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8, 2012

선원

선원· 禪圓 The Zen Circle

원칙 義理 Principles

진공 眞空 진정한 공함 True emptiness Nothing I attachment to emptiness

180 無我 No form, no emptiness 1000X0=0 1X0=0 (나가 없는 나)

90 존재와 비존재 有無[業我] 업을가진 나 Existence and nonexistence Karma I
attachment to thinking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orm 0=1, 1=0

0 속진(작은 나) 俗塵[小我] The common dust(clinging) Smal I
attachment to name and form 1+2=3

360 있는 그대로(큰 나) 如如[大我] The Absolute Big I
nonattachment thingking just like this 3X3=9 Formis form, emptiness is emptiness
절대적 존재 [妙有] 妙我 (자유로운 나)

270 Absolute existence Freedom I attachment to freedom thinking
Freedom form, freedom emptiness 3X3=9 1000X100=1000X9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선생님은 칠판에 큰 원을 하나 그리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회들이 오늘부터 이 원과같은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 둥근 마음은 아무런 장애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너회들은 자유로유로워질 수있다.

좋은 상황이 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게 될 것이다. 나쁜 상황이 와도 역시 어떻게 사용하게될지 알게될 것이다. 나쁜상황이 와도 엮시 어떻게 사용할 지 알게될 것이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건 주어진 상황을 따르면 된다. 원이라는것은 완벽하게 비어있다. 즉, '나, 나의, 나를, 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와 네가 하나가 된다. 그러면 나를 위한 삶이 곧 다른사람을 위한 삶이 된다."

불교에서 원[圓]은 중요한 가르침의 도구다. 원을 신앙의 상징으로 모시는 곳도있다.
나도 때로 원을 사용해 선 수행을 설명한다. 원은 0도에서 시작해 90도, 180도, 270도, 360도를 돈다 360도 지점ㅇ은 처음의 0도와 똑같다. 먼저 0도에서 90도까지 지점은 집착과 생각의 영역이다. 생각은 욕심이고 모든 욕심은 고통을 부른다. 다시말해 모양과 이름에 대한 집착의 영역(smal I)이다. 그러다 보니 분별심을 만든다. 옳고 그름, 이것과 저것, 아름다움과 추함, 좋고 싫음, 나의 것과 너의 것 등등 말이다.

이 몸은 탐 . 진. . 치, 즉 욕심과 분노와 무지를 가지고 있다. '나' 라는 이몸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고통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리하여 0도에서 90도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며 고통자체가 삶인 영역이다.

90도를 지나면 '나'라는 업의 영역(Karma I)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생각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나'라는 의식이다. 이해하는 것으로 '나'를 알고싶은 상태이다. 각자는 각자의 '나'를 만든다. "나는 교수야." "나는 아버지야." "나는 어머니야." "나는 여자야." "나는 중국인이야, 미국인 이야, 한국인이야." 0도에서 90도까지는 각각 모양과 이름에 대해 집착한다. 그래서 모든것이 다른다. 90도를 지나도 생각에 집착한다. 모든것이 같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당신은 0 이었다. 이제 당신은 하나이다. 언젠가 당신은 죽을 것이고 그때는 다시 0 이 된다. 그러므로 0 은 하나와 똑같고 하나는 0 과 똑같다. 원 위에는 모든것이 같다. 하나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모든사물은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이름과 모양이 空해서 결국 空으로 돌아간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그러나 이 영역에서는 이것 역시 지적인 생각이다.

180도의 영역은 생각이 전혀없는 영역(Nothing I)이다. '空' 을 경험하는 상태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나' 가 완전히 사라지는 진정한 공의 영역이다. 모든실체는 완벽히 하나가 된다. '색도없고 공도 없다.' 어떤 이들은 이 영역을 절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절대'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절대는 없다. 이 점은 생각이전의 지점이기 때문에 말이나 단어가 없다.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큰 실수이다.

당신이라면 이 영역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임제 선사는 '할'이라는 소리로 대신했고 덕산선사는 방망이로 내리쳤다. 구지 선사는 다만 손가락 한 개를 들어 모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오직 행동만이 이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 말이나 단어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역에서는 산도없고, 강도없고, 신도 없고, 부처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오직 "탕!" 이 소리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내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스승님, 제가 깨달았읍니다. 만물이 空함을 깨달았읍니다."
"오 그래? 누가 깨달았다구?"
"제가 깨달았읍니다."
"누가?"
"저요."

나는 지팡이로 그를 내리쳤다. "탕!" 그러자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空함의 영역에는 이 '나'라는 것이 없는데,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른 것이냐?"
그러자 그는 금세 얼굴이 붉어져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정한 空함의 영역은 말도없고 단어도 없다. 그는 그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미국에 있을 때 심신운동훈련(EST) 운동의 기초자인 베르너 에르하르트를 소개받은적이 있다. 그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앉혀놓고 긴 강의를 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강의를 경청했다. 그는 종종 '공' 에 대해 이야기 했다.
"공이란 이러이러한 것이고, 저러저러한 것이다."

강의가 끝난 후 나는 우연히 그가 탄 차에 동승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강의를 아주 좋아하는군요. 그런데 '공'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는 내가 우주 쉬운 질문을 했다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 자체가 이미 어떤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진정한 공이 아닙니다."
그는 잠시 말을 잃더니 이윽고 나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진정한 공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空의 영역에는 말이 필요없다. 그래서 이 세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탕!" '너는 어디서 왔느냐?' "탕!" 우주적 실체와 너의 실체는 같으냐, 다르냐? "탕!" '신은 무엇이냐?' "탕!" '부처가 무엇이냐?' "탕!" 이 행위는 말이나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완벽한 空의 영역, 즉 완벽한 '無自我'의 영역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것이 180도 이다.

이 영역에 도달하면 우리는 '나'가 없는 완벽한 정적의 마음을 가지게 되며, 또 그 경험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우주적 에너지를 갖게 된다. 신비하고 기적적인 영역에 도달한다. 이것이 270도의 영역이다. 자유로운 '나'를 얻는 단계이다. 공간과 시간에 장애를 받지 않는 완벽한 자유의 영역이다.

어린이들은 텔레비젼 만화를 참 좋아한다. 개, 고양이, 뱀, 사자가 나와 사람처럼 옷을 차려입고 차를 몰거나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고양이와 새가 서로 얘기르도 한다 이이들은 텔레비젼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손 뼉을 친다. 만화에서는 어떤 행동도 가능하다. 이것은 만화에서 뿐만이 아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주적 에너지 혹은 어떤 특별한 힘과 강하게 연결되어 초능력을 발휘하는 사름들이 있다. 특히 도가나 요가 수행자들 중에 많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에너지의 원리로 생각하면 된다. 만물은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소위 '초능력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에너지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삶들에 불과하다.
지구는 양의 에너지를 대펴하고 하늘은 음의 에너지을 대표한다. 일상의 도처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음에도 다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자석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음극과 양극이 만나면 붙는다.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친다.

탁자위에 자석들을 올려놓아 도넛모양을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중 한 개를 연필로 툭 치면 다시 자기들끼리 다른 극들을 찾아 똑같은 모양의 도넛 모양배열을 만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례는 우리인간이 이우주 에너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열심히 수행하면 완벽하게 공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우주적 에너지가 들어오게 된다. 절대 에너지를 얻는 것으로, 에너지를 지배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으므로 만약 우리 몸을 양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하면 대지와 몸은 서로 분리되므로 몸은 공중에 뜰 수 있다. 땅에 다시 내려오고 싶으면 음의 에너지를 만들면 된다. 어떤 도사들은 하늘을 떠다니거나 바위 덩어리를 들어올리기도 한다. 이 모두 '마음'을 사용하여 만믈을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얻으면 지기 몸을 뱀으로 바꿀수도 있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될 수도 있다. 또 물위를 걸어다닐 수도 있다. 살고 싶으면 살고 죽고 싶으면 죽는다. 이것이 270도의 영역이다.

그러나 선 수행은 이처럼 신비하거나 특별한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옛 선사들이 종종 초능력으로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들을 깨닫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계속
숭산 행원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판' 현각엮음 허문명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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