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1, 2011

4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알고 싶을 뿐

그럭저럭 평온한 나날이 지속됏지만 내 마음속 의문들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카톨릭 사립학교로 전학오고 성당 복사직을 맡게 되면서 종교적 신심은 더욱 강해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종교에대한 의문들이 함께 커갔다. 패트릭 형과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내가 새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성당도 열심히 다니고 하자 자연히 종교적인 주제가 화제가 되엇고, 나는 형에게 앞으로 크면 신부가 되겠다는 얘길 자주 했다. 형 역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좋은 신부가 되라고 하면서 교회 역사에 대한 재미잇는 얘길 많이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중세 카톨릭 교회의 횡포에 대해 흥미가 갔다.

십자군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인 암흑의 중세 한가운데 교회가 있었다.나중에 카톨릭 신부들은 돈을 내면 죄까지 면제해준다며 사람들을 현혹했다. 스페인을 포함한 전유럽에는 신의 이름으로 서슬 푸른 종교재판이 자행되었다. 개종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람을 생으로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 인디언들에게는 백인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며 동물 취급을 했고 남미 같은 곳에는 선교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종교인들을 보내 그곳 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도 했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 로보트 드 니로 주연의 〈미션〉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형은 이런 내용을 담은 중세 교회사에 대한 책을 나에게 빌려주곤 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하버드 대학 교수님들 같은 지식인들이 쓴 책이었다. 형은 또 현대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종교인들의 소극성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특히 나치 통치 기간 동안 카톨릭 교회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진정한 종교인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남에게 자기가 믿는 종교만 옳다며 이를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잇을까.

당시 우리집 길 건너 바로 앞에는 아주 아름다운 교회가 하나 있었다. 건물도 웅장한 데다 그곳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성가가 울려퍼졌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은 그 교회에 가지 않고 오히려 차를 타고 10분쯤은 가야 하는 먼 성당에 다니셨다.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왜 가까운 교회를 놔두고 먼 곳을 다니는 걸까.

어느날 집 앞에서 야구를 하다 야구공이 그 교회 담장을 넘는 바람에 그곳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똑같은 성경책, 똑같은 십자가, 그런데 그곳 목사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이상했다. 괜히 뭔가 꺼리시는 얼굴이었다. 왜 그럴까.

어느 날 어머니께 여쭈었다.

엄마, 왜 우리는 저 교회에 가질 않나요?”

앞에서도 얘기 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분인데다 끊임없이 공부하시고 모든 일에 관심이 많은 지식인이었다. 그런 어머니도 나의 질문에는 마치 내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시는 거였다.

안 돼, 안 돼, 그 교회는 가면 안 돼. 그 교회는 우리가 다니는 성당과는 다르단다.”

나에게는 논리적으로 납득이 잘 안 되는 대답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교회는 개신교 교회엿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똑같은 스승(예수님)을 믿고 똑같은 성경으로 똑같은 가르침을 받고 똑같이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에서 똑같은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회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진리란 것이 어떤 때는 맞고 어떤 때는 틀리는 불일치가 있을 수 있는가. 어떤 상황과 어떤 조건에서도 흠이 없는 완벽한 결정체여야 하지 않는가.

또한 성당 복사직으로 일하면서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미사 때는 사람들 앞에 서서 진행을 도왔는데 그것은 자리에 앉아 미사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앞에서 보니 사람들의 표정이 별로 진지하지 않았고, 말로는 신을 사랑한닥고 하면서 주일마다 신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정작 얼굴 표정은 즐겁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마지못해 성당에 오는 것처럼 보였고 표정은 무뚝뚝했으며 마치 뭔가 쫓기는 사람들 처럼 미사 내내 사계를 들여다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신부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미사 시작 전에 가끔 오르간 연주자에게 성가가 너무 길면 바쁜 일요일에 할 일이 많은 신도들이 싫어하고 지루해하니까 되도록 짧은 성가를 연주하라 주문 하기도 했다.

미사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모시는 기쁨의 축제인데 왜 사람들은 그것을 의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일까. 어린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이런 의문들은 드디어 학교생활에까지 이어졌다.

6학년 어느 날 채풀 시간이었다. 당시 채풀을 담당했 한 수녀님이 계셨는데 나는 그수녀님에게 당돌한 질문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지금 그 수녀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주제는 예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였다.

예수님은 사랑이다. 성당은 예수님의 몸이다. 그러므로 성당에 들어가는 우리는 예수님의 몸에 들어가는 것처럼 경건해야 한다.”

이윽고 강의가 끝날 무렵 수녀님은 우리에게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망설이다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묻어왔던 의문들을 풀고 싶었다. 수녀님은 사랑스러운 눈길을 내게 보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수녀님께 여쭈었다.

수녀님, 예수님이 사랑이라면 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는 건가요?”

순간 수녀님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더니 점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셧다. 나는 너무 무서워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내 질문을 한 것을 후회했다.

수녀님은 마침내 이렇게 소리치셨다.

어떻게 감히 어린 네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 당장 자리에 앉아라.”

그녀는 마치 사탄이라도 만났다는 듯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가 대단한 잘못을 저질러 수녀님을 화나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놀라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정말 궁금해서 겨우 용기를 내어 여쭤본 것이었는데, 울고 싶을 정도였다. 수녀님은 어린 나에게 모욕을 당하셨다고 느끼셨는지 더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시더니 수업이 채 끝나기도전에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교실 안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찼다. 친구들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도 되는 듯 나를 탓하는 눈빛으로 저회들끼리 소곤댔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수녀님이 다시들어와 수업을 진행하셨다. 아무일도 없었던 듯 시간은 흘러갔지만 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 때문에 수업시간 내내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패트릭 형에게 학교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회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잖아.

나는 진리를 찾기 위해 궁금한 것을 여쭈어 보았을 뿐인데 수녀님은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패트릭 형은 살며시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처다보더니 아리송한 말을 던졌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리고 형은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했는데 는 그 말이 잠자리에들어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마 그 수녀님 같은 분들은 진리를 찾고 싶어하는 너 같은 학생을 두려워할걸…….”

나는 수녀님께 대든게 결코 아니었다. 정말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신의 사랑과 믿음에는 한치의 의혹도 없엇지만 정말 신의 사랑과 믿음을 내 몸에 체화해 큰 믿음으로 만들고 싶엇다. 그런데 수녀님의 반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야 내가 틀린 게 아니야,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결연함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셨어

며칠 뒤 다시 그 수녀님의 채풀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수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현실과 가르침을 꿰맞추려고 노력했다. 나름대로 합리화를 해가면서 가르침을 새기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날 강의 요지는 하나님과 어린이였다. 수녀님은 하나님은 모든 어린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믿으면 천당으로 갈 것이며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는 말로 말씀을 맺으셨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또 손을 들었고, 순간 수녀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수녀님, 하느님께서 우리 어린이들을 사랑하신다면 왜 어떤 친구들은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지요? 또 어떤 친구는 아예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을 안고 태어나기도 하잖아요? 제 큰누나는 산부인과 간호사인데 매일 평균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식사시간에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날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지느러미처럼 서로 어서 태어나는 아이, 어떤 날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한 아이, 심지어 어떤아이는 머리가 열려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대요. 팔다리가 없거나 엉뚱한 데 붙어 있거나 하는 경우는 예사고요, 누나는 그런 얘기를 전하면서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립니다. 도대체 그런 아이들에게 베푸는 신의 사랑이란 어떤 종류의 사랑입니까?”

수녀님의 얼굴은 흙비치 되었고, 아무 말도 없이 입술을 꽉 깨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이번에는 당당하게 수녀님의 눈길을 받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교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이윽고 터짙 수녀님의 목소리.

미스터 뮌젠, 나가, 나는 너 같은 나쁜 생각을 가진 어린이한테는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그러니 당장 나가.”

그리하여 나는 교실 밖으로 나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벽에 코를 처벅고 서 있어야 했다. 마침 다른 수업 때문에 교실을 옮기느라 옆으로 지나가던 동급생들이 , 폴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저러고 서 있냐?” “아니, 재는 그 유명한 뮌젠네 아이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며 수근대는 바람에 창피했지만 꾹 참았다.

수업이 끝나자 수녀님이 나에게 다가오셨다. 너무 화가 복받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당혹스런 눈빛이었다. 눈에는 빨갛게 핏발이 곤두섰고 그렁그렁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앞으로 모든 일은 네가 하기 나름이다. 계속 내 수업을 듣고 싶으면 건방지게 굴지 말아라. 너는 내 수업을 방해할 자격이 없어.”

나 역시 지지 않았다.

수녀님, 저는 정말 제가 궁금한 것을 여쭈었을 따름입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더이상 나와 대화하기가 싫다 는 듯 나는 너의 질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라며 획 돌아 걸어가셨다.

그날 방과 후 나는 교장 선생님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분명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갈텐데 이를 어쩌나. 이 학교로 전학와 처음 들어가 보는 교장실 육중한 문을 살며시 열자 했빛이 들어오는 창 위로 큰 액자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내 속의 나에게 이렇게 밀했다.

그래 겁낼 것 없어. 나는 다만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이윽고 교장 선생님이 손짓해 가까이 다가앉았다. 교장 선생님도 수녀님이었는데 아주 엄한 분이어서 우리는 그녀를 아주 무서워했다.

네가 수업시간에 한 행동을 모두 들었다. 나는 네가 어디서 그런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수업시간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 스스로를 잘 통제해야한다. 너는 네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름들 앞에서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 선생님 말씀을 믿고 잘 따라야 해.”

적어도 교장 선생님만큼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실 줄 알았는데 교장 선생님 방을 나오면서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물론 여전히 모범생이엇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가르침은 나의 생각을 아주 넓고 깊게 햇지만 어떤 가르침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활짝 피려는 꽃잎을 옆에서 힘으로 막아 피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느님 존재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의심한 것은 절대 아니였다. 나는 내 마음속 의문들이 종교적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 확싱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진정 예수의 가르침을 믿고 있었다.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나는 어느 형제보다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평일에도 혼자 성당에 가 기도를 하고 올 정도였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정말 존경했다. 언젠가 신부나 수도사가 되겠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뭔가 석연치 않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점점 나를 크게변화시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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