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0, 2012

2 깨달음의 본원심

2 깨달음의 本源心

우리 불교를 깨달음의 교리고 하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뜻이있다.
첫째는 우리가 보고 가장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허공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크다고 하는 것은 이런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래마음本源心은 천지ㆍ허공ㆍ만물을 상대적으로 크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끊어진 것을 말한 것이요, 覺이라는 말은 능히 깨치고 깨칠바가 없는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大覺의 本源心을 말이나 글로 가르쳐 줄 수 없고 어떤형상으로 보여줄 수도 없다.
허공 가운데에 전기의 성품이 가득하고 바다물에는 짠맛이 가득하나 분명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이와같이 깨달음의 체성體性도 분명히 있지만 일체의 명상名相이 없어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뜻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일체 이름과 형상이 없어 본래 없다고 말하나 분명히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물건도 없어 마음도 아니요, 佛陀도 아니며, 달마도 僧伽도 아니요, 귀신도 이니며 어떤 물건도 아니요, 허공이나 하늘도 아니지만 지극히 크고 지극히 작으며 지극히 신령스럽고 지극히 견고하며, 지극히 굳세고 지극히 부드러워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다.
이 본성은 이름과 형상이 없으되 과거와 현재를 꿰었으며 十方에 가득하고 하늘과 땅과 사람의 주인공이 되며 萬法의 왕이 됨이니 지극히 크고 넓어서 아무 것에도 방해가 되지않고 비교할 것도 짝 할 것도 없다. 또한 천지天地 세계보다 먼저있어 시초始初가 없고, 천지가 끝난 뒤에있어 종말終末이 없다. 이 크고 둥근 깨달음의 체성體性은 천지가 나와 한 근원이요, 삼라만상이 나와같은 체體이다.
이 성품은 성현이라고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고 덜하지도 않는다. 또한 생하고 멸함이 없어 방원장단方圓長短 대소명상大小名相등 일체가 하나도 없으되 하늘에 있으면 능히 하늘이되고, 땅에 있으면 능히 땅이되며, 사람에 있으면 또한 능히 사람이되니 이것은 우리 대각大覺의 본원심성本源心性을 말하는 것이다.
또 둘째는 대각大覺의 근본적 심성心性을 깨치고 또 다른 사람을 깨치게하며 자각각타自覺覺他가 둘이없어 원만하므로 구경락究竟覺이라 한다. 또한 사람마다 본래 구족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비록 본래 깨달음의 성품이 구족할지라도 깨치지 못한이는 범부요, 비록 깨침이 있을지라도 닦지못하면 범부중생이니 어찌하여 그러한가?
비록 본래 金일지라도 여러번 용광로에 단련鍛鍊하지 아니하면 순금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순금이 되면 다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지런히 닦아서 참다운 마음을 중득하는 것도 이와같으니 이것을 시각始覺이라고 한다.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구경에 둘이 아니므로 구경각究竟覺이라고 하니 앞서 말한 것을 다 깨치면 대각大覺이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 된 것
보라! 우리가 말하고 침묵하고 손을 놀리고 발을 움직이며 앉고 눕고 잠자고 오고가며, 보고듣고 깨닫고 아는 것은 어떤 물건인가?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이 다 하는 것이라면 어찌 죽은 송장은 알지 못하는가. 이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되는 것이다.
눈을감고 깊은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천리만리를 순식간에 왕래하되 산이나 강ㆍ절벽등에 조금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니 이것이 마음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대는 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유물론唯物論을 주장하니 그대의 마음은 아무상관없고 오직 밖으로 있는 물건이 능히 시빗선악是非善惡과 탐진치貪嗔痴를 내는가?
사람이 침대에 누워 꿈을 꿀 때에 꿈속에 천지天地ㆍ일월과 모든것이 역력분명하니 이것도 물건이 아는 것인가?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해서 오직 정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유심唯心을 부인하고 유물唯物만 주장하니 그대의 마음은 나무나 돌과같이 아무 분별도 없는데 밖으로 모든 물건이 분별하는가? 마음이 하지않고 오직 물건이 분별한다면 죽은 송장은 어찌 분별하지 못하는가?
세상에 종교ㆍ도덕과 철학ㆍ과학등 모든학문은 누가 제정하였는가? 마음이 아니고는 그 법을 제정하지 못한다. 현재에 전제국專制國과 공화국ㆍ공산국 등을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무정목석無情木石이 하는 것인가? 무정無情이면 목석이라 지각이 없으므로 어떤일도 하지못한다.
나의 생각 같아서는 여러말 할 것 없이 자기의 밝은 성품을 깨달아가는 마음, 공정한 마음, 굳센마음, 진행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을 깨닫고, 큰 눈을 떠서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三世의 일을 깨달어 가며 우주에 모든진리와 고금古今에 흥망성쇠와 미래의 모든일을 밝은 마음으로 관찰하여 영단있게 할 것은 하고 안할 것은 처음부터 간섭치 말아야 할 것이다.
불교의 종지宗旨는 법을 어떠한 틀에 아주정하여 놓고 있지 않다. 비유하면 춘ㆍ하ㆍ추ㆍ동 4계절이 절서節序를 따라 바뀌는 것과 같아서 봄에는 일을하고, 가을에는 가을 일을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시대를 거슬러 엳리逆理를 행하여 도를 닦으려고 하는것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 법화경에 말씀하시기를 「수 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였다.」하시니 방편이리는 것은 도에 들어가게만 한 것이요 법에 집착한 것은 아니다.
큰 바다를 건너는데는 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간지스강의 수 없이 많은 모래알같은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할 뿐이요, 추호라도 중생을 속이지 않는다.
모든것은 마음이 주체가 된다. 앉고자 하면 곧 앉고, 눕고자하면 눕고, 가고자하면 곧 떠나니 백만사百萬事가 마음이 시키는데로 육신은 따라움직인다. 그러므로 한 생각을 쉬면 아무일도 없는 것이다.
마음이 경계에 끌리어서 탐ㆍ진ㆍ치 삼독을 내는 것은 본래 사람의 본 성품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다겁생多怯生에 생활하는동안 자연히 탐심과 진심과 치심이 발생하여 점점 습관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강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은 추운기운 때문이나 그 물의 본체는 본래 얼음이 아닌 것처럼, 범부 역시 청정한 성품이 그릇된 앞력 때문에 범부가 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악습에 끌리어서 어여뿐 여인을 보면 음심이나고, 황금을 보면 탐심이 나는것을 보고 오직 본질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유물론唯物論을 주장하고 유심론唯心論을 부인하게 된다.
우리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은 본래 자연自然도 아니며 자연 아닌 것도 아니다. 또한 인연도 아니며 인연 아닌것도 아닏다. 이는 오직 일체의 형상을 여의면서도 일체 형상에 나타나서 낱낱이 사무친다.
어떤사람이 용성龍城꼐 묻기를
「일반적으로 유정有情동물은 기운이 모이면 나는 것이요,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다고 함니다. 그런데 무슨 물건이 있어 나고 죽는지요?」
영성께서 답하기를
『그내의 말과같이 다만 유정중생이 기운으로 生하고 죽는 것일 뿐 마음은 없는 것이라 한다면 기운이 신령하게 아는것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공기든지 전기電氣든지 또는 에너지든지 어떤 기운이 모이는 곳이면 반드시 생명체가 生할 것이며 만일 영지靈智가 없다면 어찌 무정無情한 기운이 영지가 있는 생명체를 낳겠느냐?』
그 사람이 다시 묻기를
『나무가 불에 타면 연기는 날아가고 덩어리는 불에 사라져서 재가되고 마는 것과같이 사람이 죽은뒤에 무엇이 남습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우리의 본원각성本願覺性ㆍ광명체성과 아뢰야식이 천지ㆍ허공 법계를 가득히 감싸고 무량한 세월에 세계와 국토를 성립하는 차별과 세계를 형용하는 차별과 세계의 주겁住劫차별과 세계의 괴공壞空 차별과 일체 유정동물의 형형색색과 일체 유정동물의 음성차별과 무엇이든지 광명체성光明體性 아뢰야식 속에 낱낱이 인印쳐두되 그 성품은 바다와 같이 조금도 늘거나 줄지 않으니 그대가 이 불가사이한 이치를 아느가? 그대는 축음기를 보았는가? 축음기는 음파를 기록한 레코드에 홈으로부터 같은 소리를 재생하지만 육안으로는 그 소리의 행적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광명체성 가운데에도 우주만상 일체를 印 쳐둠에 미래가 다하도록 머물러 추호도 없어지지않는 것을 그대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대가 큰 소리를 내든지 적은 소리를 낼지라도 그 음성은 허공의 진성을 쫓아 전파가되어 순식간에 우주허공과 시방세계十方法界에 전파가 가득하니 그 음파가 가득함을 따라서 허공과 법계에 가득한 전성電性으로 붙어 어뢰야식장阿賴耶識藏과 대각본원성大覺本源性에 형적없는 印을 쳐서 그 말소리의 본체가 미래겁을 다 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말소리만 그런것이 아니고 무시겁으로 부터 미래겁이 다 하도록 일체의 유정ㆍ무정 중생의 모든 소리가 분명하여 三世에 끊임이 없고 시방에 걸림이 없다. 그것은 과학시대인 오늘 더욱 증명되고 있다. 어디든지 전파를따라 라디오에 점촉되면 원근없이 소라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가 시방에 가득하지만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소리만 그런것이 아니다. 가령 어떤사람이 아무도없는 깊은 방에서 가만히 무엇을 생각하고 자신만 이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 즉시 모든 성현들은 분명하게 알게된다. 그러므로 세계국토의 형상이나 차별등 일체 유정중생을 막론하고 법계본원法界本源에 印쳐두어 미래겁이 다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또 용성이 말하기를
『보아라 ! 전기불이 오니 그 불이 어디서 왔으며, 또 가니 어디로 가는냐? 올 때에도 형적없이 오고 갈 때에도 형적없이가니 이것이 인연으로 모임을 따라나고, 인연 흩어짐을 따라 없어지니 그 전성과 전기가 허공계와 법계에 가득히 충만하여 불생불멸한 것을 아느냐? 흙과 물과 불과 바람 등 모든 만물이 모두죽고사는 것이나 그들이 모두 죽지않고 항상 우주와 허공계에 가득한 것을 아느냐? 사람의 몸은 물거품과같고, 마음은 바다물과 같아서 물거품은 없어지더라도 물은 항상있는 것과같이 몸은 없다가 다시 있기도하고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아느냐? 허공의 구름은 항상 일어나고 소멸하지만 허공은 언제든지 텅비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유심唯心ㆍ유물唯物이 둘이아니고 하나임을 아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대오온四大五蘊이 곧 금강계金剛界라 하시니 금강은 곧 생멸이 없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물ㆍ유심이 둘이아니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깨끗하니 그 물이 맑은 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물에는 반드시 짠 맛이 있다. 허공이 텅 비어있으니 빈 허공으로만 생각하느냐. 그 허공의 본원本源에는 대각성大覺性이 있다. 그대는 무엇이든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성품은 비록 형상이 있는 물건에도 포함되어 있짐만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기 어렵다.
불은 뜨겁고 고추는 맵다. 나무의 결은 부드러운 것, 강한것이 있듯이 만물은 모두 형형색색의 자기성질을 가지고있다. 이런 모양있는 물질도 그대로두고는 그 성질을 파악할 수 없다. 일페 만물이 형체없는 기운이 불어나고, 형체없는 기운은 형체없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업종業種으로 불어나며 형체없는 아뢰야식은 일체 명상(名相:귀에 들리는 것을 명, 눈에보아는 것을 상이라함.)이 없는 대원각성大圓覺性으로 불어 난 것이니 대원각성은 곧 우주의 진리는 말길이 끊어졌음으로 말할 수 없고(言語道斷), 마음으로 미칠 것이 아니므로 생각이 멸하여(心行處滅) 일체명상一切名相이 없으니 空하고 有한 것으로 말 할 수 없다.
우리가 본래깨칠 성품이 분명히 있짐만 알지못하는 것은 전기와 전성이 우주에 가득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과같다. 또 비유하면 허공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멸하며, 바람이 불다가 쉬며, 산하대지만물이 허공을 의지하여 있으면서 온갖 변화를 일으키지만 허공은 언제든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바닷물이 움직여 파도가되니 물이 돋 파도요, 파도가 돋 물이다. 그러므로 물과 파도가 곧 둘이아닌것 ㄱ같아서 마음밖에 깨달음覺이 없고 깨달음 밖에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삼계의 만법萬法이 유심唯心ㆍ유식唯識이라, 유심唯心ㆍ유물唯物을 둘로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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