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4, 2011

영원한 자유 10 사차원의 세계

영원한 자유 10 四次元 세계

5 정신감응

인간의 정신 능력은 개인에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븝니다. 이에 대하여 아브로쳎스키라는 소련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하였읍니다. 그는 정신과 정신간에 서로 통할 수도 있다는 데에 착상하여 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읍니다. 피실험자가 있는 곳에서 8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어떤 사람이 피실험자가 자기 집으로 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만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브로체프스키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여자였는데, 그여자는 집안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가 뭔가 이상한 듯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다가 피아노 치던 것을 멈추고 으로 몇번 들락날락하더니 대문 밖으로 나갔읍니다. 감시하던 사람들이 따라가 보니 과연 여자는 자기를 오도록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는 것이었읍니다. 막상 와서보니 사람은 여자를 오게하는 생각을 얼마나 간절히 했던지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을 하고 말았읍니다.

나중에는 맑은 날에 우산을 들고 나오라고 상대방에게 정신반응을 보내면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우산을 갖고 나오는 실험까지도 하였읍니다. 결국 실험으로 한쪽에서 어떤 생각을 강하고 간절하게 하면 정신의 반응이 상대편에게 까지 도달된다는 것이 입증 되었읍니다. 이것을 텔레파시 Telepathy 라고 합니다 이말은 精神感應이라는 입니다..

그런데 정신감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일본에서 의사들이 실험입니다. 힌쥐 스무 마리에게 질부사균을 치사량으로 주사해 놓고, 가운데 마리는 약으로 치료하고 나머지 마리는 정신치료를 하였읍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약으로 치료한 쥐는 모두 죽었는데 정신요법으로 치료한 마리 중에는 마리가 죽고 일곱 마라가 살았다고 합니다. 죽은 마리도 해부를 보니 회복기에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실험은 사람의 정신 작용이 동물에게도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있는데 동물에게 최면술을 거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의 정신 작용이 동물에게는 작용하지 않는다면 최면술이 통할 리가 없읍니다. 어나 사자, 호랑이 따위의 동물에게 최면술을 걸수 있다는 사실은 써커스나 묘기시범에서 쉽사리 수가 있읍니다. 이렇듯 사람이 정신적으로 동물에게 반응을 일으키게 있다면 옛날 우리나라의 도인들이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 전혀 허황된 이야기만은 이니라는 것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정신반응은 광물에도 작용을 합니다. 이것은 내가 어릴때 많이 해보던 실험이기도 합니다. 끝에 돌이나 쇳덩어리를 매달고서 그것에 정신을 한참 동안 집중시키고 나서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움직이라 하면 동쪽으로 움직이고, 서쪽으로, 앞으로 뒤로, 원형으로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이것을 관념운동 이라고 합니다. 유리겔라라고 하는 사람이 정신반응으로 숟가락을 휘게하고 시계를 정지시키는 실험을 하는 것이 보도된적도 있읍니다. 어쨋든 정신감응은 광물에게도 작용을 한다는 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6 분신分身

밖에도 가장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분신分身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백, 수천의 장소에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합니다. 지구에 계시면서 세계에도 가고 세계에도 옵니다. 신라시대으ㅢ 원효스님은 같은 , 같은 시간에 육처열반六處涅槃 하였읍니다. 여섯 곳에서 같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이라고 합니다. 보기를 들어, 해인사에 있는 사람이 분신을 한다고 하면 그사람이 진주에도 한사람, 부산에도 사람, 서울에도 사람씩 있을 수가 있읍니다. 사람의 몸이 , 시에 열명도 되었다가 명도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실험에 의해 그런 분신에 성공한 예가 있읍니다. 인도에서 요가하는 요기 Yogi 들이 분신을 해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7 육근호용六根互用

불교에 육근호용六根互用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을 서로 바꾸어가며 쓰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귀는 듣는 것인데 귀로 보고 눈은 보는 것인데 눈으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육근호용 이라고 합니다. 어제 어떤 신문에는 중국 사천에 사는 열한살 어린이가 것을 귀로 본다는 기사가 나왔읍니다.

눈을 아무리 가려놓아도 무엇이든지 보며,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물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이는 귀로써 모든것을 보는데, 이것은 밝고 어두운 곳도 사실은 음은 말해 줍니다. 눈으로 보든 귀로 보든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도되고, 귀로 본다고 해도 됩니다. 오장육부가 있읍니다. 그래서 병이들었을 때엔, 아픈데가 어디고 빛갈이 어떤지를 이야기할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주위의 한두 사람만이 본것이 아닙니다. 중공의 학자들이 조사해 결과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읍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의 신문마다 보도된 것입니다.귀로써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이견안문耳見眼聞 ,이말은 본래 불교에 있는 말입니다 오조 법연 선사도 이에대해 자주 말씀하셨읍니다.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법문 이지 실제로 그렇게 수가 있겠는가 하고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 합니다.

그러나 중생이 번뇌망상으로 육근이 서로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에 도달할 없을 뿐이지, 실제로 부사의不思義 해탈경계解脫境界 성취하면 무애자재無涯自在 그런 경계가 나타나 육근이 서로서로 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육근호용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근호용이 되어 모든 것에 무애자재한 경계를 얻을 있읍니다. 삼천대천세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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