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31, 2012

스님은 누구십니까?

구지[俱脂] 큰스님 이야기

"아니, 이 무례한 비구니 같으니라고,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구지스님은 이렇게 소리쳤으나 비구니 스님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구지스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비구니 스님이 입을 열었다.
"스님은 중국에서 제일가는 강사이십니다. 이 땅에서 제일 경전을 많이 공부하신 스님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불쑥 찾아뵌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 스님 자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자, 스님은 누구십니까?"
순간 구지스님은 깜짝 놀랐다. 이 무례한 비구니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원가 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탁 막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스님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팔만대장경을 수없이 거꾸로 외고 바로 외었으나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의 말인가. 도저히 모르겠구나.' 구지스님은 완전히 입이 막혔다. 개는 개의 말을 이해하고 고양이는 고양이의 말을 이해한다. 모든 동물들이 그들의 진정한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말이란 무었인가? 무엇이 나의 진정한 말인가. 그것을 찾을 수 있는가.
구지 스님은 비구니 스님에게 부끄러워 얼굴을 바로 들 수 없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 아렇게 쏘아붙인 뒤 홱 돌아가 버렸다.
"어떻게 스님의 말도 모르십니까? 그러시면서 부처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읍니까?"
구지스님은 쇠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돌아가려는 비구니를 재빨리 붙들어 세웠다.
"대체 스님의 스승은 누구요?"
비구니는 "천룡[天龍] 스님입니다."하고 짧게 말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구지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그 비구니 말이 맞아 어찌 내 말도 모르면서 무처님 말씀을 남들에게 가르친다는 말인가?'
구지스님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읽던 책을 내던지고 가사를 입었다. 그리고 대종을 쳐 절안의 온 승려들을 불러모았다. 들과 산에서 일하고 있던 승려들, 경전을 공부하던 승려들이 놀라서 법당으로 몰려드니 모두 7백 명아나 되었다.
구지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어떤 비구니가 나타나서 나에게 나 자신의 진정한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여러분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30년동안 부처님 경전을 가르쳤다. 모든 교리를 이해하고 경전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그것들을 현재 나에게 전혀 도움이되지않고 있다. 나는 지금 비구니의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대답이 나올 때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
제자들은 당황했다. 이제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하느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구지 스님은 단호했다.
"미안하게 됐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더 많은 사람이니 더 이상 강원을 열수가 없다. 부디훌륭한 스승을 찾아들 가거라. 아니, 그 이전에 여러분들도 나처럼 선방에가서 이 큰 물음을 가지고 앉아 깊이 생각해 보아라.언젠가 여러분 모두 결국 죽는다. 더 이상 자신을 바보로 만들지 말라.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질문을 해결해야한다. 본인의 바른 방향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본래말을 찾을 수 있다."
구지는 이렇게 말한 뒤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승려들 몇몇은 울기도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하는 등 큰 소란이 벌어졌다. 방으로 돌아간 구지 스님은 그날부터 하루에 한끼만 먹고 참선 스행에 전념했다. 눕지도않고 그저앉아서 '나의 진정한 말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하며 참구했다. 그동안 절에 남았있던 승려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절 문은 닫혔다. 그러거나말거나 구지는 방에 앉아 벽을 바라보고 깊은 삼매에 빠졌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누군가 절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구지 스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구지 스님의 시봉 일을 맡고 있던 동자승이 참다못해 달려나갔다.
'지금 큰스님은 정진중이오니 만날 수 없읍니다. 부디 돌아가주십시오." 하지만 이 손님은 완강했다. 아무리밀려도 막무가내였고, 소리까자 크게 질러댔다. 거의 한 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였을까. 그지 스님이 이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스님은 여차하면 때려서라도 몰아내겠다는 기세로 큰 막대기를 쥐고 나와 일주문에 대고 소리쳤다.
"썩 물러가라. 웬 미친놈이 감히 이 시간에 소란이냐?" 그러나 손님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그의 표정은 아주 평화롭고 맑아서 어두운 밤인데도 빛까지 나는 듯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스님. 나는 천룡이라는 사람입니다." 주지 스님은 '천룡'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크게놀라 그만 막대기를 땅에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니, 이분이 바로 그 1년 전 비구니 스님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 천룡 대선사님이라는 말인가. 스님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아이고 스님, 죄송합니다. 제가 스님을 몰라뵙고------." 천룡 스님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문으로 들어섰다. "괜찮읍니다. 사실은 오늘 내가 스님께 사과를 하러 왔읍니다. 제게 '실체'라는 비구니 제자가 한 명 있는데 얼마 전에 여기와서 스님께 무례를 범했다 하더군요." 그지스님은 깜짝놀라 말했다. "사과라니요? 그분은 저의 마음을 깨워주신 분입니다. 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끈 분입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있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님을 찾아뵈려고 하던차 였는데 이렇게 직접오시다니, 너무 송구합니다.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구지스님은 천룡 큰스님을 방안으로 모셨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천룡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제자인 실체 비구니가 아곳에 와서 행패를 하고 간 뒤 강원 문을 닫으셨다고 들었읍니다. 7백 명 대중 스님들이 다 흩어지고 게다가 구지 스님은 아무일도 하지 않으시고 벽만 처더보시면서 앉아 계신다고 하길래 제가 하도 미안해서 이렇게 찾아왔읍니다. 그런데 스님, 저에게 뭔가 물을 것이 있으십니까. 어떤 질문이라도 좋읍니다."
구지 스님은 기디렸다는 듯이 말했다. "큰스님, 저는 어떤 종류의 부처님 가르침도 원하지 않읍니다. 경전을 인용하는 것도 원하지 않읍니다. 스님의 진정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요."
천룡 스님은 구지 스님의 눈을 뚫어져라 처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룡 스님은 구지 스님의 눈앞에 천천히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순간 구지 스님의 마음이 섬광처럼 환하게 열렸다. 천룡 스님의 손가락을 보자마자 여태까지 맺혔던 것이 환하게 풀렸다. 팔만대장경의 소식이 그 손가락 하나에 있고, 대 우주의 실체와 진리가 손가락 하나에 있고, 대보살행이 손가락 하나 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구지 스님은 천룡 스님께깊이 삼배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스님은 미소르 지었다. 그러자 천룡 스님이 아렇게 물었다. "그런데 스님은 지금 무엇을 얻었나요?" 구지 스님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천룡 큰 스님은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구지 스님은 모든 생각을 끊고 완벽하게 본성을 깨달은 것아었다. 이것으로 구지 스님은 위대한 선승이 되었다. 그는 절을 떠나 높은 산자락에 있는 암자로 옮겼다. '보림[保任]'을 위해서였다. '보림'이란 밥을 지을 때 뜸들이는 것과 같다. 물이 끓었다 하더라도 뜸이 제대로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깨달음을 얻는것도 같은 이치이다. 구지 스님은 하루 종일 암자에서 수행만 했다. 그러자 많은 신도들이 소문을 듣고 구름같이 몰려왔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무엇이 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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