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31, 2012

마음에서 마음으로

지혜의 향기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원익 불사모 회장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지 1,600년이 넘다보니 알게 모르게 불교스런 것들이 한국 문화에 많이 스며들었다.
우리가 쓰는 한국말에도 그런 것들이 많은데 일례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한다느니 하는 표현도 실은 선불교에서 내세우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풀어서 한 말이다.

한 때 이 사자성어를 비틀어서 '누구 마음이 바로 누구 마음이다' 며 빈정거리는 우스개도 유행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누구하고 무슨 텔레파시가 통했다느니 하는 말에 더 익숙한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뭐든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할 수가 있고 그것도 정확히 무한정 전달이 된다면 많은 것들이 절약 될 것이다. 구태여 말을 안 해도 되니 소리로 들을 일도 글로 옮겨 쓸 일도 없어서 책이나 음향기기,
영상물 전송도 일체 필요 없어진다. 전화나 문자 메세지를 안 해도 된다. 꿈같은 얘기만은 아니다.

그런데 꽃이피면 꽃바람이 부는 건가, 옛날 중국에서도 선불교가 꽃필 때 기존의 세력들은 이 새로운 사조를 못 마땅해 하며 흔들어 댔다. 경전에 어디 그런 가르침이 있는냐면서 확실한 전거를 대라고 다그쳤다.

이에 선불교에서 대꾸하길 그런 것은 글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따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부처님의 가르침, 경전에 있는 그런 가르침들의 바깥에서 별도의 통로로 은밀히 전해져 왔다 [敎外別傳] 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은밀히 전해져 왔다는 말인가 ? 이에 그들은 깨달음의 족보를 내밀었다.
부처님의 맏제자 마하가섭을 1조로 삼고 중국에 선불교를 전한 28조 달마대사에까지 이어진 선맥이었다.

부처님 바로 밑자리에서 부터 전해져 왔다니 할 말이 궁해진다. 그래, 그렇다면 그대들은 도대체 어떤방식으로 그 가르침을 전하고 깨달음을 전하는가? 민심을 어지럽히는 사술이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방법을 보여다오.

좋으신말씀! 우린 우선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다.[不立文字],
먹물도 필요없고 (야호! 본토박이에게도 턱없이 어려운 그 한문, 안 배워도 된단다!) 가방끈도 따지지 않는다. 이력서 도 얼굴도 보지 않으며 법랍도 문중도, 누구의 추천서도 챙기지 않는다. 기여입학제 같은 거 물론 없다.

이렇듯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도 인종도 가리지 않으니 1,000년도 훌쩍 넘은 세계화요 학력파괴며 평준화다. 이런 혁명적이고 반체제적인 집단이 어떻게 살아남아 종교계의 주류로 꽃필 수 있었을까? 문화대국의 저력이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깨치려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무슨 수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며 미혹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끈단 말인가? 그냥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된다는 말인가 ?

그렇진 않다. 고요히 관조하는 묵조선과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간화선의 수행법이 주를 이루지만 어쨋든 구질구질하고 어지러운 설명과 논리전개가 아니라 삶의 마음을 바로찍어 가르킨다.[直指人心].

보시오, 저 깃발이 흔들리고 있지 않소? 아니오, 깃발을 스치는 바람이 흔들릴 뿐이요. 둘 다 틀렸다 ! 저 깃발을 바라보는 그대들 마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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