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16, 2012

6 문 부처님 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6 문 부처님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한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문 채 법당에 들어와 부처님 얼굴에 연기를 내뿜기도 하고 손 위에 담뱃재를 털기도 한다.
스님 한 분이 놀라서 뛰어와 이렇게 꾸짓는다.
" 지금 성스러운 법당에서 뭐 하는 것이냐?"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성스렁운 것도, 속된 것도 본래 따로 없는 것이거늘, 부처님의 머리에 재를 털었기로서니 무엇이 잘못됐는가요?
이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이고, 그 하나가 바로 나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든 다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요?"


질문
1. 당신이 스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제도[濟度] 하겠는가?

언뜻 생각하면 이 남자 말이 맞다.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많은 절의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 있다.
'온 우주가 부처이다'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다. 부처는 도처에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우주에 부처의 몸 아닌 것이 없다.
한 남자가 법당에 담배를 피우면서 들어온다. 그는 불상에 연기를 내뿜고 머리에 재를 떨어뜨린다. 스님이 놀라 뛰어온다.


"미쳤느냐, 왜 성스러운 부처님의 머리에 담뱃 재를 터느냐?"
하지만 남자는 절의 기둥에 적힌 문구를 가르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 여기 이렇게 우주 만물이 부처라고 씌어 있지 않습니까?
이 담뱃재도 불성을 가지고 있읍니다. 내가 재를 어디에 떨어뜨린다 해도 부처님의 땅 아닌곳이 어디 있읍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는 알고 있지만 둘은 모르고 있다.
그는 모든 법이 여여[如如], 즉여[卽如] 그리하여 올바른 실용으로 나아가는 경계를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 그는 '공'에 집착해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신심이 깊은 한 보살이 무려 10년 동안 한 스님의 수행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를 위해 암자를 지어주고 음식과 옷과 약을 주었다. 보통 10년 정진,
수행을 하면 깨닫는다고 생각한 그보살은 10년 후 그 스님이 얼마나 깨달았는지 듣고 싶었다.
마침 보살에게는 예쁘고 젊은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날 보살은 딸에게 아주 예쁜 옷을 입힌 다음 맛있는 음식 훌륭한 옷을 스님에게 보내면서 색다른 당부를 했다.


"이것들을 스님께 갖다드려라. 그런다음 스님을 유혹하거라. 그런다음 스님의 반응을 내게 알려다오."
딸은 스님이 있는 암자로 갔다. 그러고는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께 듣지하니 당신은 위대한 스님이십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수행을 하셨다구요.


어머니께서 이것들을 가져다 주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순간, 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내치며 이렇게 말했다.
"찬 바위에 썩은 통나무다 엄동설한에는 온기가 없는 법이다."
딸은 마을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 정말 훌륭한 스님이세요. 저를 "찬 바위에 썩은 통나무이다. 엄동설한에는 온기가 없는 법이다"라고 하시면서 전혀 흔들림이 없었어요."
그러나 딸의 말을 들은 보살은 스님에게 냅다 뛰어 올라갔다. 그러더니 스님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10년동안 악마를 봉양했구나. 여기서 나가라. 이 악마야."


보살은 스님을 암자 밖으로 내쫓았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작스런 보살의 행동은 무엇인가? 스님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가?
이 스님은 불상에 재를 떨어뜨리는 담배 피우는 남자와 같다. 스님는 단지 그의 생각에 집착해 있을 쁜이었다.


그는 그의 수행 경험에 집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행했을 뿐이었다.
외국에는 이런종류의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물론 조용하고 평화롭고 움직이지않는 마음을 기지기 위해 수행을 열심히 하면 원하는 상태를 얻을 수 있다.
명상을 해서 어던 좋은 감정을 가질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속에 지혜가 있는가?
단지 평화로운 마음만 간직한다면 지혜가 어떻게 자랄 것인가. 이런 식으로 수행한다면 지혜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 바른 상황, 바른 관계, 바른 실천을 행할 수 없다.
앞서 예로 든 그 스님이 그 상황에서 인식해야 할 바른 관계란 그 딸이 자신을 10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봉양해준 보살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바른 행동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이 젊은 여자에게 맑고 자비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누군가 법당에와서 부처님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고 머리에 재를턴다. 그는 그가 처한 현재 상황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순간순간 올바른 실천도 하지 못한다. 당신이라면 부처님 불상에 재를 턴 그 남자를 무슨 말로 가르칠 것인가?
조심하라. 그 남자는 아주 집착이 강한 사람이여서 여러분이 그를 때리면 그는 더 세게 어러분을 때릴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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