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30, 2012

만행 니의 미지막 스승

만행 나의 마지막 스승

다음날아침, 새벽예불에 참가하고 난 뒤 우리는 법당에 안장 큰스님을 가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 대부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젠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스님들, 한 20여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 흥분해서 온몸이 떨렸다. 드디어 큰슨님을 더욱 가까이서 뵙는구나.
드디어 큰스님이 들어오셨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큰절을 세 번 올렸다.
나는 당시 맨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맨처음가까이서 보는 큰스님의 얼굴.
나는 여러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그런 피부는 처음 보았다. 도저히 63세 노인의 얼굴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게 완전히 부처님 얼굴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런 얼굴을 본 적이없다. 세계곳곳을 여행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렇게 평온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행복이나 슬픔같은 감정이 들어오기 전의 상태와 같았다. 눈은 보석처럼 맑고 깊었다. 그의 눈을 보면서 저것이 우주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넓은 우주.
새벽이라 우리의 얼굴은 모두 부스스 했지만 큰스님의 얼굴은 너무 맑았다. 나는 나중에 큰스님께서 매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방에서 매일아침 혼자서 1천배를 하신다는 것도 알았다. 무려 30여년 이상을 그렇게 해오셨고, 새벽무렵에 큰스님 방을 지날때면 창문커튼 너머 그가 절하는 모습이 그립자로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큰스님과 함께 108배와 염불수행을 차례로 했다. 염불수행을 하는 큰스님의 목소리는 맑고 크고 청아했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져나오는 에너지는 한 마리 큰 호랑이 같았다. 염불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 자리로 돌아가 면벽하고 참선을 했다. 참선하는 40여분동안 나는 마음을 차분히 집중하려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사와 함께 참선을 한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참선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돌아앉았다. 큰스님께서 간단히 법문을 하셨다.
참선이란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만히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먹을 때, 잘 때 걸을 때 우리 몸은 먹고 자고 걸을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따로 움직입니다. 참선수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 모든사람들이 각자의 평화를 이룰 때 그것이 세계평화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세계평화를 외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학자들은 말과 행동이 하나였읍니다. 요즘 학자들은 진리와 정의, 평화, 도덕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돈과 명예에대한 욕심이 있고 이에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정치가들, 종교인들, 사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평화를 얘기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평화를 하겠다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이 세계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잘 이해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관없읍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요. 그러면 모든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여러분의 모습을보니 사랑스럽습니다.
이어서 큰스님과 함께 아침 발우공양이 있었다. 현미밥에 김치, 깍두기, 김, 땅콩버터, 과일, 빵, 두유 등 각자 네개의 대접에 담아먹었다. 나중에는 그릇에 묻어있는 것까지 물로씻어먹는 모든과정이 완벽한 침묵속에서 행해졌다. 먹는 것도 참선의 하나였다. 공양이 끝나고 큰스님은 법당을 떠나셨다.
다른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떳지만 나는 한참을 법당에 앉아 있었다. 어린시절 학교다닐 때 생각, 대학에 들어와 학생운동에 열중했었던 생각, 그리도 키르케코르와 쇼펜하우어에 심취했던 시절, 세계여행……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오직 진리를 찾고 싶다는 강열한 열정하나로 하얗게 새웠던 그 숱한 밤들, 아! 그 고통의 시간이 이제야 끝나는가……. 나는 행복했다. 이제야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까지 났다.
잠시 후 지도법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큰스님을 개인적으로 뵙고 싶다고 면담 신청을 해놓았는데 운좋게도 기회가 닿은 모양이었다. 나는 너무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승산 큰스님이야말로 나의 마지막 스승이시다. 그는 살아있는 부처님이시다. 수십개의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무엇부터 여쭤야하나.
마침내 그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얼굴에 하나가득 웃음을 띠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 계셨다. 세 번 큰절을 마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너무 어려워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읽으셨는지 ‘이리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가 동양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무게를 잡고 앉아 계실 줄 알았다. 당시 마국인 불교신자들 중에는 일본불교를 믿는 이들이 많았는데 나는 친구들로부터 일본선사들은 아주 엄격하고 권위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나는 비록 큰스님께서 대중들 앞에서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해 보여도 개인적으로 뵐 때는 무척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오…… 안녕하세요? 수행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두 달 전에 큰슨님 강의를 하버드대학에서 듣고 바로 케임브리지 젠센터로 이사했읍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읍니다. 요즘 참선수행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오 ! 그래요,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무슨일을 하시지요?” “하버드 대학원에 디니면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고 있읍니다. 특히 불교와 기독교를 접목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주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당신은 삶에대해 무엇을 알고 계시지요?” 갑작스런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마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마치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처럼 크게 웃었다. “혹시 소크라테스를 공부한 적이 있어요?” “예 예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 그의 책을 많이 읽었읍니다. 나 역시 대학을 다닐 때 소클라테스는 내가 아주 존경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답니다. 그의 가르침은 아주 단순했지요, 매일 아테네 시장 거리를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나 이렇게 말했읍니다. ‘너 자신을 알라.’이것이 그의 가르침 전부였읍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론도 없고 설명도 없이 오직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제자기 이렇게 물었읍니다. “그러는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을 아십니까? 그러자 그는 ‘나 역시 나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읍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아주 재미있읍니다.” “좋아요. 그럼 내가 당신하테 하나 묻겠읍니다.” 큰스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물었다.”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폴 입니다.” “그건 당신의 몸의 이름입니다. 누군가, 즉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은 겁니다.” “…… “올해 몇 살이에요?” “ 스물여섯 살입니다.” “그건 역시 당신의 몸의 나이입니다.” 큰스님은 나의 무릎을 탁탁 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진짜 나이를 알고 싶어요.” 나는 완전히 할말을 잃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의 어떤 교수님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않았다. 나는 큰스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제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큰스님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으셨다. “아니, 학생은 하버드대학에 다니는데 당신자신을 모른단 말이에요? 그거야말로 큰일이군요.” 정말 부끄러웠다.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건 무슨 가르침일까? 완전히 다른 세계야. 다른 코드같아.” 안과 밖이 완전히 뒤집히는, 그동안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신념들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그런 경험이었다. 나는 얼굴이 벌개져 아무말도 못했다. “내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이해하겠어요? “예예...... 아니,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 큰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당신의 컴퓨터는 너무 복잡하군요. 너무 성능이 좋아요”라고 하셨다. 잠시 후 차나 한잔 하자며 녹차를 내놓으셨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기 시각했다. 감자기 큰스님께서 물었다. “자, 이제 알겠어요?”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큰스님은 지금 뭔가를 묻고 있는데 너무 간단한, 마치 어린이들에게나 하는 질문을 저토록 평온하고 깨끗하고 친절한 미소로 묻고 있는데,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간것이다. 에머슨, 쇼펜하우어, 플라톤, 까뮤, 키르케고르, 소크라테스를 모두 공부했고 철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진짜 나이는 몇살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방바닥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큰스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큰스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다는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질문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보세요.” 기다렸다는듯 나는 입을 열었다. “큰스님께서는 ‘모르는 마음’(don’t know mind)을 강조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뭔가 계획을 해야하고, 뭔가 생각을 해야하고, 뭔가 이해해야 한다고 배웠읍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모른는 마음을 어떻게가지며 그것을 어떻게 지킵니까?”
“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 뿐, 볼 때 볼 뿐,먹을 때 먹을 뿐, 그게 다 입니다. 생각할 때 샌각하세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면 생각하지 마세요. 먹을 때 오직 먹으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은 이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누가 만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직 ‘모르느 마음’을 갖고 똑바로 가십시요. 이 모르는 마음이야말로 어떤 철학, 하느님, 부처님, 하버드대학보다 나은 겁니다.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면 당신의 진정한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모르는 마음을 찾을 수 없어요.” “나는 이미 당신에게 보여줬어요. 다시 묻겠읍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 잘……모르겠읍니다.” 큰슨님은 순간 “옳지”하고 소리를 치셨다. “바로 그겁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뭔가 맑아질 것입니다. 생각할 때 생각하세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뭔가 맑아질 것입니다.생각할 때 생각하세요. 생가하는 시간이 아닐 때 생각할 필요는 없읍니다. 머릿속으로 따지지마세요. 오케이?” “예” “원더풀, 원더풀, 좋아요, 아주 좋아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큰스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단어가 ‘원더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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