지 못하고, 토가 숨을 쉬지 못하고, 위가 소화하는 기능을 못하고, 발이 걷는 역할을 못하면 나의 생명은 죽고 만다.

나는 구실주의의 인생관을 강조한다.

세상에 구실주의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의 근본 원리를 물었을 때 공자는 간결명쾌하게 다음 여덟 글자로 대답했다.

「君君臣臣 父父子子.」《논어》, 〈안연편顔淵篇〉

임금님은 임금님 구실을 잘하고, 신하는 신하 구실을 잘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구실을 잘하고, 아들은 아들의 구실을 잘하면 나라가 잘다스려진다.

평범한 말이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사회의 구성원 각자가 자기가 맡은 역할과 제구실을 잘하면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된다.

구실을 노릇아리고 해도 좋다. 공무원은 공무원노릇을 잘하고, 선생은 선생노릇을 잘하고, 기업가는 기업가 노릇을 잘하고, 군인은 군인 노릇을 잘하면 건실한 사회가 형성된다.

역할과 능력은 서로 비례하고, 또 비례해야한다.

사람은 자기능력에 맞는 역할을 맟아야 한다. 자기능력에 맞지 않는 역할을 맡으면 그 역할이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 자기의 직책과 직분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한다. 자기의 능력에 맞는 자리와 역할을 맡으면 그 일이 즐겁고, 그 역할을 잘할 수있다.

중요한 자리와 역할을 맡기를 원하느냐. 모름지기 훌륭한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 갖추어라. 자기 능력에 겨운 자리를 맡으면 그 자리가 무거운 짐이 되어 직업인으로서 실패자가 된다. 사람은 자기능력에 맡는 자리를 맡아야 한다.

직업의 세번째 의미는 정신적 종교적 의미다. 이것이 가장 높고 깊은 차원이다.

직업이란 무엇이냐.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책임이요,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使命이요. 국가와 민족이 너에게 위탁한 직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천직 사상天職思想이다. 네 직업에 대하여 사명감과 소명 의식召命意識을 가지고 네가 하는 일에 온 정성과 정열을 바치어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직업관이다.

중학교 시절에 영어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어떤 예배당을 짓기 위하여 세 사람의 石工이 돌을 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보니 똑같은 일을 하는데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각각 달랐다. 첫번째 사람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일을 했다. 「당신은 왜 그 일을 하고 있읍니까?」하고 물으니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이 원수입니다.

두번째 사람은 담담한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왜 그일을 하고 있느냐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있읍니다.

세번째 사람은 기뿜과 만족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신이 나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왜 그일을 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성을 다하여 돌을 아름답게 쪼면 장엄하고 훌륭한 교회가 건설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보람있는 일입니까.

똑같은 일을 하는데 세 사람의 얼굴표정과 대답이 왜 이렇게도 다를까. 그것은 직업과의 차이 때문이요, 일하는 정신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자기 직업을 죽지 못해서 하고 있다는 사람은 한없이 불행한 사람이다. 그의 표정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일을 한다는 사람은 보통 사람의 경우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높은 차원의 직업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신이나서 일하는 세번째 사람은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일에 긍지와 만족감과 보람을 느낀다.

누가 하나님의 구원救援을 받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맡긴일에 정열과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서양 중세의 격언格言에 이런 명언이 있다. 「일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여라. 일 속에 구원이 있다. 충성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진지한 기도와 같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서양의 근대시민 계급은 이런자세로 열심히 일을 했다. 이것은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Weber가 《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이미 밝힌 이론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2 10

누가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잇느냐, 하나님이 맡긴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천직 속에 구원이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다.

직업을 의미하는 영어의 단어는 아홉 개가있다

Job, trade, career, business, occupation, employment, profession, vocation, calling

각각 내용의 차이가 있다.

천직이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보케이션vocation과 콜링calling이라는 말을 쓴다. 독일어로 베루프Beruf. 모두 부른다는 뜻이다. 직업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신성한 부르심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천직이란 말 대신에 성소聖召라는 말을 쓴다. 직업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신성한 부르심 소명召命」이다. 내가 왜 목사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고, 공무원이 되었고, 기술자가 되었는가, 하나님의 소명이다.

얼마나 투철한 직업관인가. 얼마나 확고한 직업 윤리인가.

직업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엄숙한 의식을 갖는것은 간호사의 수관식受冠式이다. 영어로 캐핑 세러머니capping ceremony라고한다. cap, 즉 간호사가 모자를 쓰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나는 두 번 본 일이 있다. 이런 수관식은 우리가 한 번 볼 만한 필요와 가치가 있다.

전기를 모두 꺼버린 어두운 밤, 왼손에 촛불을 켜들고 白衣의 천사인 간호사들이 강당에 조용히 걸어 나와 병원장 앞에 선다. 그중의 한 대표가 나와서 오른손을 들고 병원장에게 환자의 병을 간호하는 데 온 정성을 바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한다.

서약이 끝나면 병원장이 간호사의 머리에 하얀 모자를 한 사람씩 씌워 준다.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고,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나는 수관식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간호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친절과 성실과 봉사의 정신이 요구된다.

왜 어두운 밤중에 손에 촛불을 들고 엄숙한 서약을 하는가. 1854년 크림 전쟁이 일어났을 때다.

애국심과 박애 정신과 봉사 정신이 강한 프로랜스 나이팅게일Nightingale은 크림 전쟁의 참상을 신문에서 일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육군 장관 하버트(어렸을 때 부터 나이팅게일과 하버트는 서로 친구였다)의 요청을 받고 34명의 간호사단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가 야전 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했다. 나이팅게일은 어두운 밤중에 왼손에 촛불을들고 병상을 돌며 부상병을 치료하고 부상병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기도로 위로 하고 신앙심으로 사기士氣를 앙양시키며 헌신적 봉사를 했다.

병사들은 나이팅게일을 「크림의 천사」「램프를 든 여인」「광명光明의 부인」이라고 칭송하며 존경했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수관식은 꼭 어두운 밤에 촛불을 켜고 한다. 그는 귀국 후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고 영국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나이팅게일은 영국이 온 세계에 자랑하는 위대한 여성이 되었다.

나이팅게일은 남북 전쟁과 보불普佛전쟁 때 외국의 협력을 요청받았고, 간호학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일생동안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의 헌신적 봉사가 계기가 되어 국제적십자사가 전세계에 탄생했다.

위대하도다, 봉사의 정신이여, 놀랍도다, 사랑의 힘이여. 우리는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세 가지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는 애정이요, 둘째는 긍지요, 세째는 충성이다.

네 직업을 사랑 하여라.

네 직업에 긍지를 가져라.

네 직업에 충성 하여라.

우리는 애옵인愛業人이되고, 근업인勤業人이 되고, 낙업인樂業人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천직을 사랑하고, 자기의 천직에 열성을 쏟고, 자기의 천직을 즐겨야 한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천직인의 자세다.

나는 명인주의名人主義를 제창한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名자가 붙어야 한다. 교수가 되면 명교수가 되고, 가수가 되면 명가수가 되고, 배우가되면 며애우가 되고,서가書家가 되면 명필이 되고, 시를 쓰면 명시를 쓰고, 작곡을 하면 명곡을 만들고, 의사가 되면 명의가 되고, 작품을 만들면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작업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가 되고, 넘버원이 되고, 베테랑이 되고, 챔피언이되고, 대가大家가 되고, 명장名匠이 되어야한다.

명인이 되려면 장인정신匠人精神과 천직 사상을 가져야 한다.

장인 정신이란 무엇이냐. 장인은 최고의 기술자요, 기술의 정상에 도달한 사람이다.

장인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자세로 한 가지 일에 십년적공十年積功을 해야한다.백번 갈고 닦고 훈련하고 연마하는 밷련천마百鍊千磨의 노력을 쌓아야 한다. 피땀을 흘리고 뼈를 깍는 각고면려刻苦勉勵와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수련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2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9연패, 아홉 번 계속해서 우승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장인 정신의 산 표본이다.

나는 항상 직업인에게 一人一技기, 一生一業업, 一生一路로, 一生一藝예, 一生一道도를 강조한다.

사람은 한 가지 일, 한 가지 직업, 한 가지 기술, 한 가지 예능에 10년 동안 몰두하고 정성을 쏟아야만 대가가 되고, 명인이 되고, 거장이 되고, 제일인자가 될 수 있다.

「일본 자동차에는 일본 사람의 혼魂이 배어있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토요다豊田자동차는 구미의 명차名品차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기술자들이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 정성과 혼을 쏟았기 때문이다. 상품商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작품作品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술자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세계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정혼精魂을 쏟아야 한다.

서양의 기업인들은 자기 회사에서 만든 제품에 자기 이름을 붙인다. 포드, 벤츠, 롤스로이스, 입센로랑, 샤넬, 피에르가르텡, 손슨엔손슨, 모두 다 자기의 이름을 붙였다.

내가 만드는 제품,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 세계 최고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회사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인들도 빨리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앞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 자세를 적극적 활동인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능동인能動人이 되고, 생동인生動人이 되고,낙동인樂動人이 되어야 한다. 일을 억지로 하는 노동인勞動人이 되지 말고, 기쁜마음으로 일하는 낙동인이 되어라.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네가 하는 일을 정성껏 하여라. 만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여라.」우리가 이런 자세로 일을 한다면 10년 안에 세계의 중심 무대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생즉동生卽動 동즉생動卽生,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요, 일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 인생에서 일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일은 인간의 주성분主成分이다 일이 인생의 근본이요, 중심이다. 나는 일 중심의 인생관을 강조한다. 사즉정死卽靜 정즉사靜卽死, 죽었다는 것은 조용하다는 것이요, 조용하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죽은 물건을 보라. 모두 조용하고 말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활동한다. 활동은 생명의 첫째가는 특색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은 활동의 산물이다.

우리는 활동주의活動主義의 안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벌판을 달리는 말을 보라. 땅 위에서 뛰노는 어린애를 보라. 모두 발랄한 생명력을 가지고 힘차게 움직인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인간의 시간 중에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고 제일 보람이 있다. 세상에서 일하는 시간처럼 중요한 시간이 없다. 일하는 시간은 살아 있는 시간아요, 보람있는 시간이요, 생산적인 시간이다.

「네 활동, 오직 네 활동만이 네 가치를 결정한다.

철학자 피히테Fichte의 명언이다. 무엇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느가. 나의 활동이다. 건강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활동을 통하여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고 개성을 표현하고 가치를 창조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가장 보림있는 일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는 데서 생의 의미를 찾지 말고 일하고 생산하고 건설하고 창조하는데서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향락적 인생관을 버리고 창조적 인생관創造的 人生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느냐

나는 직업 선택의 3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ㄹ이 각각 다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름, 운동을 잘하는 사람, 과학에 흥미와 관신이 많은 사람, 장사에 소질과 취미가 많은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수학을 잘하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무엇을 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방면에 천분天分이 있고, 소질이 있고, 적성이 있고, 재능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린이가 성장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면 어린이의 재능과 소질과 천분이 어떤 방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요, 알려주는 것이요, 격려해 주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가 하고 싶은일을 해야 한다. 하고 싶다고 하는 그자체가 그 사람의 천분과 소질과 재능을 나타낸다.

사람은 하고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희열감이 솟구치고 성장이 빠르고 보람을 느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의무감이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서 억지로 할 때에는 능율도 안 오르고, 재미도 없고,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끝으로 자기가 자신감을 갖는 일을 해야 한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Emerson은 이렇게 말햇다.

「自信은 성공의 첫째 비결이다.

인간이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자신감이란 무엇이냐.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요, 자기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혹고한 자신감을 갖고 하는 것과 아무 자신감도 없이 하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보람도 없고, 흥미도 없다하면 그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감을 갖고, 보람을 느끼고, 흥미를 가져야 한다.

독일의 위대한 정치가 비스마르크Bismarck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다음 세 마디에 그친다.

일 하여라. 좀더 일하여라. 끝까지 일하여라.

프랑스의 뛰어난 조각가 로뎅Rodin의 명언도 잊지 말기 바란다.

「현대인의 최대의 결점은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이다.모든 인간이 직업을 혐오嫌惡해야 할 필요사必要事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직업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다. 생활의 목적이다. 일한다고 하는 것은 인생의 가치요, 인생의 환희歡喜요, 인생의 행복이다.

내 직업을 사랑하고, 네가 하는 일에 온 정성과 정열을 바치어라. 이것이 올바른 직업인도職業人道다.

Thursday, August 11, 2011

안심법문 청화선사 말씀

안심법문安心法門

凊華禪師法語

벌써 기을입니다.북녘에서 자란 胡馬는 북풍이 불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 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산들바람이 가슴에 스며올 때 잊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그리는 근원적인 향수鄕愁를 지울 수가 없읍니다.

일찌기 달마대사 Bodhidhram : ? ~ 528 는 인도의 향지국 왕자였는데, 27 祖인 반야다라존자 Prajnatara : ? ~ 457를 스승하여 진리를 깨닫고, 바른 佛法을 중국에 펴기위하여 천신만고 끝에 중국 광주 땅에 도착하였읍니다.

그때, 중국불교는 경륜經論의 교리에만 집착하고 정작 마음공부는 소홀히하여 달마대사를 알아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대사는 승산 소림사 뒷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 앉아 걸식하러 나가는 외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벽을 향하여 바윗덩이처럼 깊은 선정禪定에 잠겼읍니다. 이러구러 9년 세월동안 말 한마디 없는 벙어리로 일관하였읍니다.

이때, 神光이라는 젊은 스님이 달마대사의 위대함을 전해듣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소림석굴을 찾아왔읍니다. 그래서 신광은 달마대사의 등뒤 석국 어귀에 꿇어앉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한 밤을 지새웠읍니다.

눈발이 무릅을 덮고 온 몸이 얼어붙어 사뭇 저려왔으나, 죽음을 각오한 신광의 뜨거운 구도의 역기는 추호도 움직이지 않았읍니다.

이렇듯 호젓한 침묵 가운데 하루해가 지나자, 그토록 목석마냥 앉아만 있었던 달마대사는 넌지시 돌아앉아 선광을 굽어 보았읍니다. 신광은 반색하며 큰절을 올리고 나서,”스승님, 이 어리석은 제자가 법을 구하고자 왔읍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거두어주옵소서,”

달마대사는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위없는 大道는 엷은 지혜나 가벼운 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이에 신광은 비장한 마음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단숨에 외팔을 잘라서 달마대사께 비치는 것이었읍니다.

솟음치는 선혈鮮血로 하얀 눈은 붉게 물들고 이내, 상처에서 희뿌연 젖이 솟아나와 상처를 아물게 하였읍니다. 이 때 사납게 울부짓던 눈보라도 숨을 죽이고, 달마대사의 엄숙한 표정에도 깊은 감동의 빛이 역력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신광의 지극한 구도의 정성은 받아들여졌읍니다.

그러나 신광의 마음은 좀체로 안정을 얻을 수가 없어서 스승앞에 나아가 스승님, 저의 마은은 아직도 편안하지 않사옵니다. 자비를 베프시어 제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그러면 편안치 못한 그대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케 하여 주리라.” 그러자 선광의 마음은 당혹하여 어리둥절하였읍니다.

본시 마음이란 형체가 없거니, 불안한 마음이나 흐믓한 마음이나 간에, 마음이란 아에 형상화 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스승님, 마음이란 모양이 없사옵기 드러내 보일 수도 얻을 수도 없지 않사옵니까?”

그렇다, 마음이란 필경 더위잡을 자취가 없는 것이니라.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으면 그대 마음은 이미 편안해졌느니라.:

이리하여, 어두운 無明에 갇힌 신광의 불안한 마음은 활짝 열리고, 맑은 하늘같은 훤칠한 마음으로 정진을 거둡하여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여 제 2祖 혜가대사 慧可 : 487~593 가 되었읍니다.

그 뒤에, 혜가대사의 회상會上에 오랜 병마에 찌들어 몹시도 초체한 젊은 수행자가 찾아와서 여쭙기를,

스승님, 저는 죄업이 무거워서 불치의 풍병으로 여러해를 앓는 몸입니다. 아무쪼록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죄업을 소멸하여 주시고, 가엾은 목숨을 구제하여 주옵소서.”.

정작 그렇다면 그대의 죄업을 이리 내놔보게, 내가 바로 소명시켜 줄터이니.”

이에, 말문이 막힌 젊은이는 이윽히 생각에 잠겼읍니다. ‘마음이란 본래 허공과 같이 텅 빈 것, 이미 마음이 그 자취가 없거니, 죄업인들 어디 흔적이나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젊은이는 여쭙기를

죄업을 아무리 찾으려 하여도 도무지 그 형상이 없사옵니다.”

진정 그러하니라. 그대가 정녕, 그러한 도리를 깨달았으면 이미 그대는 죄업을 참회하여 소멸해 버렸느니라.” 이말씀에 총명한 젊은이의 마음은 활연히 열렸읍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혜가대사에게 스승님, 저는 앞으로 스승님을 섬기려 하홉니다.”

그대 같은 풍병환자가 나를 따른들 무슨 소옹이 있겠는가?” 젊은이는 말하기를

몸은 비록 병이 있사오나, 제 마음은 스승님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사옵니다ㅏ.” 그래서 혜가대사는 그를 대견하게 받아들이니, 젊은이는 차차 건강도 회복하고 더욱 정진에 노력하여 드디어 제 3 조 승찬대사 僧璨 : ? ~ 606가 되었읍니다.

몇 십년의 세월이 흘러 승찬대사가 환공산晥公山에 머물를 때, 아직 13세의 영특한 사미沙彌동자가 찾아왔읍니다. 그는 큰절을 하고 대뜸 여쭙는 말이,

스승님, 자비를 베프시어 저에게 번뇌를 해탈하는 갈을 일러 주옵소서.”

승찬대사는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누가 너를 속박하였기에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냐?"

동자는 불현듯 가슴이 막혀 잠시 생각에 잠겼읍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니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 누가, 그 무엇이 내 마음을 구속했단 말인가 ? 그저 마음안에서 공연스레 일고 스러지는 번뇌망상이 아닌가? 마음 자체가 형상이 없고 가뭇없으니, 대채 번뇌망상이 그 어디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 아무것도 제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속박하는 것이 없다면 다시 무슨 해탈을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 한마디에 갸륵한 동자는 문득, 본래비어있는 허공같이 장애없는 마음자리를 훤히 깨달았읍니다. 그리고 이 동자가 장차 대도를 성취하고 제 4 조 도신대사 道信 ; 589~651가 되었읍니다.

도신대사는 출가하여 60여 년 동안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여, 아예 자리에 눕는 일이 없었읍니다. 평소에 눈을 감은 듯 지냈으나 눈을 바로 뜨고 사람을 바라보면 그 위엄있는 축기에 사람들이 움츠러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깊은 삼매에서 우러나온 초인적인 道力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처님의 正統法脈은 끊임없이 이어져 제 5 조 홍인대사 弘忍:602~675를 거쳐 제 6조 혜능대사 慧能:638~713에 이르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로 부터 혜능대사까지는 오로지 순수하게 마음의 해탈만을 문제시 하였다고 하여 순선純禪시대라 하고, 그 무렵에 주로 제창提唱한 법문을 安心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이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하고 무장무애無障無碍하여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아무런 자취도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다만 허무하게 비어만 잇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實相은 무한한 능력을 원만히 갖춘 생명의 광명으로서, 바로 佛性 곧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경전에 이르신 바.”『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 〔심칙시불 불칙시심 心則是佛 佛則是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일체 만유는 모두 한결같이 불성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化身 부처님이며, 우주의 실상은 바로 장엄 찬란한 연화장蓮華藏세계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번뇌에 가리운 중생들이 그러한 자기 근원을 모르고 만유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인연따라 이루어진 전변무상轉變無常한 가상假像만을 집착하여 너요 나요 내 것이요 하며 탐착하고 분노하고 아귀다툼하면서, 파멸의 구렁으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온 누리에 넘실거리는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유일한 길은, 이미 부처님과 정통조사正統祖師들이 순선純禪시대에서도 극명克明히 밝히신 바, 중생 차원에서 인식하는 일체만법은 바로 그대로 비어있는 空한 도리, 곧 제법공상諸法空相을 번연히 깨달아서 우선 불안한 마음을 여의고 安心立命을 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空만이 아닌, 그 공의 근본 성품인 부처님을 성취하기 위하여 空도리에 걸맞는 무아無我ㆍ무소유의 생활에 안간힘을 쓰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인이, 인류의 파멸을 면하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약속하는 오직 하나의 청정한 白道인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애바라밀 !

《불기 2530 10월 「금륜」 제 6 호》

Tuesday, August 9, 2011

우울한 축제 ?

우울한 축제 ?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欄이었다.

중국에는 朝貢을 바쳤고 일본과 여진에는 회유책懷柔策을 폈다. 비굴한 사대주의인가, 아니다 때로는 허리를 굽혔지만, 때로는 죽을 각오로 싸우기도 했다. 당시의 국력과 국제정세에 비추어 가장 유호적절한 생존전략을 추구해 왔을 따름이다. 중앙아시아와 중국대륙을 軍馬로 횝쓸던 흉노ㆍ선비ㆍ거란의 나라들은 오늘날 모두 어디에 있는가.

비분강개해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자진自盡하는 것은 차라리 쉬울지 모른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괴로운 나날들을 견뎌내는 삶이야 말로 지혜와 용기 없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대륙과 해양의 강대국들 틈에 낀 비좁은 반도에서 창의적 문화, 고유한 언어, 독창적 문자를 지니고 겨례의 터전을 끗끗이 지켜온 우리민족의 삶은 인류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기적같은 생명력의 분출이었다.

국제정치학을 배운적이 없는 우리의 先人들은 국가의 존립이 이념의 논리가아니라 힘의 생리에 의해 좌우되는 냉혹한 현실을 통찰할 줄 알았다. ‘동북아 균형자의 거창한 꿈은 없었어도, 민족의 역사를 자손만대에 이어가는 지혜를 품고 있었다. ‘자주주체를 입에담고 사는 오늘의 누군가 가 모르는 그통찰,그 지혜를.

사회주의 깃발아래 新국가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짝퉁 시장의 물량경제物量經濟로 G2강국에 오른 중국은 몽골ㆍ티베트ㆍ위구르등 이민족異民族의 땅을 강점하고 그들의 독립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할 뿐 아니라, 오만불손한 언동으로 옛 식민제국의 패도覇道를 그대로 밟아가는 중이다. 일본의 교활한 독도 야욕만으로도 울화가 치미는 터인데, 이제는 중국이 우리의 이어도를 넘보려한다. 제주해녀들의 이어도 타령속에 절절한 恨을 품고있는 숙명의 섬. 이청춘의 소설 『이어도』에서 시퍼란 영겁永劫의 혼을 뿜어내고 있는 한반도 남쪽 끝섬, 그 이어도를.

신생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짓밟았던 중국이 지금은 북한을 사실상 속국으로 삼고 종주국 행세를 하면서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역사를 중국 변방사邊方史에 흡수하려고 안달이다.’굴복을 모르는 고구려 후손임을 내세우는 주체의 북한이 정작 고구려 역사를 내세우는 주체의 북한이 정작 고구려 역사를 통채로 집어삼키려는 중국에는 입도 벙긋 못하고 있으니, 도무지 고구려의 후손답지 않다.

북쪽만이 아니다.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티벧트의 현자賢者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까지 방문했지만, 아직 한국 땅은 밟지 못했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역대 한국 정부의 용렬한 태도 때문이다. 백령도에서 불과 30분 거리읜 북한의 공기부양정 기지에는 입을 꾹 다문 사람들이, 해양주권과 무역항로의 요충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는 중국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한다.

미국산 쇠고기에는 실체도 없는 광우병 협의를 덮어 씌우면서,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불량식품에는 그 흔한 촛불한번 켜든 적이 없다.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한의 집단공개 총살 형장刑場으로 묶어 보내는 중국의 반인륜적 행태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한 옛 인권투쟁사들의 모습에서 홍위병들의 반문화적문화혁명에 박수를 치던 반달리즘 (Vandalism)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서글픈 아이러니다.

미래를 믿지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시인 롱펠로의 충고다. 미래의 비전도, 역사의 교훈도 모두 외면하라는 뜻일 리가 없다. 낡고 병든 이념의 환상에 눈 멀어 지금 여기 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한 억압과 빈곤밖에 남지않은 껍데기 사회주의를 동경憧憬하면서 제 나라의 정체성正體性과 건국 역사를 헐뜯는 자기부정自己否定에 대한 질책이기도 할 것이다.

이 땅의 옛 어른들은 중국의 성당盛唐시대에도 슬기로운 用中의 길을 모색하며 고뇌를 했을 지언정, 얼빠진 종중從中의 그늘로 움츠러들지 않았다. 일제 암흑기에도 처절한 항일抗日의 투쟁 너머로 찬란한 극일克日의 꿈을 품고 있었다.

선인들의 숨결을 이어온 광복과 건국의 달이다. 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8.15가 언제부터인지 기념식을 따로따로 치르는 우울한 국경일, 갈등의 건국기념일로 변질되곤 했다. 8.15를 또다시 우울한 축제로 맞을 것인가 ?

광복절 노래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다물도 춤을 춘다

기여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이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꿈 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살피고 가꿔 하늘닿게

세계에 보람된 거륵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힘써 나가세 힘써힘써 나가세


그 날이 오면
-
심 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날이오면>(1930)-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시인 윤동주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시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