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6, 2012

경허 성우 대조사

2. 경허 성우 대조사

오도가悟道歌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으니 의발衣鉢을 누구에게 전할까?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은 없고, 봄 산에 꽃이 활짝피고 새만 노래하니 가을밤에 달이밝고 바람은 맑기만 한다. 전녕 이러한 때에 生없는 一曲歌를 얼마나 불렀던가?
일곡가를 아는 사람 없으니 때가 말세인가 나의 운명인가.
이를 어찌하면 좋으랴.
山色은 문수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의 귀로구나. “이랴 이랴!” 소 부르고 말 부름이 곧 보현이요, 장서방 이서방이 본래 비로자나불이로다.
부처와 조사가 禪과 교를 설한것은 모두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분별 냄이다.
돌사람石人이 피리 불고,
나무사람 木人이 졸고 있음이여.
범부들은 자기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성인의 경계지 나의 분수가 아니라 말한다.

참으로 가련하구나! 이런사람은 지옥의 찌꺼기밖에 못된다. 나의 전생일을 살펴보니, 태ㆍ난ㆍ습ㆍ화 胎卵濕化 四生과 지옥ㆍ악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 등 육취의 그험난한 길에 오랜세월돌고 돌아 온갖고초를 겪음이 금생에 와서 눈앞에 보는 듯 분명하니, 사람으로써 차마 어찌하랴.
다행이 숙세의 인연이 있어 사람되고 출가하고 득도得道하니, 네 가지얻기 어려운 가운데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다.
어떤사람이 희롱해 말하기를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함을 인해서 그 말 아래 나의 본래면목을 깨닫고 보니 이름도 空하고 형상도 공하며 공허한 적처寂處에 항상 밝은 빛이드라.
이로부터 한번 들으면 천가지를 깨달아 눈앞에 외로운 광명이 적광토寂光土요, 정수리 뒤에 신비한 모습은 금강계金剛界로다.
地ㆍ水ㆍ火ㆍ風 지수화풍 시대와 생멸하고 변화하는 色ㆍ受ㆍ想ㆍ行ㆍ識 색수상행식 등 오음五陰이 청정한 법신法身이요, 극락국토가 화탕지옥이고 한빙지옥寒氷이며, 화엄찰회華藏刹會가 칼산지옥이며, 법성토法性土가 썩은 거름 무더기이며 똥 무더기요, 대천세계가 개미구멍, 모기눈섭이다.
또한 법신ㆍ보신ㆍ응신 등 三身과 모든부처가 불과佛果를 증득할 때 갖추는 네가지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ㆍ평등성지平等性智 ㆍ묘관찰지妙觀察智 ㆍ성서작지成所作智 등 사지四智가 허공 및 만상萬像이니, 눈에 띄는대로 본래 천지면목天眞面目이다.
크게 기특하고, 크게 기특하도다.
시원한 솔바람이여, 사면이 푸른 산이로다.
가을 달 밝은 빛이, 한결같이 하늘과 물이로다.
노란꽃 푸른대竹, 꾀고리 소리, 제비들의 재잘거림이
항상 그대로 大用이어서
어느 곳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도다.
市門天子가 무엇이 귀할까 보냐? 모름지기 평지위에 파도요, 九天의 옥인玉印이로다. 참으로 괴이하고나. 해골속 눈동자여, 한량없는 부처와 조사가 항상 앞에 나타나도다.
초목 기왓장과 자갈이 곧 화엄華嚴이요, 법화法華로다. 내가 항상 설 하노니, 가고 머물고 앉고 누음이 곧 이것이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것이 곧 이것이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지옥이 변하여 천당을 지으니, 모두 나의 작용에 있으며, 백천법문과 한없 묘한이치가 마치 꿈에 연꽃이 핀 것을 깨달음과 같다.
유와 무의 이변2邊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제3際를 어느 곳에서 찾을까? 시방세계가 안팎없이 큰 광명덩어리 뿐이로다.
내가 큰 법왕이 되었으므로 저 모든 법에 다 자재함이니,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쁨에 걸림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믿지않고, 또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귀 뚫린 사람이 있어 자세히 믿어 의심이 없으면, 문득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를 얻을 것이다.
세상사람들에게 말하노니,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만나기 어렵나니. 하물며 또한 뜬 목숨이 아침에 저녁을 꾀하지 못한다.
눈면 당나귀가 다리만 믿고 가다가, 안전하고 위태로움을 다알지 못하는구나. 저것도 이러하고 이것도 이러함이니, 어찌하여 내게서 무생법을 배워 人天의 대장부가 되려 하지 않는가?
내가 이와같은 까닭에 입을 재삼수고로이하여 부촉하노니,
일찌기 방랑자가 되었기에 치우쳐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노라.
슬프다. 어이하리! 무릇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까?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까?
계송으로 말씀하셨다.
인문인어무비공 忍聞人語無鼻孔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를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듣고,
촌각삼천시아가 邨覺三千是我家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집일세.
유월연암산하로 六月燕巖山下路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무사태평가 野人無事太平歌 들 사람 일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심우가尋牛歌
소를 찾음 尋牛
본래 잃지 않았거니 어찌 다시 찾으리오.
다만 저 찾는 것이 바로 비로자나의 스승이로다
푸른 산 푸른 물 꾀꼬리 노래 제비의 지저귐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그 소식을 누설하누나. 쯧쯧!

자취를 보다 見跡
밝은 빛 며함은 백화가 남만한데만 있지 않도다.
매우 누른 유자와 푸른 귤이여.
좋을시구 좋구나.
발자욱이 있음은 소가 도리어 있음이로다.
무심無心하면 도道에 가까와 짐이여
좋구 좋다, 좋을시구나.
옛 사당속의 향로요, 가을 맑은 들물野水이여
좋을시구 좋구나 노래 부르네.

소를 보다 見牛
할喝 하고 이르기를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서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을 지라도,
오히려 이것이 뜰아래 어리석은 놈이니,
정혼精魂을 희롱하는 다리와 손이라.
도깨비 장난을 하지 않음이 좋다.
또 일러라, 보았다 하는 놈이 무엇인고?』 할 일할喝一喝.

소를 얻다 得牛
보아 얻은즉 없지는 아니하나, 제2頭를 어찌 하려는가.
보아 얻지 못한자는 얻게하고, 이미 보아 얻은자는
도라어 문득 미실迷失케하니, 또한 오득자悟得者는
영원히 오득케하고, 미실자는 영원히 미실케하니,
도리어 정당이 얻은것이냐? 또한 미한것이냐?
주장자로 탁자를 한 번 치시고 이르기를
『한 아름 버들가지를 거두어 얻지 못함이여, 바람으로 화하여 옥난간에 스쳐있도다.』하였다.

소를 먹이다 牧牛
선악이 모두 이 마음이니, 가히 닦고 끊지 않음이 옳으냐?
충독지향蟲毒之鄕 같아서 한 방울도 적시지 않음이 옳으냐?
마음에는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심을 끊지 않음이 옳으냐?
이것이 다 함께 험한 길이라, 가히 행할 것이 못됨이로다.
또한 이르노라, 어떤것이 옳은 것이냐? 구구는 81이니, 또 완달구椀達邱로다.
용천湧泉선사는 40년에 오히려 走作함이 있었고, 향엄香嚴선사는 40년에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하니,
탄식하노니, 얻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어렵도다. 또한 조금얻은 것을 만족해 하지말라.
모름지기 선지식善知識을 참견하고, 많은 단련의 고행이 있어야 비로소 얻으리라.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 騎牛歸家
6도ㆍ4생을 수없이 지내면서 맵고 쓴 맛 다 보았으니, 어찌 일찌기 한 발자욱도 고향땅을 밟지 않았던가? 하하하.
젓대 소리가 갈운곡이라, 가락이름은 「동정호 마음」이요, 「푸른 산 다리」라 이름하리라.
비록 그러하나, 노형은 오히려 돌아가지 못하였으니, 알겠느냐?
계심桂琛 : 선의 비밀구 이 이르리라.

소는없고 사람만 있다 忘牛存人
한 잠 자다가자. 어찌 그리설치는가? 오똑하게 일없이 앉았노라니, 봄이옴에 풀이 스스로 푸르르네.
이낱這箇은 종기위에 쑥뜸질을 더함과 비슷하도다. 보지 못했는가? 곧 바로 푸른 하늘이로다. 모름지기 한 방망이를 먹일 것이다. 왜 이러한고?
비가 올 때에 비가 오지않고, 개일 때에 개이지 않는도다.
비록 이러하나, 이것이 무슨 마음의 행인고?
아아, 오랫동안 문에 나가지 않으니, 이 무슨 경계이며, 저 속을 향해 뒤 보러 나가려하니, 이것이 무슨 경계이며, 또 부생浮生들의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상관치 않으니, 이 무슨 경계인고?
양 눈섭을 아끼지않고 너를위하여 드러내노니,머리를 낮추고 얼굴을들어 감출 곳 없음이로다.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도다.

사람과 소를 다 잃다 人牛俱亡
『시리 소로 못다야 지다야 사바하.』
또 버들 꽃을 따고, 버들 꽃을 따노라.
오랫동안 수행하였으나, 여기에 이르러 문득 미하여 아득히 꺼꾸러짐이로다. 한 푼 돈도 치르지 않았으니, 알겠는가?
변방에는 장군의 명령이요, 나라가운데 천자의 칙령이로다.
할일할 喝一喝

본고장에 돌아오다 返本還源
학의 다리가 비록길지만, 자르려하면 근심이되고, 오리다리가 비록 짧지만, 이으려하면 걱정이되다.
발우대는 자루를 붙일필요 없고, 조리에는 새는것이 마땅하도다.
금주錦州땅에는 부자附子요, 병주幷州땅에는 쇠鐵로다. 만물이 다 저마다 좋은 것이 있으니, 양식이 풍족하고 연료 또한 많아서, 네四이웃이 풍족하구나.
이낱這箇이 호남성 아래에 불을부는 입부리는 뽀족하고, 글을 읽는 혀는 널름댐이니, 이것이 대우大遇의 가풍이로다. 다시 한 귀절이 있으니, 내일에 부쳐두노라.

손을 드리우고 전방에 들어가다 垂手入廛
목녀의 꿈과 석인의 노래여, 이것은 6진 경계에 그림자로다. 상이없는 부처도 용납지 못하는데 비로자나의 정수리가 무엇이 그리 귀하리오? 봄 풀 언덕에 유희하고, 갈대꽃 물가에 잠을 잠이로다.
바람을 지고 저자에 놀며, 요령을 흔들고 마을에 들어가는 것ㅅ이 실로 일 마친 사람의 경계니라.
전날에 풀 속을 헤치고 소를 찾던 시절과 같은가? 다른가?
가죽밑에 피가있거든 모름지기 눈을 번쩍뜨고 보아야 비로소 얻을 것이다.

진흙소의 울음
무릇 참선하는 사람은
첫째로 무상無常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큰 것임을 두려워 해야한다.
그러므로 옛사람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비록 보존하나 내일은 보존하기가 어렵다.」고 하셨으니, 정신을 바짝차리고 조금도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두번째는 온갖 세상일에 조금도 간섭하는 뜻이없이 오직 안으로 일체번뇌를 쉬고, 밖으로 인연을 끊어야 한다.
만약 마음과 경계가 서로 부딧쳐서 섶나무에 불이 타는것 같이 번잡스럽게 세월을 보내 버리면, 이것은 특히 화두를 드는데 방해로울 뿐만 아니라 무거운 업보만 더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일은 모든 세상일에 뜻이 없게 하고, 마음에일이없게 한즉 마음의 지혜가 자연히 맑고 빛나 일체 만사가 더 마음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선행으로 천당에 나고, 악행으로 지옥에 떨어지며,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되며, 가볍고 바쁜것은 나비로 나타난다.
그로므로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한 생각이 잘못됨으로써 만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하였다.
무릇 그 마음을 텅 비워서 깨끗하고 순일하여 흔들리지도 않게하고, 혼미하지도 않게해서, 허공과같이 훤출히 하면 다시 어느곳에서 생사를 찾으며, 어느 곳에서 보리를 찾으며, 어느 곳에서 선과 악을 찾으며, 어느 곳에서 계戒를 지키고 범하는 것을 찾겠는가?
다만 이 활발하고 역력히 밝아 근원에 사무치면 생함에 따르지 않고, 멸해서 없어져도 없어지는데 따르지 아니하며, 부처도 짓지 아니하며, 조사도 짓지아니하며, 크게는 모래 수 같은 세계를 둘러싸고 작게는 미세한 티끌에 들어가며, 또한 능히 부처며, 능히 중생이다.
또 크고 작음도 아니며 모나고 둥근것도 아니며, 밝고 어두운것도 아니어서 자재 융통함이 이렇게 철저하여 조금도 강제로 만들어 내는 도리가 아니다.
무릇 이 현묘한 문을 참구하는 사람은 항상 그 참구하는 마음을 반조하고 힘써서, 성실하고 밀밀하여 간단함이 없이 하며, 참구하기를 지극히 간절히하여 참구한다는 마음조차 다하여 없는데 이르러서 홀연히 마음깊이 끊어져 근본 생명자리에 이르게되면 저 본지풍광本地風光이 몬래부터 구족하여 뚜렷한 경지이므로 모자랄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나니, 이러한 때에 이르러서 백천 일월이 시방세계에 밝게 빛나며, 귀에 부딪칠 때에는 짠 바다의 풍랑소리가 수미산을 치는 것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도리가 다만 지극히 가까워서 사람이 스스로 체험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릇 현현한 이치를 참구하는 이가 그 착실이 참구하는 반조방법을 알아 얻을 것 같으면, 분명히 마음 자리의 형용을 자세히 살펴낼 것이고, 아무렇게나 마음을 써서 행하지 말일이다.
행하는 空이 익어지면 실상의 이치가 자연히 드러나리라.
태고화상이 말씀하시기를
「화살을 쏘자 돌을 뚫는다.」하여고,
淸虛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모기가 쇠로만든 소 등어리를 뚫는것과 같이, 부리가 들어갈데가 없는 곳에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라.」하였으니, 화두를 참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로서 지침을 삼으라.
안일 일용의 만행萬行을 논하자면 가슴속이 비고 밝아서 아무것도 없으며,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의식 기관인 육근六根이 다 텅 비어서 다만 너그럽고 빈자리가 바로 이 보시며, 다만 저 깨끗하고 말쑥한 것이 곧 이 계를 지니는 것이며, 다만 이 비고 부드러운 것이 곧 이 욕됨을 참음이며, 다만 저 밝고 고요하여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선정禪定이다. 다만 저 밝고 고요하고 분명하여서 법을 가려내어 空을 관하되 본래 스스로 어리석음이 없으며, 모든 법을 분별하되 움직이지 아니하며, 이렇게 세간으로 수순隨順하되 갈림도 없고, 막힘도 없는 것이 곧 이 지혜이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보는 한 법이 일체의 행을 다 섭하였다.」하셨다. 다만 그 뿌리와 몸체를 잘 배양할지언정, 그 가지와 잎이 번성치 않음을 근심하지 말라.
다만 견성 성불을 할지언정 부처님의 신통삼매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 요즘사람들은 다분히 진실하고 바르게 닦아 가는 참학參學을 다하지 못함이라. 본색납자本色衲子가 저 불법가운데 법의 이치를 밝히지 아니하고, 도의 안목도 진실치 못하여 갈림길에서 염소를 잃은 것 같이 마치 취한 듯 꿈꾸는 듯 일생을 헛되이 보내니 슬프다.
洞山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가사袈裟아래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함이 이것이다.
무릇 길가는 사람에게 첫 발길이 바르지 못하면 천리 먼길을 공력만 허비하므로, 길 떠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규봉선사圭峯禪師께서 말씀하시기를
「결택하기를 분명히하고, 이치를 깨달이 닦으라.」하였다.
우리가 삼간 초옥을 짓고자 하더라도 만일 먹물을 치고 자귀로 나무를 깎아내며, 자로재는 일의 공력을 드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데 하물며 원각圓覺의 큰 절을 조성하는데, 그 조성하는 이치대로 하지않고 어찌 성공하겠는가. 작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도 잘못되어 실수할까 두려워하며 그 이치를 생각해 얻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는 선지식에게 물으며, 물어도 모르거든 다시 슬기로운 눈밝은 종사宗師를 찾아서 기어이 잘못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현묘한 도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소홀히하여 그 견해를 자세히 결택하지않고 공부하는 경우에 이와 같은데 거꾸러지지 않는이를 보지 못하였고, 이렇게 하고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드믈 것이다.
슬프다 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무릇 무상을 경계하고 깨달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장차어찌 그 바른 길을 얻겠는가.

청심법문淸心法門
무릇 인생의 삶이란 힘이 넘치는 청년에만 머물지 않는 것은 마치달리는 말과같고, 풀끝에 이슬과 같으며, 서산에 넘어가는 해와 같다. 하였으니 이것은 모든 현상이 한 찰라에도 생멸 변화하여 영원하지 않는 무상한 덧을 말한 것이다.
또한 똥무더기같고, 꿈속같으며, 원수와 도둑같고, 무서운 독사와 같다고 하는것은 허망하여 좋은일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말이 없고자 한다.」하였고 또 「반드시 그렇다 할 수도 없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하였으며,
莊子는 「천지는 진리를 가르키는 한 손가락이요, 만물은 내 마음대로 부리는 한마리의 말馬이라.」하였다.
나는 부처님의 법을 배우는 사문으로 마땅히 그 근본을 참구하고, 그 존묘한 법을 닦으면 백천가지의 삼매와 한량없이 묘한 이치를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중득하리니, 모든 부처와 조사가 그 어찌 나와 다른 사람이리오.
이제 성현 가신지 오래서 출가한 사람이 자시의 집과 육신도 알지못하고, 허겁지겁하다가 헛되이 일생을 보내니, 우리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매몰하여 밝히지 못하고, 온전히 허왕되고 거짓되며, 요사하고 잔악함만 익힘으로써 잘못성품이 이루어지게 되어, 심지어는 도리어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가히 말로서는 다할 수 없구나.
육조대사 께서 말씀하시기를
「앞 생각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라.」하시었다.
또 위산潙山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생각으로서 생각없음의 그 묘한 생각근원을 돌이켜 신령스런 불꽃이 다함이 없으니, 생각이 다한 그 근원에 사무치면 성품의 본바탕이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항상 머물게 되고, 事와 理가 둘이아니며, 참된 부처가 如如함이라.」하였으니, 그 광명을 얻으면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여 한결같이되니, 만약 그 광명을 잃어버리면 생사에 순종하여 만겁을 걸어야 한다.
마치 비유하면 龍이 뼈를 바꿔도 그 비늘은 고치지 아니하고, 법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되어도 본래면목은 고치지 않는다 하였고 무명에 가린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요, 환화의 공한 몸이 곧 法身이라 하엿다.
이낱 도리道理가 다만 지극히 가까움이라. 눈을 뜨면 문득 이그러짐에 집착되고, 눈을 감을지라도 또한 스스로 집착을 이루어 나타남이니,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곧 너이니라.〉하시니 이와같이 분명한 가르침에는 번거러운 것이 불가함이나, 모두가 다 범부를 고쳐 성현을 이루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옛사람이 이와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틀림없는 말씀을 하시었으며, 긴요하고 간절함이 노파老婆와 같은 마음을 썼으며, 외우고 익혀 연구하여 먼저 깨친 선지식에게 묻고 깨달음의 이치를 분명히 결택하여 자세히 탁마하면 道를 성취하리니, 어느 누가 성불할 수 없으리오. 현명한이나 어리석은이나 귀한이나 천한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성불할 수 있는 요건이 충분히 있다.
슬프다,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는 것은 마땅히 어떤일을 하려함인가?
눈으로 색色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귀餓鬼로 돌아가게 됨이요, 귀로 소리를 따르는 것은 아비지옥에 들어감이다.
소리와 색에 침취하면 학과 축생계의 깊은 수렁과 함정에 빠져 온갖 고통을 받아 생사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니,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또한 이러하다가 임종시에 이르러서는 머리가 깨지거 이마가 터지고 간장이 잘라지는 듯 아프며 손가락과 다리를 잡아 빼는 듯 할 때에 그 슬프고 두려움이 끓는 물에 들어간 게와같고, 그 아품을 참는것은 마치 거북이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는 것과 같다.
이러할 때에 정신이 혼미하여 천상에 오르건 지옥에 떨어지건 밝혀 중득할 생각조차 하지못하니 슬프고 애석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임종할 때에 앉아서 죽고 서서죽는것을, 활짝 열린 문을통해 나가는 사람과 같이 쉽게하나니, 계선사戒禪師는 주장자를 짚고 입적하였으며, 불인佛印장로는 혼연히 한번 웃고 가셨다.
또한 어떤 도인은 젓가락질을 하다가 그대로 가셨으며, 발굼치를 곤두세우고 입적하기도 하고, 혹 거꾸로 서서 입적하셨으니,
이런 도인들의 가시는 땅은 염라대왕 뿐만 아니라 모든 하늘이나 모든 부처님까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자기의 자성을 돌이켜보는 공부로서 온전히 정定과 혜慧의 극치를 배움이다.
슬프다, 옛사람이 어찌 지금사람과 다르랴,
동상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사袈裟있는 아래에서 몸을 잃는 사람이 곧 이처럼 안타까움이라.」하셨으니, 가히 경계하여 가르침이라.
위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기 네번을 거둡하였으니, 가슴을 찌르는 한恨이 바다와 같음을 누가 알 수 있으리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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