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2, 2011

5 만 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5 만 행 萬行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

뒷길로 오는 가르침

나는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로 했다.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미안했고 특히 부모님의 걱정이 컸다.그래서 나는 다시 옛날의 모범생으로 돌아갔다.나는 또 한 분의 수녀님과 악연을 만들게 되는데 정말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바로 수학을 맡고 계시던 숀 수녀님이셧다. 신앙심이 매우 깊은분으로 특히 칠판 글씨가 매력적인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숀 수녀님은 우리 학교에서 악명이 높아 모든 학생들이 두려워했다. 아주 두꺼운 돋보기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은 학생들이 무었을 잘못하는지 늘 감시하는 듯했고 창백한 얼굴에는 핏줄이 다 드러나 보엿다. 작은 키에 몹시 뚱뚱한 그녀의 별명은 탱크였다. 거기에 팔다리도 아주 굵고 짧아 걸어 다닐 때는 진짜 탱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수녀님 용서하세요.)

2년 전 내가 이 학교로 전학간다고 하자 형과 누나들은 제발 숀 수녀님과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어라라고 특별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미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형과 누나들에게도 유명했던 선생님이셨다. 과연 아닌게아니라. 전학오자마자 숀 수년님의 악명은 드높았다. 선생님의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드려움도 두려움이었지만 숀 수녀님은 학생들을 주로 매로 다스리셨다.

우리는 매학년이 끝날 때마다 성적표를 받는데 그 성적표에는 1년 동안의 성적과 함께 다음 학기에 배울 교과목 담임 선생님들의 이름이 죽 씌어 있었다. 학년말이 되면 아이들은 성적보다는 내년에 배우게 될 수학 선생님이 숀 수녀님인지 아닌지 보는 게 더 큰 관심사였다.

5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성적표가 들어 있는 봉투를 조심스레 뜯었다. 이미 모두 A를 받을 줄 알았기 때문에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나는 봉투를 반쯤 열다가 옆의 짝이었던 스티브에게 아예 성적표를 넘겨주고 눈을 감은 뒤 그에게 수학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잠시 후 스티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나다를까, “내년은 악마와 함께하는 1년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그 이후 여름 방학 동안 정밀이지 나는 그 호랑이 수녀님과 어떻게 다음 1( 9월 부터 6월 까지)을 함께 보내나 그 걱정뿐이었다.

수학사간은 일주일에 세 번. 숀 수녀님은 나를 처음 만난 날부터 내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 했다. 은근히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셧다. 더욱이 지난번 채풀 시간에 있었던 일이 온 학교에 알려지면서 숀 수녀님이 나를 대하는 모습은 더욱 차가웠다. 나는 ㄷ되도록 그녀에게 찍히지않으려고 아주 조심했다. 반면 내 친구 존은 완전히 그녀의 이었다.

어느 날 수업중에 지우개가 필요했던 나는 존에게 눈치를 보내 지우개를 던지라고 했다. 그런데 아뿔사, 존이 던진 지우개가 칠판에 글씨를 적고 있었던 숀 수녀님의 어깨에 명중한 게 아닌가. 수녀님은 완전히 마귀할멈이 얼굴이 되어 뒤돌아스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없이 지우개를 눈앞에 들이대고 누가 던졌느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셨다. 이욱고 존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일어셨다. 수녀님은 존의 자리로 쿵쿵 걸어가 그의 멱살을 잡아 책상에서 들어올리더니 문 밖으로 내쫓았다. 존은 그날 수업이 끝날 때까지 벽만 처다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 숀 수녀님의 그물망에 드디어 내가 걸러든 사건이 일어났다. 채풀 시간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여가 자난 뒤였다. 그 당시 나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몸이 완전히 땀에 젖을 때까지 야구를 할 정도로 야구광이었다.

6학년 때는 야구팀 주장까지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야구에 너무 정신을 파느라 그만 수학 수업시간에 약5분 가량 늦고 말았다. 숨을 죽이고 살짝 교실 문을 열었는데 숀 수녀님이 들어와 기도를 주관하고 계셨다. 수녀님은 항상 수업 전에 5분간 기도를 주관하셨다. 수녀님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불행중 다행이라 여기며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내 자리로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살짝 눈을 뜬 친구들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숀 수녀님이 그소리에 눈을 뜨셨다. 수녀님은 그 큰 발로 내 앞에 쿵쿵 걸어나오시더니 냅다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늦은거야?”

:……야구를 하다 시간을 잊어버렸읍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

수녀님은 교탁으로 돌아가시더니 기도를 다시 주관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너무 두렵고 부끄러웠다. 남은 기도시간 3분이 마치 3년처럼 길었다. 기도가 끝난뒤 수녀님은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그날 이후부터 수녀님이 나를 바라보눈 눈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수녀님은 매일 나를 예의 주시하며 나에게 질문을 집중적으로 하셨다. 내가 대답을 못하면 교탁으로 불러내 종아리를 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었다. 수녀님은 수업 전 기도를 주관하시면서 아무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 나라에 갈 수 없다. 오직 우리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여지의 말씀을 하셨다. 기도가 끝난 뒤 수업이 막 시작될 무렵, 나는 손을 들었다.

회굗도와 인도, 아프리카, 중국 등에 사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천국에 갈 수 없고 구원을 얻을수 없읍니까? 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들에게도 그들의 신이 있습나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가 믿는 신을 안 믿는다고 해서 모두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까?”

수녀님은 좀 당혹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내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이란 오직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뿐이었다.

며찰 후에는 더 큰일이 벌어졌다.

우리반에는 유난히 철자법이 잘 틀리는 톰슨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숀 수녀님은 우리에게 수학 숙제이외에도 성경 한 대목을 정해주고 배껴오는 숙제도 곧잘 내주셨는데 어느 날 톰슨이 성경에 나오는사람 이름의 철자를 틀리게 써온 것이었다. 수녀님은 몹시화를 내셨다.

톰슨은 흑인 학생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단 두 명의 흑인 학생이 다녔는데 그가 그중 한 명이었다. 톱슨 집안은 본래 카톨릭이 아니라 개신교를 믿는 집안아었지만 성마리아 학교가 우수한 사립학교라는 장점 때문에 부자였던 그의 부모님이 그를 우리 학교에 보낸 것이다.

숀 수녀님은 톰슨에게 교실 뒤로 가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30분쯤 지났을까, 톰슨은 아픔을 참기 어려웠는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유달리 눈에 잘 띄는 피부색 때문에 친구들한테 왕따까지는 당하지 않았지만 늘 홀로 외로워하던 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알게모르게 그 아이를 싫어앴는데 그 이유가 개신교회를 다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내 뒷 자리에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안쓰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신 수녀님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셨다.

미스터 뮌젠, 무슨 문제가 있나. 왜 얼굴이 그렇지?”

아마 불편한 감정이 얼굴에 나타난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내 앞으로 다가 오셨다.

뭐가 맘에 안드는 거야? 말해.”

톰슨을 그만 벌 주세요.”

너 쟤 친구냐?”

좋다, 그러면 너도 가서 무릎 꿇고 앉아 있어.”

우리 교실은 1층에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 지나가는 아이들마다 우리를 처다보고 웃어댔다. 심지어 여자애들까지 손가락질을 해댔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더이상 숀 수녀님께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교실 윗벽에는 아주 큰 십자가가 있었는데 나와 톰슨은 수업시간 내내 두 손을 모으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어야 했다.

수녀님은 그날 수업시간이 끝나면서 우리를 의식하셨는지 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들의 죄 때문에 돌아가셧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때 수녀님의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수녀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아렇게 말씀하셨다.

좋다, 폴은 제자리에 가서 앉고 톰슨은 그대로 있어.”

그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저도 같이 있겠읍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수녀님의 얼굴이 완전히 흙빝으로 변했다.

, 네 자리로 당장 돌아가라. 명령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돌처럼 앉아 있었다.

가족들의 명예에 금이 가도 상관없어, 내 생각에 옳으면 그건 옳은 거야.’

수녀님은 포기하셨다는 듯 획 돌아 나가셨다. 나는 톰슨과 함께 한 시간 가량을 더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수녀님은 노골적으로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셨다. 따귀를 때리는 것은 물론 걸핏하면 내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을러대기 시작하셨다. 패트릭 형에게 수녀님이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못살겠다고 했더니 형은 나를 위해 넥타이 끝을 와이셔츠 깃끝에 단추로 고정시키는 특수 넥타이를 사다주었다. 작전(?)은 보기좋게 성공해 어느 날 숀 수녀님은 내 넥타이를 잡아당기다 교실 바닥에 쿵하고 주저앉으셨다.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그 넥타이를 사다 매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히트 상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고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사이에는 점점 더 큰 악재만 나타났다.

매년 유월절[i].이 오면 학교에서는 큰 행사가 열린다. 옛 유월절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유태인들이 먹었던, 베이킹 파우더를 넣지않은 빵을 점심시간에 먹는 행사이다. 그날은 숀 수녀님 시간 바로 다음이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수학 수업을 마치고 수녀님 주제하에 유월절 재현 점심식사가 있었다. 우리는 수녀님이 나눠주시는 빵과 잼을 먹기 시작했다. 유월절 빵은 마치 한국의 빈대떡처럼 얇고 부드럽고 폋폋한데 그 위에 잼을 발라 먹는다.

그런데 그날 평소 수녀님의 이넜던 존이 또 걸려든 것이다.

존은 빵 위에 잼을 한 숟가락 떠놓더니, 그부분을 앞으로 구부린 뒤 마치 딱총처럼 잼을 튀기는 장난을 했다. 존의 원래 목표는 내 얼굴이었는데, 아이고, 그게 수녀님 어깨로 날아간 것이었다. 존은 너무 겁이나 책상 밑으로 숨었고 수녀님은 씩씩거리시면서 존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부터 교실 안은 수녀님과 존 사이에 쫓고 쫓기는 한판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존은 책상 밑을 요리조리 피해다녔고, 수녀님은 탱크 같은 몸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존을 잡느라 혈안이 되셨다. 교실안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두드려대며 폭소를 터뜨렸다. 나 역시 새상에 태어나 그렇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수녀님의 손아귀에 잡힌 존은 죽도록 얻어맞았고, 같이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나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우리들은 점심도 못 먹고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나는정말 선생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은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교실을 나와 성당으로 가서 맥마흔 신부님을 찾았다. 성당복사로 일하고 있던 나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아주셨던 분이었다. 마침 신부님은 혼자 계셨다. 나는 그분께 모든 일을 말씀드렸다.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게 사랑인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 하지요?”

신부님은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없는 일을 계획하시기도 하신단다라며 나를 위로하셨다. 결국 존은 그 일이 있은 후 전학을 갔고, 존의 부모님들은 다니던 성당까지 바꿨다.

몇 년 후 나는 숀 수녀님이 정신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퇴직을 하셔서 더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는 말도 풍문으로 들었다.

나는 한번도 신과 예수님의 가르침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은 없었다. 다만 몇몇 수녀님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 종교적 생활, 말과 행동의 차이,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시절은 어린 나에게 닥친 첫번째 종교적 시련의 시기였다.

궁금한게 너무 많았고 이해되지않는 일이 너무 많앗다. 따지고 분석하는 나의 버릇 때문에 여러사람이 곤욕을 겪기도 햇다

어느 날 우리가 사는 옆 동네에 큰불이 나 아이들만 여섯 명이 타죽는 큰 참사가 빚어졌다. 그들은 전쟁 때문에 보트 피플로 미국에 건너와 살고 잇었던 베트남 아이들이었다. 돈이 앖다 보니 두 가족이 모두 한방에서 살았는데 사고 당시 부모들은 돈 벌러 나가고 없었다고 한다. 이이들만 남아 불장난을 하다 참사가 빚어진 것이엇다.

나는 그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죽은 아이들의 아버지 한사람이 어머니가 근무하시는 학교에서 일하는 청소부였기 때문이다.

아주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며 그 전부터 어머니가 가끔 얘기하셨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충격을 받앗다. 도대체 그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차참하게 타 죽어야 하나. 며칠 후 한 신부님 초청 강연이 있었던 채풀 시간에 나는 손을 들어 신부님께 그 화재 사고를 말씀드린 뒤 이렇게 물었다.

신부님,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합니까, 어떤 선생님께서는 그들이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맞습니까.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했읍니다. 그런데 왜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불에 타 죽어야 하지요?”

신부님은 성경을 인용하며 열심히 설명하셨지만 내겐 충분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하는 나의 의문에는 근본적 답이 되지 못했다.

미국은 중학교가 따로 없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초등학교6년과 중학교2년 동안의 캠퍼스가 서로 달라 학국처럼 구분이 있는 곳도 있지만 내가 다니던 성 마리야 학교는 초.중등 과정을 합쳐8년이었다.

8학년이 되어서 만난 마르셀라 수녀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수녀님은 당시 연세가 여든이 다 되셨던 분이었는데 어린 우리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특히 강조하셨다. 수녀님은 항상 우리의 몸 자체가 사탄이다. 몸은 정신보다 낮으며 영혼은 고귀한 것이므로 항상 영혼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몸을 믿거나 신뢰해서는 안 된다. 봄은 언제나 죄로 향하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악마다라고 알씀하셨다.

그러면서 아담과 이브 얘기를 하셨다.

신께서는 일주일 동안 이 세상을 만드셨으며 사탄이 준 사과를 먹은 아담 때문에 우리는 원죄를 갖게 되었다.”

나는 더이상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만약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리고 우주안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죄, 죽음, 사탄 역시 신이 만든 것일까? 그렇다면 신은 너무 불고평하지 않은가? 그 모든 걸 다 만들어놓고 인간의 죄를 범했다고 벌하신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몸이 사탄이라면 그것 역시 신이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악마일 수 있는가?

혼란 스러웠다.

마르셀라 수녀님은 틈만 나면 교실 벽에 걸려잇는 십자가를 가르키시면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신은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신 뒤 돌아가셨다. 그런데 신이 전지 전능하다면 그게 왜 필요했을까?

나는 그런 의문이 생길 때마다 성당에가서 간절한 가도를 올렸다.

하느님, 이 세상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제안에 사탄이 있다면 사라지게 해주십시요.”

진정한 지혜란 무엇인가, 무엇이 맞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알게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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