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3, 2012

만행 참선세터는 진리의 문인가

참선센터는 진리의 문인가

이제 정말 수행을 할 젠센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젠센터란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불교의 사찰이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불교바람이 아주빠른 속도로 미국에 불어닥치고 있었지만 그 역사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에를 들어 한국같으면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아 ! 해인사나 수덕사나 화계사를 가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굳이 불교에 관심이 없더라도 ‘절’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고 거기에는 대충 어떤전통이있고 무슨 가르침이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더구나 한국의 불교전통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고승들이나 ‘큰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책은 물론, 신문,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아주익숙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상황이 아니었다. 스님이나 절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서점에 나와있는 책을 통해 불교라는 ‘신사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불교책에서는 하나같이 참선수행을 강조한다. 그러면 정말 참선수행을 하러 어디로 가야하나, 또 누굴 찾아가야 하나. 처음부터 길이 탁 막히는 것이다.
미국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불교전통이있다. 뉴욕같은 도심만 예로 들어보더라도 티벳 절, 중국 절, 일본 절, 베트남 절, 비파사나 절, 스리랑카 절…… 물론 한국 절도 있다. 미국의 각 도시마다 많은 나라들에서 온 각기 다른 불교사찰들이 있고, 한나라 북교전통에도 각기다른 가르침이 있다.예를 들어 티벳 불교만 보더라도 대처승이 있는가 하면 결혼하지않는 승려도 있고, 수행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스승에 따라 염불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전공부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한국불교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맞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진짜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고작 책 몇권으로 불교 가르침에 입문한 나에게 이것은 절실한 문제가 이닐 수 없었다. 어쨋든 나는 일단 참선수행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고 다짐했다. 책에서 읽은 참선수행은 나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무엇보다 참선불교는 정직했다. 어떤 미신적인 신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교리나 독단, 혹은 이것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수행을 강조했고 나는 내 마음속 깊이 오직 수행만이 진리를 찾게 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알게 모르게 가지게 됐다.
그 당시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 나는 동양문화와 역사에 대해아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각국의 불교가 서로 어떤차이가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것들이 모두 같은 가르침, 같은 전통, 같은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나는 일단 전화 번호부를 뒤져 ‘Z’편을 찾아 펼쳤다.
미국에 현재 도입된 참선불교는 나라와 문화와 가르침에 상관없이 모두 ‘젠 ZEN’이라고 부른다. 젠이란 말은 애초에 일본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미국에 처음ㄷ도입된 불교전통이 일본불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젠은 일본불교가 미국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 젠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원래 일본불교란 것이 한국불교가 전래되어 만들어진 것인데 전작 서양에서는 참선불교하면 무조건 일본단어인 젠을 사용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뭔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어떤 한국스님들은 외국인에게 강의할 때 이 젠이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젠이라는 말은 단지 알본불교만을 국한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미국에 알려진 것은 숭산 큰스님이 가르침을 펴기시작하신 1972년이었다. 이미 젠이라는 말은 참선불교를 뜻하는 외래어가 돼버렸다. 완전히 영어가 된 것이다. 일본불교가 미국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880년이다. 그리고 그들은 점차 그들의 영향력을 넓혀 1896년엔 시카고에서 불교를 주제로 한 세계종교회의를 열기도 했다.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이민이 크게 늘어난 것과 속도를 맞춰 많은 일본 선사들이 미국을 건너왔다. 특히 캘리포니아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다.
일봄 선사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 다이제츠 T. 스스키 선사이다. 학자이기도 한 그는 1950년대에 미국 대학을 무대로 강의를 시작했다. 컬럼비야 대학에 개설됐던 참선수행과 불교에 대한 강의는 당시 영향력있는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큰 호기심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책과 가르침은 당시 기성세대에 반발하고 있었던 젊은이들, 소위 ‘비트 운동’ Beat Movement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비트운동은 20세기 아주 중요한 미국 문화운동이다. 알렌긴즈버그 Allen Ginsburg, 잭 케루악 Jack Kerouac, 개리 스나이더 Gary Snyder, 위리엄 S. 버로스 William ss. Burroughs, 필립 웨일렌 Philip Whalen, 로렌스 펠린게티 Lawrence Feringhetti 같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모두 그의 강의를 듣고 참선수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와 수필과 소설에 불교의 가르침을 접목했고 그것은 그 당시 미국문화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비트운동의 기수들은 모두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현대 산업사회의 소외와 무의미에 깊이 천착해 있었다. 그들에게 전통적인 종교는 더이상 해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책이아닌 수행을 통한, 남의 경험이아닌 자기자신의 경험을 통한 진리와 자아의 발견은 자의식이 강한 그들에게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파고든 것이다.
스즈키 선사의 가르침과 참선불교는 미국 지식인 사회에 널리 보급되기 아르렀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불교, 특히 참선수행이야말로 영적수행방법중에섣도 아주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다.
어쨋든 전화번호에서 ‘ZEN’으로 시작되는 낱말을 계속 따라가다가 내 눈은 드디어 ‘Zen Community of New York’이란 단어에서 멈췄다. 그것은 마침 내가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막상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읽어보니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듯도 했다.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자동응답기에서 녹음된 안내문이 흘러나왔는데 미일 저녁 여섯 시에 참선수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내요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당장 가보기로 했다. 드디어 내가 그렇게 찾아헤메던 진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 길을 찾을 수 없을 만치 뒤얽혔던 내 고통의 어두운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가. 내 마음은 설렘과 희망으로 두군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정확하게 다섯 시 45분. 나는 젠센터가 있는 건물 정문을 바라보면서 건너편 길가에 서 있었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그곳의 문을 바라보면서 등줄기에는 식은땀까지 흘렀다. 이제 저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동안 내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질문들의 해답을 들을 수 있는가.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계단을 올라 문을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의의로 모두 평범해 보였다. 나와같은 캐주얼차림의 학생이거나 아니면 넥타이를 맨 회사원, 주부들 같았다. 좀 이상했다. 적어도 젠센터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뭔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옷차림일 것 갔았다. 아니면 머리를 삭발 했다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가슴은 쿵쿵거렸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 50분. 이제 길을 건너 저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뉴저지, 예일대학, 독일, 파리, 그리고 지금 뉴욕 시내의 한복판, 참 많은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발을 옮겨 길을 건너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가. 자전거에서 내려 서둘러 젠센터로 뛰어들어가는 학생이 보였다. 그런데 나는 뉴욕의 한 보도위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제 한 발만 디디면 진리로 향하는 문을 열 수가 있는데 왜 도대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일까. 등과 목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윽고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안에서 차오르는 두려움과 용기없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거야, 난데없이 젠센터라니, 저런곳은 정신이 약간이상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야, 폴, 너는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거야.
내안에서 울려퍼지는 이런소리들이 내 다리를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도저히 길을 건너 저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결국 발길을 돌려 지히철로 향했다. 집까지 가는 30분이 마치 3년 같았다.
밤 늦도록 잠을 못 이뤘다.
용기없는 겁쟁이, 바보라는 생각 때문에 완정히 기가 꺾여버린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갈구했건만 정작 마지막에 가서 주저앉아버리다니, 울고 싶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났다. 일상은 여느날과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포켓볼을 치거나 파티에 가 열심히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내 안의 나는 완전히 다른사람이 되어 있었다. 절망과 외로움, 수치심, 모욕감이 엄습했다.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다른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나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의문들이 나를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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