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 2012

숭산 행원 대선사의 가르침 법화경

법화경 • 法華經 The Lotus Sutra

제법종본래 諸法從本來 All phenimena from their very origin. 본래 모든 법은,

상자적멸상 常自寂滅相 Always have the aspect of stillness and extinction 적멸하여

불자행도기 佛子行道己 When the disciple of the Buddha walks this path. 도룰 행하는 불자는

래세득작불 來世得作佛 He will become a Buddha in future lives.

중국말로 «법화경»은 '실상묘법경( 實相妙法經)'이라고 부른다. 실상은 '참'이라는 뜻이고 묘법은 '신비한 법문' 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신비한 법문'이라는 뜻이다. «법화경»은 어떻게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법화경»은 완벽한 전적의 마음을 얻는 것에 대해 가르찬다. 사실 이것들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얻어야 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생각이 일어나면 우리는 본래 마음을 잃어버린다.

내 말을 듣고 있는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휙휙 흝고 지나가는 망상들을 좇으면 여러분과 나는 완벽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모든 생각을 끊어서 단지 이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돌아오면 완벽하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생각에 대한 집착을 끊으면 내 말과 여러분이 듣고 있는 귀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말하는것과 듣는것이 둘이 아니요, 그것이 이미 부처님이고 예수님이다.

이것은 한국사람만 경험하는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독일, 중국사람만 경험하는것도 아니다. 남자만 경험하는 것도, 여자만 경험하는것도 아니다. "탕!" 나는 때때로 이것을 '원점(primary point)' 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 파리에 있을 때 프랑스 신부님들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나갈 무렵, 일행 중 하나가 전날 나의 법문을 듣고 의문이 생겨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선사님께서는 '원점(primary point)'이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원점과 하느님의 창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나는 그때 지금처럼 테이블을 탕 쳤다. 그게 전부였다. 몇 초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 신부님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얘기하는것은 단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테이블을 치는것은 생각이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부처님이전입니다. "탕!" 우주 이전입니다. "탕!" 하느님의 창조 이전입니다. 당신이 그 지점을 볼수 있다면 신을 볼수 있읍니다."

그러자 다른 신부님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신을 볼 수 있읍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신부님이 입고계신 셔츠가 까만 색이군요."

« 법화경 » 은 바로 이 지점이 "탕!" 어떻게 우리의 본성이고 모든 현상의 본질인지 깨닫게 해준다. 또 이 경지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미래생에 부처가 될것아라고 한다. 아주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어떤 다른 생에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말로 설명이 안되는 것을 어떤 단어로 설명하기 위해 나온 구별일 뿐이다. 실제 우리는 바로 지금, 바로 이 장소가 아닌 때에 부처가 되지 못한다. 어떤 다른 장소, 어떤 다른 시간에 되는 것이 아나다. 무처가되고 싶으면 단지 수행하면 된다. 바로 지금 수행한다면 '다음 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된다. "탕!" 여러분은 단지 이순간을 가질 뿐이다. '다음 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에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이 이미 부처의 마음이다.

부처의 마음을 얻는것은 어렵지 않다. 미래의 어느순간 일어나는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안과 밖이 없이, 주체나 객체가 없는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말한다. 오직 수행하라. 그러면 부처가 된다.

일본 일련종日蓮宗의 추종자들은 '나무묘법연화경 南無妙法蓮經' 을 암송한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이것이 일본의 «법화경» 제목이다. 그들은 이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아름다운 집과 훌륭한 아내를 얻는다고 믿는다. 그 어떤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마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의 진언같다.

그런수행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뭔가 얻고 싶다면 이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올바른 불교공부나 참선수행은 어떤것도 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아무묘법연화경 뿐만아니라 모든 진언 수행의 최종 목표이다. 어떤종류의 진언도 똑같다. 심지어 '코카콜라, 코카콜라, 코카콜라'하고 계속 열심히 반복 외우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空 의 마음을 유지할 것인가? 그것이 절대의 상태이며, 우리가 원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기본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기본원인이 제거되면 우리의 조건과 행복이 나타날수 있다. 이것이 연기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어떻게 기본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단지 그냥 하면 된다. 이 그냥하는 마음에는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그결과 우리는 우주 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원점이라고 부른다. 원점을 유지하면 천천히 기본원인이 사라진다. 생각이 단지 기본원인을 만들 뿐이다.생각을 끊으면 기본원인은 태양열에 증발하는 물처럼 자연스레 사라진다.

열심히 수행하면 이것은 매우쉽다. 그러나 자꾸생각을 하면 그것은 우리의 업을 만들고 업은 태양을 가려 결국 기본원인인 물은 증발할 수 없게된다. 어떤 수행을하든지 큰 물음을 가지고 그냥 해보아라. 노력하는 마음과 큰 의혹을 가지면 어떤 종류의 수행이든 본성을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래전 한국에는 석두石豆라는 이름의 스님이 계셨다. 돌머리라는 뜻이다. 그는 아주 멍청했지만 대단한 노력가였다. 어느 날 석두는 스승에게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스승은 '즉심시불 卽心是佛', 즉 마음이 부처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석두는 이를 '짚신시불'이라고 잘못알아들었다. 즉 짚신이 부처라고 잘못알아들은 것이다. (하하하하하!) 그리하여 그는 3년동안 오로지 '짚신이 부처라니, 이말이 무슨 뜻이냐. 도저히 모르겠다.'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수행방식에 대해 의심을 품지않았다. 스승에게 따져 묻지도 않았다.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오직 매일 이상의 한가운데서 앉거나 일어서거나 먹거나일하거나 오직 집중해서 이질문을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화두로 삼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에서 나무를 해가지고 오다 바위에 발을 찧었다. 지게위 나무가 머리위로 쏟아지고 짚신 한 짝이 멀리 날아갔다. 순간 석두는 깨달음을 얻었다. 날아간 짚신과 그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의 우주가 된 것아었다. 그때 그는 그의 본성을 보았다. 그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부처가 바로 짚신이로구나,"

그는 스승에게달려가 소리쳤다.

"스승님, 스승님, 이제 부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읍니다."

"오, 그래, 네가 깨달은 것을 설명해 보거라."

석두는 갑자기 짚신으로 스승의 머리를 한대 때렸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그것뿐이냐?"

" 내 짚신이 다 찢어졌읍니다.

스승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훌륭하다. 네가 깨달음을 얻었구나."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수행을 해서 오직 하나의 마음을 갖느냐 하는것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오직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수행을 하면 모든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냥하라. 이것이 «법화경»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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