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15, 2012

5 죽은후에 어떻게 새로운 몸을 받는가.

5 죽은 후에 어떻게 새로운 몸을 받는가.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이 육신을 버리고 내생에 몸을 받고자 할 때에 그 형영이 어떠합니까?』
용성이 대답하되,
『사람이 죽을 때에 지ㆍ수ㆍ화ㆍ풍 사대로 조직된 이 육체가 움직여 운전하는 바람 기운과 따뜻한 불기운은 위로떠서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차디찬 몸둥이만 남아 있어서 썩음에, 물이되고 흙이 되는 것이다. 그 때는 신기로운 신식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 신식神識은 비록 형체가 없으니 정묘색근淨妙色根이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범부가 대단히 알기 어렵다. 모든 귀신이 다 정묘색근을 의지하여 보고듣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여 말하면 그대가 필시 꿈을 꾸어 보았을 것이다. 夢중에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듣고, 코ㆍ혀ㆍ몸으로 냄새ㆍ맛ㆍ촉감을 감각하고, 뜻으로 법을 아는것과 언어동작言語動作등 일체가 생시와 어떠하던가?』객이 대답하되
『생시와 다를 것이 없읍니다.』
용성이 말하되,
『그것이 정묘색근을 가자하여 보고, 듣고, 언어동작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精妙色根)보기를 현재에 우리가 사람을 보는것과 같이한다. 이 신식의 자체가 바람과 같아서 문명히 있으되 형체는 없는 것이니 산하석벽山河石壁이 걸림이 없어서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가는것이다. 새로 몸을 받기전에는 이 신식이 법계체에 머물러 오직 생각하는 힘만있다. 이 신식이 인연을 따라 몸을 받아 태어나는(受生) 것이니, 이는 십만리라도 몸을 받아 태어날 인연이 있으면 순식간에 당도하는 것이다.
무릇 아는 것을 식識이라 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종자種子가 있음으로 인하여 능히 싹이나는것과 같아서 식이 있음으로해서 육체를 나게 하는 것이다. 지혜로부터 식이나기 때문에 이름을 생각이라한다.
신식神識자체가 뚜렷이 서 있음에 자타의 구별이 있게 된 것이다. 또 고苦와 낙樂과 선善과 악惡과 모든 경계를 아는 까닭으로 식이라고 한다. 종자로 부터 움이나고 싹이 나서 큰 나무가 되는 것과같이, 식 으로부터 사람의 몸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마치 사람이 거울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신식神識과 부모의 인연이 합한것은 거울에 비유하고, 신식이 다른곳으로 옮겨가는 것은 강물에가서 다시 얼굴을 나다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아뢰야식이 온갖변화가 있는 까닭에 만물이 발생하되 세상 사람들은 식으로 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도에는 지적초知跡草라는 풀이있다. 꽃이피면 크고 아름다우며, 맛이 최상가는 것인데 사람의 발자취 소리를 능히 알아듣는 것이다. 사람이 그 꽃을 꺽으러 가면, 그 꽃이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곧 오므라지는 것이니 식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또 나무가 있으되, 혹 새나 거미가 그 나무잎에 앉으면 곧 나무잎이 급히 오므라져서 그 물건을 흡수하여 먹으니, 비록 무정한 물건일지라도 아뢰야식이 포함되어 있거늘 사람이야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저 신식은 분명히 있으나 알수없는 것이, 마치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여 자기 배 가운데 있는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연할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이가 뱃속에서 꿈실꿈실 노는 것은 알 수 있다. 신식은 더럽고 깨끗한 것이없다. 비유하면 태양광명이 우주에 찬란하여 송장이나 더러운 똥에 비추어도 태양광명은 더럽지 않고, 깨끗한 유리에 비추어도 태양광명은 더 청정한 것이 없다.
식이 인상印象을 잘 받아서 자체안에다가 하나도 유실함이 없이 잘 간직하여 두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모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종자種子를 밭에 뿌리면 그 종자의 업성業性을 따라 형상形相이 나오면 맵고, 쓰고, 단 것이 다른것과 같이, 선업을 지은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모든 복이 자연히 이루어지며, 악업을 지은자는 얼굴이 법도法度를 잃어서 단정치 못하거나 혹은 자비덕상慈悲德相이 없어 아름답지 못하며 복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신식ㅇ이 몸을 버리고 갈 때에 눈구멍이나 귀구멍이나 콧구멍, 입구멍, 털구멍 등 무슨 구멍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요, 나가는 곳이 없이 나가는 것이며, 들어갈 때에도 모든 구멍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꿈 가운데에서 마치 물건을 보며 사람과 축새의 소리가 역력히 들리고, 천리만리를 다니며 놀다가 잠을 깨어놓고보니 하나도 없으며 식이 옮겨갈 때에도 꿈 가운데서 보는 것과 같다.
그대는 식을 자세히 알라. 아뢰야식 자체가 광대하고도 큰 것이 진성眞性과 비등하며, 허공전체와 같아서 들어가지 아나한 곳이 없으며, 맑고도 항상 유동력流動力이 강하며 모든 만물의 종자를 머금고 있으며 모든 선악과 업을 받아서 印을 쳐서 천진 화학적 작용이 구족하므로, 산하 대지의 삼라만상의 묘용이며, 아뢰야식의 천진화적 작용이다.
그대는 자세히 깨칠지어다.
그대는 계란을 보는가? 그것이 둥글둥글하여 눈도 귀도 코도 없으며, 두리뭉실하여 아무지각도 없다. 그러나 당당히 산 물건으로서 이 계란 전체가 아뢰야식으로 되어있는 것이니, 만일 아뢰야식과 분리되면 곧 썩고마는 것이다.
이 계란을 따뜻한 곳에두면 「꼬끼오 !」하고 우는 산生물건이 그 가운데에서 나온다.
소나무 씨가 비록 작으나 낙락장송이 그 가운데에서 나오며, 고기알이 비록 작으나 장강대해長江大海를 툭툭쳐서 파도를 일으키는 큰 고기가 나오고, 매알鷹卵이 비록 작으나 창공을 능멸히 하는 송골매가 나오니 알로 있을 때에 보면 무정ㅎ한 물건과 같으나, 당당하게 산生물건이 아닌가?
참외眞菰나 가지茄子 등 물건은 비록 무정한 물건이나, 부인이 그 밭 가운데 들어가서 오줌을 누면 딱딱 벌어지니 어찌 단순히 무정한 물건이라고만 보겠는가?
만물엔 상생相生, 상극相克이 있으니 무엇이 있어서 상생 상극 하는가? 다 아뢰야식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요, 아직 아뢰야식이 지은 것이다.
인도에 향초가 있는데 이름을 첨바라화라 한다. 그 꽃과 흑임자黑荏子를 한데 혼합하여 잘 쪄서 익힌뒤에 기름을 짜면 향취가 아름다우니 이것이, 옮겨가는 것이 없이 곧 옮겨가는 것으로 식이 옮겨가는 것도 이와같다.』
객이 묻되,
『생시에는 육안이 있는 까닭으로 능히 볼 수 있거니와, 사후에는 눈과 귀와 코가 없으니 볼 수 있는 이치가 만무합니다.』『그대가 칠야삼경漆夜三更에 무엇을 보는가?』객이 답하기를, 『오직 어두운 것만 봅니다.』
용성이 이르되,
『그 어두운 것을 보는것은 장님과 같으니 그것이 곧 보는 것이다. 장님이 밤에 꿈을 꿈에, 꿈 가운데서 일월이 밝고 빛나며, 만물이 분명한 것을보니 그것이 육안으로 보는 것인가? 그 보는 것은 밝은 마음이 보는 것이다. 사람이 비록 몸은 죽을지라도 밝은 마음은 죽는것이 아니다.』
『그러면 신식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용성이 이르되,
『신식은 저장하여 둔 곳도 없고 형체도 없으되 능히 종종 형상을 짓는다. 비유하건데, 종자로부터 움이 나오는 것이니, 만일 종자가 썩어지면 움이나지 못하는 것이다. 종자로부터 움이나서 큰 나무가 된 것이요, 또 다시 나무끝에 꽃이피고, 과실이 맺히며, 종자가 익었으나 그 나무 전체를 해부하여 보아도 그 종자가 어디로 온 곳이 없다.
이와같이 신식으로 부터 사람의 육체가 되었으나, 육체를 해부하여 식을 찾아보아도 식이 있는곳이 없고, 또 식을 여의고는 이 몸이 없다. 또 비유하면 저 과실이 나무로부터 익기를 마침에,과실 가운데에 씨가 있어서 과실과 종자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도 그러하여 명을 마칠 때에 신체 가운데서 식만 뚜렸이 나서서 떠남에 형체를 볼 수 없어, 부모처자 권속과 금은 보화를 다 버리고 오직 식만 홀로가는 것이다.
이 식이 형체는 없으나, 자기는 몸이 분명하게 있는것을 본다. 이 식이 경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화합하고, 음욕에 연애로서 서로 얽힌 것이며, 생각으로서 서로 집착한 것이다. 착한 인연으로서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고, 악한 인연으로서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며, 지혜훈습智慧薰習한 것으로서 업연業緣을 따라 몸을 받아 태아나는데受生 아버지 될 사람의 식과 어머니 될 사람의 식이, 육체를 서로 교접할 때에 자식 될 자의 신식이 만리 밖에 있더라도 일순간에 당도하여 인연이 화합된 뒤에야 잉태가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거울을 사람이 얼굴에다 댈 때 얼굴이 없거나 거울이 없거나 어느 하나가 없으면, 얼굴을 나투지 못할 것이며 거울과 얼굴의 두 가지 인연이 화합한 뒤에야 얼굴이 나타나되 조금도 틀림이 없는 것과 같다.
으리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저 몸을 받음에 혹 복도 받으며, 죄도 받되 마치 꿀벌이 맛을 취하여 꽃위에 앉아서 맛을 탐착하다가 그 꽃을버리고 다른 꽃으로 옮겨가도, 혹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가기도 하며, 혹 좋은 꽃을 버리고 나쁜 꽃으로 옮겨가기도 하니, 천당 지옥이 다 자기의 신식으로 지은 것이요, 누가 명령적으로 보내는 것은 아니다.
태胎로 태어나는 중생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중생들이 연애로부터 정욕이 생기고 정과 교합함에, 정은 반드시 찌그러지고 반듯함이 있는데, 치우치는데로 가로 누어서 가는 어지러운 생각이 있고, 반듯한데는 바로서서가는 어지러운 생각이 있다.
서서가는 생각은 사람고 신성이되어 머리는 하늘로 향하고, 발은 땅을 밟아 다니니 그 무리가 세계에 가득하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서서가는 생각에 따라서 태어나는 까닭이다.
가로가는 생각은 모든 축생의 무리가 되는 것이니 머리와 몸이 누워서 다니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가로가는 생각에 따라서 태어나는 까닭이다.
그럼 중생이 태胎에 드는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새상에 태를 받아 나오는 이치를 알면, 반드시 목슴을 마치고 다룬 곳에가서 생을받는 이치를 알 것이다.
무릇사람이 태를 받아 출생하는 것은 비록 부정모혈이 엉켜 서로 합할지라도 그 자식될 사람의 아는 것識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는 것識으로 인연이 화합되지 아니하면 잉태하지 못한다.
본사경本師經에 말씀하시기를, 〈무명無明을 끊지못하고 탐애를 버리지 못하여 業을 짓는 것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가지 연으로 말미암아 태장胎藏의 몸을 받는 것이니 업은 밭이되고, 아는것 識은 종자가되며, 연애는 빗물이 되어 이몸을 성취하는 것이다.〉하시며,
유가론瑜伽論에 말씀하시기를,〈부모의 연애정이 가장 극함의 최후에, 각각 농후한 정과 혈을 내어 세가지 연緣이 화합하므로
어머니의 태胎중에 잉태孕胎하게 된다. 마치 젖을 달일 때 엉기는 것과 같아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의지하여 태胎를 받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정혈精血은 水土의 기분氣分과 같다. 아무리 부모의 정혈이 화합할지라도 물水과 바람風이 아니면, 성숙하지 못한다.
이것을 네 가지 비유로 말하면,
푸른 풀을 의지하여 벌레가 나기도 한다. 벌레는 푸른풀이 아니지만 풀을 여의고는 벌레가 없는 것이다. 저 풀과 인연이 화합하여 나기 때문에 벌레의 빛이 푸르다. 부정모혈로 이 몸을 성취하는 것도 이와같은 것이다.
쇠똥을 의지하여 벌레가 나기도 한다. 쇠똥은 벌레가 이니지만, 벌레는 쇠똥을 여의고는 없는 것이다.
쇠똥과 인연이 화합하여 벌레가 나기 때문에 벌레빛이 누르다. 부모와 인연이 화합하여 몸이 출생하는 것도 이와같은 것이다.
또 대추를 의지하여 벌레가 나기도 하는 것이니 대추는 벌레가 아니지만, 벌레는 대추를 여의고 나는 것이 아니다.
대추와 인연이 화합하여 나기 때문에 벌레의 빛이 대추빛과 같이 붉다. 부모와 인연이 화합하여 몸이 나는 것도 이와같은 것이다
또 양이나 소의 젖인 소락蘇酪을 의지하여 벌레가 생기기도 한다. 소락은 벌레가 이니지만, 벌레는 소락을 여의고 있는것이 아니다.
소락과 인연이 화합하여 나는 것도 이와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ㆍ수ㆍ화ㆍ풍 地水火風이 구족하지 못하면 이 몸을 성취하지 못한다. 땅은 굳고, 물은 젖으며, 불은 뜨겁고, 바람은 동하는 것이다. 땅과 물만 있고 불이 없으면, 5월과 6월에 음굴에 둔 고기가 일광을 쪼이지 못해 곧 썩어지는 것과 같다.
또한 땅과 물만있고 바람이 없으면, 유리병을 제조할 때에 바람기운을 불어넣지 아니하면 그안을 비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지ㆍ수ㆍ화ㆍ풍 四大가 서로 의지하지 아니하면, 몸이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아느 것 識이 태에 들어갈 때에 무슨이유로 들어가는가?
아는것 識이 미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을 때에 부모될 사람의 인연을 얻으면, 수 만리라도 눈 깜짝 할 사이에 당도하니 만일 남자의 중음신이면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싫어한다.
이와같은 생각을 지어서, “만약 저 남자가 다른 곳으로가면, 내가 저 여인과 관계를 갖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와같이 생각할 때, 음욕심이 불꽃같이 일어나니, 그 욕심에 가리어 저 남자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여자만 있는것을 보고 환희하여 저 여인과 자기가 교합함을 보며, 부모될 남녀가 서로 교합하여 정수가 나온것을, 문득 자기의 정혈로 알아 극히 좋은 생각을 내므로 중음신이 추탁하고 무거워져서 어미될 여인의 태 속으로들어가 오른 옆구리에서 어미를 안고 꿇어 앉는다.
만약 여인의 중음신이라면 남자를 사랑하고 여자를 미워하는 생각을 내어서 여자가 멀리가면 “저 남자와 인연을 교합하리라.”라는 생각이 위에서 말한 남자의 중움신과 같아서 어미의 옆구리에서 어미를 등지고 꿇어 앉는다.
태로 나는것은, 아는 것이 다 음욕으로 화합하여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사랑을 마음에서 흘러내어 종자가 되고, 생각을 根門에 들이어 태가된다.』하신 것이다.
이와같은 법문을 듣던 사람이 용성스님께 묻기를
『부모와 자식이 음욕으로 된다는 것은 지나친 망발이 아닌가요?』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가 이 세상에서 목숨을 마칠 때 이 육체는 버리고 영혼만 떠나갈 것이니, 그 영혼의 자체에 앉아보면 아무도 나의 부모될 것이 없다. 이 신령하게 아는것 識이, 모두 생의 습기를 이기지 못해서 부모될 자와 자식될 자의 인연이 화합하여, 낳은뒤에 예절로서 부모와 자식의 천륜을 정한것이다. 그대의 몸이 난 뒤에는 부모가 되려니와 몸이 나기전에는 망발이라 할 것이 없다.
혹 성인과 신성이 태중에 드는것은 범부와는 달리 자기의 신력으로 미리 태장에 몸을 머물러 두어 혹 6년만에, 혹은 80년만에 나는 경우도 있다.』하시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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