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5, 2012

숭산행원 대선사의 가르침 화엄경

화엄경 · 華嚴經 The Hua-yen (Avatamsaka) Sutra



若人慾豫知 If you wish to thoroughly understand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三世一切佛 All the buddha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알고자 한다면

應觀法界性 Then you should view the nature of the whole universe 우주 만물의 본질이

一切唯心造 As being created by mind alone.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화엄경»가르침의 핵심은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승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화를 내는 행동은 좋은것이 아니다. 그러나 «화엄경»의 시각은 다르다. 화내는 것 또한 그대로 진리이다. 이는 대승불교가 아주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위험한 거리에서 나쁜장난을 한다 치자. 부모들은 이를 보고 매우 화를 낼것이다. 아니들을 꾸짖고 심지어 종아리까지 때린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냐."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은 그대로 진리이다. 그건좋고 나쁜것이 아니다. 부모들의 화도 그대로 진리이다. 역시 좋고나쁜것이 아니며, 꾸짖음과 휘초리역시 나쁜것이 아니다. 그것들 모두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소승불교의 시각에서는 무조건 화내지 말라고 가르치는 반면 «화엄경»에서는 화, 꾸짖음, 희초리모두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사람들에게 해가 되지않게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이다.

오래전 중국에 아주 욕스님이 한 분 살았다. 다른 절에서 기부한 돈, 신도들이 시주한 돈을 모두 고스란히 자기호주머니로 가져갔다. 그는 돈을 모은다는 그 자체에서 삶의 기쁨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은 돈을 결코 한푼도 쓰지 않았다.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자기자신을 위해서 조차 쓰지 않았다."저 탐욕스런 중은 누추한 옷 안에 돈이 엄청많다. 그는 너무 욕심이 많아 자기를 위해서도 전혀 돈을 쓰지 않는다."

신도들은 이렇게 수근거렸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을에 홍수가 났다. 마을은 완전히 비에 쓸려갔다. 집들도 가라앉고 가축도 죽고 논밭은 추수도 하깆전에 다 물에 잠겼다. 마을 전체가 음식도 집도없는 혹독한 겨울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비탄에 잠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서 수많은 쌀과 콩, 이불, 옷, 약부대, 쟁기를 가득실은 수레들을 발견했다. 한두 대도 아니고 수심대나 되는 수례들을 네마라 튼실한 암소들이 끌고 있었다. 그런데 수례행렬 중간에는 그 '욕심많은 스님'이 누더기 옷을 걸치고 함께 걷고있는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보니, 사정인즉슨 이러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을 이들 물건을 사는 데 쓴다음 나머지 돈은 그 마을 면장한테 주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면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나는 수행하는 승려입니다. 수년 전 나는 앞으로 이 마을이 아주 극심한 재난을 겪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읍니다. 그 이후로 나는 날마다 돈을 아주 열심히 모았지요, 그리하여 오늘날 이렇게 유용하게 쓰게 되었읍니다."마을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 그 스님이야말로 대보살이로구나."

과거 이 스님의 탐욕스러운 마음은 그대로 진리이다. 탐욕심 자체는 좋은것도 나쁜것도 아니다. 순수한 것도 순수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슴불교에서 우리의 행동은 우주와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중생과 함께하는 것이다. 중생을 위항 화, 중생길을 위한 탐욕도 그대로 진리인 것이다. 물론 겉으로 대승의 길을 따른다고 합리화 하면서 우리 자신만을 위한 어떤 욕심을 부린다면 이것은 나쁜길로 접어드는것이다.

«화엄경»은 또 우리 마음이 모든것을 만든다고 가르친다. 아주 간단한 얘기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이 어떻게 시간을 길게도, 잛게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그렇다 우리의 생각이 여기와 저기를, 오르고 내림을, 북과 남을, 동과 서를,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다. 모든것은 생각에서 나온다. 마음을 내면 모든것이 나타난다.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것이 사라진다. 우리마음이 이 우주를 만든다.

원효대사의 일화는 백마디 말보다 극명하게 이것을 설명해준다. 젊었을 때 그는 아주 극심한 내전에 휘말렸다.그는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것을 보았다. 여자와 아이들이 무자비하게 학살 당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땅은 살육된 시체와 가족들로 뒤범벅이 되었다.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 우리자신과 다른사람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안겨줘애 하는가?"

당시 그에게 세상은 혐오 그 자체였다. 그는 진리에 대한 깊은 의문에 사로잡혔고, 그 대답을 찾기를 갈망했다. 급기야 머리를 깎고 스님이 돼 산으로 올라갔다. 절대적 진리와 실체를 깨닫지 않고는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는 경전을 열심히 공부했으며, 그것을 강하게 믿게되엇다. 그러나 그것도 그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부처님의 말도 그가 일상의 비참함에서 보았던 바위처럼 가슴에 남아있던 삶과 죽음의 깊은 고뇌를 들어올릴 수 없었다. 그의 고민을 지켜보던 도반들이 중국에 있는 큰 선사를 찾아가보라고 제안했다. 그 선사는 큰 깨달음을 얻은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 그분이 나를 도와줄지도 몰라.'

원효스님은 다른 수님들과 함께 짐을 챙겨 중국의 선사가 산다는 산으로 떠났다. 북쪽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여러 달 그는 맨발로 걸었다. 몸도 피곤하고 약해졌음에도 스승을 찾겠다는 그의 결심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너무 피곤해 동굴을 찾아들어가 땅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러다 갈증이 일어 한밤중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둠속에서 마실것을 찾아 손을 더둠자 무언가 그릇같은것이 잡혔다. 마치 부처님이 그를 돕기위해 가져다놓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하게도 물로가득채워져있었다. 그는 아주 맛있게 물을 마셨다. 여태까지 맛보았던 어느 물보다 맛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스님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전날마신 물은 다름아닌 해골바가지에 담긴 빗물이었던 것이다. 옆에는 구더기들이 뒤범벅이었고, 뼈 주변에는 여기저기 썩은 살점까지 붙어 있었다. 스님은 완전히 뒤틀리는 역겨움을 느꼈다. 두 팔과 두 무릎을 땅에대고 속엣것을 다 토해냈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는 순간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간밤에 마신물과 지금 내가 본 물은 무엇이 다른가. 간밤에는 물에대한 어떤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골에 담긴 물을 보는 순간 아주 나쁘고 더럽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국 이 생각이란 것이 물의 좋고 나쁨을 혹은 맛있고 엮겨움을 만든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도대체 이 '더럽다'는 생각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는 더이상 중국으로 스승을 찾아갈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원효대사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알려준다. 모든것은 결국 이 마음이란것이 만든다. 내가 이 우주를 만들었다. 내가 개를 만들고 고양이를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하느님을 만들고 산을 만들었다. 태양과 달과 별도 만들었다. 삶과 죽음, 가고 옴, 과거, 현재, 미래도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개는 결코 '나는 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수십여 년 전 대사찰 해인사에서 큰 법회가 열렸다.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유명한 강사스님 두 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두 분 강사스님은 1주일 동안 다양한 주제를 놓고 법문을 했다. 스님들은 법문을 듣고 토론을 벌였다. 강사스님 두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45년 동안 설법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결국 한 가지만을 말씀하셨읍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밖에서 찾지 마십시요."

많은 스님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스님이 손을 번쩍들고 일어섰다. 나이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주 젊은 스님이었는데, 옷차림은 걸인을 연상케 할 전도로 누더기 넝마차림이었다. 게다기 머리도 삮발하지않고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두 눈동자 만큼은 보석처럼 빛났다. 그 스님은 강당안이 쩡쩡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스님들은 만물이 결국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마음은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순간,강당안이 찬물을 끼앉듯 조용해졌다. 감작스런 질문에 정작 당황한 것은 두 강사스님이었다. 두 강사스님은 쉽게 대담을 하지 못했다. 두 강사스님은 쉽게 대담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법문해온 8만4천 경전을 줄줄이 꿰고 있었건만 경전을 아무리 기억해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후, 질문을 한 젊은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스승님들은 제가 드린 질문에 대답을 못하십니까? 평생동안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셨고 지난 1주일간 오로지 부처님말씀만을 전하신 스승님들 아니십니까? 이것은 썩은 강의 입니다."

강사스님은 젊은 승려의 호통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우주만물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단지 마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 가지고는 이것에 답할 수 없다. 책을 읽고 법문을 듣는 것도 건강한 답이 못된다. 진정 도움을 받고 싶다면 경전과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직접 '경험'해야만 한다. 우리가 참선수행을 중요하게 생ㅅ각해야 하는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참선이야말로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도, 소승불교에서도 모두 그들의 길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들 길 중의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한다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자, 내가 하나 묻겠다. 무처님은 모든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조주선사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다. 어느것이 맞느냐. 입을 열면 그것은 이미 큰 실수이다. 소승불교는 올바른 기르침이다. 대승불교도 바른 가르침이다. 선불교 역시 바른 가르침이다. 예수님 가르침도 바른 가르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가르침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이다.

오래전 학운이라는 유명한 큰스님이 한분 계셨다.

그는 아주 높고 바위가 많은 산에 혼자 살고 있었다. 암자아래계곡에는 서쪽과 동쪽에 비구니 절이 두 개 있었다. 동쪽 절 비구니들이 말했다.

"관세움보살을 염불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그러자 서쪽 절 비구니들이 반박했다.

"아니야, '관세으음보살'이 맞아."

두 절에는 250여 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이것을 놓고 싸워댔다.

"우리가 맞다."

"아니야, 우리가 맞아."

마침내 그들은 어느 날 이렇게 합의를 보았다. 다음날 아침 11시, 스승의 법문이 끝난 뒤 각자 누가 옳은지 따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동쪽 절 주지가 자기전 비구니ㄷ등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음'이라고 하고 저들은 '으음'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틀리면 어떡하는냐,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맞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할 수 있을 까?

그러자 한 젊은 비구니가 이렇게 제안했다.

"작년에 나는 큰스님을 모신적이 있었는데 정말 떡을 좋아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밤 특별히 맛있는 떡을 만들어 큰스님께 드린다음 서쪽 절 비구니들보다 먼저 큰스님께 가서 여쭈면 어떻겠는가. 아마 우리가 원하는 좋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자 모든 비구니들이 "참 좋은 생각"이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보통 절에서는 밤 9시가되면 불이꺼져 모든승려들이 잠자리에 들어야만한다. 그들은 서쪽 절 비구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밤 9시가 되자 불을 다 끄고 아주 희미한 촛불아래서 떡을 만들었다. 마침내 두 명이 대표로 뽑혀 떡을 싸들고 큰스님께 가지고 갔다. 마침 큰스님도 깊은 잠이들지는 않았다.

똑똑똑

"누구냐?"

"예, 저 밑에 사는 동쪽 절 비구니 들입니다."

"밤이 늦었는데 무슨 일이냐?"

"예, 오늘 나이 많으신 스님 한 분의 큰 생일 잔치가 있어 떡을 좀 준비했읍니다."

"오, 기특하구나."

떡을 받아든 큰 스님은 아주 좋아 했다. 스님들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스님 한 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큰스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그래, 무슨 질문이든 하려므나."

그들은 서쪽 절 비구니들과의 논쟁에대해 소상히 이야기했다.

"스님 저희는 염불할 때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데요, '관세음'이 맞나요, '관세으음'이 맞나요?"

큰스님은 잠시후 이렇게 말했다

'물론 '관세음'이 맞지."

스님들은 너무너무 행복했다.

"스승님, 내일 법문 때 서쪽 절 비구니들 앞에서 큰스님께 똑같이 여쭙겠읍니다. '관세음보살'이 확실히 맞는 것이지요."

"물론이지."

동쪽 절 비구니들은 서둘러 산을 내려와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한편 서쩍 절 비구니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종일 동쪽 절 비구니들과 곧 있을 다음날 모임에 대해 얘기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한 비구니가 내일 법회전에 먼저 큰스님을 찾아뵈어야 한다며

"내가 큰스님의 친한 친구분 한 분을 알고 있는데, 그분말씀이 큰스님께서 칼국수를 아주 좋아하신다고 하더리"고 전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주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서 오늘밤 갖다 드리자. 그러면서 우리의 궁금한 것을 여쭤볼 수 있지 않겠느냐?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그들은 칼국수를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칼국수 만드는것은 떡을만드는 것보다 어려워서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칼국수가 다 만들어졌다. 두명의 비구니가 뽑혀서 산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다행히 큰스님 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똑똑똑.

"누구냐?"

"산 아래 서쪽 절 비구닏들입니다."

"이 한밤중에 웬일들이냐. 들어오너라."

"저녁 때 절에 큰 제사가 있어 칼국수를 좀 준비했읍니다. 큰스님 생각이 나서 좀 가져왔읍니다."

"오------ 좋지."

큰스님은 소리내어 먹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구나. 국수를 만들어서 먼 곳에 있는 나까지 생각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서쪽 절 비구니들도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이윽고 잠시후 한 비구니가 입을 열었다.

"큰스님 여쭐것이 하나 있는데요------."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우리 서쪽 절에서는 염불을 욀 때 '관세으음보살'이라고 하는데, 저 동쪽 절 비구니들은 항상 '관새음보살'이라고 함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큰스님은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그야 물론 '관세으음'이 맞지."

"그렇지요. '관세으음'이 맞지요? 내일 오점 법회 때 우리모두 스님께 여쭙기로 했읍니다. 그때도 '으음'이 맞다고 해주실 것이지요?"

"물론이지."

그들은 안심이 되었다. 두 비구니는 달리듯이 산을 내려와 이 기쁜 소식을 스님들에게 알렸다.

"와, 우리가 이겼다. 큰스님이 우리가 맞다고 했어."

모든사람들은 기뻐했고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11시가 되었다. 5백여 명의 비구닏들이 대웅전에 모였다 큰스님이 도착해 연단에 올랐고, 스님들이 삼배를 올렸다. 그런 다음 각 절의 대표스님들이 앞으로 나왔다. 먼저 동쪽 절의 한 스님이 여쭈었다.

"큰 스님, 우리는 어제 내내 논쟁을 했읍니다. '관세음보살'이 맞읍니다까? '관세으음보살'이 맞읍니까? 우리는 '관세음보살'이 맛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서쪽 절 스님들이 반박했다.

"아닙니다. '관세으음보살'이 맞읍니다."

법당 안은 삽시간에 비구니 스님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며 소리치는 고함으로 시끄러워졌다. "관세음보살이 맞아." "아니야 관세으음보살이 맞아."

큰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깊은 생각에 잠긴듯 했다. 수많은 비구니들이 큰스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디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큰스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주 어려운 질문이로구나."

그러자 동쪽 절 비구니 한 명이 발끈해 소리를 질렀다.

"어렵다니요? 어제 저녁에 큰스님께서는 저희에게 '관세음보살'이 맞다고 하셨잖아요."

그러자 서쪽 절 비구니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엊저녁에 큰스님을 따로 뵈었다는 말이야."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큰스님은 소란을 지켜보면서 잠시동안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킨뒤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주 쉬운 질문 이기도 하지."

양쪽 절 비구니들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결국 이길거야.'

이윽고 큰스님이 입을 열었다.

"젊었을 때 나는 경전을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런데 내가아는 바에 따르면 떡 경전은 관세음보살이 맞다고 하지만 칼국수 경전은 관세으음보살이 맞다고 하는구나."

큰스님의 입이 닫히기가 무섭게 비구니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떡을 큰스님께 갖다 바쳤구니 나쁜 것들."

"아니, 그러는 너희들은 구수를 만들어 바치다니, 앙큼한 것들."

갑자기 큰스님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할! 다 내려놓아라. 관세음보살할 때 관세음보살할 뿐. 관세으음보살할 때 관세응음보살할 뿐이다 말과 단어에 집착하지 말아라. 염불을 욀 때는 그저 염불을 외우면 된다.네 것이 맞다, 내 것이 맞다 하는 분별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큰스님의 말에 비구니들은 잘못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수행했다고 한다.(하하하) 소승불교 수행도 나쁜것이 아니다. 옴마니반메홈이나 신묘장구대다라니 역시 좋다. 심지어 '코카콜라 코카콜라'하는 것도 각자에 둘러싸인 조건, 상황, 견해를 버리고 굳은결심을 가지고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뭔가 할 때 가장중요한 것은 의심하지않고 따지지않고 100퍼센트 그냥하는 것이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 깨달음을 얻고 싶으면 무엇보다 필요한것이 노력하는 마음이다. 오직노력하고 실천하라.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