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4, 2012

만공스님

만공스님
그러던 만공은 어느 날 화두의 모순점을 발견했다. 모든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또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이중의 의심이 화두의 걸립돌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화두를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러면 이 하나는 과연 무엇인가?"
이중의 의심을 하나의 의심으로 전환시킨 만공은 이것만으로도 탁월한 발상을 한 것이다. 화두의 방향을 이처럼 단순화시킨 뒤부터 만공은 무섭게 정진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잠도 제대로 안 자면서 참선수행에 몰두 했다. 이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주지스님이 어느날 만공을 불러 세웠다.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여자가 생긴게냐, 돈 쓸 곳이 생긴 게냐, 스님 생활이 싫으면 이곳을 떠나라."
"그런게 아니오라, 마음속에 큰 의문이 생겨 풀지를 못하고 있응ㅂ니다."
"무슨 의문인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는데 이하나는 어디로 갑니까?"
주지스님은 말이 없었다.
만공은 생각끝에 천정사를 떠나기로 하고 온양에 있는 봉곡사로 거처를 옮겨 불철주야 정진에 들어갔다. 그렇게 두해가 지난 어느 겨울밤, 면벽 정진하던 만공은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서쪽벽을 바라보고 화두에 침잠하고 있던 만공은 나중에는 화두를 들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갑작기 눈앞에 있던 서쪽벽이 사라지고 텅빈 허공이 되는 것이었다. 벽이 마치 유리같았다. 밖에있는 모든것이 다 보였다. 바위, 나무, 새, 구름이 보였다. 이서방이 절 뜰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김서방이 법당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약수를 먹고 있는것도 보였다.
"와 ------ 내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구나!"
그가 천장을 쳐다보았을 때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새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뒤를 돌아보니 소나무가 무성했다. 만공스님은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으로 방석을 차고 나왔다.
다음 날 그는 절의 큰 스님을 방문했다.
"제가 드디어 본성을 깨달았읍니다. 그디어 깨달았읍니다."
"오 ,그래, 그럼 질문을 하겠다. 우주의 본질이 무엇이냐?"
"지붕과 벽을보니 아무것도 없군요, 모든것이 사라집니다."만공 스님은 자신있게 말했다.
:저는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읍니다. 하하하."
그런데 이때, 갑자기 선사가 막대기로 그의 머리를 때렸다.
"악."
"이제 걸림이 없는것은 어디 있느냐?"
만공이 움칠했다. 눈은 부풀고 얼굴이 붉어지고 벽이 다시굳어졌다. 경허선사가 웃었다.
"지금 진리는 어디에 있느냐?"
만공은 풀이 죽었다.
"모르겠읍니다. 좀 가르쳐주십시요."
"네가 요즘 붙잡고 있는 화두가 무엇이냐?"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너는 그 하나를 이해하느냐?"
"아니요, 모르겠읍니다."
"네가 보았던 것은 환상이다. 그것을 간직하지 말아라, 단지 '나는 모른다' 고 하라. 이 모르는 마음이 너의 진정한 스승이다. '오직 모를 뿐'을 언제 어디서나 간직하라."
만공은 더 굳은 결심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오직 모르는 마음을 가지고 3년 동안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염불 시간에 다음과 같은 염불을 했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그는 염불을 하면서 종을 쳤다. 소리가 널리퍼져나갔다. 그 순간 만공 스님의 마음이 섬광처럼 번쩍 열렸다. 아주 광대하고 무한대의 순간이었다. 모든 부처가 이 하나의 소리에 빠졌다. 만공 스님은 기쁨에 넘쳤다. 그는 법당으로 들어가 앉아있던 스님을 발로 찼다.
"깨달음을 얻었소, 이 전 우주가 하나다. 나는 부처다 나는 하나다."
이듬해 만공스님은 전국의 스님들을 발로차고 때리면서 두루 여행했다. 그의 기행[奇行]이 소문나면서 그는 아주 유명한 승려가 되었다. 만공스님은 자신을 강하게 믿게 되었고 많은 승려들도 그를 두려워 했다.
"만공은 자유로운 사람이야."
"그는 완전히 무애의 경지에 들어섰어."
이듬해 부처님 오신 날 만공 스님은 마곡사에 들르기로 했다. 전국에서 도반들이 몰려들 것이었다. 마침 경허스님도 그곳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달려갔다. 그는 경허 스님 방에 찾아가 옷깃을 다듬고 절을 올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깨닫고 스승님도 깨달았으니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절을 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큰스님은 내 첫 번째 스승이므로 다른스님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절을 올리겠다.'
그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다. 경허 스님은 만공의 절을 받으면서 미소만 띠고 있었다. 큰스님은 이 젊은 제자의 마음을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깨달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오, 훌륭하구나, 내가 질문을 한 두 개 하겠다."
경허스님이 몇개 공안에 대해 묻자 만공이 막힘없이 대답했다. 경허스님은 묵묵히 부채를 부치면서 만공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을 듣고 있었다. 만공의 이야기가 끝나자 경허 스님은 등을 가르키며 질문을 하나 툭 던졌다.
"이것이 무엇이냐?"
때는 무더운 복중이어서 경허는 옷 속에 등토시를 입고 있었다. 땀이 배지않고 옷 속으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든 토시였다.
"토시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이냐?"
이번에는 부채를 가르키며 물었다. 만공이 대답했다.
"부채입니다."
"그러면 이 토시와 부채가 다르냐, 같으냐?"
만공은 주저하지않고 "토시가 부채이고 부채가 토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에 경허님은 만공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음을 간파했다. 경허 스님은 만공의 깨달음의 경지를 한 순간에 꿰뚫어보고, 그를 골탕먹이기로 작정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기양양해 있는 제자의 미망을 벗겨줄 충격요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다비문[茶毘文]을 아느냐?"
다비문이라면 사람이죽어 장례를 치를 때 외우는 제문이다.
"다비문 마지막 두 문장에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는 말이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눈 달린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는 말입니다."
"그것 말고 또!"
"------"
만공은 스승의 벼락같은 소리에 깜짝놀라 말을 잃었다. 절망에 빠진 만공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 뜻도 모르면서 어찌 토시를 부채라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나냐. 만법이 하나로 동아간다는 화두는 진척이 없으니 새화두를 주겠다.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갖고 잇다고 햇다. 그런데 스님 한 분이 조주 스님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여쭈자 '무[無]'라고 하셨다. 네게 묻겠다. 게에게 불성이 있는냐, 없느냐?"
"------ 잘 모르겠읍니다."
"바로 그 모르는 마음이 너의 진짜 스승이다. 언제나 이 '오직 모를 뿐'을 간직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만공은 이듬해 3년동안 통도사 위 백운암에서 조주의 이 '무'자 화두를 붙잡고 열심히 수행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문을 걸어잠그고 참선 삼매에 빠져있던 만공은 예불을 알리는 새벽종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께우침을 얻었다. 단 한올의 미혹도 없이 마침내 도를 이루고 부처가 된 것이다. 만공은 곧바로 일어서 당시 스승 경허가 머무르던 범어사를 향해 보은의 큰절을 세 번 올렸다. 그리고 2년 뒤 스승 경허를 천장사에서 만났다. 만공은 스승에게 그동안 자신이 공부하고 보림한 것을 낱낱이 아뢰였다. 마침내 경허는 만공이 깨달았음을 인가하고 법을 전했다.
이 만공 스님의 일화는 '노력하는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한 출가 수행자의 진리에 대한 큰 의문(Great question), 진리를 깨닫겠다는 큰 용기(Great courage)에 대해 가르쳐 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깨달음의 수준에 관한 것이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깨달음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얼마나 완벽한가. 벽면 정진하던 만공 스님이 눈앞에 있던 서쪽벽이 사라지고 텅 빈 허공이 되었다는 첫 번째 경험은 완벽한 공[空]과 자유의 영역을 얻었다는 것이다. 벽과 천장을 보았을 때 오로지 맑은 공간이 있었다. 어떤 경계도 없이 자신 앞에 오고갖는 모든 것을 드대로 볼수 있었다. 이것은 자유를 얻고 모든 우주적 실체의 상호 연관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아주 대단한 일이다. 대게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수행을 멈춘다. 그리고 그 결과 신비한 힘이나 특별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나 진정한 스승이라면 제자에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공과 자유의 영역을 깨달았다면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모양은 모양이고 공은 공이다' 를 얻는 것이다.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색이다. 개는 밖에서 짖는다. 소금은 짜다. 설탕은 달다.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수행을 열심히 한 뒤 얻는 공의 영역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주와 내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하늘과 내가 하나가 된다. 하늘은 단지 푸르다 설탕과 내가 하나가 된다. 설탕은 달다. 개와 내가 하나가 된다. 개는 짖는다. 완벽한 세계, 하나로 돌아오는 세계이다. 먼저 실체와 실상을 얻고 그다음에 순간순간 실용을 얻는것이 올바른 삶이다. 이것이 부처와 위대한 선사들의 가르침이고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이것을 일컬어 조사선이라 한다. 끝
숭산 행원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판' 현각엮음 허문명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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