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12, 2011

나를 위한 인생 제6장 쟁 자기와의 싸움

6장 쟁 爭 자기와의 싸음

人間 最大의 膝利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프라톤

生卽生, 간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산다. 싸움없는 인생은 없다.

싸움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의 하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첧학자 칼 아스퍼스는 싸움을 인간의 限界 狀況의 하나로 봉았다.상황은 환경과 깉은 뜻이다.

항계 상황이란 무엇이냐, 인간이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 없고,극복하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황경, 운명적 상황이다.

인간은 어떤 황경 속에서 살아간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경을 우리의 마음에 맞도록 개조할 수도 있고 이동할 수도 있다.그러나 개조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절대적 환경이 있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환경을 한계 상황 또는 극한極限이라고 하였다. 그는 한계 상황으로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죽음Tod이다. 죽음은 인강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언젠간 죽을 수밖에없다.

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우리는 죽음의 운명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죽음을 우리의 불가피항 운명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인생일사人生一死는 생명의 원칙이요,자연의 섭리다.

둘째는 고苦, Leidenek. 석가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우리는 생로병사의 고해속에 살아간다.

一切皆苦, 모든 생명은 고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뇌가 없는 인생은 없다.고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우리는 고가 없는 樂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고는 우리의 어쩔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의 생은 고생苦生이요, 괴로운 생이다.

셋째는 죄Schuld.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는 실 수 없다.

나는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우리는 죄가 없는 맑고 깨끗한 인생을 살거 싶지만 크건 작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죄는 인간의 불가피한 한계 상황이디.

끝으로 싸움Kampf이다 우리는 남과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우면서 쌀아갈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는 입시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싸움이 있다. 우리는 싸움에서 봇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사물에 그힘자가 따르듯이 인간의 생에는 여러 가지 싸움이 수반한다.우리는 싸움이 없는 평화롱운 생을 살고 싶지마는 싸움은 운명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율배반二律背反 속에서 산다.인간의 존재에는 죽음과 고통과 죄악과 싸움이라는 네 개의 한계 상횡이 따라다닌다.

.

우리는 한계 상황이 직면할 때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을 자각하고 실존의 운명과 고뇌를 절감切感하고 진지한 각성覺醒에 도달한다. 고뇌는 인간을 심화深化시킨다.’

인생의 하나의 전쟁터와 같다.많은 사상가와 첳학자들이 인생을 전쟁에 비유했다.

문학자 빅토흐 위고Hugo도 그랬고, 도스토에프스키Dostoevskii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구랬고, 스토아의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도 그랬다.

개인간에는 생존 경쟁있고, 계급간에는 계급 투쟁이 있고, 국가간에는 전쟁이 있고, 인종간에는 분쟁이 있다.

인류의 문명사를 연구한 미국의 철학자 듀란트Durant에 의하면 과거 3천년 동안에 전쟁이 없었던 해는 겨우 268년밖에 안된다고 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평화의 역사라기보다도 전쟁의 역사였다.

런던대학의 래스키Laski교수는 20세기를 「전쟁과 혁명의세기」라고 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대전,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1949년의 중공 혁명 등,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많은 전쟁과 혁명이 발발했다.

전쟁과 혁명으로 20세기에 약 2억의 인간이 무참학게 살해 되었다. 인간은 원자탄을 만들 만큼 지능이 우수하지만 전쟁을 안 할 만큼 총명하지는 못하다.

세계의 평화와 전쟁의 방지를 위하여 20세기에의 초엽과 중엽에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을 만들었지만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인류의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세계의 永久 平和는 실현 불가능한 영원한 꿈일까.

싸울 爭자는 하나의 물건을 저마다 차지하려고 두 손이 서로 싸우는 모양을 그린 상형 문자다.

인간의 싸움에는 여러가지의 형태가 있다.

말로 싸우는 언쟁言爭과 논쟁論爭, 주먹으로 싸우는 투쟁鬪爭, 정치적인 싸움 정쟁政爭, 당파간의 당쟁黨爭,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 등 다채다양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위고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중요한 마음이 있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저연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이 싸움을 그린 위고의 소설이 (바다의 노동자)라는 작품이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자연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고, 홍수와 싸우고, 폭풍과 싸우고, 태풍과 싸우고, 맹수와 싸우고, 한재旱災와 싸우고, 온갖 질병과 싸워야 한다.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고, 폭설과 싸워야 한다. 또 기아飢餓와 싸우고, 화재와 싸우고, 지진과 싸워야 한다.

자연한테 패배하면 인간은 죽고 만다.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과 기계의 문명은 인간이 자연과 싸울 때 놀라운 수던과 무기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개인과 개인이 경쟁하고, 집단과 집단이, 계급과 계급이, 국가와 국가가 싸움을 벌린다.

1872년에 쓴 위고의 《93년》이란 명작은 인간의 혁명을 그린 소설이다.

셋째는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그린 유명한 작품이 그의 거작巨作 《레미제라불》이다. 레미제라불은 「바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장발장」이라는 가난하고 무식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善과 악惡의 치열한 싸움과 마침내 선한 자기가 악한 자기를 용감하게 이기는 내적 투쟁內的 투쟁鬪爭을 그린 휴먼니즘의 명작이다.

세계 문학사상 이 작품만큼 널리 읽히고 깊은 감동을 준 작품이 없다. 1845년에서 1862년까지 15년간에 걸처서 쓴 이 대작은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금자탑金字塔의 하나다.

《바다의 노동자》와 《93년》과 《레미제라불》은 인」간의 세 가지 싸움을 그린 위고의 유명한 3부작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이다. 《죄와 벌》을 쓴 러시아 작가 도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신神과 악령惡魔의 싸움터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선善과 악惡이 부단히 싸우고 있다. .

그것은 양심과 욕심과의 싸움이요, 소아小我와 대아大我의 투쟁이요, 본능과 이성의 대결이요, 영靈과 육肉의 갈등이요, 가아假我와 진아眞我의 다툼이요, 참된 자기와 거짓된 자기와의 충돌이요, 이산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와의 마찰이요, 본래적本來的 자기와 비본래적 자기의 싸움이다.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인생은 댄싱Dancing이 아니고 레스링Wrestling이다」라고 말했다.

무용과 씨름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로 붙잡고 돌아가는 모양은 같다. 그러나 춤은 서로 즐기기 위해서 붙들고 돌아가고, 씨름은 네가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를 겨루기 이하여 서로 붙들고 돌아간다.

춤은 평화와 희열이요, 씨름은 싸움과 고통이다.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은 세가지의 특색을 지닌다.

이 싸움은 모든 사람이 싸워야 하는 싸움이다. 목사나, 승려나, 道人이나, 수도자修道者만이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만인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인간에게만 있는 싸움이다. 인간은 양심을 가진 인격적 존재요, 이성을 지닌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 싸움을 안 할 수가 없다.

동물에게는 이 싸움이 없다. 동물은 도덕 의식이 없다. 짐승은 도덕 이하以下, 도덕 이전以前의 본능적 존재다. 약육강식의 보능적 투쟁만 있을 뿐이다.

동물을 보라, 생긴 구조부터 무시무시하고 투쟁적으로 되어 있다. 사자의 사나운 이,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 독수리의 예리한 부리, 고숨도치의 뽀족한 피부, 치타의 달리는 힘, 악어의 무서운 투쟁력, 코끼리의 억센 힘, 황소의 큰 뿔, 독사의 예리한 독아, 동물은 생리 구조 자체가 투쟁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긴 구조부터 평화적이다. 젊은 여성의 부드러운 피부, 간난아이의 고운 입술,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 소녀의 맑은 눈, 소년의 발랄한 표정, 할머니의 안자한 목소리,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말씀, 아버지의 부성애.

신은 인간을 평화의 동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싸움이 있고, 투쟁이 있고, 전쟁이 있는가.

이 싸움의 두번째 특색은 우리가 죽는 날 까지 날마다 일생 동안 싸워야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어제는 이겼지만 오늘은 질 수도 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도 있다.

인생 도처에 많은 유혹이 기다리고 있고, 허다한 함정이 있고, 넘어지기 쉬운 걸림돌이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유혹하고 싶고, 돈을 보면 눈이 어두워지기 쉽다.’ 인간은 명예 앞에 흔들리고, 권력앞에 무너지고, 향락 속에 빠지기 쉽다.

옛 사람은 황금흑사심黃金黑士心이라고 하였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시커멓게 만든다.

중국의 고전인 大學에선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좋지 않은 짓을 한다.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爲不善.

인간의 마음은 선에 물들기보다는 악에 물들기 더 쉽다.

나의 마음속에는 나의 적이 있다. 내가 나의 적이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적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끝으로 내가 나하고 싸우는 싸움은 악한 싸움이 아니고 善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문명을 파괴하는 싸움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참되 자기, 선한사람,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하여 싸우는 도덕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소리없이 벌어지는 고요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나와 남을 죽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고, 나와 남이 착해지기 위한 싸움이다.

사도 바울은 이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하였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려면 게으른 자기와 싸워야 한다. 선한 자기가 되려면 악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성실한 자기가 되려면 불성실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용감한 자기가 되려면 나약한 자기와 싸워야 한다.

내가 아하고 싸우는 싸움을 일생동안 가장 진지하게 싸운 대표적인 인물로서 나는 사도 바울을 들고 싶다.

그는 이렇게 밀했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 악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 한 법칙임을 내가 깨달았노라.」「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 하고 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도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리오..

바울이 쓴 〈로마서〉7장에는 영과 육, 선과 악, 利와 義, 본능과 양심의 갈등 속에서 치열하게 악전고투한 싸움의 내적 투쟁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죽기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켰다.

그는 의와 진리를 갈구한 진지한 구도자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을 아니하면 인간은 우물愚物이 되고 속물俗物이 되고 추물醜物로 전락한다.

여기서 더 전락하면 추악한 페물魔物이 되고 만다.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우면 마의 인격 수준이 높아져서, 선인이 되고, 의인이 되고, 군자가 되고,걸물傑物이 되고, 영물靈物이 되고, 성인이 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