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8, 2012

코미디 같은 끔찍한 진실

코미디 같은 끔찍한 진실
환경신학 이상명 목사 미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3분의 1명이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고 있다. 또 세계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는 120억명의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Kcal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는 농업생산력을 갖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필자가 최근에 읽었던 책, '세계의 절반은 왜 긂주리는가' 라는 이시대의 코미디 같은 불편하고 끔찍한 진실을 다루었다. 이 책의 저자인 장 지글러(Jean Ziegler)는 2000년부터 2006년 4월까지 유엔인권위원회의 식량 틀별조사관으로 활동한 이 시대 기아문제의 권위자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식량은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생산된다. 하지만 하루에도 10만 명의 사람들이 먹지 못해 굶어죽는다고 한다. 식량은 남아도는데도 굶어죽은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어찌 된 영문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은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육식소비용 소를 먹이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나아가 최저가격을 보장하기 위하여 곡물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 반대쪽에는 소보다도 못한 가난한 나라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에는 8억 5천만 명이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권력자본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어느 누군가 지적하면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 이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심지어 이러한 끔찍한 메커니즘을 방치하는것이 과포화 상태의 지구촌 인구를 쉽사리 조절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식량이 제대로 분배만 되어도 모두가 충분히 먹고도 남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유엔이나 다른 구제기관들의 요원들은 가뭄, 홍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하여 남민 캠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다 구제해 줄 수 없어서 선별해야 하는 가슴아픈 상황속에서 일해야 한다.

세계 절반의 가난은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가 무색해지는 현실이나, 국제기구의 활동이 지닌 딜레마, 사막화의 영향으로 생겨나는 환경난민의 문제,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자본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냉혹한 국제질서와 급속한 자연파괴의 원인도 모른 채 굶어 죽어나가는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퀭한 눈망울속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슬프고 참혹한 역사을 본다.

이러한 참혹한 충격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형태의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다. 과체중에서 벗어니기 위한 다이어트 열풍과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코미디가 그것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것이 필요하다. 이 끔찍한 현실을 변화시키기위한 희망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인식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실행으로 옮기는 우리의 변화가 절실하다. "너회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 니라."(마태복음 25: 40)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모두의 깨달음이 될 때, 지구촌에 진정한 살롬(shalom, peace, 평화)이 깃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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