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3, 2012

숭산 행원 대선사의 가르침 법과 윤회

업과 윤희 · 唯識論 과 六途輪廻 因果說
The View od Mind -Only and Karma
육근六根SIX ROOTS . 눈眼EYES, 귀耳EARS, 코鼻NOSE, 혀舌TONGUE, 몸身BODY, 마음意MIND
육식六識Six Consciousnesses . 안식 眼識eye-, 이식 耳識ear- 비식鼻識nose-, 설식舌識tongue-, 신식 身識body-, 의식 意識mind-,
육진六塵Six Dusts . 모양 色color, 소리聲sound, 냄새香smell, 맛 味taste, 감각 觸touch, 마음法mind.
18계 十八界 Eighteen Realms ( 육근 . 육식 . 육진)
현보 現報 Results received in this life 현생에 받는 업
순보 順報 Results received inthensxtt 내생에 받는 업
순후보 順後報 Results received in the life after next 내내생에 받는 업

Thinking mind 未那識 我癡, 我見, 我慢, 我愛, 등의 妄識 Discriminating consciousness 분별심
---->Alaya 阿賴耶識, 藏識 Storehouse Consciousness 의식의 저장고---->>
四生 Four Births 태어남의 네가지 유형
胎 Womb 태생, 卵 Egg skstod, 濕 Moisture 습생, 化 Transformation 화생.
六途 Six Ways of Samsara 육도윤회
--->天堂Heaven 천당(+20)
--->阿修羅 Asura아수라(+10)
--->人道 Huaman Route인간 (0)
--->畜生Animals 축생(-10)
--->餓鬼Demons Hungry ghosts(-20)
--->地獄 Hell 지옥
A. (+10) - (+5) = (+5), (-5) - (-3) = (-2) ~~~(+3)
B. (+15) - (+5) = (+10) (-30) - (-5) = (-25) ~~~(-15)

팔자란 무엇인가? 운명이라는 게 있는가, 없는가? 인간은 몸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우리몸은 '나'가 아니다. 때때로 내 안에 있는 어떤것이 나의 육체를 지배한다. 그것을 '영혼' 혹은 '마음'이라고 부른다. 정신, 에고, 자아, 의식, 영혼, 존재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본래 그것에는 이름과 모양이 없다. 단어 하나로 딱히 얘기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일단 나는 이것을'의식' 이라고 부르겠다.
나무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는 서 있을 수 없고 곧 죽는다. 인간에게도 뿌리가 있다. 부처님은 인간에게 여섯가지 뿌리가 있다고 했는데,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육근이라고 부른다. 눈은 보고 귀는 들으며 코는 냄새맡는다. 또 혀는 맛보고 몸은 느끼며 마음은 인식한다. 이 뿌리들을 통해 우리는 외부 세계를 경험하며, 안과 밖을 만든다. 이 뿌리로 부터 형태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각觸, 마음法의 여섯가지가 나오는데, 이것을 육진六塵이라 부른다.
또 이 육진 각각이 의식을 갖고 있는데, 눈이 색을 보고 알아보는 마음을 안식眼識이라하고, 귀가 소리를 듣고 아는 마음을 이식耳識이라하며, 혀가 맛을 보고 아는 마음을 설식舌識, 몸으로 느껴 아는 마음을 촉식觸識, 뜻으로 헤아려 보고 아는 마음을 의식意識이러한다.
의식이 없다면 육근은 제대로 가능할 수가 없다. 눈으로 말하자면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뜬장님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색맹이다. 눈은 있어도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뜬장님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눈, 귀, 코를 따로따로 가지고 있다면 별 의미가 없다. 각각의 뿌리는 그것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기위해 서로 연결된 의식이 필요하고, 또 이것들이 조화롭게 기능해야만 한다.
내가 오래전 수덕사에서 겪은 이야기다. 어느가을, 스님들이 겨울 3개월 수행(동안거)에 먹을 음식을 마련하기위해 아주 매운 고추를 따고 있었다. 모두들 굵은 삼베로 된 커다란 자루들을 하나씩 차고 있었다. 물론 채 익지않은 초록색 고추는 그대로 두고 빨간고추만 따야 했다. 다들 열심이었는데, 유독 스님들 중 한 명이 아주 빠른 솜씨로 고추를 따고 있었다. 다른 스님들은 자루에 반도 못채웠는데 이 스님은 어느새 가득채워 자루도 묶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스님들이 "어쩌면 그렇게 빠르냐"고 혀를 내둘렀다. 그 스님은 "내가 서있던 곳에는 붉은 고추라 아주 많아 금새 땃다"고 자랑했다. 옆에 서있던 주지스님도 그 스님이 아주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밭일을 모두 끝내고 부엌에 돌아와 바구니를 풀어놓은 순간 일이벌어지고 말았다. 이 스님이 따온고추는 모두 채 익지않은 푸른색 고추투성이었던 것이다. 주지스님은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채 익지도 않은 고추를 땃단 말이냐?" 그러나 그 스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게 어떻게 푸른 고추입니까? 다 붉은 고추 아닙니까?" 하고 따져 뭇는 것이었다.
아뿔사! 이 스님은 색맹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눈 하나만 가지고있다고 다되는 게 아니다. 그런 눈은 세 개, 네 개씩 가져봐야 소용이 없다. 귀머거리 역시 멀정하게 귀를 가지고 있지만 듣지못한다. 감기에만 걸려도 제대로 맛을 볼 수 없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 쯤 했을 것이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 여섯가지 뿌리는 이철럼 의식과 긴밀하게 연경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식이 없다면 비록 외형상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내 친구 이선생은 아주 머리가 좋은데 애석하게도 앞을 못보는 장님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보통사람 못지않은 많은 지혜를 갖고있었다. 그의 집에 들렀을 때 얘기이다. 그는 방안에서 $#171금강경»을 읽고 있었다. 수년 전에 선물로 받았다는 사본이었는데, 천천히 페이지를 한 장 한장 넘기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장님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정말 손가락 하나한에 힘을 실어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이선생, 지금 «금강경»을 읽고 셰시군요. 훌륭하십니다. 하지만 책을 거꾸로 들고 계십니다."
"오! 그래요."
그는 내 말을 듣고 놀란듯이 이내 책 위아래를 바꿨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는 곧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이었다. 잠시후 내가 그에게 말했다.
"오! 죄송합니다. 조금 전 당신이 들고있던 방향이 맞았어요. 제 실수 였읍니다."
"네, 그래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항상 저는 옳게 들고 있어요. 당신은 장난기가 심하신 스님이시군요, 하하하."
나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책을 똑바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느낌으로 책을 똑바로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해와 기억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그는 아주 맑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어느날,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는 김선생이라는 분에 대해 얘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어느어느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의 미름은 무엇무엇이며 그는 어떤어떤 학교를 졸업했고 그의 여동셍은 언제 누구누구와 결혼을 했고 등등 아주 지잘한 것들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 이선생은 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세요?" 하고 물었다.
"저는 한번들으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아요."
더욱더 신기한 일은 그에게 손님이 찾아오면 그는 대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누구인지 곧 알아 맞힌다는 점이었다.
손님들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반긴다. 몇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닥쳐도 그는 그 사람들 각각의 이름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반기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 수가 있을까? 심지어 두 눈이 정상인 우리도 사람을 확실히 기억하기 힘들다. 겉으로는 아는체를 쉽게하고서도 속으로는 저 사람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어디서 만났더라' 하며 기억을 더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이 선생은 달랐다. 한 번은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저사람은 우리가 몇 달전에 단 한 번 만나 불과 몇 분간 얘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문을 열자마자, 그의 목소리을 듣기도 전에 대번에 알아 볼 수 있읍니까?"
이선생은 대답대신 자기 코를 가리켰다.
"문을 열면 냄새가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나는 금방 '이건 박선생 냄새, 저건 최선생 냄새' 하고 금방알아차려요."
그의 코는 아주 예민했던 것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감각기관 중 가장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이 '눈'이라고, 눈을 안 쓰면 눈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코나 귀로 옮아간다. 눈을 감으면 바깥 것들이 더 잘들리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 감각에너지의 80퍼센트가 눈에서 쓰일 것이다. 이선생의 경우는 눈에 들어갈 에너지가 다른곳에 쓰여 여는 사람보다 더 예민한 코를 갖게된 것이다.
장님 사무라이에 관한 아주 유명한 일본영화 주인공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토이치다. 사토는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이었지만 필요할때는 거침없이 그의 칼을 사용하곤했다. 싸움을 싫어했지만 누군가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즉각 싸움에 개입하는 것이었다.많은 사람들이 그를 옆에서, 앞에서, 심지어 뒤에서 공격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토이치는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수 없었지만 그의 칼끝은 아주 섬세했던 것이다. 완벽히 장님이었을지라도 그의 劍은 결코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한 번에 가장중요한 포인트를 쳤다. 힘을 한번도 낭비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되도록 가벼운 상처를 주는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제압하곤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까? 그는 상대방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와 냄새, 바람의 감각으로 모든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에너지만 집중시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말하지만 인간은 육근과 육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모두 18계(十八界)를 구성한다. 우리는 이 18계 속을 헤메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과 슬픔, 오고 감, 이것저것을 만든다. 이 19계가 우리가 살고있는 전 우주를 만든다. 인간은 여섯가지 감각들에 묶이고 집착하면서 이것이 만들어낸 18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모든것은 이 18계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밤에 우리는 가끔 꿈을 꾼다. 그러나 18계는 꿈이 없는 세계이다. 그것들은 우리감각에서만 나와 우리가 깨어있을 때 기능한다. 꿈은 어디서 오나? 꿈을 꾸는 것은 어떤다른 종류의 의식이 또한 우리 마음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기가 이세상에 태어난다. 아기는 눈, 코, 귀. 혀, 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섬세하게 작동하기 전이다. 아기의 인식은 느낌과 감각에 치중돼 있다. 아기는 뱌고프면 '와'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우유를 주면 좋다고 웃는다. 오줌을 싸면 기저귀의 느낌이 좋지 않으니까 운다. 기저귀를 갈아주면 느낌이 좀 좋아진다. 아기는 그저 감각덩어리일 뿐이다. 태어나 처음 2년동안 아기는 단지 감각만을 받아들여 그에 반응할 뿐이다. 태어나 처음 2년 동안 아기는 단지 감각만을 받아들여 그에 반응할 따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좋고 싫은 감각에 대한 분별심이 생긴다. 마음의식이 형태를 띠기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가 오면 행복해진다. 다른사람이오면 그렇지 않다. 단지 "나는 엄마, 아빠가 좋아" 하고만 생각할 뿐이다. 만약 엄마가 함께놀면 그냥 그렇게 할 뿐이다. 어떤 낯선 사람이 함께 놀려고 하면 "난 싫어"하며 와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다음에 엄마가 나타나면 다시 행복해진다. 이것이 제 7식의 시작이다. 나쁜것과 옳은 것,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분별해내는 마음이다.
제 7식은"이건 좋다. 저건 싫다"하는 감정으로 변화한다. 제7식은 분별식 分別識, 말라식末那識이라고 한다. 여기서 제7식은 좀더 발전해, 보고 듣고 좋고 싫은 것에 대해 더욱 섬세해진다. 이것이 저8식, 즉 기억의 시작이다. 기억이란 의식의 저장고 장식 藏識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행했던 모든것이 저장되기 때문이다. 마치 컴푸터와 같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것이 저장되기 때문이다. 마치 컴퓨터와 같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것이 기록되는 것이다. 이 인간의 컴퓨터는 아주 섬세해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모든것이 여기 기록된다. 때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해도, 그것이 바로 순기억(pure memory)의 영역이다.
밤에 우리는 더 이상 보지도, 맛보지도, 느끼지도, 듣지도 못한다. 눈, 귀, 코, 혀, 몸, 생각하는 마음이 활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제7식과 제8식은 결코 쉬지 않는다. 순수한 감각을 느끼는 의지의 마음은 기능을 멈췄다 하더라도 감정과 지적인 마음은 여전히 활동한다. 자고있을 때도 이것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여서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과 습관으로 만들어진 모든 이미지와 감각과 감정들을 경험한다. 어쩌면 하늘을 날지도 모르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악당을 만나 싸울 수도있고, 고향에가서 오래전 친구를 만날 수도있다.
참선을 할 때도 뉴욕에가서 옛 친구를 만난다. 또 샌프란시스코나 바르샤바로 간다. 아마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와 싸울 수도 있고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18가지 영역은 작동하지 않는 다 그러나 제7식과 제8식은 여전히 깨어서 서로 활동을 한다. 그때 경험하는 것은 이것들의 상호관계를 통한 어떤 강한 기억 혹은 감정이다. 이 느낌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실체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꿈의 본질이다. 결국 꿈이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것 혹은 우리의식에 저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앞서 소개했던 내 친구 이선생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처럼 날 때부터 앞을 못 보아 어떤사물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도 꿈을 꾸나요?"
그는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했고,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사람이라든가 산, 바다, 고층빌딩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색깔과 장소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꿈을 꿉니까. 꿈에서 하늘을 본 적이 있읍니까?"
"물론 없지요. 실제로 진짜 하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꿈에는 하늘이 나타나지 않지요. 다만 나는 걷고 먹고 얘기하고 앉고 옷 입고 모욕하고, 이런 꿈을 꿔요."
이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선생은 꿈의 본질, 즉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꾸는 꿈ㅇ이란 단지 눈, 코, 귀, 혀, 몸, 마음을 통해 우리 기억에 씌여진 것들 뿐이다. 눈의식이 없다면 우리역시 꿈에서 어떤 대상을 보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미친사람을 본다. 미쳤다는것은 마음에너지가 불균형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6. 7. 8.식등도 불균형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의 의식은 어떤 강한 욕망만을 좇고 조화롭게 균형을 찾을 수가 없게된다. 6. 7. 8식들이 서로 균형을 찾지 못해서 연결될수 없는 것이다. 종종 길거리에서 혼잦말하는 사람을 볼 수있다. 옆에는 아무도 없느데 옆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웃고 떠든다. 마치 하늘이라도 날 수 있을 듯 자유롭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많은 데서 마구 옷을 벗기도 하고 악마와 싸우기라도 하는 듯 성난표정으로 마구 소리를 지른다. 이런 삶들은 어떤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서 의식이 점점 분리되어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각각의 의식들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고 싶어한다. 제6식은 제7식과 이야기할 것이고 이미지와 기억들을 저장한 제9식역시 다른의식과 소통할 것이다. 제8식은 다른 의식들에 의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제6식에 의해 균형이 흔들린다.
제8식은 모든것을 지배해서 꿈으로 형상화하여 그것이 실제라고밑게 만든다. 왜냐하면 제6식에서 나오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것, 코로 냄새 맡은 것, 혀로 맛본것, 몸으로 느낀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들은 더 이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약간씩 미쳐있다. 거의 모든삶의 의식은 약간씩 불균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음 에너지의 균형을 잡는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참선수행의 첫 번째 이익이다. 수행을 열심히하면 절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두 개의 자석을 음극과 양극에 놓는것과 같다. 누군가 어떤 강한 욕망에 집착해 있으면 그것에 대한 강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마치 두개의 자석을 양극끼리 맞대놓으면 서로를 밀어내는 강력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의식은 분리된다. 그러나 수행을 열심히 하면 우리의 양극 에너지가 우주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마음과 삶에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뭔가 하고 있을 때 오직 하라. 마음속에 어떤것을 만들지 말고 그냥하라. 감정, 조건, 상황을 점검해서 그것에 집착하면 어떤불균형이 나오게 되어있다. 더 오래, 더 깊이 뭔가에 집착하면 마음에 더 큰 불균형과 부조화가 나올 뿐이다. 그러나 맑은마음을 가지고 어떤것도 옳다, 그르다 분별하지 않으면 이 세상모든것이 우리에겐 아무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아주 유명한 공안이 하나있다. 큰스님 서암 스님은 매일 저 멀리 푸른산을 바라보며 법당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스님"이라고 부른 뒤 "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맑은 마음을 가져라"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뒤 다시 "예" 하고 혼자 대답하곤 했다. 또 "언제 어디에서도 정신을 바짝차려 남에게 속지말아라"고 말하고는 "예" 하고 대답했다. 서암 스님은 자신에게 있는 두 개의 마음과 서로 얘기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 미친 행동일 수도 있다. 부르는 스님은 누구인가. 대답하는 스님은 또 누구인가. 스님은 한 명인가, 두명인가. 누군가를 부르는 스님은 제8식이고 대답하는 스님은 제7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공안을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 의식의 기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 큰스님이 제자에게 매일 걸으면서 하루 종일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으라고 시켰다. "누가 이 몸의 주인공인가. 또 어디에 사는 가?" 제자는 이 질문으로 열심히 수행해서 어느 날 깨달음을 얻었다.
또 다른 스님은 제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주 깊이 잠들면 꿈도 안 꾸는데, 그때 너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디 있는냐?"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주인공, 우리의 본래 주인공, 그놈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이 고통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꿈속에서 경험할 수도 있다. 꿈이 의식의 저장고에서 나온다면 어떻게 이렇게 맟선 것들을 꿈에서 볼 수있을까? 그것들은 어디서 왔나. 우리는 때때로 책이나 영화나 TV를 보다 처음보는 내용이나 장면인데도 아주 익숙한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일 우리는 지하철, 가게, 학교 등에서 많은 얼굴과 마주친다. 어렸을 적 만화나 잡지에서 어떤사진을 볼수도 있고 그것들로부터 나온 이미지는 여전히 의식의 창고에 저장된다.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그뿐 아니다. 현생에서 행했던 모든 것 혹은 과거 삶에서 경험했던 모든것이 저장된다. 이 저장고는 시간과 공간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고성능 컴퓨터는 결코 어떤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것에 관련해서, 앞서 소개한 이선생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또 하나있다.
어느 때인가, 내가 일본의 교토 젠 센터에 머물고 있을 무렵이다. 어느 날 내가 오사카에 있는 한국 절에 급히가야할 일이 생겼다. 그러나 가는 길을 제대로 아는 신도가 한 명도 없었다. 신도들 중 한명이 이선생이 아마 그곳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선생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이선생은 대문을 열어주면서 내가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아이고 스님, 어서 오십시요" 하며 흔쾌히 맞았다. 내가 오사카 절 가는 길을 알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며 앞장을 섰다.
장님을 앞세우고 두 눈 멀쩡한 정상인이 뒤따르는 것을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이냐. (하하하) 정상의 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아주 단순한 것도 제대로 못 보는 데 비해 이 선생의 눈은 그야말로 완벽한 무애 無碍의 눈이었다. 우리는 이선생의 집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택시 정류장까지는 약간걸으셔야 합니다."
이선생은 지팡이도 없이 척척 앞장서 걸었다. 그는 약간 검은 색의 선그라스만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장님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길을 걸어 내려와 외쪽, 오른쪽, 왼쪽으로 돈 뒤 길 한가운데 나있는 육교로 길을 건넜다. 그는 육교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육교를 걸어올라갔다.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선생, 어떻게 육교있는 곳을 이렇게 잘 알아요?"
"아,...... 그건요, 집에서 500미터가량 똑바로 걸으면 생선 냄새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지요. 아마 생선가게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50미터쯤 더 가면 주유소가 있어요. 석유내새로 알수 있지요. 그리고 20미터쯤 가면 육교가 나오지요.'' 과연 길 아래를 보았더니 주유소가 있었다. 나에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선생은 이미 냄새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걸어 지하도를 통과하니 택시 정류장이 나왔다. 일본애서는 택시가 아주 재미있다. 길 오른편에 서 있으면 택시가 온다. 기사가 안에서 자동으로 문을 열기 때문에 승객이 문을 따로 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길가에 서 있었고 이윽고 택시가 다가왔다. 이선생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확히 손잡이를 잡고 안에 들어가 앉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선생은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있었고 지팡이도 없었기 때문에 택시기사는 그가 장님인 줄 모르고 있었다. 이선생은 유창한 일본어로 기사에게 오사카에 있는 절 가는 길을 상세히 알려줬다.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교차로를 지나 빵집 앞에서 우회전한 뒤, 두 불록을지나 좌회전해 공원 오른편으로 가십시요."
기사는 이선생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정확히 절에도착했다.
"아니, 당신은 한 번도 운전을 한 적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길을 그렇게 잘아세요?"
"아, 몇 년 전 부처님 오신닐 이곳에 한 번 왔었지요."
나는 놀라자빠질 정도였다. 이건 아주 훌륭한 사례다. 우리 의식의 저장곤는 결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보거나 듣거나 경험한 것들은 영원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죽어 몸은 사라져도 우리 의식의 저장고는 일하는 것을 멈추지않고 우리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전생에 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재 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된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모든것이 우리의 과거 업에서 온다. 우리 의식의 창고안에 저장된 행동과 시고에서 나온다. 같은 식으로 우리가 현생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의 다음생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몇 년 전 내 제자 중 하나가 아이를 낳았다. 내가 미국 뉴헤이븐 젠 센터에 있을 때 그녀는 그 아기를 데리고 왔다. 태어난 지 4일인가 5일 된 아기였다. 아주 작은 체구에 아직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는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옆에 엄마나 다른 사람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생태였기 때문에 그가 사람들을 느끼고 좋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잠자거나 눈을 뜨거나 아기 얼굴은 언제나 커다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주변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든 그는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는 듯했다. 항상 웃음 띤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도대체 이것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 아기는 막 태여났지만 이전 생에서부터의 그의 업이 이 같은 행복한 미소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는 무슨일이일어나는가. 그때 우리몸은 '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지수화풍의 살호작용일 뿐이다. 이미 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제7식과 제8식은 결코죽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었던 업, 그들이 좇았던 습관을 따라 새 몸을 만든다. 살면서 어떤 행동을 했나? 이것이 새 몸을 만든다. '업이 몸을 만들고 몸이 업을 만든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요즘 많은 사라들은 그들의 욕망과 몸의 만족만을 좇아 일생을 허비한다. 이것이 동물릐 마음이다. 오직 나, 어직 나뿐이다. "난 다른사람들은 상관안 해." 개나 고양이는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다. 뱀은 새의 조건에 대해 관심이 없다. 요즘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와 같아지고 있다. 이런종류의 삶이 만들어내는 업 때문에 아마 그들은 다음생애에 동물로 태어날 것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한번 보라. 모든 사람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있지만 안은 뱀의 마음, 개의 마음, 고양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 80퍼센트가 뱀, 개, 고양이의 마음일 것이고 20퍼센트만이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전생과 현생에 걸쳐 만들어놓은 업ㅂ, 즉 마음의 습관의 결과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의 업만을 좇는다. 그들의 업은 그들을 항상 지배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난 이걸 원해." "난 저걸원해." "난 이 사람이 좋아." "난 저 사람이 싫어." 이런 습관의 힘은 제8식에 저장된다. 마음 공부를 하지않으면 모든 중생등레게 갖는 사랑과 자비심이라는 본성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무언가 만들면 뭔가를 갖게된는 이것은 인과 법칙이며, 부처님의 만든 창조적인 생각이아니라 이미 이 세계에 내재되어잇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어떤 종류의 생에서 다른종류의 생(때때로 인간, 동물, 아귀)으로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법칙을 아주 맑게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이 방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어떻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전 인생을 결정하는 마음을 지키는가. 그것이 또한 우리의 다음 생을 결정한다. 내 업을 통제하고 지배하기위한 것이야말로 수행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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