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6, 2012

만행 큰스님과의 면담

만행 큰스님과의 면담
큰 스님은 내가 스님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훨씬 전부터 알고 계셨다. 하버드를 졸업하기 6개월 전에 프라비던스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특별 면담을 신청해놓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만남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 큰 스님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심지어 그의 방문에 노크했었을 때의 내 심리상태와 노크소리까지도 죄다 기억하고 있다.
내가 방으로 들어섰을 때 큰스님께서는 가부좌를 틀고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계셨다. 얼굴은 아주 맑고 빛이 났다. 피부는 마치 아이처럼 부드럽고 깨끗했다.
많은 도반들은 저마다 큰스님과 처음 가진 개인 만남을 추억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같이 큰스님의 말고 빛이 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깊은 눈에 반했노라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얼굴과 몸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하버드나 예일에서 만난 그 어떤 천재적인 철학자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학자들의 얼굴은 노소를 막론하고 찡그려져 있었으며 어두웠다. 그들은 하루 종일 우리에게 진리와 빛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들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스님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저 얼굴, 저 눈, 저 분위기로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삼배를 드리자 그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오! 잘 있었어요?”
“예, 큰스님.”
그는 나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래, 무슨 질문이 있읍니까?”
늘 그렇듯 따뜻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큰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면 새길수록 삶에 아주 깊은 변화가 옵니다. 수행하면 할수록 스님이 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순간, 나는 큰스님의 눈치를 재빨리 살폈다. 무척 좋아하시리라 생각했는데 그분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기쁜 표정은 고사하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뭔가를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큰스님은 아주 심각한 얼굴로 短珠를 만지작거리기 시작 하셨다. 그 모든 일이 단 2, 3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나에게는 한 시간처럼 길었다.
마침내 그분은 내 눈을 그윽하게 쳐다 보셨다. 더 이상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마 나를 제자로 받지 않으시려는 모양이구나. 내가 큰 실수를 한 게 틀림없어 이를 어쩌지.’
그러더니 갑자기 이렇게 물으셨다.
“남자 형제가 몇인가요?”
도대체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씀이람.
“다섯 명입니다.”
“아아 그래요, 하하 하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스님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은 다시 밝아졌고 눈은 빛났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방안 가득 던지셨다.
“오! 댓츠 원더풀, 노 프라불럼.”(Oh ! That’s Wonderful, No problem.)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큰스님의 웃음에 적이 안심이 되어 같이 따라 웃었다.
잠시 후 큰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형제가 없이 자랐읍니다. 내 아버지도 그랬고 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 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것은 바로 대를 끊는 것이었지요. 한국에서는 대가 끊기면 엄청난 불효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3대 독자가 스님이 되겠다고 했으니 부모님 충격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불효 중에서도 가장 나쁜 불효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형제가 많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원더풀 원더풀 노 플라불럼.”
그는 다시 웃었다.
나는 큰 스님의 큰 뜻을 그제서야 알아듣고 그의 세심한 배려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런데 큰스님, 저에겐 다른 큰문제가 있읍니다.”
나는 여자친구 얘기를 했다. 그녀는 큰스님도 잘아는 제자였다. 나는 큰스님께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출가를 할 수 있을지 여쭈었다.
그러자 큰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상태에선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저 수행만 열심히 하십시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희가 올 겁니다. 서로 많은 말을 해봐야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알겠지요?”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대답했다.
“예, 알겠읍니다. 큰스님, 그렇게 하겠읍니다.”
방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소를 머금고 계시던 큰스님은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씀하셨다.
“스님이 되는 일은 좀더 빠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읍니다. 읿반 사람들 역시 깨달을 수 있지요. 하지만 어렵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수행하면서도 마음속은 엄청나게 싸움을 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갖고 아이들을 갖게 면 아무래도 돈도 벌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고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빠른 길로 들어섰읍니다.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하하 하하.”
승복을 빌려입고 중국으로
액크 교수에게 제출할 보고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스님이 되는 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지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나는 무상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992년 8월이었다. 무상스님은 숭산 스님의 비서 업무를 보고 계셨다.
무상스님은 며칠 후 중국 승려들이 숭산 큰스님을 초청해 가르침을 듣는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다음주에 일행들이 떠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 행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과 남한 사이에는 어떠한 외교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숭산 큰스님의 법문은 공산주의인 중국 땅에서 남한 승려로서는 처음으로 행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중국 승려들이 세계 모든 위대한 선사들 중에서도 특히 큰스님을 유난히 따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중국 승려들 몇몇이 홍콩이나 대만, 싱가포르에 갔다가 그곳에서 행하신 숭산 큰스님의 법문과 가르침을 듣고 감동해 본국으로 돌아가 이를 널리 알렸던 것이다. 그들은 영어를 배우면서까지 큰 스님의 영어 법문집을 밀수해 읽기도 했다.
“그럼요, 가야지요.”
무상스님의 제의에 선뜻 가겠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그 달 30일 도안스님, 도문스님 두 분 미국인 스님들과 함께 LA로 떠났다.
나는 비록 그녀와 나 사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비행기를 타면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그리고 우리 사이에 어떤 변화가 올지 어림짐작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약속한 2주일 후에 꼭 돌아오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LA에서 무상스님과 만났다. 그리하여 나는 세 미국인 스님들과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LA를 떠나기 전 무상스님이 내게 삭발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고 제안 하셨다. 그는 스님이 되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그러면서 질긴 인연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번 중국 행이 나에게 뭔가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줄 역사적인 일이 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다. 나는 흔쾌히 스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완벽한 삭발은 아니었다 .군인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약간 남겨놓았다.
무상스님은 내게 승복을 빌려주셨는데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자 기분이 좀 묘했다. 스님이 되는 길로 한발한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들은 내게 잿빛 승복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즐거워하셨다. 나는 정말 승복이 편했다.
신기한 것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스님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내 마음속에 그렇게 끈질기게 자리했던 욕망, 미련, 머뭇거림이 싹 가셨다는 것이었다. 좀더 자유로워졌다고나 할 까. 머리 깎고 승복을 입으면 구속을 받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리고 스님들이 정말 가족 같고 형제처럼 다가왔다. 전보다 훨씬 더 가볍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 듯했다.
우리는 마침내 서울 화계사에서 큰스님을 뵈었다.
며칠 동안 화계사에 머물면서 용맹정진 수행을 했다.폴란드 비구 스님 또 다른 미국 비구와 비구니 스님, 독일 비구니 스님들이 우리 일행에 합류했다. 우리 모두는 일단 홍콩으로 갔다. 그리고 홍콩에서 하루 쉬면서 향후 중국 일정에 대해 들었다.
나는 홍콩을 떠나 중국으로 가기 전에 큰스님께 출가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다. 이번 중국 여행이야말로 내가 스님이 되는 결정적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도약이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제 몯든 것이 명확해졌다. 아직까지도 모든 의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밖에는 없었다. 그 동안 내가 걸어온 삶은 출가를 위해 한발 한발 다가선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했던 모든 고민들은 모두 바보 같은 일일 뿐이었다. 더 이상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스님이 된다는 일, 특히 미국 사회에서 불교 수행자가 되다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다가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승가생활로 들어가는 일은 엄청난 결심이 서지 않고서는 안되는 일이다. 항상 똑 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머리도 삭발을 해야 한다. 마음은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과연 애 몸이 잘 따라줄 것인가. 내 업은 매 순간 이를 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침내 큰스님의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셔요.”
우렁차고 큰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났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큰스님께서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한가지 사의 드릴 게 있는데요.”
“그래요? 뭐든지 말해보세요.”
나는 신발을 벗고 그에게 큰 절을 올렸다.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소리가 큰스님에게까지 들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몇 달 전 제가 출가하고 싶다는 말씀, 혹 기억하시는 지요. 이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무릎위에 놓인 내 두손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방안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건만 등줄기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오, 댓츠 원더풀. 스님이 되고 싶다 구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구요. 댓츠 원더풀 베리 베리 원더풀.”
그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흘렀고 얼굴은 미소로 환하게 빛났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스님이 얼마나되고 싶으세요. 90퍼센트? 99퍼센트? 아니면 100퍼센트?”
큰 스님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계셨다. 그 눈빛이 너무 강해 그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눈빛은 내가 못 보는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약간 두려웠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 99퍼센트쯤 됩니다. 큰스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큰스님은 내 입에서 ‘99퍼센트’라는 말이 떨어지기 훨씬 전부터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그는 이미 내 마음을 보고 계신다. 다만 애 마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 입이 얼마나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지 시험하고 계신 거야,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어려운 선택의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다.
그토록 여러 해 동안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지막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니. 그러나 나는 이미 서원을 했다. 내가 내리는 이 결정은 마지막이고 영원한 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습관을 버리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가.
나는 그 1퍼센트 앞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으음…… 99퍼센트는 좋지 않아요.”
“…….”
“ 스님이 되는 것에 단 1퍼센트라도 주저함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 1퍼센트가 나중에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 1퍼센트는 나머지 99센트보다 강합니다. 1퍼센트는 점점 자라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주무를 것입니다. 그러면 포기를 하고 다시 돌아갈 겁니다. 99퍼센트가 명확해져 완전히 100퍼센트가 될 때 나를 다시 찾아오세요. 오케이?”
“예, 알겠습니다. 큰스님.”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 절을 올리고 신발을 신고 방을 나왔다.

수영장에 가서 다이빙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 당시 내 마음속에 일었던 주저와 머뭇거림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빙하러 올라갈 대는 얼마나 자신감에 차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분이 이는가. 그러나 일단 다이빙 판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와 물 사이에 거리가 느껴지면서 갑자기 두려움이 일지 않는가. 와아 ! 저 먼 곳을 어떻게 떨어지나…….당시의 내 마음은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일단 스님이 되면 돌아와서는 안 된다. 다시 승복을 벗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큰스님을 만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부끄러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찾고 묻고 생각하고 방황해 결국 여기까지 왔건만 이렇게 여지없이 흔들리다니.
이제 마지막 문만 열면 되는데 이렇게 머뭇거리다니, 이 방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앞으로 완전히 다른 코드로 살게 될 내 앞날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내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인가. 아니면 부모님에게 끼칠 불효에 대한 걱정인가.
물론 나는 내 스승의 가르침을 100퍼센트 믿는다. 그의 가르침과 삶의 지혜는 예일이나 하버드에서 수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철학공부보다 더 위대했던 것이었다. 그토록 찾아 다녔던 진리였다
그런 강한 확신 속에서도 내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이 방해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인가……
못난 폴, 못난 폴……
자책감과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파고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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