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6, 2011

제 10장 기 호연지기를 길러라

10장 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라

洗心淨魂 怡堂 安秉煜

원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우리는 어떤 인격을 형성해야 하느냐. 바람직한 인간은 어떤 속성屬性을 구비해야 하는가. 이것은 교육의 근본 문제인 동시에 인생관과 가치관의 햇심에 속한다. 나는 기를 표준으로 오기인五氣人을 제창한다. 우리의 몸에는 다섯가지의 기가 넘쳐야 한다. 기는 기운이요, 힘이요, 생명의 근원적인 에너지다.

첫째로 우리의 몸에서는 발랄한 생기生氣가 약동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의 눈에서는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머리에서는 슬기로운 총기聰氣가 넘쳐야 한다.

넷째로 우리의 얼굴에서는 훈훈한 화기和氣가 감돌아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의 인격에서는 풍만한 덕기德氣가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이상적 인간상이다.

우리는 오기인이 되어야 한다. 몸에서 오기가 넘치는 사람이 인생의 대업을 성취하고, 사회의 성공자와 승리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영도자 領導者가 될 수 있다.

오기를 하나씩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로 우리의 몸에서는 원기元氣가 약동하고 생기가 발랄하고 활기가 충만하고 패기覇氣가 넘쳐야 한다.

원기는 영어로 바이탈리티Vitality, 스태미너Stamina, 라이블리네스Liveliness, 비비드네스Vividness.

1962 7월 영국에 갔을 때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영국 신사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보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어깨와 가슴을 활짝펴고 곧은 자세와 보무당당步武堂堂한 걸음 걸이로 푸른 잔디밭 위를 활발하게 걸어가는 영국 신사는 위풍이 늠름하고 기세가 활달하였다.

영국 신사는 걸음 걸이가 다르구나,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가. 과연 오대양 육대주를 2백 년 동안 지배한 영국인은 걷는 것부터가 다르구나 명실공히 세계의 일등 국민이다.

우리 한국인은 왜 저렇게 걷지 못할가. 나도 한번 저 신사처럼 늠름하게 걸어 보자. 나는 그 신사의 뒤를 따라가면서 40평생에 처음으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걸어 보았다. 기분이 대단히 상쾌하였다.

그후 부터 사람의 걸음걸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젊은 청년들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그 영국 신사의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걸으라고 강조한다.

「그 사람을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라.」 「걸음걸이는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 라는 말이 있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의 정신과 태도를 표현한다. 씩씩하게 걸으면 서격과 행동이 씩씩해지고, 축 늘어져서 걸으면 축 늘어진 인간이 된다. 우리 한국인은 제대로 걸을 줄을 모른다. 당당하게 걷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올바로 걷는 사람이 열 명 중에서 한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한국의 지도자 중에서 도산 선생의 걸음걸이가 제일 늠름하였다고 한다. 나는 20대의 젊은 시절에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보무당당한 걸음걸이를 보고 참으로 멋있다고 느꼈다.

70을 넘은 고령의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한국에 왔을 때 당당하게 걷는 것을 보고 역시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아신峨山 정주영鄭周永 화장의 걸음걸이도 활기가 넘쳤다.

한국인 중에서 당당하게 걷는 것은 군인과 비행기를 타는 여자 승무원과 병원의 간호가들이다. 이것은 직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구부리고 땅만 내려다보며 한없이 걷는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맣다. 활발하게 걷는 것 부터 배워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의 성격과 행동이 활발해 진다.

옛 사람들은 호안우보虎眼牛步라고 하였다. 호랑이처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소처럼 힘착게 걸으라고 하였다.

「노쇠老衰는 다리에서 부터 온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두다리는 우리의 몸을 떠받드는 기둥이요, 우리를 운반하는 수레요, 바퀴와 같다. 사람이 걸을 때에는 6백여개의 근육과 206개의 뼈 중 약 절반이 움직인다고 의시는 말한다. 걷는 것처럼 건강에 좋은 운동은 없다. 우리는 건각인健脚人,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원기가 넘치고 생기가 약동하는 적극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적극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

심리학자들도 다음 다섯 가지의 실천을 권한다.

첫째, 걸음걸이를 활발하게 걸으라.

둘째, 앞좌석에 가서 앉으라.

셋째, 먼저 말을 건네어라.

넷째,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라.

다섯째, 크게 미소하여라.

이런 생활 태도를 가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적극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새 시대의 한국인은 적극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일찍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민족이 잇다. 하나는 살아지니까 사는 소극적인 민족이요, 또 하나는 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적극적인 민족이다. 과거에 우리 국민은 전자에 가까운 역사를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미국의 「성공학 成功學」의 권위자인 나폴레옹 힐Hill과 크레멘트 스톤Stone 1960년에《적극적인 태도에 의한 성공 Success through a positive attitude》 이라는 명저를 공저共著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모두 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진 인간이요, 실패한 사람은 모두 소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진 인간이다.

P.M.A Positive mental attitude는 성공의 원리요, N.M.A 는 실패의 원리다. 성공과 승리를 원 하느냐. P.M.A의 인간이 되어라.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지고 목표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과 승리의 영광을 거둔다.

정기精氣

우리의 눈에서는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야 한다. 우리의 눈동자는 수정처럼 영롱하고 아침 이슬처럼 정경해야 한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눈동자가 제일 중요하고, 마음이 맑으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흐리면 눈동자가 흐리다.」 《맹자》, 〈이루 離婁

눈은 마음의 창문이요 정신의 거울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밝고 빛나는 것이 눈이다.

「눈은 감각感覺의 여왕」이라고 시인 괴테는 말했다.

눈은 인생의 태양이다. 우리는 먼저 눈으로 모든 것을 밝게 보아야한다. 눈이 안 보이면 암흑인暗黑人이 된다. 우리의 안광眼光은 형형炯炯해야 한다. 눈동자의 초점이 몽롱하고 흐리멍덩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눈을 가져야 하느냐. 다섯 가지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오안인五眼人이 되어라.

첫째는 역사적인 눈이다. 지금 여기만 보아서는 안 된다.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넓게 바라 보아야 한다. 민족의 십년 앞, 백년 앞을 바라보는 원시적原始的 안목眼目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넓은 시야視野를 제공한다.

둘째는 과학적인 눈이다. 과학자는 냉철한 눈을 가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예리하게 지시한다. 편견을 버리고, 선입관념을 제거하고, 환상과 망상에 사로 잡히자 말고, 고정하게 사물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에서 벗어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으로 공평하게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세째는 예술적인 눈이다. 「미는 영원의 기쁨이다」 시인 키츠Keats의 말이다. 예술가는 모든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미를 표현하고 미를 창조 한다. 미와 예술처럼 인간에게 희열과 활홀과 도취陶醉의 감정을 주는 것은 없다. 미와 예술이 없는 세계는 삭막하고 황량하고 무미건조하다.

세계는 다채다양한 미의 향연장饗宴場이여, 자연은 풍성한 미의 전당殿堂이다. 우리는 예술가의 눈을 가지고 도처에서 미를 발견하고 미를 즐겨야 한다.

네째는 철학적 눈이다.「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 하여라. 이것이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라고 문학자 루소는 갈파했었다.

철학자는 깊이 생각한다. 철학자는 사물의 근본과 핵심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색思索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인생의 정도正道를 제시한다.

끝으로 종교적인 눈이다, 종교는 인간의 근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종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간을 보라.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여라.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바라보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공자의 눈으로 보고, 부처의 눈으로 보라. 이것이 종교의 눈이다.

눈이 잇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보인다. 먼저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정신적 개안開眼이 가장 중요하다. 사물을 바로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바랍 보는 데서 지혜가 싹트고 깨달음이 생기고 자극을 받고 향상의 힘이 솟고 감격의 기쁨이 있고 사랑의 빛이 발하고 개혁의 의지가 분출하고 구원과 해탈의 문이 열린다.

총기

우리의 머리에는 총기聰氣가 넘쳐야 한다. 총기란 무엇이냐, 총명한 기운이요, 슬기로운 분별력이요, 올바른 사라판단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선후본말先後本末이 있다. 먼저 할일과 나중에 할 일, 근본되는 것과 말단에 속하는 일이 있다. 대소경중大小輕重이 잇다. 큰 일과 작은 일, 가벼운 일과 중요한 일이 있다.선악정사善惡正邪가 있다. 선한 일과 악한 일, 마른 일과 틀린 일이 있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이 있다. 사리에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 잘봇된 일과 잘 된 알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총기다. 무엇이 성하고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바로아는 능력이 지혜요 총명이다

맹자는 이것을 良知 良能이라고 하였다.

프랑스이 철학자 데카르트는 「지성知性이란 무엇이냐, 참과 거짓을 분간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올바른 판단력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올바른 판단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고 올바른 행동에서 올바른 결과가 생긴다.

잘못된 판단에서 잘못된 행동이 나오고 잘못된 행동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사람은 남의 일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만 자기 일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왜야, 나의 이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자기일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인간의 눈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자기의 얼굴은 볼 수 없다. 자기 일에 머두운 것이 인간이다.

왜 어두우냐, 불교는 아집我執과 아욕我慾과 아만我慢과 아치我癡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집이란 무엇이냐, 자기의 욕심 때문에 눈이 너두워지고 자기만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만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어 자기교만自己驕慢에 빠지는 것이다.

아치란 무엇이냐, 자아에 관한 무명無明이여, 미망迷妄이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치는 어리석을 치요, 미련할 치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집 · 아만 · 아욕 · 아치의 네가지 병에 걸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바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철인哲人은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강조했다. 영어의 노우 자이넬프Know thyself, 그리스어의 그노티 새아우튼Gnothi Seauton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아폴로 신전의 하얀 대리석 벽에 이 말을 바로새기고 행동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내가 나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지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지혜다.

총면의 총 자는 귀밝을 총, 총명할 자다. 귀가 밝은 것이 총이요, 눈이 밝은 것이 명 이다.

우리는 귀가 밝고 눈이 밝아야 한다. 사람은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워지기 쉽다. 늙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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