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10, 2011

4. 앞도삼삼 뒤도 삼삼 !!!

4 원효대사

고려때 大覺國師 義天도 이차돈의 순교를 추모하여 그의 사당에 와서 읊기를

천리남래문사인 千里南來問舍人 님을 찾아 남행천리를 왔건만

청산독립기경춘 靑山獨立幾經春 아득한 청산만 쓸쓸히 마라보며 지내기 몇 해이러뇨

야봉말세난행법 若逢末世難行法 만약 말세에 법을 행하기 어려움을 만나면

아역여군불석신 我亦如君不惜身 나 또한 님과같이 몸 바치리다

원효스님은 도를 어디서 얻었는가 하면, 불교가 전하여온 중국으로 의상스님과함께 유학하러 가던중, 요동 땅에서 날은 저물었는데 집이 없어서 옛 무덤을 집인줄 알고 들어가 자다가 목이 어찌나 마르던지 물을 찾다가 무슨그릇인지 그릇에 물이 있기에 마시니 시원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가 먹은 물이 사람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어찌나 역하였던지 자꾸 토하다가 활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엊 저녁에는 모르고 먹어서 시원하였는데, 오늘 날이새고 보니 사람 해골의 물이구나 하고 분별을 하자 구토질이 나오니, 즉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하는 것이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認識이라, 마음밖에 법이 따로 없으니 어찌 별로히 구할 것인가.

그러니 마음이 나고 멸하는 것이 이 참마음 당체자리가 나고 멸하는 것이 아니라. 망상이 나고 멸하고 하는 것이다.

원효스님은

「나는 여기서 도를 알았으니 당나라에까지 갈 필요가 없다 하고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원효스님이 저술한 책이 천여권이나 달하였다. 저숢만 한것이 아니라, 신라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불교를 전도하였는데, 작은 장삼을 입고 주장자를 짚고 행각승으로 나서서 길을 가다가 선비를 만나면 선비에 맞게 설법을 해주고, 농부는 농부에 알맞게, 아이는 아이에 알맞는 법문을 해주고, 어른은 어른에게, 무식한 이에게는 무식한대로, 여자에게는 여자에 필요한 법문을해주는데, 만나는데로 감화를 시키며 다녔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는 동요를 들려주었는데, 쬐그마한 아이들에게 어려운 말로 진리를 말해주어야 모를 터이고

중아 중아 니 칼 내라 뱀 찾아 회치고

개고리 잡아 탕 하고 찔레 꺾어 밥하고

니 한그릇 내 한그릇 평등하게 나눠먹고

알랑달랑 놀아보세 알랑달랑 놀아보세

아이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웃고 노는데,

중아 니 칼 내라, 사람마다 지혜의 칼이 있는데 수도하는 사람은, 진리로 밥을 한다는 말이다. 찔레 꺾어 밥한다는 말 개고리 잡아 한다는 것은, 개오리開悟理 즉 모두 깨닫는 이치로 탕을 하고, 뱀을 잡아 희친다는 말은, 뱀을 사사四蛇라고 하는데, 우리 몸이 흙, , , 바람 등 네가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네가지가 마치 모진 뱀과 같으니, 이것이 몸 가운데 부족하든지 많든지 하면 몸에 병이나서 사람을 고생시키니 이것을 조복받고 다스려서 회를 쳐서,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이이나 어른이나 평등하게 한그릇씩 먹고는 알랑달랑 놀어 보자는데, 이 알랑달랑 이것이 천진무후天眞無垢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爬羅密多心經인 것이다. 무슨소리인지 모르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좋아라 한다.

원효스님의 그 방대한 저술과 도덕과 깊고도 멀리 인도의 용수龍樹, 마명보살馬鳴菩薩에나 비교할 수 있다면 있을까, 하여튼 초기의 신라불교를 방방곡곡에 편 분이다.

청록만지홍일점 靑綠萬枝紅一点 울창한 푸른숲에 붉은꽃 한송이여

동인춘색불수다 動人春色不須多 봄빛이 사람을 동하게 하는 것은 많은 것이 아니어라.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前三三 後三三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개문금일간평야 開門今日看平野 문을열어 평야를 바라보니

서월남풍대맥황 四月南風大麥黃 사월 남풍에 보리는 누렇고

연자쌍쌍전밀어 燕子雙雙傳密語 제비는 쌍쌍히 날아 밀어를 전하는데

산고수벽만화홍 山高水碧萬花紅 산운 높고 물은 프르러 오만가지 꽃이 향기롭네

예전에 어느 선비가 제비들이 강남에서 날아와서 반가운듯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자문자답으로 지은시가 있다.

연연래야소식호 燕燕來耶消息好 제비야 제비야 너 왔느냐 소식이 좋구나

강남풍경근여하 江南風景近如何 강남의 풍경이 요즈음 어떻니

제비의 답이

작야동풍작야우 昨夜凍風昨夜雨 어젯밤 동풍 어젯밤 비에

홍도화발주인가 紅桃花發主人家 복사꽃이 주인댁 뜰에 흐트러지게 피었읍니다.

산평등고처처상평 山平等故處處常平 산이 평등하기 때문에 어디든지 항상 푸르고

수평등고상합장류 水平等高相合長流 물이 평등하기에 물과 물이 서로만나면 합하고 길이 흐른다

일월성신평등고사시상명 日月星辰平等故四時常明 해와 달과 별이 평등하기에 네 계절이 언제나 밝고,

인심평등고안횡비직 견색문성상동 人心平等故眼橫鼻直 見色聞聲相同 사람의 마음이 행동하기에 눈은 가로열리고 코는 내리 붙어서 빛을보고 소리를 듣는것이 모두 다 같은 것이다.

진리평등고고금일여 眞理平等故古今一如 진리가 평등하기 때문에 옛날과 이제가 한결같다

만경평등고화소조가 萬境平等故花笑鳥歌 온갖경계가 평등하기에, 꽃은 웃고 새들은 노래한다

시법평등고고하장 시비명암선악생사도무 是法平等故高下長 短是非明暗善惡生死都無 이 법이 평등하므로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과 옳고 그름과 밝고 어두움과 선과 악과 생과 사가 없는 것이다.

시명아녹다라삼막삼보리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이름이 아녹다라삼막삼보리 이다

한참있다 이르시가를

량구운 향하장언 명일갱래 良久云 向下長言 明日更來

「 이후 긴 말은 내일 다시 올지어다,

옛날 항주에 무착 문희선사라는 분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갔었다.

성지인 오대산 금강굴앞에 앉아 있는데 노인이 소를 몰고 오다가 말을 건넨다.

「자네는 어떤사람인데 무엇하러 이 깊은 산중에 앉아있는가?

「예,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왔읍니다.

「문수보살을 가히 친견할 수 있을까……,자네 밥 먹었는가 ?

여기서부터 법담이 시작이다. 법으로 한 번 집적거려 본 것이데 무착이 말하기를

「안 먹었읍니다.」 한다.

밥을 먹고 안 먹고를 말한것이 아니라, 법으로서 한번 이 사람이 무어 도가 좀익은 사람인가 싶어서 찔러 본 것이데

「밥 안먹었다.」고 한다.

우리 일상생활 밥 먹고 옷 입고 대 소변보고 하는 모든 우리주변에 불교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있건마는 사람이 모른다, 있다고 해도 모르니 탈이다.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깜깜하다.

무착이 「밥을 안 먹었다.」고 하니, 「생짜로구나.」하고는 그 노인이 그냥간「다.

그래도 눈치는 빨라서 비록 그노인이 소를 몰고 가지마는 말하는 태도라든지 얼굴표정이 범상치 않은 그 무엇이 있음을 보았던지, 그 노인을 따라간다. 얼마쯤 가니 절이 나타났다.

노인이

「균제야!

하고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나와서 소를 받아 매었다.

잠시후 차가 나왔는데, 다완茶椀이 무엇이더냐 하면 금, , 유리, 자기, 마노, 호박 등 일곱가지 보배의 하나인 파려로 된 훌륭한 잔이었다.

처음 마시니 보통 세상에서는 맛복 수 없는 소락제호酥酪醍醐 차였다.

몸과 마움이 형언키 어려울 지경으로 아주 상쾌한 향기로운 차였다.

노인이 물었다.

「자네 어디서 왔는가 ?

「남방에서 왔읍니다.

노인이 찻잔을 들고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는가 ?

「없읍니다.

「이런 물건이 없다면 무엇으로 차를 먹는가 ?

그러니 찻잔을 들고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는가 ?」 할 때에묻는 뜻은 모르고 찻잔을 물은 줄 안다.

어리석은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흙덩이가 자기를 때렸다고 흙덩이를 쫓지만, 사자한테 흙덩이를 던지면 흙덩이는 어디 갔든지 바로 던진 사람을 문다.

사자하고 개하고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 ?」하니 없다고 하자, 뜻은 다른데 있지만 슬쩍 돌려서

「그러면 찻잔이 없으면 무엇을 가지고 차를 먹느냐 ?」하고 물었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 ?」는

그 말에 좋은 뜻이 있지만 모르니 어찌하겠나.

여러분들은 좌에 앉기전에 있는 그 소식을 알아야 한다. 그 낙처落處 어디에 떨어질줄을……

무착이 그 절의 방을 둘러보니 벽과 방안의 모든 장식물들이 모두 순금으로 휘황찬란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남방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하는가 ?

「말법비구末法比丘 계율을 지켜 유지 합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 ?

「혹 삼백명도 되고 오백명도 됩니다.

그러니, 노인이 묻는 뜻은 딴데 있건만, 사실 그대로만 말한다.

법을 모르니 혹 삼백명도 되고 혹 오백명도 된다고 한다.

무착이 노인에게 묻는다.

「여기 불법은 어떻게 주지합니까?

「범부凡夫 성현聖賢 함께살고, 용과 뱀이 혼잡해 있느니라.

무착에게는 무슨 말인지 막연한 말 뿐이다. 그저 듣고만 있었지, 어디에 떨어지는 말이지 모르는 말 뿐이다.

또 물었다.

「여기는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앞도 三三이요 뒤도 三三이니라.

대중의 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니, 마치 까치 뒤집혀 날아가는 소리다. 무슨 소리인지……,

날이 저물어지니 무착無着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자 노인이 말하기를

「염착染着 있으면 잘 수 없다.

즉 마음에 번민과 집착이 있는 사람은 여기쉬어 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노인이 또 묻는데 묻는 방법이 묘하다.

조금 있다가 묻기를

「자네 계행을 지키는가?

「예, 어릴때부터 지키는데 지금까지 지키서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염착이 아니고 무엇인가 ?

자칫 잘못하면 계행을 지키지 말라는 소리로 오해할 우려가 있는데 계행을 지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닦아도 닦음이 없고 행해도 행함이 없고 가져도 가짐이 없는 경지境地 들어가야 되는데 아직까지 꼭 거머쥐고 있으니까 집착이란 말이다.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줄을 타는데, 지팡이를 집고 줄을 낮게매고 왔다 갔다 하는데, 지팡이를 놓고 줄을타야 조화가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조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 노인이 무착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한 가지 한 가지 묻는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가질 것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하니, 아직까지 가져도 가짐이 없고 닦아도 닦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말이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노인이 무착더러

「자네는 염착이 있어서 여기서 못잔다.

하고 시자 균제 동자를 시켜서 보낸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뒤집어 씌우는데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서 균제 동자에게 절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니, 반야사般若寺 한다.

무착이 생각해 보니, 다른말은 그만두고 대중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고 한 말에 걸러서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여, 내가 노인에게 대중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 하니 그 뜻이 무슨 도리요 ?

동자가 말하기를

大德!

「예.

「이 수효가 얼미나 되느냐 ?

대덕이란 말은 존칭어尊稱語.

「대덕아 !」하고 불러놓고, 대답하니 「이 수효가 얼미나 되는가 ?」하니 천리 만리나 아득하여 모르겠다.

하나가 통하면 백천 삼매가 모두 통할텐데, 그것을 모르니, 바로 가르쳐 주어도 안통한다.

그런말은 모르겠기에 다시 동자에게 법문을 청하였다.

「동자여 나를 위하여 법문을 좀 해주시오.

동자가 법음法音을 들려주는데

면상무진공양구 面上無瞋供養具 얼굴에 화를 안내면 공양꺼리요

구리무진토묘향 口裡無瞋吐妙香 입으로 화를 내지않으면 토함이요

심내무진시진보 心內無瞋是珍寶 마음 가운데 성냄이 없으면 이 참보배요

무구무염즉진상 無垢無染卽眞常 물둚과 때가 없으면 곧 항상 참됨이로다

잠시후 돌아다 보니 절도 사람도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그저 깊고 푸른 산중이었다.

아하, 그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 자기가 친견하려고 이 깊은 산간을 지극한 신심으로 찾아헤매던 비로 문수보살이었건만, 지혜智慧 눈이 열리지 못하여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엿으니, 그곳을 향해서 무수히 절을하고 한번 더 친전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염원念願 하였다.

그후 공부를 참으로 착실히 하였다.

어느때 오대산에서 전좌典座라는 소임을 맡아 보고 있으면서 동지팟죽을 큰 당구솥에 쑤고 있었는데, 풀떡풀떡하고 끓어 어르는 죽 솥에서 문수가 차례로 죽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무착이 주걱으로 이리치고 저리치고 막 치면서

「문수도 자기의 문수요 무착도 내 무착이다!」 문수보살이 방망이를 맞고 나오며 하는 말이

「네가 三大劫 수행해서 노승의 혐의를 입었구나. 쓴 꼬두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사무처 달다.

이삼대겁수행 爾三大劫修行

환피노승혐의 還被老僧嫌疑

고호연근고 苦瓠連根苦

감고철대감 甘苽徹帶甘

첫귀는 무착에게 향상일로를 은근히 일러주는 동시에 문수자신의 전신활로轉身活路 슬쩍 보인 것이고,

둘째귀는 무착의 깨친것이 아직 사무치지 못한것을 일러준 말이다.

, 그러니 무착이 공부가 익기전과, 공부를 이루어서 눈이 밝아졌을 때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공부를 성취하기 전에는, 그저 성현을 한번 친견하려고 원력을 세우고 깊고 깊은 오대산을 방황하다가 친견을 하였는데도 눈이 밝지 못하여 알아보지도 못한 채 헤어져서는 한 번만 더 친견하게 해 달라고 원력을 세웠는데, 알아 봤던지 알아보지 못했던지 성현을 한 번 친견하면 모든 업장과 수행의 장애가 모두 사라지고, 성현의 가피加被 입어서 마침내 공부를 성취하고 난후엔, 문수가 나타나도 문수는 제 문수고 무착도 내 무착이다. 무슨상관이 있는냐 하고 이리치고 저리치니 참으로 대단한 용기이다.

문수대지사文殊大智師

저 법에 자재하고 살활종탈殺活縱奪 자재하나 중생계衆生界 밝은 빛이요

人天 師長이로다

산궁수진처 山窮水盡處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유록우화홍 柳綠又花紅 버들이 푸르고 꽃이 볽었도다.

여러 선남 선녀가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부모밑에 학생으로 있을 때는 아무생각과 걱정이 없었는데, 학교를 마치고 장가가면 좋다고 아버지 흉내내듯이 장가보내고 처녀는 어머니 흉내내듯이 무슨 좋은 일이나 있나 싶어서 시집을 간다.

이렇게 해서 가정을 이루어 놓으니 죽을 지경이다. 꼼짝 못하고 오만걱정, 사람아니면 물질, 물질아니면 사람, 이 두가지에 밤낯없이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기를, 어쨋든 이 두가지에 초월해서 사바세계를 무대로삼고 멋들어지게 연극잘하고, 늘 쾌활하고 명랑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사으라고 이른다.

어떤 사람이 산에갔는데 큰 곰이 나타나서 잡아 먹으려고 덤빈다. 하도 큰 놈이 덤벼서 우선 급하여 큰 나무뒤에 숨으니, 미련한 곰이 나무뒤로와서 사람을 잡아야 할텐데 나무를 껴안은 채 다라를 들어 사람을 잡으려하니, 사람은 지혜가 있어서 곰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곰이 사람을 물려고하니 나무가 있어 못 물고 어디로 달아나려고 해도 사람이 두다리를 꽉 잡아서 못가고 꼼짝 못하고 있는데, 사람은 곰이 자기를 잡아 먹으려고하니 곰 다리의 냄새는 누리하게 나지만 다리를 놓으면 죽을 처이니 그것을 생명선이라 법도 굶고 아주 죽을지경인데 곰도 죽을 지경이다.

필사적으로 곰다리를 거머쥐고 있기를 사흘만에 어떤 나뭇군이 큰 도끼를 지게에 얹어 왔는데 누가 큰 곰다리를 거머쥐고 있는게 아닌가. 아이고 여기 있다가는 저 곰한테 죽겠구나 하고 달아나려고 하자, 곰 다리를 거머쥔 이가

「여보게, 그 도끼로 이 곰을 잡자. 이 곰 쓸개는 금보다 비싸다네, 이 곰이 쓸모가 많으니 이 곰을 잡자.」고 하니, 나뭇군이 그말에 귀가 솔깃해서 또끼를 가지고오자

「여보게, 이 다리를 좀 쥐고 있게나, 나는 곰을 많이 잡아봤는데 도끼로 요긴통을 바로 딱 때려야 잡지, 만일 잘못해서 설 때려 놓으면 자네도 죽고 나도 죽네.

그러니 많이 잡아 봤다고 하자 슬며시 곰다리를 거머쥐었다.

곰다라를 잡고있던 사람은, 사흘씩이나 굶고 곰에게 시달리다가 곰다리를 다르이에게 전장시켜놓으니 어찌나 좋던지 「휴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또 실컨 쉬고는 한다는 말이

「여보게, 내가 말은 그렇지만 실은 곰을 잡아보진 못했다네 그러니 내가 잘못 섣불리 치다가는 자네도 죽고 나도 죽네.

그러니 누가 오거든 나처럼 자네도 곰다리를 전장시키고 가게나.」하고 달아났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처녀로있고 총각으로 있을 때에는 아무걱정이 없었는데, 장가가고 시집가니까, 마치 곰 다리를 거머쥔 것과 같다. 꼼짝없이…….

그러니 이 곰다리, 집안 살림살이의 곰 다리는, 아들 장성시켜 며느리를 맞아서 전장시키고,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을 왜 하는가 하면 본래없는 것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놓으니 마치 곰 다리를 거머쥔 것과같은 처지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모든일에 당기면 늘어지고 놓으면 오그러지는 신축성을 가지고 마음을 쓰게 하는, 폭을 너르게하고 남에게 관대하게 포용하고 물질과 사람에 초월한 정신을 가지고 멋들어지게 살라고 하는 말이다.

부모 태중에서 나올 때 영감을 업고 나왔나 마누라를 안고 나왔나 자식들을 안고 나왔나 빈 몸 빈 손으로 나왔는데 이것에 애착이 붙어서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고, 밤낮없이 걱정만 한다.

그런 망상 다 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본연의 천진면목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그 망상妄想없는 경지에 가서 생각하면 올바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실상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긴 여겨도, 너무 집착하지 말고 물질과 사람에 모든 사람들이 집착하지마는 초연히 생각하고, 초월한 전신으로 사물을 대하면 모든 일을 달관할 수 있는 것이다.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요,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반야경에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아라 하였으니 이 이름 뿐이다. 이 말이여. 여러분이 김 아무개다 박 아무개다 이 아무개다 하고 이름도 있고 성도 있지마는 어디본래 이름이 있나. 부모 태중에서는 이름도 성도 없는 것인데 다만 법에 대명사로 붙여서 부르기 편리하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잔리법은 말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부처님과 조사가 말을 붙여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니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요, 오늘 설법이 아니라 다만 이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할 일할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