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1

산은산 물은 물

향곡 혜림 대종사 香谷 蕙林 大宗師

향곡스님의 행장行狀
스님의 당호는 향곡香谷이요, 법명은 혜림蕙林이시다. 만겁의 조사관문을 격쇄하고, 불조라는 둥우리를 타파했으니, 엉키고 설켜서 사시지 않고 고상한 세계를 독보하시었다. 어떤 때는 한 줄기 풀로서 장육금신 부처닌을 만들고, 어떤 때는 장육금신을 가지고 한줄기 초개를 만들어 쓰기도 하셨다.
스님께서는 1912년(임자년) 1월 18일 경북 영일군 신광면 토성리에서 태어나시니, 아버지는 김원묵金元默, 어머니는 금숙정행金寂靜行, 속명은 진택이라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절에 가기를 좋아하더니, 16세 때, 종형을 따라 천성산 내원사에 입산하여, 18세에 조성월趙性月스님을 은사로 하여 수계를 받고, 20세가 되어 금정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당시에 雲峰선사께서 내원사의 조실이시라, 그 문하에서 시봉하며 정진하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셨다.
늦가을 어느 날, 산골짝 돌풍이 몰아쳐서 문짝을 때림에, 홀연히 한가닥 옛길이 확철히 열렸으니, 의심하던 화두 공안과 가슴에 걸렸던 것이 활연히 없어져서, 기쁘고 즐거움이 다함이 없었다.
스임께서 곧 운봉선사를 뵈오니, 선사께서 보시자 마자 목침을 두고 『한마디 일러라.』하시기에 『천마디 말, 만마디 이야기가 모두 다 꿈속에 꿈을 설함이니, 모든 佛祖는 나를 속인 것입니다.』하니, 운봉노사께서 크게 기뻐하시었다.
1944년 8월 임제정맥臨濟正脈 등불과 등불이 상속한 이도리를 부촉하시니, 즉 양기楊岐, 밀암密岩, 태고太古, 환성喚性, 율봉栗峰, 경허鏡虛, 혜월蕙月스님까지 내려온 정법의 계통이다. 운봉선사는 법을 전하는 계송을 적어 주셨으니

서래무문인 西來無文印은 서쪽에서 온 불법, 흔적없는 참 진리는
무전역무수 無傳亦無受라. 전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나니
고난무전수 苦難無傳受면 받고 전할 것 없는 이치를 떠나버리면
조토부동행 鳥兎不同行하리라. 해와 달은 같이 가지를 않는 것이니라.

그리고 당호를 내려주시니 『향곡 香谷』이라 하였다.
1947년에 문경 봉암사에서 여러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던중에, 한 도반이 묻기를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면 지금 바로 산 사람을 볼 것이요, 또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면 지금 바로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한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었이겠느냐?』하거늘, 여기에서 바로 무심삼매에 들어가, 21일 동안 침식을 잊어버리고 정진하다가 하루는 홀연히 자기의 양 쪽 손을 발견

하자마자 활연대오豁然大悟하시고 계송을 읊프셨다.
인견양수전체활 忍見兩手全體活하니 홀연히 두 손을 보고 전체가 들어났네.
삼세제불안중화 三世佛祖眼中花로다.삼세의 불조들은 눈병에 헛꽃일세.
천경만화시하물 千經萬話是何物고 천경과 만론들은 이 부슨 물건인가.
종차불조총상신 從此佛祖總喪身이로다 이로 좇아 불조사가 상신 실명 하였구나,

봉암일소천고희 鳳岩一笑千古喜요 봉암사에 한번 웃음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수곡만겁한 曦陽數曲萬劫閑이라 희양산 몇 곡조는 만겁에 한가롭다.
내년갱유일윤월 來年更有一輪月하야 내년에도 둥근달은 다시 있겠지.
금풍취처학려신 金風吹處鶴唳新이로다.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이 새롭구나.
이로부터 천하 노화상들의 말끝에 속지 않게 되었고, 임운등등任運騰騰하며 등등임운하여, 천하의 총림에서 사자후를 하시게 되었다. 그 후 묘관음선원을 창건하여 선방의 문을 여시니,제방의 청풍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여러 선방의 조실로 20여년을 계시는 동안 크게 법의 것을 세우고 종풍을 드날리시니, 문정門庭이 너그럽고 기봉이 헙준하시여 살활종탈殺活縱奪을 자유자재로 하시었다.
1967년 여름 안거를 마치는 해제법문을 하시는데, 법제자 진제眞際가 나와서 묻기를
『불조가 아신곳은 묻지 안거니와 불조께서 알지 못한곳을 일러 주십시요.』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九九는 八十一이니라.』하셨다. 진제가 디시
『그것은 불조가 다 아신 곳입니다.』하니, 스님께서는
『六六은 三十六이니라.』하시었다. 진체가 묻기를
『佛眼과 혜안을 묻지 아니 하거니와 어떤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하시니, 진체가 말하기를
『오늘에야 비로서 큰스님을 친견하였읍니다.』하니 스님께서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는가?』진체가
『관關 빗장 관』이라 하니, 스님께서는 『옳다. 됐다.』하시고는 곧 임제정맥인 태고, 경허, 혜월, 운봉, 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진제에게 부촉하시니,『불조 대활구 법문은,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지금 활구법문을 부촉하노니, 걷우거나 놓거나 네 뜻에 맡기노라.』하시었다 그 뒤로는 월내의 묘관음사에 계시어서 후학을 제접하고 지도하시더니, 1978년 12월 15일 해운정사에서 다음과같은 열반계를 읊으셨다.

목인령상취옥적 木人嶺上吹玉笛하고
나무사람은 잿 마루에서 옥피리를 부는데
석녀계변역작무 石女溪邊亦作無로다.
돌여자는 사냇가에서 또한 춤을 추노라
위음나반진일보 威音那 畔進一步하니
위음광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니
역겁불매상수용 .歷劫不昧常受用이로다.
역겁에 매하지않고 언제나 수용하리

스님께서는 3일후, 18일 인시寅時에 빕적하시니, 세수는 67이시고, 법납은 50년이시다.

산은 산 물은 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굴리시고 말씀하시되,
산승이 법상에 올라온 것을 무엇이라고 봐야 되겠는가? 여기에서 바로보고 바로알면 一大事를 다 마쳐 버려서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늘(天是天)이요, 땅은 땅 (地是地)이라, 산은 산(山是山)이요, 물은 물(水是水)이라.」하는 여기에 무엇을 덜하고 무엇을 더하겠는가?
하늘은 하늘대로 무심히 항상 법문을 설하고, 땅은 땅대로 무심히 항상 법의 수레를 돌릴(轉大法輪) 뿐만 아니라 산도 그렇고 물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기에 대지에 진애가 끊어졌 거늘 어떤사람이 눈을뜨지 못하겟느냐? 라고 했다. 여기에는 생사도 없고, 번뇌도 없고, 법부와 성인도 없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로 더불어 조금도 다름없이 개개가 원마구족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만나면 차를 먹고 밥을 만나면 밥을 먹으며 또 가고 싶으면 가고 앉고 싶으면 앉는다.>하였다.
그런데 삼세제불이 어찌하여 出世를 했으며 역대조사는 무엇 때문에 출세를 했을가?
부처님도 팔상성도는 중하근기를 위해서 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한 분이 법상에 앉아계시고, 땅에도 수 없는 부처님이 솟아 오르고, 허공에도 수 없는 부처님이 내려오시고, 사방팔면에서 수 없는 부처님이 와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곳을 향해 에워싸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구태여 석가모니 부처님 만이 팔상성도八相成道를 했다고 하겠는가?
불법은 매우 깊어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도인이 말하기를 『과거 위음광불 이전에 분명히 천득薦得했다고 해도 삼십방三十棒을 맞는다.』했고, 또『강건너 멀리보이는 저 사찰의 찰간대刹竿臺 를 보고 다 알아 버렸다 해도 돌아가서는 역시 삼십방을 맞는다.』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방망이를 누가 면하겠는가? 바른 눈을 갖춘 본분종사라면 이 때에 전광석화와 같이 답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 산승이 법상에 올라 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피를 머금어서 남에게 품으면 먼저 자기 입이 더러워진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또 약은 병든 이를 낫게 하기위해서 금병金甁에서 나왔고 칼은 싸움을 진압하기위해서 보배갑에서 나왔다는 말과같이, 부득히 산승이 법상에 올라온 것이다.
이 법은 큰 신심과 큰 의심과 큰 용맹심으로 공부해야 성취하는 것이어서 이 세가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옛날 사람들은 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목슴까지도 아끼지 않고 법문에 들어 일대사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근기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공연히 선방이라고 지어서 「공부합네」하고 모여있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큰 신심과 큰 분심과 큰 용맹성이 아니면 공부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香谷은 月內의 조그마한 곳에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누구든지 찾아오면 나의 眼目대로 말해줄 것이니, 가게를 펴는 것도 그 물건이 팔릴만한 곳에 가서 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풍혈風穴선사는 20년을 법문하여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해도 그 밑에서 사람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공부는 마음 가운데에 티끌만한 것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다 틀려버린다. 그리고 공부해서 해결한다는 그 길만을 밟아 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미륵불이 下生하도록 해 보아도 아부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옛날에 장경長慶스님이 보복報福스님과 같이 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복스님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바로 저 곳이 묘봉정妙峯頂이라.」하니, 장경스님이 말하기를, 「옳기는 곧 옳으나 애석하다.」하였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애석하다.」고 했는가? 이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 고인들이 「관關 」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썼다.
중국에 취암翠巖선사는 대중을 많이 거느리고 여름안거를 마치는 해제일 법문에서 「하안거 한 철 동안 지내오면서 대중을 위해서 설화했으니 취암의 눈섭이 있는 것을 모았는가?」하였다.이 때에 대중이 아무도 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나중에 장경스님이 그 말을 듣고 『生也로다.』하고 답을 했고, 보복스님은『작적인심허作賊人心虛니라. 곧 인심이 허할 때 도적이 난다.』했고, 운문스님은 『관關』이라 했다.
이 『관關』은 알기가 매우 어렵다. 일본의 관산關山스님은 이 「관」자를 가지고 공부해서 3년만에 해결했기에 이름을 관산이라 했는데, 이 스님은 열반할 때에 목욕재계하고 법문을 마치고 나서 절 밖으로 나와, 절 앞 큰 계천溪川의 돌다리에 한쪽발은 땅을 짚고 한 쪽 발은 들고 서서 열반에 들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니 이「관關」이나 「가석허可惜許」의 뜻을 안다면 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출가한 목적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견성성불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절을 짓고 수리하는 일체불사도 견성성불하기 위해 공부하는 공부만을 위해서 해야지 거기에 명예나 욕심이 있어서 다른 생각으로 하면 죄만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고 참된 신심과 분심과 의심을 가지고 정진을 해야만 성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든지 못 입고 못 먹어서 승려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자꾸 늦추어서 來生에 한다는 생각을 내면 절대로 안 된다.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에 해결할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고인의 말씀에 『한 생각 불견법견佛見法見을 일으켜도 나귀의 태胎에 들어가고 말의 배에 들어가기가 화살과 같다.』고 했는데 무엇을 믿고 내생에 한다고 미룰 것인가? 공부가 그렇게 쉽사리 되는 줄 아는가?
꿈만 뀨어도 그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서 죽을 때에 정신 차려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말이 말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일 줄 아는가? 전부 뒤바뀌어 보여서 정신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데 무엇을 바로 볼 것인가?
참으로 이 정법을 만나 선방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먹고 입는데 팔려서는 도저히 안 된다. 머리에 불붙는 것을 끄는 것과 같이 해야 하고, 감옥에 갇혀 고초를 받는 사람이 풀려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같이 공부를 해야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편안하고 잘 먹는 것만 생각하면 道心이 일어나지 못하고 딴 망상과 분별과 번뇌만 일어나게 된다ㅏ.
어떤 사람이 단식을 하고 나서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이 배가 부르니까 온갖 야단들을 하는구나, 명리도 여자도 재산도 다 배가 부르니까 탐이 나는 것이지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도 없더라.』고 하는데, 그와같이 공부도 다른 것 일체를 생각하지 말고 오직 공부하나만 하면 안될리가 없는 것이다.
예전 스님네는 하루 해가 지나가면 다리를 뻗고 울었다는데 그렇게 공부하려고 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차별삼매差別三昧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방세계十方世界 그대로가 큰 반야며, 청정한 세계며, 크게 적멸한 세계며, 그게 해탈한 세계라고 하는 등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령 『可惜許』라든지, 『關』이라든지, 『蒼天』이라든지 하는 이런 것은 다 차별삼매에 속하는 것이다.
또 조주석교趙州石橋라는 유명한 공안公安이 있는데, 조주스님한테 어떤 스님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조주석교라고 들리더니 와서보니 보잘 것 없는 외나무다리 뿐이로구나.』했다. 이에 조주스님이 말하되, 『너는 다목 외나무다리만 보고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하니, 그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석교입니까?』함에, 조주스님이 『渡驪渡馬니라.』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 가느니라.고 했다.
그 후에 조주스님이 수좌와 함계 돌다리를 보고 있다가 수좌에게 묻되 『이것은 누가 만들었느냐?』하니,수좌가
『「이 응」이라는 사람이 만들었읍니다.』라고 답했다.조주스님께서 또 묻기를
『만들 때에 어느 곳을 행해서 손을 댓는고?』하니, 수좌가 꽉 막혀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듯이 우리가 공부해서 모든 차별삼매를 맑은 거울과 같이 밝고 환하게 알아서 천하 선지식의 言句에 조금도 의심이 없는 때라야 능히 대자우의 큰 일을 마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티끌 만치라도 「나」라는 생각이 있다든지,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공부는 벌써 그릇처 버린 것이다.

용수불개전체현 龍수拂開全體現하고
용수를 떨처버리니 전체가 드러나고
상왕행처절호적 象王行處絶狐跡이라
상왕이 행하는 곳에는 여우자취가 끊어졌더라.
화로속의 한 점 눈雪
하나의 기 機가 있으니 위음왕불威音王佛이전에는 東을 쫓아서 西에 서고 루지불樓至佛이후에는 서를 쫓아서 동에 선다. 대중은 알겠는가?
여기에서 확연 명백하게 알 것 같으면 일체 모든 무량한 며한 이치와 한없는 三昧를 모두 알아서 밝은 거울과 같이 검은 것이 오면 검게 나타나고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나타나서 조금도 걸림니 넚고 또 아무리 백천만의 境界가 오더라도 거기에 아무런 간섭됨이 없이 如如不動해서 일체 모든경계가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법은 누구든지 깨달음으로써 아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면 千經萬論을 외우고 쓰더라도 다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법은 깨달은 分上에서는 여윌래야 여윌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또 모로구르거나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가거나 행상 晃晃赫赫해서 빛이 더 나게 되는 것이다.
연꽃은 항상 물 가운데 나는 것이지 높은 언덕이나 마른 땅에는 나지도 않고 자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수천도가 넘는 뜨거운 불 가운데 피는 연꽃은 아무리 없앨려고 해도 없어지지않고 언제든지 피어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다 타서 없어져도 그 연꽃은 더 빛나고 더 향기가 나서 처처에 다다르는 곳마다 향기가 더욱할 것이다.
그와같이 공부를 해서 깨달아 가지고 자기의 안목을 확실히 밝게 갖출 것 같으면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서 최초 威音王佛 전이나 최후 樓至佛후에도 다 함이 없이 항상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허공은 다함이 있을 지언정 이 도리는 다함이 없이 한 번 깨달으면 영겁에 迷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일대 藏敎를 설하심이 눈 밝은 선지식의 안묵으론 오히려 모래를 뿌리고 흙 가루를 뿌리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수미산보다 몇 천 만 배나 더 크고 많은 진수성찬이 가득히 있어 일체 모든 사람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데 공현히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쉰밥이나 찌꺼기 밥을 먹으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 달마대사가 東土에 법을 전하러 왔다 함도 역시 「물을 짊어지고 우물가에 와서 파는 것돠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기 전이나 공부를 한 이후라도 자기의 근본이나 정법안장이나 공겁전 자기는 항상 스스로 드러나 있고 조금도 모자람이 없나니 여기에 누가와서 뭐라고 할 것인가? 그 말에는 백 천 버분과 한 없는 이치도 「화로속의 한 점의 눈과 같은 것이다.」
이와같은 頂門正眼으로서는 몸 전체가 이 손이요 또 눈이다. 여기서 몸 전체라고 하는 것은 조그마한 이 육신 몸뚱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덮고 대천세계를 덮을 만한 안목을 갖춘 큰 인물을 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가 눈이요 손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보고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라고 이름해도 축착함이 되어서 맞지않는 것이 하나도 없게된다. 또한 모든 佛祖가 殺活이 자제하고, 收放이 자유하며, 機用이 無碍해서 죽이고 살리는 縱奪을 마음대로 하고 機用提示를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일파유조수부득 一把柳條收不得하야 한 줌의 버들가지 거두어 얻지못해
화풍탑제옥난간 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 봄바람에 옥난간에 걸어두도다.

거 량 擧揚
스님께서 젊은 시절 행각 하실적에 하루는 누더기를 깁고 있는데 朴高峯스님이 와서 묻기를 『바느질은 어떻게 하는 거냐?』하시기에 바늘로 냅다 고봉스ㅡ님 다리를 찔렀더니 『아야 ! 아야!』하시거늘 한번 더 찔렀더니 고봉스님이 껄껄 웃으시면서『그녀석 바느질 잘하는구나.』하셨다
(2)
1954년 가을 스님께서 서울 대각사에서 田岡스님께 묻기를
『巖頭스ㅡ님의 密啓란 뜻이 무엇입니까?』했더니 전강스님 말씀이
『일천성인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하시거늘 스님께서『아이고 아이고.』하시며 문을 열고 나오니 전강스님이 부르면서『자네가 긍정 못하겠으면 다시 일러보라.』하거늘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말에 침 놓고 뜸 뜨는 것은 어리석은자나 할 짓입니다ㅏ.』하고 떠나 오셨다.
뒷날에 스님께서 법제자 진제에게 묻되
『암두밀계의 의지를 어떻게 보는가?』진체가 답하되
『마조스님은 천하인을 踏殺했지만 임제스님은 아직도 白拈賊이 못됩니다.』하니 스님께서 더 묻지 않으셨다ㅏ.
(3)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크고 큰 송장 하나가 있으니 머리는 非非想天 꼭대기에 닿아 있고 다리는 압비지옥 밑바닥에 버티고 있으며 몸뚱이는 시방세계에 가득차 있다. 만일에 이 대중속에 이 송장을 살려낼 자가 있겠는가?』하시었다. 이 때에 한 수좌스님이 나와서 『큰 스님!』하고 불렀다. 스님께서 응답하시니 수좌는 예배드리고 물러갔다. 스님은 말씀하시기를 『사자새끼가 사자후를 잘 하는구나.』하셨다.
(4)
春城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깊은 산 굴 속에 한 마리 청사자가 있는데 산에 갔다가 홀연히 그 사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만 되겠읍니까?』하였는데 그때 대중속에 한 노스님이 나오셔서『시자야, 절을 한 번 해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이 이야기를 가지고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께서 문득「사자의 울음소리」를 내시니, 춘성스님이 찬탄하면서 『과연 남방 선지식이니라.』하였다.
(5)
고봉高俸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가시려 하는데 금오金烏스님이 나와서 옷자락을 잡으며『올라가기 전에 한마디 이르고 가시오.』하니, 고봉스님이 『놔라!놔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가지고 법제자 진제스님에게 묻기를『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하시거늘 진제스님이 문득 「할」을 했더니 스님 말씀이 『네가 정말 그렇다면 만인을 눈멀게 할 것이다.』하시기에 진제스님이 말하기를 『소승의 허물입니다.』하니, 스님께서도 『노승의 허물이니라.』고 하셨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
하루는 진제스님이 스님앞에 나와서 물었다.
제자 : 스님께서는 뉘 집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며 누구의 종풍을 이었읍 니까?
스승 : 운봉스님 일구를 이어받아서 영겁에 쓰고도 다하지 않느니라.
제자 : 이 밖에 별다른 한 마디가 있읍니까?
스승 : 허리츰에 십만 관돈을 두득히 차고 하늘에나 땅에나 마음대로 놀 러다닌다.
제자 : 화상의 말씀 한마디를 들려 주십시요.
스승 : 진흙소 한 울음에 천지가 깜짝놀라 부처와 조사가 모두죽었더니 라.
제자 : 기특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스승 : 하나만 들먹이면 일곱을 얻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최초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석가와 미륵이 도탄에 빠졌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末後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버갯불속에 곤두박질 치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如來禪입니까?
스승 : 눈 밝은 남자가 깊은 우물에 빠짐이니라.
제자 : 어떤것이 向上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불조사가 불속으로 꺼꾸러져 갔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向下의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돌사람이 무쇠소를 잡아타고 벽옥의 저 세계로 달아났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轉身하는 한마디 입니까?
스승 : 머리가 셋 팔 여섯가진 놈이 삼키고 뱉음을 자제로 하느니라.
제자 : 대도는 문이 없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스승 : 쉬 ! 쉬 ! 말조심 해라.
제자 : 쉬 ! 쉬 !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스승 : 동쪽 서쪽 백억세계요, 남쪽 북쪽이 십억 국토니라.
제자 : 조주스님의 「뜰앞의 잣나무』 뜻이 무엇입니까?
스승 : 맹호의 아가리에 살림차리고 푸른 용의 굴속에서 곤두박질 하느 니라.
제자 : 조주 「무」자 뜻은 무엇입니까?
스승 : 마군이는 자빠지고 부처는 달아나고 손과 발이 덜덜덜 혼이 산발 하느니라.
제자 : 운문화상의 「간시궐」의지는 무엇입니까?
스승 : 밝은 해가 야밤중에 하늘에 뜨니 천상에나 인간에 짝할 이 없느 니라.
제자 : 동산수초선사의 「마삼근」의지는 무엇입니까?
스승 : 무쇠소가 놀라서 서천으로 달아나고 수미산이 야밤중에 황하강을 건너가니라.
제자 : 어떤것이 화상의 경계입니까?
스승 : 문수보살 집에서 해가 떴으며 관음보살 집에서 달이 지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화상의 일상 하는 것입니까?
스승 “쇠망치로 청룡의 굴을 쳐부셨으니 금털가진 사자가 개로변해 갔 느니라.
제자 :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스승 : 돌속에 불같은 얼굴이니라.
제자 : 조사란 어떤 것입니까?
스승 : 불꽃속에 돌같은 얼굴이니라.
제자 : 어떤것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 입니까?
스승 : 불속에 흙말을 굽느니라.
제자 : 어떤것이 모든 부처님이 출신하신 곳 입니까?
스승 : 토끼뿔 다리위에 무쇠소가 달음질 치느니라.
제자 : 선정이랑 무엇입니까?
스승 : 동하는 가운데 동하는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제자 : 대해탈은 어떤 것입니까?
스승 : 진흙소가 황하강을 건넘이니라.
제자 : 대적삼매가 무엇입니까?
스승 : 예날에 봉황새가 북두로 들어가더니 지금까지 까마득히 소식이 없다.
제자 : 어떤것이 本身을 매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승 : 금강의 눈동자속에 보검이 감춰져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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