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19, 2011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이원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운무 데리고 금강에 살어리랏다/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체나 하리요//이 몸이 식어진 뒤에 혼이 정녕 있을진댄/혼이나마 길이길이 금강에 살어리랏다/생전에 더럽힌 마음 명경같이 하과져

요즘 나온 글이나 노래는 많지 않지만 금강산을 읊은 것이 어디 이은상의 이 금강행 뿐이랴? 한말 개화 이후의 눈에 띄는 것들만 보더라도 최남선의 금강예찬 이 있고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가 있다. 정비석의 산정무한 은 우리가 배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문일평의 〈동해유기〉도 지나칠 수 없는 글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노라하는 문장가들이 읊은 수많은 한시와 기행문과 가사문학이 있고 더 오랜 고려시대의 글들도 더러 남아 있다.

시와 문장만이 아니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많은 그림들이 전통적인 산수화와 민화의 수법으로 그려졌다. 그 봉우리와 골짜기, 소용돌이치는 구슬같이 많은 며 천길 물 떠러지는 벼랑이며 , 금강산은 수많은 민담과 설화문학의 무대가 되어 노래로 불리고 형상으로 빚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쳐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금강산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성지라는 점이다. 금강산에서 불교를 빼 버린다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금강산이란 이름 자체도 불교에서 온 것으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하였다. 영어로는 다이아몬드 마운틴이라고 하지만 값비싸고 단단한 그런 광석이 이 산에서 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알고서 다시 금강산을 들여다본다면 골짜기마다 지장봉이며 석가봉, 세존봉, 관음봉, 천불산, 대지봉, 시왕봉, 등등 산봉우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마하연, 묘길상, 명경대, 득도암처럼 셀 수도 없이 맣아서 가히 불국토다운 명명이요 불교의 종합전시관이라고 할 만 하다.

이렇듯 금강산에는 4대사찰이라는 유점사와 신계사, 장안사와 표훈사가 있고 그 밖에 정양사, 보덕굴 도솔암, 안양암 등, 절과 암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근세에 이르러 이 불교의 성지는 싸움터가 되었고 수백 년을 이어 오던 크고 작은 절이며 암자들이 숱하게 잿더미가 되었다.

세 해동안이나 밀고 당기던 싸움이 가까스로 멎자 그 산의 발치에는 이중 철조망이 쳐지고 사람의 발복을 댕강 자른다는 지뢰의 띠가 이어져 몇 십 년째 묵정밭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묵정밭 한쪽이 뚫려 남북으로 길이 나고 뭔가 한 가닥 핏줄이 다시 흐르는 가도 싶더니, 어느새 다시 길을 덮으려 한다.

이재 저만치 팔만이천봉은 가시 입제도 해제도 없는 어색한 묵언의 동안거에 들어 있다. 왜 우리에겐 화두마져 잡을 길 없는 불편하고 소득 없는 날들이 이리도 더디게만 흐르는 것일까? 그건 바로 금강이라는 이름에 연유한 저 화염의 진리,

일체 원융의 그 가르침을 잊고서 살아온 너나 없는 우리 모두의 업보가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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