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 2011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萬行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 대학원 재학중 화계사 조실 嵩山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92년 선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의 한국 선불교 본부격인 참선 전문 사찰 홍법원의 주지를 지냈으며 한국 선불교를 새계에 알리기 위해 불교 경전의 영어 번역에 힘쓰고 있다.

숭산슨님 설법집「선의 나침판」(The Compass of Zen)과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을 영어로 엮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현재 화계사와 계룡산 국제 선원에서 구도자로서 수행정진하고 있다.

걷고 아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修行이며 萬行이다.

순간 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모든 것-

이것이 바로 만행이다.

For someone who practices strongly,

Even walking, eating, drinking tea, meeting friends,

Peeling a ripe persimmon, using the toilet,

Walking through the busy market,

Feeling the sudden autumn wind on one’s face,

Watching a passing car on the busy city street,

All od these moments are our practice,

Or ‘man haeng.’

구하라, 구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이다.

마태복음77~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길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

마태복음713~14

곧고 바른 것을 길이라 하고 두려움 없는 곳을 목적지라 한다. 고요하고

한가한 수레를 타고 진실의 가르침을 덮개로 삼고 부끄러움을 고삐로 삼으며

바른 생각을 재갈로 하여 지혜를 훌륭한 말몰이 삼고 바른 소견을 안내자로

삼는다. 이 세상 어느 사람이라도 이것을 타면 생사의 험한 숲속을 지나 편안

하고 즐거운 열반에 도달하리라.

잡아함경 제22:587:2~156, 별역잡아함경 제9:171:2~437

숭산 숭산 嵩山

1989 12월 크리스마스를 몇칠 앞둔 어느 날 아침부터 쌩쌩 바람이 불어제치더니 먹구름까지 낮게 드리운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오후가 되자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이내 밤송이 마냥 커졌다. 하버드 교정 안에는 어느 날보다 일찍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문득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 도서관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보니, 점심도 안 먹었구나 아침도 빵 한 조각으로 대충 때웠는데. 뭔가에 몰두하면 딴 생각을 못하는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좀 멍청하기도 하다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밥이나 먹으러 가지 싶어 읽고 있던 쇼펜하우어와 에머슨의 책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나면서도 선뜻 식당으로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데 따뜻한 도서관을 나와 눈이 펑펑 날리는 거리를 걷다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니…… 좀 궁상 맞잖아 집에 갈까, 친구들 모아서 술이나 한잔 할까, 터덜터덜 내려오던 나에게 마사토시 교수의 목소리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 우리 학교에 생불(生佛, Living Buddha) 한 분이 오셔서 강의를 한다. 그 분은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 등과 함께 현존하는 4대 생불 중 한 분이시다. 놓치면 평생 후회할 테니 바쁜 일이 있더라도 꼭 참석해라.”

나의 지도교수이신 마사토시 나가토미.

일본인으로, 미국에서 명성 높은 불교학자 중 한 분이시다. 오전에 보고서 때문에 교수님 방에 잠시 들렸는데 내가 꼭 들어야 할 강의가 있으니 반드시 참석하라고 하셨다.

철들 무렵부터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진리란 무엇인가하는 물음. 예일 대학에 들어가 서양철학을 공부한 것도 서양의 오랜 현인들의 지식과 지혜를 통헤 그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자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렇게 하버드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다시 철학책을 파고 있는나.

1989년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부터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철학에 꽤 심취해 있었는데 마사토시 교수는 그런 나를 늘 따뜻한 시선으로 내해주었다.

나는 식당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샌더스 시어터(Sanders Theater,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큰 강의실)로 향했다.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은 흩날리는 눈과 바람 때문에 제멋대로 휘날렸다. 오른손에는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끼고 왼손으로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강의실로 걸어가면서도 식당에 가서 차라리 햄버거를 사 먹는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추운 날그냥 도서관에서 책이나 마저 읽을 걸 그랬나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글쎄……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드디어 강의실 문 앞, 시계를 보니 다섯 시 20분 와! 20분이나 늦은 것이다.

살며시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나는 숨이 멋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큰 강의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계단이며 문 앞에까지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사람들 때문에 연단의 강사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지경이였다. 좌중에서는 연이어 폭소가 터져나왔다.

잘못하면 아주 재미있는 강의를 놓칠 뻔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앞줄에 앉는 것은 포기하고 뒷문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 순간 뒷문 바로 앞에 앉아있던 한 남학생이 화장실에 가려는지 자리를 비우고 일어섰고 나는 이때다 싶어 뛰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나 숨을 돌리고 자리에 앉아 드디어 강사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통통하고 작은 동양인 한 사람이 삭발한 머리에 낡은 희색 옷을 걸치고 거기에다 문법에도 잘 맞지 않는 서툰 영어를 구사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생불이라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음 순간 나는 강의실 앞 두 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내노라 하는 교수님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ㆍ신학ㆍ생물학ㆍ문학ㆍ물리학등등 미국에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쟁쟁한 교수님들이 그 작은 동양인의 목소리 하나한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강의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강의실 안은 무려 3천여 이 넘는 청중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강사의 목소리느 따뜻하면서도 힘이 넘쳐흘렀다.

“Descartes said, I think therefore I am. Therefore this I come

From thinking. Where does thinking? Who are you?

When you were born, where did you come from? When you die, Where do you go?”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즉 이 라는 것은 생각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태어날 때 당신은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갑니까?)

격하고 억센 발음, 전치사는 다 빼고 단어만 나열하다시피 하는 어색한 영어. 나는 어디에서도 그런영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무려 25년 동안 영어로 앍고 쓰고 말해왔고 외국인들이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렇게 심오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When you die where do you go?”

강사의 갑작스런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앞자리에 앉으신 교수님들 몇 분이 대답을 시작했다.

저마다 풀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예수, 심지어 부처의 말까지 인용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좌중에서 대답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 작은 동양인 강사는 손을 내저으며 웃기만 했다. 무안함과 당혹감으로 교수님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I will give you hint. Understanding cannot help you. Even though you read all the books in the Harvard library ten times, you cannot understand your true self.”

(힌트 하나를 드리지요. 지식은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없읍니다.

여러분이 비록 이 하버드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열 번씩 읽었다

하더라도 자기자신을 찾는데는 도움이 안 됩니다.)

“Do you have any kinds of question? Please ask me.”

(좋습니다. 질문 있으면 무엇이든 하세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쏟아졌다.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고통은 어다서 오는 것입니까?”

한마디 단어, 한 줄의 문장으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생과 죽음, 삶에 대한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나는 강의가 이어지던 두 시간 반 동안 그 강사의 대답을 들으면서 완전히 충격에 휩싸여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질문마다 그는 아주 간단 명료하게 생생하고 지혜로운 답을 주었고,그 많은 청중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진정 살아 있는 언어였다. 그동안 어떤 책에서도 어떤 교수님으로부터도 보거나 듣지 못했던 생생한 지혜였다. 그때서야 니는 비로서 죽은 언어와 살아 있는 언어의 차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태어나 철이 들 무렵부터 나를 놓아주지 않았던 왜 사는가’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들을 붙잡고 자라온 세월이 주마등 처럼 흘렀다.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진리를 찾고 싶디는 마음 하나로 성당과 교회를 오갔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소크라데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하이텍커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과 생애를 공부했다. 아예 독일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1년동안 독일어를 배우면서 쇼펜하우어를 탐독하기도 햇다

뉴욕과 파리의 카페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논쟁하고 고민했던 그 숱한 나날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과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오직 마음 한 가운데는 음표로 표현한 그들의 진리 추구를 향한 열정과 감동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궁극적인 나의 고민에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늘 밤길을 혼자 걷는 나그네처럼 외로웠고 힘겨웠다.

진리가 너회를 자윸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념처럼 껴안고 살아온 날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과연 있기나 하는 건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그러나 1989 12월 그날 하버드에서의 강의는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말라붙었던 애 가슴에 불꽃을 당겼다. 두근거림, 충격, 당혹감, 환희감에 뒤섞여 강의실을 나온 나는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강의실 문 밖을 나오며 그의 강연 안내 포스터, 평생 찾아 헤멘 연인을 이제야 만나기라도 했다는 듯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포스터를 한참 처다보았다.

ZEN MASTER SEUNGSAHN FROM SOUTH KOREA

(한국ㅇ에서 온 숭산 큰 스님)

숭산, 숭산, 숭산,…… 그날 밤 나는 잔자리에 누워 숭산이라는 이름을 몇 번씩 되뇌었다.

분단 국가,625, 시위…… 한국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도 동원해보았다.

한국에서 온 숭산 큰 스님.

한국 불교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먼 나라 한국에서 온 승려 한 사람이 나의 운명을 180도 바꿔놓을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모른채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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