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12, 2012

여여한 경지

여여한 경지• 如如地 The Realm of Truth Like This

春來草自生 Spring comes, grass grows by itself. 봄이 오면 풀은 살아나오고
靑山自不動 The blue mountain does not move. 청산도 움직이지 않으며
自雲自去來 White clouds float back and forth. 하얀 구름도 바람따라 이리저리 흘러간다.

360도의 영역은 진리의 영역이다. 우리는 매 순간 진리의 세계에 살고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생각에 집착해서 지기들만의 사고의 견해를 유지하고 이 세계의 실상(진리)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든 생각을 끊으면 우주와 하나가 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진다. 빨간것이 거울 앞에 나오면 빨간것을 비추고 하얀것이 나오면 하얀것을 비춘다. 불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고 있는 그대로를 반영한다. 하늘은 푸르다. 그것도 진리이다. 나무가 푸르다. 그것도 진리이다. 개가 짖는다. 그것 또한 진리이다. 봄은 온다. 풀은 스스로 자란다. 푸른 산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흰 구름은 왔다갔다 흐른다. 그것이 모두 진리이다.


맑은 거울은 진리를 비춘다. 결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본래 거울에는 초록색도, 흰 구름도, 푸른 산도 없다. 공허한 얼굴을 담고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구름이 거울 앞에 나타나면 구름을 반영한다. 구름이 거울 앞에 더 이상 비치지 않으면 그들은 거울에서 사라진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장애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 거울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것도 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완벽한 자유이다. 거울에 어떤것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것은 진리이다.

우리 마음의 본질도 이와같다. 맑고 공허한 마음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 세계의 진리를 반영할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생각만을 좇아 고통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세상의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기 때문에 마음은 끊임없이 여기저기로 끌려다닌다.


이른과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 본성은 완벽한 공허이며, 시간과 공간에서 무한대이다. 오직 습관적인 생각과 개념적인 생각이 그것의 표면을 가린다. 완벽하게 모든 생각을 끊으면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게된다 구름이 오면 구름과 하나가 된다. "아, 구름이 하얗다." 봄이오고 풀이 자라면 봄과 하나가 된다. "풀이 초록색이다." 산을 볼 때 산과 하나가 된다. "산은 푸르다." 이름하여 진리이다. 진리를 찾으면 이미 바른 길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 the realm of truth like this)이다.



돌이켜 보라• 廻光返照 Looking Within, You Perceive Mind's True Light
喫茶去 Go drink tea. 차나 마셔라.
照親脚下 Watch your step 발 밑을 보라.
禪圓에서는 모든각도가 사라진다. 우리는 단지 원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한 지점을 만들면 0도, 90도, 180도, 270도, 360도가 모두 나타난다. 마음에 어떤것도 만들지 않으면 각도가 없고 단지 원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것이 이미 완벽하다. 이것이 우리 일상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른 길이며 진리이며 바른 삶이다.


간단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뭔가를 특별하게 만들어서 조주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들로서 조주는 우리가 어떻게 바른 기능을 통해 평상심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 때문에 아주 높은 수준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승려가 한 번은 조주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차나 마셔라."
"스님, 나는 이미 차를 마셨읍니다."
"차를 마셨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그 스님은 말이 막혀서 더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스님, 얼굴이 노랗습니다." 또는 머리를 숙여 반배 하고 "스님 건강하십니까>" 이것은 스승의 말을 붙잡지 않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상황이나 가르치는 기술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단전이 강하면 결코 어떤 종류의 법이나 가르침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법을 소화하고 앞에 어떤상황이 닥쳐도 진리를 얻는다.


수행을 계속함으로서 이 진리는 우리 삶을 맑고 자비롭게 할 것이다. 누군가 목이 마르다면 물을주고, 배가고프다면 밥을 주어라. 그것이 바른 길 이요. 진리요, 보살행이다. 바로 이것이 조주의 "차나 마셔라'가 의미하는 큰 사랑, 큰 자비, 큰 보살도인 것이다. 무언가를 할 때 순간순간 그냥하라. 그것만이 전부이다.


어느 날 마조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제자가 마조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다. 마조는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색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자는 "물론 나도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마조가 땅바닥을 가르키며 "발 밑을 보라"고 해서 제자가 내려다보니 독사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그는 매우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순간 제자의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늘은 푸르다'는 마음은 사라졌다. '나무가 초록색이다'라는 것도 소용이 없어졌다. 마조의 '발 밑을 보라'는 아주 높은 수준의 가르침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해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우리가 도움을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구할 수 없다.


순간순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언제나 맑은 마음을 유지해 무언가를 할 때는 그냥하라. 루른 하늘, 푸른 나무가 진리라는 것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순간 순간 맑은 마음을 유지하지 못할 때 이 이해는 옳게 기능하지 않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순간순간의 마음이 아주 중요하다. 바로 지금의 마음이다. 주체도, 대상도 없다. 단지 모든 중생을 돕는 이 순간에 맑게 기능 할 뿐이다. 그것이 큰사랑, 큰 자비, 큰 보살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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