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2, 2012

있는 그대로 부처다

있는 그대로 부처다• 卽如如佛 Just-like -This is Buddha
靈光獨曜 逈 脫根塵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The sprit remains clear and bright. The six roots(senses) and six dusts(perceptions)fall away.
休露眞常 不拘文字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The original body remains clear constantly. Speech and words cannot hinder it.
眞性無染 本自圓成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True Nature has no taint, and is already a perfect sphere.
但難妄緣 卽如如佛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Not attached to any thinking, just-like-this is Buddha.
四大各難如夢中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The four elelments(earth, fire, water, air) disperse as in a dream.
六塵心識本來空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The six dusts(perceptions), roots(senses), and consciousness are originally empty.
慾識佛祖廽先處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
Do you want to understand the Buddha and the eminent teachers?
日落西山月出東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The sun sets over the western mountains. The moon rises in the east.
오래전 중국에 '신찬[神讚]'이란 스님이 한 분 살았다. 그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실험을 모두 통과했다. 은사스님이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은사스님은 참선 수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신찬에게 경전만 가르쳤고, 나중에 훌륭한 학승이되어 그이 맥을 이어가기을 바랐다.
그러나 신찬은 경정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의문이 생겼다.
어느 날 은사스님은 뛰어난 제자 세명을 뽑아 3년동안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그 돈으로 중국어디서나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찬도 그중 하나로 뽑혔다. 은사스님이 제자 세 명을 불러모았다. 그들 각자에게 앞으로 3년동안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첫 번째 스님은 유교를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스님은 도교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내 신찬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네가 이미 경전에 도통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나 신찬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3년동안 좀 쉬었으면 좋겠읍니다."
스승은 약간 서운했지만 승낙했다. 신찬은 곧바로 길을 떠나 참선을 가르치는 절로가서 아주 열심히 수행했다. 그는 오직 100퍼센트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며 3년 정진끝에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그곳에 그대로 머물까도 생각했지만 어릴 때 부터 항상 그를 돌봐주어 왔던 은사스님에 대한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드디어 드디어 신찬을 비롯한 제자 세 명이 모두 3년 뒤 약속한 날짜에 모였디. 은사스님은 제자들을 하나씩 불러 그동안 공부한 것을 물었다.
"그래, 유교를 공부하여 무엇을 배웠느냐?"
"언제나 다른사람과 좋은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을 배웠읍니다. 부모와 스승을 공경하라는 것도 배웠읍니다."
"훌륭하다."
"그래 신찬은 지난 3년간 무엇을 배웠느냐?"
"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읍니다."
"아니, 저 두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너는 배운 게 없다고?"
"피곤할 때 잠자고 배고풀 때 먹었읍니다."
엉뚱한 대답에 은사스님은 화를 냈다.
"이 발칙한 놈 같으니. 저 두사람은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스승이 될 터인데, 너는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왔다는 말이냐. 너는 내일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심부른이나 하거라."
스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신찬을 마음속 깊이 아꼈기에 내칠 수가 없었다. 신찬은 매일 스승의 방을 청소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빨았다. 어느 날 은사스님이 목욕을 하면서 신찬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신찬은 그의 등을 밀면서 온잣말을 했다.
"법당은 훌륭한데 영험이 없구나 [好所佛堂 而佛不聖]"
은사스님이 무슨 말인지 몰라 천천히 얼굴을 돌려 신찬을 바라보자 신찬은 계속해서 말했다.
"부처는 비록 영험이 없지만, 능히 放光을 하는구나."
이말을 들은 은사스님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충격을 받고 신찬이 보통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녀석이 뭔가 바뀌어 돌아왔구나.'
며칠후 어느 날, 은사스님은 방에서 열심히 경전을 일고있었다. 신찬은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룻바닥을 조용히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지기 벌 한 마리가 방 옆 창호지에 달라붙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옆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나갈곳을 찾기위해 아둥바둥거리고 있었다. 이를 물끄러미 보고있던 신찬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계는 광대하고 넓은데 어찌하여 낡은 창호지만 뚫고 있는냐." 그리고 신찬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空門不背出]
창을 뚫고 있으니 어리석구나[投窓也太癡]
백년을 낡은 종이 뚫어보아야[百年鑽故紙]
언제나 깨칠 날을 기약하리오[何日出痘時]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신찬의 눈을 꿇어져라 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은사스님은 잠시 후 이렇게 물었다.
"네가 바깥에서 행각하며 누구를 만났고 어떤것을 배웠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
신찬이 말했다.
"저는 이곳을 떠나 백장[白丈] 큰 스님께 갔읍니다. 그리고 백장 스님의 가르침을 입어 얻은 바가 있읍니다만, 은사스님께서 연로하신것을 생각하고 일부러 돌아와 지비은덕을 갚고자 한것 뿐입니다. 스승님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조잡한 언어로 시를 지어보았읍니다. 용서하십시요."
은사스님은 잠시 침묵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다. 너는 나의 제자였지만 이제 네가 나를 가르치는구나. 너의 깨달음을 나에게도 전해다오."
은사스님은 북을 울려 모든 스님들을 법당 안으로 모이게 한 뒤 신찬에게 설법을 청했다. 신찬은 법좌에 올라서 이렇게 말했다.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靈光獨輝)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迥脫根塵)
진여의 항상한 본제 드러나 (體露眞常)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不拘文字)
마음의 성품이 물듦이 없으니 (心性無染)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本自圓成)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但難妄緣)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卽如如佛)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四大各難如夢中)
욱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六塵心識本來空)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慾識佛祖廻先處)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日落西山月出東)
신창의 시를 찬 줄 한 줄 보자.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이 문장은 본성과 공을 설명하고 있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엊ㅄ고 마음도 없다.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경전의 공부와 학문적 사고의 틀을 깨도 있다.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본성이 맑으며 이미 완전한 원[圓]이다. 우리 본성은 그대로 완전하다 . 따라서 원죄란 없다.
우주처럼 시작도 , 끝도 없다. 그래서 그다음 문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다.
다음 문장은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이다.
이는 소승불교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고통의 세계, 아니 사실은 고통으로 가득한 꿈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공함, 열반을 얻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모든것은 오로지 우리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섯 가지 먼지(인식작용). 여섯가지 뿌리(감각). 그리고 여섯가지 의식은 본래 공하다.
이 문장은 대승불교 가르침의 벼대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과 조시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미지막 문장은 이에대한 답이다. 다름 이닌 완벽한 있는 그대로의 진리(Just like-this Buddha ) 를 표현하고 있다.
'선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 이다. 여여[如如]하다. 구것이 전부이다. 마음이 공하면 맑은 거울과 같다. 태양이면 태양, 달이면 달, 있는 그대로 비춘다. 그때 우리는 순간의 세계(moment-world)를 얻는다. 그것이 단지 진리이다. 비추는 것이다. 이것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본성이란 바로 불성이다. 그것은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든 말로 표현할력고 하니까 '불성' ,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미국 가톨릭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참선 지도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부처'라거나 '불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대신 '신성(神聖)' 으로 바꿔 불렀다. 수도사들은 아주 행복해했고 우리 모두는 완전히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떻게 부르든 말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탕!"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에 즉각 깨닫고 말하기를 "다 늙어서야 궁극의 일을 듣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何期垂老 得聞極則事)"하였다.
이리하여 절의 소임을 신찬에게 맡기고 도리어 신찬스님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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