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8, 2012

만행 오케이 원더풀 인터뷰

만행 오케이 원더풀 인터뷰

신원사에서 수행한지 한 달 반가량 지난 어느날, 아침공양 후 안거를 지휘하는 입승스님(Head monk) 이 “오늘 아침에 숭산 대선사님이 이곳에 오십니다. 법문 후에 여러분 모두를 다 개인적으로 만나실 겁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미국포교를 마치고 오늘 아침 아홉시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하셔서 바로 이곳으로 내려오십니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흥분과 설렘에 부풀었다. 청소도 더 열심히 하면서 대 선사님 맞을 준비를 했다.
나는 지난 한 달 반 동안 수행을 아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도 남들처럼 누워있지 않고 대웅전으로 가서 1천배를 했다.(거의 수행에 걸신이 들려 있었다.) 물론 어려웠지만 어떤때는 아주 행복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좋은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좋은 경험에 대한 기억도 나타났다 사라지고, 분노, 두려움, 나쁜기억, 행복, 의심, 욕심, 갈망 같은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왔다갔다 하는 생각들 뒤에는 뭔가 좀더 맑은 것, 좀더 순수한 뭔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행을 하면 할 수록 나는 내 마음이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그래서 내얼굴 표정이 바뀌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동차 유리에 서리가 가득끼어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서리 때문에 바깥이 잘 보이진 않지만 서리를 벗겨내면 바깥풍경이 어떠하리라는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내 대선사님이 도착하셨다. 그의 에너지와 우리의 에너지가 합쳐져 방안에는 놀랄만큼 활기찬 기운이 넘쳐 흘렀다.
그날은 나와 큰스님과의 네번째 만남이었는데 스님을 만날 때마다 나는 큰스님의 에너지의 맑고 깊음에 감동을 받는다.그의 에너지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보통 인간에게서 풍겨나오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선방에 모두모여 큰절을 세 번 올렸다. 그는 환하게 미소지으면서 아주 큰 목소리로 “여러분 모두 안녕하세요”하면서 우리 얼굴을 차례차례 돌아보시며 “얼굴이 아주 좋아요, 하하하”하고 웃으셨다. 이 大人, 큰 깨달음을 얻으신 대선사가 어쩌면 저렇게 아이같은 미소를 지우실수 있을까.
그후 우리는 선방으로 다시 돌아가 참선수행을 하면서 큰스님과의 개인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면담은 선방 옆 방에서 행해졌는데 가끔 흘러나오는 큰 웃음소리에 우리는 수행하면서도 그소리에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면담을 마치고 오는 사람들마다 아주 환하고 밝은 미소를 띤 채 선방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내차례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일어서려고 하니 사뭇 다리가 아파왔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매번 큰스님을 만날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그렇게 긴장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실제로 이번 인터뷰는 수행을 시작한 뒤 이뤄지는 본격적인 첫번째 공안 인터뷰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흥분과 설렘에 몸이 떨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태양이 방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환한 미소와 달덩이 같은 얼굴, 빛이나고 있었다. 강하고 맑으면서도 따뜻한 힘이 느껴졌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큰스님이 물으셨다.
“질문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좋으니 해보셔요.”
나는 고개를 저우며 별로 없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너무 긴장이 돼 무엇부터 여쭈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오 케이, 그럼 내가 하나 질문을 할게요. 당신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미국에서 왔읍니다.”
순간 큰스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케이, 하나더 묻겠읍니다. 부처란 무엇이지요?”
나는 손다닥으로 바닥을 쳤다. 탕.
“오케이, 원더풀, 그다음은?”
“벽은 하얗고 선사님 눈이 갈색입니다.”
“좋아요, 좋아요, 원더풀.”
큰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아주 행복한 표정이 되셨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셨다.
“왜 하늘은 푸르지요?”
“……이이돈…노우.”
“좋아, 좋아, 그런 마음을 갖고 정진하세요. 온리 고 스트레이트 돈 노우 (Only Go Straight Don’t Know)>”
그는 항상 주장자(긴 지팡이)를 들고다니시는데 주장자로 내 단전을 가볍게 치셨다.
“이 센터가 튼튼해져야 해요. 지금은 좀 약해요. 오케이?”
“예, 알겠읍니다. 선사님”
나는 내친 김에 말을 이어나갔다.
“선사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자 제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선사님의 가르침은 저를 비롯한 우리모두에게 가장 위대한 복음입니다. 저는 지금 록펠러보다도 더 부자 같읍니다.”
그는 박장대소 했다.
“텡큐, 텡큐, 하지만내가 당신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당신 자신안에 이미 수백만 달러가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를 뿐입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나는 스님 방을 걸어나오면서 너무 너무 행복했다.
큰스님을 만난 뒤 내 수행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갔다.

벽암 큰스님
나는 이 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신원사 조실스님이신 벽암 큰스님이다.
벽암 큰스님은 이틀에 한 번씩 우리에게 법문을 하셨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스님이 옆에서 통역을 해주셨다.벽암 큰그님은 신원사의 큰스님인데 한국 조계종단에서 매우 존경하는 큰스님 중 한 분이다.
벽암 큰스님은 법문 때마다 우리에게 “여러분들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숭산 큰스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스승에게 뭘 배우려면 먼 길을 걸어 스승이계신 깊은 산으로 가야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사는 여러분이 수행하는 곳으로 직접오신다. 이 얼마나 영광되고 행복된 일이냐. 이 기회를 절대 낭비하지 말아라”고 강조하셨다.
그는 60대 후반이 다 되어가는 노스님이었는데도 각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철처럼 강했다. 벽암 큰스님에 대해 한국 스님들은 아렇게 말씀들을 하셨다. 그 노스님은 매우 어려운 분이라고
어느 날 벽암 큰스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조계종에서 교육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어요. 당시 나는 한번도 웃은 적이 없었지요. 많은 스님들이 나를 두려워했습니다. 무섭다고 피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나는 여전히 무서운 표정으로 일을 했지요. 그게 스님의 도리에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ㅏ. 한국 불교 사회는 유교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많이 웃는 사람을 실없다고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숭산 큰스님을 뵈었는데 활짝웃고 아주 행복한 얼굴이더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모두 아시다시피 그는 위대한 선사님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선사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고 선사님 주변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요.
그래서 나는 약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서점으로 뛰어갔지요. 그리고는 《웃음의 미덕》인가하는 제목을 발견하고 선뜻 그 책을 샀읍니다. 무슨 항공사 스튜디어스인가가 쓴 책이었다고 가억되는데 아마 예절교육이나 그런것을 가르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책은 미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는데 나름대로 나에게 인상적이었지요. 그 후 나는 ‘미소 수행을 하기로 결심했읍니다. 웃기 싫어도 억지로 미소를 띄려고 노력한거지요. 그런데 그후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기 사작했읍니다. 숭산스님에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벽암 큰스님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벽암 큰스님은 늘 그렇게 우리에게 ,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얘기하시는 것처럼 다정하게 삶의 지혜를 주셨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그이 이야기와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어느 날 누군가 벽암 큰스님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50년간 스님 생활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르침 하나를 주십시요.”
그러자 큰슨님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화장실에서 이빨 닦을 때 물로 입가심하면서 서서 하지말고 앉아서 하라는 것 왜냐하면 입가심하고 나서 물 벧을 때 옆 사람에게 물이 튀니까.”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그의 어린아이 같은 맑고 순수한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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