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6, 2011

2 할머니 옛날이야기 두번째

2 경봉 스님 말씀

참선은 많은 말이 필요치않은 것이다. 눈만 끔적거려도 알고 손만 한 번들어도 아는 것이 이 도리니까. 화두話頭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조사祖師가 중ㆍ하근기 中下根機를 위해서 바로 일러준 것인데, 천 칠백가지 공안 公案가운데 하나만들고 참구 參究하여 화두가 타파되면, 나의 이 본성 本性을 아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앉으나 누우나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해서, 도 닦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물이 흘러가듯 해야 한다. 앉으나 누우나 항상 자기의 그 알려고 하는 화두를 눈앞에 대하기를 사람을 서로대한 것과 같이 해서 잠시라도 중단하면 안된다.

금강과 같은 그런 큰용기와 뜻을 세워서 죽나사나 하는 그런심정으로 공부를 화되, 한 생각이 만년과같이 해서 내 마음의 광명을 돌이켜 비춘다. 살피고 다시 관하여 미음가운데 망상과 하찮은 생각이 있나없나 살펴서 망상이 붙으려해도 붙을 수가 없어야 한다. 파리가 오만군데 다 붙지만 불이 훨훨 붙는데는 못 붙듯이 망상의 파리도 듣는데 붙고 보는데 붙고 일상생활 붙지않는데가 없이 붙어서 사람의 애를 먹이지만, 지혜智慧의 불이 훨훨 붙는데는 붙으려해도 붙을 수가 없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있으면 혼침에 빠져 잠이오거나 이 생각 더 생각 산란심이 오게 마련인데, 이것을 오래닦아 조복받으면 자연히 쉬워진다. 쉬고 쉬어서 홀연히 어떤경지를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으면, 활연히 의정疑情덩어리가 타파될 때, 자기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예전 당나라에 배휴裵休라는 사람이 있었다. 쌍둥이로 등이 맞붙은 가형아로 태어나서 부모가 칼로등을 갈라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서 키웠는데, 살이 많이 붙은 아이는 형이되고 적게붙은 아이는 동생이 되었다.

형의 이름은 도라 부르고, 동생도 도라 썼는데 글자는 같지만 음이 틀린다. 형 도는 법도를 말하는 도라하고 동생은 헤아릴 때 말하는 탁꾀할탁 이라고 불렀다.는 어릴때 형인 배도의 장성한 후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외삼촌한테 몸을 의탁하고 있었고, 동생 탁은 어디로인지 혼자가고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일행선사 一行禪師라는 도덕道德이 높은 스님이 오셔셔 외삼촌과 말씀을 하시는데, 배휴가 문밖에서 자기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다가 잠깐 들었다.

그 스님 말씀인즉

「저 아이는 웬 아이 입니까 ?

「나의 생질인데 부모가 없어 데리고 있읍니다.

「저 아이를 내보내시오.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보냅니까 ?

「내가보니 저 아이를 놓아두면 워낙 복이없는 아이라서 얻어 먹을 아이인데 저 아이로 말미암아 삼 이웃이 가난해집니다. 저 아이가 얻어 먹으려면 우선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당초에 그렇게 되기전에 내보내시오.

선사가 돌아간 뒤에 배휴가

「외삼촌 저는 어다로든지 가야겠읍니다.

「가기는 어다로 가느냐 ?

「아까 일행선사님의 말씀을 들었읍니다. 내가 빌어 먹으려면 일찍빌어 먹을 일이지 외삼촌까지 망해놓고 갈 것이 있겠읍니까. 지금부터 빌어 먹으려 가렵니다.

하고는 자꾸만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얻어먹는 거지가 되어서 사방으로 다니던 중, 하루는 어느 절 목욕탕에 부인삼대婦人三帶라는 아주 진귀한 보배가 떨어져 있는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기를 이 좋은 보배를 누가 잃어버렸나, 하고 구걸해 먹는 처지에 주어다 팔아먹든지 할텐데, 임자를 찾아주려고 보배임자가 오기를 가디리고 있었다.

이 보배는 어떤 물건인가 하면 그 고을 자사刺使(지금의 도지사)한테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삼대 독자인데, 그 어머니가 아들의 명을 구하려고 가산家産을 모두 팔아서 멀리 촉나라에 까지 가서 이 부인삼대를 구해다가 지사에게 애걸을 하여 그 삼대독자를 살리려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그 어머님이 절 목욕탕에서 목욕을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간다는 것이 워낙 바쁘게 서두루다 보니 귀중한 보물을 빼 놓고 간 것이다. 집에가서 찾아보니 부인삼대가 없어서, 허둥지둥 절 목욕탕에 와 보니 웬 거지가 목욕탕 앞에 서 있기에 저 거지가 안 가져 갔을까 해서 물어보니

「내가 주워 챙겨놓았는데 당신이 주인이면 가져가시요. 내가 그 보배를 지켜준다고 여기 있었오.

빌어먹는 처지에 어떻게 보물을 지켜주고 할 여유가 없을 텐데 그것을 지켜주어 그 사람이 감격하여 치하를 하고 보배를 가지고 가서 삼대 독자를 살렸다.

그후 배휴가 그렇게 좋은일을 하고 외삼촌 집에 들리니 마침 일행선사가 오셨는데 배휴를 보더니

「얘야 네가 정승이 되겠구나.

배휴가 그 말을 듣고

「스님이 언제는 내가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거짓말 마시오.언제는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또 정승은 무슨 말씀이요.

「전날에는 너의 얼굴상을 봤고, 오늘은 너의마음 상을 보았다. 네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묻자 배휴가 사람하나 살린일을 이야기 하니

「그래서 였구나!」 하고 수궁을 하였다.

그후 참으로 일행선사의 말씀처럼 삼공三公영의정이 되었다. 그후 어느절에 갔더니 그절에 조사님들을 모셔놓은 영각影閣에 가서 조사의 영상影像을 보고 스님들에게 묻기를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 걸려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읍니까 ?」하니, 수백명 되는 대중이 있어도 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배휴가

「이 절에 공부하는 사람이 없읍니까 ?

하고 물으니 마침 황벽선사黃檗禪師가 그 절 부근에 토굴을 묻고 있었는데 대중들이 말하기를 아마 그분이 참선하는 분 같다고 하며 황벽스님을 모셔왔다. 배휴가 황벽스님에게 묻기를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읍니까?

황벽스님이 벽력같은 소리로

「배휴야 !」 「예,」하고 대답하자

「어디에 있느냐 ?

하고 큰 소리로 하는 말에 배휴가 활연히 도를 알았다.

그 후에, 황벽스님을 도와서 불교를 많이 외호하고 불경佛經에 서문序文도 지었다.

배휴의 지위가 한 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니 함께 등이 붙어나온 그 동생을 생각하고 사방에 수소문을 해서 찾아도 동생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어디로 갔는지 무었을 하는지 내가 이렇게 정승 노릇을 하고있느니 좀 도와주고 함께 잘 지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황하강을 배를타고 건너는데 때마침 여름철이라, 배휴가 뱃사공을 보니 웃옷을 벗어부치고 노를 젓는데 등어리를 살펴보니 자기등어리와 같아서 동생이 아닌가 하고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

「배탁이 올시다.

「그럼 네가 내동생 이닌가 ?

「아, 그렇습니다.

「너는 내가 정승이 된줄 모르나 ?

「알기는 벌써 알았읍니다.

「그럼 왜 찾아오지 않았나?

「아, 형님은 형님복에 정승이되어 잘 먹고 잘 지내지마는, 나는 형님덕에 잘 지낼 것이 있읍니까 ? 그래서 배를 하나 모아가지고, 오는사람 가는 사람 건네주고 있읍니다.

하고는 형이 가자고해도 따라가지 않았는데, 형님은 형님복에 잘 살지만 이렇게 넓은 산과 물을 벗삼아 오가는 사람을 거네주며 자연스럽게 사는것이 형님의 三公地位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배휴는 전생에 많은 수행을 쌓고나온 사람이고, 동생 배탁이도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영욕에 초월해서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아는 참으로 고매하고 세상사는 멋을 아는사람이다.

정말 한 고비 넘긴 사람이다.

화업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은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처음 큰 원력을 발해서 마음을 청정케 하는 법문이다.

십지보살이 대원을 발해서 이 마음을 얻는데,

첫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석가여래釋迦如來도 중생을 위해서 나섰다

둘째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니, 부드럽고 착하고 화해야 한다. 마음이 화하면 사회가 화하고 사회가 화하면 국가가 화화니, 화한 가운데 무엇이든지 이룩된다.

셋째는 남을 수순하여 주는 마음이니, 남의 뜻을 따라줄 것도 있고 안 들어줄 것도 있는 데 대강 들어줄만한 것은 들어 주는 것이 좋다.

넷째는 적정심寂靜心이니,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일을 하고 바쁘게 설치고 해도, 마음은 고요하고 태연부동해서 고요하고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다섯째는 조복심調伏心이니, 나쁜마음이 생기든지 남을 속인다든지 하는 마음을 항복받고 꺽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는 적멸심寂滅心이니, 이것도 고요한 것이다.

일곱째는 겸화심謙和心이니,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것이다. 벼도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고, 도가 높을수록 겸손하고, 사람도 훌륭할수록 하심下心이 되어야 한다.

여덟째는 윤택심潤澤心이니 마음이 초초하고 속에서 불이일게 하지말고 윤택스럽게 해서 남까지 윤택하게 하여야 한다.

아홉째는 부동심不動心이니 하늘에 별이 많지만 하늘 중심에 정반성定盤星이라는 별은 동하지 않는다. 내가不動心에 이르러야 남의 초조한 마음을 없애준다.

열째는 불탁심不濁心이니 물도 탁하면 밑이 안 보인다. 물이 탁하지 않아야 물밑이 환하게 들여다 보인다. 처음 십지네 들어가는 보살들이 이러한 열 사지 큰 원력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암리천침 暗裡穿針 어두은 가운데 바늘을 꿰고

이중출기耳中出氣 귀안에서 기운이 나온다.

스님께서 손을들어 그 기운이 바로 허공으로 올라가듯이 표시하시며

「이러한 기운이 나와, 이러한 기운이 나와.」하며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봄소리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일체 상대적인 것이 떨어진 자리다.

시절은 춘삼월 호시절이라 우주에 춘광이 도래하여 시냇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꽃은 웃고 새는 우짓는데, 선창禪窓에 일주청향 一炷凊香의 노연爐烟은 우리집의 묘한 풍광이요 곧 다함없는 진리이다. 봄이오니 새우는 소리도 봄에우는 소리가 다르다.

겨울에는 추워서 근근히 움추리는 소리로 우는데 봄에는 아주 활발한 활짝 핀 울음소리다. 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산꽃은 웃고 들새는 노래하는 여기에 법문이 있다. 법문은 법사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드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미어전 聲前眉語傳 말하기전에 눈섭말을 전하고

묵연안미소 墨硯眼微笑 묵연히 눈으로 미소짓네

목격目擊에 존자道存이라,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만히 참선하고 있는 것이 극락세계소식이요 이것이 안락처요 이것이 불경계佛境界에 들어가는 것이다.

탐심貪心 진심瞋心 모든 망상을 다 쉬고 모든 생각이 붙으려고 해도 붙을수가 없는 그경지 천진난만한 동심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마음이 항상 편해야하고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부동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면 몸도 바쁘게 되니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해서 안락처를 얻어야 한다. 지그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편안한 것이 들어와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데 속에 분별망상의 도적이 들어있으니 항상불안한데 그것을 없애고 가라앉히고 쉬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짐다.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면 편안할 뿐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百千日月보다도 더 밝아지고 백천 바닷물보다 더 맑아지는 이러한 경지가 들어온다.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이 자리가 사람마다 다 있는 것인데, 자기가 잘못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일에 편안하고 즐겁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연히 불안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불안해 지는데, 마음이 바르고 맑으면 항상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다. 또 바르지 못하면 위태옵고 근심이 있다. 몸을 바르게 해야한다. 몸을 아무리 바르게 앉고 서드라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게 아니다. 몸이 바르고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지혜智慧가 있어서,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그 말의 낙처落處를 안다. 그말을 무엇때문에 끄집어 냈는지 말을 다 안들어도 안다.

정신수련을 하면 모든면에 통찰력이 빨라지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금을 캐면 금 속에 은도들어잇고 철과 연도들어있는데, 잡철을 다 빼고 24금이 되면 세계통용하는 보배가 된다.

보검을 만드는데도 쇠를 불에넣어 달구어서 자꾸두드려 쇠똥을 모두빼내고 쇠의 정수만 남아 두드려도 아무런잡철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두드려서 다시달구어 최후에 물에 건져낼 때에 온도가 덥지도 차지도 않는 거기에 건져내는 그것이 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믿어서 마음도 바로하고 그 마음속에 아무잡된 생각이 없으면 순금이 되고 보검이 되는것과 같은 것이다.

바른 뜻을 가지고 자비를 베프는데, 자비는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행하는 곳이다. 보살이라고 하는것은 요달하여 본다了見는 뜻이다. 그렇게해서 욕되는 것을 참는데 머물러서, 부드럽고 화하고 착하고 순한 마음을 지닌다.

아무리 중생들이 수행을 잘하고 인욕을 잘해도 부처님의 과거인행 당시와 비교할 수가없다. 누가와서 너의 눈을 빼주면 내가 꼭 쓸데가 있으니 좀 빼달라고 조르니 쑥 빼주었다. 그러나 눈은 쓰지도 않고 발로 땅에다 문질러버렷다. 그러니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그래도 태연부동해서 동하지 않으셨으니 부동지不動地에 이르러 그렇게 되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졸폭하지말고 또한 놀라지도 말아야 되는데, 산에 풀밭길을 가다가 꿩이 푸드득하고 날아가면 깜짝놀란다. 길을 가더라도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공부가 있으면 푸드득 할때 꿩인줄 알아서 놀라지 않는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마음을 두어서 구하지도 못하고 무심으로서 얻지도 못한다. 무심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망상妄想없는 그것이 무심이다.

언어言語로 짓지도 못하고 말로서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문자로 이 자리를 어떻다고 형용할 수도 없고 적묵寂默으로 통할 수도 없는 자리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네 가지 큰 서원인데

가 없는 중생을 서원코 건지리다

다함없는 번뇌를 서원코 끊으리다

무량한 법문을 서원코 배우리다

위 없는 불도를 서원코 이루리다

이것는 네가지 큰 서원인데 흔히 요새 말하는 서원이고, 禪家의 사홍서원은 어떤가 하면

배가 고프면 요긴히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더 입고

몸이 고단하면 발을 쭉 펴고 누워자고

더우면 시원한 바람을 사랑한다.

이것이 선가의 네 가지 큰 서원인데 우리일상생활을 제처놓고 무엇을 하겠는가. 일상생활이 그대로 불법이고 도다. 눈만 끔적하고 소리한번 지르는 여기에 도가 있고, 밥하고 옷만들고 농사짓고 장사하는데 도가있고, 밥먹고 대 소변보는데 모두 도가 있다. 도를 모르니까 도를 찾지 그곳에 다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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