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3, 2012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참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이다.'내가 무엇인가?' 왜냐하면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가 미음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우리 자신의 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부처님과 위대한 조사들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념적으로 이런 말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 마음, 마음, 마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얼만나 큰가? 무슨 색인가? 딱딱한가, 부드러운가? 둥근 것이ㅣ가. 네모난 것인가? 우리는 단지 '마음'이라는 단어만 이해한다. 그러나 철학 책이 수만 권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확실히 모른다. 내 팔 안에? 내 위장 안에? 도대체 마음은 어디 있는가? 무엇이 그것을 머물게 만들고 어디로 가는가? 미음이란 것이 도대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무엇이 마음인가?

이런 질문을 절실하게 한다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오직 모를 뿐' 이다.
한반 테스트 해보자 . '마음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내가 들고 잇는 주장자와 당신의 마음이 다른가, 같은가? "같다"고 말하면 나는 여러분을 이 주장자로 30방을 치겠다. 다륻다고 말해도30방을 치겠다. 이 주장자, 이 마음이란 단지 빈 이름일 뿐이다. 이 이름들은 본성이 없다. 당신이 참나를 모르면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름과 모양이라는 이 지엽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머리가 좋은 동물이다.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초록색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강이고 저것은 산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이해란 단지 다른사람, 즉 누군가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짜 생각이 아니다.

"하늘은 푸르다"라고 말하지만 결코 하늘 스스로 "나는 푸르다"고 얘기한 적이없다. 나무역시 "나는 초록색이다"고 말한적이 없다. 개, 고양이 역시 '나는 개다. 고양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인간이 이 모든 이름과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개가 짖는것을 한국에서는 '왕왕'. 중국에서는 '워워'. 미국에서는 '우프우프'라고 표현한다. 어느 것이 맛는가? 왕왕도 아니요,워워도 아니요, 우프우프도 아니요, 하우하우도 아니다. 인간들이 각자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개의 모습니다. 어떤 개도 이것들을 말한적이 없다. 사실 개는 결코 자신을 '개'라고 한 적이 없다. 개한테 가서 물어봐라. "너 정말 개냐?" 아마 개는 당신한테 좋은 대답을 줄 것이다.
이름과 모양이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늘'도 만들고 '푸르다'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초록색'도 만들고 '개'도 만든다. 우리는 "하늘이 푸르다"고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Sky is blue"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소라와 아오이데스"라고 한다.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이름과 모양은 진리가 아니다. 실제로 없는, 가짜 생각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싶으면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만물이 우주처럼 맑은 지점을 의미한다. 미음이 우주처럼 맑으면 우주는 완벽히 하나가 된다. 분리도, 생각도, 주체도, 객체도 없다. 눈이 천천히 열리고, 귀가 천천히 열리고 ,코가 열리고, 혀가 열리고, 몸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맑게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맑다. 그러면 하늘과 하나가 된다. '하늘은 푸르다.' 나무와 하나가 된다. '나무는 초록색이다.' 개와 하나가 된다. '멍멍' 설탕과 하나가 된다. '달다' 그것을 표현하는 이름이 바로 진리이다. 아주 단순하다. 진리란 무든것이 너의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늬 수행은 진실로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옳은 방향, 진리, 바른 삶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본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마음 안에 있다.

그러므로 부처의 모든 영역을 이해하고 싶으면 '무엇이 부처인가?' 하는 큰 의심을 가져 먼저 당신의 마음이 우주처럼 맑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생각도 없고 욕심도 없다. 여기서부터 당신의 마음은 단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반영할 뿐이다. 아무런 장애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수행이다. ㅈ종종 근본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떻게 원점(primary point)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 자신에게 아주 깊이 "내가 무엇인가>"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으로 불으면 된다. 모르는 마음을 간직해라. 그러면 우리 생각은 점점 더 맑아진다. 마음은 우주처럼 맑아진다.

우주처럼 맑은 마음이란 자연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부처, 보살, 악마 조차도 그 점에서 하나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하나씩 하나씩 각자가 완벽하다. 하나씩 하나씩 각각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
좀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아주 단순 명쾌하다. 만물은 똑같은 우주적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실체가 바로 우리의 본성이다.

예를 들면 여기 과자 공장이있다. 그곳에는 과자 반죽으로 가득찬 큰 방이 있다. 그러면 과자 제조자들은 이 반죽으로 하나씩 다양한 형태를 만든다. 비행기, 차, 인간, 탱크, 악마, 보살도 만든다. 개, 새, 고양이도 만든다. 과자들은 모두 다른모양과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똑같은 반죽에서 아온 것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 전건 비행기 과자이고, 이건 개 과자이다. 다 다르다"라고 하겠지만 그것들을 한 입에 넣어보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아, 똑 같은 맛이로구나." 그래서 사의 맛, 하늘의 맛, 부처의 맛, 보살의 맛, 하느님의 맛, 악마의 맛, 너의 맛, 나의 맛이 모두 같다. 이 우주의 모든것이 똑같은 실체이다.
이 시는 똑같은 점을 말하고 있다. 우주, 태양, 별, 달, 나무, 너의마음, 나의 마음, 모든 것이 똑같은 우주적 실체에서 나온다. 모든것의 이름과 모양이 다 다르지만 실체는 똑같다. 태양, 달, 지팡이, 너와 나 모두 같은 실체이다.

"하나씩 하나씩 각자 완벽하다. 하나씩 하나씩 각각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 (一一當當 一一俱足)"
만물은 똑같은 실체이다. 지옥과 천국도 모두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지옥과 천국도 모두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신과 악마가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똑같은 반죽이고 똑같은 맛이고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또 당신 자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오직 모양과 이름만이 다를 뿐이며, 이 모든 것들은 생각에서 나온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면 만물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각자각자가 완벽하다. 하나하나 각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낱낱이 티끌이 서로 통하고 일체 만물이 서로 드러난다." 우리의 실체와 모든 것의 실체는 이미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그것을 '겐쇼'라고 하며 부처의 본질을 의미한다. 이미 당신은 이 소리(책상 치는소리) 를 명백히 듣는다. 그것은 이미 맑고 명백하다. 그러면 (책상위에 컵을 가리키며) 이 컵의 본질은 무엇인가. 컵을 보아라. 부처의 본질이 아닌 것이 있는가. 그것을 찾을 수 있는가. 모든것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색이다. 물이 흐른다. 향냄새가 난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 모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것, 맛 보는것, 만지는것, 생각하는것, 이 모든 것이 부처의 본질이다.
한 제자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생각을 멈츨 수가 없읍니다. 어떻게하면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요? "아주 쉽다."
"아니요, 너무 어려워요. 앉아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없어요."
"좋다 5달러만 있으면 너의 생각을 없앨 수 있다. 극장가서 표를 사라." "무슨 말씀이세요?"
"ET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르 타고 하늘로올라갈때 너는 그때 다른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아니요."

"영화를 보는동안 너는 지나주에 겪었던 일에 대해, 혹은 각종 고민거리에 대해, 또는 은행에 돈이 얼마 있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을 안 한다. 이이들이 하늘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극장 안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어한다. 이 마음은 완벽하게 집착이 없는 생각이다. 집착이 없는 생각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너도 행복하다. 주인공이 죽으면 슬퍼진다. 악당이 주인공과 싸울때면 사람들은 똑같은 마음이 된다. 일어나, 어서일어나 저 나쁜 사람을 때리라고."

단지 보라. 들어라. 냄새 맡아라, 맛보라,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볼때 이런 마음 상태에 있지만 영화관을 떠나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여기저기 점검하고 느끼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것은 생각에 집착하지않는 것이다. 단지 생각이다. 그림이나 아름다운 음악들은 우리에게 잠깐동안 생각이 없는 똑같은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생각과 욕심을 떨어뜨리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마음 닦을 것도 없이 당신은 이미 완벽하다."

만약 당신이 모든것을 내려놓고 공허한 마음을 유지하면 볼 때, 들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너와 모든 것은 결코 분리 되지 않는다. 만물은 언제나 하나이다. 하늘을 볼 때 하늘과 하나이다. 설탕을 맛볼 때 설탕과 하나이다. 소가 '음매'하고 가면 바로 그때 소와 하나이다.

설탕의 단맛은 바로 우리 자신의 본성이다. 중요한 것은 참 나를 믿는 것이다. 그 길로 가는 유일한 길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나'를만들지않는 것이다. 그러면 결코 다른 어떤 것과도 분리 되지 않는다.
본성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무척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본성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벽은 하얗다. 마루는 갈색이다. 바깥에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이것이 너의 본성이다. 마음이 우주처럼 맑을 때 만물은 이미 맑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한낱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좋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내 보겠다.

"이미 당신은 분명히 보고 , 분명히 듣고 있다. 그러면 (주장자를 "탕!"치며) 이 소리와 당신의 마음은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고 대답해도 나는 당신을 이 주장자로 때릴 것이고, 다르다고 해도 때릴 것이다. 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본성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이 깨달음은 이미 우주처럼 맑아서 머떤 말이나 단어로도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거기에는 어떤 이분법적인 개념이 없다. 당신 혼자 고스란히 겪는 절대 경험의 영역이다. '똑같다' 혹은 '다르다'고 말하는것은 이미 이분법적인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따리서 입을 열어 이 점을 설명하려 한다면 이미 그것은 큰 실수 이다. 어떤 종류이든 보여주는 행동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임제 선사는 다만 '할' 하고 소리를 질렀고, 덕산 선사는 때렸고, 그지 선사는 단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자! 다시 묻겠다. 임제 선사의 '할' 덕산 선사의 방망이, 구지 선사의 손가락이 같은 것인가 , 틀린 것인가. 같다고 말하면 나는 당신을 이주장자로 때리겠다. 다르다고 얘기해도 때리겠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다. 어떤 종류의 보여주는 행동이 필요하다. 오직 이것 뿐이다.(책상을 친다) "탕!"

아주 단순 명쾌한데도 복잡다단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앞서 소개한 시의 마지막 문장은 아주 재미있다. 3 곱하기 3은 9이다. 이 문장은 '할' 혹은 책상을 "탕!" 치는 행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만물이 있는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벽은 하얗다. 하늘은 푸르다. 승복은 희색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완벽한 세계로 돌아온다. 소금은 짜다. 설탕은 달다. 3 곰하기 3은 9이다. 세계는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특별한것이 아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이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모든것을 얻는다. 이미 완전하다. 그것이 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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