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5, 2012

선의 분류

선의 분류•禪의 分類 The Classification of Meditation
외도선[外道禪] Outer Path Meditation
범부선[凡夫禪] Common People's Meditation
소승선[小乘禪] Hinayana Meditation
대승선[大乘禪] Mahayana Meditiation
최상승선[最上乘禪] Utmost Vehivle Zen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명상법들이 있으며, 종교마다 독특한 수행법들이 있다. 심지어 불교 안에서조차 많은 종류의 수행법이 있다. 허지만 그것들은 단지 기법에 불과하다 제자들이 가끔 내게 이렇게 묻는다.
"비파사나 명상과 참선, 티베트 불교 수행의 다른점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밥 먹을 때 일본에서는 젓가락으로 먹는다. 한국에서는 숟가락도 함께 쓴다. 서양ㅇ에서는 낭이프와 포큰를 쓴다. 인도에서는 손으로 밥을 먹는다. 방법은 모두 다르며, 도구도 다 다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부르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수행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왜 수행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수행과 명상을 한다. 아마 마음의 평화 같은 좋은 감정ㅇ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수행을 통해 어떤 물질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인간관계를 얻기위해 계속 염불을 외우고 명상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나쁘지 않다. 그러나 참 수행의 목적은 수행을 통해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의 본성품을 발견하고 중생을 돕기 위해서다 진정한 공부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수행할 때 무언가 원하는 마음으로 하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오히려 지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런 수행은 참 자아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선 수행법은 마음을 닦는 사람들에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와도선[外道禪]
요즘에는 종교에 상관없이 명상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럽이나 미국에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수행 방법에도 예수교 명상 수행, 이슬람 수피 수행, 뉴에이지 수행, 요가 수행이 있고, 건강을위한 단정호흡 수행도 있다. 유교, 도교, 힌두교도 나름대로 수행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얻고 싶은 어떤 대상에 혹은 마음의 어떤 상태에 집착해 있으므로 몯두 외도선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아주 유명한 명상 센터에 들른 적이 있다. 모든 학생들이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호흡 수련을ㄹ 하고 있었다. 아주 평화로워 보여서 마치 잠을 다고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련생ㄷ들은 자신들디 지금하고있는 것이 '기분이 아주 좋은 수행법' 이라고 말했다. 이 수행을 하기만 하면 평화롭고 행복해질 것이라며 나에게 권하기도 했다. 정말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행복해 보였다. 수행이 끝나는 날엔 함께 손을잡고 서로 어깨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아주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좋은 감정을 얻어 일종의 평화로운 사랑의 마음을 함께 느껴서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어떤 좋은 감정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호흡수행을 통해 얼마나 큰 행복을 얻었는가에 대해 얘기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도 언제 변할지 모른다. 좋은 감정상태에 집착하는 수행은 나쁜 감정이 생기면 수행을 하기 전보다 더욱 슬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약과도 같다.
행복이나 평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것의 반대인 불행도 함께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이분법적인 세계가 나온다. 어떤 대상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면 언제나 그렇다.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바깥 세계나 감정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이런종류의 수행은 으례 어떤 감정이나 대상에 의존한다. 그것은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그리하여 이런 대상을 간직하지 못하게 되면 그 순간 행복한 감정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떤 대상, 감정, 관념에 집착해 있는 이런 수행을 외도선이라 부른다.
범부선[凡夫禪]
범부선은 일상 활동에 집중하기 위한 명상 수행으로, 요즘 아주 유행하는 것이다. 집중명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행을 하면 머리가 좋아지고 글씨를 잘 쓰게 되고 건강이 좋아지고 인간관계는 물론 사업도 잘된다고 하는 것이다.
글쓰기, 그림, 회화에서도 명상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다도[茶道]라든가 서예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혹은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명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집중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림도 잘 그릴 수 있고 피아노도 잘 칠 수 있다. 다도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 정신과 치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종류의 수행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본성을 찾는데는 도움을 줄 수 없다. 즉, 삶과 죽음이라는 수레바퀴를 벗어나도록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가르침이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종류의 명상 수행은 중생을 돕겠다는 서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 '나, 나의, 나를(I, my, me)'이라는 이기적인 마음만을 키울 뿐이다. '나는 내 감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내 몸이 좀더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음악이나 미술에 일인자가 되겠다.'
그런데 도대체 이 '나'라는 것음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수행할 때마다 어떤 대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원하면 그것은 실수이다.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고, 이것은 고통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 무언가를 원하는 명상은 항상 주제나 대상을 만들고 이것 저것 좋고 나쁨을 만든다.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마음에 이런저런 대상을 만드는 수행은, 그것이 설사 좋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나, 나의, 나를,'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태의 마음으로 수행을 한다면 범부선 수행을 할 뿐이다.
소승선[小乘禪]
소승선은 소승불교의 수행이다 즉, 앞서, 소승불교에서 얘기한 무상, 무아를 관하고 부정관을 얻어 열반에 달하는 선이다. 최근 서구에서 소승선은 아주 인기를 끌고있다. 이른바 비파사나 명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수행은 부정관, 무상과, 무아관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수행은 계(sila)를 지키고 균형잡힌 마음 (samadhi)을 유지하고 지혜(prajna)를 얻는 것을 강조한다. 이 수행의 목적은 완벽한 정적과 소멸, 즉 열반을 얻는 것이다.
대승선[大乘禪]
대승선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기반ㅇ을 둔 수행이다. 여섯가지 대승ㅇ불교의 가르침에 기본을 두고 있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통찰, 공허함에 대한 통찰, 중도에 관한 통찰, 현상의 본질에대한 통찰, 모든 현상의 상호침투, 그리고 현상 그 자체가 절대라고 보는 통찰 등이다 이 여섯가지 통찰에 대한 수행은 «화엄경»의 가르침으로 표현된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 모든 부처님과 만물의 실체, 실상을 남김없이 알고자 한다면 모든 것이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법계의 본질을 관하라.
[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최상승선 [最上乘禪]
이 세상에 모든것이 오로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 마음을 만드는가? 직접적으로 마음의 본질을 깨닫는 것을 최상승선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깨달았다고 할 때 그 깨달은의 경지를 간과하는 데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개념적, 학문적, 지적인 측면의 의리선[義理禪]이다. 그다음 단계는 공허함과 마음과 우주의 실체에 대해 인식하는 여래선[如來禪]이다 마지막 최상의 단계인 조사선[祖師禪]은 있는 그대로 만물이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아[大我], 즉 큰 나를 깨닫는 것이다. 큰나[大我]란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앞서 언급한 깨달음의 세가지 경지는 하나이다. 다만 설명을 위해 단순화 시키고 분류한 것일 뿐이다 봄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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