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19, 2012

차 한 모금에 인생을 담는다.

차 한 모금에 인생을 담는다.
오묘한 茶道 매력에 빠졌다. 감승희씨
찻 잎 하나에 근심을 우려낸다
뽀얀 연두 빛 물에 진심이 어린다
심심한 끝맛이 나를 적신다.

#.꼿꼿한 자세로 차를 권한다 감승희(78)씨의 말투는 군더더기가 없다. “혹시 왼손잡이는 아니시죠?” 하며 왼손으로 차 주전자를 쥔 나에게 묻는다. 딱 선생님이다. 괜히 조마조마하다.
“차 주전자는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뚜껑을 살짝 잡아줍니다. 차는 세 번에 나눠 마시는데 색과 향기, 그리고 깊은 맛을 음미하죠. 아무 소리없이, 고요하게.”
그가 마시는 차는 따뜻한 연두빛이었다. 어린 새싹처럼 여리여리한색, 차를 만난 그에 인생에 대해 묻자. 그는 단숨에 잘 모르겠다는 말을 내밷는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살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확실히 좋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차를 알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요.”
감씨는 다도계의 이름난 명사다. 한국 차생활 문화원장이라는 직함도 달았고 ‘한국차생활총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몇몇 제자들을 교육하는데 온 힘을 쏟고있다. 차에 관해선 알만큼 안다.
“참 질긴 인연이에요. 서른 넘어 첫 눈에 반해 평생을 바쳤죠. 차는 씁쓸하기도 하고, 달기도 해요. 젊을 때는 불투명해 보이더니 지금은 내 유일한 안식처거 됐어요.” 차 한잔에 무슨 의미가 그리 심오할까. 딱딱 끊어지는 말투와 아끼는 말소리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 그가 차를처음 알게된 건 서른이 훌쩍 넘었을 때다. 종갓집 손녀딸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차를 접한적은 없었다. 어른들이 시킨대로 착실히 살았다.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됐고, 중매결혼도 했다. 가끔 무료하다고 느낄 정도로 일상은 평범했다. 그 즈음에 차를 만났다.
“ 통영 용화사 절간 마루 한켠에 한 스님이 차 사발을 들고 앉아 계셨어요 뭐, 특별한 모습도 아니데 당시엔 충격적이었어요.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스님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감씨를 불러 함께 차를 마셨다. 직접우른 야생차에서 신비한 맛이 났다.
수만 가지 차를 마셔본 지금도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다. 차 한 사발에 마음을 송두리채 뺏겼다.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았지만 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차에 대한 열정은 숨기기로 했다. 어머니로서의 해야할 일이 산덤미였다. 그째부터 10년도 넘게 기다렸다. 기다림은 뜨겁게 차올랐다. “지인이 운영했단 인사동 화랑에 차도구 전시장을 차렸어요. 2층에서 차인회茶 모임도 자주 열었죠.

서른넘어 첫 눈에 반한 ‘차’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

한 때 찻잎 하나 찾아 전국헤매
자다가도 다기 놓는 방법 생각

‘한국차생활총서’ 집필도
현재 제자 교육위해 매진

그땐 전국에 차 동호회가 하나밖에 없어요. 아는 것은 없는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컸어요. 스업을 진행하려면 교재가 있어야 하는데, 책도 없고요. 매일 박물관에 가서 차 사발 그림 그려오고, 도자기 만드는 장인들과 입씨름 하기를 수 백번했죠(웃음). 책 없으면 쓴다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박혀 살았죠. 그땐 무슨 힘이 있어서 그랬나 몰라.”
찻잎 하나도 시골 방방곡곡을 다니며 구해왔다. 자다가도 다기 놓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누렇게 빛바랜 노트에는 태극무늬로 놓여진디가도 있고, 세로 반듯하게 차려진 것도 있다. 무의미한 낙서처럼 보이는 동그라미와 세모에도 다 뜻이 있다. 1979년, 감씨의 차 인생은 날개를 달았다.
#, 같은 차를 우리기를 두어 번, 감씨의 입은 차 백과사전이다. 밉만 열면 한국다도와 역사가 구구절절 흐른다. 부끄럽게도 지금껏 차례의 뜻을 몰랐다. 차례는 茶를 올리는 의식에서 유래된 단어다.
“한참 차에 미쳤을 땐, 책을 봐도 ‘차’라는 한 글자만 보였어요. 시간도 많고, 아프지도 않고, 고서를 뒤지다가 차에대한 구절하나라도 있으면 전문가를 쫓아 가는거죠. 고려시대 연등의식때 사람들은 어떤옷을 입었을까. 차를 뜨겁게 마셨을까, 앉아서 마셨을까…….이런 것 들을 생각하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어요.”
감씨는 여러번 궁중행사를 재연해왔다. 차에 대한 것은 음악과 복식, 미술과 춤으로 이어졌다. 기왕하는 것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온 힘을 다썼다. 차생활문화원의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고 차츰 힘들게 다가왔다.
“전 실리보다 명분을 내세운 사람이었죠. 돈은 못 벌었어도 차가 알려졌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바보였던 걸까요?”
그는 차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깐
깐하다. 차를 철학적 존재로 본다면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믿는 그다. “차는 오염되기 쉬워요. 화장품 옆에두면 화장품 냄새가 듬뿍 배죠. 사람의 향기도 차와 같다고 생각해요. 한결같을 것 같으면서도 너무 쉽게 변하죠. 다도는 차 한잔에 자신의 마음을 걸러내는 잗업입니다. “차 한잔에 마음이 씻겨 내린다.
#, 한참 듣고 있으니 딱딱했던 말투가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젊으니까 좋겠다 하며 한껏 부러워한다.
문득 그의 젊은 날이 궁금해진다. “대학다닐 때 한참 6ㆍ25 전쟁중이라 부산에서 공부했어요. 이대, 숙대 할 것없이 산에 천막을치고 학생들을 가르쳤지. 밥 굶고 다니는 건 당연했고요. 그런데 그 전쟁통에도 낭만이 있더라고. 얼마전 앨범속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 천막촌 문밭에서 해맑게 눈싸움을 하고있지 뭐야. 추억은 참 오래가요. 젊음은 너무 짧고 “차와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하바드대학 교수가 됐을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다시 차를 우린다. 이번앤 시간이 좀 길다.
“차를 하면서 배운 것은 기다림이죠. 기다림의 연속이에요. 찻잎을 고를 때부터 우려서 마실 때 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손님에게 먼저 권한 후에야 찻잔을 잡을 수 있고요. 가디린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의미죠.진실을 우리고 마음을 받아요.”
철학없이 사는 이는 단 한명도 없다. 막연하게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번뇌 속에 누구나 목이 마르다. 하지만 그 어떤 철학이, 그어떤 번뇌가 진심을 무시할 수 있을까. 진심은 어디서나 통한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구혜영 기자 LIFE 열정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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