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7, 2012

경봉 정석 대종사

경봉 정석 대종사 鏡峰 靖錫 大宗師
경봉스님의 행장
경봉스님은 1892년 4월 9일 경남 밀양군 부내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였고 1908년 불찰대본산 통도사에서 성혜性慧스님을 은사로 하여 득도하였다.
스님은 내원사, 금강산, 마하연, 석왕사, 통도사, 극락전 선원 등에서 평생을 禪과 더불어 살아오셨으며, 법명은 정석靖錫, 법호는 경봉鏡峰이다.
스님은 75세 때 1966년 윤달에 뜻있는 몇몇 신도들이 경봉 자신의 수의壽衣를 짓는 것을 보시고 깊은 사색에 잠기시다 말씀하시기를
『여러분들이 니의 수의壽衣를 만드는 것을 보니 마음도 이상하고 섭섭한 생각이 든다. 본래는 거래생멸去來生滅이 없지만 세상 인연이 다해가는가 싶으니 정말 무상無常의 감이 더욱 느껴진다.
금년 병오년에서 무진년까지 39년 간인데 그동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사람에게서 받은 부고訃告가 무려 6백 40여통이나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다 갔는지, 한번 가더니 소식이 없구나.』
75세의 노경老境에 이른 스님의 얼굴 모습에 자비와 와로움이 깃들어 있더니 이렇게 계송을 읊으셨다.
『옛부처도 이렇게 가고
지금 부처도 이렇게 가니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청산은 우뚝섰고 녹수는 흘러가니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볼지어다.』
스님은 1982년 91세로 입적하시니 선사의 훤출하고 자상한 모슴을 이제는 대할 길이 없다..
대중에게 법을 보이다
밝은달이 비칠 때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 밝은 달이 비친다. 참으로 이러한 때가 좋은 사절이다.
도대체 인생의 진리란 무엇인가? 세삼사람들이 무엇이거니 무엇이거니 하고 부르짓는 진리가 있지만 인생의 生死大事가 참으로 큰 것이다. 나고 죽는 일에 초월하려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하셨다. 실은 처음 6년간은 신선도神仙道를 닦다가 그릇된 줄 알고 다시 6년 고행하셨으니 12년을 수행하신 것이다.
참으로 중생들은 인생의 사는 목적도 모르고 인생의 삶의 참된 가치관과 참맛도 모르고 살다가 부지불각不知不覺에 죽고 마는 것이다. 이 몸은 살아 있을 때에나 가치가 칬지 들어갔던 숨이 나오지 않으면 곧 내생이요, 죽으면 공동묘지나 사설묘지에 묻혀서 흙 한줌되고 화장하면 재 한줌되고 마니 이렇게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중생들은 참으로 생사바다에서 나고 죽는 것이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은 나고 죽는데 물들지 않고 나고 죽는데 초월하며 나고 죽는데 해탈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옛 부처도 이렇게 가고 이제 부처도 이렇게 가니 중생들은 다만 가고 오는 것이 본래없는 다만 이름 뿐인줄 알아서 빛과 소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空한 것이 곧 빛이요 빛이 곧 공한 것이니 공한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뿌리와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 등 여섯 티끌과 여섯가지 뿌리에 대한 여섯가지 알음알이로 분별하는 것을 합하면 십팔계가 되는데 이것과 사대오음이 곧 공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태어나기 전에 잘못되고 죽은 후에도 잘못되니 태어날 때마다 그릇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숨이 땅에 떨어질 임종시에 무생無生의 이치, 즉 본래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알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알면 잘못되고 잘못되는 것이 마침내 그릇치는 것이 이니다.
이러한 도리에 이르러서는 일천 부처도 이 산눈活眼속에는 티끌이되고 이르는 곳마다 보리菩提의 대도량大道場이요 천 백억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도 이러한 도리에는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즉 관하는 것이 자재한 보살이요 또 무위진인無位眞人이니 지위가 없는 참된 사람이요 또 자기의 주인공이라 한다.
그러므로 장부가 스스로 충천衝天하는 힘이 있어 부처가 행하는 곳도 가지않으니 이것이 곧 일을 마친 범부요 격에 뛰어난 대장부로다. 이도리를 모든 사람들이여 아는가?
말을 하고저 하나 말이 미치지 못한다. 대중은 동쪽산 하수河水 북쪽에 잘 사량思量해 볼지어다 상위에 팥죽이 반은 푸르고 반은 붉다. 허허…….미소할 뿐……
나의 말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의 모든 법문이 여기 다 들어있고 석가부처님의 사십구년간 법문하신 팔만대장경이 여기 다 들어있다.
喝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 오시다.

結制示衆
잠시 계시다가 대중을 둘러보고 눈을 크게 뜨신다음 말씀하시기를,
지극한 도리는 말로서 할 수 없으니 어찌가히 전하며, 가히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할까.
이러한 도리가 비록 물物에 응하여 주나 무물無物이요, 무물이라는 말도 자몰自沒이다. 그러나 소리가 끊어진 말이 도리어 널리 묭응妙應하고, 도가 어둡고 밝음이 아니나 말과 묵묵한데 한가지로 취한다. 이 일을 누가 들어서 말하며, 물물物物이 비고 넓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에 함께 통하니 티끌같이 많은 품류品類가 하나가 아니요, 설사 동일하다 할자라도 모든것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원음이 맑고 맑아 범부와 성현이 함께 통하며 천만가지가 지혜의 종자를 훈습하므로 이 一門이 곧 무량한 의지義旨이다.
그러므호 산과 물이 말없는 법을 설하고 초목이 늘 설법함이 끊어짐이 없으니 깊고 깊으며 다시깊다. 그러나 이것도 곧 말과 글이니 비유하자면 뱀을 그리는데 발을 붙이는 격이다.
아, 종두 鐘頭야! 오늘이 선원禪院에 겨울안가冬安居 결제結制하는 날이라 하지? 오늘모인 사부대중四部大衆이여! 탁자위에 밥과 떡 과실과 나물이 많이 놓여 있으니 먹기를 다하고 귀당歸堂하라.
무영안비동윤월 無影雁飛冬潤月
그림자 없는 기러기 찬 시내 달빛에 날고,
석사동주두이서 石獅東走斗移西
돌사자 동으로 달아나고 북두성은 서쪽으로 옮겨가네.

결제시중結制示衆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부처와 조사도 입을 벽위에 걸었으니 이 도리를 아느냐 ?
이 도리를 얻었다 해도 옳지않고 얻지 못했다 해도 옳지않으니 이 도리를 말해 보아라. 법상레 오르기 전과 오른 뒤에 이와같이 설하고 이와같이 설했으니 「이와같다」고 하는 이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일은 그만 두고 지극한 이치를 봄見에 광명을 드리우고 진리를 들음에 메아리가 응함이라. 보고 듣는 법이 진상塵想을 이루면 大千世界에 빛이 흐르고 메아리가 헤아릴 수없이 많은 세계에 전하여, 나타남을 대함에 그림자를 전부들어 내어, 있고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소리가 이 소리가 아니요 빛이 이 빛이 아니다. 이것은 빛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나, 산이 높음에 물이 급히 흐르고 봄이오면 꽃이곱게 핀다.
눈으로서 가히 볼 수 없고 귀로서 가히 들을 수 없다. 보는 것도 아니요, 듣는것도 아니나, 분명히 보고 들으니 빛을보고 소리를 들음이 육근과 육진에 벗어난다. 이 법이 보고 듣는데 구애拘碍받는 것이 아니니 남에게 잘못 전하지 말라.
어제는 영축산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산빛을 보았는데,
오늘은 千聖山에서 법상에 오르니,
어제가 옳은가, 오늘이 옳은가? 애닲도다.
여기서 양산길이 삼십리로다.
좌단천차고로두 坐斷千差古路頭 앉아서 온갖 차별을 옛 길위에 끊으면,
해개공안제인주 解開空岸濟人舟 저 언덕 건너는 뱃길을 열어 줄 것이네.
명명일구해군상 明明一句該群像 밝고 밝은 한 글귀가 망상을 꾸려,
선창비성작마구 善唱非聲作麽求 소리 아님을 연설하니 다시 무엇을 구할 것인가.

반산림半山林
동짓달 그믐날 구순안거 절반되는 날 결제와 해제 중간인, 반산림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종사宗師의 설법은 말이 많지 않으니, 법문은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전에 있고, 종사의 운과 대중의 눈이 서로 한 번 마주치는데 있는것을, 뱀을 그려놓고 발을 붙이는 것처럼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한번 친 것이다.
그런데 간혹 넙자衲子들이 이 도리를 분명히 알지도 못하면서 언어와 문자만 익혀서 어떤것이 禪이고 道이며, 또 무엇이 삼요三要이며 삼구三句라 하기도 하고, 혹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나무라기도 하는데, 이낱도리這箇道理에는 부딪칠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은 선가에 반삼림인데, 차담과 진수를 잘 차려 먹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한마디 법문을 하겠다.

반반수여백 생시대조홍 飯飯水與白 生枾大棗紅
밥과 떡이 물과함께 희고, 감과 대추는 붉도다.
상두진차색 황흑겸차청 床頭珍差色 黃黑兼次靑
상위에 차린 진수의 빛갈은 누르고 검고 또한 푸르기도 한데
형형물물체 각구육미주 形形物物體 各俱六味住
모든 물물의 당체엔 각기 여섯가지 아름다운 맛 감추었다.
진수일구이 귀처역무흔 盡收一口裏 歸處亦無痕
모두 한 입에 넣으니, 돌아간 곳 또한 흔적이 없네.

풍한빙사옥 설강매토향 風寒氷似玉 雪降梅吐香
바람은 차게불고 어름은 옥같네 눈속의 매화는 향기를 토한다.
진세수행자 호권차경광 塵世修行者 好眷此景光
어지러운 세상 수행자들이여, 이 풍경의 빛을 잘 볼지어다.

결제시중
법상에 오르시어 묵묵히 계신다음 주장잘를 들어 법상을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산하대지山河大地를 천하노화상天下老和尙이 백번이나 부순다면 어떤것이 이 모든 사람들의 비공鼻空인고?.
일러도 얻지 못하고 일르지 않더라도 또한 얻지 못한다. 이낱這箇는 가희 형용키 어려우며 가희 설명키 어려우니, 마음이라고 하여도 마음이 아니고 부처라고 하여도 무처가 아니며, 물건이라고 하여도 물건이 아니다.
그러면 저개這箇가 무엇인가? 석가노자釋迦老子도 꿈을 설했고, 삼세제불三世諸佛도 꿈을 설했고, 천하 노화상들도 꿈을 설했으니, 또한 묻노라. 대중은 일찌기 꿈을 지었느냐, 마느냐? 만약 꿈을 지었으면 야반을 향해서 一句일러 보아라. 잠시 계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인간별유진소식 人間別有眞消息 인간에 별로히 참소식이 있으니
호향치시설몽춘 好向此時設夢春 좋게 이 때의 꿈 설하는 것을 볼지어다.
설법을 하려고하니 할 말이없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진리는 마음 행할 곳이 없고 말 길이 끊어져서 일체 이름과 형상이 없다. 이러한 현현玄玄하고도 묘묘妙妙한 이치를 입으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말뿐이요, 글로서 태산같이 수 없이 쓰더라도 다만 글 뿐인 것이다.
비유하면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밥의 참 맛을 말로서 형용하기 어렵고, 장미꽃 향기를 맡고 그 냄새를 글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부처님게서도 사십구년동안 설법하시고 최후에는 다자탑多子塔앞에서 가섭존자와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을 뿐이요, 또 영상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존자는 미소하였을 뿐이다. 또한 열반하실 때에는 니연하泥蓮河에서 곽槨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셨을 뿐이다.
그리고 유마거사維摩居士도 32명의 대보살과 더불어 말로서 문답도 하고 설법도 하다가 구경究竟의 불이법을 설하게 될 때에는 묵언하였을 뿐이다.
이 법은 입을열면 그릇치고, 열지않으면 잃어버리고, 열지도 닫지도 않는다면 10만 8천리나 어긋난다고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한다.
이 법은 한 생각 일어나가 전에있고, 눈과 눈이 서로 마주쳐보는데 있고, 삼라만상에 다 법이 있으며, 중생의 일상생활에 다 법문이 있다. 우리가 가고 오는데 도가있고, 물건을 잡고 놓는 것이 곧 禪이다.
또 이렇게만 집착하여 알아도 않된다. 설사 현현한 것을 말하고 묘묘한 것을 말하더라도 똥물과 오줌뿌리는 것과 같고, 방망이로 치고 큰소리로 할喝을 할지라도 소금을 가지고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금도 불에 넣어서 단련하고 단련하여 불순물이 다 제거되어야 순금이 되어 세계에 통용하는 보배가 되듯이 사람의 마음도 닦고 수련하여야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의 삼독심이 없어진다. 팔만 사천 번뇌망상이 菩提로 化하여야 그 마음이 밝고 밝아 불매不昧하고 요요了了하여 마치 밝은 거울이 허공에 달린 것과 같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모든사람이 알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알면 저 법에 자재하고 사리에 통달하는 출격出格대장부가 될 것이다.
行人路上에 望石頭로다.
망석두 망석두여!
宮商의 맑은 노래를
이 세상에 몇이나 알고 듣는고?

불국사 석가탑 사리봉안 법어
법좌에올라 대중을 한번 둘러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설법은 말과 글을 의지해서 하는것도 있고, 말과 문자를 떠나서 하는 것이 있는데 참으로 적실한 설법은 종사가 안장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와, 여러분들 앞에서 눈으로 여러분들을 한 번 둘러보고, 여러분들은 종사의 얼굴을 한 번 보는데 다 글어있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데 도가 있는 것이다.
말과 글로서 법문을 듣는것을 다문이라하고, 말과글을 떠나서 여래의 비밀장을 아는 것을 구족다문俱足多聞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비밀은 남이 모르게 몰래 숨기는 것이짐만은 부처님의 비밀장은 화반탁출和盤托出로 여러사람 앞에 들어내 보여도 모른다.
종사가 법좌에 오르기 전에 좋은 소식이 있고, 종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고? 하는 여러분의 그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 자리가 곧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곳이요,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곳이다.
손바닥을 들어 보이시고, 손가락을 꼽으시며 왼손도 손가락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른손도 손가락이 하나 둘 셋넷 다섯 「5X5=25는 원래로 10이다.」여기에 능히 의심없을 사람이 누구냐? 이밖에 현현玄玄하고 오묘한 것을 구한다면, 第二頭 第三頭에 떨어진다.
오늘은 석가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날인데, 부처님은 모시지 않았다. 오늘 이 종사는 여러분들에게 각자 자기를 찾아 자성불自性佛을 발견하여 봉불식奉佛式을 해야하고 사람마다 사리舍利가 있으니, 이것을 봉안하라고 권한다.
석가탑에는 부처님의 사리만 봉안했지만 여러분에게는 산 부처가 들어있어 오고가는데 아주 편리하고 자유자재 한 것이다.』
주먹으로 허리를 치시며 喝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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