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7, 2011

14 중도의 원리 후편

B 대승불교운동

대승경전이 성립되기 전에 소승경정이 많이 성립되었는데 그것은 이른바 부파部派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파불교시대에는 부처님의 중도 사상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순전히 , , 양변의 -무사상을 가지고 싸움을 일삼았읍니다.어떤파는 유를 가지고 부처님 근본 사상이라고 하고,

어떤 파는 무를 가지고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라고 주장하니 부처님의 근본 사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읍니다 그들 파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편집할 자기들이 대로, 자기들의 주장대로 부처님 경전을 편집하였읍니다. 결국 이것이 소승불교의 근본이 것입니다. 부처님의 중도사상이 오히려 망각되고 왜곡되어 버린 것입니다

대승경전보다 앞서 성립되었다는 팔리어로 쓰여진 소승경정은 -무에 입각해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무처님의 근본사상을 완전히 전하지 못했읍니다. 뒤에 성립된 대승경전은 전체가 중도사상에 입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승불교 사상을 이해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그것은 소승불교에서 발달된 사상이라고 주장하였읍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 아니라고 오해를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알고보니 부처님의 근본사상은 중도대승中道大乘, 중도일승中道一乘 있음이 입증되었읍니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 사상은 부처님 사상을 그대로 전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 운동은 무처님의 근본불교 복구 운동이라고 합니다. 근본불교를 복구시킨다 함은 부처님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디의 말씀대로 돌아감을 뜻합니다.

대승불교가 근본불교의 복구운동임을 밝히는 데에서 가장 앞선 선구자가 바로 용수보살입니다. 용수보살은 많은 저술을 내었는데, 현재 전해지는 것으로 중론中論.대지도론大智度論등이 있읍니다.

대지도론 100권은 사상을 자세하게 펼친 것이고 중론은 간략하게 요약한 것인데, 내용은 같읍니다.특히 중론은 내용이 요약되어 그사상의 골수를 드러나 보이는데 이름을 중론이라 까닭은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 중도에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사상은 오직 중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파불교 시대에 불교가 잘못전해저, , 생이다 멸이다 하면서 싸우기를 그치지 않으니

그러한 싸움을 바로 잡으려면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를 바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읍니다.그런 뜻에서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바로세우고 널리 펼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읍니다. 결과 대승불교에서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완전히 복구 시킬 수가 있었으며, 그러한 사상이 지금까지 불교를 지배해 오게 되었읍니다. 이즈음에는 어떤 학자든지 대승불교가 근본불교---부처님의 근본 사상을 복구한 운동이지 결코 뒤에 변질되거나 새롭게 발전시킨 사상이 아님을 총결론으로써 의심없이 인정하고 있읍니다.

가지 의심을 일으켜 의논이 분분하였던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초전법륜에서 중도만을 말씀하쎴지 진여眞如라거나 연기緣起라거나 법계法界라는 것은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전법륜에서 중도를 말씀하시고 뒤에 잠아함경과 같은 조그만 경전이 편집되면서 중도를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곳에서는 중도가 바로 진여라고 말하고 있으읍니다. 진여라고 하는 것은 절대입니다. 변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여는 양변을 여윈 절대의 세계입니다.동시에 진여는 법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여법계眞如法界 일체연기법一切緣起法 의해서 활동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중도, 진여, 법계, 연기 네가지는 대승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이들을 빼버리면 대승불교의 사상은 존재할 수가 없읍니다

부처님께서 호전법륜에서 다섯비구에게 말씀하실 때는 간단히 중도라 하여 양변을 버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뒤에가서 부연하여 중도를 다양하게 하셨읍니다. 중도를 설명할 때에는 반드시 연기가 따라오고, 법계가 따라오고, 진여가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진여, 법계, 중도, 연기 이것을 버리고 불교를 찾으려함은 마치 얼음 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읍니다.

그러면 중도라는 것이 과연 부처님께서 최초로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인도 사상에서 이미 있었던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인도 사상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에는 대개의 학자들이 그것은 부처님의 독창적인 깨달음이 아니라고 보았읍니다. 부처임의 중도사상은 시대적 연관 위에서 성립된 것이지 부처님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수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읍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처님 이전과 그당시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살펴본결과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중도를 내용으로 하는 사상은 다른 데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읍니다. 결국 중도사상은 부처님의 새로운 발견이며 독창적인 출발이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읍니다.

인도사상을 총괄하여 보면 가지로 나눌 있읍니다. 하나는 유심唯心사상이고 ,다른하나는 유물唯物사상입니다. 유심사상은 전변설轉變說 되어있고 유물 사상은 적집설積集說 되어 있읍니다. 전변설은 수정주의修正主義. 나아가고 적집설은 고행주의로 나가는데, 유심과 유물, 전변설과 적집설, 수정주의와 고행주의 들이, 말하자면, 부처님 이전에 인도사상을 통괄하는 것들이었읍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유심도 유물도 버리고, 전변론 적집론도 버리고, 수정주의도 고행주의도 버렸읍니다. 부처님께서는 실지로 수행하여 유심과 유물울 버려야만 중도를 정등각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도사상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께달으신 발견인동시에 불교만의 독창적인 사상인 것입니다.

C 중용과 변증법

중국에는 중용中庸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불교의 중도와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유교사상의 중용이란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음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많이 아는 사람은 지나쳐 버리기 쉽고 모르는 사람은 너무 미치지 못하므로 과過하지도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중中을 취하라는 것입니다.결국 중中은 단순한 중간의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는 서구 세계에서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인들이 일찌기 중용사상을 펼쳤는데, 그들도 중간 사상을 가지고 중용사상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들의 이른바 중용사상은 양변을 완전히 버리고 동시에 양변을 완전히 융합하는 사상을 말하지는 않았읍니다. 양변을 여의고 양변을 융합한다는 것은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읍니다. 따라서 중도사상과 중용은 결코 혼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서양의 철학계에서도 근대에 이르러 언뜻보기에 불교의 중도사상과 비슷해보이는 이론이 나왔읍니다. 바로 혜겔의 변증법辨證法 사상입니다. , , , 이 세가지가 변증법의 기본공식으로 정에서 반이 나오면 그것을 융합시켜서 합을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논리는 중도와 비슷한 듯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 正이라는 사상이 나와서 이것에 모순이 생기면 , 다시 反이라는 사상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정도 아니고 반도아닌 것이 서로서로 종합 되어서 合이라는 사상이 나오다는 이론입니다. 이와같이 시간을 전제로 하는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말하는 헤겔의 정, , 합 이론도, 정과 반을 완전히 버리고 정과 반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 아니므로, 중도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변증법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읍니다. 한번은 괴테와 헤겔이 만났는데, 괴테가 헤겔에게 그 변증법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겔은 그것은 모순의 논리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곧 정과 반의 모순, 시와 비의 모순, 선과 악의 모순을 말하니, 이것은 양변이 모두 모순인것을 갖고 만든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양 변이 서로 모순이므로 서로 통할 수가 없으니 이 이론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사상은 중도사상이니, 팔만대장경 전체가 여기에 입각해 있으며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신 모든 말씀이 바로 중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도사상을 따나서 불교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무처님에 대한 반역反逆인 것입니다. 불교를 설명한 많은 것들의 그 진위眞僞를 가리려면 중도논리中道論理, 중도정의中道定義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가늠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에 위배되는 사상은 결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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