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4, 2012

대중에게 보이다, 나를 찾자

大衆에게 보이다, 나를 찾자

스님이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세번치고 말씀하시기를
『옛 삶의 말씀에 본래부터 고요하여 동하지 아니한 것이 여여如如한 부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如如라 이르더라도 이것은 벌써 변해버린 말이니 如如라는 것은 곧 우주의 母體이므로 일체 만물이 모두 이 여여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겨나도 母體를 모르고 죽어가도 모체를 모르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이 축생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 세상 중생들이 모두 이렇게 된 까닭은 모직 탐진치貪嗔痴의 세 가지 독한 것을 가지고 일용에 살림을 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만약 누구든지 이같은 어리석음을 벗어나려고 하거든 이「구래부동여여불 舊來不動如如佛」을 깨닫도록 하라. 이 한 마디를 증득하기만 하면 바야흐로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니라」
또 법좌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돌아오지 아니하여 세간의 상이 항상 주하니라.』
주장자를 세워 일으키면서
『두고보라 ! 삼라만상이 다만 이 한 몸에 항상 홀로 드러나 있으니 이 속에 이르러 도리어 한 법이 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비록 이와같으니 꿈에도 설하지 못하니라.』
주장자를 세워 법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또 법좌에 올라 잠시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위 없는 보리가 이것으로 쫓아 나니
만길이나 되는 언덕위에 외발로 섰도다.
도과 서와 남과 죽을 묻지 말라.
달마기 曺溪의 길을 알지 못하도다.
나에게 한 비결이 있으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주장자를 세워 법상을 치고 또 이르되

一萬 기틀을 쉬어 파하니
일천 성현이 잡지 못하고
부모도 나와 친한 이가 아니요
모든 부처도 이 道가 아니구나.
산승이 이 속에 이르러 한 가닥 활로를 찾으니 곧 이 생멸에 능히 옮기지 않고, 차별에 능히 구르지 않고, 티끌을 등지고 覺에 합하여 제불諸佛과 중생이 본래 평등하구나. 대중아 ! 이미 평등할 진댄 무엇 때문에 諸佛은 영원히 얻음이 되고 중생은 그렇지 못한고?
또 일러라. 잘못 됨이 어느 곳에 있는고?
밤길을 허락하지아니하니 밝아서 올지어다.

법좌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맺을 때에도 맺음이 없고 풀 때에도 풀음이 없도다.
맺고 풀음을 함께 분명히 하면 다녀도 다님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음을 알지 못하여 참으로 걸림이 없도다.』
또 이르되
『세존이 도리천에 올라가시어 어머니응 위해 법을 설하시고 내려 오실 때에 연화색 비구니가 신통력으로서 가장먼저 가서뵈오니 부처님께서 밀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먼저 본것 같지만 바위 밑에 앉아있는 수보리가 가장먼저 부처님을 뵈올 것인고? 각기 대답하여 ㅗ아라 !』하니 대중이 대답하질 못하자, 스님이 잠시 있다가
『만약 곁에 사람이 있으면 여래선如來禪을 면하지 못하고 조사선祖師禪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라 하리라.
고기가 가니 물이 흐르고
새가 날아가니 털이 떨어지도다.』
또 법좌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붙일 수가 없고 형상은 의지할 수가 없으며 발로는 걸을 수가 없고 말로는 이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히 보고 모양을 이름할 수가 없고 가히 얻어서 만져 헤아릴 수가 없다.
삼라만상이 그 用과 같고 태허太虛가 그 體와 같다.
놀매 이르러서는 무리 가운데 신선이요, 잘 응함에는 티끌 가운데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祖師가 아르되
「인연을 응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되 문득 불러서 지혜를 삼는다.」하니 또한 어떠한 것이 인연을 응하여 물체를 교화하는 방 편 지혜인가?
도리어 아느냐 마느냐?
앉아서 자주 술을 권한다고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이별한 뒤로는 보기도 드믈것이다.』

또 법좌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臨濟스님은 항상 喝을 하시고 德山스님은 항상 방망이질을 하시었다 하니, 금일 대중은 임제의 喝을 친할 것이냐 덕산의 방망이를 친할 것이냐?』
이때 벽초대사가 곧 나와서 예배하니 노사가 묻되
『벽초는 임제의 喝을 친랗 것이냐 덕산의 방망이를 친할 것이냐?』
벽초가 대답하되
『임제의 할도 친하지 아니하고 또한 덕산의 방망이도 친하지 않겠읍니다.』
스님이 이르되
『그러면 누구를 친할 것이냐?』
벽초가 스님의 소리가 떨어지자 마자 트게 喝을 하니 스님이 방망이로 한번 때리자 벽초가 절을하고 자리로 돌아감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는 자라.』하시다.

法紀出草
스님이 금강산으로 부터 정혜사에 돌아와 법좌에 올라 설법하시었다.
『내가 금강산에 있을 때에 법기보살이 설법하신다는 소시을 듣고 곧 가서 들었더니, 법기보살이 큰 소리로 대중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풀이 한 길이아 깊다.』하시더라 또한 일러라, 금일 대중은 어떻게 아는고? 하니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그 뒷날에 한 선객이 와서 붇기를
『법기보살이 이렇게 말한 것ㅇ은 또한 이 풀속의 말이니, 어떠한 것이 풀 속에서 나온 말이겠습니까?』하니, 스님이 답하시기를
『풀 속에서 나온 말을 묻지 마라. 풀 속에 들어가서 사람을 위하는 것이 그 은혜가 커서 갚기가 어려우니라.』
선객이 다시 말하되,
『풀 속에 들어 사람을 위하는 말씀 한 마디를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요 !』하고 청하였다.
『밤길을 허락하지 아니하니 밝아서 이르러 오리라.』하다.

無子話頭드는 법

한 선승이 趙州스님께 묻기를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조주스님은 「無 」라 하셨는데, 조주스님은 무엇을 근거로하여 「無」라 하였을까? 이 한 생각을 짓되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닭이 알을 품듯 앞 생각과 뒷 생각이 서로 끊어짐이 없어서 냇물 흘러가듯 하며 아침 일찍 찬물에 얼굴씻고 고요한 마음으로 단정히 앉아 화두를 들되 개가 佛心이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있고 없는 것이 다 空하여 참으로 없단 말인가. 이와같은 망상은 옛 사당의 찬 향로와 같이 고요하게 하고 화두話頭는 성성惺惺하게 하여 밝은 달이 허공에 뚜렸하게 들어난 것 같이 하여 망상은 적적하고 화두는 성성하게 하라. 적적함이 달 덩어리와 달 광명이 서로 어김이 없이 지은것 같이 화두를 지어가며 저녁 때에는 살펴보아 화두를 잘못들었거든 自性을 불러 꾸짖되, 주인공아 ! 내말을 들어라. 네가 끊없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등지고 날로 망상에 합하여 화택수고火宅受苦를 면치 못하는 놈이 금생에도 이와같이 혼침산란 속에 게으르게 사는구나. 만약 오늘 밤이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지면 천당갈지 지옥갈지 아귀될지 마복馬腹을 향할지 우복牛腹을 향할지 모르거늘 어찌 공부를 이와같이 방향없이 하느냐?
수마睡魔를 이기지 못하여 잠을자면 크게 꾸짖고, 부처님이 삼경三更외에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세 시간만 잠을자고 일어나서 또 찬물에 얼굴을 씻고 고요한 마음으로 앉아 생각하라.
요행히 간밤을 살아왔으니 〈오늘은 결정코 공부를 판단내어 훗 근심이 없게 하리라.〉하고, 공부를 그 전날보다 더 지극한 마음으로 날마다 이와같이 하여감면 어찌 10년, 20년을 허송세월이라 하리요.
깨달음이란 어느 한정된 기간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 근기根氣에 따라서
고요한 밤, 밝은 달을보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새벽 종 소리를 듣고 道를 깨닫기도 하며, 혹 원촌遠村의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혹 원곡遠谷의 행상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이웃집 아기우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한다.
혹 선지식의 설법을 듣고 言下에 도를 깨닫기도 하며, 좋은 인연을 따라 머리 머리의 도를 깨달음에 신기로운 광명이 하늘도 덮고 땅도 덮고 밤도 없고 낮도없는 광명의 세계를 이룬다 하나 월면 月面 = 만공 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털끝만치도 밝음이 없고 털끝만치고 어두운 것이 없다.
혹 도를 깨달음에 지혜가 명철하여 일체법을 하나도 무를 것이없이 다 안다하나 만공이 아는바는 그렇지 아니하다. 지혜가 없어 가히 한번도 앎이 없으며 한 번도 가히 모를것이 없으며, 혹 도를 깨달음에 살고 죽는것이 없다하나, 만공의 라는바는 그렇지 아니하다.
혹 살기도 하면 혹 죽기도 하여 죽고삶이 자유로우며 혹 도를 깨달음에 다시 보림하여 성품이 흰 연꽃같아서 다 물음이 없다.하나 月面이 아는바는 그렇지 아니하다. 배고프면 밥 생각이 간절하고 졸음이오면 자고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혹 도를 깨달음에 다시닦고 닦아 중득한다 하나 月面의 아느바는 그렇지 아니하며 본래 잃어버린 것이 없어 다시 중득할 것이 없다.
산과 산 물과 물이 각기 완연한 소식을 뉘라서 변작變作할까.
만약 사람이 이 도리를 잘못알면 지옥가기 화살이요, 만약 이 도리를 명백하게 살려얻으면 모든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어 푸른산 푸른 물을 향하여 불사佛事를 짓고 조각조각 흰 구름을 향하여 불사를 하고, 혹 앉고 눕는것을 향하여 불사를 짓고, 혹 고요하고 움직이는 것을 향하여 불사를 지을 것이다.
홀 밝은 머리가 오면 밝음 머리를 향하여, 혹 어두운 머리가 오면 어두운 머리를 향하여, 푸른 머리가 오면 푸른 머리를 향하여, 누른 머리가오면 누른 머리를 향하여, 붉은 머리가 오면 붉은 머리를 향하여, 둥근 머리가 오면 둥근 마리를 향하여, 긴 머리가오면 긴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짓는다.
착한 머리가 오면 착한 머리를 향하여, 악한 머리가 오면 악한 머리를 향하여, 옳은 머리가 오면 옳은 머리를 향하여, 그른 머리가 오면 그른 머리를 향하여, 삼라만상의 모든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니 이 무슨 도리인고?
밝고 밝은 조사祖師의 뜻이다.

나를 찾자

사람이 만물가운데 가장 귀하다는 뚯은 나르 찾는데 있다.
나라는 의의가 절대 자유로운데 있는 것으로 모는것은 내 마음대로 自在할 수 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인간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유가 없고 무엇하나 임의로 되지않는 것은 망아忘我가 주인이 되고 진아眞我가 종이 되어 살아나가는 까닭이다.
망아는 소생所生인데 현재 우라가 쓰고있는 마음은 곧 사심邪心이요, 진아眞我는 正心으로 시종始終도 없고 존망存妄도 없고 형상도 없지만은 오히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다
사람이 「나」를 잊어버리면 육축六畜과 같으니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짐승이 본능적으로 食色에만 팔려서 허둥거리는 것이나, 자신의 진면목眞面目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현실에만 끌려서 헤메는 것은 조금도 다른것이 없다.
세상에서 아부리 위대하다는 인물이라도 자기를 모른다면 사생육취四生六趣에 윤희하는 한 분자에 지나지 아니한다.
동업중생同業衆生이 사는 이 사바세계에는 너와 내가 다 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사는것이 그저 그렇거니 하고 무심히 살며, 자기들 앞에 가로놓인 무서운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다가 죽음이 닥치면 앞길이 망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인생은 마치 말꼬리에 매달려 울며 딩굴러가는 죄수처럼 業의 사슬에 끌려 생, 로, 병, 사의 苦의 길을 영겁으로 윤희하고 있는데 그 사슬은 자기의 칼이라야 끊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사슬을 끊어 버리지 못한이상 사회에서 뛰어난 학식과 인격으로 존경받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기실 사람의 정신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불교에서 「나」라고 하는것은 아무개야 ! 하고 부르면, 네 ! 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것인데, 그것은 生死도 없고 불에타거나 물에젖거나 칼에상하는 법이 없어 일체 얽매임을 떠난 독립적인 「나」다.
석가세존이 탄생시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신 그 「我」도 「나」를 가르킨 것이다.
이와같이 각자가 부처(나)가 될 성품은 지니었건만 내가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지 못하며, 세상에는 나를 알아보느니 찾아보느니 하는 말과 文句는 있으나 문자로 아는 나를 생각할 뿐이요, 정말 나는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참다운 「나」는 보고 들어서 얻는 앎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나 라는 생각만 해도 그것은 벌써 「나」가 아니다.
누구든지, 육신肉身, 업신業身,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일체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이닌 까닭의 현상 그대로가 곧 생사없는 자리이다.
생사없는 그 자리는 유정물有情物이 디 지녔기 때문에 한가닥 풀의 情이라도 전 우주의 무장으로도 해체시킬 수없다.
끝으로 「나」는 무한극수적無限極數的 수명을 가진 것으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금강불괴신金剛不壞身이라 이 육체의 생사는 나의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일뿐, 인간이라면 자신이 소유한 생사의 옷 쯤은 자유자재로 벗고 입을 줄 알아야 된다.
원돈문 = 모든 사물을 원만히 결함없이 갖추어 대번에 깨달음에 이르는 문.
사생육취 = 생물이 나는 형식의 네가지, 곧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을 사생이라하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6취라 함
여여 = 5법의 1. 바른 지혜에 계합하는 이체의 진여여의 뜻이 하나만이 아님으로 여여라 한다. 여하고 여하다는 뜻.
여래선 = 여래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모든중생의 본래구족한 부사의한 이치를 깨닫는 선을 말한 것. 또는 여래의 교설에 의거하여 깨닫는 선을 가르킨 것.
조사선 = 달마의 전전인 서가의 마음을 마음으로 아는 참된 선을 말한것. 곧 文字義解에 걸리지않고 바로 이심전심하는 달마가 본래 전한 선법을 말한다.
임제 = ? ~867 중국 임제종의 개조, 계율에 정통하고, 황벽희운선사의 법을 잇다.혜조의현을 가리킴.
덕산 = 782~ 863중국스님 속성 주. 항상 금강경을 강설하므로 주금강이라 부른다. 떡파는 노파가 금강경 뜻을 묻는것을 답변하지 못하고, 그의 지시로 용담 승신에게 가서 크게 깨닫다.
법기보살 =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나오는 보살, 금강산에 있다 한다.
본래면목 =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 있는 심성,육조 혜능대사가 처음한 말.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