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7, 2012

오직 모를 뿐 으로 정진하라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이 책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등의 아주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며, 기독교나 카톨릭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말과 단어는 단지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한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동양도, 서양도,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없다. '오직 모를 뿐'은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참선도, 그 어느것도 아니다. 미국인 제자 한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셨는데, 왜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구분하십니까?
나는 아렇게 대답했다.

"나는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조차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모를 뿐'을 기르칠 뿐이다. 알겠느냐?"

언제 어디서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에 얽매이지 말라. 뼈대는 오직하나.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중생의 잠을 깨워 이 세상을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 모든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면된다. 참선수행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적과 축복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물론 때때로 이런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내면 속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태어날 때 나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 나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 물음은 제쳐두고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욕심, 분노, 무지를 좇는 데 사용한다. 결국에는 변할 것, 무상할 것들을 좇으며 산다. 감정과 고통에 집착하고, 어떨 때는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면서도 그들의 전 삶은 고통의 바다를 떠다닌다.

우리의 업을 지배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죽을 때(몸이 사라질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죽는순간 당신의 업은 당신을 어딘가로 끌고 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마 십중팔구 다시 고통의 바다에 태어날 것이다. 모든 생각을 끊으면 '참나'로 돌아갈 수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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